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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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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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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9
브레시아 칼리지(Brescia College)의 추억

 

캐나다의 유일한 여자대학 브레시아 칼리지가 폐쇄된다고 한다.

웨스턴대학의 3개 부속 대학(King's College, Huron College, Brscia College) 중 하나인 브레시아 칼리지는 2024년 5월부터 웨스턴대학에 흡수 통합되어 104년의 역사를 접는다는 것이다.

내 일생의 가장 귀한 충언과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요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토론토 스타'에서 이 기사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옛일이 빠른 화면으로 지나갔다.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다.

공부를 더 하고 학위를 얻으려는 계획이 사, 오년 지연되자 육신의 피로감과 함께 끝없는 심적 자괴감이 엄습하였다.

가사와 육아에만 얽매인 삶을 살다 보니 언어와 지적 능력이 침체되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녹슬고 퇴적하여 삐거덕거리는 쇳소리가 나는 듯하였다.

이대로 녹슬어 폐물이 되고 말 것인가. 수없이 반문하다 '아니다'의 해답으로 귀결되었다. "공부를 할 것이다."

 

브레시아 칼리지는 1919년 천주교 Ursuline 수녀회에서 설립한 대학이다.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여성에게 광범위한 교육과정을 제공하지만 주로 가정학 전반과 식품학, 영양학 등 인류발달에 중점을 둔 대학으로 교수와 학생 비율은 14:1의 여성교육대학이다.

1960년대 북미주 여성 교육대학은 280개였으나 지금은 단지 26개, 그 중의 하나가 또 없어지는 것이다. 당시는 대학졸업생의 70%가 남성이었으나 1991년에는 51%가 여성이고, 2021년에는 고위 학력소지 여성이 120만 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이런 추세가 브레시아 칼리지의 폐쇄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이 된다.

 

내가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과제 앞에는 행동이 따라야 하는 실질적인 장애물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일년 만에 토플 테스트와 미시간 테스트 등 요구하는 영어 테스트를 모두 합격하고 대학에 등록을 하였다.

웨스턴대학교 브레시아 칼리지, 영양학, 식품관리학과 편입학생이 된 것이다.

집에서 학교 가는 길은 차로 가면 15분 걸리지만 전나무로 담장을 두른 수녀원 앞으로 해서 걸어가면 30분 정도 걸렸다. 주로 그 길로 걸어 다녔는데 언덕길이라 항상 숨이 차고 한 여름에는 땀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얼마나 무지한 결정을 했는지, 거의 만용에 가까운 일을 저질렀는지는 개학 첫날부터 깨달았다. 학사일정을 펴보는 순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몇시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읽어야 할 도서 목록과 다루어야 할 주제들, 현장답사, 케이스 스터디, 기말 프로젝트, 레포트 제출, 식품관리, 영양관리. 도대체 음식 이름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데 '관리'라니 앞이 캄캄하였다.

 

더욱 기막힌 것은 배운 적이 까마득한 생물학과 전혀 배운 적도 없는 인체생리가 교과과정에 들어 있는 것이었다. 교육과정과 교육주제의 차이는 인간을 평가하는 이념과 철학의 현주소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게 만들었다.

한국인은 나밖에 없는 데다 주위에서는 길 건너 의과대학의 남편과 나의 과거 경력까지 소상하게 알고 있어 집중되는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제는 자존심을 걸고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 가서 읽으라는 책부터 읽기 시작하였다. 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은 남편에게 맡기고 도서관이 문닫는 밤 11시까지 책을 읽고 공부를 하였다. 11시에 남편이 데리러 오면 그때부터는 개인교습 시간이었다. 생물이나 인체생리를 한국어로 해석해 주어야만 확실하게 이해되는 것이었다.

 

조금씩 적응되어가긴 했지만 육체적으로는 견딜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한 듯 휘청거렸다. 나의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격려하던 남편마저도 학업을 포기하라고 충고할 정도로 몸이 수척해져 갔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내가 세운 삶의 이상은 영원히 좌절되고 말 것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갈등을 극복하는 일이 더욱 크고 힘들었다.

대개 저녁 8시 이후에는 휑한 도서관에 관장 수녀님과 나만 있을 때가 많았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 수녀님이셨는데 의자에 단정히 앉아서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그를 보면 쉽게 범접할 수 없는고귀한 품성이 번져오곤 하였다.

 

그날은 의외로 수녀님이 밝은 미소를 띠고 내게로 오더니 말을 걸었다.

'무척 열심이시군요. 어때요 공부하기가요.' 다정한 말소리에 그만 눈물이 글썽거려지고 말았다.

'많이 힘듭니다. 20세 미만의 발랄하고 자신만만한 여학생들 틈에서 혼자 외톨이로 고투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낙심하지 마세요.' 신입생이 아무리 많아도 일년 지나면 반수로 줄어들고 또 일년이 지나면 그 절반, 졸업할 때는 불과 수십 명만 학위를 받습니다. 당신처럼 끈기 있고 용감한 사람만이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힘을 내세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넣어주신 수녀님. 천국에서도 하얗고 깨끗한 미소를 보내주실 것이다.

 

그 후 친절한 학과주임 교수는 음식, 식품의 명칭에라도 친근해지라며 병원에 파트타임으로 취직시켜주었다. 학생에, 가정 주부에 병원 파트타임 영양사로 일하느라 삼중으로 몸은 힘들었지만 끝내 "할 수 있다"는 생명줄을 부여 잡고 마침내 학업을 완수하게 되었다.

