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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2
구호 제창 문화

윤종호 칼럼

<계간수필>동인, 문협회원

 

 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고국의 소식을 쉽게 접한다. 뒤숭숭한 상황에서 ‘파이팅!’ 구호를 외칠 일이 그리 많은지? 운동선수로부터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유치원 봄나들이 때, 중학생들의 미술관 견학 시, 설악산에 오른 가족들도, 동남아 관광지에서,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군중 속에서, 인천공항에 와서도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 촬영을 한다. 가관인 것은 교장 연찬회 기념으로, 문화 예술인의 작품 발표회에서,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에 선 배우도, 국회 앞 계단에 모인 의원들도, 모임에 참석한 대통령과 장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캐나다의 한인 신문에 오른 교회 행사 때 교직자들이 주먹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보면 쓴웃음이 난다. 한국인이 모인 곳은 어디든 이 구호를 외치는 게 유행이다. 남녀노소의 구별도, 지식 교양 직업의 차이도, 때와 장소의 구분도 없다. 구호 제창에 동참하여 동질감과 소속감을 확인하는 것이 한인 사회의 문화 현상인 것 같다.

내가 처음 ‘파이팅!’ 하고 외쳤던 게 국민학교 4, 5학년 때였던가. 당시 많이 진주한 미군의 영향인지, 또래들과 야구, 축구 등 단체경기를 하며 ‘파이팅!’ 하고 외쳤다. 전쟁을 치른 뒤여서 ‘싸우자!’, ‘무찌르자!’, ‘쳐부수자!’라는 구호는 교과서, 노트, 잡지, 만화책 등 모든 출판물에 박혀 있었고, 길가의 벽보나 현수막에도 넘쳐났다. 우리들의 친선경기 때도 ‘잘하자!’ ‘이기자!’ 하면 될 것을, 굳이 살벌한 구호를 앞세우곤 했다. 캐나다에서는 토박이 백인들의 구호 제창 때도 ‘Fighting!’ 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럼 이것은 한국인만 쓰는 구호인지? 이유가 어떻든 아이들이 시합할 때 소박한 승리욕으로 ‘파이팅!’ 한다면, 참아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사회 일반이 한결같이 그런다면 좀 들여다봐야겠다.

한국사회의 적폐를 집약적으로 드러낸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는 멀리 사는 내 얼굴도 뜨겁게 했다. 현장을 찾은 공직자들은 힘찬 ‘파이팅!’ 소리와 함께 주먹 쳐든 기념촬영에 분주했다. 역사적 현장에 간 증거를 남기려는 듯, 흰 이를 드러내며 ‘파이팅!’하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어떤 이들은 그 직후 공직을 떠나야 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은 부족하고, 이웃의 참극 앞에서 외친 ‘파이팅!’ 구호는 공허하게만 들렸다. 아무리 산 사람의 세상이라 해도 그렇지, 40여 미터 바다 밑에 침몰한 여객선을 수색하여 건진 자녀들의 주검을 통곡으로 맞이하던 팽목항 방파제였다.

그곳이 과연 ‘파이팅!’ 구호를 질러댈 자리였나?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몰염치의 극치임을 몰랐을까?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그리도 무지몽매한 짓을 공공연히 벌였다. 제 가족은 이 비극과 무관함을 확인한 안도감, 비교되는 행복감에서 웃으며 외친 ‘파이팅!’만은 아니었기를 빈다.

외국의 경우를 보니, Go, USA! 또는 Go!, Allez France!(나가자 프랑스!), 中國加油!(즁꿔짜요우; 중국 힘내라!), Nipon Ganbare!(일본 힘내라!) 정도이다. 응원 구호가 모질거나 그악스럽지 않고, 의외로(?) 순하고 담담하다. 말은 그 민족의 문화를 담고 있다. 그들은 적대감을 띤 ‘Fighting(싸우자, 쳐부수자)!’이란 말을 전투 현장 외에는 쓰지 않나 보다. 지성적이고 품위 있는 민족들은 점잖은 언어를 쓰고 있다. 우리와 관련된 특정 사안에서 지성적이고 품위 있는 언행를 했는지는 일단 제쳐두고, 그들은 대체로 국제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품격 있는 나라요 민족으로 통한다.

주먹 쳐든 ‘파이팅!’ 제창에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전체주의 망령을 떠올리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낮춰보는 북한식 독재체제에서 자주 쓰는 방편이기도 하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다. 범죄자를 쫓는 형사의 눈빛이 범인의 그것을 닮아가듯,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지금껏 혐오하고 비난했던 집단의 그것을 닮아갈까 봐 걱정된다. 민주화 과정의 극한투쟁 때 썼던 제스쳐를 민주화를 이룬 후에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단세포적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경제적으로 선진 사회’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달성한 이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갈대답게 이왕이면 제스쳐도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도록 마음을 썼으면 좋겠다.

21세기 국제화 시대인데, 모였다 하면 주먹 쥐고 거친 구호를 외쳐대는 그림은 좀 그렇다. 세계의 민족과 나라들은 선의의 경쟁과 협력의 대상이지 타도해야 할 적(敵)은 아니다. 그런 구호를 외치고 싶으면 ‘파이팅’만은 국방에 임하는 장병들의 몫으로 돌리고, 일반인들은 ‘한국 이겨라!’, ‘나가자 한국!’, ‘Victory Korea!’처럼 좀 부드러운 구호면 어떨까?

