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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장애인공동체 기획 연재> 신 케빈 '생사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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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금주부터 성인장애인공동체 회원과 가족, 봉사자들의 수기작품을 연재합니다. 이 글들은 공동체 창립 23주년 수필집 <동행> 책에 소개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신 케빈

 

 20대가 흔히 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해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하건만, 아직도 나에게 적용되는 말인지 가끔 혼란이 올 때가 있는 말입니다. 전 올해로 27살. 많다면 많다고도 할 수 있고 누군가의 눈에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 같이 보일 수도 있는 나이입니다. 하지만 저와 비슷한 나이에 뇌출혈이라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본 또래는 많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요.

 

 전 평범한 한국 토박이였습니다. 92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가정의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1남 1녀 중 장남이고, 겉으로 보기에도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장남입니다.

 

 인생의 전환점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13살의 아이는 부모님이 더 나은 장래를 바라는 마음에 이민길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엔 좀 통통한 편이었고 내성적이기도 했지만 나름으로 열심히 노력한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하던 시기였습니다.

 

 사실 장애의 전조는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가지고 태어난 질환은 뇌동정맥 기형이라는 혈관성 병으로, 태아 상태에서 뇌혈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뇌혈관의 일부가 뭉쳐진 채로 태어나는, 많은 사람이 희귀병인 줄 알고 놀라지만, 사실 400~500명 중 한 명꼴로 가지고 있는 병입니다. 단지 많은 수의 사람들이 출혈이 없이 살아갈 때가 많아서 잘 부각되지 않을 뿐.

 

 하지만 어릴 때부터 번쩍거리는 빛을 싫어하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유없이 심한 두통이 제 인생 전반에 이런 큰 장애를 가져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별거 아닌 편두통 정도로 치부했던 것이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여담이지만 21번째 생일 1주일 전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당시 병원에서 두번이나 수술하고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깨어나서 말을 듣지 않는 왼팔과 왼다리를 보며 ‘내가 불구가 되다니!’ 라고 속으로 절규하며 정말 최악의 생일선물이라고 속으로 피눈물을 쏟으며 인생을 저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당시 출혈이 너무도 심각한 편이라 조금만 늦었더라면 터져나온 피가 뇌를 뭉개버려서 죽을 뻔했다고 의사가 말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두개골을 정수리에서부터 귀 옆까지 갈라내고 혈관을 5센치미터 이상 제거하는 대수술은 확실히 평범한 21살 대학생에겐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남몰래 눈물로 병원 침대보를 적시던 시간에도,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가족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전 한 가정의 장남이자 장손입니다. 이대로 평생 수발을 받으며 안그래도 고생하시는 부모님, 제가 고지식해서 그런진 몰라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이대로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가기엔 당시 가지고 있었던 의무감과 사명감, 또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삶에 대한 갈구가 더 컸던 거 같습니다.

 

 결국 살기로 결심했고, 눈물나는 재활병원을 거치면서 아직도 한참 멀지만 어느정도 진전된 모습을 보며 시련을 이겨내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자신을 볼 땐 가끔 뿌듯하기도 합니다. 평생 가족과 남에게 짐덩이가 되며 살 수 없다는 자존심과, 수술하는 동안 실신할 정도로 울부짖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절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는 상황이 그때와 비교하면 꿈도 못 꿀 정도로 나아졌음을 느낍니다. 아직도 심각한 중증장애인이지만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아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을 뛰어넘고 아무런 보행기 없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고, 어쩔 수 없이 휴학했던 학교도 어찌어찌 남보다 1.5배가 걸렸지만 졸업도 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자립하는 일도 느리지만 착실하게 쌓고 있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위로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저 혼자 이뤄낸 것은 아닙니다.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헌신하며 지켜준 가족과, 중증장애인이 되었어도 끊어지지 않는 우애를 이어가는 친구들에겐 너무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중에서도 장애인공동체는 아직 장애 6년 차밖에 안된 저한테 수많은 정보와 도움의 손길을 이어준 소중한 단체라는 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공동체를 알지 못했더라면 저보다 오랜 기간 장애를 갖고 살아오신 분들의 팁과 조언을 모르고 살았을 뻔한 저를 돌이켜보면 공동체는 더욱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왕복 두 시간 가까운 거리도, 늘 똑같은 생활도 더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금요일이 기다려지기까지 하는 요즘입니다. 생활에 활력을 넣어주는 공동체 행사들이 기다려지고 감사해집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예전처럼 절망 속에만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나름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앞으로 나가는 이 시기에 공동체와 같은 손길은 가뭄에 단비 같은 도움입니다. 앞으로도 이 좋은 연결을 진심으로 오래오래 이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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