인생의 푯대 앞에서 뒤돌아보니 '가고 싶은 길'을 남기지 않았다는 너그러운 미소가 소슬바람처럼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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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0
툰드라에 핀 민들레

 

 

더 이상 올려다 볼 곳이 없는 산정이다. 밟고 선 땅의 저쪽 끝엔 흰 눈이 덮여 있었다. 한 여름에 점퍼후두를 푹 눌러쓰고 맞바람에 잔뜩 웅크리고 숨가쁘게 올라왔다. 동토의 땅 툰드라지대에는 방향 모를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돌짝 틈에 납작하게 기어 붙은 풀밭이 거뭇하게 퍼져있었다. 하늘이 청명하고 대기가 맑아서인지 색깔은 더욱 선명하고 꽃잎이 작은 홑겹 민들레가 금빛 미소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미 결승선을 끊고 골인한 선두 마냥 오만스럽게 생글거리는 꽃을 확인하는 순간 마음속에 쌓아 올린 새롭고 신기한 미지에의 기대가 송두리째 허물어졌다.
      

올 봄에도 예외 없이 민들레와의 전쟁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겨우내 쌓인 흰 눈이 스르르 녹아 내리면 앞뜰 잔디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푸른색은 넓적한 민들레 잎이었다. 꼬챙이로 깊이 파서 뿌리째 뽑아내고, 새 흙을 덮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과정을 몇 번이고 거듭하였지만 기계 충처럼 벌긋벌긋한 잔디를 버려둔 채 떠나온 여행길이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앞질러 와 있다니. 반가움에 앞서 어이가 없었다. ‘록키 글라시아 랜드스케이프’. 안내판 앞에 서니 또 다른 민들레의 영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몇 해 전, 페루의 마추픽추를 방문했다. 콘돌 새들의 이동을 보려고 4천여 m의 고산지대를 따라 올라갔다. 까마득히 잘 보이지도 않는 강을 끼고 절벽을 이룬 양 연안 높은 바위틈에 콘돌 새들이 서식하는데 일정한 시간이 되면 날아올라서 이동을 한다고 하였다. 비가 안 와서 수분의 저장을 위해 잎이 가시처럼 뾰족한 마른나무만 가끔 보일 뿐 식물이라곤 거의 없는 사막지대였다. 
밟는 대로 흙먼지가 풀썩여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열대의 고산지대는 저산소증에 시달리던 내 기력으로 견딜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황급히 차량으로 돌아서는데 언뜻 내려다 본 골짜기 모퉁이에 5전짜리 동전만한 노란 민들레가 피어있었다. 

 

울컥 집 뜰에서 옮겨온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그악스런 생존력이 밉기만 하였다.              
눈보라에 긁힌 안내판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보았다. 툰드라는 핀란드북부에 거주하는 랩 족의 언어 tunturi에서 유래하였는데 “나무가 없는 한대지방의 황무지”라는 뜻이다. 지층의 온도가 섭씨 0도 이하인 영구동토층을 일컫는다. 낮은 기온과 센 바람, 극심한 추위, 부족한 물과 거친 토양에서 살기 위해 일년생 보다는 다년생 키 작은 초본과 식물이 몇 종 있다고 한다.

 

동토식물의 꽃은 작지만 아름답고 꽃 색깔이 유난히 짙고 화려한 것은 안토시아닌 색소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저지대 꽃보다 색이 더 짙고 아름다운 것은 짧은 개화기간에 곤충을 빨리 불러들여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지만 또한 안토시아닌의 쓴 맛은 초식곤충을 멀리하고 자외선으로부터 꽃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설명을 주욱 읽어내려 가던 시선이 멈춘 곳엔 주의를 요하는 별표가 붙어 있었다. 
*절대로 풀밭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어떤 식물이나 꽃이라도 만지지 마십시오. 생태환경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조성된 생태환경은 수백 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 진 것입니다.
  
‘수백 년 동안’이라는 긴 시간의 연속이 한 줄의 채찍이라도 되듯 머리를 후려쳤다. 수백 년 동안의 어느 한 시점 꽃씨가 이곳까지 올라오는 데 얼마나 오랜 시일이 걸렸을까.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꽃씨가 짧은 개화기간에 벌, 나비를 만나 꽃가루 수정을 하고 싹이 되어서 나올 수 있기 까지, 그리고 꽃을 피우기까지 땅 속과 밖의 환경이 최적한 상태로 조화를 이루어야 되는 조합 확률의 수리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더구나 민들레는 다른 민들레의 수꽃가루와 수정하지 않아 일편단심 민들레라 하지 않는가. 

 

꽃으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짓밟히고 천대받는 민들레는 안으로 갈고 다진 지혜와 인내의 씨가 단단하게 영글면 하얀 날개를 달아 바람 따라 날려 보낸다. 오직 생존의 지상 목표달성을 위해 묵묵하고 겸손할 뿐이다. 완력을 업은 교만의 인간사를 돌아본다. 

언 땅을 비집고 수백 년을 견뎌온 민들레꽃을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달성에도 비틀거리는 내 마음판에 꺼지지 않는 등불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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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아버지의 자존심

     

 벌써 한 시간은 족히 지난 듯하다. 방문한 목적은 제쳐두고 자기의 넋두리를 풀어놓고 있는 그를 그저 멍히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눈에 다 보이도록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끌어 오르는 울화로 얼굴은 붉어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목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열중하여 침이 튈 지경이었다.

원하는 대학교육을 순조롭게 마친 충실한 남매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건실한 남편, 아름다운 부인,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남들이 바라는 행복한 가정의 조건은 거의 다 갖춘 듯 보이는 부부인데 다투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말을 자르듯 결론을 물었다. “헤어지자고 했더니 금방 조용해졌어요.”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하였다.

