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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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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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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모세의 생애(4)-민족을 구하려 애굽으로 향하는 모세(하)

 

(지난 호에 이어)

그런데도 모세는 또다시 그가 언변이 부족하다는 구실을 내세운다. 애굽 왕실에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을 다 배워 말과 행동에 뛰어난 모세가(행 7:22) 그런 핑계를 댄 것은 그때까지도 모세는 민족을 구원할 마음의 준비를 못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너를 도와 네가 할 말을 가르쳐 주겠다.”며 그를 안심시켜 주셨다. 후일 예수께서도 그의 제자들에게 말세가 가까워지면 믿는 자들은 심한 핍박을 받으며 옥에 갇혀서 심문을 받게 될 터인데 그때 “너희 대적들이 대항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말과 지혜를 주겠다.”(눅 21:14-15)고 약속해 주신 것과 같은 맥락의 격려였다.

그가 해야 할 말까지도 해주시겠다는 말씀을 듣고서도 모세가 제발 다른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자 하나님은 노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주셨던 사명을 거두지 않으시고 말 잘하는 그의 형 아론을 함께 가도록 하겠다고 하신다.

모세가 제시하는 그의 약점을 보강시키기 위해 아론으로 하여금 모세를 돕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선택하여 훈련시킨 모세를 통해 그의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셨기에 모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기를 거부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모세의 경우에는 그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론이 그의 동역자가 됨으로 그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던 제사장의 특권이 아론에게로 넘어갔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의 명을 거역할 수 없게 된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아내와 아들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출발한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를 해하려던 사람들이 다 죽었으니 안심하고 가라시며, 바로 앞에서 손에 든 지팡이로 부여 받은 모든 권능을 행하라고 일러주신다.

바로는 곧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장자가 죽는 재앙을 당한 후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놓아줄 것이라 들려주신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향하는 모세를 죽이려 하시기 때문이다.

모세는 그의 동족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분부를 다섯 번이나 사양하며 받아드리지 않았다(출 3:11, 13; 4:1, 10, 13). 그런데도 그를 벌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이 그의 명을 받들어 애굽으로 들어가는 모세를 죽이려 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백성이 되는 표시로 그의 자손들은 물론 종들에게까지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다(창 17:9:14).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킬 지도자 모세가 할례 받지 않은 아들을 데리고 그 사명을 수행하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 자신도 하나님이 어째서 자기를 죽이려 하는지 알지 못하여 당황하는 모세의 생명과 사명이 위기에 처하자 그의 아내 십보라가 날카로운 돌로 아들의 양피를 잘라버렸다.

그녀의 기지가 남편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이 사건은 두 가지 면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수행하려면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모세는 그의 아들에게 조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할례를 행하지 않고 이스라엘 해방전선에 나가려 한 중대한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십보라의 정확한 상황판단과 지혜롭고 신속한 행동이 모세의 생명은 물론 이스라엘의 소망을 살렸다는 사실이다. 모세가 죽지 않고 살아났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위기를 벗어난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을 받아 광야로 나온 아론과 만나 애굽에 도착하여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그들이 온 까닭을 말한 후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권능으로 기적들을 행해 보여주었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고,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려 하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모세는 아론과 함께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내보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기념하는 절기를 지키게 하라.”(출 5:1)하신 말씀을 전한다.

그때 애굽을 통치하던 아멘호뎁 2세는 여호와를 많은 이방신들 중의 하나 정도로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여호와가 누구시기에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야 한단 말이냐?”(출 5:2)며 모세의 요구를 거절해 버린다.

바로가 이처럼 단호한 입장을 취한 것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모르기도 했지만 60만 이스라엘 장정들의 노동력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음은 물론 그들에게 공급하던 짚을 주지 않고, 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도록 한다. 이렇게 되자 모세는 바로에게 모욕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동족들에게서도 심한 원망을 받게 되었다.

모세가 그가 처한 어려운 형편을 아뢰자 하나님께서는 “나 여호와가 너희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땅으로 인도하겠다.”(출 6:1-8)고 말씀해 주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주었지만 그들은 모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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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1
모세의 생애-민족해방의 사명을 부여받는 모세(하)

 

(지난 호에 이어)

모세가 연약한 양들을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보호하며, 병든 양의 상처를 싸매주고,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참 목자가 되는 데는 40년 이란 긴 세월과 부단한 노력과 불굴의 인내가 필요했다.

우선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문을 익힌 최고 지성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교만과 고집을 모두 버려야 했다. 그것들을 가지고는 양치기의 천한 일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뜻에 따를 수 있도록 그 자신을 억압하며 죽여야 했다.

어떤 이는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대학에서 수련하면서 그가 40년 간 애굽 왕실에서 배우고 익혔던 모든 것들을 잊어버려야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세는 광야대학에서 애굽 왕실대학에서 공부한 학문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모세는 그 곳에서 쌓아올린 세상 지식과 지혜를 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목적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도록 자신을 억제하며 정복하는 인내와 용기를 배양한 것이다.

