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hokim
김종호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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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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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가 높이 솟아 올랐다. 창아래로 토론토의 집들이 점점 조그맣게 더 조그맣게 보였다. 싱그러운 바람과 높고 파란 하늘이 나의 마음을 기대와 설렘 속에 박꽃 피는 내 고향으로 향하기에 충분했다. 토론토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는 시간은 길고 지루했다. 인천 공항에 내렸을 때는 내 가슴속에 흐르는 핏줄과 영혼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임을 자인하게 한다. 옛 모습을 찾을 길 없이 된 오늘 더 잊혀져가기 전에 옛 일을 되돌아보며 우리의 뿌리를 찾아온 것이다.


 때마침 한가위와 함께 휴일을 맞은 우리는 가히 민족의 대이동을 체험한다. 모두 고향과 친지도 찾고 성묘도 하고 돌아왔으리라. 이다지도 많은 사람들이 천신만고를 무릅쓰고 고향을 찾아나서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도록 매력적인 단어이다. 잃어버린 고향, 가야 할 고향은 있지만 잊어야 할 고향이란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누구에게나 다정함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정감을 강하게 주는 곳이 고향이다. 고향은 나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정이 든 곳이며, 일정한 형태로 내게 형성된 하나의 세계이다. 고향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어느 고을 어떤 지점을 제시할 수도 있고, 언제부터 어느 때까지 살았다는 시간을 제시할 수 있으면서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각인각색으로 모습을 달리할 수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행복한 동물이다. 지나간 일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좋은 일은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아름답던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곳에는 나를 사랑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이 계셨고 형님, 누님과 별명으로 통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가치의 근본이 그곳에 있었고 모든 척도의 원형이 그 곳으로부터 나왔다. 그 보다 나의 모든 것이 그 곳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을 보통 귀향한다고 하지만, 돌아가게 된 동기나 처지에 따라 조금씩 특별한 단어로 표현한다. 힘든 객지생활을 이기고 열심히 노력하여 마침내 목표를 이루고 당당하게 고향을 찾는 경우는 환향이라 하고, 더욱 품격을 높여 “금의환향” 한다고도 말한다. 한양이나 다른 큰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갈 때는 주로 “낙향”이라는 말을 썼던 것 같다. 전혀 그런 뜻이 아닌 줄 알지만 어쩐지 “낙향”한다는 말은 “환향”과 같이 떳떳하고 자랑할 만한 귀향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캐나다가 고향입네 하고 뿌리 내린지도 50여 년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본능처럼 내가 태어난 고향으로 마음이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숙명이다. “귀소본능”이란 말이 있음을 보면 나만의 느낌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럼 타국에서 내린 뿌리가 이미 너무 깊어진 나는 환향도 아니요 낙향도 아닌 이번 고향방문은 무엇이라고 해야할까!


이런저런 상념으로 감회에 젖어 둘러본 나의 고향에는 기억 속의 장소도,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변해 그 어느 곳도 누군가의 진정한 고향으로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내 고향은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면 용소리, 전설에 의하면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자그마한 용소마을 태백산맥에서 뻗어져 나온 삼각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골이다. 봄이 오면 살구 꽃이 온 동네를 덮고 진달래 불길이 온 산에 번지고 여름이면 냇물을 타고 은어 떼가 쏜살같이 올라오는 산골동네, 여느 동네와 다를 것이 없다.


 조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는 선산에 올랐다. 나고 자란 고향 선산의 모습은 언제 봐도 정겹다. 수구초심 때문일까 참나무와 소나무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메마르고 단단한 갈대풀들이 서로 부등켜안고 서걱대는 풀밭에 누워 나의 유년시절을 회억한다. 달과 풀과 바람과 그리고 이 적막하게 떨어져 나앉은 시간과 그런 것들이 눈물을 흘리게 했을까, 한동안 갈대풀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가 꼭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들려왔다. 마치 이별을 고하는 것 같은….


 선산에서 내려오며 옛집 근처에서 여전히 고향을 지키고 있는 감나무에 다가가 우정으로 끌어안아 본다. 어릴 적 그 감나무에 올라가 놀고, 가을마다 토실토실한 감을 얻어먹던 그 감나무다. 과일 나무중에서 가장 수명이 긴 나무가 감나무라고 한다. 경상북도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 보호수로 지정된 540년된 감나무가 있다고 한다. 나의 고택에 아직 살아남아 있는 두 그루의 감나무는 몇살이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오랫만에 안아보니 새삼스럽다. 내가 고향을 떠난지도 50여 년이 지났으니 많이 늙었을 텐데도 여전히 튼실한 뿌리를 더하며 아직은 넉넉한 수령을 자랑하고 있다.


 고향은 틈만 나면 가보고 싶고, 막상 어려운 시간을 내어 가보면 젊은 시절, 꿈에도 그리워했던 첫사랑이 늙은 모습으로 나타난 허탈감으로 후회가 된다고 어느 누가 말을 했던가? 이젠 그리던 고향도, 시공간을 함께 누렸던 고향의 그리운 분들도 이마에 골깊고 넉넉한 웃음을 짓는 하회탈을 쓴 모습으로 늙어가고 어쩔 수 없이 세월의 강물에 흘러 보내야 할 향수 또한 힘에 겨운 듯 흐느적거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무정하게 흘러가는 세월 탓이다.

 

 

 바다건너 천리만리 고향 찾아왔건만
 그대는 말이 없고 어디를 갔나 
달아 산아 강아 말해다오 그대 간곳을
아득한 옛날 사랑을 같이했던 그 동무들…    

 

 

세월 속에는 망각이 있다. 이것은 신이 우리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다.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환희도, 땅속으로 가라앉을 듯한 비탄도 흐르는 세월 속에 용해되어 망각의 장으로 사라진다. 이국의 땅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많은 사람들이 늙으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항상 가지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더해갈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진다. 아무리 새로운 곳에 정착해서 새 삶을 꾸린다해도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의 흙에서 태어났으니 고향의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인가? 


지금도 내고향 뒷산에 초여름의 신록을 준비하는 나무와 숲들, 그 아래로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서있는 농가, 개울을 끼고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고 있을 아이들, 그런 지난 날의 추억으로 가득차있는 내 고향의 이미지는 버릴 수 없을 것같다. 


아마도 그것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고향은 그리움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문화적 형식은 달라지겠지만 따뜻함과 그리움은 여전하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지상의 낙원일 수 있다. 그래서 모두들 지친 몸으로 안식의 고향 땅을 그리워하고 바라보며 그렇게 떼지어 몰려다녔나 보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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