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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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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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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행운의 빨강 금붕어

  
 
현관문 곁 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바람에 불려온 단풍나무 씨앗들이 젖은 바닥에 찰싹 깔려있을 뿐 빨간색 ‘재 구아’도 까만색 ‘엘란트라’도 없다. 어깨를 맞붙인 타운하우스니 바로 옆방이 빈 듯 허전하다. ‘에 레나’는 키가 자그마하고 서글서글한 성품에 붙임성이 좋아 친척집 조카처럼 정이 갔다. 내가 힘이 더 세다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잔디를 깎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과수원에서 사과나 복숭아 체리 같은걸 사오면 애들 방에 넣어주듯 스스럼없이 나누며 지내던 10년 이웃이었다. ‘브록’(Brock)대학에서 공부하는 딸을 위해 ‘썬더베이’에 사는 부모가 집을 사주었다. 졸업 후 두어 해 보조교사를 하다가 정규직장을 찾아 이곳 저곳 옮겨 다니는 눈치더니 근래에는 뉴욕까지 간 모양이었다.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면 결혼할거라며 웃기더니 재작년에 빨간색 ‘재 구아’를 탄 기사를 데리고 왔다. 남편 ‘폴’ 역시 보조교사인데 뉴욕의 아파트값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국경을 넘나들며 출퇴근을 하더니 한겨울 지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며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새 직장을 찾아 아예 이사까지 결정을 한 것이다. 


가끔 주일에 교회에 가려고 나오다 마주치는 경우가 있었다. ‘폴’은 늦잠 자는 중이라며 ‘팀 호 튼’커피를 사들고 들어가는 ‘에 레나’의 모습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토론토지역으로 직장을 구하러 다닌다며 ‘기도 좀 해 주세요.’ 여전히 명랑한 목소리로 부탁하였다. 


저녁에 떠날 예정이라기에 서둘러 돌아왔는데 이미 다 떠나버린 후였다. 문 앞에 선물 봉투 하나, 굿 바이! 즐기세요(Good Bye! Enjoy it). 굵은 매직펜으로 박아 쓴 메모 한 장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침에 인사는 했지만 떠날 때 직접 배웅하지 못한 서운함이 안개처럼 눈앞을 가렸다. 직장을 구하려고 애쓰는 야윈 모습들이 한 없이 애처롭고 그들 앞에 요동치는 생존경쟁의 세찬 파도가 슬픔처럼 밀려왔다. 텅 빈 드라이브 웨이가 허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마음바닥을 훑고 지나간다. 


까만 화판에 까만 표구를 한 액자를 꺼내보았다. 열두 마리 빨강금붕어들이 먹이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모여 있다. 머리를 맞댄 붕어들의 수염이 하늘하늘 흔들린다. 지느러미가 부드러운 비단결처럼 살랑살랑 물결을 가르고 갈라진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유연한 힘을 발산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풀쩍 솟아올라 홰를 치며 물방울을 사방에 쏘아댈 듯 휘젓는 몸놀림이 팔팔하다. 


사진인데 어쩌면 저렇게 살아있는 듯 정교하고 입체적일 수 있을까 신기해서 자세히 드려다 보다 깜짝 놀랐다. 그것은 사진이 아니라 아주 가는 비단실로 수를 놓은 자수액자였다. 


뒷면의 설명으로 행운의 금붕어 ‘치 쑤’(Chi Xu. 持續 지속)라는 걸 알았다. 빨간 금붕어는 상서롭다고 하며, 12마리는 12달을 뜻한다고 하였다. 일 년 열두 달 내내 행운이 넘치라는 축복의 액자였다. 어느 유명한 수예가가 정성들여 수놓은 축원의 비손이었다. 순간 이 액자는 나보다 그들에게 더 필요한 액자라는 판단이 번쩍 스쳤다. 


‘돈 밀스’ 어디라는 그들의 새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다. 고운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손 사례를 칠 생각이었다. 오늘 옆집에서 탕탕 못질 소리가 난다. 아직도 떠난 이웃에 대한 감상에 연연해 있는 자신을 깨우다가 새로운 상념에 빠져 들었다. 


지난 일생 동안 있은 나의 이사행적을 되돌아보았다. 한국을 떠나 미국 ‘바 팔 로’, ‘바 팔로’에서 캐나다 ‘런던’, ‘런던’내에서 2번, 그리고 나이아가라 ‘폰 힐’로 오기까지 총 5번의 이사를 하였다. 


그런데 언제나 이사를 간다는 일은 벅차고 버겁고 힘이 들었다. 무사히 이사를 가는 일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를 떠나 보내는 이웃들의 감상 같은 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떠난다는 사실을 슬퍼할 겨를도 없었고. ‘에 레나’의 떠남을 섭섭해 하듯이 즐겁게 지내던 이웃이 우리를 떠나 보내면서 어떤 감상을 가졌을지는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이 좋게 머리를 맞댄 열두 마리 빨간 금붕어가 뽀르륵 날숨을 뿜어낼 것만 같다. 일 년 열두 달 서로 비비며 사이 좋게 둥글둥글 살아가는 삶의 풍요로움을 일깨워준다. 볼 때마다 ‘에 레나’와 ‘폴’의 소원성취와 행복을 기원하게 한다. 어느 곳에서 살던지 축원으로 교류하는 우리의 마음은 항상 평안하고 행복할 것이다. 


