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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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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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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2
체코 공화국(Czech)(하)

 
 

 (지난 호에 이어)


프라하 (Praha, Praque)


 동유럽의 보석 같은 프라하는 고색창연한 건물과 보헤미안의 낭만이 어우러진 체코의 수도이며,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프라하를 상징하는 말들을 보면 “연인들의 도시” “동화의 나라” “그림 속 풍경” “낭만의 도시” “봄의 상징” 등 그야말로 환상과 동경이 그대로 묻어난다.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답게 중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도시다. 또한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등의 대작곡가와 문호 카프카를 배출한 도시로, 역사와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가장 큰 매력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도심은 천년 역사의 건축 박물관 같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19세기에 복원된 것들, 그리고 아르누보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놀랍게도 20세기까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이 역사적인 도시 중심은, 강 서쪽의 성주변과 강 동쪽의 구시가지와 웬체슬라스 광장으로 나뉘어지고 카를교가 이 사이에 걸쳐 있다. 보행자 위주로 되어 있으니 이 최고의 도시를 여행하는데 걷는 것 이상 좋은 수단은 없다. 좀더 멀리 걷다보면 상점과 카페, 박물관, 극장 등이 즐비한 신시가에 이르게 된다.


 신화적인 프라하가 태어나게 된 비세흐라드, 홀레소비체, 스미코프, 트로야 등이 그 곳에 있다. 최소 12개가 넘는 중세의 성들은 모두 한나절이면 여행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프라하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예술이다. 클래식에서 모던 재즈와 록, 오페라와 발레, 아방가르드 극장, 훌륭한 박물관, 수많은 예술 화랑들.


 중세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거리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프라하 성 등 다양한 역사 문화적 볼거리를 가지고 있고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16곳에 이른다. 


특히 고색찬란한 건물과 보헤미안의 낭만이 어우러진 수도 프라하는 전 세계인들로부터 사랑 받는 곳이며, 낭만적인 카를 다리, 블타바 강과 프라하 성, 성 주변의 낭만적인 거리, 성당 종소리를 들으며 걷는 옛길들… 그림 같은 프라하의 야경과 풍경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프라하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구시가지 광장에 도착했다.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예술적인 건물들이 도시의 균형을 잡아주며, 그 건물의 붉은색 지붕들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한 편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을 내려다보면 전 세계 장인들이 정성스레 짠 것 같은 작품 같은 타일들이 짝 깔려 있었고, 그 위로는 각각의 특색을 지닌 여러 거리 예술가들과 다그닥 다그닥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몇 대의 마차가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꿈과 낭만을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프라하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카를교다. 프라하를 관통하는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유서 깊은 이 다리는 만들어진지 600년이 넘었다. 강 서쪽의 왕성과 동쪽의 상인 거주지를 잇는 최초의 다리다. 전체 길이는 약 520m이다. 


다리 양쪽에 15개씩 늘어서 있는 성경 속 인물들과 체코 성인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다리에 조각해 놓은 성인들의 모습에는 그 나름의 이야기들이 있고 전설이 있다. 무엇보다 조각상의 정교함이 남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리 동쪽 입구에 있는 탑에 오르면 프라하 성과 블타바 강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카를교를 건너며 프라하 성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프라하의 상징이며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성이다. 체코의 왕들과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이곳에서 통치를 했으며 현재는 체코 공화국의 대통령 관저가 자리잡고 있다. 

 

 

 

 

 

 프라하 구 시가지의 블타바 강 맞은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프라하 성은 길이 570m, 너비 128m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되다 13세기에 고딕양식이 추가되었고 그 뒤 다시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되면서 현재의 독특한 모양으로 완성되었다.


카를 4세 시대에 완성되기까지 90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상상하기 힘든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섬세한 매력과 웅장한 매력이 함께 공존하는 체코 최고의 건축물임에 틀림없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성인 프라하 성의 인상적인 성벽과 당당한 요새의 풍채는 수 세기 동안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보여주는 듯하다. 


 프라하를 출발 체코의 최대 와인산지 중의 하나이며 모라비아 지방의 중심도시인 올로무츠까지 오는 4시간 동안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녁에는 새로 건축된 현대식 호텔 Olomouc Congress에 체크인을 했는데, 같은 시간에 오스트리아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필자는 반세기 전에 독일에서 5년동안 살면서 일도 하고 대학에서 공부를 했는데 독일 말을 다 잊어버렸는줄 알았는데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1주일 지나니 신기하게도 그들과 대화할 수 있어 나도 놀랐다.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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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체코 공화국(Czech)(상)

 
 

 체코 공화국은 중앙유럽에 위치해 있다. 인구 1067만을 가진 체코는 북서쪽은 독일, 남쪽은 오스트리아, 남동쪽은 슬로바키아, 북동쪽은 폴란드와 닿아 있다. 체코인은 꾸밈없고 온순한 사람들로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에서 폴란드인과 헝가리인까지, 자유로운 모습에서 엄격한 전통적인 모습, 또 세계화된 사고방식에서 지독한 국수주의까지, 가장 큰 교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이고 작은 나라치고는 놀라우리 만치 광범위하고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모습을 갖고 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벨벳 혁명으로 불리는 1989년 민주화 운동을 거쳐 공산주의 체제를 마감하고 자유민주주의로 전환하고 있는 민족성이 강한 나라이다.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탓에 보헤미아 왕국,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하고 화려한 문화적 전통을 갖게 되었다. 


