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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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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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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9
밤이 가고 잠 깨니 새 먼동이 터 오른다

 

‘잠’(Sleeping) 못 자는 밤이 두어 주일 되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환자는 자려고 애를 써도 잠이 오지 않고, 나는 감기는 눈을 끌어 올리며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혹시나 넘어질까, 떨어질까, 부스럭 소리만 나도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환자의 병이 고비를 넘기는 동안 육신의 무게는 나의 몸에서 빠져 나갔다.

인간의 신체구조와 육신의 생리기전을 보면 세상에 있는 어느 두뇌로도, 어느 절묘한 기능공의 솜씨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신묘함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그 중에 아주, 어쩌면 제일 작은 것 하나가 ‘잠’이 아닐까 생각된다.

육체가 어느 기전의 적정선에 이르면 잠이 오고 또다시 생생하게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지, 기계가 아닌 육신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놀랍기만 하다.

‘잠’이란 맥박과 호흡 등 생명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활동을 제외한 모든 신체활동이 휴식에 들어간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인간은 삶의 약 삼할(1/3)을 ‘잠’으로 소비한다고 한다. 보통 성인(26세-64세)에게는 7-9시간, 65세 이상은 7-8시간의 수면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잠’의 원인에 대해선 뇌 속의 노폐물 제거, 피로회복, 신체의 피로회복과 고통의 완화, 호르몬 주기설 등 여러 가설뿐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예민하여지며 만사가 귀찮고 짜증난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험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연구 발표에 의하면 몰 잠을 자기보다는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풀도록, 또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자고 깨는 습관이 장기적 숙면습관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잠’이란 단순한 육체의 피로 회복뿐 아니라 뇌신경의 피로 회복을 시켜주는 작용이란 가설이 때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잠’자는 시간 중에 뇌가 더 많이 활약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동안에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때로는 ‘계시’의 현상도 일어난다.

내가 경험한 사건이나 사실에 토대를 두지 않은 ‘꿈’, ‘환상’은 때로 자신이 은연 중에 갈망하는 어떤 이상이나 지상목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설도 있긴 하다.

 밤 시간에 환자를 돌보아 주는 기관의 도움으로 자신을 추스를 수 있을 만큼의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온몸의 신경은 열어 둔 채 잠자리에 들다가 문득 한 생각에 무릎이 절로 접어졌다.

인간의 경영이란 모두가 ‘평안한 잠을 위한 수고’인 것을. 한낮에 행하는 모든 활동과 열성과 노력은 편안히 눕고 일어나는 행복의 추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안한 잠자리 마련을 위하여, 태평한 ‘잠’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먹고 일하고 생각하는 것이라 구독 점을 찍은 것이다.

 8시간의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다시 깰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의 극치임을 자각한다.

깨어 먼동이 터 오르는 찬란한 새 아침. 새 생명의 소망을 맞이함이랴.

(2023년 정초)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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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7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현관 작은 유리문으로 밖을 내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순간적으로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하였다.

 가을이 눈부신 계절의 왕관을 선뜻 내주지 못하고 이리 저리 굽어 다닌 골목길엔 가랑잎이 스산하게 쌓여있었다. 잘못한 일 하나도 없는데 작은 바람에도 깜짝 놀라 바스락대면서 굴러가는 모습이 싸늘하게 코에 스쳤다.

 어느새 풍년가가 잦아든 들판엔 살찐 망아지가 어미 따라 투덕거릴 뿐 천고마비의 계절은 새파란 하늘 아래 한없이 너그럽고 청정하고 고요하였다.

 단 하나. 너만 아니었으면.

 주인의 개성대로 꾸며진 대문 앞 풍경은 작은 동네를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게 할뿐더러 계절의 변화를 가장 잘 전해주어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현관기둥에 환한 황국화분을 걸어놓았다. 그런데 커다란 화분 삼분지 일 정도의 흙을 파헤치고 꽃을 전부 꺾어버린 것이다. 내려다보니 꺾어진 꽃 가지가 문 앞에 널려 있었다. 다람쥐. 바로 너의 소행이로구나. 그러나 온 몸이 경직되듯 놀란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지난 수년간 괴롭힘을 당하는 다람쥐와의 기 싸움이 발단이었다. 내 오른팔의 반쪽만한 다람쥐들에게 언제 어떻게 채 가는지도 모르게 해마다 포도송이를 도난 당하는 억울함을 피하기 위해 포도송이에 종이봉지를 씌워도 보고, 망사 천을 나무 주위에 둘러보는 등 온갖 수단을 다 써보았지만 번번이 참패만 당해 왔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따려고 계획을 세우는 날 밤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려 이번에는 포도를 조금 일찍 따기로 꾀를 내었던 것이다. 95%만 익으면 미리 따다가 나머지 5%는 햇빛으로 익힌다는 작전을 세우고 미리 두 송이를 따오는데 성공을 하였던 것이다.

 햇볕이 밝게 들어오는 창가에 포도송이를 놓고 5%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승리의 쾌재를 부르던 마음바닥에서 차츰 내 오른 쪽 팔뚝 반만 한 작은 다람쥐에 미안한 생각이 들고 엄격히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포도를 도로 담아 데크에 갖다 놓았던 것이다. 나는 따는 기쁨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었다.

 황국의 수난은 분명히 포도를 미리 따간 보복인 것이다. 사람과 대결하여 보복하려는 동물이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것도 사람의 감정과 같은 방법으로 네가 좋아하는 것을 망친다는 철저한 보복 심리를 가진 동물이 내 주위에 눈을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에 온 몸이 떨린 것이다. 이 순간의 다람쥐는 귀여운 존재, 더불어 즐겁게 함께 살아갈 동아리에서 멀리 떠나 똑같은 권리와 힘으로 대결하려는 공존자로 보였다.

 자신들도 지구촌의 주인이라는 당당한 눈빛들이 사면에서 몰려드는 듯 했다. 파리 한 마리 잡을 수 있을까, 거미줄 한 치도 마음대로 거둘 수 없다는 두려움이 단숨에 덮쳐왔던 것이다.