어느날, 홀연히 닥쳐올 이사를 위해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싶다. 나눌수록 많아지고 베풀수록 더 크게 돌아오는 사랑의 자취를 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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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
달나라와 꿈

 

 

가마솥 더위가 찐득하게 휘감긴다. 섭씨41도. 금년 들어 최고의 더위라 한다. 국제펜클럽야유회를 불가불 ‘이 회장’ 자택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인간이 달에 착륙한 ‘달 정복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곳곳에서 흥겨운 축제로 박람회로 떠들썩하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발자국을 내던 그날의 감격과 환희가 얼마나 뜨거웠으면 아직까지도 이리 더울까 웃음 짓는 얼굴들에 땀이 번들거린다. 


1957년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를, 1961년엔 유인우주선 보스토크1호 발사에 성공하였다. 1969년7월20일,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은 우주경쟁에서 몇 발 뒤쳐가던 미국의 자존심을 기세 좋게 세워 준 승리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50년간 탐사한 달의 생태조건은 우선 숨 쉴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이며, 중력의 가속도가 적어 무게가 가벼워지고, 강력한 방사선 위험이 높다고 한다. 게다가 태양빛이 닿는 표면의 온도는 섭씨127도까지 뜨겁다가 해가 지면 섭씨영하173도까지 내려가는 한마디로 사람이 살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극한환경이라 한다. 


고금동서 시인묵객들이 읊어온 낭만이나 계수나무 밑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그런 동화의 달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며칠 전 영화관에서 ‘첫 사람’(First Man)영화를 보았다. 달에 첫발을 디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Niel Armstrong)의 생애를 담은 영화이다. 작년 10월에 첫 개봉된 141분짜리 영화는 67만 여명의 관객이 몰렸다고 한다. 


황금빛 실 낫 같은 초승달에 밀짚모자를 쓴 소년이 걸터앉아 낚시질을 한다. 거울같이 잔잔한 파란 물에 빨간 찌가 ‘퐁당’ 소리를 내며 물보라를 일으키면 “. 당신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될 것 입니다.” 자막이 떠오르며 영화는 시작된다. 


‘닐 암스트롱’이 우주비행사가 되기까지 받는 극기와 고난도의 훈련, 그리고 아폴로11호를 타기 전 3번이나 불시착을 하게 되는 역경과 고투, 아폴로11호의 발사에서 착륙까지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불시에 맞닥뜨리는 위험과 사투 등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시청각을 뒤흔들고 마음공동을 마구 휘젓고 다닌 영상들이 쉽게 일어설 수 없게 하였다.


그 중에서도 암으로 죽어가는 딸을 안고 달을 보여주며 달래는 인간 암스트롱의 고뇌는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고 가벼운 걸음으로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착륙의 환희와는 또 다른 묵중한 무게로 오랫동안 마음을 짓눌렀다. 


“날 비추는 저 달빛 내 사랑하는 이에게도 비쳐주소서.” 우주복 품속에 간직해 온 딸의 팔찌를 달에 떨어뜨리는 장면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넋을 놓고 지구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중얼거리던 ‘닐 암스트롱’은 2012년 관상동맥 협착수술 합병증으로 별세하였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24년까지 첫 번째 여성을 달에 착륙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발표하였다. 아폴로11호 사령선조종사였던 ‘마이클 콜린스’는 달에 다시 가는 대신 화성에 직접 가고 싶다고 했다. 캐나다도 합류한 우주정거장 ‘게이트웨이플랜’, 중국의 달 우주연구소 설치계획 등 달, 화성에 대한 우주탐색은 계속 열기를 더해갈 전망이다. 


막대한 시간과 천문학적 재정을 투자하는 우주탐험은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 ‘펠함의 소리’(VOICE OF PELHAM)에 ‘새로운 각도에서 달 보기’라는 롭 웨더비(Rob Weatherby) 목사의 글이 있었다. 지금까지 달에서 걸은 우주비행사는 12명, 그 중 4명은 생존해 있고, 4명중 가장 어린 ‘찰리 듀크 주니어’(Charlie Duke Jr.)가 지난해 한 나이아가라교회의 기도회에 참석하였다. 


‘찰리 듀크’는 1972년 나이36세에 아폴로16호로 달 탐사를 마치고 11일 만에 돌 샘플을 가지고 돌아와 국가영웅이 되었다. 처음엔 여행도 많이 하고 발표회, 연설출연도 많았다. 1975년에 은퇴할 때 명성과 가정과 재정적 안정. 모두 가졌다 생각했는데 무언가 빠진 듯하였다. 참 마음의 평화가 없었던 것이다.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그는 돈을 좇아 새로운 기업에 몰입하게 되었다. 부인 ‘도로시’와 결혼생활에 파탄이 오기 시작, 이혼직전까지 이른 이들은 마침내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달 위를 걸을 수는 없으나 주와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파랑 초록색의 공 같은 지구는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고 술회하였다.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부르고 하모니카를 불어제친 글벗의 얼굴이 속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불그레하다. 마음 밑바닥까지 훑으며 흐르는 부드러운 단소소리가 이태백의 신선 못으로 이끌고 간다. 물에 잠긴 달을 건지려다 문득 깨달았다.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달이나 화성으로 가야만 할까.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지구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아름답게 살고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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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30
선죽교와 유엔 기념공원

  
 
 회색 하늘 아래 유엔기가 펄럭이고 있다. 유엔 기념공원엔 침묵으로 절규하는 함성이 바람으로 흩날린다.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생명을 바친 영령께 깊이 고개를 숙였다.


 불현듯 또 하나의 빛바랜 영상이 눈앞으로 지나간다. 6.25전쟁이 나기 바로 전, 아현초등학교 학생들은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소풍이라면 기껏해야 가까운 새 절이나 진관사 정도를 걸어서 갔다가 해질녘에 발을 질질 끌면서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던 때에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새벽 6시 신촌역광장에는 양은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멘 남학생도 있었다. 어떻게 계획된 여행인지 알 수 없으나 까만 정장에 금테 모자를 쓴 역장이 플랫폼에 정렬한 학생들에게 거수경례를 부치며 ‘수학여행 잘 다녀오시오’ 하던 것만 기억된다. 