애굽 왕실에게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던 모세가 순간적인 실수로 쫓기는 자의 신세가 되어 미디안 광야에 발을 들여놓은 지 40년이 지나 80세의 노인이 되었을 때 그의 찬란한 과거를 아는 이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그를 전도 양양하던 모세가 꿈도, 욕망도, 희망도 모두 잃어버리고 인생의 종착역으로 들어서는 가엾은 늙은이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때부터 모세는 그의 진가를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다. 어머니 요게벳이 그의 가슴 깊이 새겨준 “나는 히브리 인이다.”란 민족의식의 바탕위에 왕실대학에서 배운 인간의 최고학문을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시키는데 사용할 수 있는 용기와 겸손과 온유함과 인내와 순종의 마음을 모두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곳은 호렙 산이었다. 어느 날 모세는 이드로의 양 떼를 이끌고 호렙 산으로 갔다.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번 다녔던 곳이기에 모세는 그 곳 지형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모세는 전에는 보지 못했던 이상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산 중턱에 있는 떨기나무가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뜨거운 중동지방의 한여름 태양 빛에 바싹 마른 떨기나무가 불타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그 날은 좀 달랐다. 모세가 본 떨기나무는 불에 타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소멸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이상하고 신기해서 그 까닭을 알아보기 위해 떨기나무로 다가가는 그에게 “모세야! 모세야!”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모세가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 대답하자 하나님은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하셨다.

떨기나무에 붙은 타면서 소멸되는 불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빛이었다. 다시 말해, 모세가 본 불타는 떨기나무는 그 곳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하셨다. 고대 동방사회에서 신발을 벗는 것은 상대에 대한 최대의 존경을 표시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신 것은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라는 말씀이었다.

동시에 이제는 미디안 광야의 목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명을 받드는 일꾼이 되라는 말씀이기도 했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 하신 것은 그가 계신 곳은 거룩하기에 보잘것없고 비천한 인간이 함부로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러주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수시로 양과 염소들이 다니며 풀을 뜯던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성결하고 거룩한 장소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신 것이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이 하나님께서 그 곳에 오신 까닭이며, 따라서 그 곳은 거룩한 장소임을 모세에게 확인시켜주신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고 그의 신분을 밝히신다. 그런 후 “나는 내 백성이 핍박당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기에 너를 바로에게 보내 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광야대학 졸업장을 주시며 그를 이스라엘의 민족해방자로 임명하심과 동시에 즉시 애굽으로 가서 고통 당하는 그의 백성들을 구해내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40년 전에 모세는 애굽의 노예가 되어 진통하는 그의 동족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가슴 깊은 곳에서 느꼈다. 그때 모세는 그가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그는 그의 방법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할 방도를 찾아내려고 국고성 비돔 공사현장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혈기를 참지 못하고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피해야 했던 것이다. 40년이 지나 80세가 된 모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쓸모 없는 노인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40년 전에 패기만만했던 능력의 사나이 모세 아닌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80세 노인 모세에게 그가 택하신 백성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라는 사명을 부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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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4
모세의 생애(3)-민족해방의 사명을 부여 받는 모세(상)

 

“모세가 그의 장인 미다안 제사장 이드로의 떼를 치더니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내가 돌이켜 가서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곳은 거룩한 땅이니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로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10)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간 것은 바로가 살인혐의로 그를 체포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모세가 애굽 왕실을 떠나 그리로 가게 된 것은 “왕실대학”이란 일반대학을 마치고 “광야대학”이란 신학교에 입학한 것이었다.

너무 비약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오늘날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학사 또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신학대학원(Seminary)에 진학하는 것은 모세가 받은 훈련과정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어쨌든 대학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심한 경우에는 고둥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을 모두 받아들여 단기간 성경을 가르친 후 목사안수를 주는 신학교가 생겨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그런 신학교에서 공부다운 공부도 못한 무자격 목회자들이 대량으로 배출되는 것은 오늘날 교회가 시대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세가 도피처로 찾아간 미디안은 시내산이 있는 시내 반도의 광야로서 그 곳에는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후손들이 목축업을 하며 정착해 있었다. 모세가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험하고 먼 광야를 가로질러 미디안 광야의 어느 우물가에서 피곤한 몸을 쉬고 있을 때 한 떼의 여인들이 양들을 몰고 왔다.

그때 한 무리의 목자들이 들이닥쳐 우격다짐으로 그 여인들을 밀어내고 자기네 양들에게 먼저 물을 먹이려고 했다. 이를 보고 의협심이 발동한 모세는 그들을 쫓아버리고 여인들의 양들이 물을 먹도록 해주었다.

모세의 도움을 받은 여인들은 미디안 제사장 루우엘의 딸들이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모세는 그들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고, 그들 중의 하나인 십보라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모세는 미다안 광야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할 준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장인 제사장인 이드로의 도움과 아내 십보라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광야대학의 수련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바로의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는 미디안에서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모세는 애굽 왕실에서의 안락하고 호화스러웠던 생활을 잊어버리고 양을 치는 광야생활에서 만족과 행복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미디안을 고향으로 삼아 평생을 거기서 양치기로 살아갈 생각은 없었다. 비록 장인의 자상하고 사료 깊은 배려와 아내의 헌신적이 사랑을 받으며 단조로운 광야생활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 곳은 어디까지나 타향이요, 그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닌 것을 모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모세의 마음은 첫 아들의 이름을 “타국에서 손님이 되었다.”란 의미인 “게르솜”이라 지은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미디안 광야에 사는 사람들의 주업은 목축업이었다. 때문에 모세가 거기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세가 양을 친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가 된 것은 광야대학에서 그를 지도하신 하나님께서 신입생 모세에게 맡긴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시오, 우리 모두는 그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하나님의 양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 사실은 더욱 명백해진다. 아버지 이새의 양 떼를 돌보던 소년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시 78:70-72), 양을 치던 아모스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는 사실은(암 7:14-15)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상징하는 양들을 돌보게 함으로 그가 사용할 일꾼들을 훈련시켰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안 광야의 목자 모세는 양을 치면서 양들이 무엇을 원하는 가를 알기 위해서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애굽 왕실에서는 사람들을 지휘하고 감독하며 명령하는 데 익숙했었지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도 몰랐고, 들을 필요도 없었다.