 주위에서 귀 따갑게 울리는 녹색운동은 어디까지가 그 한계일까.

 사람과의 교감은 그렇다 치고 이들의 지능지수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였다. 인터넷을 훑다가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하였다. 주위에 있는 생물의 지능지수 표였다.

 제 1위는 ‘침팬지’로 인간의 유전자와 99%가 일치하며 사람과 다양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한다. 2위는 ‘돼지’, 3세 정도의 어린아이 수준과 같으며 여러 기능을 쉽게 소통할 수 있음은 물론 복잡한 환경이나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다 한다.

 3위는 ‘돌고래’로 IQ 80-100. 5, 7세 어린아이 정도로 뇌 구조와 생활방식이 사람과 비슷하다고 한다. ‘앵무새’, ‘고래’, ‘개’, ‘문어’, ‘코끼리’, 다음 9위가 ‘다람쥐’였다. 생활방식이 식량을 모으고 저장하는데 집중되어 있으며 어느 종류는 저장한 장소를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찾아낸다고 하였다. 바로 요놈들이 포도를 따간 주범들이었구나. (10위는 ‘고양이’로 나타나 있었다.)

 다람쥐 한 마리가 만물의 영장을 뒤흔든 가을 아침이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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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6
지고 이기고

 

참 아름답다. 까뭇까뭇한 작은 포도알이 우윳빛 유리에 덮인 듯 오히려 차분한 빛으로 뭉쳐 있다. 송알송알, 아니 송글송글한 작은 포도송이가 사면팔방을 빠끔거리며 반짝이는 눈동자 같다. 저 흑진주 포도알들을 나무통에 짓밟아 포도주를 만든다지.

 

포도주 중에서도 한겨울, 보송한 털외투를 입고 에스키모 털모자에 하얀 봉오리 장갑을 낀 연인들이 코가 빨갛게 되도록 눈길을 걷다가 산속 오두막집, 따뜻한 벽난로, 아무렇게나 꺾어 온 나뭇가지, 활활 숲 향내 풍기는 불꽃 가에 마주 앉아 함박눈 펄펄 날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치어스!’ 살짝 술잔을 부딪치며 상긋 미소 짓는 담흑색 와인, 목둘레만큼 가느다란 까만 와인병에서 졸졸 냇물 소리라도 울릴 것 같은 달콤한 와인, 아이스와인을 바라보며 웃는 연인들의 심중에는 어떤 생각들이 오갈까.

 

내가 있어 우주가 존재하는 것. 자기 발끝에서 시작한 만큼의 우주를, 손바닥만 한 가슴 복판에서 퍼져나간 환상의 세계를 날고 있을까. 그것은 우주를 탐색하는 탐험자만큼 나에겐 풀고 싶고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하 참 장황하게도 읊조렸구나.

 

덜 난 사람일수록 화장도 필요하고 치장도 필요하다지. 어차피 발그레한 양 볼은 애초부터 감추기로 작정한 반사 작용이라니까. 아예 민낯으로 대하기로 작심하였다.

 

헛간 벽에 얼개나무 받침대를 세우고 포도나무 한 그루 심어 놓고 여름내 꿈을 꾸었다. 한 뭉치 포도송이와 굽이 높은 가녀린 수정 와인 잔, 위하여! 더운 날숨을 몰아 쉴 수 있는 마음의 친구. 함께 걸을 겨울 오솔길, 바삭바삭 발자국 소리 숲을 울리는 눈길을 많이도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이제 준비 완료. 내일쯤엔 주렁주렁 열린 저 포도를 따서 청량한 가을 햇볕 하루만 더 들이쉬게 한 후 아이스와인 공정에 들어갑시다. 꿈의 여행, 황홀경 일주를 하여 봅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 그렇지 다람쥐가 듣는다’고. 밤사이 포도송이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기를 어언 십여 성상, 오른쪽 팔뚝의 반밖에 안 되는, 내 두 주먹만한 것들을 상대로 싸울 수야 없지 않은가. 실은 속수무책으로 늘 참패 당하기만 했다. 우선 기밀이 어디서 어떻게 새어나가는지 그 경로는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한 해는 나무 주위에 망사 천을 둘러보고 또 다른 해에는 포도송이에 하나하나 봉지를 만들어 씌웠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 수 없으니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도 전혀 모른다. 종이 봉지 속의 포도를 알맹이만 다 따가고 빈 가지만 대롱대롱 들어있었다. 진짜 어느 분의 탄성처럼 ‘말 다 했다’였다.

 

금년의 포도송이는 정말 보기 좋았다. 원추형의 모양새가 우선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그 포도주를 마신다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낭만이 절로 솟을 듯 보였다. 금년에는 기필코 이겨보자.

 

한발 먼저 따기 작전을 쓰기로 하였다. 95퍼센트만 익으면 더 기다리지 말고 용감하게 따오기로 작전을 세우고 새벽 동틀 때 싹 뚝 두 송이를 따왔다. 만세. 드디어 성공하였다. 금년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놓고 나머지 5퍼센트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라보기만 해도 승리의 미소가 입가에 번짐을 가눌 수 없었다. 까만 눈동자를 데굴거릴 다람쥐들이 생각할수록 재미있어 승전가를 높이 부르며 즐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승리의 환희는 엷어져 가고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상대가 내 팔뚝의 반밖에 안 되는 다람쥐라니. 이건 또 다른 자존심의 문제였다. 먹어도 마셔도 몸속 깊숙이로부터 기쁨이 솟아오를 환희의 맛이 아닐 것이라는 자각이 바늘처럼 찔러댔다.

 

우리가 일생을 통해 바쁘게 도모하는 세상만사 모든 일이 ‘질 수 없다’는 자존심, 자격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쭈글쭈글 말라가는 포도송이를 접시에 담아 데크의 층계에 갖다 놓았다. 나는 따는 기쁨으로 충분하니 다른 것은 다람쥐들에게 양보하자. 어차피 길게 거슬러 올라가면 나도 그도 포도 씨를 잉태한 적이 없는 존재들이 아닌가.

