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yjeong
웰빙 부동산
건축공학, 도시계획을 전공한 공인중개사로서 토론토 지역의 장단기 개발계획을 토대로 하여 여러 가지 조언을 드리며, 주택의 건물구조에 따른 장단점 및 실내디자인 측면에서 기능적인 동선 분석 및 조언, 캐나다 주거환경에 따른 환경특성을 고려하여 조언 드립니다.

정영훈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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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水) 속에서 나온 맛(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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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지난 주 근대까지의 일본음식의 흐름을 시대에 걸쳐 살짝 알아보았다. 일본음식의 역사 끝무렵인 관동대지진 전후로 대한민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역사의 치욕을 겪는다. 정신차리자! 과거를 금새 잊고 또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의 역사는 절대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문화라는 것은 강제이든 자발적이든 힘이 센 나라에서 힘이 약한 나라로 흘러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화침탈은 약한 나라의 문화를 비하하고 말살을 하는 방식으로 문화를 전파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국가가 침탈되어 일제통치하인 35년 동안 무수한 일제의 문화침탈 야욕과 시도에도 그나마 우리의 문화를 잘 지켜냈기에 우리의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중에 일식요리도 우리의 먹거리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나 우리는 그것을 일본음식으로 우리의 음식과 차별을 하였기에 구분이 된다.

일제 강점기 전에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문화가 전달되었다면, 그 이후로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영향으로 지금도 잘못 알려져 있는 사실은 김밥이 일본의 후또마끼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김밥 유래를 살펴보면 1819년 열양세시기와 1849년 동국세시기에 풍습이 기록되어 있는데, 정월 대보름에 김과 참취(국화과식물)로 밥을 싸먹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이 김밥의 초기형태로 보이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먹던 한국의 음식인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생선을 오래 두고 먹을 목적으로 생선에 소금을 뿌리고 찐 곡식을 함께 눌러 놓아 발효되면서 나오는 젖산에 의하여 생선의 부패를 막아 곡물은 떨어내고 신 맛나는 생선을 먹는 내륙의 문화가 넘어가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식초를 이용하여 초밥을 만들고 그 위에 생선살을 올려 먹는 스시와 함께 그 초밥을 이용하여 김에 다른 재료를 넣어 싸먹는 식으로 발전되어 마끼즈시(마끼스시)라고 부른다.

이렇게 일본의 요리들은 한국의 먹거리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 중 일식초밥은 꾸준하게 한국인들의 먹거리 중의 하나로 자리를 잡아 왔으며, 이로 인하여 일식초밥을 만드는 요리사들도 많이 생겨 한참 유행했던 1990년 후로 여러 유명한 초밥장인들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2000년 초에 들어서는 퓨전초밥이 큰 유행을 끌며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때 캐나다 토론토에 처음 퓨전 초밥을 퍼뜨린 장본인이 바로 필자다.

필자가 학원을 운영하기 전만해도 토론토에는 캘리포니아롤이 유일한 퓨전초밥이었고 기존의 일식당은 각종 니기리즈시(쥠초밥)과 속 재료가 많이 들어간 굵은 후또마끼와 속재료가 한가지만 들어간 가느다란 호소마끼가 전부였다.

 

 

초밥은 지금의 교토, 오사카 등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서쪽인 간사이 지역에서 먼저 발전을 한다. 틀을 이용하여 초밥을 만드는 하꼬즈시(상자초밥) 형태로 소금간을 한 밥을 깔고 그 위에 발효된 다양한 생선들을 기호에 맞추어 올리고 상자뚜껑을 닫고 꼭 눌러 만들기에 크기도 천차만별이었다.

상자를 가지고 다니다가 먹을 수도 있어 주먹밥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발효를 시킨 생선이기에 생선비린내와 시큼한 냄새가 섞여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겨자나 와사비(고추냉이)를 넣어 먹었는데, 와사비는 귀하여 일반인들은 겨자를 주로 넣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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