요즘 한국 음식이 과도하게 맵고 자극적인 맛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사나워지는 말투를 들으면 안타깝다. 이것도 심심하고 순하게 중용을 유지한다면 몸에 좋고 품위도 있을 텐데… 사적 취향의 영역이겠지만, 그런 것이 합쳐져서 우리 사회를 감싼 공기처럼 공동체적 생활문화의 내용과 외양을 형성한다. 가볍게 보아넘길 일은 아닐 듯싶다. 그러니 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품격있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염원하며 풍속과 관련한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사회발전이나 행복도 주위의 평화적 협력 속에 추구할 일이라고 보고, 나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자유롭고 건강한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다고 다른 민족들이 부러워하는 지금, 일사불란한 군사 문화나 선동 구호 같은 건 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깊은 생각 없이 천편일률로 따라 하는 이런 습성에서도 벗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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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5
뒷모습을 챙기는 마음

 


윤종호
<계간수필>동인, 문협회원

 

자신의 뒷모습은 보기 쉽지 않다. 앞모습이나 옆모습은 거울 앞에 서면 바로 볼 수 있지만, 뒷모습은 몇 개의 거울을 동시에 비춰야 겨우 본다. 그래봐야 앞모습 같은 적극성이나 생동감은 없다. 본인의 의지가 사라진 뒷모습은 파장 뒤의 시장 거리를 닮았다. 그것도 자신의 모습인데, 정열과 혼이 빠진 껍질 같은 것인가.

누군가를 정면에서 보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나 의지를 레이저 광선처럼 발한다. 내로라하는 사람에게선 특히 자신의 능력이나 가진 것을 과시하려는 우쭐댐, 위압감, 또는 위선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적게 가진 이는 그런대로 말투와 몸짓에 결핍감, 초라함, 비굴 감이 느껴질 때도 있어 측은하다.

본인의 의지와 욕망이 강하게 표출되는 앞모습에서는 건강, 교양, 재물, 권세와 관련된 상황이 읽힌다. 하지만 떵떵거리는 사람도 홀로 가는 뒷모습에는 가을바람이 일고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함은 어인 일인가. 세상의 연줄을 끊고 홀로 떠날 때의 처량하고 기죽은 모습이 읽혀서 그럴 것이리라.

아름다워지려는 인간의 욕망에 끝은 없다. 어떤 이들은 앞모습을 꾸미는 데 열중하다가, 인공 개조도 서슴지 않는다. 내면을 채우고 빛내는 지루하고 힘겨운 노력보다, 쉬운 대로 겉을 꾸미고 보자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염려할 겨를이 있겠으며, 설사 그럴 마음이 있다 해도 얼마나 될까.

수다스러운 앞모습은 남을 현혹할 수도 있지만, 관심이 덜 가고 수동적인 뒷모습은 그럴 능력조차 없다. 앞모습은 혼이 없는 인공적인 아름다움일망정 본인의 의도 대로 보일지 모르나, 방치된 뒷모습은 버려진 채로 드러난다. 눈은 앞에만 있어서 뒷모습과 관련한 타인의 눈치도 살필 수 없으며, 잊고 지낼 때가 많다. 남들이 내 뒷모습을 어떻게 보든 정말로 의식할 필요가 없는가?

 쇼핑몰에서 우연히 사람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젊은이들의 균형 잡힌 몸매와 탄력 있게 걷는 뒷모습에는 춤추듯 한 율동 미가 보였고, 명랑한 자태가 피안(彼岸)에 노니는 사람들 같았다. 얄팍한 어깨를 우쭐대며 걷는 이의 뒷모습엔 자기의 성취를 뻐기고 싶은 허영심이 읽혔다.

중년이나 노년의 뒷모습은 대체로 무거운 감정을 일으켰다. 세상의 짐을 혼자 진 듯 한쪽으로 기운 어깨, 세월의 무게처럼 내려앉은 엉덩이, 불편해진 다리를 절뚝이거나 끌 듯이 가는 뒷모습은 보기에 안타까웠다. 오그라진 등의 주인공은 힘겨웠던 역정(歷程)에 얽힌 사연을 밤새워 들려줄 것만 같았다.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사라진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그런 뒷모습을 걱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사람에 대한 기억이나 평가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면전에서보다는 없는 곳에서 이루어질 때가 흔하고, 사후에 옳은 평가가 나오기도 하는 것을 본다. 떠나간 누구를 그리워할 때는 겉으로 드러낸 그의 말이나 지위나 재물보다, 그가 건넨 미소와 따뜻한 속마음이 이미지로 남아서 오래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리 보면, 영혼과 인정이 깃든 교유(交遊)는 잘 잊히지 않는 것 같다.

샤를 드골(1890~1970)의 뒷모습은 실로 단출하였다. 그의 유언에 따라 국장(國葬)이나 조문은 사절하였고, 시골 성당에서 동네 지인들만 모여 추도사도 없는 장례미사를 올렸다. 각국에서 온 사절은 ‘파리 노트르담성당’의 국가 추도식에 참석해야 했다. 현대 프랑스에서 가장 공적이 크고 사랑받는 영웅은 어릴 때 죽어 성당의 가족묘지에 잠든 딸 옆에 묻혔다. 작은 석판에 이름, 생몰연대, 날짜만 새기게 했다.

한 시대를 주름잡은 위인도 죽으면 곧 잊히고, 거창한 업적도 옛 얘기가 된다. 드골은 이 점을 잘 인식했고, 자기보다 미약한 존재들인 장삼이사에게 말 없는 교훈을 남겼다. 프랑스는 나라를 상징하는 두 곳에 이 위대한 애국자의 이름을 붙여 최고의 영예로써 그를 기린다. 파리 신공항을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으로, 번화가 샹젤리제 거리가 시작되는 개선문 광장은 “샤를 드골 에뚜알 광장”으로 개명했다.

인간은 타인의 입과 눈을 의식한다. 남이 하는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평가 대상이 되는 우리는 자신을 거울에 비춰서 확인하기 쉬운 얼굴과 앞모습을 다듬는 데 꽤 정성을 들인다. 그런데 타인의 눈은 우리의 앞뒤를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훑으며 그로써 그들 마음대로 평가를 한다. 대강의 정보를 파악한 타인은 우리의 속마음까지도 유추하여 성급히 해석한다.

그러니까 앞모습을 상큼하게 꾸민 사람도, 뒷모습이나 떠난 뒤가 너저분하면 매력이 없다. 깊숙한 마음 씀으로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데까지 관심을 둘 수 있다면 성공일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앞 뒤의 자태를 곱게 유지하고 마음 씀의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챙기는 사람이라면 멋을 제대로 안다고 하겠다.

