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김대억 칼럼

daekim
58776E78-5CEA-44F2-9D8F-5025ADA92E5E
58004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198
,
전체: 294,154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 게시판
메뉴 열기
daekim
daekim
98295
9195
2022-08-18
여호수아의 생애(3)-남부 연합군을 격파한 여호수아(상)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함이라.”(수 8:30-33)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수 9: 1-2)

 

요단강을 건넌 후 여호수아는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함락시켰다. 하지만 여리고를 점령했다는 자만심과 아간의 범죄로 아이 성 공격에 실패하는 좌절을 맛보았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아간을 아골 골짜기에서 처형하고, 하나님 앞에 그 자신의 잘못을 회개한 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대로 싸워 아이 성을 점령한다.

그리고는 에발 산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 여호수아가 사기충천한 이스라엘 군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을 계속하지 않고 에발 산에서 제단을 쌓은 의미는 참으로 크다.

모세는 생을 마감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또 그 땅을 차지한 후 그들이 행하여야 할 일들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신 27-29)

모세가 그들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하면서 한 명령의 핵심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물어 그대로 행하면 승리와 성공과 번영과 안정과 평화를 누릴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실패와 좌절과 낭패와 저주가 임한다는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와 아이 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파죽지세로 가나안의 이방 민족들을 정복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전쟁을 중단하고 에발 산에 제단을 쌓은 것은 모세의 명령에 순종함과 동시에 그때까지 그들과 동행하시며 그들을 위해 싸워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그들이 알고 있다는 신앙고백이며, 그들이 가나안 정복을 마칠 때까지 함께 해주실 것을 간구하는 민족적인 기도회이기도 했다.

에발 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과 뜻을 모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하는 제사를 드리며 여호수아는 새로 쌓은 제단에 모세의 율법을 새기고, 법궤를 멘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둘러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여 들려주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하던 이방인들도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들려주면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가나안 복지에서 복된 삶을 살 수 있음을 강조했다.

동시에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그릇된 길로 가며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확실히 들려주었다.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말씀 선포를 통해 백성들과 군사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시킨 것이다.

여호수아가 요단을 건너와 여리고와 아이를 점령하기 전부터 가나안에 정착해 있던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베풀어 주신 놀라운 기적들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서서히 가나안 지경으로 다가오던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의 강자로 군림하던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굴복시키자 가나안에 살던 족속들은 그들도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이 서로 힘을 합해 이스라엘에 대항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런 까닭에서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나안 족속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이 그들의 안전을 위한 독자적인 조처를 취했다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10키로 정도에 위치한 성인데, 그 곳 주민들은 견고한 성 여리고와 아이가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 무너지는 것을 보고 힘으로는 이스라엘과 싸워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이스라엘에 항복하여 그들의 안전을 도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이방 민족들을 섬멸시키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이스라엘 진영에 접근한다.

그들은 자기네가 이스라엘의 공격의 대상인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 먼 나라에서 온 유랑민들처럼 정체를 위장했다. 그들은 헤어진 전대와 기운 포도주 부대와 마르고 곰팡이 난 빵을 지니고, 낡고 떨어진 옷을 입고, 헤어진 신발을 신은 사신들을 이스라엘 진영으로 보내 “우리는 당신들과 평화조약을 맺기 위해 먼 나라에서 왔으니 우리와 화친을 맺어주십시오.”라 청한다.

그들이 입은 남루한 옷과 달아져서 기운 신발과 그들이 지닌 곰팡이가 핀 빵을 본 여호수아는 그들이 이스라엘이 멸망시켜야 할 가나안 족속이 아닌 먼 곳에 사는 이방인들이라 간주하고 그들이 원하는 평화조약을 맺어준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daekim
98111
9195
2022-08-11
광복 77주년을 맞이하며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삼천만의 가슴마다 기쁨과 감격이 넘쳐흘렀으며, “삼각산이 춤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 쳤다.” 그러나 해방과 더불어 국토는 38선을 경계로 분단되었고, 남과 북에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선 것은 우리민족의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이로 인해, 1950년 6월 25일에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수많은 인명들이 동족의 총칼에 회생되었고, 국토는 폐허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민족의 후예들은 하나로 뭉쳐 절망을 딛고 일어나 대한민국을 전 세계가 경탄하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시켰다. 우리가 이처럼 놀라운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일제와 맞서 싸운 애국지사들의 희생의 결과였다.

땅 밑을 흐르는 물이 만드는 옥토 위에 심어진 나무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독립투사들이 흘린 값진 피가 거름되어 황폐해졌던 삼천리 금수강산에 오곡백화가 무르익으며, 자유 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 것이다.