공주의 아들 모세의 명에 불복하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힘이나 권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행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양을 치면서 그 같은 품성을 기르도록 하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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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8
어느 가을 날

 

 

단풍의 나라 캐나다에 살면서 단풍구경을 가 본지도 오래된 것 같다. 목회를 할 때는 해마다 교인들과 단풍관광을 다녔고, 정규목회를 접은 후에도 아내와 또는 가까운 친지들과 더불어 단풍의 명소들을 찾아 다니며 아름다운 캐나다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곤 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어디를 가나 단풍으로 불타오르는 곳이 캐나다고, 매일 걷는 집 근처의 공원도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많기만 한데 먼 곳까지 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에 공원에서 걷기 운동과 단풍구경을 겸하다 보니 단풍이 좋다는 곳을 찾아 나서지 못한 지가 여러 해가 된 것이다.

그러든 어느 날 알곤퀸의 단풍을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거의 반백년 전 새빨갛게 타오르는 단풍의 불길 사이를 뚫고 60번 도로를 타고 올라가 알곤퀸 국립공원으로 들어서서 차를 달리노라니 양 옆으로 절정에 달한 단풍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고, 바다처럼 넓으면서 거울같이 맑은 호수 저 멀리 보이는 섬들을 가득 메운 저녁놀보다 붉은 단풍의 숲들이 눈에 들어왔다.

황홀하도록 아름답고 신비한 풍경이었다. 호수 건너편에 산불처럼 타오르는 단풍잎에 가려진 동화 속의 오두막집 같은 작은 집들을 보면서는 호수위로 차를 달려 단숨에 그 곳까지 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그날 알곤퀸을 다녀온 후로 난 완전히 캐나다의 아름다운 단풍에 반해버렸다. 나의 자랑스러운 학력과 경력(?) 같은 건 아예 무시해버리는 이 나라에서 “지성인의 고독과 슬픔”을 가슴 깊이 느끼며 지내야 했는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캐나다의 자연 속에서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 받으며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게 된 것이다.

그 후 계절에 관계없이 형편이 되는 대로 많은 곳들을 찾아 다니며 자연과 벗함으로 삶의 활력을 얻었는데 특별히 가을이 되면 알곤퀸과 그 근방을 많이 갔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간은 아침저녁으로 집 앞 공원에서 계절의 향기를 맡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인생의 교훈에 귀 기울이며 지냈다. 그러던 중 불현듯 이 땅에 처음 와서 삶의 의욕마저 잃어가던 내게 새로운 꿈과 소망을 잉태하게 해준 알곤퀸을 찾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것이다.

때마침 아내가 친구 권사님이 알려주었다면서 11번 도로를 따라 가면 Webers Burger란 햄버거 집이 있는데 한 번 가 볼만 하다고 했다. 구글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금요일엔 햄버거만 8천 개를 파는 유명한 햄버거 집 이었다.

1963년에 문을 열었다니 옛날에 알곤퀸을 자주 갈 때도 지나갔을 텐데 본 기억이 없는 것은 단풍에 매혹되어 있을 때라 햄버거 집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곳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지나는 길에 들리면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격이겠기에 같이 가기로 한 이 목사님과 거기서 만나자고 했다.

정한 날,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빠른 11시경에 Webers Burger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단풍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지점에 자리잡은 Webers Burger의 주차장은 토론토의 웬만한 쇼핑몰 것보다 넓었고, 그 주위의 더 넓은 잔디밭에는 수십 개의 피크닉 테이블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잔디밭 뒤편으로는 울긋불긋한 단풍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숲이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정작 햄버거를 만들어 파는 가게는 초라할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그 가게 입구에서부터 상당히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가족단위로, 또는 함께 온 일행이 같이 늘어선 줄이기에 사람 수는 엄청나게 많았다.

서둘러 맨 뒤에 서는 순간부터 우리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훈련이 잘된 종업원들이 조직적이면서 신속한 서비스를 해주어서 곧 도착한다는 이 목사님이 오시기도 전에 주문한 커피와 햄버거를 들고 식당 문을 나설 수가 있었다.

제일 마음에 드는 곳에 놓인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숯불에 막 구워 만든 햄버거를 먹노라니 먹어보기는커녕 본 적도 없는 팔진미인들 이보다 더 맛이 좋으랴 싶었다.

거기다 신선하고 향기로운 가을공기를 삼키며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캐나다의 단풍잎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떨어져 쌓이는 광경을 바라보며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즉석 숯불구이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축복의 땅 캐나다에서 누리는 축복의 시간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식사를 마친 후 고속도로 위로 건설된 구름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거기에도 넓은 주차장이 있었고, 확 트인 잔디밭 위에 피크닉 테이블들이 상당히 많이 놓여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가니 보기 드물게 넓은 바위언덕이 나타났다. 그 위에 올라서니 넓고도 푸른 초원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호수처럼 잔잔하게 멀리 펼쳐진 풀들로 덮인 들판을 바라보는 순간 고둥학교 2학년 때 읽은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났다. 개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초등학교 5학년의 소년과 소녀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겠지만 그들만의 사랑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둘은 어느 청량한 가을 날 넓고도 푸른 가을 들판을 가로질러 들판 끝에 우뚝 솟아있는 산을 향해 걸어가며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랑을 알지도 못하는 어린 소년과 소녀의 가슴에 싹트는 순수한 사랑을 그린 <소나기>를 읽은 후부터 가을이 되면 그들이 걸었던 그 푸른 가을들판을 나도 걸어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 가을들판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가을들판의 끝에는 황순원의 소년과 소녀가 향했던 산 아닌 캐나다의 자랑인 단풍의 숲이 황홀한 모습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이 가을 들판을 가로 질러 저 숨 막히게 아름다운 단풍의 나라를 향해 가보지 않겠습니까?” 이같이 아내와 이 목사님 내외분에게 묻고는, 그들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푸른 가을의 초원으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내가 걷는 들판이 부드러운 토양 위에 잔디처럼 연한 풀들로 덮인 곳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무릎까지는 미치지 않았지만 제법 억센 잡풀들이 발목이 넘게 덮여 있었고, 밟히는 땅에도 작고 굵은 돌들이 박혀 있었으며, 어떤 지점에서는 늪이나 수렁지대를 지나는 것처럼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다윗이 묘사한 “아름답고 푸른 초장”으로 보였던 들판이 주위가 개발되지 않았다면 황막하고 위험한 광야로 남아있었을 상당히 거친 땅임을 알게 되면서 내려다보니 입고 있는 바지의 아랫부분이 온통 빨간색으로 변해 있었다.

