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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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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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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7
어떤 악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얼굴표정이 갈팡질팡하다가 굳어버린다. 까슬한 두 손에 맞잡힌 채 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니 웃는 듯 주름 잡힌 눈가에 어둔 시름이 스친다.

‘이게 마지막일 것 같아요.’ 철벽같은 병마와 사투를 벌이다 문득 가지에 붙어있을 때 꽃다운 인사를 하고 싶어진 거였다. 


자신의 생각과 꿈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빚어내던 뜨거운 열정의 손, 많은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고 쓰다듬어 주던 부드러운 손, 위로와 사랑을 전해주던 따뜻한 손길이었는데 온기가 빠져나가는 듯 딱딱한 막대기처럼 차가움마저 느껴진다. 이 손으로 전하려는 의미는 무엇일까. 


몇 해 전, 생전 이별 식을 가졌던 내과의사 이 박사가 떠오른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그는 의식이 창창한 동안에 정다웠던 친구들을 불러 고마웠던 인사도 전하고 지난 삶을 반추도 하면서 함께 웃고 즐거움을 나누다 잘 가, 잘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작별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내 손을 잡고 흔들어대던 그의 반가움은 나이보다 더 뒤로 물러선 관조의 모습으로 비쳐 마음 한 구석이 저렸었다. 그 때 100여명을 예상했던 그의 잔치에는 세 곱절이나 되는 인파가 몰려들어 웃음이 넘치는 이별 식을 하였다. 참신한 생각, 바람직한 종결이라고 저마다 긍정적인 찬사를 보내며 발길도 가볍게 헤어졌다.


바람직한 종결이라니 바람직한 인생이란 또 무엇일까. 인터넷으로 받은 어느 글에 이런 것이 있었다. ‘50대 중반쯤 인생의 정점에 서고 60대에는 관록으로 대접을 받고, 그 이후에는 원로로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생이라 하였다.


백세시대에 대입하면 연령대 구분에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열성을 다해 이룩한 삶의 성취에 존경을 받은 후 ‘떠날 때는 말없이’라는 기본 사조에는 동감이었다. 


희랍신화에는 상대적인 시간의 신(神) “카이로스”와 절대적인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있다. “카이로스”는 기회의 신이기도 하여 같은 일분의 시간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길게도 짧게도 포착되어지는 정신적이며 주관적인 시간인 반면 “크로노스”는 달력에 맞추어 시계의 초침과 함께 흘러가는 자연적이며 절대적인 시간을 말한다. 


인간은 나이나 병으로 인해 삶의 능동적 역할 면에서는 물러나더라도 살아내야 할 자연적 절대시간 “크로노스”는 똑 같이 맞이한다. 사색하는 인간의 바람직한 삶이라면 젊은이들에게 지혜와 교훈을 주고 존경심을 일으키는 것이어야 하지만 인위적으로 단절한 후의 시간이 과연 바람직한 종결일지는 모를 일이다. 


가을의 초입에 몇 분의 영결식이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길게 줄 서있는 조문객들을 바라보았다. 고인의 지난날이 영상사진에서 웃으며 활기차게 삶의 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난데없이 바람직한 종결이란 무형의 형상이 슬며시 겹쳐 들었다. 진즉 생전이별 식을 거행하고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초라한 자신, 망가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이 생전 이별이나 존엄사 선택의 진짜 깊이 감춰진 이유라 한다. 끝까지 지키고 싶은 자존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런데 조문객이 적은 영결식장에 가면 어찌나 쓸쓸한지 망자의 감고 있는 눈자위에 외로운 그늘이 덮이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마지막 길을 전송해 줄 친구 친지가 별로 많지 않다는 반증이라도 되는 듯 눈물이 밴 한숨이 나온다.


살아생전에 함께 웃고 즐겁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머리를 맞대고 서로 가슴 아파하며 고뇌하던 정다운 동료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멀리 서서 ‘잘 가라’ 손짓만 하는 친구들을 그려보았다.


영결식은 산자들의 예식이다. 소중한 삶을 살아낸 한 생명에 대한 경의의 표시인 것이다. 한 인간의 인생역전은 산자들 자신의 삶을 비쳐보게 하는 거울이 되고 간접 교훈을 남겨주기도 한다. 복잡한 찻길을 가다가도 까만 깃발을 달고 천천히 움직이는 장례행렬을 만나면 길가에 비켜서야 되는 것은 떠나는 분에 대한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알던 모르던 그렇게 하는 것은 인간 공통의 존엄성을 인정해 주는 예절인 것이다. 


이 박사는 생전이별 식후 6개월을 더 살았다. 그의 장례식엔 십 여 명 가족 친지뿐이었다. 어쩌면 가장 외롭고 고통스럽고 두려운 시간, 친구가 가장 필요한 그 시간에 혼자가 아니었을까. 문득 내 손 잡은 단단한 손은 놓을 손이 아니라 붙잡아주기를 원하는 간절한 호소처럼 전해왔다.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세태에 개인의 자존심이나 인간의 존엄성은 본연의 사랑으로 엮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악수하는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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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7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하필 그 외진 곳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느냐 힐난하는 표정들이다. 옥빌 동신교회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려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강의도하며 수강도하며 동신 늘푸른 시니어대학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4, 5년은 된 듯하다. 


노인인구가 갑자기 늘어날 이유가 없으니 대개 처음 시작할 때 등록한 학생들이 그대로 계속 진학 진급을 하면서 여일하게 정분을 쌓아 왔다. 엄격히 말하자면 진급이란 게 있을 수없이 다 똑같은 형편과 수준이지만 수강 햇수에 따라 학사, 석사가 있고 지난해에는 박사도 배출하였다. 