이제 광복 77주년을 앞두고 오늘날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초석이 되신 애국선열들의 숭고하고 고상한 정신을 기리며 그 분들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가를 생각해 본다. 독립 운동가들이 가족과 친척들을 버리고 그들의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여기며 일제와 싸운 것은 우리민족의 완전 자주독립을 위해서였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의 한 분인 백범 김구 선생이 외치신 “나의 소원”을 들으면 이 사실은 명백해진다.

그는 하나님께서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면 “나의 소원은 대한독립”이라 대답한 것이며, 그 다음 소원을 물으시면 “우리나라의 완전독립”이라 말할 것이고, 세 번째 소원을 말하라면 더욱 목소리를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의 완전 자주독립”이라고 대답할 것이라 했다.

우리나라의 완전 자주독립을 원한 것은 김구 선생만은 아니었다. 모든 독립투사들이 일제와 투쟁한 최종 목적은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 국가를 이룩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 중에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도 있었고, 사회주의 사상에 물든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독립 운동가들의 공통된 목표는 일제의 핍박에서 해방되어 온 국민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었다.

때문에 해방된 조국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공산 독재주의 체제 중 하나를 택해야 했을 때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 공화국을 택했던 것이다.

38선 이북에 조선인민공화국을 세운 이들은 그들의 체제하에서는 모든 인민들이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평등하게 살 수 있다고 선전했지만 이승만은 그들이 품고 있는 악랄한 속셈을 들여다보는 혜안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 밑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애국선열들이 꿈꾸며 추구했던 자유를 마음껏 맛보았던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를 심하게 억압당한 시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책임을 전적으로 위정자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고 본다. 정부가 모든 국민들이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할 수 있도록 지도자들을 지원하며 감시하는 것은 국민들의 의무며 권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누려야 할 자유는 개인의 욕망을 마음대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부당한 개인의 욕구는 억제할 수 있어야 하며,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의무부터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유를 원한다면 그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Freedom is not free.)

이 같은 참된 자유를 누구나 즐기며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을 성실히 수행할 각오를 새롭게 하며 맞이하는 광복절이 되어야 할 줄 안다.

새로운 정부가 우리나라 안보의 주춧돌인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며, 자주국방 태세를 보다 강하게 하기를 촉구하며, 이곳에 사는 우리들도 어떤 형태로든 조국의 국방력 강화를 위해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해야 하겠다.

동시에 세계적으로 경제가 급속도로 악화되는 이때 국내외의 모든 동포들이 마음과 뜻을 같이하며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함으로 대한민국을 안정되고 번영하는 나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하겠다는 자세로 광복 77주년을 맞이한다면 먼저 가신 애국지사들께서도 하늘에서 기뻐하실 것이다.

77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다채롭고 엄숙하게 거행하기 위해 토론토한인회와 애국지사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힘을 합해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성대한 기념식보다 더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은 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어진 위치에서 주어진 책임과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각오를 굳게 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같은 결단을 하고 광복절 기념식에 임하며,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이곳 캐나다에서 애국운동을 하는 것이라 믿는다. 우리들의 그 같은 애국행위야 말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더욱 굳건히 하며,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면모를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daekim
97854
9195
2022-08-04
오만과 편견

 

영문학도들의 필독서로 알려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는 오만한 남자 다아시와 그의 오만함을 싫어하는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빚어내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남자의 오만과 여자의 편견은 숱한 오해를 낳았고, 그로 인해 그들 둘의 관계에 금이 가는 여러 번의 위험한 고비가 있었지만 결국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사랑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된다. 서로를 향한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피차 진실된 마음을 확인하게 되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기 때문이다.

오만과 편견 때문에 숱한 시련을 겪어야 한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 모두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남보다 월등하다는 자부심을 가졌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이들도 있고, 고립무원의 외톨이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전자에 속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하면서도 남의 장점도 인정하며,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후자에 속하는 이들은 그들이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동등한 위치에 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철두철미하게 고수하기 때문에 상호간에 바람직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또 여러 단체들과 봉사기관에 관여하면서 오만과 편견을 지녔으되 섬기는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나 그들이 속한 단체나 사회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그들의 생각과 방식만이 세상의 절대적인 기준과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과도 함께 일해 보았다.

오래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 중에 거의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던 이가 있었다. 그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을 뿐 아니라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큰 약점이 있었으니 아무도 자기를 능가할 수 없다는 교만과 그의 판단과 방법만이 모든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굳게 믿고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가까이 하기를 꺼렸지만 난 그를 우리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지닌 “자신감”이 지나치기는 했지만 험한 세파를 타고 넘으며 힘든 일들 하는데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와 같은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며 상황을 판단하지 않으면 무지하기 때문이라 결론 짖는 것을 볼 때마다 상당히 못마땅했다.

