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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부동산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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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부동산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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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2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80)

 

(지난 호에 이어)

나)지출

중형 교회의 경우 지출의 절반이 목사 사례비로 나간다. 목사에게 지불하는 금액 중 대부분이 면세다. 목사의 가처분소득(세 후 소득)이 약 $40,000 된다 한다. 미국의 백인목사의 연소득도 유사하다. 대학교 부교수의 가처분소득 수준이다.

 

하지만 자녀들이 있는 목사가정을 위해서는 부족할 수도 있다. 각자가 원한 소득에는 한이 없는 것이다. 미국백인 목사들의 대책을 보자. 우선 사모의 49%가 직업을 가진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는 목사는 타 직업을 구한다. 절반이 소득이 더 높은 직업으로 옮긴다.

 

기타 지출 중 건물관리를 포함한 부동지출은 삭감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삭감 가능 지출항목이 무엇인가? 예산이 적은 교회는 교육 목사 혹은 전도사의 서비스는 목사가 할 수 있다. 성가대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소형교회의 경우 단기 선교비용도 삭감할 수 있다. 북미교회(비 한인교회)의 단기 선교의 혜택에 대한 연구자료를 보면 참석하는 개인에게는 관광의 즐거움 혹은 인류학적 체험 등의 장점도 있지만 현지인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한인교회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현지 사회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 와서 짧은 기간에 설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옛날과 달리 인터넷시대인 오늘 선교사가 없어도 누구나 성경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청년들이 가서 설교한다는 것도 무리라는 것이다. 즉 교회의 예산문제는 수입조정과 지출개편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7.7.3 교회분열

교회이탈현상과 교회분열현상을 구분해야 한다. 전자는 다양한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것을 말한다. 타 지역으로의 이주 사망 결혼, 이혼 등 신앙과는 관계가 없는 이유로 떠난다.

 

하지만 교회이탈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존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이 영적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신앙이 후퇴할 수도 있다. 신앙관련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 예수님의 사랑계명을 지키는데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목사의 설교, 장로들의 지도력 부족, 평신도와의 갈등, 다양한 이유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이웃사랑을 체험하기가 어려운 이유로 교회를 떠난다. 그런데 어느 교회로 가나 만족을 못 느껴 세 번 네 번 교회를 바꾸다가 포기하고 마지막 교회에 머물거나 백인교회로 가거나 혹은 교회를 포기한 사람수가 늘고 있다.

 

교회분열이란 일개 집단이 기존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현상을 말한다. 다음 두 개의 모형이 있다. 하나는 교회의 사유화(Church Appropriation) 모형이고 또 하나는 생존 전략형(Survival Strategy) 모형이다.

 

교회사유화 모형은 북미한인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앞에서 언급한 중심세력이 교회를 통째로 장악하여 목회를 자기들 비위에 맞게 하고 교회를 사유화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들은 주변세력을 소외시키고 교회를 떠나게 하기 위한 유언비어를 포함한 모략을 한다. 그들이 떠나는데 목사가 동반하여 새로운 교회를 세운다.

 

미국 목사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보자. 교회의 비전 부족(46%), 장로들과의 분쟁(38%), 교인들의 목사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22%), 신학적 분쟁(21%) (자료: My Church Magazine 1996) 등이다. 북미한인교회사정과는 비교하기가 힘들지만 미국교회목사가 떠나는 이유도 결국 교회 내 갈등이라 하겠다.

 

 두 번째 모형은 목사가 살아남기 위해 취임하자마자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세력을 조직한다. 젊은 목사들은 자기가 직접 가르치고 세례를 준 젊은 층을 지지세력 대상으로 한다. 목사는 이들 세력만 믿고 이 세력의 입맛에 맞는 목회를 한다.

 

이러한 상태는 오래가지 못한다. 목사지지세력이 아닌 사람들은 합세하여 목사에 대항한다. 이러할 경우 분쟁은 목사 반대세력이 교회를 떠나느냐 혹은 목사지지세력이 떠나느냐가 이슈다. 1990년대까지는 목사가 떠나고 반대세력이 남아있었다. 지금은 목사는 남아있고 반대세력이 떠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교회분열은 교회내의 갈등에 기인한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갈등의 원인은 사람의 정욕이라고 말이다.