 북서부 보헤미아 일대는 유럽에서 뛰어난 온천수가 솟는 온천이 많으며, 동부 모라비아 지방은 다뉴브 강의 지류가 흘러 농지가 발달해 있으며, 고성이 점점이 흩어진 아름다운 대자연을 배경으로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등의 체코 민족주의 음악이 꽃핀 곳으로도 유명하다.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오스트리아의 린츠(Linz)를 출발, 197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까지 약 70km, 1시간 20분이 걸렸다. 동유럽에는 어느 나라이던지 산지보다 농경지가 국토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들판 전체가 노란색의 유채꽃으로 덮여 있다. 


가이드에 따르면 유채꽃은 밀원식물로서 식용유로 많이 소비되고, 또한 공업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노란 유채꽃이 끝이나면 하얗게 덮인 알프스의 아름다운 경치, 아니 무아의 경지에 한 폭의 그림을 내 눈동자에 담고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를 찾은 나그네의 첫인상은 중세로의 회귀였다. 블타바 강으로 둘러싸인 요새풍의 외각은 아담하고 견고한 짜임새였는데, 그 안으로 나지막한 붉은색 지붕의 건물들과 좁은 마차길이 우리를 시간여행으로 인도해 준다. 


보헤미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인 체스키 크룸로프에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인 중심지가 잘 보존되어 있다. 프라하 성에 이어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이 성은, 말굽모양으로 흐르는 블타바 강을 내려다보며 언덕 위에 있다. 차가 없는 역사의 중심지는 르네상스와 바로크식 건물들이 늘어선 좁은 거리로 이루어져 매우 인상적이다.


 보헤미안 특유의 붉은색 지붕 건물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체스키 크룸로프는 옛 시간에 머물러 있는 마을, 낯선 풍경과 유럽치곤 적당히 만만한 분위기, 문화가 있으되 결코 까탈스럽거나 콧대 높지 않은 이 마을의 매력에 슬쩍 취해본다.


 

 


 
규율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감성이 이끄는 대로 방랑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두고 우리는 흔히 “보헤미안” 이라고 말한다. 이 단어는 문화 예술 분야는 물론, 패션이나 삶의 방식으로도 등장하며 이제는 하나의 스타일이자 장르처럼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 보헤미안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재미있게도 체코가 나온다. 


 보헤미안(Bohemian)은 “보헤미아 사람”이라는 뜻. 사실 보헤미아는 오늘날 체코 서부에 위치한 국가 이름이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묶이기 전까지 꾸준히 역사의 흐름 속에 머물던 보헤미아 왕국, 이곳엔 유랑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았는데, 프랑스인들이 이 집시를 두고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던 것이 오늘날 보헤미안으로 이어졌다.


 프라하의 이미지 덕분일까, 체코는 헝가리나 불가리아에 비해 “집시의 나라”라는 느낌이 비교적 덜하다. 자유분방한 집시 감성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기 보다, 로맨틱하고 우아한 귀족 도시같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러나 체코는 엄연히 보헤미아라는 뿌리 위에 꽃핀 나라고, 우리의 고정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특유의 감성으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여기, 보헤미안 감성이 살아 숨쉬는 마을, 그 마을이 중세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다.


 보헤미아 왕국을 전승하고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식사를 한다면 보헤미안 음식을 맛보는 것이 당연지사. 이곳 사람들은 그 옛날 보헤미아 왕국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전통적인 식사들을 재현하고 있다. 보헤미안 음식은 주로 수수, 귀리(Oat), 꿀, 달걀, 콩, 양배추, 버섯을 주재료로 사용하며 호밀빵이 주식이었다고 한다. 고운 밀가루가 아니라 거친 곡물을 이용한 음식이 특징으로, 식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조미료가 비슷하여 맛은 그대로 친숙한 편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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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30
유럽 여행기(3)-오스트리아(AUSTRIA)(하)

 

(지난 호에 이어)
헝가리에서 이어 온 Danube강은 여전히 여기도 흐르고 있다. 독일과 스위스 접경지대에서 시작된 이 강은 유럽 문화의 산실이며 젖줄로서 8개국을 구비구비 흘러온 산 역사의 증인으로 흑해가 그 종점이다. 


 중세의 낭만과 전통이 살아 있는 비엔나는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어 전 세계 여행자들이 동경하는 유럽의 대표적 도시이다. 특히 음악의 성지답게 다뉴브 강변을 끼고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어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왕조는 패망했지만 문화는 영원하다. 곳곳에 합스부르크 왕조의 찬란한 전통을 간직한 수많은 문화 유적과 현대적 도시가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흔적부터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스트라우스, 프로이드, 도나우 강, 빈소년 합창단, 알프스, 비엔나 왈츠, 비엔나 커피까지 한번쯤 들어봤거나 우리 삶에 녹아든 비엔나와 관련된 단어들이다.