지난 길을 돌아본다. 시작은 늘 힘차고 희망적이었지만, 결과까지 아름다운 경우가 많지 않았음을 확인할 땐 얼굴이 화끈거린다. 앞으로의 길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렇게 살다가 떠난 자리에 향기를 남길 수나 있을까? 상념이 꼬리를 물어 잠들기 어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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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관계의 재정립을 바라며

윤종호

 

한 번 성(盛)하고 풍요로워지면, 그 행복감에 도취해 진취적 기상은 시들고 게을러지는 것이 나라든 개인이든 마찬가지다. 그로써 매너리즘에 젖어 쇠락한 많은 예를 역사가 알려준다. 이런 순환 원리는 인생무상에 눈물 젖게도 하지만, 신진대사에는 도움을 주어 세상이 점점 새롭고 공평해지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인접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협력과 다툼이 이어져 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두 나라의 행. 불행은 상대편에 관련됨이 크다. 이 관계가 순기능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함에도, 속 좁고 자질 부족한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흐트러지고 역기능을 할 때가 많았으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도쿠가와는 1603년 에도(江戶)에 설립한 막부(幕府)의 통치 기반을 굳히기 위해 “임진년에 조선을 침략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는 뜻을 거듭 표하며 화해를 갈구했다. 이에 양국은 ‘서로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성신(誠信)으로 통한다.’라는 뜻의 통신사를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나 왕래시켰다.

그 과정에 조선인 포로들이 많이 돌아왔으며, 고구마 감자 고추 담배 같은 작물도 조선에 전해졌다. 또 조선에 성하던 유학과 선진 문화가 전해져서 외로운 섬나라의 생활상을 윤택하게 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고난도 잠깐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싸움은 엉뚱하게도 만만한 조선의 국토를 토막 냈고 그 후 5년에 공산군의 남침으로 6.25동란이 터졌으니, 여태껏 민족의 아픔이 이어진다.

이때 미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한 일본은 ‘제조업 강국’으로 우뚝 설 호기를 잡았다, 한국의 불행이 곧 일본 번영의 찬스가 되었음은, 실로 아이러니다.

아베 정부는 2019년 7월, 꽉 막힌 경제의 활로를 뚫을 욕심에 한국전자산업이 일본 부품 업체들을 거느리는 국제 분업체계에 기습적으로 분탕을 쳤다.

그들은 “전자 부품과 장비의 대한(對韓) 수출을 끊으면, 한국은 석 달 안에 일본 경제에 예속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한국은 ‘일본 관광 안 가기’, ‘일제 상품 안 사기’, ‘소재.부품.장비 생산의 자립도 높이기’ 등의 원론적 상식적인 방법으로 대처했다.

일본은 비겁한 수법으로 절체절명의 태클을 걸었지만, 예견 못한 일로 해서 실패했다. 미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이스라엘 등 세계의 기술 강국들이 한국전자산업에 앞다퉈 도움을 주게 될 줄이야! 환란 속에 살고 발전해온 한국의 저력이 이때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액은 격감했으며 한국전자산업의 자립도를 높여준 결과가 되었으니, 일본의 자충수였다. 아베의 심술은 새삼 자강의 중요성을 한국인들에게 깨우쳐주었다.

1997년에도 일본은, 한국에 머물던 단기 투기자본 200억 불을 일거에 빼내 감으로써 IMF 금융위기를 촉발했다. 이번엔 한국전자산업을 겨냥했지만, 그간 한국 경제는 엄청나게 커졌고 대비책이 있어서, 그들의 잔꾀가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일등 제조업’을 뽐내던 일본도 영고성쇠의 원리는 벗어날 수 없나 보다. 패기도 창의력도 유연성도 전 같지 않다. 국가 부채율은 260%나 되어 세계에서 가장 높으며, 산업의 분야마다 한국에 추월 당하고 있다.

그들은 도쿄 올림픽을 대비하여 한국의 도움을 요청했다. 5G 장비는 삼성에, 5G 네트워크 기술은 SKT에, 카드 결제 시스템은 현대카드에, 보안관제는 윈스. 이글루 시큐리티에, 티켓 판매 시스템은 인터 파크 등…

주요 인프라 구축을 위해 한국의 선진 기술력에 온통 의존하면서 입으로는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 상종 못할 나라”라고 폄훼하는 일본 지도부의 거짓말과 위선적 태도는 이해하기 조차 어렵다.

‘혼네’(속마음)와 ‘다데마에’(겉 표현)라는 교활한 이중적 어법을 활용하면서, 그것을 품위 있는 문화로 여기는 그들이지만 한국을 언급할 땐 유독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을 쓴다.

지도부가 “한국에 전쟁이 터져야 좋은 기회가 올 텐데…”라고 무례한 발언을 내뱉으면, 그걸 강한 영도력으로 여겨 맹종(盲從)하는 일본 국민의 행태는 조선을 집어삼키던 백 년 전의 모습과 닮았다.

한국전자산업에 분탕을 치던 일본 지도부는 지금, 제 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씩씩거리는 악동의 형국이라 보기에 측은하다. 심술의 결과로 한.일 관계 재정립의 당위성이 분명해졌어도, 그들은 애써 눈감은 채 옛 영광(?)에만 취한 사람들 같다.

‘도장 결제’, ‘팩스 문화’를 극복하지 못해 행정의 디지털화를 못하는 일본, 관습이나 꽉 막힌 사고에 사로잡혀 새로운 국면에서 한 발짝도 나아갈 줄 모르는 일인들을 본다.

음악, 미술, 스포츠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이 숙달된 경지에 이르면, 그 자체로 예술적 아름다움을 발한다. 한.일 관계도 이미 천 수백 년에 이르렀으니,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정치 외교 무대에 미학(美學)을 발휘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행.불행이 엮인 이웃 간에 상생의 훈풍을 일으킬 위대한 리더십은 언제쯤 보게 될지? (202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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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아쉬운 한인동포들의 기부문화

 

권용철(로열르페이지 한인부동산 부사장)

 

 우리 한인들의 기부문화는 어디까지 왔을까요? 한국 전쟁이 끝나고 가난 때문에 굶어 죽고 허덕일 때 우리 대한민국은 미국을 비롯해 여러나라에서 많은 원조를 받으며 성장해왔습니다. 그런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기부를 하며 살고 있을까요?