쓰레기 거두는 날, 이웃에서 오래된 가죽소파를 내놓았다고 한다. 알뜰한 부인은

그 무거운 소파를 낑낑거리며 가져왔다. 부유한 동네이고 보니 새것으로 바꾸면서 옛 것을 내놓고,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애썼다고 다독이기는커녕 ‘그런 건 왜 들여와.’ 퉁명을 부렸다는 것이다.

펄 펄 뛰며 언성을 높이는 남편의 분노는 자존심 상했다는 것 외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볼멘소리로 시작된 다툼은 그렇게 시작되다 보니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언덕 위에서 굴러 내리는 빈 마차 꼴이 되어 털그럭 거린 모양이었다.

어느 기관에서 부부 싸움의 요인을 조사했다고 한다. 수치는 정확히 기억에 없으나 가장 큰 원인은 ‘자존심’이었다고 한다. 남녀에 있어 자존심 구기는 조건들을 조사해 보니 ‘못났다’가 최고였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에게 있어 ‘못났다’는 말은 “외모가 아름답지 못하다”의 한 가지 뜻이나 남자에게는 “외모가 흉하다”는 것 외에 “성격이 고약하다”, “똑똑치 못하다”, 그리고 “능력이 없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능력이 없다는 말은 또 여러 가지 예민한 항목들을 담고 있어서 자존심을 건드린다는 것은 때로 억제된 불만의 화약고를 건드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자존심은 가히 남자의 존재가치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민자의 가정에 부부싸움이 많은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도 많은 이민 직장인들은 서투른 영어를 말하면서 전혀 다른 문화와 생활습관에 얽혀 비비며 살고 있다. 직장에서의 지위가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정신적 심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는 통계는 이제 상식화된 이야기이다. 존경을 받아보지 못한다는 이유도 민족적 스트레스 요인에 크게 작용할 것이다.

아버지 날. 어버이 날. 그 어떤 날에도 사랑과 아울러 아빠가 엄마를, 엄마가 아빠를 존경해야 한다는 마음자세를 가다듬어야 될 것이다. 아무리 못나고 고약한 성격이라도 ‘죽음’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넉넉히 감내할 수 있는 조건들임을 말하고 싶다.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여자는 돕는 배필로 지어진 존재이다.

돕는다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다.

세상 모든 아버지께 “부족한 그 모든 것, 그런대로 다 사랑한다.”하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큰 웃음으로 어깨를 활짝 펼 것이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아버지 되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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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8
“2-1=0”이다

 

 눈만 질끈 감으면 깜깜한 밤이 되듯 순식간에 뒤바뀐 궤도였다. 부연 시야 사이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흐르는 시간 따라 웃는 해 얼굴이 점점 커지고 문턱에 감겨오는 봄바람의 따스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고요한 새벽, 변함없는 세상에 일종의 자괴감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정말 없을까.

아! 있다. 숲의 나무들, 기와집, 종달새 모두가 암회색뿐인 것을 그제야 발견하였다.

마음에 출렁이는 억울함의 단서를 찾아 지난 흔적을 뒤지는데 문득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대학시절, 문학작품 합평회였다. 한 남학생이 작품발표를 하였다.

1+1=4. 글제를 읽자 장내는 잠시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더니 다음 순간 폭소가 터져 나왔다. 끝없이 이어지던 열띤 설왕설래는 다 기억에 없지만 한마디 반박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머릿속을 휘저어댔다.

‘1’ 더하기 ‘1’의 해답 ‘4’는 잠재능력의 영원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큰 팽창력은 기존질서를 파괴하는 극히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도 담고 있었다. 더하면 더 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운동력이 젊은이들의 정신력, 문학의 세계라고 나대로 이해하고 마음 깊이 입력하였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대학생들에게 주의력을 환기시킨 이 글 한편이 각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고국을 떠난 이민자의 삶 속에 내재된 정신적 팽창력이 기능마저 상실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하나에 하나를 더 했을 때 일어나는 팽창력을 역으로 내 현실에 대입해 보았다.

2-1=0. 둘에서 하나를 빼면 답은 당연히 1이 되어야 한다. 수학적 과학적 우주법칙에 순응하는 질서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수리(數理)는 0인 것이다.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일생동안 가장 마땅한 길이라 생각하여 수신의 목표로 삼아 왔는데, 궤도를 벗어나는 이치의 탈선이 계산기를 흔들어 놓은 듯 혼미하기만 하다. 둘이 같이 경주를 하다 하나가 빠졌다고 남은 하나마저 기권하여야 하는가.

반세기 넘게 함께 달려왔다. 대양주를 건너온 발길은 첫 발부터 무거웠다. 말의 법칙을 익히기 전에 뜻을 먼저 이해해야 했던 삶의 지침서는 동과 서를 오가며 팽이처럼 팽팽 돌아 눈빛을 고정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 산야를, 그 동굴 속을 헤치고 더듬어 온 지난 세월, 거기 항상 잡을 손이 있었다. 청청한 하늘, 우거진 나무숲을 끌며 끌리며 숨 가쁘게 뛰어 온 것이다. 팽창력을 잡으려 폭주해온 일생이었다. 소멸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경주였다.

 지난 2개월간, 안개 속에서 헤매다 암벽에 부딪힐 때마다 주저앉아 상념에 잠겼다. 주황, 초록, 남색. 수많은 보색들의 난무 속에서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을 더욱 선명하게 보려고, 증명하려고 동분서주한 일생이 아니었던가.