 시내 관광은 게른트너 거리에서 시작한다.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부터 스태판 대성당까지 이어진 약 600m에 달하는 보행자 전용 거리에 유명 카페와 레스토랑, 부티크들이 늘어서 있고, 거리에서는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회를 광고하는 사람들도 많아 음악의 도시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구시가지의 중심에 위치한 St. Stephan 성당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사원으로 비엔나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137m 첨탑과 25만 개의 벽돌로 이뤄진 모자이크 지붕이 인상적이다. 343개의 계단을 이용, 73m 높이까지 올라가면 사원의 아름다운 지붕과 구시가지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성당에서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렸고 또 그의 장례식을 치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성당을 중심으로 가까운 거리에 쉔부른 궁전, 국립 오페라 극장, 벨베데레 궁전, 호프부르크 왕궁, 그리고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시설이 이 곳에 다 모여 있다.


 Schoenbrunn 궁전은 600년이 넘도록 통치한 과거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궁전으로 총 1441실의 방 중에서 현재 45실만 공개하고 있는데, 특히 6세의 모차르트가 연주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구혼했던 “거울의 방”이 특별히 볼 만하다. 50만 평에 이르는 그 대지와 궁궐은 1996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공원 안에 있는 동물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다.


 정원 끝 언덕에는 프러시아 전쟁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여 1775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세운 그리스 신전풍의 건물 글로리에테(Gloriette)가 있다. 지붕 위에는 황제의 상징인 독수리가 큰 날개를 펼치고 있고 다양한 조각이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비엔나의 거리와 숲을 배경으로 한 궁전과 정원의 전망이 일품이다.


 오스트리아의 요리는 독일 요리에 헝가리 요리가 가미되어 독특한 맛을 내며, 종류 또한 다양하다. 전통 요리로 비엔나 슈니첼(Schnitzel: 송아지 커틀릿)이 유명하며 굴라쉬(Gulasch: 매콤한 헝가리식 수프)와 다양한 소시지 요리도 먹어볼 만하다. 식사 전에는 와인을 한 잔 하는 것이 오스트리아식이라니 경험해 보는 것도 멋진 추억거리가 된다. 


 세계 음악의 수도이자 꿈과 로멘스의 도시, 비엔나의 마지막 저녁이 내리고 있다. 그렇게 기대했던 “Vienna Supreme Orchestra”의 클래식 연주회가 선사한 슈트라우스, 모차르트, 슈베르트 음악의 거인들이 작곡한 왈츠, 행진곡, 오페라, 상쾌한 폴카와 낭만적인 아리아는 비엔나에서의 특별한 선물이며 감동을 주었다. 이 환상적인 도시에서 행복과 낭만을 경험할 수 있는 진정한 마법의 밤을 선사했다.


 세계 제일의 문화국이라는 명성까지 오스트리아에 안겨준 오페라와 발레공연은 우리들에게 다시 찾아오도록 그렇게 아름다운 선율과 환상적인 곡들을 선사했나보다.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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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3
유럽 여행기(3)-오스트리아(AUSTRIA)(상)

 

 유럽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스위스, 이탈리아, 체코, 헝가리 등 여러 국가들에 둘러싸인 내륙국가로, 지리적으로 유럽의 동서와 남북을 연결하는 교차점에 해당되어 선사시대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국토의 2/3가 알프스 산지로 이루어진 인구 약 875만의 오스트리아는 게르만족 출신이 91.1% 언어는 독일어이다. 북부는 온대성 기후, 동부는 대륙성 기후, 서부는 해양성 기후로 지역에 따라 다른 기후를 지니지만 전체적으로 겨울을 제외하곤 온화하다.


 오스트리아의 서부가 산지라면 동부는 평야지역이며 대표 도시로는 수도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인스부르크, 할슈타트 등이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탄생시킨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일년 내내 크고 작은 축제들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알프스의 숲들과 함께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도시 곳곳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중세의 건물들에서 한때 전 유럽을 지배했던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그 밖에도 등산과 스키 등의 스포츠, 감미로운 와인과 비엔나 커피 등 다양한 즐길 거리들이 있어 언제나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나라이다.

 

잘츠부르크(Salzburg)


 독일의 뮌헨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모차르트로 유명한 잘츠부르크로 가는 길은 약 150km인데 2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이제 국경도 없다. 여권조사도 검문도 없이 그냥 통과한다. 중세의 향기가 가득한 낭만의 도시로 이어지는 동유럽 여행은 가는 곳마다 감동과 설레임을 던져준다.


 뮌헨 시내를 벗어나니 우측으로 나타나는 만년설과 구름이 연출하는 알프스의 풍광이 나그네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캐나다 록키의 설산은 신이 빚은 선물로 웅장하지만 알프스의 끝이없이 이어지는 설산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선물이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유럽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알프스 산맥의 1200km는 동유럽 각나라로 뻗어 있다.


 봄비가 내리고 있는 잘츠부르크의 첫 인상은 알프스 산자락의 신록과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이자 중세의 시간이 멈춘 듯한 동화 속 마을이었다. 바로크 풍의 중세 건물들이 고즈넉하게 줄지어 들어서 있고 잘자흐(Salzach) 강이 도시를 가로지르는데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구분되는 세계 문화유산의 작은 마을이다.

