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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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용서의 기도를 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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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박고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 하시더라.”( 23:33-34)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해골 모양을 한 갈보리는 지리학적으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낮은 언덕일 뿐이다. 하지만 이 보잘것없는 언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한없는 저주의 언덕이요, 죄인 된 인간들에게는 놀라운 축복의 장소다.

 

예수께서 이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달리시어 돌아가심으로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밤, 사람들은 그를 위해 방 한간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유대 임금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그를 죽이려 했다.  

 

그가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각종 불치의 병자들을 고치시며 지상사역을 하시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님을 파멸시키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끝내는 그에게 신성을 모독하고, 민중을 선동했으며, 로마 정부에 반역을 꾀한다는 거짓 죄명을 적용시켜 불법으로 체포하고 기소하여 빌라도의 법정에 세웠다.

 

로마 총독 빌라도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을 수 없다며 예수님을 방면하려 하자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그들의 사주를 받은 어리석은 군중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그들의 소리에 굴복한 빌라도는 그 자신이 무죄라고 판결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

 

예수님은 가시 면류관을 쓰고 갈보리 언덕으로 끌려 올라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예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과 몇 몇의 여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욕하고 비웃으며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를 구원하라.”고 외쳐댔다.

 

배은망덕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불과 일주일 전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 외치며 주님을 찬양하던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시며 분노하시거나 슬퍼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라 기도하셨다. 고통과 멸시와 치욕의 십자가형을 당하시면서 그렇게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이다.

 

그 기도의 내용이 그들의 악랄하고 무서운 죄를 묻지 말아달라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이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만이 자기를 끈임 없이 배반하며, 도전하는 죄인들을 용납하시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외아들 예수님을 내어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들을 멸망의 길에서 건져내어 생명의 길로 인도하러 오신 구세주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인류 최대의 살인극을 벌리는 악독한 무리를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기도하심으로 그의 지상사역을 시작하셨다. 그의 지상사역을 끝내시면서도 예수님은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 자신이 인간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한을 가지신 분이다.(마 9:6)

 

그런데 어째서 그 자신이 무지하고 악한 무리들을 직접 용서해 주시지 않고 하나님께 그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간구하신 것일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인류구원의 사명을 마치시기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어가는 중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들의 죄를 사한다는 선언을 하지 않으시고, 그 자신의 죽음을 인간의 죄 값으로 받으시고 그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예수님이 그들의 죄를 사해 달라는 근거는 “그들은 자기네가 무엇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불법으로 예수님을 체포하고 기소하여 빌라도의 법정에 세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재판장 빌라도가 무죄라고 선언한 예수님을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갈보리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은 자기들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 그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고 하신 것은 그들은 자기네가 범하는 죄악이 얼마나 무섭고 악한 것인가를 모르고 있었기에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저지르는 죄의 본질을 알고 있었어야 했다. 구약에 정통했던 유대인들은 구약에 명시된 메시아 출현에 관한 수많은 예언들에 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예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권능들을 직접 보았으며,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는 “그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다.”(요 7:46)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으며, 끝내는 흉악한 강도들 사이의 십자가에 오르게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하신 것이다.

 

우리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받아드려야만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2,000여 년 전, 어리석은 군중들이 범했던 무지의 죄를 어떤 형태로든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십자가에서 원수들을 위해 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며 우리는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을 실천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의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그 가르침을 십자가 위에서 실천하신 것이다.

 

행함이 없는 설교자의 입술만의 설교는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의 말씀은 곧 삶이심을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가시면서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는 원수를 용서하는데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깨달아야 한다. 제일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들의 잘못을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한다 하거든 너는 용서하여라.”(눅 17:3-4)가 예수님의 용서에 관한 가르침인 것이다. 이는 용서받기를 원한다면 범한 잘못을 가슴 깊이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해야 함을 뜻한다.

 

성경은 이 진리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요1 1:9)고 가르쳐 주고 있다.

 

그렇다면 범한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럴 경우에도 상대를 멸시하거나 증오하지 말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예수님은 그런 그의 가르침을 십자가 위에서 실천하신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원한다면 지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사 6:3), 정결하셔서 악을 보지도 못하시며, 거짓된 자들을 용납하지도 못하신다(합 1:13). 예수님은 이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여야 한다.”(마 5:44)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아담의 후예로서 죄 속에 태어나서 죄악 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부끄럽고 추악한 죄악들을 고백하고,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로 그 죄악들을 씻어내지 않으며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원수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 모두를 위한 간구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2,000여 년 전 어리석은 무리 속에 끼어있지는 않았지만 계속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정의롭고 성결한 삶을 살아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를 이루어드려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십자기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이다. 구약에 기록된 예수님의 출생과 고난과 죽음에 관한 수많은 예언들 중의 하나가 이 기도이기 때문이다.(사 53:12)

 

심한 고통 속에서 그를 모욕하고 농락하는 무리를 위해 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응답되었는가? 예수께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라 기도하신 것은 그들이 무슨 죄를 짓는 것조차 모르면서 구세주를 살해하는 무지몽매하고 악한 무리들을 벌하지 말고 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간구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들의 생각이 옳다면 예수님의 기도는 즉석에서 응답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주위에서 그를 놀려대던 무리들 중 아무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신 기도의 진정한 응답은 오순절 성령 강림 시에 이루어졌다. 그날 모든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했으며, 베드로의 설교가 “너희들이 알지 못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 2:36)로 끝났을 때 3,000여 명이 회개하고 구원받은 역사가 일어났다. 베드로가 위대한 설교자여서가 아니었다. 성령께서 베드로로 하여금 그런 설교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악을 깨닫게 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알지 못했기에 나를 죽이는 저들을 용서해 달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응답되어 구세주를 죽인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기억해야겠다. 그래야만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기도가 우리들의 삶을 통해 이루어질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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