어언 창립 10주년, 20회기 개강을 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로든 시니어대학에 나올 수 있는 학생들은 시니어 중에서도 건강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 건강도 우수하여 판단력이나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강하다. 연륜에서 풍겨오는 지혜의 향기와 너그러운 인생의 관조를 고르게 지니고 있는 데다 제 2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자기발전의 목적이 투철하다.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한마디로 자아개발의 의욕은 왕성하나 행동반경이 전보다 좁아진 분들이라고 정의하면 가장 알맞은 표현일 듯하다. 정신적 감성적 육신적인 능력은 고루 갖추고 있으나 강력하고 예민한 순발력이 떨어지는 시기라고도 한다. 


지난 주 교내 노래자랑에서는 90세의 어르신이 목소리도 낭랑하게 한 곡 뽑으셨다. /강 건너 남촌에는 누가 살 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 젊어서는 육척 장신이었을 껑충한 키를 앞뒤로 제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어느새 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합창에 무대 앞은 덩실거리는 어르신들로 꽉 차 흔들거렸다. 


우열을 가리는 장기자랑이고, 상품이 걸린 경연대회인데 그런 것 아랑곳없이 신나고 흥겹게 어깨춤을 추는 학생들이 시니어대학생들인 것이다. 송세훈씨의 시집을 저자보다 먼저 들고 온 분도 80세가 넘은 사군자 강사였다. 한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여러 권의 책을 구입해 가지고 와서 소문을 내 버렸다. 


여름내 출판기념회 채근을 받으며 차일피일 미루어오던 터였다. 머리 위에서 맴돌던 하늘이 새파랗게 올라가버린 황금들판에 서니 갑자기 하나 둘 떠나는 이별의 소리가 사방에서 바스락거렸다. 눈만 뜨면 햇빛 따라 눈맞춤 하던 해바라기는 아예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청청하게 앞뜰을 지켜주던 단풍나무는 먼 길 떠날 채비에 빨갛게 노랗게 몸치장하느라 바쁘다. 


시간들이 어디론가 나를 지나쳐 떠나간다는 생각이 온 몸에 찬물을 끼얹는 듯 오싹하게 하였다. 년 말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에 마무리 속력을 넣을 때가 닥쳤다는 긴장감이 조급함을 몰고 왔다. 


미루기만 하던 시집출판기념회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시니어대학 특강시간에 이어서 간략한 출판자축연을 할 계획이 뜻밖의 탈바꿈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바이올린 연주자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여느 다른 시인들과는 별도로 손넽(Sonnet) 형식의 시집을 냈다고 밝힌 시인은 80대에 첫 시집을 출간한 수줍음도 있어 대도시의 행사를 기피하였다. 


마음은 있어도 먼 도시까지 출판기념회에 참석 할 수 없을 것 같은 시니어 친구들과 함께 조촐한 자축연을 하려고 생각했다. 외진 곳, 무명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라면 올 사람이 있으랴 가늠하였는데 신문기사를 보고 제일 먼저 전화 한 분이 저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것이다. 


피아노반주자만 구해달라는 주문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교회 반주자가 자원하고 나서자 먼 거리를 오겠다는 연락이 사방에서 이어졌다. 주방봉사 팀의 고충 등 사소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매듭을 지었다. 순수하고 따뜻한 시어로 풀어낸 시집 ‘외계인’의 출판기념회는 시니어 대학 친구 분들께 드리는 아주 소박한 가을의 선물로 포장하게 되었다. 


시니어대학 강의에 갑자기 끼어든 출판기념회를 더욱 뜻있는 행사로 만들기 위해 곱절의 수고를 해주신 상담학 박사 양미원 목사님, 바이올린연주를 자청하여주신 오경희님, 피아노 반주를 지원해주신 이진영님 그리고 주방봉사를 맡고 계신 피아니스트 고선주 권사님(故 고학환 한인노인회장님의 따님). 


이분들이 보통 바쁘신 분들인가. 오늘 바이올린 연주자가 곡명을 보내 왔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부드러운 바이올린의 숨소리가 흘러 넘친다. 가을이 바야흐로 아름답게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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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송세훈 시집 ‘외계인’ 서평

 

 

생명의 본체를 알고, 인생의 여정을 섭리로 믿는 사람의 시는 어떤 것일까 


표현의 도구 얼개, 시어(詩語)는 또 어떤 것일까 궁금하였다. 흔히들 ‘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말을 많이 한다. 미지의 형체를 표현할 때 자기가 만져 본대로 밖에는 그려 보일 수가 없는 이치를 단적으로 웅변하는 말이다. 


그런데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상황, 형이상학적 감상으로 가득 찬 우주 공간에서 감성을 표출해 내는 시(詩)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예민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시집 ‘외계인’때문이다. 


시인이 80대의 의학박사라는데 더 큰 이유가 있다. 송세훈 시인은 책을 많이 읽는 독서가다. 그리고 굉장한 속독가다. 일어, 영어 책을 원본으로 읽고 번역을 한다. 의과대학생일 때 두꺼운 일어 해부학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교재로 채택 될 정도로 유창하다. 


그가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것도 이런 바탕에서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다.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이시환 님의 시 약 40여 편을 영어로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이중 몇 편(Standing on the prairie and other nineteen works) 으로 인터내셔널 포엣 아카데미에서 포엣 오브 밀레니엄 어 워드(POET OF MILLENIUM AWARD)를 받았다. 


시인은 이로 인해 국제 PEN 외국문학으로 회원이 되었다. 시를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남의 시를 번역하다가 내 시도 써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등단시인이 된 것은 10여 년 전, 한 문예지에 시인으로 등단하면서부터이다. 이때 그가 밝힌 말은 정식으로 원칙에 따른 자격을 얻기 위해서라 하였다. 


거의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그간의 시들을 모아 작은 시집을 출간하였다. 시인자신의 변증에서 그의 시는 손넽(Sonnet, 작은 노래)이라고 밝히고 있다. 


