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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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도들 -사도 바울 (바울의 3차 선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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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들에게 말하되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그가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방언도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9:1-12)

 

2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시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온 바울은 얼마 되지 않아 갈라디아와 브르기아 지방을 다니며 두 번의 선교여행을 하면서 세운 교회들을 살피고,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히 한 후 에베소로 간다. 에베소는 그 당시 아시아의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였으며,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 준다는 아데미 여신을 모신 신전이 있는 도시였다.

 

그 신전은 길이가 138미터, 너비가 69미터, 높이가 18미터였고, 화려한 기둥이 127개나 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였다.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은 주를 믿는 사람들을 만나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이 성령이 있는 것조차 모른다고 하자,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대답한다.

 

세례 요한은 그에게 오는 사람들의 죄를 일깨워주며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마 3:11; 눅 3:6)고 가르쳤다. 이는 요한의 세례를 받으면 회개에 이를 수는 있지만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께서 주시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때문에 윌리엄 바클레이가 요한의 세례만 받으면 “불완전한 기독교인”(Incomplete Christian)이라 한 것이다. 그들이 불완전한 믿는 자들이 된 것은 아볼로에게서 복음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구약에 정통했으며, 웅변술이 뛰어났다(행 18:24). 바울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전 3:6)라 했을 정도로 그는 해박한 성경지식을 소유했고, 언변도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다.(행 18:26)

 

바울이 요한의 세례밖에 모르는 아볼로의 제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하자 그들은 성령이 충만하게 되어 방언과 예언까지 하게 되었다. 그들을 온전한 기독교인으로 만든 후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3개월 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받아드리지 않고 반박하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자 바울은 그를 따르는 성도들과 함께 회당을 떠나 두란노 서원으로 장소를 옮겨 말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했다.

 

그 동안 바울의 동료들은 주변 각처로 다니며 말씀을 전한 결과 아시아 전역에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들도 이 시기에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울이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셔서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며 병이 낫고 악령도 떠나가는 기적들이 일어났다. 이를 본 많은 마술사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들이 쓰던 마술 책들을 불태우기까지 했다.

 

3년간의 에베소 사역이 큰 성과를 거두자 바울은 로마로 갈 계획을 세운다. 로마 다음으로 그가 선택한 선교지는 스페인 이었다. 로마 문명권의 제일 서쪽에 위치한 그 곳까지 가야만 땅 끝까지 가야 하는 그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에 가기 전에 예루살렘부터 가기를 원했다. 그가 세운 교회들로부터 거둔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직접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기 전에 큰 사건이 발생한다. 은으로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팔던 은세공인 데메드리로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으로 인해 신상판매가 줄어들자 동업자들과 종업원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다행이 에베소 서기장이 그들의 난동을 무마시켜 바울은 무사히 에베소를 떠날 수 있었다.

 

마게도냐로 가서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한 바울은 그리스에 가서 석 달을 머문 후 빌립보를 거쳐 드로아에 도달했다. 거기서 7일을 지낸 후 떠나기 전날 밤 안식일 집회에서 유두고란 청년이 졸다 3층에서 떨어져 죽은 불상사가 있어났다. 사람들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자 바울은 그를 살려낸다.(행 19:40)

 

하나님께서 엘리야, 엘리사. 베드로에게 주셨던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을(왕상 17:11-24; 왕하 4:32-37; 행 9:36-43) 바울에게도 허락하신 것이다. 죽은 유두고를 살려서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준 바울은 드로아를 떠나 앗소, 미둘레네, 기오, 사모를 거처 밀레도에 이른다. 바울은 거기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에베소에 들르고 싶었지만 시일이 촉박하여 사람을 보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그곳으로 와달라고 청한다.

 

그의 기별을 받고 달려온 장로들에게 바울이 한 고별설교는 불신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가 그들과 함께 3년간 어떻게 주님을 섬기며 복음을 전했는가를 상기시키며, 그가 떠난 후에 그들이 해야 할 바를 부탁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밀레도에서 한 바울의 설교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생각하게 한다. 믿는 자들이 걸어야 할 인생길을 제시하며, 그들의 사명을 알려주는 설교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시아에 온 첫 날부터 유대인들의 음모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면서도 눈물과 겸손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행 20:18-19)가 바울이 한 설교의 서두였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마 11:29)라 하신 주님의 겸손함을 지녀야 한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해박한 지식과 지혜의 소유자였던 바울은 누구보다 겸손한 자세로 성도들을 돌보며 주님을 섬겼다.

 

그는 예레미야에 버금가는 눈물의 사도이기도 했다. 고린도 교회에 눈물의 편지를 썼으며(고후 2:4), 눈물로 성도들을 보살피며(행 20:31), 그에게 주어진 복음증거의 사명을 수행한 그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소망의 인내”(살전 1:3)를 지니고 온갖 모욕과 멸시와 박해를 이겨내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일에 그의 일생을 바친 하나님의 참된 일꾼이었다.

 

바울은 “나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행 20:26)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선택 받았지만(갈 2:8) 바울은 그를 핍박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말씀을 증거한 그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말씀을 증거하며 가르쳤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믿는 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삶을 통한 선교를 한 사도이기도 하다. 물질을 탐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는 자비량 선교를 했으며(행 20:33-34), 항상 약자의 편에 서며, 베푸는 삶을 산 바울이었던 것이다.

 

바울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행 20;24)라 한 말씀은 우리 모두의 삶의 자세와 목표가 되어야 할 줄 안다.

 

바울이 장로들에게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서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으니”(행 20:28) 맡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라는 당부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바울이 설교를 끝내자 장로들은 그와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고, 크게 울며 그의 목을 안고 입 맞추고 생의 이별을 고한다. 그들의 헤어짐은 영원한 나라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는 약속이었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눈물의 작별을 한 바울은 여러 곳을 경유하며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바울은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는 충고와 경고를 받는다. 가이사랴에서는 아기보라는 예언자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 당하여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한다.(행 21:11-12)

 

제자들도 울면서 바울에게 예루살렘 행을 포기할 것을 간곡하게 청한다. 그러나 바울은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23)며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에베소를 거점으로 한 바울의 3차 선교여행은 1, 2차의 선교성과를 재확인하며, 선교지를 넓혀가는 폭넓은 성과를 거두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모든 것을 바쳐가며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세 번에 걸친 바울의 선교여행은 세계복음화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그 위에 흘린 수많은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오늘 날 30억이 넘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세상 만민 모두가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는 날까지 우리 모두 바울이 보였던 선교에 관한 열정과 그의 선교정신으로 전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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