 

 우리의 모국 한국의 예를 들어 보면, 미국과 비교해 미국인들은 100불을 벌면 약 2.3불을 기부하지만 한국인들은 0.5불 정도라고 합니다. 그나마 개인기부에 앞장서는 분들은 여유 있는 사회지도층이 아니라 대개 힘들게 살아온 김밥할머니나 떡장수 아주머니들이었다는 점이 더욱 혀를 차게 만드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어렵사리 모은 재산을 쾌척한다는 소식을 많이 접하면서도 우리는 미담에 감탄만 하며 수수방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1,500억원 기부 선언은 개인재산의 쾌척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진일보시킨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안 원장의 기부를 그의 정치적 행보와 연관지어 비판하는 사회 일각의 견해를 감안할지라도 기부 풍토의 발전에 어느정도 기여했다는 점에서 그의 기부결단은 높이 살 만하다고 봅니다.

 

 안 원장 외에도 훌륭한 기부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남을 도와 줄 때 찾아오는 보람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부를 숨기며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개중엔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자랑을 하며 기부하는 사람이 아예 안하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미국의 유명한 기업인 워렌 버핏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정은 성공의 열쇠이며, 성공의 완성은 나눔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제가 사회로부터 얻은 재산을 다시금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기부운동에 참여하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나눔과 기부 문화는 자원봉사와 함께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시민들의 자발적 행위를 통한 계층간 통합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나눔과 기부 문화를 통해 한 사회 안의 건강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캐나다 한인동포사회는 어떨까요. 이곳 역시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단체가 무척 많습니다. 여성회, 한인회, 불우어린이후원회, 맹인후원회, 성인장애인공동체, 아리랑 시니어센터, 노인회, 무궁화홈스, 한인사회봉사회, 치매협회, 장학재단 등등…

 

 이 많은 단체에 기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한 두 단체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한인사회는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모든 커뮤니티 중에서 모범적인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우리 토론토 동포사회도 굵직한 기부자들이 여럿 계십니다. 예를 들어 50만불을  기증한 신중화 선생을 비롯해 한상훈, 최등영, 정창헌 선생 등 한인사회 기부에 앞장서는 여러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한인동포사회를 전체 타민족과 비교해 볼 때 아직 우리의 기부문화는 걸음마 수준입니다. 그것은 정치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한인 종교단체를 비롯해 여러 동포단체와 개인들이 정부 부처의 도움이  필요할 땐 소속 신도나 직원들을 모두 동원해 이곳 정치인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막상 선거가 다가와 도움을 청할 땐 종교단체와 정치는 별개라며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각 개인들 역시 본인이 원하는 것이 얻어지지 않을 땐 원망과 불평을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한 사람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단체나 일반 단체들 역시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헌금이나 모금운동을 열심히들 하는데 그런 도움에 의해서 운영되는 단체라면 다른 단체나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성의와 관심을 보여야 맞는 것 아닐까요?

 

 유태인을 비롯한 여러나라의 동포사회를 볼 때 잘났건 못났건 자기 모국의 사람이 정치에 입문할 때는 개개인은 물론 우선 종교단체에서 나서며 모금은 물론 선거운동을 열심히도 해줍니다. 그러기에 유색인종 이민자들이 정당의 당수와 국방장관을 비롯해 힘있는 여러 부처의 장관들을 하고 있고 그들의 파워는 곧 그들이 속해 있는 동포사회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정치인은 캐나다를 위해서 일해야 된다고요? 고상하고 맞는 말씀이지만 우리가 찾고 누려야 할 혜택과 권리의 보호는 역시 현 정치가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특히 캐나다의 정치자금은 기부하는 사람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최고 기부액을 정해 놓고 또 기부한 돈의 거의 대부분을 세금 크레딧으로 돌려주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돈보다 관심과 정성인데 우리 한인동포사회의 장래와 이 나라에 살아가야 할 우리 자식들을 생각한다면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할 한인 2, 3세들의 정치 입문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벌써 2021년도 2월이 되었고, 곧 연방선거 및 내년 주 선거가 다가 오는데 제발 이번에는 우리 2, 3세 한인 정치가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줌으로써 한인동포들의 결집되고 단결된 모습을 캐나다 주류사회에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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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From Toronto toward the World

정태인 토론토총영사 영문 기고문

 

I

 In world history, great powers have something common. They are multi-national and multi-cultural. There are numerous examples: the Roman Empire and the Ottoman Empire in Europe; Chinese dynasties and Mongol Empire in Asia. In 20th century, the former Soviet Union and the United States also fall into the same category.

 Recently, Canada is attracting my attention, because it tries to learn lessons from the rise and fall of the world powers in the past. Not so long ago, Canada started to exist, following the destiny almost same as that of the United States. But unfortunately, since someday it has been on different path from its neighbor. The gap between the two countries became large in many ways. But now Canada is waking up…

 

II

 As well known, Canada started as a bi-national community between French and British in the land of the indigenous people. Canada apologized to the indigenous people for their atrocity in the old days and embraced them. Canada declared itself to be bi-lingual country and also embraced French minority. Later on, it opened the door to the European and Asian immigrants and recognized their culture of origin. The multi-nationalism and multi-culturalism are getting stronger in Canada. Step by step, Canada strengthens the basics to show and prove itself to the world.

 In the near future, Canada will be a country with population of 40 million, endowed with abundant natural resources. While the size of its market is growing accordingly, Canada pursues diversification of cooperation partnership from heavy dependence on its neighbour, supported by the global ethnic network from the multi-national integration. It does not stop there. Canada continues to explore promising potentials to survive and to be competitive.

 The oil and gas from the inland Canada are looking for the exit to the Pacific. The Free Trade Agreement with Korea is not enough. Other partners are on the waiting list. Canada joined the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 In the advent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he development of AI and space industries is also encouraged.