 

 

 

 

“소금의 성”이라는 의미의 잘츠부르크는 말 그대로 소금 위에 세워진 도시다. 중세시대 “백금”으로까지 불리우던 소금이 생산되는 소금광산을 보유한 잘츠부르크는 이를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지닌 도시로서 기름진 예술, 문화의 밑거름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금의 도시가 아니라 유럽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음악의 도시가 됐다. 

 

 

 

 

 잘츠부르크에 가면 골목 모퉁이마다 모차르트의 아리아가 흘러나와 누구나 쉽게 음악의 선율에 취한다.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Sound of Music”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유럽의 한가운데 있어 “유럽의 심장”으로 불리던 잘츠부르크는 오랜 기간 예술과 낭만의 교차로였다.


 한껏 피워보지도 못한 젊은 서른다섯 살의 나이에 져버린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고향이며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있는 곳,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가 바로 그곳이다. 한 명의 천재 음악가로 인해, 그리고 한 편의 영화로 인해 한 나라가 전세계인의 머리속에 뚜렷한 이미지를 남긴다는 것은 한없이 부러운 일이다. 그만큼 문화의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도 쉽게 국경을 초월하는 위대함을 지녔다. 


 잘츠부르크의 여행은 모차르트의 숨결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된다. 볼거리는 주로 구시가지에 집중되어 있다. 모차르트의 생가를 비롯해 음악제의 중심 무대인 축제극장, 잘츠부르크의 상징인 호엔 잘츠부르크 성 등이 주요 볼거리. 신시가지에는 미라벨 정원과 세계적인 인형극장인 마리오네트 극장이 볼 만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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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1
동유럽 여행기(2)-남부 독일(Sued Deutschland)(하)

 
  

(지난 호에 이어)


로텐부르크 Rothenburg


민속촌으로 유명한 타우버 강 위의 로텐부르크(Rothenburg ob der Tauber)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약 150km 버스로 2시간이 소요되었다. 중세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중세의 보석이라 불리는 로텐부르크는 산 위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리가 즐비하여 마치 중세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의 약 4할 정도가 파괴되고 소실되었으나, 완전하게 중세도시로 복원시켜 놓은 곳으로 오랜 시간을 뛰어 넘어 근세에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납작한 돌을 깐 아기자기한 구시가지와 성벽위로의 산책, 타우버 강을 따라 내려가는 하이킹도 즐길 수 있어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명성이 높다.

 

 

 

 

도시의 아기자기한 매력에 반해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로텐부르크를 찾는다고 한다. 유럽의 여느 중세 도시가 그러하듯, 도시의 중심부에는 St Jakobs 교회가 있는데 로텐부르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교회로 완성하는데 190년이 걸린 건물이라고 한다. 


독일 최고의 조각가라고 하는 리멘슈나이더의 성혈제단(Heiligblutaltar)이 이곳에 있다. 1505년에 조각된 이 작품은 각 인물의 섬세한 묘사도 걸출하지만, 특히 두 천사가 받치고 있는 금박의 십자가에 그리스도의 피가 들어갔다고 전해지는 수정이 박혀 있어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마크 광장 중앙에 위치한 도시 시청사는 13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과 16세기의 르네상스 양식을 절충한 건물로, 60m 높이의 탑 꼭대기에 올라 로텐부르크의 그림 같은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중세시대를 잘 간직한 이 도시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1년 내내 열리는 크리스마스 상점이다. 


그리고 매년 5월이 되면 온 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마이스터트룽크”(Meistertrunk) 축제가 열린다. 시청사 옆에 있는 건물로, 3층의 인형 장식 시계인 마이스터트룽크가 유명하다. 매시 정각에 시계의 양쪽 문이 열리면서 시장과 장군 인형이 나오며 시장이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는 전쟁으로부터 로텐부르크를 구하기 위해 3.25L 짜리 큰 잔으로 와인을 단숨에 마셔버린 시장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로텐부르크는 작은 도시이지만 중세 시대의 정취가 느껴진다. 오래된 집과 아늑한 광장이 있는 구시가지 그리고 탑, 분수, 성문, 요새, 상점, 와인바가 있는 작은 거리를 걷다 보면 시간이 멈춘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수많은 음식점과 박물관, 교회, 수도원 그리고 건축물이 있다. 옛 것의 소중함을 지키며 보존하는 것을 잘 알고, 자연친화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뮌헨 Muenchen


오스트리아 방향으로 가는 길인데 로텐부르크에서 뮌헨까지 약 250km, 3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버스 기사는 체코에서 온 사람인데 나이도 들었지만 운전 솜씨는 훌륭했다.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 최대의 주인 바이에른 주의 주도 뮌헨은 알프스 북부의 이자르 강가에 위치하고 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에 버금가는 독일 제3의 도시이자 남부 독일에서 가장 번성한 상공업 도시로, 화려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나치의 제1거점 지역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철저히 괴멸되었던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서울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Reonard Hotel에 투숙했다.