 

풍년가 울리는 가을 산야에서 모두 함께 합창하는 소리가 바람결 되어 볼에 스친다. 세상사 지고도 이기고 이기고도 지는 섭리를 깊이깊이 삭이는 이 계절, 가을이 무르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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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구절초 피던 자리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코비드’로 인하여 온 세상이 죽느냐 사느냐로 초긴장이 된 시기에 땅을 뒤집으며 집짓기에 열중인 사람들의 심리는 어디에 근원을 둔 것인지.

 

한 주먹 움켜진 손가락 새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을 바라보듯 망연히 바라보다가 불현듯 흑백이 대조되듯 그들의 삶이 떠오른 것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 벌린(Berlin)에 있는 아미 쉬 마을(Amish Country)에 다녀왔다. 마을은 초록색이 유난히 더 파랗게 보이는 청정마을이었다.

 

 남자는 주로 까만 옷에 높은 모자, 여자는 발꿈치까지 덮이는 무색 원피스에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 수건을 쓰고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닌다. 뚜거덕, 뚜거덕 수레바퀴 밑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온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섞이지 않으려는 특별한 의지와 노력이 흥미로웠다.

 

 처음 폰 힐로 이사를 왔을 때 대기는 맑다 못해 온 몸을 찬물로 씻어내듯 심령이 맑아지고 상쾌하였다. 폭포에서 치솟는 물보라가 보인다고 말 보탬을 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천둥치며 용트림하는 나이아가라폭포가 있다.

 

매일 아침 들린 다리를 건너고 끝없이 펼쳐진 들바람을 마시노라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넓이와 높이가 가없이 두둥실 뜨게 되는 것이다.

 

 생명은 숨 쉬는 것이라지 않는가. 바람은 봄부터 겨울까지 꽃 향기 바람이었다. 흰 눈을 비집고 나온 쪽빛 크로커스가 고개를 내밀면 벚꽃, 목련, 라일락 저마다 향기를 내뿜는 아름다운 꽃들.

 

딸기, 체리, 블루베리, 포도, 복숭아, 사과, 배. 벌과 나비를 부르는 경쟁의 꽃 냄새는 사람을 먼저 취하게 하였다. 그뿐이랴. 거칠 것 없이 이어진 하이웨이 주변엔 메꽃, 달맞이꽃, 멋없이 껑충한 원추리가 주근깨투성이 얼굴에 주황색 웃음을 내뿜고, 가지마다 꽃을 단 쑥부쟁이가 온 세상을 보라색 향기로 덮어버리곤 하였다. 그 속에 다소곳이 미소 짓고 있는 하얀 구절초 무리가 좋았다.

 

인구 2천여 명의 전원마을은 40여 년 살던 런던을 떠나는 서운함을 새로운 기쁨으로 채워주기에 인색함이 없었다. 한 없이 자유롭고 조용하고 바쁘지 않은 삶을 즐겨왔다.

 

갑자기 웬 바람이 여기에도 불어 닥쳤는지 꽃바람은 먼지바람이 되어 마스크를 고쳐 쓰게 하였다. 새벽부터 종일 땅 파고 고르는 중장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높이고 내 집 마련을 위한 소박한 꿈이 떼를 지어 폭풍우처럼 밀려오면서 엉뚱한 변이를 일으켰는지 불쾌한 탁류가 되어 선한 꿈을 엎어버리는 듯하였다.

 

사랑하는 마을이 이곳 저곳 뜯겨나가는 듯 바라보는 마음이 아팠다. 자연을 그대로 누리며 살 수는 없을까. 미국에 남아있는 아미 쉬 마을여행은 이렇게 떠오른 탈출구였다.

 

아미 쉬는 17세기경에 생긴 전통주의 기독교추종자이며 기독교평화주의로 유명하다. 육체노동, 농촌생활 및 인간성을 중요시하며 단순한 옷차림, 단순한 생활, 자급자족, 공동생활을 지향한다. 이들은 외부인과의 상호작용, 복장, 종교적 의무, 제한된 기술사용에 관한 일련의 규칙서 Ordnung을 따라 교육하며 생활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아미 쉬’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마차에 성경을 간직하였다가 주일에 예배를 드린 후 다시 제자리에 보관한다. 성경을 사적으로 번역하려는 우를 막기 위해서라 한다.

 

이 시대에 주어진 삶을 살면서 우리는 과거를 어느 만큼 수용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 유익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전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여행 내내 따라다니는 의문이었다.

 

 가축동물원을 가보았다. 핑크색 새끼돼지가 우르르 몰려온다. 푸들만한 새끼 양, 새끼염소 애완용으로 가지고 싶은 것들뿐이다. 까만 수건을 머리에 쓴 젊은 엄마가 한 살은 되었을까 포동포동한 아들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놓아 들이밀면 새끼 양이 핥아 먹는다.

 

까르르. 엄마의 손에 먹이가 떨어지자 아기는 돌아서서 내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 깔깔~ 손을 내밀고, 올려주고, 함께 웃으며 부스러기까지 털어주었다. 이 여행에서 내가 간직해온 유일한 천사의 웃음소리이다. 유리알 구르는 맑은 웃음, 이명처럼 번쩍 정답이 떠올랐다.

 

갓 나서부터 ‘아미 쉬’ 환경 안에서만 양육할 수 있다면 청정마을 순수성은 가능하리라.

 

구절초 피던 자리에 빨간 벽돌의 타운하우스가 들어섰다. 그러나 내 눈앞에는 ‘순수’ 또는 ‘가을 여인’이란 꽃말의 구절초들만 삼삼하다. 문득 어쩌면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자리도 구절초 무리 지은 들길은 아니었을까. 역사의 지층으로 쌓인 저 깊은 곳을 향해 천사의 웃음소리가 울리는 구절초 들판을 천천히 걷는다.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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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30
블라인드 틈으로 보는 세상

 

도저히 믿기지 않아 책상에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다. 빗겨 쳐진 블라인드 틈새로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몇 점이 흐트러진 흰 솜처럼 떠있을 뿐 흔들리는 백양나무 잎들이 바람 따라 술렁이고 있다.

