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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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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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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영’을 데리고 조심조심 층계를 내려 왔다. 돌아가신 부친이 의사였던 닥터’거트너’는 초등학교 선생인 부인 ‘낸시’와 어린 아들 하나를 데리고 넓은 집에서 여유롭게 살고 있었다.

 

 ‘마미. 코리아에서 온 그 보이 아직도 자?’

 

 돌연 뒤뜰 쪽에서 어린 사내아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밤엔 너무 늦어서 ‘숙’의 일행을 기다리다 먼저 잤다는 이 집 아들은 아침 내내 ‘영’이를 기다리고 있은 모양이었다.

 

 ‘오우 여기 내려오시는군. 굳 모닝 ’수지‘ 잘 잤습니까?’

 

 ‘네 이렇게 늦게까지... 그런데 어디들...?’

 

 ‘아 학교에 갔습니다. 요즘은 방학 중이라 더워지기 전 새벽에 나갔다가 일찍 돌아오지요.’

 

 ‘아 그래요’ 미국인의 부지런한 생활태도에 새삼 감탄하였다.

 

 ‘마미 이 보이 이름이 뭐야?‘

 

 엄마 곁에 붙어 서서 수줍게 웃고 있던 사내아이가 조그만 소리로 물었다.

 

 ‘오우 내가 그걸 잊었군. 이게 내 아들 ’제프리‘ 입니다. 이제 네 살이지요. 

 

 ‘당신의 꼬마는 이름이 뭐지요?’

 

 ‘태영’입니다. 두 살이고요.‘

 

 ‘타이요옹?!’

 

 

 몇 번이나 웅얼거리는 ‘제프리’의 발음에 그만 웃고 말았다. 제 이름을 우습게 부른다고 까르르 웃던 ‘영’은 어느새 ‘제프리’와 어울리더니 두 꼬마는 제각기 소리를 지르며 온 집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함께 놀았다.

 

 

 ‘낸시’는 커피 한 잔에 팬케이크 한 쪽으로 아침을 마치더니 장보러 간다고 나갔다. 차고에서 차를 꺼내더니 손을 흔들며 시원스레 달려 나가는 ‘낸시’를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자가 운전을 하다니-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혼자가 된 ‘숙’은 무료해졌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서 묵은 잡지를 뒤적여 보기도 하고 TV를 틀고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 보지만 그것들은 여기가 미국이라는 생소함과 거리감만 더 크게 해주었다. 일어나서 서성거리며 뒤뜰을 내다보았다.

 

 

 파랗게 깔린 잔디가 참 싱싱하고 아름다웠다. 한 낮이 되면서 뜨거운 지열이 숨 막히게 달아오르고 후줄근한 풀잎들은 권태롭게 그리고 피곤한 졸음을 몰고 왔다.

 

 

 -그런데 이 꼬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주스 한잔 마시고 과자 한 개씩을 집어든 애들이 식당을 빠져 나간지가 한참 되었는데 소리가 없었다.

 

 ‘태영아-’ ‘응’ 대답은 들리는데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제프리-’ ‘예스, 여기 있어요’

 

 소리나는 쪽으로 다가가며 문들을 열어 보았다. 부엌 옆의 조그만 문을 여니 지하실로 내려가는 긴 층계가 나왔다. 그곳에서 애들 노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하 지하실에 있었구나.-

 

 지하실에 내려갔을 때 앞에 벌어진 광경은 입을 다물 수 없게 하였다. 유리창으로 햇빛이 환하게 내려 쏟아지는 지하실엔 스프링이 달린 타는 말, 건전지로 움직이는 큰 기차, 자동차, 로봇, 카우보이모자, 총, 옷, 구두, 화살, 게임 도대체 발을 떼어 놓을 수 없이 빽빽한 장난감들 속에서 둘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놀고 있었다.

 

 

 -이게 모두 다 한 아이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동경 ‘미쓰비시’ 백화점에서 잔뜩 쌓인 장난감들을 보고 놀랐던 자신이지만 이건 도대체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인디언 인형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구슬로 맞추느라 혀끝을 빼어 물고 열중해 있던 ‘제프리’가 손등으로 코끝을 비비며 싱긋 웃었다. 초록색 눈이 크고 속눈썹이 길어 참 귀여웠다.

 

 ‘내가 한번 해 볼게.’ ‘영’이가 갑자기 ‘제프리’의 손에서 구슬을 뺏어가며 소리쳤다.

 

 ‘홧. 오 오케이. 오케이. 너 해 봐.’

 

 둘이는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도 용케 잘 알아들었다. 이것저것 장난감들을 만져보다가 다시 위로 올라왔다. 어디에다 몸을 가져다 놓아야 할지 알 수 가 없었다.

 

 라일락 향기가 풍기는 리빙룸 소파는 앉기엔 너무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박물관 구경을 하듯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니며 벽에 걸린 사진이며 장식품들을 드려다 보았다.

 

 지난 몇 개월간 모든 일상의 초점을 맞추고 동분서주하며 열망하던 곳, 과연 이곳이 미국인가? 모든 젊은이들의 꿈을 무지개같이 펼쳐줄 신비의 나라, 누구나 가기만 하면 금 면류관을 쓰고 나오는 동화의 나라일까?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아서 다시 뒤뜰을 내다보았다. 칠월 한낮의 뙤약볕이 이글거리는 미국은 들려오는 소음이 달랐다.

 

 좁은 골목까지 누비는 생존경쟁의 아우성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쇠 소리였다. 그것은 대자연의 행진곡이었다. 웅대하고 자신 있는 문명과 자연의 오케스트라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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