바이에른의 주도인 뮌헨은 도시 자체의 매력뿐 아니라 BMW 본사 등 대기업이 위치한 독일의 최고 부자 도시 중 하나이며 주위의 많은 근교 소도시 여행을 위해 방문하는 곳으로 인기가 있다. 현대적인 건물들과 전통적인 건물들과의 조화가 잘 되어있는 시내의 모습과 여러 공원들은 충분히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그리고 뮌헨의 BMW 박물관 건물은 엔진을 형상화한 모양이라고 하는 독특한 형상이라 먼 거리에서 보아도 시야에 들어와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뮌헨의 심장과 같은 마리엔 광장(Marienplatz)은 뮌헨의 중요한 관광지로 이곳을 중심으로 주요 행사들이 펼쳐진다. 보행자 전용구간으로, 시청사, 뮌헨 최대의 성당이자 랜드마크인 프라우엔 성당 등 주요 관광지가 밀집해 있다.

 

 

 

 


BMW 본사 주변에는 근사한 레스토랑과 노천 카페, 쇼핑 센터도 많아 뮌헨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각종 거리공연과 행사가 자주 열려 많은 사람으로 항상 북적거리는데 그 앞에 바로 신 시청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시청 건물 그 자체로도 멋있지만 틈틈이 보이는 문장이라든지 특히 시계탑의 인형들이 볼 만 하다.


바이에른가의 여름 궁전, 님펜부르크 성(Schloss Nymphenburg)은 독일 최대의 바로크 양식 궁전으로, 1918년 왕권이 붕괴되기 전까지 바이에른 왕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이곳의 정원은 베르샤유궁의 정원을 설계한 까르보네가 직접 설계한 프랑스식 정원이고, 건물은 좌우대칭으로 전형적인 바로크양식을 갖추고 있다.


예술과 맥주가 공존하는 곳, 뮌헨은 독일 남부 문화 경제의 중심지이자 잘 알려진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가 매년 9월에서 10월 사이 이곳에서 열린다는 사실, 세계 각국 관광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 온 도시가 축제로 뒤덮여 있는 시기이니, 뮌헨만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이때 여행을 해보는 것이 좋다. 


맥주는 독일인들의 생활과는 뗄 수 없는 관계로, 우수한 질에 있어서나 국민 소비량에 있어서 세계 제일을 자랑한다. 뮌헨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집 호프브로이 하우스(Hofbraeuhous)는 바이에른 왕실의 지정 양조장이었고 1589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1층에 7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굉장히 오래된 맥주도 맛있고 유명해서 하루 맥주 소비량이 무려 1만 리터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서 맛보는 원조 흑맥주의 맛은 일품이다. 안주로는 독일 남부 지방의 전통 음식으로 유명한 흰 소시지와 슈바인학센(족발)이 유명하다.


와인이 신의 축복이라면 맥주는 신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한다. 여행은 자고로 먹는 게 남는 법, 명소 소개와 맛있는 음식과 함께 곁들인 맥주 혹은 와인 한 잔은 여행자들에게 재미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젊었을 때 독일에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감자와 소시지였다. 지금 독일을 떠나면서 먹는 감자와 소시지의 맛은 반세기 전에 먹었던 것과 같이 정말 맛있었다.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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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1
동유럽 여행기(1)-남부 독일(Sued Deutschland) (상)

 
 

 마음속 여행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보자면 누구에게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언젠가 꼭 가보고 말겠다는 “마음속 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동유럽 여행 계획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적당한 기회가 없었는데 금년에는 좋은 기회가 왔다. 


동유럽은 낭만의 여행지라 불리는 곳이다. “동유럽의 파리”란 별명을 가진 체코의 프라하에서 야경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쇼팽의 도시”라 불리는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낭만주의 시대 음악을 감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이국적 풍경과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베토벤, 모짜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등 대가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영혼을 울리는 동유럽의 대표 도시이다. 실상 동유럽은 “낙후된 곳”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곳곳에서 마주치는 풍경과 사람들은 생명력이 넘친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세계문화유산과 오랜 역사는 이 지역에 낭만을 덧씌우며 여타 유럽 지역에 비해 높지 않은 물가는 여행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


 연중 몇 차례의 항공기를 이용하는데 이번에 택한 Air Canada는 기체가 크기도 하지만 400명의 승객에 그 많은 짐을 싣고 7000km의 그 먼 대서양의 하늘길을 시간당 900km에서 1000km 속력으로 날라가는 것이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 해도 신기해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날라가는 고도, 도착시간, 속력, 지금 날고 있는 지점까지 계산해내는 괴물 같은 컴퓨터의 능력을 볼 때 미래 인간의 한계가 어디에 까지 갈지 두려운 생각도 든다.


 토론토에서 8시간이 걸려 이른 새벽 6시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젊은 유학생의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했다. 쌀쌀한 날씨에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이곳은 여러 국제 항공기가 지나다니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 공항도시이다. 동유럽 여행을 가게되면 꼭 들리는 곳이 남부독일인데, 지나는 길에 몇 개의 도시를 골라 독일의 정취와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다양한 지방색이 독일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그 문화와 삶의 이야기들을 전해줄 전문 가이드의 설명은 여행의 깊이를 더해준다.

 

 


▲마인강변에서 본 프랑크푸르트

 

 

 

독일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곳곳에 중세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성과 거리가 있어 이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독일을 찾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각각 그 나라만의 개성이 뚜렷하다. 그 중에서도 맥주와 소시지로 유명한 나라, 남부독일에 있는 프랑크푸르트에 온 것이다. 