우리 집 창은 윗부분만 헝겊으로 장식하고 가로 살 블라인드(Horizontal blind)로 처져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침실 창에 드려있는 블라인드의 간격을 조정하여 빛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그 다음 화장실을 환하게 조정한 후 살 틈을 엄지와 검지로 벌리고 밖을 내다본다. 눈높이에 맞추어 내다보면 비스듬히 높은 단풍나무가 턱 막아 선다. 앞뜰 한 복판에 서있는 큰 나무가 거슬린다고 잘라버리자고 성화지만 반쪽 뜰 주인의 허락을 받지 못하여 그대로 서있는 나무다.

겨우 잎눈이 틜 날씨인데 높은 나뭇가지에선 손가락만 한 벌새들이 쫓고 쫓기며 부산을 떤다. 후루룩 처마 밑으로 날아들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기도 한다. 짝짓기 하던 불티가 예까지 튀었나.

내다보는 사이 하루하루 잎이 커지고 종달새들이 날아든다. 블랙버드, 산비둘기도 날아든다. 블라인드를 차례로 한껏 낮추어 땅을 보면 입에 검불이나 잔가지를 물고 오르락내리락 둥지를 트는 것을 볼 수 있다. 잔디밭이 곡창이라도 되는지 그 많은 새가 쉴 새 없이 쪼아대도 무진장인가 보다.

블라인드 틈으로는 모퉁이 집 ‘샌디’ 부부가 새벽걷기를 하고, 빨강 노랑 옷을 입힌 강아지를 끌고 산책하는 노부부도 보인다. 시간 맞추어 지나는 통학버스와 기다리는 아이들 무리가 장난치며 깔깔거리며 뛰어다닌다.

생동하는 생명력이 색깔을 바꾸어가며 쉬지 않고 이어지지만 벌린 간격만큼 가로 잘린 그림들을 한 장으로 볼 수 없는 번거로움조차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단풍나무 꽃이 지며 차도에 쌓이고 씨가 날개를 달아 잔디를 덮게 되면 차츰 나무가 미워지기 시작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읽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나무는 안 자르기를 참 잘했다고 스스로 흐뭇해한다.

하루의 시작, 세상이 움직이는 동력을 체감하게 하는 풍경은 가을이 되어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지면 가랑잎 구르는 소리에 맞추어 내 삶의 이정표를 정리하게 한다. 자연이 내 주위에서 일련의 축제를 치르고 떠난 사이 자신에게도 변화가 있었을까.

오늘따라 반추하는 시간이 한정 없이 흐른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뭉실거리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화로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속절없이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떠나다니.

‘9988124’라는 만담을 하면서 호탕하게 웃던 장본인인데 시비조차도 가릴 수 없게 된 형편이 어이가 없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 앓고 떠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강조하던 그가 ‘88124’ 팔십 세까지 팔팔하게 잘 살다가 떠난 것이다.

외대 영문과 졸업,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트럼펫과 색소폰을 불던 그는 교회 찬양대 단장으로 오랫동안 봉사하였다. 헌신적인 반려자 아내와 아들, 손자, 며느리와 더불어 편안하고 조용한 삶을 살았다. 한 달 전에 CT에 이상한 것이 포착되어 조직검사를 하고 악성 급성인 그 병의 진단을 받았다. 희한하게도 6개월이나 진행되었다는 그 병의 증세를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입원, 사흘 후 퇴원, 퇴원 이틀. 순식간에 속수무책으로 떠난 것이다.

99는 떼어버리고 그토록 급히 떠나게 된 이유를 이것저것 아는 대로 끌어내 보았다. 아직 확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치유법. 어쩌면 그것은 블라인드 틈새로 세상을 내다보듯 사물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보이는 구분된 지식의 불완전성 때문은 아닌지.

생성의 법칙이 질서정연하게 반복되는데 그 원리 전체를 알아낼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그의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머리가 안 되면 시간을 쓰라’고 하였다. 역으로 말하자면 시간이 없는 사람은 머리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머리도 시원치 않은 범인들은 언제나 조각 지식의 합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머리도 시간도 안 되면 가슴이라도 있으면 되리라고, 블라인드 틈새로 비치는 노을 빛이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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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9
무명(無名)의 유명인(有名人)

 

‘애국지사들의 이야기’ 제 6권에 김란사 지사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구한말, 이화학당을 거쳐 미국 웨슬리언대학에서 한국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문학사를 받은 신여성으로 이화학당과 첫 번째 이화여자대학 교수로서 암울하던 조국의 교육자로, 여성계몽가로, 독립운동가로 일생을 바친 분이다.

여러 자료를 수집하다가 그 시대에 여성이기에 당하는 큰 부조리에 당면하게 되어 깊은 상념에 들게 되었다. 김란사는 하란사란 이름으로 서훈되다가 2015년 증손자 김용택 씨의 정정 요청에 의해 오래된 사진과 기록들을 추적하여 6년 만인 지난 2021년 3월에 마침내 김란사 이름으로 기록을 정정하고 새 훈장도 재발급을 받게 되었다.

탄생 150년 만에 드디어 자기의 바른 생년월일과 이름을 찾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상의 실책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오류라 할 수 있다. 구한말, 여자아이들에겐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김란사는 1872년 아버지 김병국 씨와 어머니 이씨(성명이 없다)의 일남 일녀 중 장녀로 평양에서 탄생하였다. 1893년에 인천항 감리사의 고위관리인 하상기와 결혼하였다.

이화학당에서 낸시(Nancy)라는 세례명을 받아 한문발음과 비슷한 란사(蘭史)로 개명하였다. 1897년 남편과 함께 미국유학을 갔을 때 출입국 관리소에서 남편의 성씨를 따라 ‘하’씨로 등록하여 ‘하란사’가 되었던 것이다.

 이름은 한 존재의 전부를 나타낸다. 이름을 부르기 전에 꽃은 꽃이 아니듯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나는 내가 아니다. 이름은 남이 나를 구별하는 수단이고 나를 표면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 생각한다. 또한 이름은 가문의 위상을 나타내는 표상이며 선대와 후대를 이어주는 가계의 혈연고리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인류문화의 흐름에서 묵계적인 한 유형이 생성되었다.

