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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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편지-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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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편지를 보낸 일곱 교회는 1세기에 아시아에 실제로 있었던 교회들이다. 예수님은 그들 일곱 교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해 내시어 칭찬하고 책망함과 동시에 격려해 주셨으며, 끝까지 충성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의 상급으로 보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아시아에는 100여 개의 교회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째서 일곱 교회만을 선정하여 편지를 보내신 것일까? 그때 존속했던 교회들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일곱 개를 택하여 그들의 구체적인 상태를 알려주시므로 그들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예수님은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지상에 존속할 모든 교회들이 당면할 문제들과 그에 대한 대비책을 총망라하여 들려주신 것이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예수님이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그 속에 담긴 예수님의 메시지를 살펴보았다. 이제 그들 일곱 편지들을 한데 묶어 예수께서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한다.

 

“오른 손에 일곱별이 있고,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은 예수님은 편지를 쓰실 때마다 그 서두에서 자신의 신분을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등 여러 가지로 다르게 말씀해 주신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두 개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과 더불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주께서 교회의 주인이라는 말씀이시다.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라 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면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말씀하셨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 자신이시며, 그 어떤 세력도 그의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처럼 중대한 사실을 그의 신분을 밝히심으로 땅 위의 모든 교회들에게 주지시키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세운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예수파’로 나뉘어졌던 것은 그들이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교회들이 ‘목사파’, ‘장로파’, ‘집사파’ 등으로 갈라져서 교회의 주도권을 서로 잡으려 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심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슬픈 현상인 것이다.

 

엄청난 재력을 등에 업고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교회의 경영권(?)을 세습화하려는 시도도 교회의 설립자가 누구이며, 그 설립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무지로 인한 것이다.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은 일곱 교회의 실정을 상세하게 알고 계셨다. 에베소 교회는 정통교리 위에 서서 교회 내에 침투하려는 이단세력을 몰아내며 인내로 주의 일에 정진했지만 처음 사랑이 식어진 교회였다.

 

서머나 교회는 환란과 핍박과 궁핍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며 주께 충성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박해가 날로 심해지자 예수님은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분투하라는 당부와 격려를 함께 하셨다.

 

버가모 교회는 순교의 위기에서도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일부 교인들이 발람과 발락과 니골라 당의 그릇된 교리에 빠져들었다.

두아디라 교회는 굳건한 믿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많은 일을 해냈지만 이단교리의 침투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사데 교회의 경우에는 그네들은 살아있다고 자신만만했지만 예수님의 눈에 비친 그 교회는 죽어있었다.

 

예수님은 작은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주의 일에 힘쓰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시며 끝까지 착하고 충성된 종의 자세를 잃지 말라고 권면하며 격려해 주셨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풍요했지만 신앙적으로는 뜨뜻미지근했으며, 눈멀고 헐벗은 가련한 상태였다.

 

그들 일곱 교회의 실정을 낱낱이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21세기 교회들의 복잡다단한 실정도 낱낱이 들여다보고 계셨다. 그러므로 안팎으로 숱한 문제들로 둘러싸여 곤경에 처해있는 교회들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께 그들의 문제를 고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면 내가 너를 건지겠다”(시 50:15) 하신 약속대로 위기의 수렁에서 그들을 들어올릴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지식과 방법을 동원하여 당면한 난관을 극복하려 하면 예수님은 사랑의 징계로 그들에게 더 심한 고통과 시련을 당하게 할 것이다.

 

예수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종합해 보건대 주님은 모든 교회가 그에게 ‘사랑과 충성’을 바치시길 원하신다. 사랑의 하나님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롬 8:32),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빌 2:8).

 

그러기에 우리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디베랴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복음전선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시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신 것은 예수님을 섬기려면 그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사랑해야만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며”(고전 13:7) 주의 일에 자신을 불사를 수 있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인내로 주를 섬기며,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사탄의 간교한 거짓에 속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교회는 첫 사랑을 잃어버렸기에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충성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용하셔서 그의 뜻을 이루신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운영에 동참하려면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 (고전 4:1-2)

 

하나님의 일꾼이 바쳐야 할 충성은 ‘전적인 충성’이다. ‘우리의 모든 것’(All that we have and all that we are)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충성인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 판 돈 일부만을 사도들에게 바쳤다가 목숨을 잃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행 5:1-11)

 

하나님은 우리의 전적인 충성과 더불어 ‘계속적인 충성’을 원하신다. 할 수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송두리째 드리는 헌신과 충성을 예수님은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이 그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또 다른 명령은 올바른 교리 위에 서라는 것이다. 교회의 생명은 올바른 교리 위에 서서 죄로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며 정화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교회가 이단교리에 물들게 되면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버가모 교회는 발람과 발락과 니골라 당의 교훈에 빠져들었고, 두아디아 교회는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한 이사벨의 거짓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죄를 저질렀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선생들의 말을 듣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서 벗어나자 사도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 한탄했고, 어느 주석가는 그 구절을 해석하면서 “Oh, you dear idiots of Galatians!"(바보 천치 같은 갈라디아 사람들아!)란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단교리를 받아드리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자신을 멸망시키는 일이요, 교회적으로는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축출하는 배신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잘못된 가르침에 속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를 굳게 잡아야 한다.

 

예수님이 세 번째로 모든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은 받은 달란트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맡은 바 임무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른 사명과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주어진 사명과 달란트가 흡족하지 않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받은 달란트에 감사하며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일뿐이다. 예수님이 작은 능력으로 주의 이름을 빛낸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신 것을 기억하며 우리의 달란트를 두 배로 늘려가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겨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교회들에게 잠들지 말고 깨어 기도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사데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있었지만 실제로는 죽어있었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유하면서도 가난하여 헐벗었고 눈까지 멀어있었던 것은 그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세우고 휘황찬란한 불빛을 발하는 교회들이 많지만 그들 중에는 사데 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죽었거나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교회들이 적지 않다. 그런 교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열심을 내라. 그리고 회개하라”라 명하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문을 열고 나를 맞아드려라. 그러면 내가 들어가 너와 더불어 먹고 마시리라”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약속 중 이것처럼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와 힘을 주는 위대한 언약도 찾아보기 힘들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전쟁들 중에서 군사의 많고 적음과 무장상태와 장수의 지용에 따라 그 승패가 판가름 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함께하신 편이 항상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싸우는 ‘선한 싸움’은 결코 쉬운 싸움이 아니다. “우리의 적은 혈과 육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엡 6:12)인 까닭이다. 그러나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위해 악의 세력을 물리쳐 주시는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께 사랑과 충성을 바치며, 그의 명령에 복종하며 맡겨진 인생의 전투에 임한다면 우리들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예수께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영생의 축복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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