뽀 옥~ 칙~칙. 시커먼 증기화통이 들어서자 귀를 막고 주저앉던 학생들은 기차가 출발하자 순식간에 말문이 터진 듯 차 안은 덜컥거리는 이음새소리에 웃고 떠드는 소리까지 한데 엉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개성. 고려500년 도읍지 송도. 학생들은 책에서 배운 송도삼절(三絶: 황진이, 서경덕(서 화담), 박연폭포)을 찾아 줄지어 따라다니던 행렬은 작은 돌다리에 이르자 일단 멈추고 정렬하였다. 선죽교였다. 동쪽엔 한석봉 글씨의 비(碑)가 있었다. 


물통에 물을 떠다 돌다리 중간쯤 바닥에 확 끼얹으니 불그스름한 핏자국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순간 철없이 떠들던 학생들은 일시에 조용해지고 감격의 큰 눈망울들만 반짝거렸다. 


태종 이방원의 회유에 화답한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가 떠올랐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돌다리 위 빨간 핏자국은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곧 이어 터진 6.25전쟁으로 인해 개성은 더 이상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학교나 학생은 우리 밖에 없었다. 


박연폭포 만월대 선죽교를 직접 본 마지막 세대라고 한껏 뽐내며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자랑 이전에 묻혀있을 참뜻을 다시 짚어보게 되었다.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풋 솜처럼 빨아드리는 해맑은 총기의 학생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혈기왕성한 아이들을 인솔하고 기차여행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선생님은 왜 그 어려운 수학여행을 계획하고, 또 개성을 택하셨을까. 고마움과 정비례하여 질문이 뇌리에서 뱅뱅 떠나지 않았다. 


오늘 한반도의 남단, 부산. 유엔 기념공원엔 하늘의 비구름이 마음마저 흐리게 한다. 유엔 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 기념묘지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희생당한 연합국 군인묘지이며 성지이다. 


유엔군 전몰장병 총 11개국 2,300명이 안장되어 있다.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가 설치하였고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아울러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 하였다. 이해 12월, 유엔총회는 이 묘지를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1959년 11월 유엔 기념묘지설치 및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간의 협정이 체결되었고, 1974년 기념묘지 국제 관리위원회로 관리이관이 되었다. 2001년 한국어 ‘기념묘지’ 명칭을 ‘기념공원’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원래 1만1000명의 유해가 안장되었으나 전원 본국으로 이장되었거나 일부 고국으로 돌아간 유해가 있어 2,300명이 되었다 한다. 


기록에 보면 6.25전쟁 유엔 참전국은 전투지원16국과 의료지원5국 총 21국에서 19만5,000여 명의 병력이 참전하여 전사3만7,900여 명을 포함하여 부상, 실종, 포로 등 15만1,000여 명의 피해가 있었다. 그 중 미국은 17만 8,900명이 참전하여 전사자만 3만3,600여 명을 내었다. 


드디어 비가 내린다. 위령탑에도, 묘지 위에도, 하얀 돌비석 위에도, 쏟아지는 빗줄기가 선죽교와 겹쳐지는 순간 퍼뜩 깨달았다. 세계평화와 자유를 위해 싸우다 낯선 땅 이국에 묻힌 저들의 가슴에서도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떠오르 리라. 


선죽교를 보여주신 참 교육자 스승님이 한없이 존경스럽다.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던 21국의 동맹국들, 목숨 바쳐 희생한 수많은 이국의 젊음이 있었음이, 또 있을 것임이 한없는 신뢰와 감사함을 넘치게 한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리, 영원히. WE WILL REMEMBER THEM,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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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7
어머니의 마음

 

의령 축산협회 달력은 글자의 크기가 사방 5센티는 됨직한 대형 벽걸이 달력이다. 5월을 펼쳐보니 1일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날, 6일 대체공휴일, 8일 어버이날, 10일 유권자의 날, 12일 부처님 오신 날, 15일 스승의 날, 18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20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31일 바다의 날. 무려 11일이 특별한 날이다. 어머니날 대신 어버이날이 이곳 달력과 좀 다르다. 어린아이들의 버릇없음은 부모들의 책임이라는 신문기사가 떠올라 어린이날과 사라진 어머니날 그리고 어버이날에 대해 상념에 잠겼다 


 어버이날은 조상과 부모 어른들에게 대한 감사와 효도와 존경심을 되새기도록 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여 경로효친의 행사를 해오던 중 아버지의 날이 거론되어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1973년에 개정 공포되었다 한다. 


어린이날은 3.1운동 이후 소파 방정환선생 등 몇 분이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1923년 5월1일 색동회가 중심이 되어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기념행사를 치름으로써 어린이날이 시작되었다. 1927년부터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행사를 치르다가 1939년엔 일제의 억압으로 잠시 중단되었다. 


광복 후 1946년 다시 5월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여 1957년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1970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부터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70년대 전체인구 3,143만 명중 어린이가 890만(28%)명으로 노인인구 170만(5.4%)명보다 5배나 더 많았다. 


그러던 것이 2000년에는 전체인구 4,598만 명 중 어린이는 650만(14%)명, 노인인구는 516만(11%)명에 이르러 어린이 수는 줄고 노인수가 늘어난 것이다. 저 출산 기타 여건으로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심화되리라고 추정한다.  