사실 필자는 프랑크푸르트에는 옛날 1965년도에 친구따라 한번 놀러 갔던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53년 전이었으니 그 때는 독일 땅에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거리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면 초면인데도 반갑고 눈물도 흘리면서 서로 도와주고 했다. 인생의 초년병인 그때는 독일말도 서툴었고 철없던 시절이었으니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로부터 귀한 김치와 밥을 얻어 먹고 도움도 받았던 고마운 일들이 생각난다. 지금도 이곳에서 한국 간호사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인 강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꽤나 상징적인 강이다. 그래서 이 도시의 정식 명칭은 Frankfurt am Main이다. 마인 강에 위치한 프랑크푸르트 라는 뜻이다. 사실 여행으로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지만 국제공항이 있는 도시 프랑크푸르트는 인구 약 74만 명을 가진 도시이며 마인 강을 끼고 발전한 도시다. 


유로화 동상부터 시작해서 뢰머 광장, 괴테하우스, 국제금융센터, 역사 박물관 등 가볼만한 곳이 많다. 시대를 넘나드는 발전들이 꽤 매혹적이다. 괴테의 호흡이 서려 있고, 마천루 햇살 아래 중세의 광장은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라인 강의 지류인 마인 강가에 자리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는 곳곳에 역사적인 전통이 살아 숨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선출한 곳이었으며, 대문호 괴테의 고향이기도 하다. 


뢰머 광장의 고색창연한 건물들은 우아함과 정교한 건축미가 도드라진다. 광장 한가운데는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티아가 인파속에 저울과 칼을 들고 서 있어 엄중했던 시간을 홀로 대변한다. 광장에서 10분 거리에는 괴테의 호흡이 서려 있는 생가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 거작을 써내려간 곳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오래되고 유유자적한 골목, 첨탑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다. 붉은색 고딕 탑이 도드라진 대성당 아래로는 마인 강이 이어진다. 탁 트인 마인강변의 풍취는 오밀조밀했던 거리와는 대조를 이룬다. 이곳에서 젊은 괴테가 뛰어놀고 산책을 즐겼던 곳이다. 단 한명의 예술가가 도시의 이미지마저 바꿔 놓았다. 마인 강변에서 괴테를 추억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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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4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

 

 

 중국의 혁신과 부상이 눈부시다. 지금 세계의 이목이 중국의 미래에 쏠리고 있다.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오랜 꿈은 과연 세계 질서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지금부터 우리는 중국이 바꿔놓을 세계 경제의 미래와 세계 평화, 글로벌 패권전쟁이 가져다 줄 충격을 대비해야 한다. 


 2020년은 중국공산당 창당(1921년)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해이다. 개혁 개방 정책의 실행이 30여 년을 거치면서, 중국의 개혁정책의 초점은 경제에서 정치로 이동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모델을 도입하고 일당독재체제로 국가를 운영하는 중국 공산당은 주기적으로 애국심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이러한 체제에서 애국심은 외교적 긴장과 국내 정치가 혼란할 때 사용하는 전가의 보도라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임기 제한 제도를 철폐함으로서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한국인들은 중국의 미래에 지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국의 변화가 한국 사회에도 여러 면에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중국은 19세기 아편전쟁으로 서구열강에 무릎을 꿇기 전까지 전 세계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패권 국가였다. 중국은 지금 한 세기를 뛰어넘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꿈을 꾸고 있다. 이는 종합적인 국력과 글로벌 영향력에 있어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의 중심, 즉 G1 국가가 되겠다는 중국의 비전이다. 핵심 전략은 중국을 첨단산업 국가로 발전시켜 세계 경제패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부상하는 중국은 한국과 한반도를 그들의 영향력 확대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미국과의 영향력 경쟁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한국과의 관계 발전을 모색해 왔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 또한 세계적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위치해 있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인해 미중관계의 변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상대적 약소국의 입장에서 미중관계의 변화를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도록 조정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최악의 시나리오마저도 상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한국이 직면한 현실이다. 이에 한국은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어설픈 양다리 걸치기 또는 관성적인 편승을 모색하기 보다는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착실하게 독자적인 생존 공간을 확대하고, 국제적 위상과 전략적 가치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중국몽을 향한 질주는 이미 시작됐다. 중국의 혁신이 계속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나라는 현재 세계 1등 국가인 미국이다. 중국의 초강대국화가 미국을 자극한 것이다. 미국은 2018년 7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약 300조원에 달하는 중국산 제품에 관세 폭탄을 투하하며 중국의 성장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지금 몸을 낮추고 있다.