세상엔 빨강, 노랑, 파랑. 순수한 원색이 없는 보강색의 공간인 것을 알아차렸다.

노랑에 파랑을 더하면 초록이 된다는 것, 빨강을 더하면 주황이 되는 것을 배웠다.

초록에서 파랑이 빠지면 노랑이 남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노랑이 빠지면 파랑이 되던지. 그저 깊이를 알 수 없는 빈 공간 암회색뿐이라니. 둘에서 하나를 빼면 영이 되듯이.

불현듯 그 때 그 학생이 만나고 싶어진다. 그의 해답은 무엇일지. 어쩌면 지금쯤 영원한 영의 세계에서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지는 않을까. 보이는 대로 즐기며 편안하게 살라고.

거기 겹쳐지는 하나의 얼굴. 내 내 거기 있어 마음속 공동을 함께 흐른 듯 바람결처럼 한 소리 들려주었다.

 “수리가 아니라 영의 세계야. 처음 심지만 부여잡고 느슨하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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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9
밤이 가고 잠 깨니 새 먼동이 터 오른다

 

‘잠’(Sleeping) 못 자는 밤이 두어 주일 되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환자는 자려고 애를 써도 잠이 오지 않고, 나는 감기는 눈을 끌어 올리며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혹시나 넘어질까, 떨어질까, 부스럭 소리만 나도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환자의 병이 고비를 넘기는 동안 육신의 무게는 나의 몸에서 빠져 나갔다.

인간의 신체구조와 육신의 생리기전을 보면 세상에 있는 어느 두뇌로도, 어느 절묘한 기능공의 솜씨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신묘함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그 중에 아주, 어쩌면 제일 작은 것 하나가 ‘잠’이 아닐까 생각된다.

육체가 어느 기전의 적정선에 이르면 잠이 오고 또다시 생생하게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지, 기계가 아닌 육신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놀랍기만 하다.

‘잠’이란 맥박과 호흡 등 생명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활동을 제외한 모든 신체활동이 휴식에 들어간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인간은 삶의 약 삼할(1/3)을 ‘잠’으로 소비한다고 한다. 보통 성인(26세-64세)에게는 7-9시간, 65세 이상은 7-8시간의 수면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잠’의 원인에 대해선 뇌 속의 노폐물 제거, 피로회복, 신체의 피로회복과 고통의 완화, 호르몬 주기설 등 여러 가설뿐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예민하여지며 만사가 귀찮고 짜증난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험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연구 발표에 의하면 몰 잠을 자기보다는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풀도록, 또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자고 깨는 습관이 장기적 숙면습관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잠’이란 단순한 육체의 피로 회복뿐 아니라 뇌신경의 피로 회복을 시켜주는 작용이란 가설이 때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잠’자는 시간 중에 뇌가 더 많이 활약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동안에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때로는 ‘계시’의 현상도 일어난다.

내가 경험한 사건이나 사실에 토대를 두지 않은 ‘꿈’, ‘환상’은 때로 자신이 은연 중에 갈망하는 어떤 이상이나 지상목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설도 있긴 하다.

 밤 시간에 환자를 돌보아 주는 기관의 도움으로 자신을 추스를 수 있을 만큼의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온몸의 신경은 열어 둔 채 잠자리에 들다가 문득 한 생각에 무릎이 절로 접어졌다.

인간의 경영이란 모두가 ‘평안한 잠을 위한 수고’인 것을. 한낮에 행하는 모든 활동과 열성과 노력은 편안히 눕고 일어나는 행복의 추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안한 잠자리 마련을 위하여, 태평한 ‘잠’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먹고 일하고 생각하는 것이라 구독 점을 찍은 것이다.

 8시간의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다시 깰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의 극치임을 자각한다.

깨어 먼동이 터 오르는 찬란한 새 아침. 새 생명의 소망을 맞이함이랴.

(2023년 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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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7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현관 작은 유리문으로 밖을 내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순간적으로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하였다.

 가을이 눈부신 계절의 왕관을 선뜻 내주지 못하고 이리 저리 굽어 다닌 골목길엔 가랑잎이 스산하게 쌓여있었다. 잘못한 일 하나도 없는데 작은 바람에도 깜짝 놀라 바스락대면서 굴러가는 모습이 싸늘하게 코에 스쳤다.

 어느새 풍년가가 잦아든 들판엔 살찐 망아지가 어미 따라 투덕거릴 뿐 천고마비의 계절은 새파란 하늘 아래 한없이 너그럽고 청정하고 고요하였다.

 단 하나. 너만 아니었으면.

 주인의 개성대로 꾸며진 대문 앞 풍경은 작은 동네를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게 할뿐더러 계절의 변화를 가장 잘 전해주어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현관기둥에 환한 황국화분을 걸어놓았다. 그런데 커다란 화분 삼분지 일 정도의 흙을 파헤치고 꽃을 전부 꺾어버린 것이다. 내려다보니 꺾어진 꽃 가지가 문 앞에 널려 있었다. 다람쥐. 바로 너의 소행이로구나. 그러나 온 몸이 경직되듯 놀란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지난 수년간 괴롭힘을 당하는 다람쥐와의 기 싸움이 발단이었다. 내 오른팔의 반쪽만한 다람쥐들에게 언제 어떻게 채 가는지도 모르게 해마다 포도송이를 도난 당하는 억울함을 피하기 위해 포도송이에 종이봉지를 씌워도 보고, 망사 천을 나무 주위에 둘러보는 등 온갖 수단을 다 써보았지만 번번이 참패만 당해 왔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따려고 계획을 세우는 날 밤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려 이번에는 포도를 조금 일찍 따기로 꾀를 내었던 것이다. 95%만 익으면 미리 따다가 나머지 5%는 햇빛으로 익힌다는 작전을 세우고 미리 두 송이를 따오는데 성공을 하였던 것이다.