엄연한 현실을 자기가 용납하기 싫으면 외면하거나,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형편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여 결정하는 것을 보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나의 의견이나 결정을 존중해 주었으며, 내 앞에서는 항상 겸손한 자세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의리와 신의를 중요시하는 자세도 잃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다른 사람들이 늘 말하던 그의 “오만과 편견”을 여과 없이 들어내며 내게 정면 도전해 왔을 때 받은 충격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겸손하고 착실하던 그가 오기와 독선으로 가득한 모습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내 앞에 선 까닭이 내게서 바라던 것을 얻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에 대한 실망을 넘어서 엄청난 배신감에 휩싸여야 했다.

예의 바르고 정중하던 그가 오만과 편견의 화신인 양 함부로 내뱉는 모욕적인 언사와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보고 들으며 가장 믿었던 브루투스가 날카로운 단도로 그의 가슴을 찌를 때 “브루투스, 너도냐?”라 비통하게 외치며 숨져간 줄리어스 시저의 슬픔과 아픔이 내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그 가슴 아팠던 일이 떠오른 것은 최근에 그와 비슷한 일을 또다시 체험하면서 교만한 마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가는 위험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다.

잠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일곱 가지 중 제일 먼저 언급된 것이 “교만한 마음”이다.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길과는 관계없는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과 동행하시며, 그들을 축복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란 성서의 말씀이 그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자신의 재능과 지식만을 자랑하며 의지하는 오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그 같은 사람과 함께 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이 된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위를 거두어 다윗에게 넘기신다. 다윗도 순간적인 욕정에 사로잡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죄를 범한다. 그러나 다윗은 눈물로 그가 범한 무서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이스라엘의 성군이 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를 능가할 자가 없다고 오만불손한 사람들은 진정한 충고를 해주는 친구들을 멀리하며 멸시하기까지 한다. 그런 이들이 비참한 인생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골리앗이 어린 목동 다윗의 물맷돌에 맞아 죽은 것도 교만 때문이었다. 구척장신의 장수 골리앗은 어리고 연약한 다윗을 보는 순간 손가락만 움직여도 죽일 수 있는 상대라는 교만에 사로잡혔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온 다윗이 던진 물맷돌에 이마를 맞아 죽고 말았던 것이다.

바울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신학자로서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이방인을 위한 사도였다. 그러나 그는 가장 낮은 자가 되어 온갖 고난과 핍박을 감수하며 눈물과 겸손과 사랑으로 성도들을 섬겨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했다. 그가 예수님을 제일 닮은 사도이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독교인이 된 것은 누구보다 교만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으되 가장 낮아져서 섬기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람된 인생길을 걷기 원한다면 열심히 학문을 연마하며 지혜와 덕성을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획득한 지혜와 지식과 슬기를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겸손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오만하면 멸망이 뒤따르지만, 겸손하면 영광이 뒤따른다.”가 인생의 지침서인 성경의 가르침이 이 사실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daekim
97480
9195
2022-07-21
여호수아의 생애(2)-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여호수아(하)

 

(지난 호에 이어)

군사학적으로는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군사작전 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무장한 정예군 4만 명을 포함한 10여 만 명 군사들로 하여금 6일 동안 매일 한 번씩 여리고 성을 돌게 했다.

일곱 째 날에는 7번 성을 돈 후 제사장들이 부는 긴 나팔소리를 신호 삼아 병사와 백성들이 일시에 큰 소리로 외치자 높고, 두텁고, 견고한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병사들은 무너져 내린 성벽을 넘어 성안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완전히 장악한 이스라엘 군사들은 그들의 첩보원들을 보호해준 기생 라합의 가족들을 제외한 성안의 모든 사람들과 가축들을 몰살시키고, 여리고를 가나안 정복을 위한 그들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여호수아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무장도 빈약한 병사들로 철옹성 여리고를 함락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방법 아닌 하나님의 전법으로 싸웠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다.”(히 11:3)고 기록함으로 여호수아가 승전고를 울리며 여리고로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이 주신 작전을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에 승리했음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걸어가는 인생행로에는 우리들의 앞길을 막는 수많은 여리고 성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 성들을 만날 때마다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전략을 들어 그 성을 공격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들 앞에 솟아있는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우리들은 천성을 향해 걸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리고를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워주신다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축복의 땅 가나안은 그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그들은 다음 목표인 아이 성에 정탐꾼을 보낸다.

아이는 여리고에서 복서 쪽으로 16킬로 정도 떨어진 기원전 2,700년 전에 형성된 견고한 성이었다. 그 성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아이는 소수의 병력만 투입해도 쉽게 빼앗을 수 있다고 보고 하자, 여호수아는 3,000명의 군사로 아이를 공격하게 한다.