대한민국과 중국 사이에 갈수록 증가하는 경제, 사회, 문화교류, 그리고 미국과 맺어온 안보동맹과 정치연합, 인적 교류 등을 고려할 때, 두 국가 모두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이 대립과 갈등의 적대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으로 경사되면 위험하다는 점은 명확하다. 세상에는 영원한 적과 우방이 없듯이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 우리의 인식과 믿음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는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중국의 부상은 한국에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 발전의 최대 수혜국이 한국이었던 것처럼, “강한 중국”은 미래 생존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벽인 동시에 돌파구이기도 하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서 나타난 한중관계의 마찰은 중국의 한반도 전략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한미안보의 틀로 우리의 안보에 중점을 두면서 특히, 한중관계도 역사적 유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일부러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중국이라는 용의 등에 올라탈 전략과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201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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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6
핵무기와 세계평화

 

  

 인류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여러 전쟁들을 통해 수 많은 피해를 입어왔다.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많은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후 핵무기의 시대로 들어가면서 핵무기 확산 금지 조약에 다수의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세계는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된 평화체제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문명은 인간문명을 진보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문명의 종언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인류에게 있어 평화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실현해야할 당위적인 가치이다. 평화의 의미는 정의가 다양하지만 국제사회에서의 평화는 전쟁의 부재를 의미한다.

요즘의 신국제질서 속에서 평화는 질서와 안정의 유지만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의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특징으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조직과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분쟁을 무력의 사용이 아니라 관련국가 간의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국가들 간의 공통된 인식과 그에 걸맞는 태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한반도 분단과 같은 냉전시대의 유산으로 남아있는 문제들 역시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해결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국제질서는 탈냉전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안보나 경제문제를 한 국가 혼자 해결하기보다는 공동협의체의 구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추세가 되고 있다.


 안정된 세계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서 모든 국가들이 군사력의 관리와 축소 더 나아가 제거에 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현대의 군사력은 인류문명의 종언을 가져올 수 있는 수준이고, 많은 군사력이 절대적인 대외적 안전보장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방비에 더욱 투자해서 군사력을 증진시키기 보다는 협의를 통해 군사력의 통제와 축소가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들 간에 외교, 군사, 경제 다양한 측면에서 상호협력과 상호이익의 증진을 위한 국제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은 핵무기 개발의 중지와 축소, 폐지이다.


 현대의 국제사회가 평화로워 보이더라도 그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닌 핵무기에 의한 “공포의 균형”의 상태이기 때문에 위태로운 평화이다. 국제사회의 힘의 균형이 핵무기에 의해 유지되다 보니 많은 국가에서 핵무기의 개발, 보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는 이미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는 국가들에서의 핵무기의 급속한 증가인 수직적 확산이 있고, 핵무기를 갖지 않은 국가들이 핵무기를 소유하려고 하는 수평적 확산이 있다.


 1969년 체결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무기 보유국은 핵무기나 기폭장치 또는 그에 대한 관리를 제3국에 양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비보유국은 핵무기나 기폭장치를 제조하거나 획득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비롯한 안전 조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북한은 21세기에 핵실험을 자행한 유일한 나라이며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로 세계 평화와 안보에 최대 위협이 되는 나라로 국제사회에서 비난받고 있다. 북한 핵문제가 한반도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북한은 모든 핵,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확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경제제재를 하고 있다. 그 결과로 북한 인민들은 예년과 다름없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해온다.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희망 속에서, 핵무기를 평화적으로 포기한 우크라이나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크라이나는 1900여기의 핵무기가 배치된 소련의 네 개 공화국 가운데 하나였다.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 군부가 핵무장을 강력히 선호했지만 미국과 러시아 양국의 안전보장을 약속받으면서 핵무기를 포기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술적, 재정적인 지원은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능력을 해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일부 핵능력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영역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불행히도 지금 북한은 핵억지력 운운하면서 핵무기에 집착하고 있고,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를 아직까지 부인하고 있다. 핵보유를 위해서 지금까지 국제사회와 남한을 집요하게 기만해 온 것이 북한이기도 하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의 사례를 깊이 연구해서 모범적인 선례를 따른다면 그 보상으로 세계 평화에는 물론 북한에도 경제의 번영이 찾아올 것이다. (2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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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9
쿠바의 심장 하바나(Havana)(하)

 

 

 

 

 

 별다른 저항없이 무난하게 이루어진 혁명과정, 그러나 결국 역사는 돌고 돌아 혁명은 실패한 것임을 선고한 오늘날, 시내 한복판 가장 화려한 공간에 우람하게 가꾸어진 혁명광장이 이제는 차라리 억지로 꿰맞추려고 노력한 섣부른 퍼즐처럼 보인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하바나, 체 게바라의 상징들이 기념품이 되어서 팔리는 아이러니한 상황, 길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성조기로 된 옷을 입은 쿠바노들, 참 신기하다.


 하바나는 클래식 카(오래된 차)의 천국이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바로 관광객을 기다리는 올드카, 원래 미국 부호들이 하바나를 휴양지로 쓰면서 이 고급차들을 사용했는데 미국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이 차들의 주인이 사라지게 되고, 쿠바노들이 사용하다가 지금은 예쁘게 페인트 칠을 해서 관광객을 태우는 택시가 되어버렸다.


 헤밍웨이가 다이끼리(Daiquiri 영어발음으로 데커리 : 럼에 레몬즙을 넣어 만든 칵테일)를 마시기 위해 친구들과 매일 찾았다던 레스토랑 플로리디따(La Floridita) 이곳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박물관과 같다. 실제 헤밍웨이 크기의 동상에서 사진 찍는 관광객의 줄이 길다.


