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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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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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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6
야곱의 생애-벧엘로 올라가는 야곱(하)

 

 (지난 호에 이어)

디나가 세겜에게 순결을 강탈당한 것은 그녀와 야곱일가 모두에게 견디기 힘든 치욕과 수치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이 복수를 위해 속임수를 써서 한 부족을 멸족시키는 집단살인을 자행한 것은 비겁하고 악랄한 범죄행위였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보복의 수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룩한 외적 의식인 할례를 악용한 것이다. 야곱은 세겜 성의 대학살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후에도 그는 아들들의 만행에 관해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잔인한 보복행위가 인근 부족들에게 알려져 자기에게 해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며, 그 일을 주도한 시므온과 레위를 책망했을 뿐이다. 시므온과 레위는 “우리 누이가 창녀 취급을 받아도 가만있으란 말입니까?”라며 그들의 한 일이 정당한 복수였음을 주장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세겜 성 비극의 근본원인은 야곱이 에서와 화해한 후 벧엘로 가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에서가 떠난 후 야곱은 이방인들의 거주지인 세겜 지역에 거처를 정했기에 디나가 세겜의 정욕의 희생물이 되는 불행을 당한 것이다.

그러자 그녀의 오빠들은 그녀가 당한 것보다 더욱 가혹하고 잔인한 보복행위를 했고, 복수를 위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거짓’까지 동원한 것이다. 그런데도 야곱은 그들의 죄악을 엄하게 다스리지도 않았고 (훗날 그 일을 주도한 시므온과 레위를 그의 축복에서 제외하기는 했지만), 그 사건의 여파로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해서만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질책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벧엘로 올라가라고 지시하신다. 그를 이방세계로부터 분리시켜 그가 필요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에서 였다.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벧엘로 가기로 결단한 야곱은 가족들과 그와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그들이 가진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며, 의복을 갈아입으라고 지시한다. 그의 지시 사항 중 첫 번째로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고 한 것을 보면 그들 중 상당수가 세겜에 머물 때 이방신들에게 현혹되어 그 신상들을 지니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지시한 대로 사람들이 그들이 지녔던 이방 신상들을 가져오자 야곱은 그것들을 전부 땅에 묻어버린다. 이때 라헬이 하란을 떠날 때 몰래 가져온 라반의 가정 신 드라빔도 함께 묻었을 것이다.

후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 조상들이 섬기던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한 것보다 더 강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경외하겠다는 자신의 의지와 결단을 모든 이들에게 알린 것이다.

동시에 야곱은 그들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갈아입으라고 지시한다. 그 당시 지중해 연안에 살던 사람들은 집을 멀리 떠났다 돌아올 때는 몸을 깨끗이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습관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관습에 따라 야곱은 수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집인 벧엘로 올라가자고 권면한 것이다.

그 같은 야곱의 마음은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내가 가는 곳마다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겠다.”고 한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외롭고 힘든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하나님은 언제나 야곱의 곁에 계셨다는 사실을 야곱은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에게로 갈 때 야곱은 도망자의 신세나 다름없었다. 라반 밑에 있으면서 온갖 슬픔과 고초를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라반에게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당한 서러움과 고통과 부당한 대우는 그가 아버지와 형을 속인 것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라반 밑에서 일하면서 그가 범한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심과 동시에 그가 아브라함과 이삭에 이어 인류구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자질을 가출 수 있는 인간으로 훈련시키신 것이다.

다시 말해 야곱은 라반 밑에서 하나님의 교과과정에 따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삼대 족장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사에 참여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와 결단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목적지인 벧엘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동행해 주셨다. 야곱이 세겜을 떠나 벧엘로 향하면서 제일 두려워한 것은 그 부근의 부족들이 연합하여 세겜 성의 남자들을 몰살시킨 그를 공격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여 떠나가는 야곱에게 해를 끼치거나 복수를 하지 못하게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일하는 일꾼들을 결코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지키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들의 벧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늘 함께하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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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
야곱의 생애(6)-벧엘로 올라가는 야곱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은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벹엘로 올라가자.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음으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 모든 사람이 가나인 루스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창 35:1-7)

 

“형님의 얼굴을 대하니 꼭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라며 머리 숙이는 야곱의 말을 에서가 그대로 믿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에서는 자기를 속여 장자권을 탈취한 야곱을 너그럽게 받아드렸을 뿐만 아니라 그가 데리고 온 사람들로 그를 보호할 테니 함께 가자며 아량을 보인다.

하지만 야곱은 그에게 딸린 가족들이 많고, 그의 가축 떼 중에는 연약한 것들도 있어 에서가 거느린 장정들과 동행하기 힘드니 뒤에서 천천히 가겠다며 정중하게 사양한다. 야곱에겐 에서를 따라갈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야곱의 속마음을 모르는 에서는 그렇게 하라며 야곱이 선물로 준 가축 떼와 그가 데리고 온 400명과 함께 세일로 떠나갔다.