 

III

 To make its own voice in the world, Canada does not hesitate to play its deserved and required role. It has never refused the role as an honourable member state of the NATO together with active participation in the UN peace keeping operations. For the purpose of making contribution to the peaceful settlement of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the Vancouver Foreign Ministers’ Meeting was hosted in 2018. To promote the fair trade and to fight against protectionist movements in the world, it also provided a venue by hosting the Trade Ministers’ Meeting in Ottawa same year. In the area of climate change, Canada is a leading country implementing the Paris Agreement in the world.

 Though Canada is a member state of G7, it is comfortable and friendly to rest of the states in G20, further to other countries in the world. While maintaining the Canadian values, it has been fexible to others. Furthermore, Canada does not show ambition to the world, but it proves that Canada is a country of principle. Even better, Canada is a country facing Pacific as well as Atlantic Ocean under no threat from outside. Thus, it can accommodate all the philosophies and religions of the world. Canada can embrace all the countries with different ideolgies.

IV

 Suddenly, some idea strikes me. Toronto is the heart of Canada, and from there many things can be initiated for change of the world by realizing the above mentioned merits, advantages and potentials. Toronto is strong in economic, political, socio-cultural, and geographical features of Canada. Commercial and mining finances in Canada are centered in Toronto. Lots of investments are guided to the AI and IT industries in Greater Toronto Area. Many think-tanks and educational institutions are concentrated in and nearby Toronto. Many opinion leaders are working there, influencing the provincial and federal politics. Most important is that the GTA accommodates the various ethnic communities from across the world.

 The global ethnic network from Toronto makes many things possible too. Toronto has a potential to be a hub of entertainment industry or another Hollywood in Canada. The hub is possible by absorbing and processing various national stories from rest of the world, to consume the result products in the enlarged domestic market, and to disseminate them to the world through the ethnic network and diversified partnerships. As a byproduct, if redeveloped a little more, Toronto can be a widely known tourist attraction surrounded by its various ethnic communities. Furthermore, supported by upgrade of AI and IT industries, the smart economy may come true, probably leading to construction of a smart city at the waterfront, and making Toronto another mecca of the future to be followed by other countries.

 

V

 Many think-tanks together with opinion leaders in Toronto can guide the open, comfortable and friendly Canada to make friends as many as possible in the world, thus strengthening its global voice. They can also contribute to Canada’s global leadership in peace by suggestion of sending peace delegations to Asian regions in conflict, and in world economy as well by advocating the principle of fair trade. Or they can do that with some peace initiatives in Asia, an example of which may be organizing regional memorial events for the tragedies in the World War II, comparable to the Victory Day commemoration in Europe. There are still many other opportunities to initiate change to create better future of the world from Toro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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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3
한 해를 보내며

임정남 기고

(토론토)

 

 2020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로 두려움과 우려 속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으며, 또한 한국의 정치에 우려와 걱정이 깊었으며, 그러한 속에도 보람과 희망이 가득 했던 해였습니다

우선 코로나로 10여 년을 함께 걷고 커피를 마시며 얘기꽃을 피우던 ‘아침의 향기’ 그룹 활동을 중단시켜 아쉬움이 컸으며, 10여 년

저녁 근무였던 직장이 새벽 근무로 바뀌고, 3월부터 미용실 폐쇄로 자가 이발, 바깥 출입 대신에 드라마 보는 시간을 채워줬습니다.

 

무궁화가 준 특별한 선물

무궁화를 실내에서 기른 지 3년. 그런데 올해는 아주 특별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1월14일 무궁화 한 송이가 활짝 핀 것입니다. 겨울에 핀 것도 신기하고, 무엇보다 1월14일은 우리가 캐나다에 이민 온 날이라 더욱 감격스러웠습니다.

이것은 기적 같은 일이요. 무궁화가 저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라 생각 들었습니다. 무궁화사랑모임에서는 토론토 여러 공원에 무궁화 동산을 만들었는데 여름이

되면 늘 저는 큰 걱정을 합니다. 그것은 풍뎅이 때문입니다. 한 해는 얼마나 풍뎅이가 많은지 무궁화가 꽃을 피우기 전에 다 갉아먹어 흉하고, 무궁화 동산이 없어질까 가슴을 태웠습니다.

참으로 그때는 눈물 겨웠고, 8일 동안 풍뎅이 잡느라 너무나 혼이 낫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풍뎅이가 없고 튼튼하게 활짝 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제비와의 재회

매년 아파트 지하 차고에서 제비가 집을 짓고 살았는데 작년에 아파트 공사로 들락날락 하던 차고 문이 공사로 한달간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난 제비에게 알려줄 수도 없고 굶어 죽지나 않았을까 가슴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지난 6월4일 제비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난 제비를 보자 뛸 듯이 반가웠습니다.

 

화분 분양

화초가 커지고 많아졌습니다. 겨울이 오면 화초를 어찌하나 걱정하던 차에 런던에 있는 딸이 달라기에 8월24일 차에 가득 싣고 딸네 집에 분가를 시키니 자식 분가시키는 듯 감격스러웠습니다.  

 

4552 일일 방문기록

 2003년 컴맹을 벗어나고자 63세에 컴퓨터를 배우고 시작,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지난 12월3일에는 일일 방문자 수가 4,552명으로 기록을 세웠습니다. 현재 총 방문수는 377만7926. 정말 놀라운 기록으로 감격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현충일 행사

무궁화사랑모임에서는 매년 제임스가든 이상온 무궁화 동산에서 한국전 전사자들을 위한 현충일 추모행사를 열고 있는데, 금년에는 코로나로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우선 행사 허가가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정훈 회장님과 가지치기를 하면서 공원 담당자에게 신고하니 흔쾌히 허가를 내주었고, 거리두기를 지키며 11월10일 11회 현충일 행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추모동산 새 모습

5년 전 무궁화사랑모임에서는 평화사 경내에 캐나다군 한국전 참전 516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516그루의 무궁화로 150여명의 교민들이 모여 추모 무궁화 동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돌보지 않아 많은 무궁화가 사라지고 잡초에 가려 죽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금년에는 일부분 평화사에서 풀을 깎아주어 생기가 돌고 많은 무궁화 꽃이 피어난 것을 보니 얼마나 고맙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한 해를 돌이켜 보니 코로나의 두려움 속에서도 활력과 보람, 희망이 넘치는 한해였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깊은 감사의 뜻을 담아 봅니다. 그리고 새해 소망을 빌어봅니다.