의아해 하는 내게 뒤따라 오던 이 목사님이 꽃가루가 묻어서 그렇다고 귀 뜸해 주셨다. 온갖 종류의 잡풀들과 그것들 속에 숨겨져서 보이지도 않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작은 꽃망울들로 덮여있는 들판을 걸어간다는 것은 슬픔과 괴로움, 절망과 아픔, 그러면서도 보람과 소망이 뒤섞인 인생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떠오른 장면이 그 옛날 애굽을 탈출하여 삭막한 광야를 걸어가던 이스라엘 민족의 긴 행렬이었다. 그들의 광야의 행렬은 분명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달리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행군이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며 그 힘든 행진을 계속한 그네들에게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승리의 면류관이 주어졌다.

<천로역졍>의 믿는 사람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 “영원한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의 길에도 숱한 고통과 아픔과 실망과 좌절이 가로막혀 있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그가 걷는 “고난의 길”을 내려다보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나갔기에 찬란한 영광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생의 광야 같은 험난한 길을 인내와 용기로 횡단한 것 같은 승리감을 느끼며 구름 다리를 다시 건너 Webers Burger가 있는 편으로 넘어왔다. 오전에 햄버거를 살 때는 20여 미터의 줄을 보고 놀랐는데, 50미터가 넘게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햄버거 집 소문보다 더 잘된다는 생각과 더불어 삶의 현장은 이처럼 쉬지 않고 변한다는 사실을 현실감 있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지 우리들이 향하는 목적지는 결코 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가는 곳은 영원한 하늘나라이며, 그 곳에는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가셔서 우리들이 거할 집까지 마련해 놓고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마련된 영원한 고향집을 향한 행진을 중지하거나 그릇된 길로 방향 전환한다는 것은 영원한 파멸을 자처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남은 인생의 경주를 달려야 할 것이다.

향기롭고 신선한 가을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우리 앞에 놓인 인생의 광야를 어떻게 건너야 할까를 다시 한 번 깨달은 보람되고 의미 있는 가을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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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1
모세의 생애(2)-왕실 대학을 졸업하는 모세(하)

 

(지난 호에 이어)

모세는 그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동족을 살릴 수가 있었다. 그의 신분을 밝히고 감독관에게 구타를 중지하라고 명령했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흥분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동족을 때리는 감독관을 죽이는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다.

모세는 죽인 애굽 사람을 모래 속에 묻으면서 좌우를 살펴보았다. 그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이가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모세의 눈은 주위를 돌아보는 대신 하늘을 향했어야 했다. 그 같은 경우에 무엇을 해야 하나를 하나님에게 물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세는 죽을 위기에 처한 동족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때리는 애굽 사람을 죽이고는 그의 범죄행위를 목격한 사람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살펴본 것이다.

그가 행한 일이 얼마나 큰 잘못인가를 모세가 깨달은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이튿날 그가 같은 장소에 갔을 때 이번에는 히브리인 둘이 싸우고 있었다. 모세가 잘못한 사람에게 어째서 동족을 때리느냐고 책망하자 그 사람은 “네가 무슨 권리로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 행세를 하느냐? 어제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며 대들었다.

그 말을 들은 모세의 놀라움은 컸다. 그는 애굽 왕실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가 히브리인임을 잊지 않고 노예생활을 하는 동족들의 슬픔과 고난에 동참할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히 11:24-25)

전날 애굽 사람을 죽인 것도 동족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동족들은 그를 그들과 같은 히브리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행 7:23-25)

뿐만 아니라 모세는 더 이상 애굽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는 살인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인식하게 되었다. 모세가 노예 감독을 죽인 것을 알게 된 애굽 왕은 그를 잡아드리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평생을 호화의 극치를 누리며 살 수 있었음은 물론 애굽의 왕까지도 될 수 있었던 모세가 목숨을 구해 도피해야 하는 도망자의 신세가 된 것은 그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었다.

동족이 애굽 사람의 채찍을 맞아 죽어가는 것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하여 그를 살해하는 순간 모세는 그때까지 쌓아 올린 그의 인생 전부를 무너뜨렸다. 이처럼 모세가 한 순간에 왕족의 신분에서 살인자로 전락해 버린 것은 모세 개인의 불행으로만 끝나버릴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엉성한 대나무 바구니에 실려 나일 강을 떠내려가다 애굽 왕실로 들어와 공주의 아들로 입적되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모든 일들은 그를 이스라엘의 민족해방자로 삼으려 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어났기 때문이다.

애굽 왕실의 일원이 된 모세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모든 학문에 통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히브리인이며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애굽의 압제를 받으며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는 것 임도 깨닫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애굽 왕 딸의 아들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폭정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앞장서기로 결심했다.