그러나 아이 성을 치러갔던 이스라엘 군은 16명의 전사자를 내고 패해 돌아온다. 놀라고 당황한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그 까닭을 여쭙자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전투에서 얻은 모든 것들을 그에게 바치라고 명했는데 누군가가 전리품 중 일부를 숨기는 죄를 범한 까닭에 그들은 아이 성 공격에 실패했다고 말씀하신다.

조사 결과, 유다 지파에 속한 아간이 전리품 중에서 바벨로니아산 외투 한 벌과 금과 은을 그의 장막에 숨긴 사실이 밟혀진다. 여호수아는 아간과 그의 가족들을 아골 골자기로 끌고 가서 돌로 치고, 그가 감추었던 전리품과 그의 소유를 모두 불살랐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아이 성 공격에 실패한 것은 아간의 범한 죄 때문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6,000명의 병사들이 수비하고 있었던 아이 성을 불과 3,000명의 병력으로 공격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전투에서 성을 공격할 때는 수비 병력의 두 배 이상으로 공격군을 편성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수비군의 절반밖에 안 되는 군사들을 보내 성을 점령하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여호수아가 그와 같은 어리석고 무모한 결정을 한 것은 기도하지 않고 첩보원들의 보고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란 사실이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회개하고 새로운 작전계획을 세운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유인전법”과 “매복작전”을 쓰라고 명하신다. 이스라엘이 바산 왕 옥을 격파하면서 60여 성들을 빼앗기는 했지만 그 성들은 여리고나 아이처럼 성벽 아닌 흙 벽돌로 쌓아 올린 담장 정도의 성벽이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여리고 전투 이전에는 요새화된 성을 공격한 경험이 없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높은 성벽을 기어오를 사다리나 육중한 성문을 깨뜨릴 수 있는 장비도 없었다. 이것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아이 성 군사들을 성 밖으로 유인해 낸 후 매복했던 군사들을 성안으로 진입시키라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것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주신 이 특수전법으로 아이 성을 함락시켰으며, 계속하여 진행된 가나안 정복 전투에서도 “유인과 매복”을 병행한 전법으로 여러 번 승리를 거둔다.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한 후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져서 기도하지 않고 그의 생각대로 아이 성을 공격하다 패배를 맛본 여호수아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전투에 임함으로 가나안 정복자가 되는 영광을 누린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daekim
97236
9195
2022-07-14
여호수아의 생애(2)-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여호수아(상)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까지 거기서 유숙 하니라.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은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 가니라.”(수 3:1-6)

 

그가 보낸 첩자들이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의 도움을 받아 정탐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여호수아는 그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성을 공격할 준비를 한 후 백성들을 이끌고 싯딤을 떠나 요단강을 건넌다. 요단강은 폭이 20내지 30미터 정도이고, 수심은 3미터에서 4미터 되는 넓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 강이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이 강을 건너라고 했을 때는 물이 강 뚝까지 넘쳐흐르는 시기였다. 그 때문에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그들이 요단강에 도달하여 법궤를 메고 앞장 선 제사장들이 강으로 들어서는 순간 강물이 멈추어 서며 마른 땅이 들어났다.

하나님께서 이 같은 기적을 베푸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들과 동행하심을 확인시켜주심과 동시에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높여 백성들이 그에게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요단강을 멈추어 서게 한 또 다른 이유는 가나안에 정착해 있는 이방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면 파멸할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홍해의 기적과 요단강의 기적은 둘 다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신 것이다.

하지만 홍해를 가르신 까닭은 하나님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신 것이고, 요단강물을 멈추신 것은 인간에게 잃어버린 낙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갈라진 홍해를 건너므로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로 들어섰고, 마른 땅이 들어난 요단강을 건너 풍요와 안정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을 보며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권능에 힘입어 모든 백성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진영을 이루고, 여리고를 공격할 준비를 한다. 이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 남자들을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음으로 그의 백성이 되는 증표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창 17:9-14)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2년째 되던 해에 가데스 바레아에서 애굽으로 돌아가려 한 불신앙의 죄를 범한 까닭에 38년간 광야를 방황하게 했다. 그 기간 동안 그들은 할례를 행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들의 광야생활이 끝나는 시점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신 것이다.

문제는 여리고 전투를 앞두고 장정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었다. 할례를 받으면 며칠 동안 기동을 못하는데 그 틈을 타서 적이 공격해오면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오래 전에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성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게 한 후 성으로 들어가 그들을 몰살시킨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창 34:1-31)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여리고 정복을 앞둔 시점에서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으라고 명했다. 적군이 이 사실을 알고 공격해 오면 이스라엘 민족이 몰살당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이 같은 결단을 한 여호수아는 진정 믿음의 사나이임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했을 뿐만 아니라, 여리고 성이 보이는 평원에서 유월절을 기념하는 행사를 했다.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함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회복한 후 오랫동안 그냥 지나쳤던 유월절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까지 누린 것이다.

