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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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거룩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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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 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 밤이 내리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8키로 정도 떨어진 베들레헴은 작은 고을이었지만 그날 그 곳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에 의해 실시되는 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거기가 고향인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베들레헴 주민들과 먼 길을 걸어 그 곳까지 온 사람들 그리고 로마 주둔병들은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 그러나 어느 허름한 마구간의 짚단 위에서 잠 못 이루는 한 부부가 있었으니 마리아와 요셉이 그들이었다.

마리아와 요셉이 그들이 사는 나사렛에서 150키로를 걸어 베들레헴에 도달했을 때 날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여관마다 인구조사 때문에 몰려든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서 그들은 방을 구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요셉은 어느 마구간으로 들어가 짚단을 깔고 만삭이 된 아내 마리아를 눕혔고, 그녀는 그 위에서 귀여운 사내아이를 낳아 포대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같은 시각에 들판에서 양을 치던 한 떼의 목자들이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양들 사이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캄캄한 밤하늘이 광명한 빛으로 밝아졌다. 잠에서 깨어난 목자들이 두려워하며 얼굴을 들지 못하자 천사가 나타나 “두려워 말라. 온 세상 만민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 밤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 말했다.

그 천사의 말이 끝나면서 수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 소리 높여 찬양했다.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나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이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작은 고을 베들레헴을 떠들썩하게 하던 사람들이 피곤에 못 이겨 모두 잠들어버렸기에 고요와 적막만이 깃든 밤이었다.

그러나 그 밤은 거룩한 밤이기도 했다. 죄로 어두워진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멸망으로 향하는 인간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구세주가 태어난 밤이었기 때문이다.

천사들이 들려준 구주나신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베들레헴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이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에 도달했을 때 어린 예수는 구유에 누워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그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는 목자들의 가슴은 감사와 기쁨으로 넘쳐흘렀다.

그 밤, 아기 예수 앞에 엎드려 경배한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동방 페르시아에서 온 철학과 의학과 자연과학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학자들이었다. 점술가들이기도 했던 그들은 어느 날 밤 찬란한 별을 보고, 그 별을 따라가면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는 아이를 만나게 될 것이란 계시를 받았다.

그들은 즉시 길을 떠나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수륙만리 멀고 험한 길을 걸어 아기 예수가 누운 곳까지 온 것이다. 그들이 어린 구세주를 위해 준비한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 이었다. 황금은 왕에게 드리는 선물이고, 유향은 제사장에게 바치는 예물이며, 몰약은 시신이 썩지 않도록 바르는 향료다.

따라서 페르시아의 현인들은 태어난 아이가 이 세상의 왕으로 또 인류의 영원한 제사장이 되실 분일 뿐만 아니라 그가 인간들을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구세주이심을 알고 그 앞에 경배했으며, 구세주에게 합당한 예물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친 것이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아가 태어날 시기와 장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정통한 구약에 오실 그리스도에 관해 상세하게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구세주를 맞이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메시아의 출현을 절실하게 원하면서도 그를 맞이할 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인간들의 무관심과는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예정된 때와 장소에서 태어나도록 역사하셨다. 요셉이 해산 날이 다 된 마리아를 남겨두고 혼자 베들레헴에 왔다면 그리스도는 나사렛에서 태어날 수도 있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은 빗나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신 소식을 천사로부터 전해들은 목자들은 즉시 마리아와 요셉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구유에 누운 아이가 구세주라고 사람들에게 전했다. 고요하고 거룩한 첫 성탄절 밤에 목자들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며 돌아간 후 아기 예수께 구세주에게 합당한 세 가지 예물을 바친 동방의 현인들은 왔던 길 아닌 다른 길로 본국으로 돌아갔다.

유대의 왕이 될 아이가 태어난 것을 두려워한 헤롯이 그들에게 그 아이를 찾으면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했지만 그네들은 천사의 지시대로 다른 길로 돌아간 것이다. 그들이 그때까지 살아온 인생길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방인들이었지만 아기 예수를 만왕의 왕으로 영접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탄생으로 인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것이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 밝은 후 아기 예수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은혜 가운데 자라났으며, 그의 지상사역이 시작되면서 역사의 흐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인종과 인종 사이를 가로 막았던 높고 두터운 장벽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나 돼지처럼 대했으며,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된 족속들로 간주하여 멸시하고 증오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민족과 민족이 갈등과 분쟁에서 벗어나도록 했으며, 멀기만 하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었다. 이 같은 엄청난 변화에 관해 성경은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가 차별 없이 되었다고 말해준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었고, 여자는 남자의 종속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복음의 능력 안에서 종과 주인의 관계가 무너졌으며, 여자와 남자는 모든 분야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또 하나의 변화는 죄인과 의인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세리를 죄인이요, 민족의 배반자로 여겼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그의 제자 중의 하나로 택하셨다. 그가 온 것은 의인 아닌 죄인을 부르기 위함이라는 말씀을 실천에 옮기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도 원수도 친구가 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2,000여 년 전,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밤은 고요하고 거룩했다. 그러나 그 고요하고 거룩한 밤의 어둠이 걷히면서부터 세차게 흘려 내리던 역사의 물줄기는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러한 거대한 역사의 방향전환은 동방의 현인들이 왔던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택해 고국으로 돌아가는 변화로부터 시작되었다.

2022년도 성탄전야가 내일로 다가왔다. 다시 한 번 맞이하는 성탄절의 의미를 올바로 살리려면 구유 위에 누우신 아기 예수를 가슴 깊이 모셔드리고, 남은 삶을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져온 변화에 합류하기 원한다면 우리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변화”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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