“. 영시를 즐겨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희곡, 장시를 즐겼던 때가 있습니다. 특히 ‘손 넷’ 형태의 14행시를 좋아했습니다. 시집 ‘외계인’에서 2부 달 속의 계수나무, 4부 평화가 오기를, 6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가 손 넷 형식의 장시입니다. 여러 시제를 한데 엮어 한국어식 라임을 따라 시 묶음을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시인들의 시집에서와는 별도의 시집을 만들었다고 특별한 해명을 붙입니다.” 


 시인 신광호님의 발문과 소설가 김외숙님의 독후감에는 시어의 순수함과 따뜻한 인간애, 인생의 깊은 관조가 공통되는 평이었다. 단순 명료한 시어로서 전달하는 그의 시 세계는 의학자의, 그리고 신앙인의 깊은 은유가 있어 밝힌 대로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 죽었던 꽃들이 다시 돋아나 / 새 생명인가 아니면 영생인가 / 화려한 꽃들의 결혼식이 이어집니다. / . 나비가 없어도 뿌리로 아들 딸 만들고. (꽃들의 축제에서)


인공수정, 줄기세포 복제양을 상상하게 한다. 시집6부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10장의 장시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죽은 자 끼리는 말이 통한다. 그러나 자유롭다. 그러나 산자의 꿈속에서 살아난다. 그러나 유적과 유물들의 입을 통하여 말한다. 그러나 산자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러나 역사기록이 증인이 된다… 시인은 죽어서도 시를 쓸 것이다. 시집은 이렇게 마무리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손 넷이다. 


인간은 긴 역사의 흐름에 한 점으로 생멸한다. 그 흔적은 지금이 아닌 미래에, 지구가 아닌 외계에서 평가될 것이다. 

 

*출판기념회: 10월 29일(화요일) 오전 11시 캐나다동신교회(The East Faith Presbyterian Church, 1126 Invicta Dr, Oakville, ON.). 전화 905 -338-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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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새벽별 물레방아(Morningstar Mills)

 

 

빨간 목조 방앗간과 하얀 물레방아를 보는 순간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옛 친구와 맞닥뜨린 듯 놀라움과 반가움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캐나다에서도 물레방아를 돌렸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차를 세웠다. 


새벽별 물레방아는 원위치에 보존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방앗간의 하나로 ‘데 큐’폭포(Decew Fall)에서 떨어지는 물 힘을 이용한 물레방아다. 1872년 윌슨 모닝스타가 세우고 1932년에 복원되어 지금은 ‘세인트 캐서린’시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세인트 캐서린을 비롯하여 나이아가라지역은 이리(Erie) 호수와 온타리오(Ontario) 호수의 단차(약 150m)로 인한 수력 의존 산업이 발달하였다. 나이아가라 수력발전소가 생기기 이전부터 많은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곡물을 가공하는 산업이 주를 이루었던 것이다. 빅토리아데이(5월 21일)부터 10월 중순까지 개관하며 매달 셋째 토요일에는 방아로 곡식을 찧는 시범행사를 갖는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오늘이 바로 방아찧기 일반 공개날이었다. 400파운드의 밀을 2시간 반 정도의 시간 안에 밀가루로 빻아내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쿵~덕 쿵~덕 낱알이 달아나는 방아 찧기가 아니라 맷돌로 갈아 가루를 만드는 제분소였다. 


물레방아는 수량(水量)이 적을 때만 사용하는 보조장치여서 오늘은 수력발전으로 방아를 움직인다고 하였다. 물레방아의 겉모양은 같았지만 고국의 산골마을 정취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수력발전 실에 들어서니 8m의 ‘데 큐’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에너지로 변화되어 전기가 들어오고 그 힘을 끌어올려 직경이 1.5m는 됨직한 바위덩이 맷돌을 돌려 밀을 빻고 있었다. 안내인이 작은 들창을 열고 내다보라고 해서 무심히 고개를 내밀다가 흐흑.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바로 폭포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이었다. 눈앞에서 흰 거품을 물고 요동치는 물줄기가 나마저 휩쓸어갈 듯이 포효하며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저 힘. 바위덩이 맷돌을 바람개비처럼 돌려 밀알들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위력 앞에 온 몸이 오싹하였다. 

 

 맷돌에서 갈아진 밀가루는 네 개의 체질 통을 거치게 되어 있었다. 첫 번 통에서는 굵은 밀기울을 걷어낸 거친 가루를 내놓으며 다음으로 굴러가면서 고운 가루로 체질하는 작업이었다. 보통 빵을 굽는 데는 3번 통이 적당하다고 한다. 매일 아침 빵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가 자고 있던 가족들의 코를 간질이고 신선하고 맛있는 새아침을 열어주던 일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한 알의 밀알이 빻아지고 체 쳐지는 탈신의 과정을 지켜보니 빵을 얻기 위해 정력을 쏟는 인생의 모든 수고와 노력이 새롭게 되새겨진다. 한 개의 빵을 훔치다 19년간이나 옥중 삶을 살게 되는 장발장이 떠오르고 인간의 존엄성보다 생존의 기본조건이 우선하는 인간사 모든 고역이 빵으로 뭉쳐지면서 잠깐 마음을 어둡게 짓눌렀다.


 농업이 국가의 대본(大本)이던 농경문화시대에 옛 우리 조상들은 씨를 심을 때 셋을 심는다고 하였다. 하나는 하늘을 위해, 하나는 땅을 위해, 나머지 한 알은 인생을 위해서 라고 한다. 하늘이라 함은 공중의 새를, 땅은 벌레를 말함으로 모든 생물이 함께 나누며 공존한다는 삶의 원리를 깨우쳐줌과 동시에 햇빛과 토양과 사람의 수고가 합력하여 식물을 경작하는 깊은 의미가 있다 한다.