그 결단을 실천에 옮길 준비를 하기 위하여 모세는 동족들이 고통 당하는 국고성 비돔 공사현장을 찾았던 것이다. 거기서 그는 중노동을 하는 그의 동족을 사정없이 채찍으로 내려치는 감독관을 보고 민족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여 살인을 하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그는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동시에 그는 살인자가 되어 그의 인생을 파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할 수 있는 시기도 무기한 연장되고 만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모세가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었다.

모세가 중대한 시기에 그릇된 판단을 했다는 사실은 그가 40년 간 애굽 왕실에서 배운 세상 학문들만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출해 낼 민족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꾼은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 (마 11:29)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던 모세는 세상에서 짝을 찾을 수 없이 온유한 사람이었다(민 12:3). 그러나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일 때의 모세는 해박한 지식과 지혜의 소유자이긴 했지만 온유하지도, 겸손하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라면 반드시 지녀야 할 인내심도 결핍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솟구치는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노예 감독관을 때려서 죽인 것이다.

모세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목격자가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좌우 사방을 살폈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하여 위를 보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 살인을 저지를 때의 모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사실들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면 모세의 잘못된 판단으로 야기된 범죄행위는 결국은 모세를 더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던 것이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애굽 왕실대학에서 40년을 수학했다. 그 과정을 마친 후 모세는 다음 과정인 광야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애굽의 왕실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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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4
모세의 생애(2)-왕실 대학을 졸업하는 모세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이튿날 다시 나가니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이르되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일이 탄로되었도다.’ 바로가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출 2:11-15)

 

애굽 왕궁에는 공주를 위해 호화롭게 꾸민 목욕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목욕을 하기 위하여 위험할 수도 있는 나일 강까지 나온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나일 강은 애굽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강이었기에 그들은 나일 강에서 몸을 씻으면 부와 자녀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나일 강가의 어느 지점에 왕족들만이 안전하게 목욕할 수 있는 특수 지역이 마련되었을 것이며, 바로의 딸이 그곳에 시녀들을 데리고 목욕하려 왔다 갈대숲에 걸려있는 대나무 바구니를 발견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시녀들이 건져온 대나무 바구니 속에서 준수한 히브리 사내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한 바로의 딸은 일찍 죽은 그녀의 딸을 생각하면서 그 아이를 자기가 길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모세를 바구니에 넣어 나일 강에 띄우고 그것을 쫓아오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다가와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 여인을 구할 수 있다고 하자 공주는 그 여자를 데려오라고 한다. 공주의 명을 받은 미리암은 모세를 낳은 어머니 요게벳을 데려왔다.

왕명에 의해 나일 강에 버려진 모세가 그 명령을 내린 바로의 딸에게 구원받아 그의 친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자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처럼 섬세하고, 자상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그의 뜻을 이루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 모세는 대바구니에 실려 나일 강을 따라 흘러내려가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호화로운 애굽 왕궁이란 항구로 들어선 것이다. 거기서 모세는 그 당시 세계 최대의 문명국이었던 애굽의 천문, 기상, 문학, 예술, 의학, 군사학, 건축 등의 학문을 공부하게 된다.

후일 그 왕궁의 주인인 애굽 왕과 대결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킬 지도자가 되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지혜를 얻은 것이다. 모세가 애굽 왕궁에서 터득한 또 하나의 귀중한 것은 인쇄술이었다. 그 당시 애굽은 세계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학문을 나일 강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 껍질을 종이 대신으로 사용하여 기록하였는데, 모세는 이 기술을 배워 익힌 것이다.

모세가 애굽 왕궁에서 터득한 여러 분야의 지식과 인쇄술은 그가 이스라엘 민족지도자로서 학대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빠져나와 가나안으로 향하면서 그 모든 과정과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기록하여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으로 남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다시 말해, 모세의 애굽 왕실에서의 40년 생활은 그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이스라엘의 민족지도자가 되기 위한 훈련기간 이었던 것이다.

이 기간이 끝나는 40세가 되었을 때 모세는 그의 앞에 놓인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그는 생후 3개월부터 애굽 왕실에서 성장했기에 몸도 마음도 애굽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애굽 왕 투트모스 1세의 외동딸 핫셉슈트의 아들로 입적되었기에 왕위 계승권과 왕위 후계자에게 주어지는 모든 권리를 승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그의 혈관에 히브리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그를 품에 안고 키운 어머니 요게벳을 통하여 알고 있었다. 자기는 애굽 왕실에서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었지만 그의 동족들은 채찍을 맞아가며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모세는 동족들이 어떤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비돔 국고성 건설현장을 찾아간다.

그의 동족들은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들고, 큰 바위를 쪼개고 다듬어 성을 쌓는 중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한 감독관이 그의 동족 한 명을 심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매를 맞는 히브리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스데반은 그 히브리 사람이 “원통한 일을 당했다.”(행 7:24)고 증언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심하게 매를 맞아야 할 잘못을 범하지는 않았다고 여겨진다.

동족이 억울하게 매를 맞는 것을 본 모세는 분개하여 그 애굽 사람을 때려죽이고, 그 시체를 모래 속에 파묻었다. 죽을 위기에 처한 동족을 구한 의로운 행위라 생각하고 한 일이지만 모세가 노예 감독관을 죽인 것은 중대한 과오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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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7
진실과 거짓

 

▲1915년 뉴욕에서 열린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

 

30여 년 전, 구약연구의 권위자이며 연세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박대선 박사님을 초청하여 부흥사경회를 가졌었다. 일반 성도들은 물론 많은 목회자들이 은혜를 받은 집회를 끝내고 떠나시기 전 날, 박 박사님에게 “저는 다른 분들과는 달리 인생의 반환점을 지난 시점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양떼들을 올바로 인도하며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여쭈어 보았다.

