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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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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로 가는 사하라 사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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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유적

 

 

 

 인구 518만의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북부 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로 수도인 카이로 다음으로 두 번째 큰 도시이자 이집트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이다.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더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정복지의 수도로서 그의 이름을 따서 건설한 도시이다. 


정복지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그리스문명과의 융합을 꾀했던 알렉산더대왕의 사후에 그의 부하 장군에 의해 건국된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의 왕들은 알렉산드리아에 거대한 도서관을 세우고 지중해 지역의 문화중심지로 알렉산드리아를 키웠다. 이집트와 지중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이며 현재도 이집트의 천연가스와 송유관이 지나는 중요한 산업중심지이다. 


 프톨레마이우스 왕조는 정복자인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진 왕조이면서도 이집트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함으로써 300년 간 지속되다가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 시대에 이르러 로마에 왕조를 내어주고 이후 로마의 직할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이로써 3500여 년간 여러 왕조를 거치며 유지되던 이집트왕조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BC 47년 줄리어스 시저는 그의 최후의 경쟁자인 폼페이우스가 전투에 패배하여 이집트로 도망하자 그를 추적하여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이미 이집트 왕실에 의해 살해되었고, 이로써 시저가 이집트에 온 목적은 달성되었으나 이집트의 현실은 쉽게 시저가 이집트를 떠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친 로마 성향의 선대왕이 사망하고 그의 유언에 따라 공주인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남동생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으나 궁중관료들의 모략으로 형제간의 권력다툼으로 군사적으로 대결상태에 있었다. 지중해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로마의 최고실력자인 시저로서 중요한 동맹국인 이집트의 왕실분규를 모른척하고 갈 수는 없게 되었다. 


 21살의 꽃다운 처녀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자신의 세력을 확대시키려는 목적으로 시저에 접근하여 연인이 된다. 시저에의 접근은 운명을 건 도박이었지만 전쟁터를 전전하던 노장군 시저에게 그녀의 접근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을 것이다. 이집트의 아름다운 클레오파트라 여왕과 로마의 실력자 장군인 줄리어스 시저 그리고 안토니우스와의 애정행각은 서유럽의 작가들과 헐리우드의 좋은 작품소재가 되어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사막에는 나일강물을 끌어들여 많은 농작물이 재배되고 건축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카이로의 혼잡한 도심을 힘겹게 벗어난 우리는 카이로ㅡ알렉산드리아 간 사하라 사막속의 고속도로를 시원스레 달린 후 다시 카이로 도심보다 훨씬 교통이 혼잡한 알렉산드리아 시내를 통과하여 4시간 만에 옛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던 자리에 도착했다. 


기원전에 세워졌다가 시저의 이집트 원정 때에 화재로 소실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서있던 자리에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집트문화가 옛날처럼 번성하기를 기원하면서 또한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기 위하여 건립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옛 유적의 편린이라도 보기를 기대했던 필자에게는 실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또한 가는 곳마다 겨우 폐허가 된 유적지를 보여 주면서 돈을 받는 이 나라의 상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알렉산드리아 시내 모습은 카이로와 별 차이없이 마차들이 교통수단이 되고 낡은 자동차들이 시도 때도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와 움직이는 자동차들 사이를 교묘히 빠져 다니는 보행자들이 이루어내는 무질서의 향연에 입을 다물 수 없다. 사람 사는 활기찬 모습이라고 보아 줄 수도 있겠지만 그 혼돈스러움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알렉산드리아 시내에는 도대체가 로마시대의 유적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고작 남은 것이 “폼페이의 기둥” 과 로마의 원형극장 유적 정도였다. 그러나 이태리, 그리스, 터키를 여행하면서 규모도 크고 보존상태도 훨씬 양호한 여러 곳의 원형극장을 보고 온 나에게는 알렉산드리아의 원형극장 유적은 폐허같이 보였을 뿐이다. 


원형극장과 폼페이의 기둥 이외의 고대 유적이라면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가 서있던 자리와 그 위에 세워진 카이트베이 요새 뿐이다. 기원전 285ㅡ247년 사이에 건설된 이 거대한 파로스 등대는 일찌기 그리스의 필론에 의하여 세계7대불가사의로 지정될 정도로 장관이었던 등대였다. 높이가 125m나 되었고 낮에는 청동거울로 햇빛을 반사하여 빛을 발하였고 밤에는 횃불을 거울에 비추어 보냈는데 멀리 50km 밖에서도 등대를 볼 수 있어 지중해의 험한 뱃길을 항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길잡이었던 것이다.


 중동의 부호들이 즐겨 찾는 휴양도시 알렉산드리아, 해변가에서 바라다 본 지중해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등대가 서있던 자리인 카이트베이 요새에서 몬타나 궁전에 이르는 활모양의 해안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파란 하늘의 흰 구름과 어울린 푸른 바다는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데 그들이 자랑하는 생선메뉴로 세 마리의 생선이 나왔는데 절반 정도 구운 상태로 나와 먹을 수 없었다. 역시 음식문화에도 차이가 있어 고생을 했다. 그러나 호텔음식은 일품이었다.


 늦은 오후 알렉산드리아의 혼잡한 도심을 힘겹게 벗어난 우리는 카이로를 향해 다시 사막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지금부터 200여 년 전 이집트 정복에 나섰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하여 이 유서 깊은 도시를 점령하고 카이로를 향하여 진격할 때에 지금 우리가 달리는 고속도로와 같은 노선을 따라 행군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가 1799년 7월이었다. 요즈음은 관광객들도 무더위와 모래바람을 피하여 찾지 않는 계절에 군대와 대포를 이끌고 행군을 한 나폴레옹의 집념과 용기가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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