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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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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17)-미국생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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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뜨자 첫 눈에 들어오는 파란 천정이 공연히 서러운 생각을 몰고 왔다. 타향의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깨었을 때 그곳이 제집인양 지녔던 편안한 만족감이 불시에 깨어지는 실망감에서 번져오는 그런 서러움이었다. 닥터 ‘게일’네서의 첫 날 아침엔 별로 그런 느낌이 없었다. 그것은 시야에 들어오는 여러가지 변화가 새로운 도전심을 유발하는 흥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 텅 빈 공간. 푸른 벽, 푸른 문 그리고 푸른 천정 외엔 도대체가 아무것도 없었다. 시야에 색다른 것이 띤다면 노랗게 반짝 반짝 윤이나는 둥근 문손잡이와 핑크색 전등갓이 전부였다. ‘게일’네 농장에서 옮겨다 놓은 구식 철제침대에 매트리스도 없이 박스스프링만 깔고 세 식구가 담요 한 장을 덮고 잔 방안은 썰렁하니 냉기마저 도는 듯했다.


 “엄마. 우리 집에 아무것 두 없어. 엄마 두 내려가지 마.” 


 이게 우리 집이냐며 신이 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던 ‘영’이 풀이 죽어서 올라왔다. 


 “그래? 어디 엄마하구 같이 가보자.” 


 그때까지 천정만 보고 누워 있던 아빠도 부스스 일어나 따라 내려왔다. 커튼도 없이 훤한 거실의 창문으로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칠이 벗겨지고 먼지가 버스럭거리는 마룻바닥을 환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우선 무얼 좀 먹고 여길 좀 닦아 내야겠군.” 


 어제 떠나올 때 ‘낸시’가 싸준 종이봉투를 열어 빵과 오렌지주스를 꺼내 찬마루 위에 펼쳐 놓았다. 좁은 부엌에 선채로 그것들을 집으며 마주 바라보는 마음엔 그저 막막하다는 생각만이 가득 고였다. 이 정도까지는 미처 예견치 못했었다. 그저 막연히 아무것도 없는 살림을 시작하리라는 각오뿐이었다. 


 떠나오기 몇 달 전 친정집에 가 있은 때를 제외하곤 내내 시집에서 살아 온 두 사람에겐 처음으로 가지는 ‘우리 집’이며 새 출발이었다. 


 ‘게일’네에서 지낸 보름간의 생활이나 그간에 만났던 여러 가정의 환경들은 지금의 현상을 조금도 염두에 두게 하지 않았다. 있을 것 다 갖추고 정리된 편안한 생활은 발길이 닿는 어느 곳에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불현 듯 절망감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다.


 이걸 다 무엇으로 채우지? 소파니, 테이불이니, 커튼이니 그런 것은 나중문제였다. 당장 밥을 담아 먹을 그릇이 없고 수저 하나 없는 빈집이었다. 물 끓일 주전자 냄비하나 없는 처지이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서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것들을 다 무슨 수로 장만할지 까마득하기만 하였다. 털석 주저앉고 싶은 심정인데 어디에 가 앉을 것인가 절망이 슬금슬금 울화로 끓어올랐다. 


 어떻게 수저 하나 없이 가족들을 오라고 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가족이 도착하기 전에 생필품 몇 가지는 준비했어야 될 것 아닌가. 무작정 데려다 놓고 ‘당신이 다 알아서 해요’라는 것인가. 아무리 외아들로 자라긴 했지만 이건 너무하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불평이 점점 절망을 부풀리고 있었다. 툭 건드리면 울음보가 터질 지경이었다. 


 차를 빨리 사야 될 텐데... ‘훈’의 혼자소리에 그만 정신이 아찔하였다. 차가 없다는 것은 발이 없다는 말이나 같다. 빈집에 이대로 감금이 되었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만 저도 모르게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얼른 주먹으로 볼을 훔치며 돌아섰다. 


 남편이 있고 ‘영’이 있고 내 집이 있는데... 잠시나마 억눌렸던 못난 생각을 털어버리듯 쿵쾅거리며 이곳저곳 문을 열고 살펴보았다. 부엌 옆으로 난 층계를 내려가니 지하실은 곧장 차고가 되어 뒷길로 면하게 되어있었다. 


 앞으로는 이층, 뒤로는 삼층인 침실 두 개의 타운하우스는 꽤 넓은 집이었다. 차고 한편의 빨랫간을 들여다보니 차를 닦을 때 썼는지 커다란 스펀지 두 개가 있었다. 우선 그것으로 비누도 없이 맹물로 집안의 먼지를 닦아내기 시작하였다. 부엌으로 화장실로 청소를 하고 다니는 사이 ‘훈’은 와이셔츠소매를 걷어 부치고 마룻바닥을 닦느라 땀을 흘렸다.


 “어 저기 미스 ‘다스튼’이 오네.”


 열려진 창문으로 커다란 상자를 든 비서 할머니가 종종걸음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하이! 미스 ‘다스튼’.” ‘영’이 뛰어가 문을 열었다. 


 “헬로우 모두들 안녕하세요? 아이 구. 부지런들도 하시군요. 필요할 것 같아서 좀 가지고 왔는데 닥터 ‘비숍’하고 닥터 ‘봔더빌트’댁에서 주신 것들도 함께 가지고 왔어요.”


 ‘훈’과 미스 ‘다스튼’은 차에 가서 커다란 상자를 두 개씩이나 더 갖다 놓더니 학교에 잠간 다녀오겠다며 같이 차를 타고 떠났다. 


 “갔다 와서 풀 테니까 그냥 좀 쉬고 있어.” 


 차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섰던 ‘영’이 부리나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엄마 이거 뭐야. 우리 풀러 봐 이거.”


 숟가락, 포크, 나이프, 냄비, 주전자, 자잘한 부엌기구가 한 상자. 유리컵, 파이렉스, 중탕냄비, 찻잔세트, 접시 등 그릇이 두 상자. 그리고 나머지 상자에는 침대보, 이불보, 식탁보, 베갯잇, 크고 작은 타월 등이 수도 없이 들어있고 앞치마까지 들어 있는 상자에는 새 담요가 두 장, 이불들이 나왔다. 히야! 그대로 하늘에라도 날아오를 듯이 기뻤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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