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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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3) - 어머니를 부탁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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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되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제자에게 이르시되보라, 어머니니라.’ 하신대 때부터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19: 25-27)

 

예수께서 가룟 유다를 앞장세운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체포 당했을 때 그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예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 주위에는 그를 욕하고 조롱하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군중들만이 모여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여인 네 명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는 주님을 애처롭게 쳐다보며 서 있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매,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그들이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물론 끝까지 함께 하겠다던 제자들마저 겁에 질려 숨어버렸지만 이들 네 여인은 주님의 마지막을 지켜보기 위하여 십자가 밑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그들 중 요한의 부축을 받으며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쳐다보는 마리아는 진정 “슬픔의 여인”이었다. 순결한 처녀인 그녀가 성령의 능력으로 구세주를 잉태할 것이란 천사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마리아는 슬픔과 고통의 인생길을 걸어야 했다. 그녀가 감당해야 할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는 역할 자체가 멸시와 천대를 당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만왕의 왕을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출산해야 한 것은 그녀 앞에 놓인 슬프고 고달픈 인생길의 첫 걸음이었을 뿐이었다. 헤롯 왕의 칼날을 피해 아기 예수를 가슴에 안고 멀고먼 애굽으로 떠나가서, 그곳에서 어린 예수를 보호하며 양육하노라 마리아가 당했을 시련과 환난은 크기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헤롯이 죽은 후 고국으로 돌아와 30세가 되기까지 오랜 기간의 준비를 끝내고 예수께서 지상 사역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멸시하며 배척했다. 온갖 냉대와 천대를 받으면서 묵묵히 구세주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도 마리아의 가슴은 쓰리고 아팠을 것이다.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증오와 박해는 날로 심해져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인으로 몰아 체포하여 십자가형을 선고 했다.

 

그 처형장인 갈보리 언덕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며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었던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남자”였다면, 그를 바라보는 마리아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여인”이었던 것이다.

 

천사의 지시를 받고 애굽으로 도피하기 전 마리아는 모세의 법에 따라 정결의식을 드리기 위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때 살아서 그리스도를 뵈올 날을 기다리던 의로운 사람 시므온은 아기를 안고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눅 2:29-32)라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는 마리아를 향해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여러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눅 2:34-35) 말해준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버림받아 죽음을 당하는 아픔과 슬픔을 당하실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시므온의 예언은 정확하게 실현되어 마리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 당하시는 것을 보며 그녀 자신이 칼로 찔리는 것보다 더한 아픔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의 백성들로부터 멸시당하고, 그가 긍휼이 여겨 자비를 베풀던 무리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그의 제자들까지 그를 떠나 버렸기에 그 홀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신음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도 마리아는 넘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녀의 영혼 깊숙이 날카로운 칼날이 파고드는 아픔을 느끼며 피와 땀으로 뒤범벅된 예수님을 바라보는 슬픔과 고통을 피할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그런 그녀의 눈과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밑을 내려다 보시는 예수님의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예수께서는 그녀와 함께 지낸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을 것이다. 아버지 요셉의 목공소에서 일하는 그를 그리스도로 경외하고 섬기면서도 맏아들로서 돌보고 양육한 마리아의 사랑과 희생을 예수님은 잊지 않고 계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열두 살이 되던 해 유월절에 마리아와 요셉은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다. 유월절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던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하루 길을 걸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사흘 만에 성전에 앉아 있는 아들 예수를 발견한 마리아는 “애야, 이게 무슨 짓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눅 2:48)고 나무랐다. 그러자 소년 예수는 “왜 나를 찾았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셨습니까?”라 되묻는다.

 

마리아의 가벼운 책망은 그녀가 아들을 향해 한 것이었고, 소년 예수가 보인 반응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 마리아에게 그의 신분을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마리아의 무지함을 지적한 것처럼 들리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전정한 의미는 “내게는 아버지의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십자가 위에서 슬픈 눈빛으로 자기를 올려다보는 마리아를 발견한 예수님은 그녀를 향해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자기를 대신하여 요한이 그녀의 아들 역할을 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어째서 그의 친동생들이 있는 데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라고 당부하셨을까? 요한은 독신이었고, 그의 어머니인 살로매는 마리아와 사촌 사이였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때까지도 자기를 그리스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동생들보다는 마리아와 혈육관계이며, 갈보리 언덕까지 그녀를 모시고 올라와 십자가 밑에 서있는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마리아의 아들이 되라고 하신 것은 인간 예수께서 마리아의 맏아들로서의 책임을 다함과 동시에 인간의 기본의무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셨다.

 

십계명의 처음 네 계명은 인간의 하나님에 관한 의무에 관한 것들이다. 나머지 여섯은 인간 상호간의 책임에 관한 것들인데, 그 첫 번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이다. 하나님은 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장수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도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면 범사가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엡 6:1-3)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이처럼 신구약에 동시에 기록된 것은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처럼 기본적이면서 성스러운 의무는 없음을 말해준다. 예수님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에도 인간으로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이 귀하고 중요한 의무를 잊지 않으셨다. 마땅히 해야 할 줄 알며,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형편이 되지 않고, 공사 간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부모를 편히 모시지 못한다는 이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요한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섬기라고 명하신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분부대로 요한은 마리아를 그의 집으로 모시고 가서 그녀가 생을 마칠 때까지 어머니로 섬기며 봉양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순종함을 넘어서서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그들을 존경하고 받드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소년시절에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며 성장하셨다(눅 2:2:51). 그러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는 말들 듣고도 예수님은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요 2:2)라 말씀하셨다.

 

이 같은 예수님의 반응은 아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불순종 아닌 구세주 예수님이 인간 마리아에 하신 말씀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아들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순종할 의무를 지니지만 구세주 예수님은 어머니의 뜻 아닌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일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동생들이 찾아왔을 때도 예수님은 그들을 맞아드리지 않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말씀하셨다. 구세주 예수님은 가족들까지도 구원받아야 할 인간으로 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다 본 마리아는 참으로 슬프고 외로운 여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이상 그녀만을 돌보아야 할 그녀의 아들이 아니셨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누구보다 마리아를 잘 알기에 그녀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는 요한에게 그녀를 어머니로 모시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요한도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배신을 꾸짖지 않으시고 그에게 사랑과 헌신과 슬픔의 여인 마리아를 어머니로 섬기라는 귀하고 축복된 사명을 주셨다. 죽어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도 밤이 새기도 전에 세 번이나 그를 부인한 베드로에게 복음전선의 총사령관 직을 맡기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도 부모를 공경하라고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들도 주어진 그 축복된 사명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당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어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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