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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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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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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3
모세의 생애(13)-민족해방의 사명을 완수한 모세(3-하)

 

(지난 호에 이어)

누구보다 온유하고 겸손하며 불굴의 인내심을 지니고 그를 향한 백성들의 끊임없는 원망과 비난을 받아들이던 모세가 그들에게 혈기를 부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한 대가는 참으로 컸다.

그런데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민 12:3) 모세가 분노를 참지 못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백성들이 모세를 둘러싸고 마실 물이 없다며 그를 원망했을 때 모세는 누이 미리암의 죽음으로 극심한 슬픔에 잠겨있었다.(민 20:1)

따라서 모세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어느 때보다 필요했다. 그런 모세에게 백성들이 몰려와서 애굽에 그대로 있었으면 편안하게 살 그들을 광야로 끌어내어 온갖 고통을 당하게 한다며 대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모세가 지닌 인내의 한계가 순간적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백성들을 향해 “반역의 무리”라 외친 것이다.

누이를 잃고 상심한 상태에 있던 모세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치면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야 하겠느냐?”라 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권능자인 것 같이 행동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라고 한 것은 백성들에게 그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한 것이었지, 그것으로 반석을 치라고 명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때린 것은 그에게 반항하는 백성들을 향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그것보다 더 중대한 잘못은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광야에서 백성들을 인도하면서 한 번도 하나님에게 불복한 적이 없었던 모세가 가나안의 문턱에 서서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

모세가 범한 더 큰 죄는 그가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모세가 바로 앞에서 던진 지팡이가 뱀이 되었고(출 17:10), 그가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자 강물이 피로 변하였으며(출 7:20), 홍해를 향해 그의 지팡이를 내밀었을 때는 바다가 갈라지며 길이 생겼다(출 14:21). 이 모든 기적들은 모세의 권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도구로 사용하여 행하신 기적들이었다.

다시 말해, 기적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셨고, 모세는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세가 물을 달라며 그에게 대드는 백성들을 “반역의 무리”라 부른 것은 배은망덕한 그들을 향한 인간 모세의 분노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치며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어야 하겠느냐?”고 소리 친 것은 마치 그가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는 권능의 소유자처럼 행세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나를 거룩한 자로 높이지 않았다.“고 꾸짖으시며, 그들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특권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명대로 하지 않고 지팡이로 바위를 친 사람은 모세였지만 아론까지 정죄 당한 것은 그가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으며,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간 동안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게 하였고(출 32:1-6), 미리암과 함께 모세의 권위에 도전한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민 12:1-19)

일평생 충성을 바친 충실한 종 모세가 단 한 번의 실수로 그토록 원했던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모세를 모압 땅에서 죽게 한 하나님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세는 한마디 변명이나 항변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린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를 그의 후계자로 정하고(민 27:12-23), 강하고 담대하게 이스라엘 자손을 거느리고 가나안으로 진군하라고 당부한다.(신 31:7)

동시에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도록 동행해 주실 것이며(신 31:6), 하나님은 그들의 방패시며, 돕는 자시며, 영광의 칼이시기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신 33:29)

이 모든 일을 마친 후 느보 산에 오른 모세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모두 보여주셨다. 모세는 그의 눈앞에 펼쳐진 축복의 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역사적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동행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어, 하나님이 주신 민족해방의 사명을 완수하고 120세에 하나님의 품에 안긴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요, 위대한 선지자요, 율법의 전수자요, 이스라엘의 아버지였다. 그가 묻힌 곳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성경이 말해주는 그의 비문이 이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가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신 3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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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모세의 생애(13)-민족해방의 사명을 완수한 모세(3-상)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여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신 34:1-6)

 

모세는 8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4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가나안으로 인도해 간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다. 이 기간 중 모세가 한 가장 중요한 일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율법을 전해준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은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의무 4개와 인간 상호간의 의무 6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 10개의 계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삶의 지침으로서 인간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인간이 십계명을 철저하게 지켜서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모세가 전해준 하나님의 십계명을 통해서는 우리의 죄악을 깨달을 수는 있어도, 그것을 준수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까닭은 인간이 준수할 수 없는 율법을 완전히 지키심으로 율법을 완성시키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영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모세는 율법의 전수자였을 뿐 아니라 성막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 이스라엘 민족의 대제사장이기도 하다. 40년 간 광야생활을 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막은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것이었다. 성막은 그들이 광야에 거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꼭 있어야 할 성막을 모세는 설계로부터 완공까지 그리고 그 내부 장식 전부를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완성하였다.(민 40:1-38)

성막 안으로 들어서면 번제단, 물두멍, 진설병 상, 등잔대를 거쳐 지성소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들을 통과하는 하나하나의 과정이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를 말해주고 있다.