그들이 애굽을 떠난 후 첫 번째 유월절을 지킨 다음 날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던 만나가 그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광야에서 40년 간 양식으로 삼았던 만나 대신 가나안의 소산물인 빵과 곡식을 먹게 된 것이다.

할례와 유월절 의식을 끝낸 다음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으로 간다. 그 성을 공격할 적절한 작전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가 여리고에 가까이 갔을 때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칼을 들고 그를 막아선다. 여호수아가 그 앞에 엎드리자 하나님의 사자는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수 5:15)고 명한다.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호렙 산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내라는 사명을 주시기 전 하신 것과 꼭 같은 명령이었다.(출 3:5)

여호수아가 순종하자 하나님의 사자는 여리고 성을 공격할 전략을 말해준다. 하나님이 주신 전략은 이스라엘 군을 이끌고 6일간 여리고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라는 것이었다. 성을 돌 때 제사장 7명이 수양 뿔로 만든 나팔을 들고 법궤 앞에 서야 하며, 제7일에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 군사와 백성들이 한 목소리로 크게 외치라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구체적인 명령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daekim
97096
9195
2022-07-07
여호수아의 생애(1)-가나안 정복을 명령받는 여호수아(하)

 

(지난 호에 이어)

여호수아는 40년 간 모세를 보좌하면서 지도자로서의 품성과 능력을 양성하고 길렀을 뿐만 아니라 모세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체험한 잘 준비된 지도자였다.

그러나 짝을 찾을 수 없이 큰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가 죽고, 그를 대신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요단 강변에 섰을 때 여호수아는 한없이 두렵고 떨렸다.

모세의 곁에서 그를 보필할 때는 그의 명을 받들어 행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그의 판단과 결정에 이스라엘의 운명이 달렸다는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사명의식이 그에게 엄습해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그와 같은 마음을 잘 알고 계셨지만 “이제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내가 그들에게 주는 땅으로 들어가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셨다. 모세의 후계자로서의 그의 사명을 들려주신 것이다.

그런 후 “내가 모세에게 말한 대로 너희 발이 닿는 곳마다 그 땅을 다 너희에게 주겠다.”고 선언하셨다.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그의 백성들에게 주실 것을 분명히 밝히신 것이다.

계속하여 하나님께서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라 말씀하신 것은 그가 여호수아와 동행하며 그를 대적하는 모든 적들을 물리쳐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을 하신 후 하나님은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을 3번이나 반복하셨다. (수 1: 6, 7, 9)

하나님께서 싸워주시면 승리는 그의 것임을 확신했던 모세가 민족의 해방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지켜본 여호수아였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와 동행하며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을 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 백배하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진군해 들어갈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 같은 여호수아의 결단을 보며 우리들은 우리 곁에서 함께 걸으시는 예수님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두려움 없이 우리 앞에 놓인 “좁은 길”을 걸어야 할 줄 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복음의 깃발을 들고 온갖 핍박을 감수하며 땅 끝까지 달린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말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으로 진격하기 위해 취한 첫 번째 조처는 군량미를 준비한 것이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련한 군량미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가서 첫 유월절을 지키기까지는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백성들에게 양식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후 여호수아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가나안 정복의 선두에 서라고 명령한다. 모세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격파했을 때 그들 지파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앞장서겠다고 자원했었기 때문이다. (민 32:16-27)

군량미를 비축하고 선봉부대 편성을 마친 여호수아는 첩자 2명을 여리고 성으로 잠입시킨다. 모세의 후계자다운 치밀하면서도 용의주도한 공격준비였다. 여호수아가 첩자들을 보낸 여리고 성은 가나안의 관문과 같은 곳으로 기원전 9,000년경에 형성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이다.

이 성은 육중한 성문과 높고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중의 요새였다. 여리고는 두께가 2미터이며, 높이가 10미터인 외부 성벽과 두께 4미터, 높이 10미터의 내부 성벽으로 되어 있어서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성 안에는 수원이 풍부했으며,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는 봄 추수가 막 끝난 후여서 성문을 굳게 닫고 방어만 하면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함락시킬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이스라엘이 200만이 넘는 대 집단이요, 전투능력이 있는 장정만도 60만이 넘지만 무장도 빈약하고, 성 공격에 필요한 중장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투경험도 부족한 그들로서는 점령하기 힘든 성이 여리고 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우회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정복하기 힘든 성 여리고를 점령하려 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우선, 여리고는 가나안의 출입구였다. 또한 여리고는 인체로 치면 허리에 해당하는 가나안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여리고를 확보하면 가나안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을 수 있었다. 실제로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장악하자 가나안 족속들은 남부 가나안과 북부 가나안 연합군을 결성하여 이스라엘에 대항했다.