에서가 떠난 후 야곱은 숙곳으로 가서 집과 가축들을 위한 우리를 지었다. 그러나 거기 오래 머물지는 않고 세겜 성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에서가 떠난 후 야곱은 숙곳이나 세겜 아닌 벧엘로 갔어야 했다. 야곱이 하란으로 도피할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와 함께 하시며 집까지 무사히 돌아가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한 곳이 벧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라반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온 그는 마땅히 벧엘로 가서 야곱 아닌 이스라엘로 새롭게 시작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숙곳을 거쳐 이방인들이 사는 세겜 성 앞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야곱은 크나 큰 불행을 만나게 된다. 그의 외동딸 디나가 세겜 성주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겁탈을 당한 것이다.

야곱이 세겜 지역에 사는 수년 동안 야곱일가와 세겜 성내의 히위족속들이 상호 교류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이 판이하게 다른 두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요할 때마다 서로 왕래하며 지낸 것은 확실하다.

야곱의 외동딸 디나가 그 성에 들어갔다 뜻밖의 봉변을 당한 사실이 그것을 말해 준다. 세겜은 성문과 성벽을 제대로 갖춘 견고한 성으로서 성내에는 여러 가지 시설과 사람 사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기에 성안에 들어간 디나는 시골에서 도시에 온 소녀처럼 여기 저기 다니며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게 된 그 성의 추장 세겜은 그녀를 집으로 불러드려 욕을 보였다.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들은 야곱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강간당한 디나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다.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오랫동안 애통하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태도였다. (창 37:33-37)

디나가 이방인에게 능욕을 당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고도 야곱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양을 치려 나간 아들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까닭은 딸의 안위보다는 그 일이 자기에게 미칠 영향을 더 염려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들에서 돌아온 아들들이 그 소식을 듣고 분노할 때도 야곱은 침묵했다는 사실이 그 같은 그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게 해준다.

세겜은 순간적인 성적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디나를 범하긴 했지만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아버지 하물과 함께 야곱을 찾아가 정식으로 청혼을 한다. 그들의 태도는 정중하고 진지했다. 하지만 그들은 세겜이 강제로 다나를 성추행한데 대하여는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야곱은 그들의 청혼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이방인에게 디나를 줄 수 없다는 강력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그들은 세겜 성의 남자들이 그들처럼 할례를 받는다면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것은 철저한 기만전술이었다.

하몰과 세겜은 그 제안에 동의한다. 야곱 아들들의 숨은 의도를 감지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그들도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즉 그들은 디나와 세겜을 결합시키면 야곱일가를 그들에게 흡수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때문에 하몰과 세겜은 성내의 모든 남자들을 설득하며 할례를 받게 했다. 그 결과 세겜 성의 모든 남자들이 몰살당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할례를 받은 남자들이 운신조차 못하고 누워있을 때 디나의 오빠 시므온과 레위가 성으로 진입하여 그들을 죽여버린 것이다.

야곱의 다른 아들들도 합세하며 성내의 재물을 약탈하고 여인들과 아이들을 사로잡아 왔다. 그날 세겜 성에서 일어난 일은 피비린내 나는 복수임과 동시에 무자비한 대량학살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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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2
야곱의 생애(5)-이스라엘로 거듭나는 야곱(하)

 

(지난 호에 이어)

고향에 도달할 때까지 함께 주실 것을 간구한 야곱은 계속하여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주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창 32:10)라고 고백한다. 자기는 아버지와 형을 속여 장자권을 빼앗은 죄인이며, 그 때문에 빈손으로 하란으로 도망했음을 자백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부자가 되어 많은 종들과 가축들을 소유하게 된 것에 감사한 것이다.

야곱의 기도를 들으며 우리는 그가 하란으로 가서 라반을 섬기며 온갖 고초를 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 같은 쓸모없는 인간을 그의 역사운영의 동참자로 삼기 위하여 훈련시키기 위한 계획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 못할 죄인임을 자백한 야곱은 에서의 손에서 그를 구원해 달라고 간구한다.

에서가 “나와 처자식들을 해할 가 무섭습니다.”라 그의 두려운 마음을 솔직하게 아뢴 후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의 후손을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도를 마친 후 야곱이 한 일은 튼튼하고 좋은 짐승들을 여러 떼로 나누어 각 떼마다 간격을 두어 에서에게 보낸 것이다.

짐승들을 몰고 가는 하인들에게 야곱은 에서가 “네 주인이 누구이며, 이 짐승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느냐?”라 묻거든 “이것들은 당신의 종 야곱이 그의 주인 에서에게 보내는 선물입니다.”라 대답한 후 “당신의 종 야곱은 뒤에서 오고 있습니다.”라 말하라고 당부한다.