여자의 이름은 부모 밑에서 자랄 때는 부모의 성씨를 지니다가 혼인하면 남편의 성씨로 바뀐다. 사회적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여자의 이름은 문패에서, 전화번호부에서 사라진다. 여자 친구의 행방을 찾기는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기만큼 힘들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남편과 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침)이 있는가 하면 조선시대에는 ‘삼종지도’(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따름.)가 있어 동서양 어느 곳이나 세계는 남성위주의 독선무대 같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나의 이름은 ‘미시스 송’, 혹은 ‘수지 송’이었다. 그나마도 별로 불러주는 이 없고 들을 필요성도 없었다. 어느날 아이들과 한창 바쁠 때 전화가 왔다. 혹시 00대학 ‘손’ 선생님 계시냐고 찾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그런 사람 없는데요.’ 하였다.

대뜸 저쪽에서 ‘선생님 저 김00에요’ 하였다. 또 한번은 미국 LA에 사는 남편의 친구가 나이아가라 여행 중에 방문하였다. ‘어서 오세요.’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데 ‘얘. 나야 나.’ 그의 부인이 어깨를 쳤다. 고등학교 친구였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폭소가 터진다.

여자가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선교사들의 영향이 많았던 듯하다. 천주교, 기독교, 성공회 등 1883년 개항을 전후해 들어온 서양종교는 여성들에게 전 근대적 차별과 핍박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였다. 선교사들은 교리전파와 함께 신식교육을 병행하였는데 ‘룰 루 프라이’ 이화학당장 같이 신식 교육기관의 책임자는 대부분이 선교사였다.

 가부장적 남편과 시집살이 속에서 사랑과 평등을 전하는 서양종교에 여성들은 개화되었다. 세상의 기본질서로 굳게 서있던 남자와 여자 사이의 높고 두터운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조의 관계를 통해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며 선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관리하는 권리와 의무를 시행하는 것이라 각성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거의 전 세계는 여자의 노출을 억제하고 있는 듯하다. 가장 뛰어난 문화민족이라는 북미에서조차 내 건강보험증, 운전면허증, 심지어 여권에서 성(姓) 손(孫)씨는 찾을 수 없다. 어디 가서 나를 찾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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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멀리 떠나고 싶은 사람

 

 온갖 시샘을 다 떨던 겨울이 마침내 두 손 들고 물러간 파란 하늘에 축제의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온 천지는 촉촉한 아지랑이로 덧칠된 듯 제자리에 들어앉은 색채라곤 하나도 없이 시야는 온통 아른거리기만 하였다. 실눈이 움돋은 가지마다 손짓을 해대고 들숨으로 들락거리는 산들바람에 온 몸이 움찔거려서 한시도 선 자리에 가만히 버텨볼 재간이 없었다.

삼 층짜리 하얀 벽돌건물조차 봄바람에 들썩이는데 허구한 날 병상을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하는 정집사야 오죽하랴. 여행을 간다더니 하루도 못 있고 돌아온 그를 떠올리려니 병상에 있는 환자가 더 크게 겹쳐왔다.

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존재가치를 먼저 빼앗긴 사람이었다. 휠체어에 들어 올려준 그대로 기울어진 자세를 가누지 못하고 의자에 벨트로 묶인 채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영상물과 마주 앉아 있었다. 눈은 주로 감고 있고 소리는 들리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입은 먹지도 못하고 말도 소리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기분전환을 위해서라는데 감상하는지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어느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휴식을 취하라며 다시 침대에 눕혔다. 휴식을 취하라니……. 거의 종일 눈을 감고 조용하게 누워서 부려놓은 곡식자루마냥 움직이지 못하는 삶에도 다른 쉼이 있을 수 있을까.

그에게 휴식이라는 말의 뜻은 어떤 것일지 의구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가끔 문병을 가면 정 집사는 병상 머리맡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 페이퍼타월을 펴놓고 매직 마커로 사군자를 치고 있었다. 환자의 수발을 들면서 틈틈이 그린 그림에는 어김없이 빨간 색으로 하트모양을 그리고 성경 구절이 적혀있었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항상 기뻐하라’ 글씨를 곁들인 그림들은 싸 두었다가 문병객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울퉁불퉁한 종이타월에 그린 사군자는 꼿꼿한 지조와 지순한 아름다움이 넘쳐흘러 받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해 주었다. 정 집사는 30세에 23세이던 부인과 결혼하여 48년간 평범하지만 화락한 삶을 살아왔다. 엑스레이 기사에서 은퇴한 후 교회의 웹 사진사로 봉사하고 노인대학이나 여러 단체에서 사군자를 가르치며 조용한 노년생활을 하고 있었다.

권사로 교회 살림 구석구석을 보살피던 부인과 둘이 믿음의 본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평화롭게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스트로크로 쓰러지면서 삶의 리듬이 무자비하게 망가져 버렸다. 뇌의 삼분의 이(2/3)가 파괴되어 나머지 삼분의 일(1/3)로 숨 쉬고 심장박동을 유지하는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스스로 삼키지도 못해 대여섯 개의 링거호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정 집사는 아침 일찍 와서 종일 부인 곁에 있다가 취침시간이 되면 돌아가곤 했는데 그러기를 벌써 1년 반이나 지났다. 처음엔 기적 같은 쾌유가 일어날 것을 간구하였지만 혼수상태를 두 번이나 겪고부터는 점점 소망이 엷어지고 감도는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었다.

한 가지 크게 다행이라면 권사님 얼굴이 항상 웃음 띤 모습인 것이다. 완제된 인형처럼 붓 박힌 미소를 위로 삼아 눈감은 권사님의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아주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곁을 지켰다. 어쩌다 눈을 뜨면 순간적으로 세상이 확 밝아지는 듯 새 힘이 솟다가 힘없이 스러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소망을 붙잡고 견디었다.

