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hokim
김종호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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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다 간 천성의 자연인-고 이 완식님의 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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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친구 이완식 군이 휴가중 2018년 12월 11일 영면에 들었다. 태양이 내려 쬐는 섬, 성난 푸른 바다, 그 바닷가에 나가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불행하게도 비극을 맞은 것이다. 친구야! 이 무슨 날벼락인가. 뜻하지 않은 일로 자신은 물론 온 가족과 함께 했던 동료들을 슬픔에 빠뜨렸다. 


어이 이런 믿기지 않는 일이, 그것도 즐거워야 했던 휴가지에서 일어나 푸른 바다를 원망하고, 하늘을 쳐다보고 통곡을 하고 눈물을 흘려도 그의 영혼은 한 움큼의 흰구름이 되어 영영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친구여,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뒤에 두고 어떻게 그리 무정하게 떠났느냐.


 천상병 시인이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읊었듯이, 그는 한국에서 25년을 살고 52년 간을 해외에서 소풍을 보내다 하늘로 돌아갔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을 만난다. 돌아보면 그중 오늘의 나를 있게 하고 앞으로의 나를 만들 특별한 인연들이 있다. 사실 나는 이완식군의 젊었던 한국시절을 잘 모른다.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에 진학한 것밖에. 대학졸업을 1년 남겨두고 독일로 가서 광산에서 3년 동안 고생을 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졸업을 하고 캐나다에 정착한 것이다.


 내가 이완식군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알고 지내게 된 것은 아무래도 1978년 무렵 캐나다 독일동우회가 창립되면서부터라고 하겠다. 그 전에는 가끔 우연한 장소나 공식적인 모임에서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아직 낯설어 먼 발치에서 인사를 보내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것이 동우회가 창립되면서부터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월례회를 갖게 되었고 자연히 이제껏 어렵고 멀리만 하던 동우회 친구들과 가까이 한 자리에 어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한 월례적인 모임은 영우회를 시작하면서 서먹하던 동료들 사이를 비교적 가깝게 했으며 어느덧 심리적 거리를 좁히면서 친교가 시작된 것이다. 


클럽링크에 함께 들면서 특히 살아온 길이 비슷하기에 세월이 흐르면서 정이 들어 떨어질 수 없는 형제나 다름없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는 지식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고 인품은 매우 대범하고 통이 큰 기질을 천성으로 타고났다. 


경제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보통 사람들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을 벌리기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즉 80년 대 경제 호황기에 회계사인 월급쟁이 생활을 하면서 집을 7채나 한꺼번에 사들여 재미를 보기도 했다. 지금은 정리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큰 사업체를 두개나 가지고 있었고 항상 활동적이고 바쁘게 살았다.


 어느 모임에서나 좋은 분위기이면 몇 잔의 독한 술의 실력을 과시하며, 여흥에도 서슴지 않고 춤과 멋진 노래 솜씨로 한몫 낀다. 매너에서 볼 때 그는 얼마간 거칠고 직선적이며 어디서나 서슴지 않고 직언도 하는 전혀 꾸밀 줄 모르는 천성적인 자연인이었다. 누구하고나 쉽게 가까워지며 따뜻한 인정과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고, 아무리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도 끝까지 미워하지 못하는 약한 일면도 지니고 있었다.


 우리들은 주말이면 부부동반 골프 라운딩을 하고 세계 곳곳을 찾아 여행도 함께 많이도 했다. 바둑을 좋아해서 시간이 나면 한 수 뜨자고 독촉하던 그대의 목소리가 아직 환청으로 들려온다. 이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오호 통재라! 그대가 없는 자리에는 술맛도 나지 않고 이야기도 흥이 오르지 않을 것이다.


 친교를 맺은 지 40여 년, 이 척박한 땅 각박한 세파에서도 변함없는 정을 나누었던 그대, 어이 이리 황망히 우리들의 곁을 떠났는가. 아무리 원망을 하고 한탄을 해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니 그저 애절한 눈물만 흐르고 떠나간 그대가 그리워 온다.


 모든 생물에는 한계가 있듯이 우리 인간도 한계를 지니고 사는데, 그것이 바로 죽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며 삶을 완성시키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망은 삶의 본질에 깔려 있다. 살기를 원하면서도 죽음으로 가는 길, 그것이 인생이다. 


죽고 나면 인간의 오욕칠정도 부귀도 영화도 꿈도 희망도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인 동시에 너와 나의 헤어짐이다. 이별 없는 인생이 없고 이별이 없는 만남이 없듯이 살아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죽음이 오고 만나는 자는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정든 가족, 정든 친구, 정든 고향, 정든 물건과 영원히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고 슬픈 일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것이다. 죽음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인간실존의 운명적 한계상황이다. 그래서 누구나 죽음 앞에 서면 숙연해지고 진지해진다.


 만리를 간다는 좋은 사람의 향기를 가진 그대, 내가 사랑했던 친구여! 그렇게 훌적 떠나는 것을 상상도 못했기에 그대를 잃은 아쉬움은 자꾸만 깊은 원망으로 가득차 눈물만이 흐른다. 사랑했던 친구여 이승에서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그대 간 곳이 멀고 먼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이승의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부디 편히 쉬소서. (201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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