많은 선물을 먼저 보내 에서의 감정을 푼 후 그를 만나면 에서가 그를 용서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인들 편에 에서에게 선물을 보낸 야곱은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얍복 나루 건너로 보내고, 그의 모든 소유까지 강 건너로 보낸 후 홀로 남았다. 그러나 그는 혼자 남은 것이 아니었다. 20년 전 캄캄한 루스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누웠던 그의 곁에 계셨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가온 하나님의 천사는 그와 더불어 씨름하다 그의 허벅지 관절을 위골시키고 떠나려 한다. 허벅지 관절이 위골되었다는 것은 그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홀로 설 수 없게 된 야곱은 필사적으로 천사를 붙들고 늘어져서 “내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결코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라 떼를 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만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진실하고 간절한 야곱의 믿음의 표현이었다. 그러자 천사는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그가 “야곱입니다.”라고 답하자 천사가 “너는 지금부터 야곱이 아니고 이스라엘이다.”라고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의 상징적인 존재인 그에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 이라는 이름이 주어진 것이다.

날이 밝으면 에서의 공격을 받아 그때까지 얻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인생 자체가 풍비박산 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던 야곱이 아무 가치 없는 인간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얍복 나루에서 야곱은 천사와 싸워 이김으로 그의 인생의 진로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게 한 위대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같이 놀라운 일은 야곱의 지략이나 계획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의 인간적인 처신을 그의 크신 사랑과 전능하신 지혜로 승화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야곱은 에서와의 대면을 준비함에 있어 라헬과 그녀가 낳은 요셉을 제일 뒤에 있게 함으로 그들의 안전을 도모하였다. 이 사실은 야곱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특별한 배려는 필요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에서는 그에게 일곱 번이나 몸을 굽혀 절하는 야곱을 껴안고 입 맞추며 울었기 때문이다.

에서가 야곱을 만나기 전에 그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아니면 야곱을 만나는 순간에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야곱을 만나면서 에서의 마음에서 동생에 대한 원한과 그를 해치려는 생각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 것만은 사실이라 믿어진다. 

에서가 거느리고 온 400명은 야곱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변해 버렸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영광스런 승리자가 되어 에서를 만난 야곱은 그와 아름다운 화해를 하고, 그에 대한 공포와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인생행로를 걷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에서가 함께 가자고 권유하자 일행 중 여자와 아이들이 여럿이고, 가축 떼도 많아 행군이 더디니 형이 먼저가면 따라가겠다고 그의 제안을 사양한다. 그리고는 에서를 뒤따르지 않고 숙곳으로 가서 거처를 정한다. 그 후 아버지 이삭의 장례를 에서와 야곱이 함께 치른 것 외에는(창 35:29) 두 형제와 함께 지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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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5
야곱의 생애(5)-이스라엘로 거듭나는 야곱(상)

 

“또 야곱이 이르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고향,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없사오나 내가 지팡이만 가지고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처자들을 칠가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씨로 바다의 없는 모레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2: 9-12)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지 않겠나이다.’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32:26-28)

 

라반이 돌아간 후 야곱은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야곱은 라반이 반드시 쫓아 와서 그를 해하거나 그를 가게 하는 대신 많은 것들을 요구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야곱을 건드리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은 라반은 야곱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를 해치지 않았음은 물론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지내자는 약속까지 하고 돌아갔기 때문이다. 라반에 대한 걱정은 없어졌지만 야곱에게는 더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에서와 만나는 것이 그것이었다.

20년 전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야 했던 것은 아버지를 속여 에서의 몫인 장자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에서의 복수를 피하여 하란 땅에 와서 사는 동안 야곱은 한시도 형의 장자권을 거짓을 사용하여 강탈한 후회와 자책감에서 해방된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형의 분노에 대한 두려움도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라잡고 있었다.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에서가 사는 가나안 지경으로 들어서는 야곱이 공포에 휩싸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잔머리를 굴리는데 명수인 야곱은 에서가 거주하는 세일 쪽으로 가지 않고 사해 남동쪽으로 가서 그를 피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계속하며 에서의 동향을 살피며 긴장과 경계를 풀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야곱은 에서와 대면하며 그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야곱이 가나안으로 들어서자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관문인 여리고를 정복할 때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그 앞에 나타났고(수 5:13-14), 하나님이 엘리사 사환의 눈을 열어 수많은 불 말과 불 수레를 보게 한 것처럼(열하 6:14-17) 에서와의 대면을 앞두고 겁에 질려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 후 용기백배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에서에게 그 동안 라반 밑에서 일하다 이제 처자식들과 가축 떼를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니 너그럽게 받아달라는 서신을 보낸다.

하나님이 그를 보호해 주시기는 하지만 자기도 형의 노여움을 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에서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야곱에게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다는 믿음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방법으로 에서와의 갈등을 풀어야 한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고 여겨진다.