그 때문에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정착한 이방 족속들을 일일이 정복하지 않고, 남북 연합군만을 격파하면 되었다. 여호수아가 숱한 이방 민족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가나안을 불과 7년 만에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리고를 장악함으로 가나안을 남과 북으로 분리시켰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중대한 전략적 요충지대가 여리고였기에 여호수아는 이 성을 실수 없이 함락시킬 작전계획을 세우기 위해 유능한 첩자들을 성내로 침투시켰던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daekim
96899
9195
2022-06-30
여호수아의 생애(1)-가나안 정복을 명령받는 여호수아(상)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1-9)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해내어 가나안 복지 문턱까지 인도하는 데는 4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그 동안 모세는 백성들의 끈임 없는 원망과 불평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견디어 내며 백성들의 선두에 서서 광야를 걸었다.

그 고난의 행진이 가나안을 눈앞에 둔 곳까지 왔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사명은 거기까지라 말씀하신다. 그때 모세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실망과 좌절 속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동경하던 평생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는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고 느보 산 위에 올라 축복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한다. 이 장면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축복된 사명을 완수하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말하며 조용히 사라져 간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모세도, 세례 요한도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몫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웃으며 떠나간 위대한 믿음의 용장이요, 충성된 하나님의 종인 것이다.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진군한 지도자가 여호수아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혹독한 학대를 받으며 신음할 때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눈의 아들로 태어난다. 출생했을 때의 이름은 호세아였지만 후에 모세에 의하여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의미를 지닌 여호수아로 불리게 되었다.(민 13:16)

그가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모세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아말렉 족속의 공격을 받았을 때 모세는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 40세 중반에 불과한 그에게 모세가 이 같은 중책을 맡긴 것을 그에 대한 모세의 신뢰가 어떠했는가를 말해준다.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벌린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그를 향한 모세의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비겁하게 연약한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많은 출애굽 행렬의 후미를 습격한 아말렉 족속을 물리침으로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첫 승리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여호수아는 르비딤 전투의 승리를 통하여 장군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란 귀한 진리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즉 아말렉 군사들과 직접 싸운 것은 여호수아였지만 산 위에 오른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피곤하여 손을 내리면 그의 군대가 지는 사실을 통하여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싸워주시지 않는 전쟁에선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르비딤 전투 후에도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로서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오를 때도 그와 동행했으며, 하나님과 모세와의 만남과 대화를 늘 지켜보며 들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에 따라 12명 정탐꾼의 일원이 되어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온 후 10명이 그 땅을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정복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지만 그는 갈렙과 더불어 넓고 비옥한 가나안은 그들의 것이 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보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여호수아가 “우리는 그 땅에 정착해 있는 이방 민족들의 강대함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민 14:6-9)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워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담대하고 확고한 믿음을 알고 계셨다.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영력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안수한 다음 제사장 엘르아살과 모든 백성들 앞에 세우고 그를 네 후계자로 임명하라(민 27:18-22) 하셨고, 모세는 그 명령에 순종하여 지혜의 영이 충만한 여호수아를 그의 후계자로 확정한 것이다.(신 34:9)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daekim
96678
9195
2022-06-23
모세의 생애(13)-민족해방의 사명을 완수한 모세(3-하)

 

(지난 호에 이어)

누구보다 온유하고 겸손하며 불굴의 인내심을 지니고 그를 향한 백성들의 끊임없는 원망과 비난을 받아들이던 모세가 그들에게 혈기를 부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한 대가는 참으로 컸다.

그런데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민 12:3) 모세가 분노를 참지 못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백성들이 모세를 둘러싸고 마실 물이 없다며 그를 원망했을 때 모세는 누이 미리암의 죽음으로 극심한 슬픔에 잠겨있었다.(민 20:1)

따라서 모세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어느 때보다 필요했다. 그런 모세에게 백성들이 몰려와서 애굽에 그대로 있었으면 편안하게 살 그들을 광야로 끌어내어 온갖 고통을 당하게 한다며 대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모세가 지닌 인내의 한계가 순간적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백성들을 향해 “반역의 무리”라 외친 것이다.

누이를 잃고 상심한 상태에 있던 모세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치면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야 하겠느냐?”라 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권능자인 것 같이 행동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라고 한 것은 백성들에게 그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한 것이었지, 그것으로 반석을 치라고 명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때린 것은 그에게 반항하는 백성들을 향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그것보다 더 중대한 잘못은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광야에서 백성들을 인도하면서 한 번도 하나님에게 불복한 적이 없었던 모세가 가나안의 문턱에 서서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

모세가 범한 더 큰 죄는 그가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모세가 바로 앞에서 던진 지팡이가 뱀이 되었고(출 17:10), 그가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자 강물이 피로 변하였으며(출 7:20), 홍해를 향해 그의 지팡이를 내밀었을 때는 바다가 갈라지며 길이 생겼다(출 14:21). 이 모든 기적들은 모세의 권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도구로 사용하여 행하신 기적들이었다.