어린이날을 창설한 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공휴일로 지정된 1970년대만 해도 다산이 보편적이던 풍조에 자녀들은 많고 살기 힘겨운 형편의 가정이 많았다. 하루만이라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관심을 촉구시킬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워즈워스가 읊었듯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가 아니라 ‘어린이는 어른의 왕’이 아닐까 하는 한숨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민 초기 해마다 어머니날 즈음엔 야유회를 하였다. 평소에 서로 소통하거나 담소할 기회가 별로 없던 엄마들에겐 그야말로 기분 전환의 최상의 축제자리였다. 그런데 희희낙락하게 시작된 잔치는 뻘겋게 충혈된 눈물범벅으로 끝나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 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 요/어머니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합창소리가 차츰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 요/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멜로디를 대신한다. .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 요/어머님의 사랑은 거룩하여라/ 트럼펫이 울음소리를 반주하면서 여운을 길게 남기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실컷 눈물을 쏟아낸 엄마들의 표정이 더 없이 행복해 보이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당면한 모든 고통과 어려움, 짓눌려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진 나의 존재감이 가뭄에 생수 마시듯 주욱 죽 자라나는 활력을 실감하였다. 천군만마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무적함대를 뒤에 업은 든든한 자신감이었다. 


이 무렵 한국에서 새로 오는 어린아이들의 특성은 ‘기 살려주기’의 부산물인 듯하였다. 어른 앞에서도 당당한 자기의사 표현은 자립심의 발로지만 안하무인 버릇없다는 말로 질책을 받곤 하였다. 어머니날은 미국 버지니아 주 그래프틴의 학교선생 안나 자 비스가 자기 어머니의 사랑을 감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1914년 윌슨대통령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제정 공포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100여 개의 나라에 어머니날이 있다. 한국에는 5월8일 어버이날로 개정하였고 어린이날은 법정 공휴일인데 반해 어버이날은 기념일이다.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개정하려는 계획은 올해에도 실행되지 못했다. 일용직 임시직장인의 수입문제와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는 보육대란이 이유였다. ‘어머니의 마음’ 노래에 가사 한 구절을 덧붙이게 되지나 않을지.


달력의 5월8일엔 붉은 동그라미를 치고 ‘어버이 날’ ‘큰 소 일반송아지 경매’라 표시되어 있었다. 어미 소의 젖은 눈망울이 망막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버이에 대한 감사와 효도와 존경심은 마음 중심에서 흘러 넘치는 사랑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 사랑 다 갚을 길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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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2
아버지와 아들

 

지구의 기류변화가 전자속도 닮아가나 보다. 플로리다에 토네이도가 몰아쳐서 보트를 타고 시내를 다닌다거나 동북부 어디에 눈사태가 한 마을을 흔적도 없이 덮쳤다는 소식이 들리기가 바쁘게 이곳까지 그 여세가 맹위를 떨치며 들이 닥치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4시밖에 안됐는데 짙은 안개로 앞을 분간 할 수 없었다. 바람은 어찌나 세게 부는지 거리엔 꺾인 나뭇가지들이 엉겨 뒹굴고 간판들이 찢어지고 자빠져서 몸부림 치고 있었다. 어느새 눈발까지 뿌리기 시작하여 한시바삐 돌아가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을 하였다. 


어서 차를 들여놓고 따뜻한 안식처로 들어가야지. 한숨 돌리는데 차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 얼었나? 두 번 세 번. 누르다가 가로등이 꺼진 걸 보고 아차! 전기가 나갔다는 걸 퍼뜩 깨달았다. 


집안은 이미 냉장고가 되어가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현관에 들어서면서 전등스위치를 올렸지만 작은 비상등까지 꺼진 집안은 컴컴한 동굴 속 같았다. 굵직한 빨간 초에 불을 켜고 오랫동안 쓰지 않아 껌벅거리는 손전등을 찾아 곁에 놓고 소파에 웅크리고 앉았다. 연결이 되지 않는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여러 번 하였다. 


어느새 밤 11시, 전기가 쉽게 돌아올 것 같은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눈발은 좀 뜸해졌는데 바람소리는 기마전이 벌어진 전투장의 아우성이었다. 데크 위 가제보가 얼마나 세게 요동을 치는지 네 기둥이 마구 흔들렸다. 뒤뜰 백양나무가 온 몸으로 살풀이춤을 추는 게 그대로 지붕위로 덮칠 듯 보기에도 겁이 났다.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칠 듯 온몸은 잔뜩 긴장되었는데 머릿속에선 토막영상들이 ‘플래시 몹’으로 번쩍거렸다. 문득 무인고도에 갇힌 듯 막막했던 그 때 일이 떠올랐다. 몇 해 전, 때아닌 춘삼월에 몇 십 년만의 대폭설이 뉴욕 주를 강타하였다. 


버펄로 출발, 디트로이트 환승, LA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사태로 뉴욕 발 비행기가 2시간이나 버펄로에 연착하는 바람에 디트로이트 LA 환승 비행기를 놓쳤다. 우여곡절 끝에 LA도착은 4시간이나 늦게 되었다. 당연히 공항에서 연착안내방송을 하였으리라 믿고 마중 나올 친구를 기다렸지만 한 식경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공항안내원의 설명을 들은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펄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늦었을 뿐이지 디트로이트-LA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하여 정시에 LA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공항전화를 내주며 친절을 베풀었지만 전화번호를 알 수 없었다. 도시이름도 동네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맥이 빠져 주저앉을 것 같던 그때 섬광처럼 비친 지혜가 인터넷이었다. 다음날 호텔로 데리러 온 친구는 만나자 웃기부터 하였다. 떠난 것은 확실한데 3시간이나 기다리다 돌아갔다고 한다. 간신히 큰 아들과 전화가 되었단다. “아, 우리 부모님이 언제 LA를 가셨어요? 염려 마세요. 우리부모님은 어떻게든 찾아오실 거니까요.” 혹시 딸은 알고 있을까 전화를 하였더니 금새 “아이 어떻게 해요. 찾으시면 제게도 좀 알려 주세요.” 하더라는 것이다. 