서신을 가지고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그에게 오고 있다고 알려주자 야곱이 취한 행동이 이 사실을 말해 준다. 야곱은 에서의 공격에 대비하여 가축들을 두 떼로 나누고, 에서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축 중 좋은 것들 수백 마리를 선물로 보낸다. 야곱다운 처신이었다. 더 야곱다웠던 것은 에서를 대면할 모든 계획들을 세워놓고 에서의 공격에서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그가 집을 떠나 하란으로 가는 길에 벧엘에서 한 후 처음으로 드린 기도였다. 라반의 가축을 치며 지낸 20년 동안 한 번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적이 없었던 야곱이었다. 그 야곱이 에서와의 대면을 앞두고 하나님께 머리 숙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야곱이 에서의 복수에 대비하여 그 나름대로의 모든 조처를 취한 후에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변하지 않은 인간 야곱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야곱의 기도는 “나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로 시작된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네 족속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라.” 하신 말씀을 상기시킨다. 물론 야곱은 전에 벧엘에서 했던 것처럼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해주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창 28:21) 라는 조건부 기도를 드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돌아가는 그를 책임지고 무사하게 해달라는 의미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는 기도임을 감지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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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8
야곱의 생애(4)-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하)

 

(지난 호에 이어)

레아와 라헬의 동의를 얻은 야곱은 처자들과 거기서 얻은 모든 재산과 가축 떼를 이끌고 그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했다. 이때 야곱은 그를 붙잡아 두려는 라반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를 하나님께 물었어야 했다. 하나님은 20년 전 벧엘에서 그에게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때가 왔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라반이 양털을 깎으려고 나간 틈을 타서 몰래 그 곳을 떠난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하고도 아버지와 형을 속여 장자권을 얻을 때와 같은 인간 야곱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야곱이 떠나고 사흘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라반은 서둘러 친척들을 불러 모아 그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라반이 야곱을 따라 잡은 지점은 하란에서 560키로 떨어진 길르앗 산이었다.

처자들과 많은 가축 떼를 거느렸지만 야곱은 하루에 50내지 60키로를 행군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야곱 일행이 그처럼 빠른 속도로 광야를 걸었다는 것은 그가 필연적으로 있을 라반의 추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필사의 노력을 경주했음을 말해준다.

라반과 야곱이 만나기 전날 밤 하나님은 꿈에 라반에게 나타나 야곱을 해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경고를 받은 라반은 야곱을 만나 그를 속이고 도망한 야곱을 가볍게 책망하면서 고향으로 가겠다고 했으면 큰 잔치를 베풀고 기쁘게 보내주었을 것이란 말까지 한다.

그러나 그 말이 그의 본심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비록 라반이 야곱을 해치지는 않았지만 야곱이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말했다면 라반은 결코 순순히 야곱을 떠나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반이 자기를 배반한 야곱을 관대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해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라반은 그 사실을 솔직하게 밝힌다. 그리고는 어째서 그가 소중히 여기는 가정 신 드라빔을 훔쳤느냐고 윽박지른다.

라반이 말하는 드라빔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기록된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라반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라헬은 그것을 몰래 집어왔고, 라반은 그것을 야곱이 훔쳤다고 단정하고 그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

야곱은 그가 떠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라반이 허락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레아와 라헬을 빼앗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실토한다. 나중 일이기는 하지만 사울 왕은 다윗을 그의 정적으로 간주하며 다윗의 아내인 그의 딸 미갈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준 기록이 있다(삼상 25:44).

야곱은 라반의 드라빔에 대하여는 아는 바 없음을 강력히 주장하여, 그의 일행 중에 그것을 가진 사람이 발견되면 죽여도 좋다고 맞섰다. 그는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라반은 야곱의 천막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드라빔을 찾지 못한다. 라헬이 그것을 그녀의 낙타 안장 밑에 숨기고 그 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라반이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야곱은 라반에게 20년 간 그를 위하여 온갖 고난을 감수하며 충실하게 일한 자기를 박대하며 마땅히 지불해야 할 품삯까지 제대로 주지 않은 것에 불만을 토로한다.

그리고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를 쫓아 와서 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드라빔을 내놓으라고 위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라반이 그를 부당하고 가혹하게 대한 사실을 알고 계셨기에 자기를 보호해 주셨고, 외삼촌에게 자기를 해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이라 말한다.

사실 라반은 야곱이 자기 밑에서 20년 간 온갖 곤경을 치르면서 열한 명이나 되는 자녀를 생산하고 큰 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임을 모르고 있었다.

라반과 야곱은 돌을 모아 기념비를 세우고 그때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서로 존중하며, 피차 그 기념비를 넘어 상대의 지경을 침범하지 않기로 합의한다.