삼분의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뇌가 점점 기력을 잃어가는 저 마음속에는 어떤 감정이 흐르고 있을까. 네 딸들을 대학까지 공부시켜 이제 모두 결혼하여 여덟 명이나 되는 손주들의 뒤치다꺼리까지 하느라 평생 어디 한 곳에 조용히 앉아보지 못하고 치마폭에 바람이 휙휙 거릴 지경이던 아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평소에 그리도 사려가 깊은 아내였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분명 주위에서 돌아가는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느낄 것이라 믿어졌다. 그는 한입으로 두말을 하는 인형연극사처럼 함께 성경을 읽고 손잡고 기도하고 음을 맞추어 가며 찬송가를 불렀다.

‘여보 오늘은 찬송가 460장이야.’ ‘지금까지 지내온 것 모두 주의 은혜라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자신에게도 활력주사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자기의 얼굴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어디든 먼데로 떠나고 싶다고 하였다.

권사님이 세 번째 스트로크로 응급사태를 겪고 난 후 의료진이 링거호스를 제거하자는 언질을 심각하게 비쳐왔기 때문이었다. 수천 달러의 치료가 전혀 성과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머지않아 결혼 50주년이 다가오는데 몸과 마음이 동시에 기진하여 쓰러질 직전까지 도달한 듯하였다. 고통 없이 편안하게 품위 있게 생을 마치게 한다는 선한 동기의 실행이 실제적으로 얼마나 그를 많이 괴롭혀 왔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며칠간 여행하고 오겠다던 그가 왜 벌써 돌아왔는지 그 자초지종이 무척 궁금하였다. 우리가 들어서자 만면에 웃음을 띤 정집사가 두 팔을 벌리며 반기었다. 병실 안은 무어라 이름 할 수 없는 화사한 공기가 자작하게 괴어 있어 상쾌하기까지 하였다. 창틀에 놓인 작은 트랜지스터에서 찬송가가 나지막하니 흘러나오고 있었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길이 함께 하소서.

너무 힘이 들어 멀리 떠나고 싶었다고 한다. 간호사에게 사흘만 달라고 부탁해 허락을 받고 무조건 차를 타고 달렸다. 그런데 갈 곳이 딱히 없었다. 아내가 눈으로 자기를 찾을 것만 같고 눈물에 찻길이 가려져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침대맡에 앉아서 자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일모래가 금혼식인데 저 지경이 되어가지고 금혼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뜨거운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렀다. 자기도 모르게 엎드려 한숨의 기도를 쏟아내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니라. 영감이 퍼뜩 왔다 ‘당신 살아있어?’ 그런데 바로 그때 ‘응’하는 대답이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식물인간, 뇌사자라는 병의 속성을 상식과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게 하는 큰 사건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주로 정신적, 감성적, 육신적인 능력의 조화를 의미한다. 근래에 와서 인간이 품위를 가지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존엄사의 권리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1994년 미국 오리건(Oregon)에서 처음으로 법적 인준을 하였고 2013년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루게릭’ 환자에 대한 존엄사 권리인정을 처음으로 하였다.

앞으로도 계속 찬반양론을 거듭하겠지만 질병에 의한 자연적인 죽음을 돕는 존엄사보다는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 더 뜨거울 듯하다. 뇌사나 식물인간 같은 회복 불가능한 병에 대해 자연적인 죽음을 맞기 전에 인위적으로 죽게 하는 안락사는 편안한 죽음 내지 행복한 죽음을 뜻하는 의학적 행위로 간주되지만 오늘 날엔 다분히 의도적인 죽음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정집사가 미는 휠체어에 앉아 라일락 꽃에 코를 대고 있는 권사님. 꽃 향기를 맡고 있는 것일까 오늘따라 신부의 미소가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몸이 아플 때나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영원히 변치 않을 황금의 미소였다. 뇌가 단지 삼분의 일이나 그보다 더 적게 살아있더라도 사랑을 할 수 있는데 품위 있게 생명줄을 제거할 수 있을까.

오늘 80세 시니어 운전면허 재시험에 패스한 정집사가 기쁨에 들뜬 환성을 발했다.

‘이제 집사람은 안락한 곳에 있으니 안심하고 어디든 가도 되지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오래 참아준걸 칭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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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4
두 가지 질문

 

마음에 작정한 바가 있어 매일 새벽 성경 필사를 시작하였다. 코비드로 인해 비대면 온라인예배를 강요당하게 되면서 정신력과 신앙심의 불꽃이 스러지지 않기 위한 좋은 방편이 되어주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쓰노라면 타성적이 되어버린 설교와는 또 다른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하였다.

부활절을 앞두고 그 의미를 묵상하다 반짝 마음의 창에 비치는 것이 있었다. 신 구약성경에 나타난 두 가지 큰 질문이었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 하신 것이다. 먼저 것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그 아내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을 찾는 질문이고, 나중 것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에 환호하며 신원도 확실히 모른 채 열성으로 예수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시고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도망간 자에게, 후자는 따라 다니는 제자에게 하신 질문이다. 두 상황에서 공통점을 든다면 답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와 응답자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심리적 상태를 점검하려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두 상황에서 똑같이 시사(示唆)하는 바는 인간 자신의 존재위치를 분명히 알라는 일종의 경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질문과 원하는 바른 답을 두루 짚어 보는 마음속에 색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나의 삶에 두 질문을 대비하여 조명하며 상념에 잠기게 된 것이다.

‘나는 어디 있는가.’ GPS 위치추적기에 의한 지리적 위치를 묻는 것이라면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일생의 여정에서 내가 선 자리의 위치는 어디인지 나 자신도 정확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을 표적 삼아 어느 방향으로 걸어왔는지 뒤돌아보면 더더욱 머릿속은 헝클어진 실타래가 되고 만다. 캄캄한 밤. 북두칠성을 표적 삼아 방향을 정하고 길을 찾는다고도 하지만 과연 나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북극성 같은 표적은 무엇일까.

