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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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생애(8)-이삭의 아내를 선택하는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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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이 자기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청하건대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지방 가나안 족속의 중에서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지 말로, 고향 족속에게로 가서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 24:1-4)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욕산은 스비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스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니 족속이며,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창 15:1-6)

 

사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삭은 37세였다. 그녀가 90세에 이삭을 낳았고, 127세 되던 해에 타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기는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어째서 독자 이삭이 37세가 되도록 결혼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 까닭이 기록에 남아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기다리다 얻은 아들을 되도록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마음에서 그들은 이삭의 결혼을 서두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삭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항상 곁에서 지키고 돌보아주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마련해 주는 부모를 떠나 따로 가정을 이루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라가 세상을 등지자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혼시키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며, 이삭도 어머니처럼 그를 보살펴 줄 아내가 있어야겠다고 느꼈을 것이다.

 

사라가 떠난 지 3년이 지나 이삭이 40살이 되던 해에 아브라함은 아들의 배필을 구할 준비에 착수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방 여인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선택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사라가 살아있을 때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가 자녀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그 자신이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서 상황을 알아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이삭을 그리로 보낼 수도 없었다.

 

결국 아브라함은 그의 재산을 전부 관할하는 충복을 불러, 손을 그의 허벅지 밑에 넣어 하나님께 서약하게 한 후 “너는 여호와께 내 아들을 이곳 가나안 여자와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 내 고향의 친척들에게 가서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여라.”라 분부한다.(창 24:3-4)

 

아브라함이 이 사명을 준 종은 사라가 이삭을 낳기 전에 그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던 엘리에셀이라 추정된다(창 15:34). 그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잘 알고 있었던 엘리에셀은 “여자가 나를 따라 이곳으로 오려하지 않으면 이삭을 데리고 거기로 다시 가야 합니까?”하고 묻는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말한다.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는 말아라. 나로 하여금 그곳을 떠나게 하시고 이 땅을 내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 것이니 너는 거기서 내 아들의 신부감을 구하여라. 만일 여자가 너와 함께 오기를 원치 않으면 너는 지금 하는 맹세를 지키지 않아도 좋다.”

 

엘리에셀은 낙타 열 마리에 여행과 혼인을 성사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싣고 하인들과 함께 헤브론에서 800키로나 떨어진 하란으로 출발한다. 멀고도 험한 여행 끝에 하란 성 근처에 도달하여 거기 있는 우물가에 낙타들을 쉬게 한 후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충복답게 그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한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로 나왔다. 이삭의 아내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이 아름다우면서도 청순한 여자였다. 그녀에게 물을 청해 마시고, 낙타들에게도 물을 먹인 후 그녀가 아브라함의 조카 브두엘의 딸인 것을 확인한 엘리에셀은 그녀와 함께 브두엘의 집으로 간다.

 

집안으로 들어선 엘리에셀은 브두엘에게 그의 신분을 밝히고 아브라함의 근황에 관해 들려준 후 그가 온 목적을 말하고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게 허락해달라고 요청한다. 그의 말을 들은 라반과 브두엘은 “이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니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리브가를 데리고 가서 당신 주인의 아들과 결혼하게 하십시오.”라 대답한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브두엘은 리브가와 이삭의 결합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었지만 라반은 엘리에셀이 리브가에게 준 금고리와 팔찌를 보고 동생을 이삭에게 시집보내도 좋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사실이다.

 

라반이나 브두엘의 생각이 어떠했든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을 계획하고 진행시켜 성사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엘리에셀을 가나안에서 하란까지 가게 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고, 엘리에셀이 하란 성 밖의 우물가에서 한 기도를 들으시고 리브가를 우물로 내보내어 이삭과 리브가 맺어지도록 주선하신 분도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이튿날 엘리에셀이 리브가와 더불어 떠나려 하자 라반과 그녀의 어머니는 며칠만이라도 그녀가 집에 더 머물기를 원한다. 엘리에셀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속히 가야 한다고 하자 리브가 본인의 의견을 묻게 된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그날로 출발하겠다고 한다.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리브가가 엘리에셀을 따라 20일 이상 광야를 횡단하여 이삭이 머무는 곳에 도달했을 때 황혼이 붉게 물든 저녁 무렵이었다.

 

들판에 나가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묵상하며 기도하던 이삭은 멀리서 다가오는 엘리에셀 일행을 발견하고 그들을 향해 걸어갔고, 낙타 위에 앉았던 리브가는 다가오는 사람이 그녀의 남편이 될 이삭임을 알게 되자 너울로 얼굴을 가린다. 황혼이 곱게 물든 들녘에서 리브가를 맞이한 이삭은 그녀를 어머니 사라가 거하던 천막으로 인도하여 신방을 차린다.

 

그 당시에는 “일부다처제”가 성행했으며,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아내를 여러 명씩 거느렸지만 이삭은 한평생 리브가만을 사랑한 충실하고 헌신적인 남편이었다. 이삭과 리브가의 결합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시작되어, 진행되고, 성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맺어주시면서 세워주신 “일부일처제”의 원칙을 지키며 산 모범적인 부부였다.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은 그두라를 후처로 맞아드린다. 사라와 사별한 후에 한 재혼이기에 그두라는 하갈처럼 소실 아닌 후처였다. 그런데도 그녀가 소실로 기록된 것은(창 25:6; 대상 1:32) 그녀의 아이들이 이삭과 같은 언약의 자식들이 아님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라 사료된다.

 

아브라함의 세 번째 여자인 그두라는 자식이 하나뿐이었던 사라나 하갈과 달리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다. 이는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던 것은 아브라함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브라함이 그두라의 소생들을 어떻게 대했느냐 이다.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그녀의 아들 이삭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사라가 분노하자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쫓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두라의 아들들에게는 재산을 나누어 주어 동방으로 가서 살게 하였다. 물론 그는 서자들을 이처럼 관대하게 대우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고대 사회에서는 본처와 소실은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없었고, 소실의 자식들도 가문의 계승권이나 재산 상속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서자들에게 재산까지 나누어주며 멀리 가서 살게 한 데는 깊은 신학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갈과 이스마엘로 인해 아브라함이 번민할 때 하나님은 “이스마엘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에게도 많은 후손을 주어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창 21;23)라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셨다.

 

아브라함이 그두라의 소생들에게 재산을 주어 동방으로 보냈기에 그들이 이삭과 함께 있으면 생길 수도 있는 분쟁의 요인이 없어졌으며, 그들의 자손으로 인해서도 큰 민족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아들들의 후손들이 아랍 민족의 조상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관용과 성숙한 신앙과 굳건한 믿음으로 그의 가정이 화평을 유지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 전에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식 아닌 이스마엘 같은 서자의 신세였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기 전의 우리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기에 하나님의 약속에서 제외되어 소망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엡 2:11-12).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영원한 하늘나라를 향하는 복된 사람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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