 햇볕이 밝게 들어오는 창가에 포도송이를 놓고 5%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승리의 쾌재를 부르던 마음바닥에서 차츰 내 오른 쪽 팔뚝 반만 한 작은 다람쥐에 미안한 생각이 들고 엄격히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포도를 도로 담아 데크에 갖다 놓았던 것이다. 나는 따는 기쁨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었다.

 황국의 수난은 분명히 포도를 미리 따간 보복인 것이다. 사람과 대결하여 보복하려는 동물이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것도 사람의 감정과 같은 방법으로 네가 좋아하는 것을 망친다는 철저한 보복 심리를 가진 동물이 내 주위에 눈을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에 온 몸이 떨린 것이다. 이 순간의 다람쥐는 귀여운 존재, 더불어 즐겁게 함께 살아갈 동아리에서 멀리 떠나 똑같은 권리와 힘으로 대결하려는 공존자로 보였다.

 자신들도 지구촌의 주인이라는 당당한 눈빛들이 사면에서 몰려드는 듯 했다. 파리 한 마리 잡을 수 있을까, 거미줄 한 치도 마음대로 거둘 수 없다는 두려움이 단숨에 덮쳐왔던 것이다.

 주위에서 귀 따갑게 울리는 녹색운동은 어디까지가 그 한계일까.

 사람과의 교감은 그렇다 치고 이들의 지능지수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였다. 인터넷을 훑다가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하였다. 주위에 있는 생물의 지능지수 표였다.

 제 1위는 ‘침팬지’로 인간의 유전자와 99%가 일치하며 사람과 다양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한다. 2위는 ‘돼지’, 3세 정도의 어린아이 수준과 같으며 여러 기능을 쉽게 소통할 수 있음은 물론 복잡한 환경이나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다 한다.

 3위는 ‘돌고래’로 IQ 80-100. 5, 7세 어린아이 정도로 뇌 구조와 생활방식이 사람과 비슷하다고 한다. ‘앵무새’, ‘고래’, ‘개’, ‘문어’, ‘코끼리’, 다음 9위가 ‘다람쥐’였다. 생활방식이 식량을 모으고 저장하는데 집중되어 있으며 어느 종류는 저장한 장소를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찾아낸다고 하였다. 바로 요놈들이 포도를 따간 주범들이었구나. (10위는 ‘고양이’로 나타나 있었다.)

 다람쥐 한 마리가 만물의 영장을 뒤흔든 가을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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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6
지고 이기고

 

참 아름답다. 까뭇까뭇한 작은 포도알이 우윳빛 유리에 덮인 듯 오히려 차분한 빛으로 뭉쳐 있다. 송알송알, 아니 송글송글한 작은 포도송이가 사면팔방을 빠끔거리며 반짝이는 눈동자 같다. 저 흑진주 포도알들을 나무통에 짓밟아 포도주를 만든다지.

 

포도주 중에서도 한겨울, 보송한 털외투를 입고 에스키모 털모자에 하얀 봉오리 장갑을 낀 연인들이 코가 빨갛게 되도록 눈길을 걷다가 산속 오두막집, 따뜻한 벽난로, 아무렇게나 꺾어 온 나뭇가지, 활활 숲 향내 풍기는 불꽃 가에 마주 앉아 함박눈 펄펄 날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치어스!’ 살짝 술잔을 부딪치며 상긋 미소 짓는 담흑색 와인, 목둘레만큼 가느다란 까만 와인병에서 졸졸 냇물 소리라도 울릴 것 같은 달콤한 와인, 아이스와인을 바라보며 웃는 연인들의 심중에는 어떤 생각들이 오갈까.

 

내가 있어 우주가 존재하는 것. 자기 발끝에서 시작한 만큼의 우주를, 손바닥만 한 가슴 복판에서 퍼져나간 환상의 세계를 날고 있을까. 그것은 우주를 탐색하는 탐험자만큼 나에겐 풀고 싶고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하 참 장황하게도 읊조렸구나.

 

덜 난 사람일수록 화장도 필요하고 치장도 필요하다지. 어차피 발그레한 양 볼은 애초부터 감추기로 작정한 반사 작용이라니까. 아예 민낯으로 대하기로 작심하였다.

 

헛간 벽에 얼개나무 받침대를 세우고 포도나무 한 그루 심어 놓고 여름내 꿈을 꾸었다. 한 뭉치 포도송이와 굽이 높은 가녀린 수정 와인 잔, 위하여! 더운 날숨을 몰아 쉴 수 있는 마음의 친구. 함께 걸을 겨울 오솔길, 바삭바삭 발자국 소리 숲을 울리는 눈길을 많이도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이제 준비 완료. 내일쯤엔 주렁주렁 열린 저 포도를 따서 청량한 가을 햇볕 하루만 더 들이쉬게 한 후 아이스와인 공정에 들어갑시다. 꿈의 여행, 황홀경 일주를 하여 봅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 그렇지 다람쥐가 듣는다’고. 밤사이 포도송이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기를 어언 십여 성상, 오른쪽 팔뚝의 반밖에 안 되는, 내 두 주먹만한 것들을 상대로 싸울 수야 없지 않은가. 실은 속수무책으로 늘 참패 당하기만 했다. 우선 기밀이 어디서 어떻게 새어나가는지 그 경로는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한 해는 나무 주위에 망사 천을 둘러보고 또 다른 해에는 포도송이에 하나하나 봉지를 만들어 씌웠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 수 없으니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도 전혀 모른다. 종이 봉지 속의 포도를 알맹이만 다 따가고 빈 가지만 대롱대롱 들어있었다. 진짜 어느 분의 탄성처럼 ‘말 다 했다’였다.