이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라반은 야곱에게 레아와 라헬 외에 다른 여인들을 아내로 삼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기주의자이며, 기회주의주의자요, 속임수의 달인인 라반에게서 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라반과 야곱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그들이 맺은 언약의 증인이심을 확인한 후 함께 먹고 마시며 밤을 지낸 후 이튿날 아침 라반은 딸들과 손자들에게 입 맞추며 축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라반이 야곱을 쫓아온 것은 그를 데리고 가서 자기 밑에서 일하게 할 목적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합동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라반과 야곱은 아름다운 생의 이별을 한 후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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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1
야곱의 생애(4)-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상)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떼에 두루 다니며 중에 아롱진 것과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염소 중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같은 것이 품삯이 되리이다.’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대답이 되리이다. 내가 혹시 염소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30: 31-33)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내가 나와 사이에 무더기를 보라. 기둥을 보라.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무더기,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야곱이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31:51-55)

 

야곱이 라반 밑에서 지낸 기간은 총 20년 이다. 처음 14년은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얻기 위하여 무보수로 일했으며, 그 후에도 라반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야곱의 품삯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야곱은 레아, 실바, 빌하 세 아내를 통해 아들 열과 딸 하나를 얻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로 라헬이 요셉을 낳자 야곱의 기쁨은 컸다.

라반은 여전히 야곱에게 인색하기만 했다. 더 이상 라반과 함께 있어 보아야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야곱은 그 곳을 떠나겠다고 한다. 라반은 함께 있자며, 품삯을 정하자고 한다. 그러자 야곱은 뜻밖의 제안을 한다. 특별히 품삯을 주는 대신 그가 치는 양과 염소 중에서 검은 것과 얼룩덜룩하고 점이 있는 것들을 가려낼 테니 그것들이 낳는 새끼들을 그의 몫으로 해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야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었다. 대부분의 양들은 색깔이 희었고, 염소의 경우에는 대다수가 검었기 때문에 아롱지거나 점 있는 양과 염소만이 야곱의 소유가 된다면 그가 갖게 될 양이나 염소는 극히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야곱은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맺더라도 라반은 결코 그에게 약속한 금액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야곱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의 몫을 챙길 수 있는 제안을 한 것이다.

한편 야곱의 조건을 들은 라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야곱의 말대로 해주면 평생 거의 품삯을 지불하지 않고 야곱을 붙잡아 둘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의주도한 라반은 최소한의 양과 염소만이 야곱에게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숫양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암염소 가운데서 흰 바탕이나 아롱진 것과 검은 것들을 골라 그의 아들들에게 맡기고 야곱이 있는 곳에서 사흘 길이 떨어진 지역으로 옮겨가게 한 것이다. 아롱지고 점 있는 양이나 흰 염소 새끼들이 수태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야곱은 라반의 이 같은 조처에 관계없이 그의 몫을 늘릴 수 있는 특수한 방안을 생각해 놓고 있었다.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 푸른 가지들의 껍질을 벗겨 흰무늬를 매어 가축 떼들이 물을 먹으면서 볼 수 있도록 물구유 앞에 세워놓았다.

그 때 가나안 목동들은 가축 떼들이 얼룩진 가지들을 바라보며 교미를 하면 아롱진 새끼를 밴다고 믿었다.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고 미신적인 생각이었지만 야곱은 그 방법을 사용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셨기에 그가 치는 양과 염소들은 얼룩진 새끼들을 낳기 시작했다.

야곱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튼튼한 양들이 교미를 할 때는 물구유 앞에 무늬 있는 가지들을 세워놓고, 약한 양들일 경우에는 그 가지들을 치웠다. 그 결과 튼튼하고 얼룩진 양들은 야곱의 것이 되었고, 허약한 것들은 라반의 몫이 되었다.

야곱은 순식간에 부자가 되어 남녀 종들을 거느리고 많은 가축 떼를 소유하게 되었다. 예상과 달리 야곱의 얼룩진 양과 염소가 급속히 늘어나자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그들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아 거부가 되었다며 극심한 질투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삭이 그랄 땅에서 풍성한 수학을 거두며, 그의 가축 떼가 많아지자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한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창 26:14). 라반도 야곱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창 31:31) 말씀하셨다. 야곱은 레아와 라헬에게 그가 처한 상황을 들려주고 라반을 떠나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들도 아버지 라반이 야곱뿐만 아니라 그들까지도 냉대한다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곳을 떠나자고 한다. 그들은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기 위해 엘리에셀을 따라 집을 떠났고(창24:58), 후일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조국인 모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갔듯이 야곱을 따라 가나안으로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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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5
야곱의 생애-하란에서 핍박당하는 야곱(하)

 

(지난 호에 이어)

약속한 7년이 지나자 야곱은 라반에게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십시오.”라 요구한다. 야곱에게는 이미 라헬이 그의 아내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라반은 사람들을 모아 큰 잔치를 베푼 후 신방을 차려준다. 그런데 라반은 라헬의 언니 레아를 들여보낸다. 야곱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들어온 레아와 황홀한 첫날밤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신부가 라헬 아닌 레아인 것을 알게 된 야곱은 분노한다. 그러나 라반은 야곱에게 동생을 언니보다 먼저 시집 보내는 것은 자기네 풍습이 아니라며, 7일 간의 결혼잔치가 끝나면 라헬도 아내로 주겠으니, 7년을 더 그를 위해 일하라고 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간교하고 황당한 말이었다. 그러나 야곱으로서는 거부하기도 힘든 제안이었다. 뿐만 아니라 라헬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야곱은 그녀를 얻기 위해서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각오가 되어있었기에 분한 마음을 억제하며 라반의 말에 따라야 했다.