성막은 40년 간 광야를 방황한 이스라엘 민족은 물론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믿는 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재 하여 계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성막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었을 뿐만 아니라 험한 광야를 헤매면서도 레위인들로 하여금 지키고, 관리하게 한 모세의 지도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모세의 업적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도피성을 마련한 것이다.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 것을 여섯 번째 계명으로 명시하셨고,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사형에 처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획적이거나 고의적이 아닌 우발적인 실수로 사람을 죽인 행위가 살인으로 취급되어 처형당하거나 보복살해 당하지 않고 피신할 수 있는 도피성을 마련하도록 모세에게 지시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도피성을 준비하게 하신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목적은 피해자나 가해자의 인권을 동시에 보호하며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도피성으로 지정된 성은 요단 강 동편에 세 곳(신 4:41-43), 요단 강 동편의 세 곳 모두 여섯 곳인데 요단 동편의 세 성은 모세가 살았을 때 지정되었고, 나머지 세 곳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끝낸 후에 마련되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에 따라 도피성을 마련한 것은 사형 당해 마땅한 살인의 죄를 범하고도 찾아가는 도피성에서 받아들여지면 죽음을 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면 어떤 죄를 범했을 지라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모세가 40년이란 긴 세월을 미디안 광야에서 지낸 것이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데 필요한 영적 수련을 쌓는데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을 광야에서 떠돌아야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나안 복지를 차지할 자격을 구비하기 위한 범민족적인 훈련을 받기 위함이었다.

이 중요하고도 어려운 훈련을 담당한 모세는 매사에 불평만 하는 백성들을 사랑과 인내로 포용하며 그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러나 힘든 훈련이 끝나고 그들이 축복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둔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그들을 거기까지 인도한 모세가 그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다며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와 불평을 늘어놓자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하나님은 그에게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향해 “물을 내라”(민 20:8)고 말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아론과 함께 백성들을 반석 앞에 모은 후 모세는 그들을 향해 “반역한 무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고 소리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다. 순간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와 백성들과 가축들이 마시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선포하셨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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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9
모세의 생애(13)-민족해방의 사명을 완수한 모세(2-하)

 

(지난 호에 이어)

모세가 진정한 용기를 발휘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선두에서 광야 길을 걸으며 모세는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백성들은 끊임없이 그를 비난하고 원망하며, 그에게 반항했지만 모세는 그들 모두가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는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 기도하는 동안 백성들은 마음 약한 아론을 압박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그들이 애굽에서 인도해낸 신이라며 기뻐한다. 이를 보고 노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진멸시키려 하시자 모세는 하느님 앞에 엎드려 기도한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큰 권능의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주의 백성에게 분노하십니까?(출 32:11) 주께서 이 백성을 다 죽이신다면 주의 명성에 대하여 들은 나라들이 여호와가 이 백성을 약속한 땅으로 인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광야에서 죽였다고 말할 것 아닙니까?”(민 14:15-16)

그러면서 모세는 “쉽게 노하지 않고, 사랑과 자비가 많아서 죄와 잘못을 용서하시지만 형벌 받을 자를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는”(민 14:18)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러셨던 것처럼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모세가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이때만이 아니었다. 계속하여 배은망덕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불뱀을 보냈을 때도 모세는 그들이 뱀에 물려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민 21:4-9)

이처럼 모세는 백성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쉬지 않았다. 모세의 중보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 범한 인간들을 위해 드린 중보기도의 전주곡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드린 기도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담당하며 그들의 죄를 위하여 하시겠다고 예언한 것과 같은 중보기도(사 53:12)였기 때문이다.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두 개를 들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 백성들은 금송아지에게 제물을 바치고,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분노한 모세는 손에 든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렸다.(출 32:15-20)

다시 산에 오른 모세는 금송아지를 섬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또 다시 중보기도를 드린다.(출32:30-32)

그때 모세는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시려거든 하나님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달라고 간구한다.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시는 대가로 자기를 생명책에서 삭제해도 좋다는 모세의 기도는 예수께서 인간의 죄 짐을 지고 십자가에 오르실 것을 미리 보여준 중보기도였다.