삼분의 일의 몫, 한 알의 밀이 썩어야 밀을 생산하고, 빻아져야 밀가루가 되며 빵이 되듯,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더불어 사는 민초들의 삶을 그리게 한다. 


방앗간 가득 새로 빻은 생밀가루향기가 넘실댄다. 윙~윙~기계소리가 천정을 치고 마음을 울린다. 일생에 필요한 건 오직 몇 개의 빵일 뿐일 텐데..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참 뜻을 깊이 헤아린다. 오랜만에 구수한 빵 냄새로 몸도 마음도 철철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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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행운의 빨강 금붕어

  
 
현관문 곁 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바람에 불려온 단풍나무 씨앗들이 젖은 바닥에 찰싹 깔려있을 뿐 빨간색 ‘재 구아’도 까만색 ‘엘란트라’도 없다. 어깨를 맞붙인 타운하우스니 바로 옆방이 빈 듯 허전하다. ‘에 레나’는 키가 자그마하고 서글서글한 성품에 붙임성이 좋아 친척집 조카처럼 정이 갔다. 내가 힘이 더 세다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잔디를 깎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과수원에서 사과나 복숭아 체리 같은걸 사오면 애들 방에 넣어주듯 스스럼없이 나누며 지내던 10년 이웃이었다. ‘브록’(Brock)대학에서 공부하는 딸을 위해 ‘썬더베이’에 사는 부모가 집을 사주었다. 졸업 후 두어 해 보조교사를 하다가 정규직장을 찾아 이곳 저곳 옮겨 다니는 눈치더니 근래에는 뉴욕까지 간 모양이었다.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면 결혼할거라며 웃기더니 재작년에 빨간색 ‘재 구아’를 탄 기사를 데리고 왔다. 남편 ‘폴’ 역시 보조교사인데 뉴욕의 아파트값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국경을 넘나들며 출퇴근을 하더니 한겨울 지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며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새 직장을 찾아 아예 이사까지 결정을 한 것이다. 


가끔 주일에 교회에 가려고 나오다 마주치는 경우가 있었다. ‘폴’은 늦잠 자는 중이라며 ‘팀 호 튼’커피를 사들고 들어가는 ‘에 레나’의 모습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토론토지역으로 직장을 구하러 다닌다며 ‘기도 좀 해 주세요.’ 여전히 명랑한 목소리로 부탁하였다. 


저녁에 떠날 예정이라기에 서둘러 돌아왔는데 이미 다 떠나버린 후였다. 문 앞에 선물 봉투 하나, 굿 바이! 즐기세요(Good Bye! Enjoy it). 굵은 매직펜으로 박아 쓴 메모 한 장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침에 인사는 했지만 떠날 때 직접 배웅하지 못한 서운함이 안개처럼 눈앞을 가렸다. 직장을 구하려고 애쓰는 야윈 모습들이 한 없이 애처롭고 그들 앞에 요동치는 생존경쟁의 세찬 파도가 슬픔처럼 밀려왔다. 텅 빈 드라이브 웨이가 허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마음바닥을 훑고 지나간다. 


까만 화판에 까만 표구를 한 액자를 꺼내보았다. 열두 마리 빨강금붕어들이 먹이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모여 있다. 머리를 맞댄 붕어들의 수염이 하늘하늘 흔들린다. 지느러미가 부드러운 비단결처럼 살랑살랑 물결을 가르고 갈라진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유연한 힘을 발산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풀쩍 솟아올라 홰를 치며 물방울을 사방에 쏘아댈 듯 휘젓는 몸놀림이 팔팔하다. 


사진인데 어쩌면 저렇게 살아있는 듯 정교하고 입체적일 수 있을까 신기해서 자세히 드려다 보다 깜짝 놀랐다. 그것은 사진이 아니라 아주 가는 비단실로 수를 놓은 자수액자였다. 


뒷면의 설명으로 행운의 금붕어 ‘치 쑤’(Chi Xu. 持續 지속)라는 걸 알았다. 빨간 금붕어는 상서롭다고 하며, 12마리는 12달을 뜻한다고 하였다. 일 년 열두 달 내내 행운이 넘치라는 축복의 액자였다. 어느 유명한 수예가가 정성들여 수놓은 축원의 비손이었다. 순간 이 액자는 나보다 그들에게 더 필요한 액자라는 판단이 번쩍 스쳤다. 


‘돈 밀스’ 어디라는 그들의 새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다. 고운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손 사례를 칠 생각이었다. 오늘 옆집에서 탕탕 못질 소리가 난다. 아직도 떠난 이웃에 대한 감상에 연연해 있는 자신을 깨우다가 새로운 상념에 빠져 들었다. 


지난 일생 동안 있은 나의 이사행적을 되돌아보았다. 한국을 떠나 미국 ‘바 팔 로’, ‘바 팔로’에서 캐나다 ‘런던’, ‘런던’내에서 2번, 그리고 나이아가라 ‘폰 힐’로 오기까지 총 5번의 이사를 하였다. 


그런데 언제나 이사를 간다는 일은 벅차고 버겁고 힘이 들었다. 무사히 이사를 가는 일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를 떠나 보내는 이웃들의 감상 같은 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떠난다는 사실을 슬퍼할 겨를도 없었고. ‘에 레나’의 떠남을 섭섭해 하듯이 즐겁게 지내던 이웃이 우리를 떠나 보내면서 어떤 감상을 가졌을지는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이 좋게 머리를 맞댄 열두 마리 빨간 금붕어가 뽀르륵 날숨을 뿜어낼 것만 같다. 일 년 열두 달 서로 비비며 사이 좋게 둥글둥글 살아가는 삶의 풍요로움을 일깨워준다. 볼 때마다 ‘에 레나’와 ‘폴’의 소원성취와 행복을 기원하게 한다. 어느 곳에서 살던지 축원으로 교류하는 우리의 마음은 항상 평안하고 행복할 것이다. 