지금도 걱정을 끼친다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현관문으로 환한 빛이 비쳐왔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도 끄지 않은 채 큰아들이 뛰어 들어왔다. 걱정이 되어서 들려봤다는 것이다. 


‘그냥 전기 들어올 때까지 견뎌보겠다.’ 우물거리는 아빠에게 짐짓 목소리를 높였다. ‘10분 이내에 빨리 준비하고 나와요’하며 나를 돌아보고 싱긋 웃는다. 


아들과 아빠는 도란도란 이야기가 많다.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의학용어도 주고받는다. 운전수가 바뀐 자동차 뒷좌석에 편안히 기대 앉아 새김질하듯 넉넉한 상념에 젖어 들었다. 


‘의학을 하려면 전문의를 해라’ ‘인술은 베푸는 것이지 자기 혼자 지니는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다.’ 아버지는 매사에 단호하였다. ‘요새 존엄사 문제로 논란이 많던데. ?’ 부자간의 대화가 화제를 바꾸었나 보다. ‘의사소통도 안 되고 육신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는 여러모로 무익한 손실이라던데. ?’ 


잠시 잠잠하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갓난아이는 말도 못하고 몸도 추스르지 못해 먹여주고,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줘야 살지요. 장래에 뭐가 될지 모르면서도 부모들은 기쁘게 정성을 다해 기르거든요. 나고 죽는 건 의사의 소관이 아니에요.’ 


 나란히 앉은 두 어깨가 자동차바퀴 따라 흔들린다. 부자간의 천륜이 둥글둥글 굴러간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인정을 받을 때 울어나는 존재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텔 체크인을 마친 아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휴가 많이 즐기세요’


아빠는 엄지와 곤지로 하트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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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
우리 설날

 

흐르는 시간 띠에 줄이라도 좍 긋듯 펑 터트린 오색 종이꽃을 타고 황금돼지해가 들이닥쳤다. 온통 흥분으로 들떠 있던 밤이 가고 아침이 밝기를 여러 날이건만 지난해나 오늘이나 별 다름 없는 일상이 나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새 해’라는 새로운 기대의 눈을 번쩍 뜨게 해 준 건 블라디보스톡에서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이었다. 


러시아 동방교회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1월 7일이 성탄절이라고 한다. 12월 25일은 정례적인 성탄절로, 1월7일은 현지국가와 국민에게 드리는 예의로 28년간 두 번의 성탄절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아직 새해가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정수리에 찬 물을 확 뒤집어 씌우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되면 앞만 보고 분주하게 달려오던 삶의 경주에서 잠깐 멈춤과 숨 고르기를 하게 된다. 일 년 내내 이 핑계 저 구실로 구석박이가 된 주위를 돌아본다.


아귀를 꼭 묶지 않은 곡식자루처럼 미완으로 던져진 일거리들, 깔끔하게 매듭짓지 못한 인사교류관계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마음만 초조하고 바빠진다.

이것들을 언제 다 정리정돈 할 것인가. 종종걸음 치지만 계절은 오히려 더 많은 행사, 대외활동으로 몰아붙여서 나를 잊을 지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리저리 흐르다 나동그라진 조약돌처럼 망연한 상실감에 젖어 있었는데 순전히 시간계수법의 차이가 온 몸에 활기를 넘치게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누카’나 아랍의 ‘라마단’ 축제처럼 시간의 잣대보다 민족적인 전통의식이 더 앞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 한이 없었다. 


문득 연이어 따라 나온 사실 하나가 환희로 펄쩍 뛰게 하였다. 설날! 아직도 한 달, 한 해를 통째로 다시 얻은 듯 기쁨이 전율을 일으키며 온 몸에 흘렀다. 나 스스로 시간의 주인이 되어 차분히 새해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설날을 언제부터 지켜왔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중국사서에 ‘신라 때 정월 초하루가 되면 왕이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에서 상당히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1895년에 양력이 채택되면서 구정으로 밀려 빛이 바랬다가 1985년 ‘민속의 날’로 제정되어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 


‘설’의 어원에 대해서도 한 살-설, 장이 선 다의 선-설이란 여러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새해 새날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왔다고 유추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달력을 펴 놓고 들여다본다.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부족에는 ‘없어져서 좋은 날’(Good Riddance Day)이라는 축제가 있다 한다. 지난해의 불쾌하고 당혹스러웠던 기억이나 사건들을 일일이 종이에 기록해서 강력한 분쇄기에 던져 종이가루로 만들거나, ‘없어져서 좋은 것’들을 망치로 부셔버린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 고통을 비우는 작업에서부터 시작 하여야겠다. 좋은 일들은 추리고 가다듬어서 일 년 365일 8760시간을 새롭게 채울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다. 


오랜 시간 민초들의 삶 속에서 용해되고 숙성되어 지켜온 신토불이의 새해 첫날 ‘설날’의 미풍양속을 고스란히 이민 자녀들에게 전해주는 조상세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찬, 세배, 덕담의 설 풍경을 그리다가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다. ‘묵은세배’와 세뱃돈에 관한 한국 예지원의 추천이었다. 자녀들이 섣달 그믐날 부모님께 한 해 동안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하다는 세배를 드린다고 한다. 이때 빳빳한 신권으로 세뱃돈을 드리면 다음날 세뱃돈으로 자연스럽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세뱃돈은 받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얼마나 사려 깊고 애정이 넘치는 풍습인지 고개가 숙여진다.


아침 걷기를 하는데 매일 도서관에서 만나는 외국인 친구 하나가 아는 체를 한다. 차이니스 뉴이어(Chinese New Year)? 아니 우리 설날이야. (No. Korean Sulnal)! 