사도 바울도 그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 자신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도 좋다고 했을 정도로 동족을 사랑하는 참 목자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롬 9:1-3)

시간적으로 2,000년 이상의 차이가 나는 시대에 살았지만 모세와 바울은 형제자매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의 영혼까지 버릴 수 있는 예수님을 닮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기에 그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해내기 위해 세상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는 왕실에서의 삶을 미련 없이 버린 모세였다. 이제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을 이끌고 축복의 땅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위험하고 황막한 미디안 광야에서 고독하게 지낼 때와는 달리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인도하여 가나안을 향하여 나가는 모세는 언제나 영육 간에 피곤했으며, 한없이 외로웠다.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과 천부장을 선정하여 백성들을 돌보게 했고(출 18:13-26),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70인 장로들을 세워 그를 도와 백성들을 다스리게 했지만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총괄해야 하는 모세가 진 짐은 무겁기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몸과 마음은 편할 날이 없었다. 거기다 많은 백성들이 그들을 향한 모세의 희생과 사랑의 수고를 모르고 불평과 불만을 일삼으며 그를 괴롭혔고, 심지어는 그를 돌로 치려고까지 했다.(출 17:4)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제사장이 배출되는 레위 지파의 자손 고라가 모세에 항거하여 집단 반란을 일으켰다(민16:1-40). 르우벤 지파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과 250명의 지도자급 사람들도 이 반란에 가담했다. 고라의 반란보다 모세를 더 슬프게 했던 것은 그의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이 그의 지도권에 대항하여 일어섰던 사건이었다.(민 12:1-16)

이 모든 일들을 당하면서 모세는 한없이 슬프고, 괴로웠음은 물론 세상에 홀로 남은 외로움과 고독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200만이 넘는 백성들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듯한 고독 속에서도 하나님께 매달렸다.

죽을 운명을 않고 태어나 엉성한 대바구니에 누어 나일 강을 떠내려가던 어린 아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권능의 하나님이 그를 지켜주신다는 굳건한 믿음의 기도였던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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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2
모세의 생애(13)-민족해방의 사명을 완수한 모세(2-상)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다.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니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민 14:13-19)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외면하며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며,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주셨다.

 아말렉 족속이 여인들과 아이들이 많은 이스라엘의 후미를 공격했을 때 르디빔 계곡에서 그들을 격퇴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같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에 감사하는 대신 광야생활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내세우며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모세가 볼 때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바로와 대결하여 그들을 그의 손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가나안으로 인도하고 있는 그를 제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간 하나님의 특별훈련을 받은 모세는 그들의 그 같은 우매함과 무지함으로 인해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선을 악으로 갚는 행위로 인해 분노하지도 않았다. 어리석고, 무지하고, 은혜를 모르는 그들을 포용하면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것이 그의 사명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이 역사적 사명을 그가 배운 학문이나 능력 아닌 하나님의 뜻을 물어 감당한 지도자였다. 모세가 보여준 지도력은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민 9:23)란 말씀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을 향한 행군은 모세가 하나님이 명하시는 대로 진행한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모세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해에 도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격해 오는 애굽 병사들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면서 극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으며, 말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다. 천신만고 끝에 벗어난 애굽에 다시 끌려가 또다시 그들의 노예가 되어야 할 운명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백성들보다 더 당황하고 두려웠던 사람은 모세였다. 200만이 넘는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해 나왔는데 애굽의 추격대와 넘실대는 홍해 사이에 갖힌 상태가 되었으니 그가 내리는 결단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이 결정될 것을 그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도자 모세는 백성들을 향하여 외쳤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보라.”(출 14:13)라고. 그리고는 손에 든 지팡이를 바다위로 내밀었다. 권능의 하나님이 홍해를 그들이 피할 길을 만들어 주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정한 지도자의 용기가 아닐 수 없었다.

 위기를 가볍게 여기거나 위험 앞에서 태연하다고 용감한 사람이라 말할 수는 없다.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위태한 상황을 만나 뒤로 물러서는 것도 현명하거나 올바른 결단은 아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조용히 눈을 감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 그대로 행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검푸른 파도가 출렁대는 홍해를 향해 손에 든 지팡이를 높이 쳐들자 바닷물이 좌우로 갈라지며 홍해 한 가운데로 길이 만들어졌다. 모세가 진정한 용기를 발휘하여 하나님께 드린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다. 이때 모세는 다시 한 번 그의 믿음과 용기를 백성들에게 보여주었으니, 눈앞에 드러난 바다 한가운데 길로 주저하지 않고 앞장서서 들어선 것이 그것이었다.

 그들이 그 길을 걸어 홍해 건너편에 도달할 때까지 바닷물이 다시 합쳐지지 않는다는 그의 믿음과 용기를 보여주자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그의 뒤를 따라 홍해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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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6
모세의 생애(13)-민족 해방의 사명을 완수한 모세(2)

 

(지난 호에 이어)

모세로 인해 더욱 심한 노동을 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를 원망하자 모세는 그들의 불평과 원망을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은 바로로 하여금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으로부터 애굽의 모든 초태생들이 죽는 10가지 재앙을 내리신다(출 7:14-12:36).

하나하나가 하님의 뜻에 거역하는 비로를 향한 무서운 징계였기에 그 재앙들로 인해 애굽 사람들이 당한 고통과 피해는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바로는 갖가지 핑계를 대고 얕은 꾀로 생각해낸 조건들을 제시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 보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바로는 아홉째 재앙까지는 견디어냈지만 그의 장남으로부터 맷돌질하는 여종의 장남까지 그리고 가축까지도 처음 난 것들은 모조리 죽는 열 번째 재앙을 당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 보낸다.