 우선 코로나가 종식되어 세상이 정상을 되찾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어두운 터널에서 허덕이는 대한민국이 긴 터널을 지나 밝은 세상을 맞이하기를, 한인회 국세청 감사도 원만히 해결되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

제임스가든 이상온 무궁화 동산에는 수천 개의 새 무궁화가 자라고 있는데 새해에는 많은 무궁화를 분양할 계획으로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위령의 벽에 작년 가을 새 무궁화동산을 만들었으나 아쉽게도 많은 무궁화가 죽었는데 새해에는 다시 단장할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새해는 80세가 되는 의미 있는 해입니다. 그래서 새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합니다. 제목은 ‘영원한 미소’. 지난 80년 세월을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황혼을 위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의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도 희망과 활력에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용기를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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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8
검찰 개혁을 보는 눈

윤종호

(캐나다한인문인협회 회원)

[email protected]

 

한국의 신문, 방송들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대 윤석열 검찰총장 간의 노골적인 싸움으로 매일 도배된다. 희한하게도 윤 총장이 “조직 어쩌구. ” 하는 말을 읊을 때마다 그의 처신을 보는 다른 부문에 종사하는 공무원이나 평범한 국민의 마음속엔 “뭔가 빗나가는구나.”라는 느낌이 일어날 것 같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기대는 그 조직은 말할 필요도 없이 만천하를 무릎 꿇리면서 시시때때로 국민의 머리 위에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휙! 휘-익~~!”하는 칼바람 소리를 일으켜 백성을 주눅들게 했다. 서민들은 뭔가 불만이 있어도 머릴 치켜 들거나 한마디 항변을 할 엄두도 낼 수 없게 하는 그 조직을 말한다.

 ‘그 위대한 조직’의 일원이 된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나듯’ 구질구질한 옛터를 벗어나서 훨훨 날아오르는 짜릿한 맛을 본 이후로는, 순식간에 그 조직의 생리에 젖어들 것이다. 검찰이 스스로 개혁할 리가 없으니 대통령과 장관들이 교대로 그 험한 작업에 투신했다.

70년 넘게 권력의 안방에 똬리 튼 공룡같은 검찰권을 수술하는 추 장관이 욕 먹고 피를 덮어쓰는 것은 당연하다. ‘검찰 개혁’, ‘공수처 발족’이라는 시대적 소명에 몸 바쳐 나서서 넓은 전쟁판을 뛰어다니며 분투하는 추 장관을 보는 눈도 각자의 입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관전평이 큰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법조계 내에서도 평하는 온도가 다르다. 그렇게 한 분파적인 생각으로 보고 평하는 주장은 그쪽 편의 마음을 사기엔 충분하나 반대편 쪽의 생각을 지닌 국민의 마음에는 전혀 호소력이 없을 것이다.

한국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적으로 지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누리는 집단이다. 그런 원인과 이유는 꽤 길다. 독립지사들을 추달하던 왜정시대, 좌우 대립으로 험난했던 해방 직후, 6.25 전쟁 후의 반공 이데올로기, 군사정부 등이 흔들리는 사회를 강권으로 제압하던 과정에 커지고 굳혀진 국가 공권력의 행사 방식이요, 독재자의 손 역할을 해오던 조직이다.

 민주화 과정에 많은 비민주적 조직이 개선 또는 변화했지만 그대로 남은 유일한 숙제가 ‘검찰개혁’이다. 문재인 정부는 선거 때 그 점을 우선적인 공약으로 내걸었고, 지금 그 일을 하는 중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섣부르게 추진하다가 보수 언론과 검사들의 조직적 반발로 실패하고, 자신의 명을 단축한 사건은 교훈이 되고 있다.

 공직자가 누구나 국민에 봉사하고 국리민복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자기에게 쥐어진 권한이 클수록 원칙과 신념은 흐려지고 권력 행사 그 자체에 탐닉함으로써 억울한 사람이 생겨나게 하고, 불의의 재물을 탐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게 된다.

 검사가 형사 피의자에게 성 상납을 받고, 그랜저 승용차를 받고, 사업하는 친구로부터 백억 원 상당의 주식을 선물(?)로 받은 사건이 천하에 드러나도, “그것은 뇌물이 아니라 아름다운 우정(?)의 징표”로 넘기는 검찰의 행태를 보는 국민은 허탈해진다.

 평검사 일부가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어 “추 장관의 횡포” 운운함은 순수한 마음으로 읽히지 않는다. ‘선배 검사들이야 좋은 시절을 만끽한 재미라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이게 뭔가? 열심히 공부하여 검사직을 누리려 하는 참에 ‘공수처 발족’이니, ‘검찰개혁’이니 하면서 가장 비민주적 관행을 깨트리고 가장 민주적인 공무원 생활을 해야 할 판이라 섭섭하고 야속하기 한량없다.”라고 외치는 소리쯤으로 들린다.

 평검사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진정 헌법과 법률이 가리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던가? 그대들이 잘했다면 왜 ‘검찰 공화국’이란 소리가 나오며, 왜 우병우, 김기춘이 감옥을 들락거리는가? 그대들의 하늘 같은 상전이던 박근혜나 이명박이 왜 감옥 생활을 하는가? 2016년 10월부터 눈비 나리는 영하 10도의 추위를 무릅쓰고 2017년 2월까지 주말마다 백만 명씩 평화적인 시위를 펼치던 촛불 혁명의 함성을 잊었는가?

