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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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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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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아이 구. 좀 일찍 온다는 게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늦었군요. 미역국이라고 조금 끓여 왔는데 맛은 없겠지만 아직 따뜻하니까 어서 드세요.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사람은 이런 때 미역국이 제일 좋지요.”  


 미시스 ‘황’은 절대 무리하지 말고 될수록 많이 쉴 수 있는 방법을 택하라면서 “제 몸은 제가 아껴야지 남이 어떻게 못 해 주는 거에 요.” 조언하고 돌아갔다.
 ‘참 복 받을 사람들이야. 그 분들. 틀림없이 복을 많이 받을 거야.’ 몇 번을 되뇌며 감사했다. 


 봉투에는 찜통만한 커다란 냄비에 찰랑 찰랑 담긴 미역국과 밥 한통, 김치 두 병이 들어있었다. 며칠간은 세 식구가 그것만 데워서도 포식을 할 수 있었다.
 먹는 것 못지않게 긴급한 것은 부족한 잠이었다. 소독세제에 담갔다가 중성세제로 정성 들여 빨아도 갓난아기들은 기저귀발진(Diaper rash)으로 고생하였다. 밤에도 서너 번씩 깨어서 울어대는 갓난 애기 때문에 잠을 설치고 나면 낮에는 ‘영’이까지 붙어서 뱅뱅 도니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다만 몇 시간만이라도 다 잊고 푹 잘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점점 눈이 아물아물하고 눈가가 짓무르고 허리가 아파서 구부릴 수가 없었다. 이층으로 지하실로 오르내리다 보니 나중엔 계단 오르기조차 힘이 들었다. 


 “낮에 낮잠이라도 좀 자도록 하지.” 보다 못해 안쓰러워 한마디 던지지만 부화를 지르는 불쏘시개 노릇 밖엔 할 수 없었다.


 “집에만 있으면 다 편하고 한가로운 줄 알아요? 낮잠을 자게.” 뾰족하니 쏘아붙인 ‘숙’은 말없이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훈’의 눈과 마주쳤다. 밤낮없이 외국인들 틈에서 경쟁을 해야 되는 아빠도 신경이 팽팽하게 긴장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새벽에 나가서 한 밤중에 들어오고 주말도 없고 휴가도 없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심신이 가라앉고 만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소스라치게 놀라 깨는 아빠는 집에 와도 제대로 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아빠께 도움을 달라고 불평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채찍일 터였다. 


 “아빠가 좀 올라가서 자요.” 


 아기 기르기는 엄마의 전업이다. 괴로움은 나 혼자로도 족하다. 아빠에게 까지 미치게 할 수는 없다. 단단히 각오를 하는데도 현실은 온 가족이 다 매달려서 맴을 돌아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현’이 출생하고 다음 주부터 운전학교가 시작되었다. 걸어서 40분간 걸리는 학교에 가서 두 시간씩 일주일에 2일간 2개월을 해야 되는 야간 코스였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나 귀가 떨어지게 추운 날은 날씨 때문이 아니더라도 눈물이 절로 고일 지경이라고 했다. 


 운전학교 수업이 있는 날엔 떠나기 전에 빨래를 전부 세탁기에 넣어 가동시켜 놓고 학교에 갔다가 11시가 지나서 돌아와서는 지하실이 거의 찰 만큼 많은 빨래를 줄에 하나하나 핀으로 꼽아서 널었다.


 애들을 재우러 올라가서 그대로 쓰러지고 마니 미안스럽기가 한이 없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1시 2시가 넘어야 눈을 부치는 그가 얼마나 피로하겠는가. 


 어쩌면 ‘숙’도 ‘훈’도 이제야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는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때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수업을 쌓고 있는 듯 이상한 생각도 들지만 신기하게도 그것은 언제나 가족을 이룬다는 잘 조화된 협화음을 만들어 내곤 하였다. 집에만 오면 싱글벙글 기분이 좋았다.


 “어. ‘영’이야 아빠 왔어” 밖에서 놀고 있는 ‘영’이부터 불러 들여서 한 번 번쩍 치켜 들어주고는 정해진 것처럼 유모차 속에서 자는 ‘현’에 게로 간다. 침실이 이층이라 수시로 오르내리기 불편하여 낮에는 ‘낸 시’가 가져다 준 유모차 속에다 재웠다. 


 우유를 배불리 먹은 ‘현’은 대개 이때쯤엔 깊은 잠이 들어 있었다. 양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서 입을 오물거리고 자고 있는 갓난아기는 누구라도 예쁠 것이다. 엄마가 애써 재워 논 ‘현’의 볼을 쿡쿡 찍어 보고 눈앞에다 손가락을 흔들어 보기도 해서 기어코 자던 애를 깨워 놓는다. 끔뻑 끔뻑 눈만 뜨면 부리나케 안아 일으키면서 “어. ‘현’이 벌써 다 잤니.” 한다. 


 “아유. 금방 재워 놓은 걸 또 깨웠네.” 엄마가 기겁을 해도 소용이 없다. 들어 올려 두어 번 흔들어 대고는 안고 올라간다. 기껏해야 한 10분. 으레 ‘현’이 우는소리가 나고 쿠당탕 거리며 내려오는 발소리가 난다. “마미야. 이놈 울어.” 유모차에 도로 눕혀놓고 물러난다. 


 울지 않는 애는 예쁘고 울면 질색하고 엄마에게 떠맡기는 아빠의 애보기이다. 그래도 그게 애기를 귀여워하는 표현이니 나무랄 수는 없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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