박 박사님은 “김 목사가 그처럼 진지하게 물어보니, 나의 52년 목회경험을 통해 말하겠습니다. 참된 목회의 비결은 실력과 진실입니다.” 그 분은 “목회에 성공하려면”이란 표현을 쓰지 않으시고, 실력을 갖추고 진실하게 임해야만 “내 양을 치라” 명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충실하게 받드는 목회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 말씀을 들은 후부터 복음의 진리를 올바르게 전달하며, 성도들에게 좁고 험한 길을 이탈하지 않고 걸어가게 인도하는 목사가 되기 위해 말씀 연구와 묵상과 기도생활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왔다.

따지고 보면 실력과 진실이 목회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느 길을 택하든지 그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임해야만 목적하는 바를 성취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성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면 인내와 성심으로 배양한 능력이나 실력을 올바르게 발휘하여 설정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며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하려는 이들보다는 편법을 사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며 부와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비정상적인 수단과 방법은 사실이나 진실 아닌 위선과 거짓이 그 터전이요, 기초며, 기둥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오늘 날 사실이나 진실이 그 설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판을 치는 거짓은 진실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그 형태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내용도 잘 채워진 경우가 많기만 하다.

그 좋은 예 중의 하나를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의 체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어느 날 채플린이 뉴욕 거리를 걸어가다 “채플린 흉내 내기 대회”란 간판이 내걸린 극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채플린이 즉석에서 참가신청을 하고 그가 했던 희극의 한 장면을 열정적으로 재현했다. 진짜 채플린이 가짜 채플린들과 우열을 가리는 희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으니, 진짜 채플린이 그의 흉내 내기 대회에서 7등을 차지한 것이다. 심사위원들의 판단에는 6명의 가짜가 진짜보다 더 멋진 연기를 해낸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가짜가 진짜를 무색하게 만들며 판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들 주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형태와 종류의 가짜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거짓 인간”이라 생각된다. 진품인줄 알고 비싼 값을 지불하고 구입한 상품이 모조품으로 판명되면 손해는 보았지만 그로 인해 인생 자체가 불행해지거나 파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인 줄 알고 선택한 배우자가 표리부동한 위선자임이 들어나면 평생 치유받기 힘든 상처를 입게 됨은 물론 한 번밖에 없는 인생 자체가 파탄되기도 한다. 거짓 지도자들이 미치는 영향은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와 직결된다.

고상한 인격과 해박한 지식을 지닌 탁월한 지도자로 믿고 선출한 지도자가 자신과 그를 추종하고 지지하는 소수의 무리가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하여 국민을 속이는 위정자로 군림하게 되면 그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아지기 때문이다.

멸망의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들어서게 할 성스럽고 영광스런 사명을 부여받은 하나님이 일꾼들 중에서도 거짓으로 수놓아진 가슴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음은 진정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거짓과 가짜들이 난무하는 서글픈 현실 속에서 우리들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진실보다 더 그럴듯하게 위장하고 당당하게 행세하는 인간들을 판별할 수 있는 혜안을 지니는 것이다.

대학시절, 영시를 강의했던 J 교수에게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비결을 배웠다. “훌륭한 작가의 작품을 많이 정독하면 올바른 영어를 말하고, 쓸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돈을 많이 다루는 은행원이 위조지폐를 한 눈에 알아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 교수님의 말씀 속에서 난 영어를 잘하는 방법과 더불어 진실로 위장한 거짓이 기세를 부리는 세상에서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거짓인가를 알아내는 방법은 나 자신이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숱한 형태의 거짓이 진실을 가리는 시대에 살면서 가짜나 거짓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는 확실한 방법은 우리들 자신이 진실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진실한 사람이 되고, 착하고 양심적인 이웃이 되며, 거짓 없는 깨끗한 마음을 지닌다면 거짓은 우리들에게 침투할 수도 없고, 우리를 혼란 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위선과 거짓으로 엉켜진 삶을 살면서도 당당하기만 하다. 그네들은 자기들이 걷는 길이 진리로 포장된 길이라고 소리 높여 외치기까지 한다. 과연 그들은 그네들이 믿고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확신한다. 거짓과 위선은 모든 악의 근원인 사탄의 본성이기에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은 악을 향해 뻗어있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도 자기들이 선택한 길이 옳고 정의로운 길이 아님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그들에겐 그네들이 누리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호화롭고 안락한 삶에 취하여 거짓의 탈을 벗어버리고 진실을 말하고, 행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그네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거짓에 힘입어 어떤 것을 성취하더라도 결코 승리의 면류관을 쓸 수 없으며, 그들은 멸망이라는 이름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된 길로 들어서선 안 되며, 거짓된 사람들의 달콤한 속삭임에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며 죄악인가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경위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대의 축복을 부여받은 부부였다. 하나님의 주례로 맺어져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원한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완전한 질서와 조화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낙원에서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어느 날, 추악하고 간교한 뱀이 우아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분장하고 나타나 하와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고 유혹한다.

하와는 주저했다. 그것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뱀은 “그 열매를 먹어도 너는 죽지 않아.”라 속삭이며 먹음직스럽고, 보기에 아름다우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열매를 가리켰다.

하와는 그 열매를 따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먹게 했다.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것은 “먹으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 아닌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사탄의 말을 믿은 행위였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 아닌 사탄의 거짓된 음성에 귀 기울였던 것이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영원한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고, 그들의 후손인 모든 인간들이 원죄라는 무거운 죄 짐을 지고 험난한 인생의 가시밭길을 걷게 된 것이다.