 쫓겨났거나 영어의 몸이 된 권력자들이 나쁜 짓을 할 때는 대부분 검사가 손발의 역할을 했음은 국민이 안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에 구속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에 국회의 탄핵 결의와 헌법재판소 탄핵 재판을 거쳐 쫓겨나고 구속되었다. 그런 정변 후에 검사들 중에 “내가 큰 잘못을 했다. 죄송하다.”거나, “나는 검사로서 올바른 공직자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니, 이제 검사직에서 물러납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양심 고백하는 검사를 본 기억이 없다.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남북통일”을 되뇌며 통일을 입술에 올릴수록 통일의 가능성은 자꾸 멀어지는 느낌이다. 그런 역설처럼 수신(修身)에 낙제점을 받을 검찰총장이 “조직” “조직”하고 검찰 조직을 입에 올리며 전국을 순시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그는 조직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깡패 조직도 개인의 사조직도 아닌, ‘검찰’이란 지극히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 공조직을 이끄는 사람이 스스로 편향적인 자세로 바람을 잡는다면 그는 점점 수렁으로 빠져든다. 선거로 뽑혀서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닌 사람이, 야당이 추켜주고 보수 언론이 부채질하는 바람에 본래의 길을 벗어나서 본인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국가와 국민은 검찰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조속히 검찰개혁이 이루어져서 민주주의에 걸맞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검찰’로 새로 태어나기를 빈다.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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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6
유튜브 강좌를 시작합니다-한인 시니어분들의 많은 참여를


이민
(전 MBC 사진기자)

 

 저의 친한 벗, 마인즈 프러덕션의 황현수 씨와 부동산캐나다 이용우 사장과 함께 토바구(‘토론토 이바구’)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토론토에서 활동하시는 화제의 인물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첫 편을 제작한 후 코로나가 창궐해 시작과 동시에 휴면에 들어갔습니다. 한두 달이면 끝나겠지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활동을 재개할 때까지 ‘토바구 유튜브 강좌’를 해볼까 합니다.

 

 몇 달 전, 토론토에서 활동하시는 유튜버들의 모임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창립행사도 성황리에 가진 것으로 들었습니다. 같은 유튜버로서 축하드릴 일입니다. 그런데 그 모임을 알고 조금 놀랐던 점이 세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유튜브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 두번 째는 회원분들 중에 연배가 되시는 분들이 꽤 많다는 사실, 세번 째는, 모임에 참석하시는 몇 분을 만나뵙고 안 사실이지만, 관심만큼 유튜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마 토론토에 사시는 시니어분들 중에는 모임에 참석하지 않지만 유튜브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이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만든 비디오를 많이 보기도 하고 본인 것도 많이 올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셀폰 하나로 찍고 편집하고 올리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10년 넘게 유튜버로 활동하며 백여개가 넘는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그중 방문자수 200~300을 넘는 비디오는 극히 일부입니다. 그러니까 완전 허당인 유튜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강좌를 해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국과 캐나다에서 방송국 생활을 20년 넘게 했기 때문에 비디오 제작에 관해선 ABC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심은 많지만 지식이 부족한 시니어분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 지식이 모든 계층에게 도움이 될만큼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니어 분들의 유튜브 입문을 안내시켜드릴 만큼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유튜버 활동을 하고 계시는 몇몇 분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후 느낀 점입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같이 하고 싶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튜브 구조와 운영

-비디오 잘 찍는 법

-비디오 편집(openshot 사용 예정)

-비디오에 필요한 컴퓨터 그래픽 두개(gimp와 inkscape),

-음성녹음 및 편집(audacity) 등

 

 제가 시니어분들에게 유튜브를 권하고 싶은 이유는 첫째,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습니다. 둘째, 요모 조모 머리쓰며 할일이 많아 두뇌운동이 됩니다. 셋째, 좋은 비디오를 위해 많이 움직이게 됩니다. 넷째, 여러분의 삶이 기록으로 남습니다.

 

 그외 좋은 점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수익창출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우고 싶은데 마땅히 배울 곳이 없는 시니어분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시작합니다. 

 

 저도 토론토에 거주하는 시니어이기 때문에 여러분과 의견을 나누며 이루어지는 강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강좌는 매주 한두 개씩 <부동산캐나다> 웹사이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카톡아이디 hifi8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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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북으로 개인 여행 허용해 비정부 민간 교류 시작하자


박진동 (토론토 민주평통자문위원)
[email protected]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누며 휴전선 경계를 함께 넘나들고, 북한의 군중들 앞에서 남한 대통령이 연설도 하고,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지도자와 만나 정상회담을 하며 엄지 척을 하던 한두 해 전만 해도 한반도는 평화를 넘어 통일도 멀지 않은 듯이 보였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간 협상을 미국내 자기 홍보용으로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로 그 희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왜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에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가? 남북을 적대적 상태로 만든 70년전 6.25전쟁은 현재 휴전 상태이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 전쟁 상대국 사이에 평화협정과 외교적 관계를 만들어야 진정으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6.25 전쟁이 남과 북이 싸운 것이라 알고 있지만 군사 지휘권을 기준으로는 북한과 미국이 했고, 휴전협정도 북한 김일성, 중간에 참전한 중국군과 미군 사령관이 서명했다.

 

지금도 남한의 전시작전권은 미군이 갖고 있고, 한국정부는 전쟁을 종식하는데 권한이 없으며 평화체제를 만들 수 있는 당사자가 아니다. 그 평화를 만들 당사자가 미국과 북한인 것이고 그것이 바로 북미정상회담을 하는 이유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한 이유는 미국과의 협상능력(위협할 수 있는 존재 증명)을 갖고자 하는 것이었고 핵폐기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그 평화와 북미 수교이다. 북미 양측의 협상 주장을 요약하면, 미국은 ‘핵폐기 먼저 북미 수교 나중’, 북한은 ‘평화협정과 핵폐기 동시 진행’이라 할 수 있다.

 

핵시설 및 핵물질의 물리적인 폐기를 전제로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 미국에 불리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동안의 북미 관계를 보면 미국은 평화보다는 미국에 위협처럼 보이는 북한이 동북아 전략에 오히려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간 후 답답한 사람들은 평화와 교류의 당사자인 남북한 정부와 국민들이다. 북한은 그 답답함을 남한에 원성으로 퍼붓고 있다. 미국은 UN을 움직여 대북제재를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고 남북간 경제교류도 막고 있다. 남한은 한미동맹을 굳게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라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제교류를 강행하기 어렵다. 때문에 곧 재개될 것이라 기대했던 개성공단도 언제 열릴지 요원해졌다.