이 같은 과정들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처음부터 라반에게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야곱을 도와줄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믿음직스러운 야곱의 노동력뿐이었다. 때문에 라반은 라헬을 원하는 야곱에게 “그 애”을 주겠다고 할 때부터 레아와 라헬을 차례로 야곱에게 주면서 14년 간 그를 이용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런 라반의 비겁하고 간교한 행위를 보면서 우리는 그 당시 사회의 주도권은 완전히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두 딸을 야곱에게 아내로 줌에 있어서 라반은 한 번도 레아와 라헬은 물론 그의 아내와 의논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라반 혼자서 결정하고 실천에 옮긴 것이다. 라헬 대신 레아를 신방으로 들여보내면서도 본인들의 의사 같은 건 물어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여자들이 배우자까지도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가장인 라반의 뜻에 따라 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모세 시대에 들어서서는 두 자매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례 18:18)

야곱이 라반에게 속아 14년이란 긴 세월을 보수도 받지 못하고 혹사당해야 했고, 그 후에도 열 번이나 품삯을 사기 당한 것을 보면 야곱은 속임수의 달인인 라반에 의한 억울한 희생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야곱이 그의 아버지와 형에게 저질은 사기행각을 생각하면 야곱이 그보다 한 수 위인 라반에게 당한 일들은 그가 뿌린 씨앗의 열매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야곱은 거짓수법을 사용하여 에서의 몫인 장자권을 가로챘지만 그 대가로 라반에게 속았음은 물론 그의 안중에도 없었던 레아가 라반의 첫째 딸이었기 때문이 그가 사랑한 라헬에 앞서 그의 첫째 아내가 됨으로 체험을 통해 첫째와 둘째의 차이가 무엇인가 까지 된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두는” 만고불변의 원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야곱이 라반 밑에서 보낸 14년은 고난과 슬픔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이 시련의 기간은 야곱이 그가 범한 죄를 회개하며, 자신을 성찰함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에 동참할 수 있는 자질을 쌓아 올린 값진 시간이기도 했다. 야곱이 레아, 라헬, 빌하, 실바 등 네 명의 아내를 통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들이 된 열두 아들을 낳은 것도 이 시기였다.

야곱은 네 아내 중에서 라헬을 제일 사랑했다. 야곱과 라헬의 사랑은 만나는 순간부터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지속된 아름답고 진실된 것 이었으며,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들의 배우자들에게 보여준 사랑 중 가장 정열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것이었다.

야곱에 대한 라헬의 사랑도 뜨거우면서도 적극적이며 참된 것이었다. 그녀가 야곱에게 보여준 사랑은 그 당시 대다수의 여인들과 달리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레아, 실바, 빌하 세 여인이 열 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낳을 동안 라헬에게서는 아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라헬도 아들을 생산하게 되니, 그가 야곱이 제일 사랑한 요셉이다.

요셉이 태어난 후 야곱이 20년 타향살이를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 라헬은 그녀의 둘째 아들을 출산하다 죽는다. 야곱은 베들레헴에 그녀를 장사 지내고, 그 곳에 그녀의 묘비를 세운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여인을 위한 최초의 묘비로서 라헬이 야곱의 생애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가를 말해준다.

동시에 야곱이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게 해주기도 한다. 야곱은 참으로 많은 결점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첫 사랑 라헬을 끝까지 사랑한 순정의 사나이였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향한 첫 사랑을 잃어버리면 그의 충성된 일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불굴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모든 핍박과 고난을 이겨내며 그를 위해 충성한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셨다.

그러나 그를 향한 첫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인들을 책망하시며,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째서 그 첫 사랑을 잃어버렸나를 생각해 내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들의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계 2. 5) 말씀하신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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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8
야곱의 생애(3)-하란에서 핍박당하는 야곱(상)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기한이 찾으니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라반이 사람들을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의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 가니라. 라반이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라반이 이르되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나를 동안 섬길지니라.’ 야곱이 그대로 하여 일을 채우매 라반이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라반이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사랑하여 다시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창 29:21-30)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그가 고독과 절망 속에서 잠들었던 곳은 빈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거룩한 곳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가 베개 삼았던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란 의미인 벹엘이라 불렀다.

야곱은 그 앞에서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드리겠습니다.”(창 28:22)라 서약한다.

이는 후일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동료 제자들에게 그가 직접 예수님의 몸에 생겼던 못 자국과 창 자국에 손을 넣어 확인하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요 20:25)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의 맹세였다.