다시 말해, 기적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셨고, 모세는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세가 물을 달라며 그에게 대드는 백성들을 “반역의 무리”라 부른 것은 배은망덕한 그들을 향한 인간 모세의 분노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치며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어야 하겠느냐?”고 소리 친 것은 마치 그가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는 권능의 소유자처럼 행세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나를 거룩한 자로 높이지 않았다.“고 꾸짖으시며, 그들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특권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명대로 하지 않고 지팡이로 바위를 친 사람은 모세였지만 아론까지 정죄 당한 것은 그가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으며,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간 동안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게 하였고(출 32:1-6), 미리암과 함께 모세의 권위에 도전한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민 12:1-19)

일평생 충성을 바친 충실한 종 모세가 단 한 번의 실수로 그토록 원했던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모세를 모압 땅에서 죽게 한 하나님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세는 한마디 변명이나 항변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린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를 그의 후계자로 정하고(민 27:12-23), 강하고 담대하게 이스라엘 자손을 거느리고 가나안으로 진군하라고 당부한다.(신 31:7)

동시에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도록 동행해 주실 것이며(신 31:6), 하나님은 그들의 방패시며, 돕는 자시며, 영광의 칼이시기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신 33:29)

이 모든 일을 마친 후 느보 산에 오른 모세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모두 보여주셨다. 모세는 그의 눈앞에 펼쳐진 축복의 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역사적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동행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어, 하나님이 주신 민족해방의 사명을 완수하고 120세에 하나님의 품에 안긴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요, 위대한 선지자요, 율법의 전수자요, 이스라엘의 아버지였다. 그가 묻힌 곳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성경이 말해주는 그의 비문이 이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가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신 34:10-12)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daekim
96438
9195
2022-06-16
모세의 생애(13)-민족해방의 사명을 완수한 모세(3-상)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여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신 34:1-6)

 

모세는 8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4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가나안으로 인도해 간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다. 이 기간 중 모세가 한 가장 중요한 일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율법을 전해준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은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의무 4개와 인간 상호간의 의무 6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 10개의 계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삶의 지침으로서 인간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인간이 십계명을 철저하게 지켜서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모세가 전해준 하나님의 십계명을 통해서는 우리의 죄악을 깨달을 수는 있어도, 그것을 준수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까닭은 인간이 준수할 수 없는 율법을 완전히 지키심으로 율법을 완성시키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영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모세는 율법의 전수자였을 뿐 아니라 성막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 이스라엘 민족의 대제사장이기도 하다. 40년 간 광야생활을 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막은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것이었다. 성막은 그들이 광야에 거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꼭 있어야 할 성막을 모세는 설계로부터 완공까지 그리고 그 내부 장식 전부를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완성하였다.(민 40:1-38)

성막 안으로 들어서면 번제단, 물두멍, 진설병 상, 등잔대를 거쳐 지성소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들을 통과하는 하나하나의 과정이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를 말해주고 있다.

성막은 40년 간 광야를 방황한 이스라엘 민족은 물론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믿는 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재 하여 계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성막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었을 뿐만 아니라 험한 광야를 헤매면서도 레위인들로 하여금 지키고, 관리하게 한 모세의 지도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모세의 업적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도피성을 마련한 것이다.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 것을 여섯 번째 계명으로 명시하셨고,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사형에 처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획적이거나 고의적이 아닌 우발적인 실수로 사람을 죽인 행위가 살인으로 취급되어 처형당하거나 보복살해 당하지 않고 피신할 수 있는 도피성을 마련하도록 모세에게 지시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도피성을 준비하게 하신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목적은 피해자나 가해자의 인권을 동시에 보호하며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도피성으로 지정된 성은 요단 강 동편에 세 곳(신 4:41-43), 요단 강 동편의 세 곳 모두 여섯 곳인데 요단 동편의 세 성은 모세가 살았을 때 지정되었고, 나머지 세 곳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끝낸 후에 마련되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에 따라 도피성을 마련한 것은 사형 당해 마땅한 살인의 죄를 범하고도 찾아가는 도피성에서 받아들여지면 죽음을 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면 어떤 죄를 범했을 지라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모세가 40년이란 긴 세월을 미디안 광야에서 지낸 것이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데 필요한 영적 수련을 쌓는데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을 광야에서 떠돌아야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나안 복지를 차지할 자격을 구비하기 위한 범민족적인 훈련을 받기 위함이었다.