 

너희 가운데 싸움이 어디서 오며 다툼이 어디서 오느냐? 너희의 지체 안에 있는 싸우는 정욕에서 오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을 하고 시기하여도 얻을 수 없는데, 너희는 다투고 싸운다.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4:1-3)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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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5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79)

 

(지난 호에 이어)

장로후보의 재력이 선발기준이 되면 안 된다. 물론 교회 운영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이 기준이 되다 보니 돈이 없는 훌륭한 후보가 장로가 될 수 없는 건전하지 못한 장로선발이 된다. 이러한 기준 때문에 모범적인 사람이 장로가 되어도 “저 사람은 돈 때문에 장로가 되었다면서..”하고 수군거리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장로 선발방식은 모순이 크다. 왜냐하면 첫째 교회를 분리시켜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많다. 둘째, 장로가 제공하는 재정기여도는 총 수입의 20% 미만 정도다.

 

40가구교회를 한 예로 들어보자. 가구당 년 헌금(십일조 포함)이 $3,000이라 하자. 교회의 총 년수입은 $120,000. 총 수입의 20%는 $24,000. 장로가 2명 이라 하자. 장로의 연간 세 후 소득을 $70,000 이라 하자. 장로 1인당 재정적 연간 기여액은 $12,000. 즉 장로는 매월 $1,000을 헌금해야 한다. 연 소득 대비 헌금은 12,000/70,000=17%.

 

선발된 장로가 편의점을 운영한다 하자. 연 350일 매일 12시간 일을 한다 하자. 연 420,000 시간 노동한다. 연 세 후 소득이 $70,000 라 하자. 그러면 시간당 수입은 불과 $17 이다. 비극적으로 저렴한 중 노동이다. 이 계산은 한 사람만이 근무한다는 전제에 입각한다.

 

만약 부인, 자녀 등도 일을 할 경우 시간당 수입은 더 줄어든다. 이러한 상태에서 매월 $1,000 헌금한다는 것은 보통 부담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헌금을 내고 장로가 되면 “이 교회는 내 교회다.”라고 생각하여 장로의 역할을 잘못 할 가능성이 크다.

 

해결책은 교회가 분열되지 않고 평성도들의 헌금에 의존하고 장로선발기준에서 재력을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성도 들이 교회 년 예산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예산

가)수입
북미한인교회의 또 하나의 문제는 재정문제다. 이는 수입 및 지출 문제로 나타난다. 재정문제는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수입원은 주일 헌금, 십일조, 건축헌금, 특별헌금 등 종류가 많다. 종류가 많다는 것은 헌금동기를 확대함으로써 수입을 최대화 하려는데 숨어있는 목적이 있다.

 

수입은 헌금하는 가구 수 및 가구당 헌금액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수입을 확대하려면 헌금하는 가구 수를 늘리고 가구당 헌금액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가구수를 늘리는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교회 분열이다. 북미의 한인 교회의 평균 가구수는 40가구라 한다. 그런데 이 규모가 계속 줄어드는데 문제가 있다. 신규 이민이 급감하는 것도 이유지만 더 심각한 것은 교회 분열이다.

 

몬트리올의 한인가구는 약 3,000 가구(인구 10,000명, 독신가구포함)라 하자. 이중 70%인 2,100가구가 교회 혹은 성당에 나간다 하자. 약 40%, 840가구가 가톨릭성당에 나간다 하자. 나머지 1,260가구가 개신교 성도라 하자. 그 중 약 60%, 756가구가 매주 교회에 나간다 하자.

 

개신교 교회 수는 15개이다. 교회당 가구수는 50.4 가구다. 15개 교회 중 4개 교회는 비교적 규모가 커 평균 70가구가 될수 있다. 즉 280가구가 4개 중형 교회에 나간다. 나머지 476가구는 11개 소형교회로 나누어져 있으며 평균 43.5가구 정도다.


 1970년대 말까지는 교회가 하나였다. 그 후 교회가 15개로 증가했다는 것은 교인들이 여러 번 교회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20년 동안 교회를 4번 바꾸었다는 사람이 많다. 몬트리올 교회의 수입난의 원인은 교회 분열이다.