야곱은 그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여호와를 그의 하나님으로 모시며,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했고, 도마는 예수님이 못 박히셨던 자국과 창에 찔리셨던 상처를 보아야만 주께서 살아나셨음을 믿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선 야곱은 모든 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나님의 권능과 약속을 믿겠다는 자세로 인생을 산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야곱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는 과연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것을 참고 기다리며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줄 안다. (시 37:5-7)

하나님을 만난 루스 광야를 떠나 목적지인 밧단 아람에 도착한 야곱이 우물가에서 라반의 거처를 수소문하고 있을 때 한 여인이 양떼를 몰고 다가왔다. 그가 라반의 딸인 것을 목자들에게서 확인한 야곱은 그녀에게 입 맞추며 소리 내어 울었다. 외삼촌을 만나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기쁨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라헬을 만나는 순간 야곱의 가슴속엔 그녀가 그와 더불어 평생을 같이 할 여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충복 엘리에셀이 우물가에서 라반의 동생 리브가를 보는 순간 그녀가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임을 확신한 것처럼 야곱도 라헬을 그의 운명의 여인으로 맞아드린 것이다.

이 같은 야곱의 마음을 라헬이 알았을 리는 없다. 하지만 자기에서 입 맞추며 우는 나그네의 정체를 알게 된 라헬은 몰고 온 양떼를 내버려두고 집으로 달려가 야곱이 왔다고 알렸다. 그 말을 듣고 달려 나온 라반은 조카 야곱을 영접하여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라반은 그가 야곱에게서 어떤 형태로든 이득을 취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엘리에셀은 열 마리 약대에 값진 물건들을 많이 싣고 왔지만 야곱의 경우에는 빈 몸으로 왔음을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야곱이 라반을 만났을 때 그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 이삭이 떠나는 그를 축복해주기는 했지만 그에게 재물이나 재산을 상속해 주지는 않은 까닭이었다.

한 달을 같이 지내면서 라반은 야곱이 그에게 온 자세한 사연을 알게 되었고, 야곱으로부터 어떤 금전적인 이득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라반은 야곱의 노동력은 그에게 큰 자산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야곱에게 “네가 내 조카라고 무보수로 날 위해 일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넌지시 물었다. 야곱이 쉽게 집으로 돌아갈 형편이 아님은 물론 그가 라헬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던진 미끼였다. 야곱이 라헬을 아내로 삼게 해주면 7년간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하자 라반은 “그 애를 다른 사람에게 주느니 차라리 네게 주겠다.”고 그의 청을 들어준다.

여기서 우리는 라반이 “라헬”이라 하지 않고 “그 애”라 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라반이 그렇게 말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야곱은 7년 이란 세월을 “일각이 여삼추”같은 마음으로 라반을 섬겼다. 약삭빠르고, 교활하며, 비열한 그 답지 않게 야곱의 라헬을 향한 사랑은 진지하고 순수했다.

이 같은 야곱의 사랑을 가리켜 발드윈(Joyce G. Baldwin)은 “그의 사랑은 오래 참으며,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는(고전 13:4-7) 아가페적 사랑이었다”고 말해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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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야곱의 생애-도망 길에 오르는 야곱(하)

 

(지난 호에 이어)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든 야곱은 꿈속에서 놀라운 광경을 본다. 그가 누운 곳에서부터 하늘까지 계단이 놓이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곁에 서 계셨다. 졸지에 쫓기는 자가 되어버린 야곱은 자기는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진 외롭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 그를 지켜 주셨음은 물론 캄캄한 밤 빈들에 홀로 누운 그에게 몸소 찾아오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어째서 거짓 수법을 동원하여 형에게 주어진 장자의 권리를 가로챘느냐고 꾸짖지도 않으셨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하신 말씀은 “나는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너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였다.

아담과 하와에게 어찌하여 먹지 말라한 열매를 따 먹었느냐고 책망하셨고(창 3:6-11),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9)고 가인의 죄를 추궁하셨으며, 사람의 죄악이 땅에 가득하고 그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홍수로 세상을 멸하셨던(창 6:5-7) 하나님이시다.

야곱이 속임수를 써서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강탈한 것은 크나 큰 죄악이었다. “거짓”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품성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까닭이다. 하나님은 야곱이 비겁하고 교활하며, 이기주의적이며 기회주의자인 것도 잘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야곱을 이삭의 후계자로 선택하신 까닭은 야곱이 가슴 속 깊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 같은 마음은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 받을 수 있는 장자권을 사모하게 만들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거짓”까지도 동원하게 했던 것이다.

