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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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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걷는 색소폰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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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듣고 또 듣는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 지나 자욱마다 눈물 고였다

 고려성 작사, 이재호 작곡의 ‘나그네 설움‘이다. 고막을 울리던 색소폰 소리가 긴 여운을 끌면서 눈을 아리게 한다.

 매달 첫 토요일 저녁에는 남편의 의대 동기동창 줌 미팅(화상 모임)이 있다.

시카고에 사는 회장 닥터 리가 물심양면으로 열성을 바치는 덕에 지난 2년여 동안 팬데믹에 밀려 강제로 집안에 갇힌 동기들에게 기다려지는 모임으로 사랑을 받게 되었다.

시카고 시간 저녁 6시, 미 동부는 7시, 한국은 새벽 6시경인데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친구들 3, 4명을 비롯해 대개 15, 16명이 만난다. 6년을 함께 공부한 급우들이라 여, 남, 성별이 모호할 지경으로 우정이 두터워서 이들의 모임에 참석해 보면 웃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머리가 희끗한 노(老)의사들이 ‘어 닥터( ) 왔구나!’ 반가워하며 쏟아내는 대화가 목소리의 높낮이나 톤에 거리낌 없이 직설로 열기를 뿜어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여의사께는 꼬박꼬박 존대어를 쓰는 품위는 순간순간 몸에 익은 중후한 인덕(仁德)이 비쳐 존경심이 우러나게 한다.

오늘은 초두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닥터 김 소식으로 잠깐 침울한 분위기였으나 화제는 이내 옛날 학창시절 주위를 맴돌면서 지난 시간의 역주행으로 이어져갔다.

원래 닥터 김은 K고교 시절 밴드부의 리드 멤버였다고 한다. 트럼펫, 색소폰을 잘 불고 기타를 잘 켜서 의과대학 특별행사나 크고 작은 오락 경연대회에서는 인기 최고의 재원이었다. 남편 닥터 송과는 무척 친한 사이였는데 특히 웃기는 순발력, 흔히 말하는 장난에 아주 잘 맞는 단짝이었다. 닥터 김과 처음으로 마주쳤던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솟는다.

데이트하던 어느 날 닥터 송과 명동거리를 걷고 있었다. 불쑥 나타난 닥터 김이 앞을 막아서더니 다짜고짜 “미스 K값 내놔.” 하며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진 닥터 송이 다음 순간 폭소를 터뜨렸다. 닥터 김은 벌써 저만치 뺑소니 치고 있었다.

사연이란, 자기네 실습그룹의 여학생이 현장 실험에 닥터 송과 함께 가게 된 때문이었다.

지난 번 미주 의학 회(醫學 會)에 참석치 못한 닥터 김에게서 작은 소포를 하나 받았다. 자기의 색소폰 연주를 녹음한 테이프였다. 한번 틀어보고 웬 유행가는, 하였었다. 돌이켜보니 참석 못한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그 때 그는 몸이 아팠던 것이다. 학회에 나와서 주먹으로 어깨를 치며 반가워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제수씨 안녕하시냐며 형이라 주장하던 그의 웃음소리도 귀에 쟁쟁하다.

나이와 도미(渡美)는 닥터 김이 먼저지만 그는 군의 중위로, 남편은 대위로 군복무를 필했으니. 감히 건빵 두 개가 어디라고 세 개 앞에서. 승강이를 벌이곤 하였었다.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 손을 들고 엄숙히 ‘히포크라테스선서’를 마친지 반세기가 지났다.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이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이다.’ ‘나는 환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존중할 것이다.’로 시작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연령, 질병이나 장애, 신념, 민족, 성별, 국적, 정치적 성향, 인종성적 지향, 사회적 지위, 또는 다른 어떤 사실도 환자를 대하는 나의 의무 사이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알게 된 환자의 비밀을 환자가 사망한 이후에라도 누설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는 위협을 받더라도 인권과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의 의학 지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맹세한다.

줌 미팅의 닥터들 대화바구니엔 왜 오로지 여행이야기, 취미생활이나 예술이 주제였는지, 귀가 솔깃한 가십거리란 하나도 없었는지 잘 알듯 하였다.

 졸업 후, 군의로 3년간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였다. 도미하여 삶의 본질을 다루며 인술을 베푼 지 어언 오십여 년, 그의 손을 거쳐 세상 빛을 보게 된 새 생명은 그 얼마이며, 치료 받은 환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백의 단일민족 의사로서 100여 종족의 가지각색 환자를 치료하며 맞닥뜨리는 기술적 정신적 문제는 일생동안 마주한 환자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타관 밟아서 넘어 반평생.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웃음 뒤에 숨어 있던 닥터 김의 외로움이 이제사 강물처럼 출렁이며 흘러든다.

미스 K값도 다 필요 없으니 평안하게 잘 있으라고 오히려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닥터 김의 환한 미소를 본다. 의사의 삶은 환자의 건강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적 정신적 극기를 이행하며 고통을 이겨내는 수련의 여정, 고독한 길이라는 것을 새삼 돌아본다.

이생에 빚진 것 하나 없다는 듯 닥터 김의 표정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눈물이 흐르는지. 오늘도 걷는다마는.. 몇 걸음을 더 걸어야 그곳에 도달 할 수 있을까.

 

*히포크라테스 선서: 의사로서의 윤리와 행동강령. 의사가 될 때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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