 인생은 짧게도 길게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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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9
송구영신(送舊迎新) 이야기

 

 
 
‘아직도 산타클로스를 믿고 있나, 일곱 살이면 바뀔 나이도 됐는데.’ 일곱 살짜리 콜만(Coleman)이 크리스마스 전날 트럼프대통령에게서 받은 전화회답이다. 어느 단체의 특별기획으로 실행된 백악관성탄절통화를 다룬 신문기사의 제목은 ‘아이들아 이 기사는 제발 읽지 말아다오’였다. 


대통령과의 대화가 어린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하기를 기대했는지 목 울림만으로도 금방 분별되었다. 콜만이 부모가 저를 속여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지 나에게도 여러 가지로 관점의 선별문제를 제시해 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5세에서 8세 사이 어느 시점에서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게 된다고 한다. 1978년 연구를 보면 다섯 살짜리들은 85%가 있다고 믿는 반면 여덟 살짜리들은 25%에 불과하였다. 2015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연구는 인터넷 등에 의해 더 빨리 산타클로스가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라 하였다. 


크리스마스 날 산타클로스가 사슴이 끄는 수레를 타고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간다는 이야기는 긍정적인 반응으로만 해석되지 않는 듯하다. 어느 동화작가의 글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그의 딸은 산타클로스가 거짓이라는 걸 벌써 알았지만 엄마가 실망할까 봐 말을 안 했다는 것이다. 


토론토스타 ‘패밀리 서커스’ 만화에는 다섯 살 맏이가 성탄절 아침에 포장을 푼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동생들에게 목소리를 높인다. ‘이제 우리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도 돼.’ 귀여운 웃음만 자아내지는 않는다. 


부모들의 거짓은 선한 속임수일까. 가족모임에 가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며 깊은 상념에 젖게 하였다. 오랜만에 모인 아이들의 키가 아빠와 어깨를 견줄 만큼 모두 껑충 자랐다. 


가끔 차를 태워달라며 미안해하던 의현은 내후년에 대학에 간다고 한다. 8학년 졸업식에서 최 우등상 타러 나가던 때 네 키가 제일 작았는데…놀라워했더니 ‘더 이상 아니에요.’ 싱긋 웃는다. 


크리스천들이니 성탄절의 주인과 산타클로스는 별개의 인물이라는 걸 환히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의 본체와 그 작은 일부분을 실행하는 자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깨닫는 이들에게 무슨 속임수가 필요할까. ‘산타클로스를 어떻게 생각하니?’ ‘아. 그건 그냥 이야기에요’. 


12월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숨고르기를 하는 듯하다. 정신 없이 달려오던 일상에 잠깐 멈춤의 표지판이 턱 가로막고 주위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말거리 까탈거리들이 많은 해였다. 국제정세는 예측할 수 없이 얼키고 설키고. 산불, 홍수, 쓰나미, 화산폭발… 지구가 몸살을 하는 사이 폭동, 살상, 분쟁과 쟁탈 전쟁소식은 끊일 날이 없었다.


나 개인적인 심신의 아픔과 고통을 가미하면 올 한해는 살아내기 참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천재지변이나 병고를 일단 제치고 보면 거의 모든 재난은 거짓과 탐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에게 형성된 성품은 근원이 어려서부터라는 연구 결과는 이제 거의 상식화 되었다. 완전 미지의 세계를 더듬는 어린아이의 성장과정을 떠 올린다. 스치는 대로 흡수할 순백의 탈지면 같은 심상,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허투루 다룬 듯 조바심이 쳐진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속담은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의 부모들은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바르고 깨끗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몸가짐으로 태교를 실천하였다.


 다섯에서 여덟 살 사이에 진실을 알게 되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의 신뢰를 잃지 않고 정서를 함양하는 방법은 없을까. 기자와 만화가가 안타깝게 고심하는 갈등이 나에게도 전해왔다. 


문득 그저 하나의 이야기라던 지혜에서 터득하였다. 더 이상 거짓되게 속이지 말자. 고운 해를 맞이하도록 아름다운 동화를 만들어 주자. 문학은 세상을 아름답게 살게 하는 지혜의 이야기가 아닌가. 의현이 하키 연습에 간다며 아빠 차를 몰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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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어떤 친구와 뻐꾹 시계


 
 친구(親舊)의 親자를 파자하면 ‘나무 위에 서서 보는 것.’ 즉 나무 위에서 지켜보아 주다가 어렵고 힘들 때 내게로 다가와 준다는 뜻이라 한다. 나무 위에서 지켜주는 친구라면 새(鳥)가 더 적격이 아닐까 상상해 본 것은 순전히 우리 집 뻐꾹 시계 때문이다. 


서울에서 대망의 올림픽대회가 개최되던 해, 친구 부부와 우리, 네 사람은 난생처음 구라파 여행으로 몹시 흥분해있었다. 토론토 한국여행사 ‘김’사장이 구라파 여행코스를 신설하고 선발팀으로 가게 된 것이다. 


현지 여행사 사장과 만나기로 한 암스테르담 공항엔 아무도 마중 나와 있지 않았다. 공항에서 합류하기로 한 다른 여행객도 전혀 없었다. 사장은 나타나지 않고 영어권이 아니니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하여 툭 건드리면 눈물이 폭 쏟아질 지경이 되었다.


30여 분이 지나자 웬 한인남자 한 분이 텅 빈 청사로 들어섰다. 무조건 달려가 붙들었다. 그런데 말문도 열기 전에 “사장이 갑자기 출타해서 대신 오느라 늦었다”며 거듭 사과하는 것이었다. 와 준 것만도 감지덕지 구세주 같았다. 


