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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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 위로행사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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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기념사업회는 지난 9월 29일 포트 에리(Fort Erie)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가졌다. 작년부터 계획하고 있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행하지 못하다 금년에는 꼭 해야겠다는 각오로 광복절 행사가 끝난 후부터 준비에 착수했다.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온타리오 주에 거주하는 참전용사 전원을 초청대상으로 삼고 일을 시작하고 보니 우리 생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에서 싸운 용사들 중 지금 생존해있는 이들은 젊은 분이(?) 90세에 가까웠고, 그 보다 더 연세 드신 분들은 거동조차 불편하여 집안에 계시거나, 양로원에 입주하셨거나, 병원에 입원해 계신 실정이었다. 


그런 분들에게 초청장을 보낸다면 과연 몇 분이나 오실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문제점에 부딪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써니브룩(Sunny Brook) 병원 특수병동에 입원해 있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위해 동포사회 몇 단체가 매년하고 있는 위문행사에 사업회 임원들이 참석하는 것으로 우리 계획을 변경할까 생각하다가 “그들이 우리 초청에 응하기 힘든 형편에 있다면 우리가 찾아가면 되지 않겠는가?”란 생각이 영감처럼(?) 떠올랐다. 


즉시 1951년 4월 23일 가평전투에서 싸웠고, 현재 포트 에리에 거주하는 크라이슬러씨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 2월에 가졌던 인터뷰에서 가평전투에 관해 자세히 말해주었고, 그 내용이 실린 ‘애국지사들의 이야기.2’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하였던 그는 나이아가라 지역 참전용사들의 연례모임이 8월에 있었지만 한 번 더 모이도록 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은 급속도로 진행되어서 9월 29일에 그의 집 뒤뜰에서 행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부부 동반하여 28명의 참전용사들이 참석할 것이란 전갈을 보내왔다. 그는 참전용사들이 한국의 고전무용을 감상하며, 아리랑을 비롯한 우리 민요를 듣고, 태권도나 유도 시범을 볼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말도 전했다. 몇 군데 연락을 해보았지만 우선 시간이 촉박하고, 행사장소가 토론토에서 먼 관계로 그들이 원하는 바를 준비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년에 이 행사를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은 것은 큰 소득이었다. 동시에 사업회가 참전용사들을 위한 행사를 한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권천학 시인이 그녀가 참전용사들을 위해 쓴 보은의 시 ‘들 꽃으로 피는 사랑의 혼’(The Spirit of Love that Blooms as a Wild Flower)을 낭독하겠다고 제의해 온 것은 기쁘고 반가운 일이었다.


9월 29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밖에서 행사를 하기엔 더 바랄 수 없을 만큼 좋은 날씨였다. 토요일이었지만 일찍 떠난 탓에 교통도 복잡하지 않아서 한적한 농촌 길을 상쾌한 기분으로 달려서 시골냄새가 물씬 풍기는 크리이슬러씨 집에 도착했다. 


초가을의 정취를 듬뿍 느끼며 벌판처럼 넓은 그의 집 후원에 서있는 큰 나무에 태극기와 캐나다 국기를 나란히 달고, 그 앞에 피크닉 테이블들을 모아 놓고 야외용 마이크 장치까지 끝내자 함께 간 이사 한 분이 그 집 정원에서 땄다며 먹음직스러운 포도송이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것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싱싱하고 달았다. 오랜만에 무공해 포도를 즐기는 동안 참전용사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국기와 태극기에 대한 경례에 이어 ‘오, 캐나다’와 ‘애국가’를 부른 뒤 한국전에서 전사한 용사들을 위한 묵념을 드렸다. 그런 다음 멀고 먼 한반도까지 와서 불법 남침한 북괴군과 싸워 우리나라의 위기를 해소해준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곧바로 점심식사를 하며 친교를 나누었다. 