신앙의 세계에서 ‘신은 죽었다’ 외친 ‘니체’의 주장은 ‘창조주 신은 영원불변(永遠不變), 무소부재(無所不在),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다’라는 신학자들의 학설과 늘 정면충돌한다.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 틀에 담은 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자기사람을 찾는다는 반박에 크게 호응하는 무리가운데서 내 위치를 가늠할 뿐이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질문은 ‘네가 추구하는 대상, 삶의 보람으로 생각하며 탐구하는 주제의 정체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아느냐’와 같은 음성으로 들려 왔다.

문학의 길에서 수필을 써 온지도 20여년이 된다. 과연 나는 문학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 수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언제나 그 대답은 한 마디로 정확하게 답변할 수 없이 모호하거나 부분적이었던 것 같다.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함은 인류의 오랜 숙원이다. 그 갈증을 채워주는 것이 예술이요 그 갈증을 구현시켜주는 것이 문학이다.” 문협 강령 첫 구절에 나오는 선포다. 올해로 창립 45주년이 되는 문협은 10여 명으로 시작하여 130여 명으로 성장하였다.

“문학은 사실을 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한 시인은 말하였다. 한 사회의 지적 수준을 알려면 그 사회의 문인들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다. 한인사회가 지성적인 사회, 문화민족의 우월성을 갖춘 사회로 비치는데 나는 얼마만큼 기여하였는지 살펴보게 된다.

내가 수필을 쓰는 것은 나의 느낌과 생각을 정확하게 솔직하게 전달하여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켜 공감을 얻게 하는데 총체적 목적이 있다. 그 공감이 상대를, 주위를, 사회를 아름다운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를 원하여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적어도 수필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는 작업이 나만의 즐거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작가로서의 자신을 수련하는 작업이 우선 필수 과업으로 인식되면 차를 몰고 들길을 달린다.

때는 봄. 무거운 옷 훌훌 벗어 버리고 새 싹이 움트는 들길을 달리노라면, 언 땅을 뚫고 솟아난 씩씩한 들꽃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긴긴 겨울 참고 견디고 이긴 승리자의 힘찬 노랫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것이다.

자연과 소통하고 사회와 사람들과 교류하며 역사를 통찰하는 이 모든 과정의 끝자락에 나부끼는 사랑의 푯대를 향해 달리는 문학의 자리. 내가 서있는 곳. ‘저 여기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두 활개 번쩍 치켜들고 소리 높여 화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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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7
10분의 여유

 

 B.C주(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발생한 눈사태는 대단한 참사였다. 폭설에 강풍까지 몰아치며 천하 만상을 얼어붙게 했다. 티브이에서는 통제구역 주민들이 멀리서 바라만 보면서 한숨을 들이쉬는 애타는 모습이 계속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마침 나는 게일 앤더슨 다 가츠(Gail Anderson Dargatz)의 ‘터틀 벨리’(Turtle Valley. 거북이 골짜기)라는 책을 막 읽고 난 참이었다.

1998년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사몬 암(Salmon Arm)에서 발생한 산불을 배경으로 불길을 피해 대피하는 며칠간의 긴박한 사태와 심리를 그린 소설의 이야기가 화면과 겹치면서 마치 불길과 얼음이 힘을 겨루듯 대비하며 피부에 닿듯 생생하게 전해졌다.

 긴급대피령을 발할 때는 대개 10분의 여유가 주어진다고 한다. 저자는 “만약 당신에게 10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묻는다.

흥미로운 것은 전 25장 단위의 글 첫 페이지에 암시하듯 흑백사진이 하나씩 들어 있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것들이었다.

이 빠진 찻잔, 고물 잉크병과 펜, 옛날 사진기, 하모니카, 라디오, 안경집 속에 든 안경, 그림이 바닥에 그려진 대접, 봉제 인형, 심지어 쓰던 칫솔, 플라스틱 장난감 등 골동품의 가치도 없는 물건들이 끼어있는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두고 갈 것이었다는 그의 독백은 내 머릿속에 꽉 차서 곤혹스럽게 하던 지난 생각들을 한꺼번에 몰고 왔다. 나는 아직도 다 정리하지 못한 이삿짐을 둘러보았다.

1/6로 팍 줄이기로 큰 결심을 하였지만 5개월이라는 시간 내내 무엇을 쌀 것인가로 고심하였었다. 상식적으로 안 쓰는 것(새것), 낡은 것을 버리면 간단한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안 쓰는 것, 새것들은 선물로 받았거나 아끼느라 모셔둔 것들이니 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오래된 것, 낡은 것을 새것으로 교체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내 몸의 일부나 가족같이 된 정든 것들을 보내기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재봉틀과 씨름하며 지어준 아이들 옷들, 털실로 짠 장갑 목도리. 이것들을 버릴 것인가? 커다란 상자에 봉제 인형들을 전부 담아 문 앞에 내놓고 보니 곰, 다람쥐 눈망울들이 어린 내 아이들의 품에 안겨 버림받는 슬픔에 젖어있는 듯 했다. 불쌍하여 전부 이삿짐에 도로 넣었다. 언젠가는 다 버리고 갈 것들인데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전부 싸버린 것이다.

지금 열어보면 필요한 건 다 버리고 덜 필요한 것은 가져온 꼴이다.

게일 앤더슨 다 가쯔는 그의 남편과 네 아이가 살던 집 근처에서 일어나 삶의 터전을 전부 삼켜버린 산불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긴급한 상황에서 불타는 집을 단념하고 대피한 사람들, 특히 불타는 집에서 10분 안에 가져갈 물건을 정하기엔 너무도 시간이 짧다는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하였다.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25개의 사진을 선택하여 찍는 데 1년이 걸렸다고 하였다.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두고 갈 것인가 이었다는 그의 결론은 실제로 그런 상황에 당면하였을 때 인간은 깊은 내부에 숨겨져 있는 잠재적 나약함을 여실히 증명한다고 하였다.