한편 교인의 헌금액은 교민의 소득과 교회에서 얻은 영적 은혜에 따라 결정된다. 영적 은혜는 목회, 특히 설교의 힘과 영감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목사는 누가 헌금을 적게 낸다고 소문내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목사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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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8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78)

 

(지난 호에 이어)

7.7.2 북미한인교회문제 

1) 수요
한국내의 교회문제가 일부 목회자의 타락과 비도덕성의 문제라면 북미한인교회 문제는 약간 다른 측면을 보인다. 북미 한인교회 문제를 수요–공급개념의 틀 안에서 검토할 수 있다. 우선 수요자는 주로 유학생과 약간 명의 1.5세 및 2세, 그리고 특히 이민 1세 들이다.

 

유학생이 교회로 오는 동기는 기독교 믿음, 고독 해소, 정보 취득, 친구접촉 등이다. 이민 1세의 교회행사 참석의 동기는 믿음의 강화, 이민생활에 필요한 정보 수집, 자녀들을 위한 한글교육, 이민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위안 및 안식, 절망에 빠진 이민들이 찾는 희망 등등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다.

 한편 북미 한인교회에 오는 이민들은 이질성이 큰 집단이다. 고향, 학벌, 직업, 사상 특히 이민동기의 이질성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이민들은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다. 결과적으로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2)공급체제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급체제를 보자. 교회내부 조직은 일반적으로 목사단(목사, 부목사, 전도사), 장로(혹은 유사한 직책), 권사, 집사, 평신도로 구성된다. 북미한인교회의 문제 중의 하나가 목사 및 장로 선발과정이다.

 

목사선발은 초빙위원회가 추천하면 형식적으로 “총회”의 인준을 받아 임명이 된다. 문제는 추천된 목사가 교회내부 중심세력(Inner Group)의 가족, 친척, 친구 같은 고향, 학교 선후배 등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선발된 목사는 중심세력의 눈치를 보고 주변 사람들(Fringe People)에게 소외감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추천 순간부터 네포티즘(Nepotism, 친근편중주의) 선발 과정을 통하기 때문에 목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 또한 이러한 친근 편중주의식 선발로 인해 후보자의 학위, 자격, 경력 등을 확인을 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목사 및 전도사의 선발도 동일한 과정을 통한다. 부목사 및 전도사를 선발할 때 중심세력 및 현 목사와 가까운 후보를 선호한다. 결과적으로 부목사 및 전도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편이다.

 

또한 목사, 부목사, 전도사는 주로 한국에서 오거나 신학교 유학생을 선호한다. 목사의 목회를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즉 목사가 잘 못해도 눈을 감고 있으라는 것이다.

 

 중심세력의 네포티즘식으로 선발된 목사단이 전부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북미현지에 살고 있는 이민들의 영적 및 비영적 요구를 만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민 1.5세 및 2세들에게 알맞은 목회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북미한인교회의 목사진은 이민 제 1세대에게만 적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북미한인교회는 이민 제1세를 위한(for the First Generation), 제 1세에 속하는(of the First Generation), 제 1세가 통치하는(by the First Generation) 교회라고 한다.

 

 장로선발에도 문제가 있다. 북미한인교회내의 장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장로선발의 기준은 원칙적으로는 모범적 가정생활, 자녀의 신앙의 성숙함, 장로자신의 신앙의 건전성, 평신도를 인도할 수 있는 지도력이다.

 

물론 이 모든 조건을 구비한 장로는 드물다. 장로 후보는 단임목사의 준비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시험에도 통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평신도보다는 이러한 조건을 부분적으로 만족시키는 편이다. 그러나 장로의 문제는 재력이 추가조건이라는데 있다. 실은 재력이 장로자격조건이 되면 안 된다.

 

장로 선발 문제는 다음을 포함한다. 우선 장로선발과정에서 목사선발과정 같이 교회내의 중심세력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이 세력의 기준은 자기들 마음에 드는 사람 그리고 자기들이 지배하는 목사의 “말을 잘 듣는 사람”(Yes Man)을 선호한다.