독일 ‘뒤스버그’ 호텔에서 자고 난 다음날 그가 밝힌 자초지종을 듣고는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바로 독일 ‘유로파여행사’ ‘조’사장이었다. 뉴욕 손님 30여 명이 같은 기간에 열리는 서울올림픽 관광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며 며칠 전에 예약취소를 하였다 한다. 


4명으로는 그룹여행을 할 수 없고, 적당히 변상해서 돌려 보내려 했는데 막상 만나 보니 왜인지 친구가 되고 싶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너무 순진하고 가련해서였을 것이라며 웃었지만 분명한 것은 ‘김’사장의 바람 넣기만 아니었다면 구라파 여행이란 생각조차도 못했을 성품들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봉고차에 식료품과 취사도구를 싣고 와서 여행 스케줄을 다시 짰다. 새벽6시에 기상하여 아침, 점심은 간략하게, 저녁만은 디너쇼나 전통쇼를 보면서 즐기기로 하였다. 수가 적어 기동력이 빠르고 현장 가이드를 구하기가 용이할뿐더러 관광지 입장이 아주 쉬웠다. 


될수록 많은 곳을 보여주겠다며 봄베이니 카타콤. 같은 보통 여정엔 없는 유적을 찾기도 하고, 큰 차로는 어림도 없는 산장호텔에서 청정한 숲속 공기를 마시며 민속풍경과 인심을 피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조’사장은 서라벌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한때 자신이 주연한 ‘연산군’ 연극에서 폭군 연산의 대사를 큰 소리로 암송하기도 하고, 경유지의 민속노래를 들려주기도 하면서 가족처럼 즐겁게 안내해 주었다. 


뻐꾹시계를 살 수 있었던 것도 스위스 산골에 있는 시계 장인의 작업장을 직접 찾을 수 있은 때문이었다. 스위스 정밀공업은 얼마나 정교한지 독일 장인이 머리카락 1미리를 50등분한다면 스위스 장인은 잘린 머리카락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며 기염을 토하였다. 


기념으로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오두막집에 시, 분, 노래, 3개의 무쇠 솔방울 추가 달린 뻐꾹시계를 샀다. 30분에 뻐꾹~ 한번, 시간마다 시간수대로 뻐꾹~ 뻐꾹~ 울었다. 뻐꾹새가 톡 튀어나와 머리를 드는 동시에 앞마당이 돌아가며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산동네 어린이들이 손잡고 요들송을 부른다. 


여행이 끝났을 때 우리는 피곤한 중에도 여행의 충족감으로 생기가 넘쳐 흘렀지만 12일간이나 거친 길을 혼자 운전하며 안내역까지 도맡았던 ‘조’사장의 얼굴에선 비지땀이 흘렀다. 


금전적 손해는 말해 무엇하랴. ‘조’사장의 희생적 우정을 시작으로 거의 10여 차례의 구라파 여행을 하였다. 골샌님 같은 외곬의 우리 눈을 크게 떠서 보다 넓은 세계로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한 세계 문화와 문명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를 탐사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뻐꾹시계 소리는 집안에 즐거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일상에 시간 맞추어 몸과 마음을 다잡아주는 좋은 지킴이가 되어왔다.


 영어 FRIEND(친구)를 파자하면 Free 자유로울 수 있고, Remember 언제나 기억에 남으며, Idea 항상 생각할 수 있고, Enjoy 같이 있으면 즐거우며, Need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고, Defend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뜻이라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힘들 때, 위기의 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같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 나무 위에서 보다가 위기를 경고해주는 친구의 효율성을 달아본다. 새해들어 많은 단체들의 회장 선거가 게시되었다. 이합집산과 배신의 잡음이 없는 공정한 선거가 되기를 기원하다가 과연 ‘친구란 무엇인가’ 새삼스런 상념에 빠져든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잠언 한 절이 뇌리를 스친다.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많은 친구란 어떤 친구일까. 나무 위 새떼들은 공포 한방에도 제 먼저 달아난다는 것을 떠올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수가 많다고 다 참 친구는 아니라는 것. 사랑이 끊이지 않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그가 바로 참 형제보다 친밀한 어떤 친구라는 것을 알았다. 


 뻐꾹~. 뻐꾹시계가 운다. ‘때’를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로운 친구가 되라 한다. 사랑의 참 친구가 되라 한다. 나무에 달려서 한결같이 지켜주는 그 친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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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3
마지막 기도-고 이상묵 시인께 드립니다

 
 
마지막 기도
-고 이상묵 시인께 드립니다 

 

 

 


. 속히 병에서 완치되어 영육간에 강건하게
기쁘고 즐겁고 복되게 살게 하여 주소서.  

 

. 데이지님. 저를 위한 기도 부탁드립니다.  
십여 개월 첫새벽 닭 울음소리처럼 울었습니다.

 

벌써 강 건너 여행 떠나셨다는 신문기사 
아. 눈앞이 하얗게 탈색되는 백지 위에 
어지럽게 그려지는 영상들이 흔들렸습니다. 

 

. 기왕에 이사하려거든 토론토로 올 것이지.  
새 소망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어느 오월
나이아가라 폭포공원 목련꽃 터널을 걸으면서 
타박하였습니다. 
. 멀리 있어도 잘하고 있을 거야.
이 한마디 마음에 품고 평안하자고 다짐하였습니다. 

 

퇴행성 대퇴골증 극심한 통증의 아내 
유명한 전문의 닥터 송 치료를 받는다며 
먼 길 한달음에 달려오길 여러 번이었습니다.
헌신적인 간호로 건강을 회복한 지 겨우 두어 해. 


 
급성백혈병. 그 아픔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담금질 속에서도 
정금같이 찬란한 시 한수를 남겨 주었습니다. 


