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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38)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그러나 미국 독립전쟁 후 왕권지지자들이 대다수 캐나다로 오는 바람에 1791 년에 캐나다를 이분화시켜 상 캐나다와 하 캐나다로 분리시켰다. 하 캐나다(퀘벡)에서는 불어를 허용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무역을 포함한 모든 경제 활동은 영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의 침략 우려, 상 캐나다(Ontario)의 재정 적자문제 및 영국관세 특혜 삭제 등으로 인해 1840년에 상 캐나다와 하 캐나다가 합쳤다. 이때부터 불어는 다시 금지되어 버리고 만다.

드디어 1867년에 캐나다 건국이 이루어졌다. 동기는 서부 개발에 필요한 철도 건설, 시장규모 확대로 인한 경제의 규모 혜택의 필요성, 미국과의 합병운동의 확산 예방 등이다.

헌법(British North American Act)에 따라 불어를 공식 국가 언어로 채택했지만 원칙론에 불과했고, 특히 온타리오 주의 반대로 2 중 언어제도는 유명 무실이었다. 결국 1867년부터 1970년대까지는 불어 사용은 퀘벡주와 New Brunswick 및 Ontario 북부(Sudbury) 지역에 국한되고 말았다.

 Trudeau 수상이 정권을 장악한 1970년대 및 1980년대에는 이중 언어 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 되었다. 이중 언어 사용자는 공공기관에 취업시 특혜를 받았다. 많은 영어권 정치인, 교수, 공무원, 법제 인사들이 불어를 배워 출세했다. 문제는 퀘벡인은 미리 이중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별다른 혜택을 못 받았다.

 1960년대만 해도 불어에 대한 영국계 캐나다인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1966년 하루 필자는 Toronto 지리학 교수 Potvin 교수와 Toronto 지하철을 이용한 바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불어로 회화를 하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었던 백발 노부인이 우리를 향하여 말을 했다. “Why don’t you speak white?” 뜻은 이렇다. 왜 당신들은 문화인의 언어인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천한 불어를 사용 하느냐?

필자는 놀랬다. 이러한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처음 경험하는 사건이다. 당시 Eaton Center에 가서 판매원의 서비스를 불어로 요청하면 대꾸도 안 해주고 불친절하고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다.

St-Catherine 가로에서 불어를 하면 지나가던 영어권 사람들이 ‘Frog’ 라는 욕설을 퍼부었다. Frog(개구리) 라는 표현은 퀘벡인을 멸시하는 욕설이다. 식당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으려면 영어로 주문을 해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그리고 꾸준히 참아왔던 퀘벡인의 인내심에 한계가 왔고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언어 개혁은 1960년대에 와서 본격화 된다. 1967년에 당시 단기간 집권한 Bertrand (Union National 정권) 수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언어법 63호를 채택했다. 법의 내용은 직장에서는 불어를 사용하고 광고는 불어로 해야 한다. 이민 학부모는 언어별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 실제로 이민 학부모는 영어 학교를 선택했다.

그때만 해도 퀘벡 사회는 영어권 캐나다인이 지배를 했기 때문에 이민은 약자인 불어권 퀘벡 보다는 강자인 영어권 퀘벡을 선호하여 자녀들에게 영어 학교에 진학 시켰다. 결국 이 법은 불어 보전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두 번째 시도로서 1974년에 Bourassa 정권이 법 제 22를 통과시킨다. 본 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 광고, 법정 그리고 초, 중, 고등학교에서는 불어가 의무화 된다.

다만 언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는 시 정부 및 기업의 본사에서는 불어 사용이 의무적이 아니다. 이러한 예외 조항 때문에 이 법도 유명 무실화 되고 만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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