어느날, 홀연히 닥쳐올 이사를 위해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싶다. 나눌수록 많아지고 베풀수록 더 크게 돌아오는 사랑의 자취를 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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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
달나라와 꿈

 

 

가마솥 더위가 찐득하게 휘감긴다. 섭씨41도. 금년 들어 최고의 더위라 한다. 국제펜클럽야유회를 불가불 ‘이 회장’ 자택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인간이 달에 착륙한 ‘달 정복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곳곳에서 흥겨운 축제로 박람회로 떠들썩하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발자국을 내던 그날의 감격과 환희가 얼마나 뜨거웠으면 아직까지도 이리 더울까 웃음 짓는 얼굴들에 땀이 번들거린다. 


1957년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를, 1961년엔 유인우주선 보스토크1호 발사에 성공하였다. 1969년7월20일,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은 우주경쟁에서 몇 발 뒤쳐가던 미국의 자존심을 기세 좋게 세워 준 승리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50년간 탐사한 달의 생태조건은 우선 숨 쉴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이며, 중력의 가속도가 적어 무게가 가벼워지고, 강력한 방사선 위험이 높다고 한다. 게다가 태양빛이 닿는 표면의 온도는 섭씨127도까지 뜨겁다가 해가 지면 섭씨영하173도까지 내려가는 한마디로 사람이 살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극한환경이라 한다. 


고금동서 시인묵객들이 읊어온 낭만이나 계수나무 밑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그런 동화의 달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며칠 전 영화관에서 ‘첫 사람’(First Man)영화를 보았다. 달에 첫발을 디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Niel Armstrong)의 생애를 담은 영화이다. 작년 10월에 첫 개봉된 141분짜리 영화는 67만 여명의 관객이 몰렸다고 한다. 


황금빛 실 낫 같은 초승달에 밀짚모자를 쓴 소년이 걸터앉아 낚시질을 한다. 거울같이 잔잔한 파란 물에 빨간 찌가 ‘퐁당’ 소리를 내며 물보라를 일으키면 “. 당신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될 것 입니다.” 자막이 떠오르며 영화는 시작된다. 


‘닐 암스트롱’이 우주비행사가 되기까지 받는 극기와 고난도의 훈련, 그리고 아폴로11호를 타기 전 3번이나 불시착을 하게 되는 역경과 고투, 아폴로11호의 발사에서 착륙까지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불시에 맞닥뜨리는 위험과 사투 등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시청각을 뒤흔들고 마음공동을 마구 휘젓고 다닌 영상들이 쉽게 일어설 수 없게 하였다.


그 중에서도 암으로 죽어가는 딸을 안고 달을 보여주며 달래는 인간 암스트롱의 고뇌는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고 가벼운 걸음으로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착륙의 환희와는 또 다른 묵중한 무게로 오랫동안 마음을 짓눌렀다. 


“날 비추는 저 달빛 내 사랑하는 이에게도 비쳐주소서.” 우주복 품속에 간직해 온 딸의 팔찌를 달에 떨어뜨리는 장면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넋을 놓고 지구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중얼거리던 ‘닐 암스트롱’은 2012년 관상동맥 협착수술 합병증으로 별세하였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24년까지 첫 번째 여성을 달에 착륙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발표하였다. 아폴로11호 사령선조종사였던 ‘마이클 콜린스’는 달에 다시 가는 대신 화성에 직접 가고 싶다고 했다. 캐나다도 합류한 우주정거장 ‘게이트웨이플랜’, 중국의 달 우주연구소 설치계획 등 달, 화성에 대한 우주탐색은 계속 열기를 더해갈 전망이다. 


막대한 시간과 천문학적 재정을 투자하는 우주탐험은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 ‘펠함의 소리’(VOICE OF PELHAM)에 ‘새로운 각도에서 달 보기’라는 롭 웨더비(Rob Weatherby) 목사의 글이 있었다. 지금까지 달에서 걸은 우주비행사는 12명, 그 중 4명은 생존해 있고, 4명중 가장 어린 ‘찰리 듀크 주니어’(Charlie Duke Jr.)가 지난해 한 나이아가라교회의 기도회에 참석하였다. 


‘찰리 듀크’는 1972년 나이36세에 아폴로16호로 달 탐사를 마치고 11일 만에 돌 샘플을 가지고 돌아와 국가영웅이 되었다. 처음엔 여행도 많이 하고 발표회, 연설출연도 많았다. 1975년에 은퇴할 때 명성과 가정과 재정적 안정. 모두 가졌다 생각했는데 무언가 빠진 듯하였다. 참 마음의 평화가 없었던 것이다.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그는 돈을 좇아 새로운 기업에 몰입하게 되었다. 부인 ‘도로시’와 결혼생활에 파탄이 오기 시작, 이혼직전까지 이른 이들은 마침내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달 위를 걸을 수는 없으나 주와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파랑 초록색의 공 같은 지구는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고 술회하였다.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부르고 하모니카를 불어제친 글벗의 얼굴이 속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불그레하다. 마음 밑바닥까지 훑으며 흐르는 부드러운 단소소리가 이태백의 신선 못으로 이끌고 간다. 물에 잠긴 달을 건지려다 문득 깨달았다.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달이나 화성으로 가야만 할까.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지구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아름답게 살고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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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30
선죽교와 유엔 기념공원

  
 
 회색 하늘 아래 유엔기가 펄럭이고 있다. 유엔 기념공원엔 침묵으로 절규하는 함성이 바람으로 흩날린다.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생명을 바친 영령께 깊이 고개를 숙였다.