 
. 낯선 길 이대로 달려/ 하늘과 땅이 맞붙은 저 끝 어디/
불 끄지 않은 마을에 닿을 수 있을까/ 표지판 없어도 환한 거리/
비 그친 골목에 들어설 수 있을까/ (‘9월의 비’에서) 

 

석천 이상묵 시인. 
대답 없는 이름을 불러봅니다.
멀리 살아도 다 좋은데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불 끄지 않은 마을 환한 거리에서 
참 행복한 석천님 미소를 봅니다. 
표지판에 ‘천국’이라 뚜렷이 박힌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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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1
축복의 재발견

  
 
동신 늘푸른시니어대학에서 ‘자서전 쓰기’를 주제로 문예 강좌를 맡았다. 이유인즉 이민 조상들의 일생을 후세에 전해주고 싶은 것이 목적이라고 하였다. 


‘일부변경선 동과 서’ 는 처음 미국 버펄로에 도착하여 캐나다로 이주하기까지 3년간의 나의 삶을 기술한 자서전이다. 지난 연재에서 횟수가 거듭 될수록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사생활이 노출된다거나 지난 고통을 회상하여 반추하는 이중고의 염려 등 자서전쓰기의 부정적인 요소를 벗어나 삶의 기록, 전수뿐 아니라 반성과 화합재정비 등 긍정적인 시각을 얻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모태를 떠나듯 고국을 등지고 언어와 문화 환경이 전혀 다른 이민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개척자의 정신과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로서 뚫고 온 지난날은 누구에게나 기록할 가치가 충분한 특수한 일생이었으리라 쉽게 수긍된다.  살아온 여정이 각기 다르듯 다양한 삶의 지혜를 지닌 학생들께 특강을 하였다. 자서전은 “자기가 쓴 자기의 전기”로 이를 좀 더 문학적으로 서술한 작품이 자서문학이라고 서두를 열었다. 지금은 100세 인생시대라 한다. 최근 유엔 나이 계산법에 따르면 66세~79세가 장년이라 한다. 따라서 자서전을 쓰는 가장 좋은 시기는 시니어인 지금이라고 하였다. 


자서전 쓰기는 년대별로 기록하는 것, 성숙의 과정에 따라(유아기, 소년, 청년. )서술하거나 특정사건을 중점적으로 기술하는 것(학업, 결혼, 사회활동. )등이 있다고 간단히 강의를 끝마치고 특정사건을 주제로 짧은 자서전을 쓰도록 하였다. 글자로 쓰는 게 아니라 말로 엮는지 한동안 왁자하니 시끄럽더니 차츰 조용한 가운데 펜 움직임이 빨라지고 눈에서는 날카로운 예지가 뿜어져 나왔다. 


한 할아버지학생의 글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부부는 엊그제 금혼식을 맞았다. 돌아보면 50년을 부부싸움으로 보낸 듯하다. 싸움의 시작은 언제나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기 때문이다.” 항상 마누라의 손을 붙잡고 다니는 할아버진데 티격태격하면서 50년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 나는 울컥하면 참지 못하고 무어든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곤 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그날도 마누라의 바가지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탁자 위에 놓인 물체를 집어서 벽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다음 찰나 어! 소리를 질렀다. 그건 내가 애지중지하는 캐논카메라였다.” 폭소로 교실이 뒤흔들렸다. 


“그런데 그 순간 마누라가 벌떡 일어나더니 야구선수처럼 카메라를 덥석 받아내는 것이 아닌가. 그 후로 나는 던지는 버릇을 깨끗이 끊었다. 그런데 마누라의 바가지는 오늘도 끊이지 않는다. 마누라의 바가지는 깨지지 않는 바가지인 모양이다. ” 


할머니와 바가지의 연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할머니들, 우리자신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19종족의 이민 소수민족할머니에 대한 손자손녀들의 이야기를 편집한 책이다. ‘조이 코가와’(JOY KOGAWA)는 서언에 “할머니는 특별히 사랑이 많고 긴 안목을 가졌으며 민족고유의 말과 문화전승의 역할을 잘 감당할 뿐 아니라 본능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주고 대대로 무한한 감정의 울타리를 쳐준다. ”고 하였다. 


내 마음 판에 새겨진 할머니의 정의와도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왜 바가지 긁기의 주체가 되는 것일까. 평화롭고 정취 어린 초가집지붕에 덩실히 앉아 있는 박(Gourd)넝쿨이 떠오른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하얀 박꽃은 또 얼마나 정겨운가. 


박속은 덜 여물었을 때 긁어서 나물을 해먹고, 여문 껍질로는 바가지를 만든다. 뿌리부분은 말려서 약재로 사용하고, 여름에 박나물을 해먹으면 피서에도 좋고 ‘시트롤린’이 함유되어 있어 이뇨에도 좋다고 한다. 박은 비교적 높은 기온과 적절한 수분을 요구함으로 여름에 주로 재배하는데 장마기간 중에 강풍으로 초가가 파손되는 풍해예방에 지붕 위 무거운 박 덩이가 굉장한 이점을 제공했을 것이라고도 한다.


줄줄이 박의 미덕을 읽다가 무릎을 치며 깨달았다. 바가지 긁기는 자칫 평화로운 가정의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꾹꾹 눌러주는 지혜의 소리이며 수시로 상기시켜 주는 경종일 것이다. 마누라의 바가지를 묵묵히 들어 주는 할아버지 역시 집안이 평안하기 위해 눌러 참는 도량을 실천했을 것이다. 


자서전 쓰기의 가장 큰 덕목은 지나온 삶을 통한 축복의 재발견과 동시에 감사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리라. ‘깨지지 않게, 살살 부드럽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불문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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