200만이 넘는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을 출발한 모세는 광야 길을 통해 행군하여 홍해 앞에 이르러 장막을 쳤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 보낸 애굽 왕 바로는 60만이 넘는 노동력을 상실한 사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솟구치는 분노를 억제하기 힘들었다. 그때 모세가 홍해 해변에 진영을 이루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바로는 즉시 600대의 최신 전차를 선두로 추격대를 편성하여 히브리 노예들을 잡아오기 위해 출동한다. 이렇게 되자 홍해를 등지고 진을 쳤던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의 추격대와 홍해 사이에 갇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버렸다.

이때 모세가 두려움과 공포로 어쩔 줄 모르는 백성들을 향해 “너희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해지는 구원을 보라.”(출 14:13)고 외치며 손에 든 지팡이로 홍해를 내리친다.

그러자 넘실대던 홍해가 갈라졌고, 모세를 선두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홍해를 건널 수 있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 갈라진 홍해로 들어선 애굽 병사들은 갈라졌던 바닷물이 다시 몰려들면서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셔서 만든 바닷길은 그의 백성에겐 “구원의 길”이었지만 하나님을 대적한 애굽 병사들에겐 “파멸의 길”이었던 것이다.

모세가 앞장선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육지처럼 걸어 건너편에 도달하자 바닷물이 다시 몰려들어 그들을 추격하는 애굽 병사들을 전멸시킨다. 이 광경을 바라보며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 15:1-2)

높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시작된 모세의 노래는 한없는 고통과 슬픔 속의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으로 넘쳐흐른다.

동시에 모세는 전능하시고, 무소부재 하시며, 전지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이 무한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지만 죄악을 용납하실 수 없는 성결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으로 죄를 범하는 자는 그의 권능의 손길에 의해 파멸된다는 사실을 모세는 그의 노래를 통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모세의 노래 속에는 그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의 자질은 물론 시인으로서의 모세의 모습까지도 담겨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광야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은 광야를 횡단하여 가나안을 향하면서 모세가 불렀던 노래를 들으며 우리들의 영원한 가나안 복지를 향하는 순례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에 힘입어 애굽의 추격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번도 해보지 못한 광야의 행군을 시작한다. 그들의 광야 행군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로 가나안 복지로 향하는 축복된 행진이었다.

그러나 많은 백성들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위험하고 괴로운 광야생활을 하게 된 것은 모세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 여겨 처음부터 모세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모세와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반항은 그들이 40년간 광야를 방황하는 동안은 물론 가나안 정복기간과 사사시대 그리고 왕정시대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계속된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보호하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못하고 계속하여 하나님께 반역의 깃발을 드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의아심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 이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죄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은 “은혜는 강물에 흘려 보내고, 원한은 비석에 새기며” 살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을 향한 배반과 반역을 용서하기 힘든 죄악이라 한탄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포함되어 있지나 않은지 확인해야 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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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9
모세의 생애(13)-민족 해방의 사명을 완수한 모세(1)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로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6-12)

 

모세가 이스라엘의 최대 민족 지도자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줄 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학정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넓고 기름진 가나안으로 향하게 한 인물이 모세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가 택하신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또 하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모세가 그의 백성을 구원할 능력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를 선택하시고, 훈련시키시어 그에게 민족을 구원할 사명을 부여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모세뿐만 아니라 많은 그의 일꾼들을 같은 방식으로 선정하셔서 사용하셨다. 예레미야에게 “내가 모태에서 네 형태를 만들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구별하여 온 세상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 하신 말씀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택하시는 분이시다.(엡 1:3-6)

모세는 애굽 왕이 이스라엘의 모든 신생 남아들을 나일 강에 던지라는 칙령을 선포했을 때 태어났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특수 섭리에 의해 애굽 왕실에서 친어머니 요게벳의 젖을 먹으며 자라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애굽 왕실에서 지도자가 되는데 필요한 세상의 모든 학문을 통달하게 되어 40세가 되었을 때는 지도자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것이 모세의 삶의 첫 단계였으며, 그 후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특수 훈련을 받게 된다. 그 기간이 지나고 보니 모세는 힘도 능력도 모두 상실한 듯이 여겨지는 80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황혼기인 그때가 모세에게는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민족구원의 사명을 주신 것이 바로 그때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호렙 산에서 애굽으로 가서 고통 당하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라고 명하셨을 때 모세는 자기는 그 사명을 감당할 재목이 못 된다고 말씀 드린다. 그는 애굽 왕실에 거할 때 핍박당하는 동족들을 위해 그의 생을 바치기로 결단한 바 있다.(히 11:25-26)

