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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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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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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첫 눈 


 날이 갈수록 점점 언짢아 지는 것은 ‘영’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서 애기를 안고 나온 엄마가 딴 사람처럼 이상하게 생각되나 보았다. 이유 없이 떼를 쓰고 먹지도 않으면서 종일 뭘 달라고 조르곤 하였다. 공연히 트집을 잡고 울기도 하고 잠시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고 뱅뱅 돈다.


 아우 본 탓이려니 정성을 다 하다가도 피곤이 겹치고 바쁜 날은 신경질이 나서 꾸중을 하게 된다. 때때로 혼자 돌아앉아서 무언가에 열중해서 노는 ‘영’을 보는 수가 있었다. 구부리고 앉은 작은 어깨가 어찌나 측은한지, 그럴 리도 없을 텐데 공연히 기가 죽은 것 같아 딱하기 한이 없었다. 


 벌써 엄마 손을 떠나 독립 될 나이가 아닌데 강제로 밀려나 버린 것 같은 가엾은 생각이 드는 한편으론 내가 그런 나이에 도달했는가, 서글퍼지기도 하였다. 터무니없이 상반되고 모순된 감정이 조그만 ‘영’의 등에서 강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영’이야. 우리 산보 나갈까?” 애기가 자는 틈을 타 ‘영’을 불렀다.


 “야 이!” 금방 온 몸에 활기가 솟구친 듯 깡충 뛰어 일어났다. 재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는데 채 5분도 안 걸린다. 대개 차고 문을 열고 세발자전거를 탄 ‘영’을 따라 집 모퉁이를 돌아 앞문으로 돌아오는 것이 고작인 산보 코스였다. 


 ‘영’의 힘까지 빌려서 뻑뻑한 차고 문을 들어 열고나서니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한 달 반 사이에 낙엽은 거의 다 떨어지고 가지들만 앙상한 게 쓸쓸하니 옷깃을 여미게 하였다. 삐꺽 삐꺽, 녹슨 자전거 바퀴소리를 따라가노라니 저절로 고개가 땅으로 숙어지며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아직도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까마득한 생명체. 너무도 무기력하고 나약한 ‘현’에 대한 보호의식이 있다면 평안하고 즐거운 정서생활을 ‘영’에게 마련해 주어야 할 책임감 또한 크다. 아이들에게 보호벽을 세워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엄마이기 때문에 지워진 멍에라면 차라리 맞붙어 거뜬하게 해치워 보이고 싶은 것이 옹골찬 결심이었다. 


 결코 감상적인 모성애에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두 아들의 사이에서 똑같은 평형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 바라는 전부였다. 잠을 못 자서 짓무른 눈이 유난히 시고 따끔거렸다. 바람마저 으스스 옷소매를 파고드는 것 같더니 무언가 얼굴에 와서 선뜻 내려앉는다.


 고개를 치켜든 ‘숙’의 환희 “아, 눈! 첫 눈이 온다.” 잿빛 하늘에 하나 둘 점을 찍던 눈은 순식간에 기다란 줄을 어지럽게 그어대며 펑펑 함박눈을 퍼부었다. 이제 겨우 11월 초순인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만 내리면 온전한 정신으로는 앉아 배기기 어렵던 고향에서의 첫눈. 목적도 없이 눈 내리는 거리를 방황하며 하잘것없는 감상을 부풀리어 슬픔처럼 뿌리고 다니던 그 눈길. 그 하늘에 비해 너무도 공허하고 아득하고 삭막하였다. 걸음을 멈추고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앞에 따스한 햇무리처럼 비치는 영상. 어머니.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떠나 온지 이제 5개월. 수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 시간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무상의 한 오리 실 끝에 불과하지만 지금 이 순간 어머님만 만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모든 것은 다 보상받고도 남을 것 같았다. 어머니라면 멋대로 불어 닥치는 눈바람 속에서도 내 삶의 실타래가 헝클어지지 않게 풀어줄 능력이 있을 것이었다. 


 아직도 털이 노랗게 보송보송한 병아리 한 마리가 어쩌다 산새들 틈에 끼이게 된 듯, 이곳 미국의 생활은 귀가 울리고 멍멍할 지경으로 어지러웠다. 지난여름 함께 다니셨던 봉은동과 북아현동 고갯길을 혼자 걸으시며 우신다는 어머니. 그 고갯길에도 이처럼 눈이 내리면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은 얼어서 고드름이 될까.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바로 어제 편지를 받았으면서도 또다시 소식이 기다려지는 외로움의 나락으로 깊이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아들을 또 순산했다니 손 귀한 댁에 그런 홍복이 어디 있겠느냐, 정말 그 기쁨을 이로 다 표현할 길이 없구나. 여자의 일생은 자식 기른 표밖에는 남는 것이 없단다. 집안일이야 하고 또 해도 죽을 땐 그래도 못 다하고 남는 것이 여자들 살림이라니, 살림은 좀 두었다 하고 애들 형제 훌륭하게 키우도록 하여라.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게 ‘태영’이다. ‘태영’이 꿈을 꾸는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을 진정할 수 없게 보고 싶고 눈에 어른거려서 미칠 것 같지만 꿈에라도 자주 보았으면 좋겠구나. 낯선 곳에서 제대로 적응도 되기 전에 아우를 보았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서운하고 불만이 많겠느냐. 아무쪼록 ‘태영’이에게 잘 해주고 공부하는 남편 잘 보살펴 드리고 건강히 지내다 속히 돌아오도록 하여라.”  


 어머니. 제발 건강히 만 계셔주세요. 어머니의 편지를 떠올리노라니 그만 코끝이 찡해지며 눈이 아렸다. 자전거에 올라앉은 채 흰 눈에 도취되어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영’을 와락 끌어안고 볼을 비벼댔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도 아들들은 내 손으로 훌륭히 키우고 말테다.” 바람도 없는 회색 거리엔 함박눈이 점점 기세를 더하며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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