 

결과적으로 선발된 장로는 주어진 장로역할을 수행하기가 힘들어진다. 원칙적으로는 장로선발은 총회에서 민주주의적으로 투표로 결정한다. 그런데 중심세력이 전화 공세, 밥 사주기, 다른 후보에 대한 협박-공갈 등을 통해 자기들 말을 잘 안 듣는 사람 제거 운동을 벌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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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1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77)

 

(지난 호에 이어)

  (3) 해결책
목사는 자기들만이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것. 목사들이 회개 할 것. 평신도들의 사명감을 강화시켜 목회의 동업자로 협조하게 하는 것. 쓸데없는 잔재주를 피우지 말고 겸손하게 목회 할 것. 현 위기는 목사들이 유발했기 때문에 목사가 해결해야 한다.

 

옥 목사는 우리나라 목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목사는 제자들을 통해 우리나라 정치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주도해야 한다. 성도들의 귀에 달콤한 말을 삼가해라.

 

“하나님은 당신(목사)을 사랑 합니다, 같은 말이나 연발하여 귀에 즐거운 소리로 꼬인 사람들을 교회에 모아놓게 되면 교회는 귀를 즐겁게 하는 설교를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차게 되고 그것은 곳 예수그리스도의 양 무리를 온갖 잡다한 짐승들이 섞인 동물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일 입니다.”

 

이와 같이 한국의 기독교 위기는 근본적으로 목회자의 자질 및 잘못된 목회에 기인한다. 그러면 목회자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한국 기독교 목회자의 문제는 크게 두 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목회자가 많다는 것. 또 하나는 목회자들이 돈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전통이 깊은 미국의 목사들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사의 비율을 보자. 이 자료는 Your Church Magazine 이라는 잡지에서 나온 자료다. 미국 목사 중 50% 이상이 부르심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못 받았다는 것은 목회직을 자원봉사 및 사명으로 보지 않고 일개의 직장으로 본다는 것이다. 교회는 일개의 기업이 되는 것이다. 목사는 성도의 구원보다는 연봉에 신경을 쓴다. 결과적으로 약 49%(총 목사수의 25%)가 목회를 포기하고, 수입이 더 높은 직업을 찾는다. 계속 목회를 하는 목사 사모 중 49%가 직장에 다닌다.

 

우리나라의 목회자 중 상당 부분이 부르심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이유는 지난 30년 동안 기독교 교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되므로 수 많은 신학교에서 과도하게 목사를 배출했다. 그리하여 목사의 사명감 및 자질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수를 준 것이다.

 

목회를 일개의 직업으로 볼수록 돈에 관심을 갖게된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돈과 주님을 동시에 모시지 못한다고 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다. 목회자는 돈을 외면해야 한다. 돈은 유혹에 빠지게 한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가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요하게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함께 섬길 수 없다.” (마태복음 6.24)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다.”(디모데전서 6:10)

 

하나님은 사도들에게 돈에 대한 미련을 전적으로 포기하라고 하셨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가지고 다니지 마라. 여행을 위하여 자루나 두 벌 옷이나 신발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마라.”(마태복음 10:9-10)

너희를 위하여 보화를 땅에 쌓아두지 마라. 그 곳에는 좀 먹고 녹쓸며 도둑들이 침입하여 훔쳐간다. 네 보화가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을 것이다.”(마태복음 6:19,21)

 

돈을 모으려면 교인 수가 늘어나야 된다. 교인 수가 늘어나게 하려면 교인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헌금을 많이 내면 백배, 천배로 축복을 받는다는 비기독교적 비성경적 약속을 한다. 돈이 모이면 권력이 생긴다. 권력이 생기면 돈은 더 모인다는 악 순환에 빠진다.

 

이러한 목회는 범죄 행위다. 이러한 목회는 교인의 신앙에 위협을 준다. 이러한 목회는 사랑의 계시를 위반하는 교인을 양성한다. 목회자는 무서운 최후 심판을 받을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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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76)

 

(지난 호에 이어)

7.7.1 한국기독교 (개신교) 문제
한국내의 기독교는 현재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다. 교인 수는 1천 4 백만 명 에서 7 백 만 명 으로 급감했다 한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기독교 교인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문제의 본질을 토의하기 전에 한 개의 설문 조사결과를 보자. 최근에 크리스천 투데이가 400명 목사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표 7.1>에 조사결과를 정리했다.