 

금년의 포도송이는 정말 보기 좋았다. 원추형의 모양새가 우선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그 포도주를 마신다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낭만이 절로 솟을 듯 보였다. 금년에는 기필코 이겨보자.

 

한발 먼저 따기 작전을 쓰기로 하였다. 95퍼센트만 익으면 더 기다리지 말고 용감하게 따오기로 작전을 세우고 새벽 동틀 때 싹 뚝 두 송이를 따왔다. 만세. 드디어 성공하였다. 금년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놓고 나머지 5퍼센트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라보기만 해도 승리의 미소가 입가에 번짐을 가눌 수 없었다. 까만 눈동자를 데굴거릴 다람쥐들이 생각할수록 재미있어 승전가를 높이 부르며 즐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승리의 환희는 엷어져 가고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상대가 내 팔뚝의 반밖에 안 되는 다람쥐라니. 이건 또 다른 자존심의 문제였다. 먹어도 마셔도 몸속 깊숙이로부터 기쁨이 솟아오를 환희의 맛이 아닐 것이라는 자각이 바늘처럼 찔러댔다.

 

우리가 일생을 통해 바쁘게 도모하는 세상만사 모든 일이 ‘질 수 없다’는 자존심, 자격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쭈글쭈글 말라가는 포도송이를 접시에 담아 데크의 층계에 갖다 놓았다. 나는 따는 기쁨으로 충분하니 다른 것은 다람쥐들에게 양보하자. 어차피 길게 거슬러 올라가면 나도 그도 포도 씨를 잉태한 적이 없는 존재들이 아닌가.

 

풍년가 울리는 가을 산야에서 모두 함께 합창하는 소리가 바람결 되어 볼에 스친다. 세상사 지고도 이기고 이기고도 지는 섭리를 깊이깊이 삭이는 이 계절, 가을이 무르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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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구절초 피던 자리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코비드’로 인하여 온 세상이 죽느냐 사느냐로 초긴장이 된 시기에 땅을 뒤집으며 집짓기에 열중인 사람들의 심리는 어디에 근원을 둔 것인지.

 

한 주먹 움켜진 손가락 새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을 바라보듯 망연히 바라보다가 불현듯 흑백이 대조되듯 그들의 삶이 떠오른 것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 벌린(Berlin)에 있는 아미 쉬 마을(Amish Country)에 다녀왔다. 마을은 초록색이 유난히 더 파랗게 보이는 청정마을이었다.

 

 남자는 주로 까만 옷에 높은 모자, 여자는 발꿈치까지 덮이는 무색 원피스에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 수건을 쓰고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닌다. 뚜거덕, 뚜거덕 수레바퀴 밑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온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섞이지 않으려는 특별한 의지와 노력이 흥미로웠다.

 

 처음 폰 힐로 이사를 왔을 때 대기는 맑다 못해 온 몸을 찬물로 씻어내듯 심령이 맑아지고 상쾌하였다. 폭포에서 치솟는 물보라가 보인다고 말 보탬을 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천둥치며 용트림하는 나이아가라폭포가 있다.

 

매일 아침 들린 다리를 건너고 끝없이 펼쳐진 들바람을 마시노라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넓이와 높이가 가없이 두둥실 뜨게 되는 것이다.

 

 생명은 숨 쉬는 것이라지 않는가. 바람은 봄부터 겨울까지 꽃 향기 바람이었다. 흰 눈을 비집고 나온 쪽빛 크로커스가 고개를 내밀면 벚꽃, 목련, 라일락 저마다 향기를 내뿜는 아름다운 꽃들.

 

딸기, 체리, 블루베리, 포도, 복숭아, 사과, 배. 벌과 나비를 부르는 경쟁의 꽃 냄새는 사람을 먼저 취하게 하였다. 그뿐이랴. 거칠 것 없이 이어진 하이웨이 주변엔 메꽃, 달맞이꽃, 멋없이 껑충한 원추리가 주근깨투성이 얼굴에 주황색 웃음을 내뿜고, 가지마다 꽃을 단 쑥부쟁이가 온 세상을 보라색 향기로 덮어버리곤 하였다. 그 속에 다소곳이 미소 짓고 있는 하얀 구절초 무리가 좋았다.

 

인구 2천여 명의 전원마을은 40여 년 살던 런던을 떠나는 서운함을 새로운 기쁨으로 채워주기에 인색함이 없었다. 한 없이 자유롭고 조용하고 바쁘지 않은 삶을 즐겨왔다.

 

갑자기 웬 바람이 여기에도 불어 닥쳤는지 꽃바람은 먼지바람이 되어 마스크를 고쳐 쓰게 하였다. 새벽부터 종일 땅 파고 고르는 중장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높이고 내 집 마련을 위한 소박한 꿈이 떼를 지어 폭풍우처럼 밀려오면서 엉뚱한 변이를 일으켰는지 불쾌한 탁류가 되어 선한 꿈을 엎어버리는 듯하였다.