진실 아닌 거짓을 택한 결과 이 같은 비극이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진대 우리는 거짓에 속아 우리와 이웃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실과 거짓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은 간단하면서도 분명하다. “의와 악이 하나가 될 수 없으며, 빛과 어둠이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 성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인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한 진실과 거짓의 대결은 계속될 것이다. 지구의 종말이 이를 때까지 진리를 무너뜨리려는 거짓의 원조 사탄의 시도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진실을 이기려는 사탄의 도전은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거짓을 배격하고 진실의 편에 서서 선하고, 옳고, 정의롭고, 용기 있게 살아감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몫을 감당하며 조국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하는 보람된 인생길을 걸어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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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30
모세의 생애(1)-죽을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모세(하)

 

(지난 호에 이어)

그들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혹은 애굽 왕이 주겠다는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살시키는 악의 역사에 동참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들이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것은 진정 의롭고 용감한 행위였다.

그들 두 여인이 한 일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가 멸종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에스더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위대한 믿음의 여인들로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십브라와 부아가 에스더보다 천년이나 먼저 목숨을 버릴 각오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했고, 베드로와 요한보다 천오백 년이나 앞서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다.”(행 4:19)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담대한 믿음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셨다.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세계 최고의 권력자 애굽 왕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셨고, 그들의 가정에도 큰 축복을 내려주셨다. “어찌하여 너희들이 나의 명을 어기고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살려주었느냐?”는 애굽 왕의 문책을 받고 그들이 태연하게 “히브리 여인들은 체력이 강하여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아이를 낳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속수무책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지혜와 담력을 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물론 그들의 집안이 크게 번성하는 축복까지 내려주셨다.

산파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기하급수적 증식을 막으려던 계획이 실패하자 애굽 왕은 방법을 바꾸어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모조리 나일 강에 던지라는 칙령을 공포해 버렸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무런 방어능력도 없는 간난 아이들을 죽이는 데는 쉬운 방법이 많았을 텐데 어째서 나일 강까지 가서 어린 생명들을 수장시키라 했을까 하는 점이다.

나일 강은 그 당시 애굽 사람들이 신처럼 섬기던 강이었다. 때문에 나일 강에 아이를 던지는 것은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간주했으며, 만일 나일 강에 던져진 아이가 살아난다면 그 아이는 신이 필요로 하는 귀한 생명이라 생각했기에 애굽 왕은 태어나는 히브리 남아들을 나일 강에 던지라고 명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 수 있다.

이 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레위 지파에 속한 한 남자가 같은 지파의 여인과 결혼을 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므람 이었으며, 그는 야곱의 셋째 아들 레위의 증손자였다. 그의 아내 요게벳 또한 레위 지파의 후손으로서 경건하고 성스럽게 자란 여인이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보면 아므람은 하나님께 이스라엘 민족을 멸족의 위기에서 건져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고 한다.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와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해낼 것이며, 그 아이의 형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요게벳이 낳은 아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준수하고, 씩씩했다. 그들 부부는 그 아이를 나일 강에 버리지 못하고 석 달 동안 숨겨서 길렀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남자 아이를 숨겨서 기른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그들 부부는 물론 첫 아들 아론과 딸 미리암까지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대나무 바구니를 만들어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역청과 나무진을 칠한 후 아이를 그 속에 담아 나일 강변의 갈대 술 사이로 들여보냈다. 그러면서 아므람과 요게벳은 그들은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은 다했으니, 나머지는 그를 이스라엘을 구할 도구로 사용하실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실 것이라 확신했을 것이다.

엉성한 대나무 바구니에 실려 나일 강변 갈대 숲 사이에 떠도는 어린 아이의 운명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생각일 뿐이요, 악어들이 우글대는 나일 강의 갈대 숲에 떠있는 대나무 바구니는 결코 가라앉지 않는 하나님의 특수 방주였다.

그런 까닭에 그 속에 누운 천진난만한 어린 생명 모세는 전능자의 불꽃같은 눈동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잠 잘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어린 모세가 누운 대바구니는 침몰하지 않는 하나님의 작은 방주였다. 때문에 모세가 잠든 대바구니는 오늘 날로 치면 2십만 톤이 넘는 호화스러운 크루스 선이 망망대해를 흔들리지 않고 항해하듯 위험한 나일 강을 따라 안전하게 흘러가다 그 곳에 목욕하려 나온 애굽 왕의 딸에 의해 발견되어 왕실로 옮겨졌다.

다시 말해 모세가 누운 대바구니가 도달한 곳은 어떤 풍랑이나 위험 속에서도 절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는 포구였던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 속에 바구니에 담겨 나일 강에 던져졌던 모세가 하나님의 특수 섭리에 의하여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애굽 왕실에서 이스라엘의 민족 해방자로서의 생애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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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3
모세의 생애(1)-죽을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모세(상)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 가져다가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까?’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출 2:1-10)

 

애굽 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으로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일가의 총 수는 70명 이었다. 요셉의 주선으로 가나안과 애굽의 국경지대인 나일 강 삼각주에 위치한 고센에 정착한 그들은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다. 우선 가나안에서는 계속되는 흉년으로 굶주리며 지내야 했지만 고센에 와서는 양식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고센 땅에는 비가 많이 내려 목초가 풍부하여 그들의 주업인 목축업을 하기에는 적합한 지역이 그 곳이었다. 거기다 정착해 살고 있는 애굽 인들도 없는 곳이었기에 그들을 거기서 그들의 민족성을 유지함은 물론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며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하신 언약이 실현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한 사탄의 도전이 시작되니 고센 땅에서 날로 번성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압박을 가하는 애굽의 정책이 그 시작이었다.

요셉이 죽은 후에도 야곱일가는 고센 땅에서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며 무사히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주어지던 혜택이 하나 둘씩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새롭게 들어선 왕조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이방족속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성경 외의 문서들에 의하면 기원 전 1730년부터 1570년까지 애굽을 지배한 학소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신왕국 시대”로부터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으로 되어있다. 신왕국의 투트모스 3세 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에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족속의 수가 너무 많고 강하여 애굽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강제노역을 시키며, 국가 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였다.