한식과 양식을 넉넉하게 준비해 갔기에 모두들 푸짐한 음식을 마음껏 들며 즐거워했으며, 김승관 이사가 불어주는 그들 귀에 익은 ‘Oh! Susanna’, ‘Beautiful Dreamer’, ‘Old Black Joe’ 등의 하모니카 독주를 들으며 그들은 흥겨워했다. 


참석하신 분들은 크리이슬러씨를 비롯해 부부동반으로 오신 분들도 있었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남편처럼 의지하고 산다는 듬직한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오신 미망인도 있었고, 함께 올 자식조차 없어서 홀로 오신 분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는 가보기는커녕 들어보지도 못한 동방의 작은 나라 Korea를 붉은 이리떼들의 침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한국전에 참전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위해 싸웠을 때의 나이는 17세에서 21세였다. 그처럼 젊은 나이에 남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사실은 그들이 알고 했던, 모르고 했던, 엄청난 희생정신과 놀라운 인류애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그 날 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1967년 6월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아랍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 때 일어났던 일이다. 이 전쟁이 일어난 다음 날 미국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이던 두 학생이 동시에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한 명은 이스라엘 학생으로서 군에 입대하여 중동전에 참전하기 위해 급히 귀국했고, 다른 한 명은 이집트 유학생으로 본국에서 징집영장이 날아올까 두려워 잠적해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아랍연합군보다 우수한 공군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국방장관 모세 다얀은 군사작전에 탁월한 장군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전쟁 발발 6일 만에 아랍연합군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병사들 모두가 조국을 위해 미국에서 공부하다 귀국하여 총을 든 학생과 같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날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 같은 이스라엘 청년들과 크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나라를 지키고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 반대가 아닌가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젊은 층이나 지식인들은 ‘국가의 이익과 번영이 우선’이라 믿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내가 우선’ 주의가 득세하지 않나 하는 염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국민의 기본의무 중 하나인 군복무를 그들의 찬란한 미래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에 빠져있다고 여겨질 때가 많다. 그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국토방위의 의무에 충실해야만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괴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의 안보가 유지되면서 국력이 성장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과거 3년이던 군복부기간이 이미 21개월로 단축되었고, 머지않아 3개월이 더 줄어들어 18개월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18개월 간 군에 적을 두었다 민간인으로 돌아가는 병사들로 구성된 군대가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군복무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그런 젊은 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책이 계속적으로 실시된다면 대한민국의 안보가 위태로워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68년 전 북괴가 남침을 단행했을 때 국군은 그들을 맞이해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조국애에 불타는 국군용사들은 수류탄을 뽑아 들고 적의 탱크에 기어올라 폭파되는 탱크와 더불어 산화했다. 까까머리의 어린 학생들도 나라를 붉은 악마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학도병에 입대하여 겨우 방아쇠 당기는 법만 배운 후 막강한 화력을 지닌 괴뢰군과 싸우다 꽃다운 나이에 호국의 영령들이 되었다. 


그런 젊은이들의 피 끓는 민족애와 조국애가 원동력이 되어 대한민국은 공산화 되지 않았을 뿐더러 군사대국으로 성장했고, 경제적으로도 세계의 선두대열에 서는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실정은 어떠한가?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되고, 군사력은 강화되기는커녕 현재 갖추고 있는 능력도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든 조건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날로 약화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조국의 안보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시점에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된 이래 한시도 적화통일의 꿈을 버린 적 없는 북괴가 남침을 감행할 때 일어날 일은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16개국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해 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도 사업회 위로행사에 참석한 당시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을 위시해 25,000 여명에 달하는 병력이 한반도에 와서 싸우다 1,200여 명이 부상당하고, 516명이 전사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그들의 꿈을 이루어줄 미국유학도 포기하고 입대하여 6일 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대한의 젊은이들이 지닌 안보의식과 국토방위의 의무를 이행하는데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네들의 국가관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역사의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조국의 안보는 지극히 위태로워질 것이고,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횐 옷 입은 우리 민족이 살아오며 지켜온 아름다운 삼천리 금수강산이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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