그리고 40세가 되던 해에 동족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애굽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출 12:11-12). 고난 당하는 민족을 구하기 원하는 열정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세가 한 일은 지극히 경솔한 인간적인 처사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를 미디안 광야로 도피시켜 40년 간 그곳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올 수 있는 특수 훈련을 받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고된 훈련이 끝나고 하나님이 사명을 주시자 모세는 자기는 미약하고 부족하여 그처럼 중대한 일을 맡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모세가 백성들이 그를 그들의 구원자로 믿지 않을 것이며(출 4:1), 자기는 말도 제대로 못하니(출 4:10), “보낼만한 사람”(출 4:11)을 택하시라고 간청하자 하나님은 언변에 능통한 그의 형 아론을 그의 대변자로 선정해주셨고, 백성들이 그를 그들의 지도자로 인정할 수 있고, 애굽 왕 바로에게 보여줄 능력까지 부여해주셨다.(출 4:2-8)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역사적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와 동행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다.

모세를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가나안을 향하게 할 지도자로 선택하신 하나님은 그가 가장 안전하게 제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애굽 왕실에서 자라게 해주셨으며, 그 후 40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그의 도구로서 사용할 수 있는 영적 수련을 시키신 후에 애굽 왕과 대결하여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여건까지 구비케 하여 그를 적지인 애굽으로 떠나보낸 것이다.

애굽에 도달한 모세는 백성들에게 그들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출 4:29-31),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출 5:1)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다. 하지만 바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음은 물론 벽돌을 굽는데 없어서는 안 될 짚을 공급하지 말라 명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역을 증가시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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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조성훈의 재선이 의미하는 것



 1971년 7월의 마지막 날 밤에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난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는 소년처럼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지상의 천국이며, 약속의 땅으로 알려진 캐나다에 왔으니 나를 속박했던 가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보람된 인생의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캐나다는 광대하고 아름다웠다. 그 광활한 땅을 질서정연하게 다듬어 놓은 솜씨 또한 나를 경탄하게 만들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각종 복지시설들과 사회보장제도들은 내가 선 땅이 낙원이 아닌가? 라고 착각하게 할만큼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가나안 복지처럼 비옥하고 풍요로운 이 땅 위에 선 나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하고 미약함을 느껴야 했다. 아무도 나의 경력과 학력을 인정해주지 않았음은 물론 가슴에 품은 꿈을 이루겠다는 나를 격려해주려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영주권을 허락했으니 합당한 직장을 알선해 달라는 요청을 항의로 받아들였는지 이민국 관리는 냉정한 어조로 답했다. "Who told you to come to Canada?" (당신이 선택하여 캐나다에 온 것이 아닌가요)?

 

그 후 상당기간 난 “이 나라에 머물려야 하는가? 돌아가야 하는가?”는 독백을 수없이 되풀이 해야 했다. 그때 그와 같은 번민을 하며 괴로워했던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시기에 이곳에 발을 디딘 많은 이민자들이 나와 같은 문제를 안고 진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민자들이 당면했던 또 하나의 공통적인 문제는 언어와 풍습과 제도와 문화가 전혀 다른 이 나라에 정착하기를 원하는 이들을 인도하며 상담해 줄 수 있는 한인기관이나 단체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초창기 이민자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관계당국에 청원할 일이 생겨도 그 절차도 모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주저앉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 박탈당하거나 노골적인 인종적 멸시를 당하면서도 이 정도는 우리가 감수해야 한다고 여긴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한인사회는 이 나라의 어떤 소수민족들보다 단단한 기초를 마련했고, 상당수의 동포들이 확고한 경제적 기반도 확립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민 1세들의 피와 눈물과 땀에 힘입어 많은 이민 2세들이 이곳 주류사회의 요소마다 파고들어 복합문화를 지향하는 캐나다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같은 시기에 39세의 젊은 한인 2세 조성훈(Stan Cho)이 캐나다 정계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4년 전 조성훈이 토론토 윌로우데일 지역의 보수당 후보로 주의원에 출마했을 때 동포사회는 그의 과감한 결단에 박수를 보내며 그를 주의회에 입성시키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아낌없이 바쳤다.