 불현듯 또 하나의 빛바랜 영상이 눈앞으로 지나간다. 6.25전쟁이 나기 바로 전, 아현초등학교 학생들은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소풍이라면 기껏해야 가까운 새 절이나 진관사 정도를 걸어서 갔다가 해질녘에 발을 질질 끌면서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던 때에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새벽 6시 신촌역광장에는 양은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멘 남학생도 있었다. 어떻게 계획된 여행인지 알 수 없으나 까만 정장에 금테 모자를 쓴 역장이 플랫폼에 정렬한 학생들에게 거수경례를 부치며 ‘수학여행 잘 다녀오시오’ 하던 것만 기억된다. 


뽀 옥~ 칙~칙. 시커먼 증기화통이 들어서자 귀를 막고 주저앉던 학생들은 기차가 출발하자 순식간에 말문이 터진 듯 차 안은 덜컥거리는 이음새소리에 웃고 떠드는 소리까지 한데 엉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개성. 고려500년 도읍지 송도. 학생들은 책에서 배운 송도삼절(三絶: 황진이, 서경덕(서 화담), 박연폭포)을 찾아 줄지어 따라다니던 행렬은 작은 돌다리에 이르자 일단 멈추고 정렬하였다. 선죽교였다. 동쪽엔 한석봉 글씨의 비(碑)가 있었다. 


물통에 물을 떠다 돌다리 중간쯤 바닥에 확 끼얹으니 불그스름한 핏자국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순간 철없이 떠들던 학생들은 일시에 조용해지고 감격의 큰 눈망울들만 반짝거렸다. 


태종 이방원의 회유에 화답한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가 떠올랐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돌다리 위 빨간 핏자국은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곧 이어 터진 6.25전쟁으로 인해 개성은 더 이상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학교나 학생은 우리 밖에 없었다. 


박연폭포 만월대 선죽교를 직접 본 마지막 세대라고 한껏 뽐내며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자랑 이전에 묻혀있을 참뜻을 다시 짚어보게 되었다.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풋 솜처럼 빨아드리는 해맑은 총기의 학생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혈기왕성한 아이들을 인솔하고 기차여행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선생님은 왜 그 어려운 수학여행을 계획하고, 또 개성을 택하셨을까. 고마움과 정비례하여 질문이 뇌리에서 뱅뱅 떠나지 않았다. 


오늘 한반도의 남단, 부산. 유엔 기념공원엔 하늘의 비구름이 마음마저 흐리게 한다. 유엔 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 기념묘지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희생당한 연합국 군인묘지이며 성지이다. 


유엔군 전몰장병 총 11개국 2,300명이 안장되어 있다.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가 설치하였고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아울러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 하였다. 이해 12월, 유엔총회는 이 묘지를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1959년 11월 유엔 기념묘지설치 및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간의 협정이 체결되었고, 1974년 기념묘지 국제 관리위원회로 관리이관이 되었다. 2001년 한국어 ‘기념묘지’ 명칭을 ‘기념공원’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원래 1만1000명의 유해가 안장되었으나 전원 본국으로 이장되었거나 일부 고국으로 돌아간 유해가 있어 2,300명이 되었다 한다. 


기록에 보면 6.25전쟁 유엔 참전국은 전투지원16국과 의료지원5국 총 21국에서 19만5,000여 명의 병력이 참전하여 전사3만7,900여 명을 포함하여 부상, 실종, 포로 등 15만1,000여 명의 피해가 있었다. 그 중 미국은 17만 8,900명이 참전하여 전사자만 3만3,600여 명을 내었다. 


드디어 비가 내린다. 위령탑에도, 묘지 위에도, 하얀 돌비석 위에도, 쏟아지는 빗줄기가 선죽교와 겹쳐지는 순간 퍼뜩 깨달았다. 세계평화와 자유를 위해 싸우다 낯선 땅 이국에 묻힌 저들의 가슴에서도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떠오르 리라. 


선죽교를 보여주신 참 교육자 스승님이 한없이 존경스럽다.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던 21국의 동맹국들, 목숨 바쳐 희생한 수많은 이국의 젊음이 있었음이, 또 있을 것임이 한없는 신뢰와 감사함을 넘치게 한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리, 영원히. WE WILL REMEMBER THEM,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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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7
어머니의 마음

 

의령 축산협회 달력은 글자의 크기가 사방 5센티는 됨직한 대형 벽걸이 달력이다. 5월을 펼쳐보니 1일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날, 6일 대체공휴일, 8일 어버이날, 10일 유권자의 날, 12일 부처님 오신 날, 15일 스승의 날, 18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20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31일 바다의 날. 무려 11일이 특별한 날이다. 어머니날 대신 어버이날이 이곳 달력과 좀 다르다. 어린아이들의 버릇없음은 부모들의 책임이라는 신문기사가 떠올라 어린이날과 사라진 어머니날 그리고 어버이날에 대해 상념에 잠겼다 


 어버이날은 조상과 부모 어른들에게 대한 감사와 효도와 존경심을 되새기도록 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여 경로효친의 행사를 해오던 중 아버지의 날이 거론되어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1973년에 개정 공포되었다 한다. 


어린이날은 3.1운동 이후 소파 방정환선생 등 몇 분이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1923년 5월1일 색동회가 중심이 되어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기념행사를 치름으로써 어린이날이 시작되었다. 1927년부터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행사를 치르다가 1939년엔 일제의 억압으로 잠시 중단되었다. 


광복 후 1946년 다시 5월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여 1957년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1970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부터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70년대 전체인구 3,143만 명중 어린이가 890만(28%)명으로 노인인구 170만(5.4%)명보다 5배나 더 많았다. 


그러던 것이 2000년에는 전체인구 4,598만 명 중 어린이는 650만(14%)명, 노인인구는 516만(11%)명에 이르러 어린이 수는 줄고 노인수가 늘어난 것이다. 저 출산 기타 여건으로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심화되리라고 추정한다.  


