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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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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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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속을 돌아다니며 커튼을 활활 젖히더니 창문을 전부 열어놓았다. 걷는 대로 삐거덕거리는 마룻바닥엔 양탄자가 깔려 있고 부엌바닥은 하얀 리놀륨타일이 반듯하게 깔려 있어 깨끗하였다. 전기스토브, 냉장고 작은 펌프가 달린 개수대 등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침대와 거울달린 옷장이 있는 침실이 두 개, 머리맡 탁자 위 램프는 먼지를 쓰고 있었다. 응접실엔 두꺼운 천으로 덮개를 씌운 응접세트들이 정한 자리에 단정히 놓여 있어 밖에서 보기보다 안은 그래도 덜 을씨년스러웠다. 


 ‘닥터 ‘쏭’ 일좀 할래요?’ ‘게일’이 차에 싣고 온 식료품들을 내리며 ‘훈’ 을 불렀다. 


 ‘그러지요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랐는데.’ ‘게일’이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둘은 밖으로 나갔다. 침실에 들어간 ‘낸시’가 수건을 꺼내다 머리에 쓰더니 어딘가에서 청소기를 들고 나와 부~웅~붕 집안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털어 내었다. 


 때맞추어 밖에서는 그르릉~ 그르릉~ 잔디 깎는 기계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젖은 걸레로 가구의 먼지를 닦으며 속으로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놀기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어떤 일이 닥치던 끄떡없이 팔소매를 척척 걷어 부치고 해결해 내는 강인한 저력은 처음 농장을 들어 설 때의 놀라움보다 더욱 강하게 덮쳐왔다. 


 이런 구석까지, 이처럼 허물어져 가는 목조건물에까지 생활의 기본 기구는 모두 갖출 수 있는 생활수준의 우월성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대지를 갈아서 곡식을 일구고 그 대지위에 문화를 건설한 이들은 일만 하면 먹을 수 있고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교훈이 필요 했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일해도 허기를 면할 수 없는 가난한 내 조국은 무엇을 축복받지 못한 민족일까 생각할수록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수지 인제 여기 와서 손 씻고 우리도 고만 나가 봅시다.’


 ‘낸시’가 마루 벽장을 열어 수건 하나를 건네주었다. 우울한 생각을 씻어 버리듯 손을 비벼 씻고 나와 보니 바깥세상은 완전히 딴 세상으로 달라져 있었다. 화단의 잡초와 거미줄들이 말끔히 떨려나간 건물 앞에서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며 펼쳐 내려간 언덕 저 멀리까지 푸른 잔디가 깨끗이 깎이고 잔디풀 냄새가 상긋하니 전원의 대기를 채워주고 있었다.


 헛간에서 꺼내온 등의자들이 둥글게 늘어선 가운데에 비닐상보를 씌운 피크닉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러닝셔츠 바람의 두 남자들이 땀을 식히며 맥주와 콜라를 마시면서 한담을 즐기고 바비큐 화덕엔 어느새 커다란 냄비에서 옥수수가 삶아지고 있었다. 


 ‘엄마’ ‘마미’ 그새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두 꼬마들이 집 뒤쪽 숲에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엄마 이것 봐.’ ’영‘이 한손을 불쑥 내밀었다. ‘아니?’ ‘영’의 얼굴은 한 개의 오디열매 같았다. 얼마나 따 먹었는지 입 가장자리는 짙은 보라색 오디물이 수염을 그려 놓았고, 셔츠니 바지니 할 것 없이 오디물이 얼룩덜룩한데 손엔 움켜쥐고 뛰어서 터진 오디열매가 한 줌 들어 있었다. 


 ‘낸시’가 맥주병을 치켜 보이며 미소를 보내왔다. 마주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저었다. 청소를 하고 난 뒤라 의자에 앉으니 나른하니 또 졸음이 오려고 하였다.


 피크닉 테이블 위에서 감자튀김 한 봉지를 집어 들고 잠을 쫓기라도 할듯 벌떡 일어났다. ‘농장 구경이나 좀 하겠어요.’ ‘오 좋아요. 같이 갑시다.’ ‘낸시’가 따라 일어났다.


 집 뒤 전나무 울타리를 돌아가니 어디까진지 끝을 알 수 없는 울창한 잡목 숲이 계속되었다. 사 그 라~ㄱ, 사 그 라~ㄱ 바람소리가 나뭇잎을 스치며 지나가는 숲 속엔 햇빛마저 들어오기를 꺼리는 듯 축축한 냉기가 목을 움츠리게 하였다. 


 끼 액- 끼 액- , 똑 또그르르 이름도 알 수 없는 산새들이 지저귀는 숲을 한참 가로질러 가니 숲이 다한 듯 확 터진 들판이 나오고 돌 돌 돌~ 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냇물 건너엔 받침대를 제대로 매어주지 않아 포도넝쿨들이 아무렇게나 얽혀있는 비틀어진 포도나무에 알맹이가 머루처럼 닥지닥지 달려 있는 포도원이 나왔다. 


-하 하 저걸 포도라고 가꾸었나.-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그대로 발을 옮겨놓았다. 냇물을 따라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다 몇 개의 디딤돌을 딛고 냇물을 건넜다. 냇물을 건너니 열매가 너무 작아 꼭 능금만한 사과들이 땅에까지 휘어지게 달린 사과나무들이 여기 저기 듬성듬성 서 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정성들여 가꾼 흔적은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황폐한 농장, 과수원이었다. 옆에서 걷는 ‘낸시’도 작물에 대한 안타까운 표정은 전혀 없고 그저 싱그러운 저녁 한 때를 산보하는 여가를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조금만 손을 봐 주었으면 저렇지는 않을 텐데... 또 숲이 나올 모양이었다. 몇 백 에이커나 되는지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 하였다. 이제 그만 돌아가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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