 

사랑하는 마을이 이곳 저곳 뜯겨나가는 듯 바라보는 마음이 아팠다. 자연을 그대로 누리며 살 수는 없을까. 미국에 남아있는 아미 쉬 마을여행은 이렇게 떠오른 탈출구였다.

 

아미 쉬는 17세기경에 생긴 전통주의 기독교추종자이며 기독교평화주의로 유명하다. 육체노동, 농촌생활 및 인간성을 중요시하며 단순한 옷차림, 단순한 생활, 자급자족, 공동생활을 지향한다. 이들은 외부인과의 상호작용, 복장, 종교적 의무, 제한된 기술사용에 관한 일련의 규칙서 Ordnung을 따라 교육하며 생활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아미 쉬’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마차에 성경을 간직하였다가 주일에 예배를 드린 후 다시 제자리에 보관한다. 성경을 사적으로 번역하려는 우를 막기 위해서라 한다.

 

이 시대에 주어진 삶을 살면서 우리는 과거를 어느 만큼 수용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 유익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전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여행 내내 따라다니는 의문이었다.

 

 가축동물원을 가보았다. 핑크색 새끼돼지가 우르르 몰려온다. 푸들만한 새끼 양, 새끼염소 애완용으로 가지고 싶은 것들뿐이다. 까만 수건을 머리에 쓴 젊은 엄마가 한 살은 되었을까 포동포동한 아들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놓아 들이밀면 새끼 양이 핥아 먹는다.

 

까르르. 엄마의 손에 먹이가 떨어지자 아기는 돌아서서 내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 깔깔~ 손을 내밀고, 올려주고, 함께 웃으며 부스러기까지 털어주었다. 이 여행에서 내가 간직해온 유일한 천사의 웃음소리이다. 유리알 구르는 맑은 웃음, 이명처럼 번쩍 정답이 떠올랐다.

 

갓 나서부터 ‘아미 쉬’ 환경 안에서만 양육할 수 있다면 청정마을 순수성은 가능하리라.

 

구절초 피던 자리에 빨간 벽돌의 타운하우스가 들어섰다. 그러나 내 눈앞에는 ‘순수’ 또는 ‘가을 여인’이란 꽃말의 구절초들만 삼삼하다. 문득 어쩌면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자리도 구절초 무리 지은 들길은 아니었을까. 역사의 지층으로 쌓인 저 깊은 곳을 향해 천사의 웃음소리가 울리는 구절초 들판을 천천히 걷는다.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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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30
블라인드 틈으로 보는 세상

 

도저히 믿기지 않아 책상에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다. 빗겨 쳐진 블라인드 틈새로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몇 점이 흐트러진 흰 솜처럼 떠있을 뿐 흔들리는 백양나무 잎들이 바람 따라 술렁이고 있다.

우리 집 창은 윗부분만 헝겊으로 장식하고 가로 살 블라인드(Horizontal blind)로 처져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침실 창에 드려있는 블라인드의 간격을 조정하여 빛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그 다음 화장실을 환하게 조정한 후 살 틈을 엄지와 검지로 벌리고 밖을 내다본다. 눈높이에 맞추어 내다보면 비스듬히 높은 단풍나무가 턱 막아 선다. 앞뜰 한 복판에 서있는 큰 나무가 거슬린다고 잘라버리자고 성화지만 반쪽 뜰 주인의 허락을 받지 못하여 그대로 서있는 나무다.

겨우 잎눈이 틜 날씨인데 높은 나뭇가지에선 손가락만 한 벌새들이 쫓고 쫓기며 부산을 떤다. 후루룩 처마 밑으로 날아들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기도 한다. 짝짓기 하던 불티가 예까지 튀었나.

내다보는 사이 하루하루 잎이 커지고 종달새들이 날아든다. 블랙버드, 산비둘기도 날아든다. 블라인드를 차례로 한껏 낮추어 땅을 보면 입에 검불이나 잔가지를 물고 오르락내리락 둥지를 트는 것을 볼 수 있다. 잔디밭이 곡창이라도 되는지 그 많은 새가 쉴 새 없이 쪼아대도 무진장인가 보다.

블라인드 틈으로는 모퉁이 집 ‘샌디’ 부부가 새벽걷기를 하고, 빨강 노랑 옷을 입힌 강아지를 끌고 산책하는 노부부도 보인다. 시간 맞추어 지나는 통학버스와 기다리는 아이들 무리가 장난치며 깔깔거리며 뛰어다닌다.

생동하는 생명력이 색깔을 바꾸어가며 쉬지 않고 이어지지만 벌린 간격만큼 가로 잘린 그림들을 한 장으로 볼 수 없는 번거로움조차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단풍나무 꽃이 지며 차도에 쌓이고 씨가 날개를 달아 잔디를 덮게 되면 차츰 나무가 미워지기 시작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읽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나무는 안 자르기를 참 잘했다고 스스로 흐뭇해한다.

하루의 시작, 세상이 움직이는 동력을 체감하게 하는 풍경은 가을이 되어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지면 가랑잎 구르는 소리에 맞추어 내 삶의 이정표를 정리하게 한다. 자연이 내 주위에서 일련의 축제를 치르고 떠난 사이 자신에게도 변화가 있었을까.

오늘따라 반추하는 시간이 한정 없이 흐른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뭉실거리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화로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속절없이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떠나다니.

‘9988124’라는 만담을 하면서 호탕하게 웃던 장본인인데 시비조차도 가릴 수 없게 된 형편이 어이가 없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 앓고 떠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강조하던 그가 ‘88124’ 팔십 세까지 팔팔하게 잘 살다가 떠난 것이다.