 

정희수 칼럼 -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 60: 제 7 장 기독교 교회관 (Christian Doctrine of Church)-교회목적, 교희의 문제 : 하나님을-배우는-기뿜-7-장-8-월10일-20.jpg

 

이 표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당면과제 중 가장 심각한 변수가 목회자의 자질 부족(42.3%) 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변수는 신앙 실천 결여(34.2%) 및 교회의 양극화(31.2%)로 보고 있으며, 한편 가장 적절한 교회규모(교인 수)는 300 명 이하로, 그리고 91%가 교회의 양극화를 심각하게 본다.

 

교인이 흩어지는 이유로서 체계적 평신도 교육 부족(23.9%), 평신도의 의식부족(22.3%), 그리고 목사의 문제(18.6%) 를 지적한다. 소형교회의 문제해결의 가장 어려운 변수는 중대형교회들의 지원부족(25.6%) 및 지역교회의 연합문제 (25.1%) 로 본다. 

 

옥한음 목사가 은퇴하시고 타계 하시기 전에 한국교회에 대한 고견을 주었다.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평신도: 
평신도는 무력한 군중이다. 그리스도 제자는 없고 무리만 양산. 회개를 모르는 성도. ”주시옵소서”를 앵무새 같이 반복하는 성도. 교회는 도덕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교회는 사회악을 견제 해야 하는 기능을 상실했다.

 

 (2)목사
목사는 지식전달에 극한. 설교만 잘하면 교인들이 변하고 영적으로 성장한다고 착각. 주일예배 참석자 수로 목회의 성공 여부 결정. 믿고 구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가르침. 사람을 유입하기 위해 달콤한 메시지 전달. 복 받고 잘사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라고 허위설교. 신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회개를 강조하지 않아 삶의 거룩함이 상실.

 

 마태복음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 열릴 것이다. 구하는 이 마다 받고, 찾는 이는 찾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마태복음 7:7-8; 누가복음 11:9-10)

 

이 구절에서 말하는 것은 오직 진리(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이다. 즉 노력하면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한인목사를 포함한 목사들이 진리 대신 세속적 부귀영화를 말한다.

 

행복을 구하면 행복이 오고, 영광을 찾으면 찾게 되고, 운명의 문을 두드리면 부자가 된다. 이러한 달콤한 이야기로 많은 성도를 모아 놓고 교회가 “부흥”했다고 자랑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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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8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75)

 

(지난 호에 이어)

한편 이웃 사랑이 요구하는 자세는 이렇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지으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장단점이 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각자의 장점을 본다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좋은 점을 항상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에 대한 자랑, 자기 자녀에 대한 자랑으로 질투심을 유발시키면 이웃사랑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질투 및 시기는 이웃사랑의 큰 걸림돌이 된다.

 

너의 마음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자랑하거나 진리를 거슬려 거짓 말을 하지 마라.”(야고보서 3:14)

 

위에서 오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인간이 만든 지혜는 가치가 없다.

 이런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이고 육신적이며 악령과 같은 것이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위선이 없다.”(야고보서 3:15-17)

 

이웃사랑은 서로 나누는 것이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한다.”(고린도전서 12:26)

너희 가운데 지혜롭고 총명한자가 누구냐? 그는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을 자신의 행위로 보여라.”(야고보서3:13)
 

 약한 것이 강한 것이다.

주께서 내게 말씀하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 해지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나의 여러 가지 약한 것에 대하여 크게 기뻐하며 자랑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위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과 모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에 대하여 강하기 때문이다.”(고린도전서 12:9-10)
 

7.7 교회의문제 

교회의 성패는 주어진 목적의 달성여부에 따라 판단 할 수 있다. 즉 교인들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했는지가 평가 기준이다. 북미기독교 특히 한국계 기독교는 성공보다는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선 교회에 나오는 한인 수가 극감했다. 계속 교회에 나오는 교인의 동기를 보면 신앙보다는 삶의 성취감 혹은 기타 이유로 교회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의 경우 Grimard (2007) 자료에 의하면 캐나다의 기독교인 중 매주 교회행사에 참석하는 비율은 1975년의 41%에서 2005년의 34%로 하락, 퀘벡주 기독교인(주로 가톨릭)의 주당 교회행사 참석비율은 동 기간에 42%로부터 22%로 급감했다.


