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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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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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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하늘은 그대로인데 땅 위에선 엎치락뒤치락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연이어 펼쳐지고 있었다.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시커멓고 푸석한 구름들이 세치는 되게 싸락눈을 퍼붓더니 어느새 굵은 빗줄기가 되어 바람까지 몰고 왔다. 얼음비가 될세라 서둘러 돌아오는데 앞질러 탈바꿈한 가루눈이 차창을 가렸다. 길바닥은 질퍽거리고 그 사이를 달리는 차들은 진흙 범벅으로 지저분하다.  

사람들의 기분은 축축하고 음울하고, 한마디로 우중충하고 스산한 날씨다. 이런 날은 뜨끈한 온돌방 찜질이 제격인데 어깨를 움츠리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온돌방이라는 낱말이 소리로 울리자 내 마음은 먼 세월의 뒤안길을 서성거렸다.

 겨울철이면 군불로 길들여진 안방 아랫목엔 언제나 얇은 솜이불이 덮여 있었다. 어서 와. 이불을 들치고 손, 발을 담그면 언 몸이 스르르 녹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곤 하였다.

하루의 일과를 보고하느라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자매들, 이불 속에 묻어 둔 주발의 따끈한 밥과 구수한 두부된장찌게가 세상 제일의 꿀맛이던 저녁밥상이 온돌방의 훈훈한 열기처럼 아련하게 떠오른다. 심신의 어떤 추위도 순식간에 녹여내던 구들장 찜질을 그리는 눈앞에 슬며시 또 다른 영상이 비쳐졌다.

 73세에 홀로되신 시어머님은 몸만 오면 된다는 아들의 말대로 작은 여행가방 하나 들었다. 그게 전부인가 했더니 그보다 몇 배 더 큰 보퉁이 하나를 카트로 밀고 나오셨다. 작은 가방엔 사진첩과 몇 벌의 한복, 노리개 패물 등 간편했는데 보퉁이를 끌러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담요 두 장과 솜이불, 납작한 베개, 세수수건 두 장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새것이 아니고 20, 30년은 족히 쓰던 오랜 물건들이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침대를 마다하고 부엌 옆에 달린 작은방 바닥에 담요 두 장을 접어 요로 깔고 수건으로 베개를 싸서 베고 이불을 덮고 주무시는 것이었다. 한국식으로 밤에는 이부자리를 펴고 아침이면 걷어서 한 모퉁이에 쌓아 놓는 잠자리 일과가 어이없었다. 새것으로 바꾸려 여러 번 시도했으나 그게 편안하다며 막무가내셨다.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 침구를 전부 다른 곳에 옮겨놨다가 떠나면 다시 펴 드리곤 하였다.

시어머님은 무남독녀이시고 나는 2대 독자인 무녀 독남과 결혼하여 시어머님의 친정어머니까지 시어른들만 세분인 시댁에서 3년간 살았다. 광복이 되자 남으로 내려가는 딸을 배웅하던 친정어머니는 차마 손자를 보내지 못하고 찻길까지만 업어다 준다며 주춤주춤 따라오다가 그만 남쪽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내내 딸 손자와 함께 살며 살림을 도맡아 하셨다.

개성 호수돈 여학교를 졸업하신 어머님은 움직이는 교과서라 불릴 만치 무척 총명하고 개성사람 특유의 검약심이 강하고 부지런하였다. 아침마다 여섯 식구가 벌집 쑤신 듯 소동을 부리고 떠난 집안을 깨끗이 정돈하고 텃밭을 가꾸고 화분에 물주며 돌보셨다.

한국비디오를 빌려다 보고 설교테이프를 듣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이웃과 인사도 나누면서 20년간 즐거운 삶을 사셨다. 가끔 일찍 돌아와 보면 쌓아놓은 이부자리에 기대어 아주 편안한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무겁고 커서 빨지도 못하는 담요와 이불에 호청을 씌우느라 애를 먹던 일이 다시 떠오른다.

밖에는 제법 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온돌방 따끈따끈한 아랫목이 한없이 그립다. 이불을 들치고 손발을 묻던 그 시절이 눈앞에 확대되는 순간 퍼뜩 깨달았다.

어머님은 고향을 들고 오신 거라고. 수륙만리 캐나다 땅에서 포근하게 감싸 줄 담요가 필요했던 거라고. 마음이 허하면 냉기가 더 크게 스며든다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단 하나뿐인 아들 곁에 있어도 고향은 인간이 돌아가야 할 귀소본능의 보금자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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