어린이날을 창설한 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공휴일로 지정된 1970년대만 해도 다산이 보편적이던 풍조에 자녀들은 많고 살기 힘겨운 형편의 가정이 많았다. 하루만이라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관심을 촉구시킬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워즈워스가 읊었듯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가 아니라 ‘어린이는 어른의 왕’이 아닐까 하는 한숨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민 초기 해마다 어머니날 즈음엔 야유회를 하였다. 평소에 서로 소통하거나 담소할 기회가 별로 없던 엄마들에겐 그야말로 기분 전환의 최상의 축제자리였다. 그런데 희희낙락하게 시작된 잔치는 뻘겋게 충혈된 눈물범벅으로 끝나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 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 요/어머니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합창소리가 차츰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 요/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멜로디를 대신한다. .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 요/어머님의 사랑은 거룩하여라/ 트럼펫이 울음소리를 반주하면서 여운을 길게 남기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실컷 눈물을 쏟아낸 엄마들의 표정이 더 없이 행복해 보이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당면한 모든 고통과 어려움, 짓눌려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진 나의 존재감이 가뭄에 생수 마시듯 주욱 죽 자라나는 활력을 실감하였다. 천군만마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무적함대를 뒤에 업은 든든한 자신감이었다. 


이 무렵 한국에서 새로 오는 어린아이들의 특성은 ‘기 살려주기’의 부산물인 듯하였다. 어른 앞에서도 당당한 자기의사 표현은 자립심의 발로지만 안하무인 버릇없다는 말로 질책을 받곤 하였다. 어머니날은 미국 버지니아 주 그래프틴의 학교선생 안나 자 비스가 자기 어머니의 사랑을 감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1914년 윌슨대통령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제정 공포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100여 개의 나라에 어머니날이 있다. 한국에는 5월8일 어버이날로 개정하였고 어린이날은 법정 공휴일인데 반해 어버이날은 기념일이다.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개정하려는 계획은 올해에도 실행되지 못했다. 일용직 임시직장인의 수입문제와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는 보육대란이 이유였다. ‘어머니의 마음’ 노래에 가사 한 구절을 덧붙이게 되지나 않을지.


달력의 5월8일엔 붉은 동그라미를 치고 ‘어버이 날’ ‘큰 소 일반송아지 경매’라 표시되어 있었다. 어미 소의 젖은 눈망울이 망막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버이에 대한 감사와 효도와 존경심은 마음 중심에서 흘러 넘치는 사랑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 사랑 다 갚을 길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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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2
아버지와 아들

 

지구의 기류변화가 전자속도 닮아가나 보다. 플로리다에 토네이도가 몰아쳐서 보트를 타고 시내를 다닌다거나 동북부 어디에 눈사태가 한 마을을 흔적도 없이 덮쳤다는 소식이 들리기가 바쁘게 이곳까지 그 여세가 맹위를 떨치며 들이 닥치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4시밖에 안됐는데 짙은 안개로 앞을 분간 할 수 없었다. 바람은 어찌나 세게 부는지 거리엔 꺾인 나뭇가지들이 엉겨 뒹굴고 간판들이 찢어지고 자빠져서 몸부림 치고 있었다. 어느새 눈발까지 뿌리기 시작하여 한시바삐 돌아가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을 하였다. 


어서 차를 들여놓고 따뜻한 안식처로 들어가야지. 한숨 돌리는데 차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 얼었나? 두 번 세 번. 누르다가 가로등이 꺼진 걸 보고 아차! 전기가 나갔다는 걸 퍼뜩 깨달았다. 


집안은 이미 냉장고가 되어가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현관에 들어서면서 전등스위치를 올렸지만 작은 비상등까지 꺼진 집안은 컴컴한 동굴 속 같았다. 굵직한 빨간 초에 불을 켜고 오랫동안 쓰지 않아 껌벅거리는 손전등을 찾아 곁에 놓고 소파에 웅크리고 앉았다. 연결이 되지 않는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여러 번 하였다. 


어느새 밤 11시, 전기가 쉽게 돌아올 것 같은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눈발은 좀 뜸해졌는데 바람소리는 기마전이 벌어진 전투장의 아우성이었다. 데크 위 가제보가 얼마나 세게 요동을 치는지 네 기둥이 마구 흔들렸다. 뒤뜰 백양나무가 온 몸으로 살풀이춤을 추는 게 그대로 지붕위로 덮칠 듯 보기에도 겁이 났다.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칠 듯 온몸은 잔뜩 긴장되었는데 머릿속에선 토막영상들이 ‘플래시 몹’으로 번쩍거렸다. 문득 무인고도에 갇힌 듯 막막했던 그 때 일이 떠올랐다. 몇 해 전, 때아닌 춘삼월에 몇 십 년만의 대폭설이 뉴욕 주를 강타하였다. 


버펄로 출발, 디트로이트 환승, LA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사태로 뉴욕 발 비행기가 2시간이나 버펄로에 연착하는 바람에 디트로이트 LA 환승 비행기를 놓쳤다. 우여곡절 끝에 LA도착은 4시간이나 늦게 되었다. 당연히 공항에서 연착안내방송을 하였으리라 믿고 마중 나올 친구를 기다렸지만 한 식경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공항안내원의 설명을 들은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펄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늦었을 뿐이지 디트로이트-LA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하여 정시에 LA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공항전화를 내주며 친절을 베풀었지만 전화번호를 알 수 없었다. 도시이름도 동네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맥이 빠져 주저앉을 것 같던 그때 섬광처럼 비친 지혜가 인터넷이었다. 다음날 호텔로 데리러 온 친구는 만나자 웃기부터 하였다. 떠난 것은 확실한데 3시간이나 기다리다 돌아갔다고 한다. 간신히 큰 아들과 전화가 되었단다. “아, 우리 부모님이 언제 LA를 가셨어요? 염려 마세요. 우리부모님은 어떻게든 찾아오실 거니까요.” 혹시 딸은 알고 있을까 전화를 하였더니 금새 “아이 어떻게 해요. 찾으시면 제게도 좀 알려 주세요.” 하더라는 것이다. 