가끔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중고품 시장에 가지고 가기도 하지만 갑자기 그것이 보배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연약한 기억(추억)들이 때때로 우리 주위의 사라져가는 물건들에 의하여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자기가 보관하려고 선택한 물건들과 기억하려고 선택한 물건에 대해 선택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숨겨진 기억, 혹은 기념할 추억의 조각들이 어떤 형태로든 거기 숨겨져 있지만 우리 자신이 방아쇠를 당겨야만 한다는 이치이다. 그 방아쇠가 바로 낡은 집기, 사진, 혹은 기억될 만한 사건의 조각이라는 것이다.

나는 10분의 시간 안에 무엇을 들고 나올 것인가. 생각해 본다. 나 역시 골동품에도 미치지 못할 고물들을 들고 나올 것 같다. 그 고물들엔 내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물품이라면 언제나 새것 더 기능적인 것으로 교체할 수 있겠으나 삶의 현장, 고뇌하며 투쟁하던 열띤 입김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시간의 흔적은 다시 교체 할 수 없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시간의 흔적조차도 기억할 필요가 없을 때 나는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깨에 두를 한 벌 따뜻한 겉옷이면 족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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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3
시인의 외마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이름을 다시 만나니 반가움과 함께 웃음이 번져 나왔다. 오래 전, 서울에서 재외국민한글학교 교사초청연수회에 참가했을 때였다. 한 여름에 정장을 한 탓인지 얼굴에 솟은 땀을 연신 닦으며 반 뛰는 걸음으로 들어온 그는 걷는 대로 웃음이 튀는 듯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무척 낙천적이고 소탈한 모습이셨다.

강의 내용은 떠오르지 않지만 딱 하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것은 동료시인과 셋이 금강산을 여행한 일화이다. 기암절벽 그 오묘한 금강산의 절경은 참으로 시인 세 분의 넋을 다 뺏어갈 정도였다고 한다.

각자 금강산 즉흥시 한 수를 짓기로 하였는데 시어(詩語)가 다 달아나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꼭 들어맞는 어구(語句)를 찾아 고심하던 그는 산을 향해 두 팔을 높이 쳐들고 “금 강 사~안~!” 소리 높여 외마디 걸작명시를 읊었다.

시는 작가의 느낌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니까 기본을 갖춘 시라고 하였다.

미국, 독일, 뉴질랜드, 브라질, 필리핀, 대부분 전업시인이 아닌 교사들은 속이 후련해지는 희열을 느끼며 박수갈채로 환호하였다. 시종 웃음소리에 쌓여 시간을 잊고 몰입한 즐거운 특강시간이었다. 한글 교육은 주입식이 아니라 좀더 흥미를 유발하는 시청각 교육방법과 교재를 개발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한 명강의였다.

외국에서 살면서 후손들에게 한글을 잊지 않도록 애쓰는 한글교사들의 노고를 극구 칭찬하시던 시인님의 만년 어린이 같은 웃음소리가 귀에 울린다. 삶의 현장으로 돌아온 후 기억에서 흐려지고 있었는데 뜻밖에 한 문우의 글에서 그를 발견한 것이다. 새롭게 그의 현황을 찾아보았다.

황금찬(1918년 8월 10일~2017년 4월 8일. 속초시). 이름이 풍기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황금 찬(黃金 讚)이라 고쳐 읽으니 누런 황금덩이가 눈에 어린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98세의 춘추로 돌아가신 그가 시 세계에 비친 서광은 황금빛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꽃의 말’

말이 먼저일까 마음이 먼저일까 // 김춘수의 꽃처럼 /이름을 불러 의미를 부여 해 준 후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걸까 // 아니면 좋은 마음이 있기에 말을 예쁘게 하는 걸까//.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와라. 그래야 말도 꽃 같이 하리라 사람아”

“말이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시 문학은 사실을 미적으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캐나다한글학교 창립시의 목표는 한글교육과 한인 정체성 확립이었다. 60여 개 종족이 함께 모자이크 문화를 형성하고 사는 다민족사회에서 문화민족의 우월성을 유지하고, 말은 유창하게 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자부심을 길러주는 것이 우선 목표였다. 통상적으로 학교나 이웃에서 한국 어린이들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공원에서 태극기와 캐나다기를 세우고 만국기 휘날리며 시 교육관과 유지들을 초대하여 운동회를 하였다. 봄바람에 휘날리는 만국기처럼 어린이들의 기가 심신으로 훨훨 날리는 신나는 행사였다. 지역주민이 다 구경 나오는 명물이었다. 태권도, 고전 무용 등을 가르치고 한글날엔 글짓기대회, 우리말 잘하기 대회와 연극을 하였다.

외국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은 사회적, 정서적 환경이 다름으로 한국에서 보내오는 교과서는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부허용 시간은 주당 2시간 반 정도여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선생님들은 현지사정에 맞게 교재를 다시 만들어 언어교육의 세 가지 요소 즉 읽기, 쓰기, 말하기를 가르쳐야 했는데 이중 제일 어려운 것이 말하기였다.

경우에 맞는 존대어 사용법을 가려서 짧은 시간에 가르치려니 학생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무척 힘이 들었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미풍양속은 단연 어른공경의 예의범절과 공손한 말씨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심 끝에 일단 말하기는 존대어로 시작하기로 하였었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글을 써 온지 20여 년이 된다.

말이 먼저일까 / 마음이 먼저일까/ 김춘수의 꽃처럼 /이름을 불러 의미를 부여 해 준 후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걸까./ 다시 생각해 본다.

의미를 부여해 주기 전에 부르는 이름은 존재의 구별을 나타내는 도구이지만 의미를 부여해 주면 주체의 의미만큼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예쁜 마음에서 예쁜 말이 나온다면 예쁜 의미에서 예쁜 존재가 형성되지는 않을까. 어쩌면 마음과 의미는 똑같이 사물을 미적으로 바꾸는 문학 작업의 기본요소가 아닐까. 교수님께 한번 여쭈어 보고 싶은 화두이다.

 문학작품은 나의 맘속 느낌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으로 완성이 되는 것인지, 독자나 세상을 미화시키는 것이 최종목표인지. 심령을 감동시키는 데는 단 한마디면 족하리라는 나의 설익은 의견에도 ‘화안한’ 웃음으로 응답해 주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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