 

한인 이민사회가 이 땅위에 견고한 기반을 다졌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들딸들이 이 나라의 주요부서와 기관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포들을 결집시키며, 한민족의 후예들이 지닌 우수한 두뇌와 능력이 캐나다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유능한 정치인의 활동이 필요한 것을 모두가 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성훈이 이 중대한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겠노라 나선 것은 그가 정치가로서 성공하겠다는 개인적인 목표보다는 이민 1세들이 그들의 삶을 바쳐가며 가꾸어 놓은 한인사회를 더욱 단단한 발판 위에 올려놓고 발전시키며, 우리가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캐나다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소명의식 때문임을 많은 동포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성훈은 이 중대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와 능력을 지닌 젊은이다. 주의회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그는 “노약자를 위한 복지증진”, “한인동포사회 경제 활성화”,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등의 공약을 내걸었는데, 세 가지 모두 오늘보다 나은 동포사회를 이룩하며, 캐나다를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민족적 사명의식과 역사의식을 지닌 조성훈의 용기 있는 결단과 그를 후원하는 동포들의 뭉쳐진 힘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2018년 6월 7일 실시된 선거에서 그는 총 투표자의 43.6%에 달하는 1만7,732표를 얻어 26.6%의 지지를 얻은 2위 후보를 따돌리고 주의원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본인과 가족들은 물론 한인사회 전체를 기쁘게 한 경사였다. 하지만 그의 정치행보를 조금은 불안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탁월한 정치 감각과 설득력을 지녔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기본적인 요소인 인화력과 포용력도 갖추었지만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이 전혀 없는 그가 주의회에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노파심을 가진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꾸짖기나 하듯이 조성훈은 우리들의 기대를 훨씬 능가하는 의정활동을 보여주었다. 평소에는 약간 부끄러워하는 태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연단 위에 오르거나 마이크를 잡으면 선배의원들을 무색하게 하는 웅변가로 변해버리는 조성훈이다. 연설 실력만 월등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상황 판단에 근거한 정책 수립에도 노련한 정치인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 조성훈임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정책이나 계획을 실천하는 적극성과 열성 또한 놀라운 것이어서 그는 발표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믿음직한 정치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초선임에도 그가 재무 차관보를 거쳐 교통부 부장관의 중책을 맡아 활동하는 것을 보며 자랑스럽고 흐뭇한 마음 금할 수 없다. 그가 어려움을 당하는 동포들을 성의를 다해 보살펴준다는 사실은 그의 도움을 직접 받은 이들과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에 의해 널리 알려져 있다.

 

부모님들이 이민초기에 베커 밀크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목격하며 성장한 그는 이민자들의 문제점들과 그것들로 인해 그들이 당하는 슬픔과 아픔과 고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조성훈이야말로 모든 것이 생소한 이역 땅에서 방황하는 동포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한인사회를 수많은 인종들이 모여 사는 이 나라에서 모범적인 집합체로 만들 수 있는 적임자인 것이다.

 

지난 4년간 조성훈이 보여준 효과적이며 왕성한 의정활동을 지켜본 유권자들이 이번에도 그를 선택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동포들이 가만히 앉아서 그의 재선을 축하할 준비만을 해서는 안 될 줄 안다. 윌로우데일에 거주하는 이들은 물론 모든 동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그가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협조하며 지원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이며 권리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4월 1일 있었던 후원회 모임에 참석한 분들이 기필코 조성훈을 재선시켜야 하겠다는 의지와 결단을 보여준 것은 기쁘고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선거구 동포들이 모두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지난번 선거에서 조성훈이 상대를 여유있게 누르고 승리했지만 우리 동포들의 투표율은 지극히 저조했다. 투표한 분들이 전체 한인유권자 7,300여 명의 30%에 불과한 2,200여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투표권을 지닌 모든 동포들이 빠짐없이 귀중한 한 표를 우리들의 젊고 유능한 정치인 조성훈에게 던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야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면”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수 있듯이 앞장선 조성훈과 뒤에서 그를 미는 동포들의 합쳐진 힘이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여 한인사회의 번영과 발전을 가져오며, 우리들이 사는 캐나다를 안정되고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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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5
모세의 생애(12)-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5)

 

(지난 호에 이어)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지만 그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에게 거역하는 죄악은 묵인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미디안이 모압과 손잡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배후에서 획책하고 사주한 그들을 섬멸시키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막강한 미디안 군사들을 전멸시키고, 그들의 다섯 왕을 잡아 죽이는 대승을 거둔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 측의 전사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사로잡은 포로들 중 처녀들만도 32,000명 이었다. 이는 이 싸움에 투입된 미디안의 군사들이 엄청나게 많았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그들은 전멸했지만 이스라엘이 한 명의 전사자도 내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해 싸워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승전고를 울리며 돌아오자 모세는 잡아온 포로들 중 아이들을 포함한 남자들은 다 죽이고, 여자들도 처녀들만 남기고 모두 죽이도록 명한다(민 31:17-18). 미디안의 모든 남자들이 이 전생으로 죽임을 당했다면 미디안 족속은 세상에서 사라져 버려야 했다. 그러나 미디안 족속은 멸족하지 않았으며, 계속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핍박했다. 이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그들이 길으앗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사사 기드온의 300 용사들에게 크게 패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삿 7:1-25)

미디안 족속이 비스하스에게 전멸당하고도 어떻게 번성하며 이스라엘을 핍박할 수 있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몰살당한 미디안 남자들은 전투에 직접 참여했던 병사들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그때 이스라엘과 전투를 한 미디안 남자들 중에서는 살아남은 자가 없었지만 그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그때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에 의해 미디안 족속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세가 미디안 남자들을 전멸시킨 전투는 그들이 하나님에게 도전한 행위에 대한 형벌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전쟁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하나님이 명하신 이 전쟁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은 백전백승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진두지휘 하시는 십자군의 정병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우리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 우리에겐 패배가 있을 수 없다.