이 중요하고도 어려운 훈련을 담당한 모세는 매사에 불평만 하는 백성들을 사랑과 인내로 포용하며 그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러나 힘든 훈련이 끝나고 그들이 축복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둔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그들을 거기까지 인도한 모세가 그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다며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와 불평을 늘어놓자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하나님은 그에게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향해 “물을 내라”(민 20:8)고 말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아론과 함께 백성들을 반석 앞에 모은 후 모세는 그들을 향해 “반역한 무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고 소리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다. 순간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와 백성들과 가축들이 마시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선포하셨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daekim
96294
9195
2022-06-09
모세의 생애(13)-민족해방의 사명을 완수한 모세(2-하)

 

(지난 호에 이어)

모세가 진정한 용기를 발휘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선두에서 광야 길을 걸으며 모세는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백성들은 끊임없이 그를 비난하고 원망하며, 그에게 반항했지만 모세는 그들 모두가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는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 기도하는 동안 백성들은 마음 약한 아론을 압박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그들이 애굽에서 인도해낸 신이라며 기뻐한다. 이를 보고 노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진멸시키려 하시자 모세는 하느님 앞에 엎드려 기도한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큰 권능의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주의 백성에게 분노하십니까?(출 32:11) 주께서 이 백성을 다 죽이신다면 주의 명성에 대하여 들은 나라들이 여호와가 이 백성을 약속한 땅으로 인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광야에서 죽였다고 말할 것 아닙니까?”(민 14:15-16)

그러면서 모세는 “쉽게 노하지 않고, 사랑과 자비가 많아서 죄와 잘못을 용서하시지만 형벌 받을 자를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는”(민 14:18)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러셨던 것처럼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모세가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이때만이 아니었다. 계속하여 배은망덕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불뱀을 보냈을 때도 모세는 그들이 뱀에 물려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민 21:4-9)

이처럼 모세는 백성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쉬지 않았다. 모세의 중보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 범한 인간들을 위해 드린 중보기도의 전주곡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드린 기도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담당하며 그들의 죄를 위하여 하시겠다고 예언한 것과 같은 중보기도(사 53:12)였기 때문이다.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두 개를 들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 백성들은 금송아지에게 제물을 바치고,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분노한 모세는 손에 든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렸다.(출 32:15-20)

다시 산에 오른 모세는 금송아지를 섬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또 다시 중보기도를 드린다.(출32:30-32)

그때 모세는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시려거든 하나님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달라고 간구한다.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시는 대가로 자기를 생명책에서 삭제해도 좋다는 모세의 기도는 예수께서 인간의 죄 짐을 지고 십자가에 오르실 것을 미리 보여준 중보기도였다.

사도 바울도 그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 자신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도 좋다고 했을 정도로 동족을 사랑하는 참 목자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롬 9:1-3)

시간적으로 2,000년 이상의 차이가 나는 시대에 살았지만 모세와 바울은 형제자매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의 영혼까지 버릴 수 있는 예수님을 닮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기에 그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해내기 위해 세상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는 왕실에서의 삶을 미련 없이 버린 모세였다. 이제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을 이끌고 축복의 땅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위험하고 황막한 미디안 광야에서 고독하게 지낼 때와는 달리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인도하여 가나안을 향하여 나가는 모세는 언제나 영육 간에 피곤했으며, 한없이 외로웠다.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과 천부장을 선정하여 백성들을 돌보게 했고(출 18:13-26),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70인 장로들을 세워 그를 도와 백성들을 다스리게 했지만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총괄해야 하는 모세가 진 짐은 무겁기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몸과 마음은 편할 날이 없었다. 거기다 많은 백성들이 그들을 향한 모세의 희생과 사랑의 수고를 모르고 불평과 불만을 일삼으며 그를 괴롭혔고, 심지어는 그를 돌로 치려고까지 했다.(출 17:4)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제사장이 배출되는 레위 지파의 자손 고라가 모세에 항거하여 집단 반란을 일으켰다(민16:1-40). 르우벤 지파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과 250명의 지도자급 사람들도 이 반란에 가담했다. 고라의 반란보다 모세를 더 슬프게 했던 것은 그의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이 그의 지도권에 대항하여 일어섰던 사건이었다.(민 12:1-16)

이 모든 일들을 당하면서 모세는 한없이 슬프고, 괴로웠음은 물론 세상에 홀로 남은 외로움과 고독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200만이 넘는 백성들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듯한 고독 속에서도 하나님께 매달렸다.

죽을 운명을 않고 태어나 엉성한 대바구니에 누어 나일 강을 떠내려가던 어린 아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권능의 하나님이 그를 지켜주신다는 굳건한 믿음의 기도였던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더보기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