지금도 걱정을 끼친다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현관문으로 환한 빛이 비쳐왔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도 끄지 않은 채 큰아들이 뛰어 들어왔다. 걱정이 되어서 들려봤다는 것이다. 


‘그냥 전기 들어올 때까지 견뎌보겠다.’ 우물거리는 아빠에게 짐짓 목소리를 높였다. ‘10분 이내에 빨리 준비하고 나와요’하며 나를 돌아보고 싱긋 웃는다. 


아들과 아빠는 도란도란 이야기가 많다.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의학용어도 주고받는다. 운전수가 바뀐 자동차 뒷좌석에 편안히 기대 앉아 새김질하듯 넉넉한 상념에 젖어 들었다. 


‘의학을 하려면 전문의를 해라’ ‘인술은 베푸는 것이지 자기 혼자 지니는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다.’ 아버지는 매사에 단호하였다. ‘요새 존엄사 문제로 논란이 많던데. ?’ 부자간의 대화가 화제를 바꾸었나 보다. ‘의사소통도 안 되고 육신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는 여러모로 무익한 손실이라던데. ?’ 


잠시 잠잠하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갓난아이는 말도 못하고 몸도 추스르지 못해 먹여주고,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줘야 살지요. 장래에 뭐가 될지 모르면서도 부모들은 기쁘게 정성을 다해 기르거든요. 나고 죽는 건 의사의 소관이 아니에요.’ 


 나란히 앉은 두 어깨가 자동차바퀴 따라 흔들린다. 부자간의 천륜이 둥글둥글 굴러간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인정을 받을 때 울어나는 존재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텔 체크인을 마친 아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휴가 많이 즐기세요’


아빠는 엄지와 곤지로 하트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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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
우리 설날

 

흐르는 시간 띠에 줄이라도 좍 긋듯 펑 터트린 오색 종이꽃을 타고 황금돼지해가 들이닥쳤다. 온통 흥분으로 들떠 있던 밤이 가고 아침이 밝기를 여러 날이건만 지난해나 오늘이나 별 다름 없는 일상이 나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새 해’라는 새로운 기대의 눈을 번쩍 뜨게 해 준 건 블라디보스톡에서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이었다. 


러시아 동방교회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1월 7일이 성탄절이라고 한다. 12월 25일은 정례적인 성탄절로, 1월7일은 현지국가와 국민에게 드리는 예의로 28년간 두 번의 성탄절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아직 새해가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정수리에 찬 물을 확 뒤집어 씌우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되면 앞만 보고 분주하게 달려오던 삶의 경주에서 잠깐 멈춤과 숨 고르기를 하게 된다. 일 년 내내 이 핑계 저 구실로 구석박이가 된 주위를 돌아본다.


아귀를 꼭 묶지 않은 곡식자루처럼 미완으로 던져진 일거리들, 깔끔하게 매듭짓지 못한 인사교류관계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마음만 초조하고 바빠진다.

이것들을 언제 다 정리정돈 할 것인가. 종종걸음 치지만 계절은 오히려 더 많은 행사, 대외활동으로 몰아붙여서 나를 잊을 지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리저리 흐르다 나동그라진 조약돌처럼 망연한 상실감에 젖어 있었는데 순전히 시간계수법의 차이가 온 몸에 활기를 넘치게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누카’나 아랍의 ‘라마단’ 축제처럼 시간의 잣대보다 민족적인 전통의식이 더 앞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 한이 없었다. 


문득 연이어 따라 나온 사실 하나가 환희로 펄쩍 뛰게 하였다. 설날! 아직도 한 달, 한 해를 통째로 다시 얻은 듯 기쁨이 전율을 일으키며 온 몸에 흘렀다. 나 스스로 시간의 주인이 되어 차분히 새해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설날을 언제부터 지켜왔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중국사서에 ‘신라 때 정월 초하루가 되면 왕이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에서 상당히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1895년에 양력이 채택되면서 구정으로 밀려 빛이 바랬다가 1985년 ‘민속의 날’로 제정되어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 


‘설’의 어원에 대해서도 한 살-설, 장이 선 다의 선-설이란 여러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새해 새날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왔다고 유추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달력을 펴 놓고 들여다본다.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부족에는 ‘없어져서 좋은 날’(Good Riddance Day)이라는 축제가 있다 한다. 지난해의 불쾌하고 당혹스러웠던 기억이나 사건들을 일일이 종이에 기록해서 강력한 분쇄기에 던져 종이가루로 만들거나, ‘없어져서 좋은 것’들을 망치로 부셔버린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 고통을 비우는 작업에서부터 시작 하여야겠다. 좋은 일들은 추리고 가다듬어서 일 년 365일 8760시간을 새롭게 채울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다. 


오랜 시간 민초들의 삶 속에서 용해되고 숙성되어 지켜온 신토불이의 새해 첫날 ‘설날’의 미풍양속을 고스란히 이민 자녀들에게 전해주는 조상세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찬, 세배, 덕담의 설 풍경을 그리다가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다. ‘묵은세배’와 세뱃돈에 관한 한국 예지원의 추천이었다. 자녀들이 섣달 그믐날 부모님께 한 해 동안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하다는 세배를 드린다고 한다. 이때 빳빳한 신권으로 세뱃돈을 드리면 다음날 세뱃돈으로 자연스럽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세뱃돈은 받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얼마나 사려 깊고 애정이 넘치는 풍습인지 고개가 숙여진다.


아침 걷기를 하는데 매일 도서관에서 만나는 외국인 친구 하나가 아는 체를 한다. 차이니스 뉴이어(Chinese New Year)? 아니 우리 설날이야. (No. Korean Sulnal)! 


 인생은 짧게도 길게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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