 

이 교착상태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서 휴전선에서의 민간 왕래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한다. 차량이 UN제재의 대상이라면 차량 이용하지 않고 도보 또는 자전거 자유왕래를 허가해주면 좋겠다.

 

 배낭을 메고 설악산에서 비무장지대 (DMZ)을 거쳐 금강산에 걸어서 가고, 개성까지 자전거 여행으로 다녀오고, 도보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건너가 북한의 교통 수단으로 평양을 다녀오고 하는 것을 남북 정부가 허용해 줄 수는 없을까?

 

 막연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방법으로라도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한국민의 북한 방문이 어렵다면 외국인의 판문점 통과 방북을 허용해주면 좋겠다. 북한관광을 원하는 많은 해외동포들과 미지의 나라를 보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그 길을 이용할 것이다. 남과 북은 해외 관광객 유입으로 경제적인 효과도 얻게되고 민간의 왕래가 많아지면 남북간의 적대감이 줄어들고 서로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기회들이 생길 것이다.

 

많은 민간 왕래가 휴전선의 군사적 대치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그러한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져 평화에 대한 세계 여론을 형성한다면 그것이 북미 회담이나 주변 강대국, 즉 미일중러 등에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정치인이나 정부는 복잡한 외교적 정치적 입장에서 앞으로 나가기 어렵고 오히려 시민들이 진보적이 되기도 한다. 남과 북의 시민들은 평화를 갈구한다. 그들이 직접 그것을 이루도록 허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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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2
은퇴 후의 삶(2)

독자 기고

레이 강(Ray Ghang)

 

 65세에 은퇴 후 아파트로 이사하였다. 아파트 안에서 새 이웃을 만나면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관심있게 보면 특별한 사정이 있는 분이 많다. 어느 그리스계 노부부는 고국과 이곳에 집이 있는 부자인데 이 작은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말년을 보내고 있으며, 80세가 넘은 백인 A여사는 군공무원으로 은퇴한 수준높은 엘리트인데 몸이 불편하여 항상 벤치에 앉아 있는데 60세 알콜중독 아들이 가끔 구타하는 불행한 여인이다. 귀가시 커피를 자주 사드린다.

 

 70세 백인 B여사는 무릎 관절병이 있어 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항상 벤치에 앉아 있다. C여사는 아직 젊은 50대인데 복부에 큰 혹이 있는 환자로 보행보조기를 끌고 이동한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병 문안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들은 로비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아 귀가시 그들을 만나면 들고 오던 과일을 나누어 주면 허물없이 받아들인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주고받는 행위를 자연스럽고 평범히 여긴다. 뒤끝도 없어 이런 일이 오래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혹으로 고생하는 50대 여인은 기력이 너무 없어 어쩌다 장을 보고 카트를 밀고 올 때 아주 낮은 경사길인데도 밀고 올 힘이 없어 멈춰서 있기도 한다. 무거운 수박이나 쌀, 우유 등은 쇼핑하지 못한다. 내가 도와주어야 할 때가 많다. 해가 갈수록 건강이 나빠져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면 한 2개월 외출과 쇼핑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사나? 쇼핑을 못하는데… 경제사정도 어려워 가끔 버스티켓도 요구하고 찾아오는 가족친지도 없는 것 같고.. 이런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 여인에게 지원을 집중하기로 했다. 몸이 불편하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 쉽다. 먼저 쌀을 한 포대 사주니 감사히 받는데 절망과 슬픔이 가득한 목소리다. 주식이 빵이란 생각에 식빵을 사주니 또 매우 슬픈 목소리로 “Thanks” 한다. 요리에 필요한 올리브 오일, 신안 바다 소금, 한국 간장, 국산 고추가루 등을 사주었다. 또 환자이기 때문에 신선한 각종 채소와 과일 고기, 닭을 사주었다. 손힘이 없으므로 고기는 간고기로 샀다.

 

 무엇이 필요한지 물으니 ‘AA배터리’ 2개와 우유를 요구한다. 우유에 계란 꾸러미를 더해 사주었다. 그런데 채소 등은 어떻게 소비하는지 몰라 며칠 간격으로 또 사주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우유와 계란은 월 2회 공급하고 있다. 젊기 때문에 군것질로 초콜릿과 쿠키 등을 사주고 수박은 반 나눠주고 아이스크림은 1리터짜리 사서 반을 덜어내고 남은 반은 통째로 주면서 나누어 먹자고 말해준다. 바나나와 과일도 끊임없이 공급하고 있다. 옥수수, 흰감자, 단호박 등도 골고루 공급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 몇 달 후에는 식품을 받을 때 모기소리 같은 작은 목소리로 “Thanks” 하더니 몇달 후에는 맑은 목소리로 “Thanks” 한다. 그 몇달 후엔 힘있고 청아한 목소리로 무어라고 몇마디 하면서 “Thanks” 한다.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목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다.

 

 Ginger ale과 Red Rose Tea를 요구한다. 요즘은 단정히 차려입고 보행보조기를 끌고 나오기도 한다. 식품을 건네주고 돌아서 오면 내 뒷모습을 오래 쳐다보다가 내가 돌아보면 쏙 들어간다. 오후에 귀가할 때면 발코니에 나와 한쪽 눈만 내밀고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어느날 한통의 전문이 배달되었다. 몇날 몇시에 집에 방문(Wellness Check)하겠다는 것이다. 아니 노인과 환자도 있는데 그들한테는 한번도 안 나오면서 나에게 무슨 문안을…

 

 정말 그날 아침, 그것도 이른 9시에 젊은 백인 남녀 2명이 방문나와서 몇가지 문의한 후 그 50대 여인에게 Food Support를 하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그 문제로 문안 확인차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회의 시스템과 깊이를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이 여인을 포함하여 연고가 없는 몇 분을 위해 크리스마스 연말에는 간소하게 송년의 밤 행사를 마련했으나 일이 벅차서 몇번 한 후 중단하였다. 이런 분들을 위해 다소 위안을 드릴 수 있음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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