다윗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함축된 시편 23편에 이 사실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미천한 목동이었지만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의 목자시기에 그에겐 부족한 것이 없다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사울 왕에게 쫓기며 숱한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그와 동행하시며 지켜주심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할 수 있었고, 마침내 이스라엘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는 하나님이 명하시는 전쟁은 모두가 힘을 합해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남들과 다른 특수한 재능을 주셨다. 때문에 우리들의 각기 다른 재능과 능력이 주 안에서 하나로 뭉쳐져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일은 특별한 인물들만이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자녀 모두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것이다.

미디안 족속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의 진로를 훼방하며, 그들을 멸망시키려 한 암몬과 모압 족속도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이 그들은 물론 그들의 10대 후손들에게까지 “여호와의 총회”에 참석할 수 없도록 명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제외되었음을 의미하기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인 암몬과 모압 족속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을 박탈당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처럼 가혹한 선고를 내리신 까닭은 그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행을 도와주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며 이방여인들과 음행하는 죄악을 범하게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었다고 암몬과 모압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이 닫힌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압 여인 룻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있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을 상실한 모압과 암몬 자손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교훈은 크기만 하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하나님에게 항거하는 사람들의 운명처럼 비참한 것은 없으나 하나님의 품에 거하며 그의 뜻에 따라 사는 이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가운데서 영원한 나라를 향한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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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8
모세의 생애(12)-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5)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당신이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오셔서 혹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오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하고, 언덕길로 가니,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아뢰되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어다. 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의 모든 고관이 곁에 함께 섰더라.”(민 23: 3-6)

 

모세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격파하고 모압 평원에 진을 치자, 모압 왕 발락은 극도의 위기의식에 사로잡힌다.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의 두 강대국 아모리와 바산을 굴복시킨 여세를 몰라 그를 공격해 온다면 모압도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발락은 미디안 왕들에게 연합하여 이스라엘에 대항할 대책을 마련하자고 제의 한다.

그것은 현명하지 못한 생각이었다. 모압 족속은 이스라엘과 친척 관계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유황불에 멸망하는 소돔 성을 탈출한 후 그의 두 딸과 동침하여 낳은 후손들이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기 때문이다.(창 19:36-37)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합과는 싸우지 말라고 하셨기에(신 2:9), 이스라엘은 모압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를 지나 가나안으로 향하는 것을 묵인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발락은 미디안의 여러 왕들에게 이스라엘을 물리칠 방도를 강구하자며 이방 점술가 발람을 불러오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그 당시 고대 동방사회에서는 술사들의 저주와 축원이 큰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많은 점술가들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이방부족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점술가가 발람이었다. 발람은 이방인이기는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에 관해 알고 있었으며, 그를 경외하는 마음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발락의 사신들이 찾아와 엄청난 사례금을 제시하며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했을 때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발락은 더 좋은 조건들과 더불어 고위급 사신단을 다시 보냈고, 발람은 그들을 따라 발락에게 간다. 그러나 발람은 끝까지 발락이 원하는 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한다.

분노한 발락은 “속히 내 앞에서 떠나라.”고 외쳤고, 발람도 자기는 하나님께 순종할 뿐이라며 그곳을 떠난다. 표면상으로 보면 발람은 하나님의 진정한 선지자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중인격자로서 세상을 향한 욕망으로 가득 찬 거짓 선지자였다.

발람이 발락과 헤어진 후 모압 평원에 계속 머물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족속이 섬기는 바알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발람이 꾸민 간교한 계교 때문이었다.(민 31:16; 벧후 2:14-16)

역사가 요세푸스가 들려주는 발람의 계교는 이러했다. “모압과 미디안 여자들을 요염하게 분장시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게 하십시오. 그들은 오랜 광야생활을 하며 성적으로 굶주린 까닭에 당신네 여자들의 유혹에 빠져들 것이요, 그러면 그들은 당신들이 섬기는 바알 앞에 절하며 타락하여 스스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발람의 계략이 적중하여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섬기게 되었고, 이방여인들과 향락에 빠져드는 가증스러운 죄악을 범하게 된 것이다. 발람이 어째서 이처럼 무서운 계교를 남겨주고 떠난 지는 확실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발람이 비밀협상을 벌여 발락이 제시하는 엄청난 재물과 영화를 보장받고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랬을 경우 발락은 미디안 족속들과 협의하여 발람의 악랄하고 무서운 계교를 실천에 옮겼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바알에게 절하며 이방여인들과 음행하는 악을 행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민 31:2)하신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미디안 족속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후손들로서 요단 동편에 자리잡고 목축업과 육로를 통한 교역을 하며 살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곳을 지나가는 이스라엘과 교역을 하거나 그들이 조용히 지나갈 수 있도록 묵인해야 했다.