 또 보데끼따 델 메디오(La Bodequita del Medio) 식당에서는 모히또(Mojito: 럼주로 만든 칵테일)를 마시며 친구들과 어울렸다 해서 관광객들은 이곳들을 찾아가 같은 술을 마시곤 한다. 


  하바나에서 남동쪽 교외의 약 24km, 약 20분 거리인 San Francisco de Paula 지역의 현 헤밍웨이 박물관(Museo Hemingway)은 하나의 저택이었는데, 하바나 시내에 살던 헤밍웨이가 이쪽으로 옮겨와서 여러가지 저술활동을 하는 등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렇게 헤밍웨이가 살던 집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놓은 곳이 바로 이 헤밍웨이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헤밍웨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바나 시내의 장소들뿐만 아니라, 꼭 와봐야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헤밍웨이 박물관은 보존을 위해서 실내로 들어가 볼 수는 없고, 대신 주변의 창문들을 열어두어 사람들이 내부를 구경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친구가 많았던 헤밍웨이는 전 생애의 거의 절반인 29년간을 쿠바에서 살았다고 한다. 카스트로가 그토록 싫어하던 미국, 그러나 미국인 헤밍웨이를 개인적으로 서로 좋아했고 오늘날 쿠바는 헤밍웨이 박물관을 외화벌이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으니 문학에는 국경이 없다는 뜻일 게다.


 사냥과 낚시, 바다를 사랑했고, 덕분에 이곳에서 “노인과 바다”라는 걸작을 쓸 수 있었던 헤밍웨이는 그 외에도 훌륭한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글을 쓰며 머무르던 곳, 추억의 집, 추억의 거리에 남은 흔적은 많은 사람들 가슴에 짙은 향기와 그리움을 남긴다. 그래서 작가는 영원한 생명을 지니는 것이라고 하던가. 


나는 그의 작품을 읽었을 때마다 큰 감동을 받았었다. 헤밍웨이의 발자취와 체취가 느껴지는 플로리다 Key West에 있는 박물관과 하바나 근교에 있는 박물관을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20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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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1
쿠바의 심장 하바나(Havana)(상)

 

 

 

 쿠바는 1959년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해 사회주의국가로 현재까지 이어오는 나라이다. 전세계에 마지막 남은 몇 안되는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미국과 친해지면서 급속도로 자본주의가 들어오고 있는 나라, 매일매일 변화하는 그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의 인상을 주는 하바나, 쿠바의 수도로 카리브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도시다. 인구는 220만 명이다. 주로 돈이 많은 사람들과 상류계급이 살았던 화려한 주택들은 박물관과 학교로 종종 이용되곤 하였으며, “체 게바라 사적관”은 개인 기념관이자 공산정권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곤 하였다. 또한 하바나는 해안에 자리잡고 있어서 휴양지로 유명하다.

 

 

 

 


수많은 침략과 혁명의 역사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잘 보존된 하바나 구시가지는 거대한 박물관과도 같다.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 하바나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영상을 간직하고 있다. 빛깔이 바랜 화려함은 거부할 수 없는 컬러의 배경과 함께 식민지 시대를 세심하게 재현하고 있다.


 바다에 접해 있는 보도인 엘 말레콘 방파제 웃통 벗은 청년들이 낚시를 즐기는 이곳을 걸어 보거나, 올드 하바나와 산 크리스토발 성당을 방문하거나, 헤밍웨이 박물관, 살사 음악을 들으며 야외 상점가를 둘러보고 밤새 이어지는 파티에 참여해 보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건물 사이로 두툼한 시가를 물고 신문을 보는 현지인들은 화보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하바나의 랜드마크인 카피톨리오(국회 의사당), 하바나 대극장, 잉글라떼라 호텔 등 하얀색의 건물들이 거리를 질주하는 알록달록한 오래된 차들과 잘 어울린다. 여기가 쿠바임을 알려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 올드 하바나는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이 바글바글 대는 잘 가꿔진 올드 하바나의 모습과 정말 오래된 건물 속에서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올드 하바나의 모습이다. 두 곳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서, 올드 하바나 골목을 헤메다보면 어느덧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진정한 올드 하바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광장 앞에 있는 하바나 성당(Catedral de la Havana)은 하바나의 랜드마크와 같은 곳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무료로 공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바나에서는 그냥 길거리의 풍경에 더 눈이 가는 거 보면--- 역시, 쿠바는 사진찍는 사람들의 천국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사람이 있는 풍경 뿐만 아니라, 하바나는 모든 것이---특별하다. 눈이 즐겁다.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도, 거리를 지나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화려함과 거대함의 상징인 의사당 건물, 혁명광장, 체 게바라, 헤밍웨이, 모히또, 다이끼리, 쿠바재즈 등등 보고 즐길 것이 많다. 도시의 중앙 낮은 언덕에 조성되어 있는 혁명광장에는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독립시켰던 영웅 호세 마르티를 기념하는 혁명기념탑과 북쪽으로는 체신청 등 두 개의 대형 공공건물을 마주 보고 있다. 대형 건물마다 혁명 영웅들의 얼굴이 높게 그려져 있으니 하나는 피델 카스트로, 또 하나는 체 게바라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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