야곱이 장자권을 갈망했음은 그가 땅의 것보다는 하늘의 것을, 당장 눈에 보이고 소유할 수 있는 것보다는 저 멀리 있는 영원한 기쁨과 찬란한 영광을 원했음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야곱이 허물투성이의 인간이요, 아버지와 형을 기만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키시며 몸소 찾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신 것은 야곱을 이삭의 후계자로 인정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삭에게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펴져나갈 지며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과 같은 언약(창 12:1-3)을 야곱에게도 해 주신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하실 때 아브라함에게는 아내 사라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까지 임신을 하지 못했기에 나이 많은 그녀를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성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야곱에게 같은 약속을 하셨을 때 야곱은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겠다.” 하신 것은 야곱이 좋은 배필을 만나 많은 자손을 갖게 될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실제로 야곱은 4명의 아내를 두었으며, 그들이 낳은 열두 아들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던 언약을 야곱에게도 하시면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가 무사히 고향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와 동행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다.

형 에서를 피해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을 찾아가는 야곱에게는 한없는 기쁨과 용기를 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었다. 동시에 그 말씀 속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사용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인류구원 계획까지 내포되어 있었다.

야곱이 떠났던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뜻은 장차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400년 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한 후 그 곳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되돌아오게 할 원대한 계획이 말씀해 주신 것이었다.

하란으로 향하던 야곱이 루스 근방의 황막한 들판에서 돌베개를 베고 밤을 지낼 때 그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신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는 후일 삼손이 하나님은 그를 떠나셨는데도 여전이 그의 곁에 계신 줄 알고 그를 잡으러 몰려온 블레셋 사람들을 때려눕히려 했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었다.

하나님은 함께 계신데 그것을 모르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실히 믿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힘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1, 4)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곁에서 동행하고 계신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외로움과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세상은 어둡고, 어두움의 세력은 강하고 악랄하여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한 목자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들 곁에서 함께 걷고 있음을 확신하며 선한 싸움에 임하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승리를 확신하며 나아갈 수 있다. 전능자 예수 그리스도를 격파하지 못하면 아무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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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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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4
야곱의 생애-도망 길에 오르는 야곱(상)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하려고 곳의 돌을 가져다가 베개를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위에 있는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본즉 여호와께서 위에 서서 이르시되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자손에게 주리니,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며,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것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 28:10-22)

 

리브가가 쓰고, 야곱이 주연으로 출연한 “장자권 획득을 위한 사기극”은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야곱은 이삭에게 “제가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라고 두 번씩이나 거짓말을 하는 고역을 치려야 했지만 끝내 아버지를 속여 그의 축복기도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해준 장자의 축복은 그가 경작하는 곡식마다 풍성한 수학을 거두며, 형제와 친척들은 물론 모든 나라들이 그에게 굴복하고, 그를 축복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고, 저주하는 이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이었다(창 27:27-29).

장자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이 몽땅 야곱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그 결과 야곱이 나간 후에 별미를 들고 들어온 에서에게 이삭이 해줄 축복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에서가 울며 자기도 축복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이삭은 그에게 풍작을 기대하기 힘든 지역을 거주지로 정해주며,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동생 야곱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기도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창 27:38-40).

리브가와 야곱이 한 일을 알게 된 에서는 분노했다. 에서의 분노는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자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한 가인을 생각나게 한다(창 4:1-15). 그때 가인은 분을 참지 못하고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가 돌로 쳐 죽였다. 에서는 가인처럼 급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연로하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리라 마음먹는다.

이를 알게 된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의 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녀의 오빠 라반이 사는 하란에 가 있으라고 한다. 남편 이삭에게는 에서가 이방인 헷 족속의 딸과 결혼한 것이 마음의 짐이 되고 있으니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 동족 중에서 아내를 택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모든 것을 선의로 해석하고 순수하게 받아드리는 이삭은 야곱에게 어머니의 말대로 하란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택하라고 말한다.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고 이삭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그로 하여금 여러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야곱이 소유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준다. 리브가는 이삭에게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는 이유가 에서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서임은 말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배우자를 맞이하기 위함이라 말했다. 야곱이 속임수로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챈 일로 아버지의 책망을 받는 대신 축복을 받으며 집을 떠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리브가와 야곱은 그들이 행한 일에 성취감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 수 없었다. 야곱은 에서의 복수가 두려워 하란으로 도주하여 20년간 온갖 고통과 수모를 당하며 살아야 했고, 리브가도 심는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떠나간 야곱을 다시 보지 못한 채 외로이 생을 마감해야 했으니 말이다.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정든 집을 떠나 하란으로 향하는 야곱이 슬프고 괴로운 마음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브엘세바에서 북으로 88키로 정도 떨어진 지점에 도달했을 때 밤이 되었다. 인가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들판이었기에 야곱은 주위에 널려있는 돌들 중에서 둥글고 편편한 것 하나를 베개 삼아 잠을 청했다.

멀고 험한 길을 쉬지 않고 걸어온 탓에 극도로 피곤했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공포와 더불어 형과 아버지를 속인데 대한 후회와 괴로움으로 인해 정신은 더욱 맑아지기만 했던 것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돌베개를 베고 누운 그에게 엄습해 오는 외로움과 고독도 견디기 힘들었다. 거기다 형의 장자권을 도둑질한 죄책감으로 인해 온몸에 느껴지는 한기에도 불구하고 잠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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