외대 영문과 졸업,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트럼펫과 색소폰을 불던 그는 교회 찬양대 단장으로 오랫동안 봉사하였다. 헌신적인 반려자 아내와 아들, 손자, 며느리와 더불어 편안하고 조용한 삶을 살았다. 한 달 전에 CT에 이상한 것이 포착되어 조직검사를 하고 악성 급성인 그 병의 진단을 받았다. 희한하게도 6개월이나 진행되었다는 그 병의 증세를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입원, 사흘 후 퇴원, 퇴원 이틀. 순식간에 속수무책으로 떠난 것이다.

99는 떼어버리고 그토록 급히 떠나게 된 이유를 이것저것 아는 대로 끌어내 보았다. 아직 확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치유법. 어쩌면 그것은 블라인드 틈새로 세상을 내다보듯 사물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보이는 구분된 지식의 불완전성 때문은 아닌지.

생성의 법칙이 질서정연하게 반복되는데 그 원리 전체를 알아낼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그의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머리가 안 되면 시간을 쓰라’고 하였다. 역으로 말하자면 시간이 없는 사람은 머리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머리도 시원치 않은 범인들은 언제나 조각 지식의 합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머리도 시간도 안 되면 가슴이라도 있으면 되리라고, 블라인드 틈새로 비치는 노을 빛이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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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9
무명(無名)의 유명인(有名人)

 

‘애국지사들의 이야기’ 제 6권에 김란사 지사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구한말, 이화학당을 거쳐 미국 웨슬리언대학에서 한국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문학사를 받은 신여성으로 이화학당과 첫 번째 이화여자대학 교수로서 암울하던 조국의 교육자로, 여성계몽가로, 독립운동가로 일생을 바친 분이다.

여러 자료를 수집하다가 그 시대에 여성이기에 당하는 큰 부조리에 당면하게 되어 깊은 상념에 들게 되었다. 김란사는 하란사란 이름으로 서훈되다가 2015년 증손자 김용택 씨의 정정 요청에 의해 오래된 사진과 기록들을 추적하여 6년 만인 지난 2021년 3월에 마침내 김란사 이름으로 기록을 정정하고 새 훈장도 재발급을 받게 되었다.

탄생 150년 만에 드디어 자기의 바른 생년월일과 이름을 찾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상의 실책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오류라 할 수 있다. 구한말, 여자아이들에겐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김란사는 1872년 아버지 김병국 씨와 어머니 이씨(성명이 없다)의 일남 일녀 중 장녀로 평양에서 탄생하였다. 1893년에 인천항 감리사의 고위관리인 하상기와 결혼하였다.

이화학당에서 낸시(Nancy)라는 세례명을 받아 한문발음과 비슷한 란사(蘭史)로 개명하였다. 1897년 남편과 함께 미국유학을 갔을 때 출입국 관리소에서 남편의 성씨를 따라 ‘하’씨로 등록하여 ‘하란사’가 되었던 것이다.

 이름은 한 존재의 전부를 나타낸다. 이름을 부르기 전에 꽃은 꽃이 아니듯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나는 내가 아니다. 이름은 남이 나를 구별하는 수단이고 나를 표면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 생각한다. 또한 이름은 가문의 위상을 나타내는 표상이며 선대와 후대를 이어주는 가계의 혈연고리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인류문화의 흐름에서 묵계적인 한 유형이 생성되었다.

여자의 이름은 부모 밑에서 자랄 때는 부모의 성씨를 지니다가 혼인하면 남편의 성씨로 바뀐다. 사회적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여자의 이름은 문패에서, 전화번호부에서 사라진다. 여자 친구의 행방을 찾기는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기만큼 힘들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남편과 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침)이 있는가 하면 조선시대에는 ‘삼종지도’(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따름.)가 있어 동서양 어느 곳이나 세계는 남성위주의 독선무대 같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나의 이름은 ‘미시스 송’, 혹은 ‘수지 송’이었다. 그나마도 별로 불러주는 이 없고 들을 필요성도 없었다. 어느날 아이들과 한창 바쁠 때 전화가 왔다. 혹시 00대학 ‘손’ 선생님 계시냐고 찾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그런 사람 없는데요.’ 하였다.

대뜸 저쪽에서 ‘선생님 저 김00에요’ 하였다. 또 한번은 미국 LA에 사는 남편의 친구가 나이아가라 여행 중에 방문하였다. ‘어서 오세요.’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데 ‘얘. 나야 나.’ 그의 부인이 어깨를 쳤다. 고등학교 친구였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폭소가 터진다.

여자가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선교사들의 영향이 많았던 듯하다. 천주교, 기독교, 성공회 등 1883년 개항을 전후해 들어온 서양종교는 여성들에게 전 근대적 차별과 핍박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였다. 선교사들은 교리전파와 함께 신식교육을 병행하였는데 ‘룰 루 프라이’ 이화학당장 같이 신식 교육기관의 책임자는 대부분이 선교사였다.

 가부장적 남편과 시집살이 속에서 사랑과 평등을 전하는 서양종교에 여성들은 개화되었다. 세상의 기본질서로 굳게 서있던 남자와 여자 사이의 높고 두터운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조의 관계를 통해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며 선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관리하는 권리와 의무를 시행하는 것이라 각성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거의 전 세계는 여자의 노출을 억제하고 있는 듯하다. 가장 뛰어난 문화민족이라는 북미에서조차 내 건강보험증, 운전면허증, 심지어 여권에서 성(姓) 손(孫)씨는 찾을 수 없다. 어디 가서 나를 찾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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