그런데도 미디안 족속은 모압 왕 발락과 결탁해서 이방 술사 발람을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고, 결국 발람의 간계에 빠져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시키는 일에까지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은 결국은 하나님에게 대항한 것이었기에 하나님의 징계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그의 백성을 범죄하게 만든 미디안 족속을 전멸시키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는 각 지파에서 1,000명씩 군사를 선발하여 12,000명으로 미디안을 공격할 부대를 편성하고, 제사장 엘르아셀의 아들 브느하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르디빔 전투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군대를 편성한 것이다. 그때는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 중에서 엄선된 병사들이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이번에는 각 지파마다 1,000명씩을 차출했고, 르디딤 싸움에는 여호수아가 군을 총괄했는데 이번 싸움을 위해서는 무장 아닌 제사장 비스하스가 사령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안과 대결한 이스라엘 군이 이같이 편성된 것은 이 전쟁이 하나님이 명하신 성전(Holy War)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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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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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1
하나님의 종(하)

 

(지난 호에 이어)

하나님을 모르기에 어둠에 거하는 이방인들에게 영생이란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 그 자신의 목숨까지도 귀히 여기지 않고 불철주야 노력했다. 바울은 사람들의 찬사와 존경을 받으며 편하고 안락하고 화려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가시밭길보다 힘들고 험한 길을 걷다 폭군 네로의 칼날에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 그의 인생의 종말은 아니었다. 주어진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역할을 누구보다 충실히 감당한 바울을 위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에 찬란한 생명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이 걸은 인생길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양을 먹이는 목자들이 어떻게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가를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떼를 치는 목자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자기가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양들을 먹이며, 자기가 원하는 양들이 배불리 먹고 편히 쉴 수 있는 푸른 풀밭과 맑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연약하고, 병들고, 상한 양들을 특별히 정성껏 돌보며,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험한 숲 속이나 골짜기로 들어갈 수 있는 참된 목자가 되어 하나님의 종이라 불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 같은 목자가 되어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를 원하는 모든 영혼들을 돌보며 인도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하나님의 양떼를 맡은 목자는 양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철두철미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줄 안다. 모여드는 양들의 수가 많아진다고 교만해지거나,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만을 받으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성도들 위에 군림하거나, 섬길 줄 모르면 하나님의 충성스런 종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으로 선택되면 특정한 권리와 권위가 주어진다. 바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바울은 그에게 주어진 말씀선포의 권위를 하나님의 종으로서 또 예수님의 사도로서 가장 충실하게 행사했다.

그가 30여 년 동안 3차에 걸쳐 선교여행을 하며 수많은 교회를 세우면서 그의 생각이나 지식과 지혜에 근거하며 전파하거나 가르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하늘의 진리만을 전하고 가르친 그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남기고 가신 단 하나의 기관인 그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하나님의 종들이 반드시 유지해야 할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사도로서 성도들의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었으며, 교인들은 그의 생계를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젊어서 습득한 기술로 천막을 만들어 팔아 생활하며, 가난한 교우들을 도와준 그였다.

그렇다면 “내 양을 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목자들이 어떻게 양떼를 돌보며,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할까 자명해진다.

복음전선에 뛰어든 사역자들이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기를 지고, 필요하다면 부모 형제자매는 물론 친척과 친구들을 버리고 그를 따르라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이 명령에 순종하며 고난과 핍박과 슬픔과 아픔을 누구보다 많이 당하면서도 포기하거나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인생의 경주를 달린 믿음의 용장이 사도 바울이다.

한 마디로, 사도 바울은 그에게 주어진 사도의 권리와 권위를 철저한 종의 자세로 행사하며, 하나님께 충성을 바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섬겼으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죄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함으로 그에게 맡겨진 인생의 사명을 완수하였다.

비천한 종으로 살았으되 영원히 예수님의 위대한 사도로 기억될 사도 바울을 닮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슬픔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울려 우리에게 그의 양떼와 교회를 맡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계속적이고 전적인 충성을 원하고 계심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야만 광야같이 험하고 위험한 인생길을 횡단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총성된 종아!”란 칭찬을 들으며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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