별다른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던 야곱의 후손들은 이 같은 엄청난 변화에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애굽을 흉년의 위기에서 구해내어 번영시킨 요셉의 공로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새로운 정권 밑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 갈 수밖에 없었다.

견디기 힘든 중노동과 가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이 계속하여 불어나자 애굽 왕은 히브리 여인들이 해산할 때 아들이면 죽여 버리라는 특명을 산파들에게 내린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애굽 왕이 이 같은 밀령을 내린 이면에는 또 다른 까닭이 있었다고 한다. 즉 어떤 현인이 애굽 왕에게 히브리 사람 중에서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지닌 아이가 태어날 텐데 그 아이가 자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면 애굽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 진언했다.

그러지 않아도 이스라엘 민족의 급속한 증가를 염려하던 애굽 왕은 그 말을 듣고는 태어나는 히브리 남아들을 모조리 죽이기로 작정했다는 것이 요세푸스의 기록에 남아있는 것이다. 애굽 왕의 결단은 후일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찾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 근방에서 태어난 어린 남자 아이들을 살해한 헤롯 왕의 만행을 생각하게 한다. (마 2:1-18)

애굽 왕은 고센 땅의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가나안으로 돌려보냄으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그 방법을 택하지 않은 것은 육십 만에 달하는 히브리 장정들의 노동력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특명을 받은 십브라와 부아가 어떤 여인들 이었는가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록된 것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이 믿고 신임하는 산파들이었을 것이며, 임무를 잘 수행하면 상당한 대가를 보장받았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받는 히브리 남아들을 죽이지 않았다. 그네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왕명을 거역한 까닭에 대해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 들려주고 있다. 이는 십보라와 부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여호와의 법도를 존중히 여기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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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6
요셉의 생애(6)-예수님의 모형으로 살다간 요셉(하)

 

(지난 호에 이어)

요셉이란 나뭇가지에 열린 열매로 인해 야곱의 가족들은 흉년 중에도 풍요롭게 살 수 있었으며, 요셉이 펼친 현명한 양곡정책으로 기아선상에 놓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요셉의 생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와 인생의 밑바닥을 헤매며 살아야 한 요셉이었기 때문이다.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살다 그 집의 가정 총무가 되기는 했지만 계속되는 모함과 배신으로 인해 풍전등화와 같은 위태로운 인생길을 걸어야 한 요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항상 그와 함께 하시며 사탄의 사주를 받는 악한 무리들의 그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막아주셨다.  

볼드윈은(Joyce C. Baldwin)은 이 같은 사실을 “하나님은 요셉을 사용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그의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악인들의 계교를 무산시키셨다.”라 말해준다.

야곱은 이 같은 요셉의 삶을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권능과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묘사하고 있다. 계속하여 야곱은 하나님께서 지키시며 은혜를 베푸셔서 요셉의 후손들이 크게 번영하며 번성하게 해주실 것을 간구한다.

야곱의 요셉을 위한 기도는 높은 산처럼 한없는 그의 축복이 형제들 가운데 뛰어난 요셉의 머리에 내리기를 원한다는 것으로 끝난다. 야곱을 요셉의 삶을 배척당하며 쫓기는 자의 신세로부터 시작하여 온간 난관과 역경에 부딪치면서도 하나님만을 믿고 슬기롭고 의롭게 이겨내며 무성한 가지를 지닌 나무처럼 성장한 인생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요셉을 그의 열두 아들들 중 실제적인 장자로 인정하는 기도를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의 조상이 될 그의 열두 아들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끝낸 야곱은 조용히 숨을 거둔다. “험악한 세월” 속에 보낸 147년의 생을 마감하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품에 안긴 것이다. 요셉은 40일에 걸쳐 야곱의 시신에 향을 넣어 방부 처리했으며, 애굽 사람들은 70일 동안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그 당시 애굽의 국장에 해당하는 예우였다. 그 모든 절차가 끝난 후 요셉은 아버지의 시신을 가나안으로 운구하여 아브라함의 가족묘지인 막벨라 굴에 안장한다. 이스라엘의 3대 족장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나란히 누워 영면에 들어간 것이다.

야곱이 죽자 그의 아들들은 요셉이 그들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요셉은 그들이 그를 해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어 그로 하여금 많은 생명을 구하게 했으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들을 안심시킨다. (창 50:15-21)

요셉은 110세까지 그들과 함께 애굽에 살면서 에브라임의 자손 3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들도 그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다. 요셉은 임종 시에 형들에게 그는 죽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살펴 주시다가 애굽에서 인도해내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 들려준다. 그런 후 그들이 애굽을 떠날 때 그의 유해를 가나안으로 가지고 가달라고 부탁한다.

야곱의 유언과 똑 같은 것이었다. 요셉의 유언을 들으면서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할 때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으며, 가나안으로 진군한 여호수아에 의해 세겜에 안장되었다.(수 24:32)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역사의 흐름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역사의 물줄기는 하나님의 정하시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로이드 존슨(M. Llyod-Jones)은 <두려움에서 믿음> (From Fear to Faith)에서 “역사는 철두철미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표에 의해 형성되고 진행되며,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안위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요약해 준다.

요셉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 같은 하나님의 역사운영 원칙이 그가 걸은 인생길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이방민족의 종이 되어 그 땅에서 사백 년 간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후에 요셉과 야곱 일가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실현이며, 야곱은 하나님의 방법과 시간에 따라 그 약속들을 실현시키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살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승리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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