한편 교회행사 참석 동기를 보면 개신교의 경우 개인 성취감(49%), 대인관계(31%), 신에 대한 지식(19%) 그리고 영적 체험(1%). 즉 종교적 동기는 불과 20%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이 신을 믿지않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인구의 80% 이상이 예수님이 성자라고 알고 있다. 64%가 천당이 있다고 믿는다. 66%가 죽은 후에 삶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왜 교회생활에 참석을 기피하나. 참석을 해도 20%만이 종교적 이유로 참석한다. 이유는 교회의 영적 목회에 만족을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현대인들이 교회에서 고독, 좌절, 절망 등의 생활고 해결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나름대로 이러한 문제해결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심리학자를 포함한 전문가가 교회보다 유능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비영적 문제뿐만 아니라 영적 문제해결에 대해서 적절한 도움을 제공 못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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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1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74)

 

(지난 호에 이어)

성경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다.

 그리스도예수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 알지 못하느냐?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말미암아 그분과 함께 장사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살도록 하려는 것이다.”(로마서 6: 3-4)

 

이러한 말씀도 있다.

너희는 이미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기 때문이다.” (골로새3:3)
 교회가 고난을 주어진 사명으로 하는 것은 지속적 세례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루터(Luther)는 신학이라는 것은 세상 속에서의 교회 비전과 사명을 의미 한다“ Theology is the vision for the church and mission in the real world.” (Luther) 고했다.


 본회퍼(Bonhoeffer)에 따르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종교적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인 것은 약간의 기독교적 행동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인 것은 세상 속에서 고난을 당하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To be Christian does not mean to be religious…but to be a human being. It is not some Christian acts which makes a Christian what he or she is, but participation in the suffering of God in the life of the world.” (Dietrcih Bonhoeffer: Hall이인용, P. 175).

 

또한 교회는 이 세상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속 에있다. ”(The place of the church is not above the world but in the world.) “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뿐만 아니고 복음에 따라 실제로 행동하는 교회다. (A missionary church is not only a church with a gospel to proclaim-not only an evangelical church; it is also a church that itself tries to understand and conduct itself according to the gospel.) (Hall P.183)

 

예수께서 무리를 제자들과 함께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면 자기를 부인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마태복음 16:24) 

 

 7. 교회의 목적

 교회의 기능은 교회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다. 교회의 목적은 성도들의 신앙 성장 및 성숙함이라고 볼 수 있다. 신앙의 성장은 예수님의 사랑계명을 시행함으로 최후의 영생으로 가는 준비가 더 완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계명이란 하나님의 속성을 알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을 말한다. 사랑계명의 또 하나의 요소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우리의 제한성을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본다면 인간의 지식이란 보잘것없다. 인간능력은 별것 아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내일을 모르는 처지에 있다.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은 단편적이고 부분적이다. 아인슈타인은 세계 최고의 과학자다. 그러나 그는 경제학을 모른다. 노벨상을 탄 경제학자라 해도 의학을 모른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라 해서 남보다 우수하다고 착각을 하면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모두 별 것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동등하다. 어떤 사람은 사회학 박사다. 어떤 사람은 전기공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셨다. 왜냐하면 지상의 하나님 나라에서는 다양한 재능 및 기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을 알게 되면 자연적으로 겸손해진다.


 우리는 박사학위를 땄다 해서 우월감을 갖고 남을 열등하게 보는 사람을 본다. 신학박사라고 더 훌륭한 목회자라고 착각하는 목사를 본다. 부자라고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만난다.

 

믿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품 속에 들어가기 힘든 사람들이다.

 

아무 것도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겨라. 각자 자기 자신의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라. 너의 안에 이 마음 곧 그리스도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빌립보서 2:3-5)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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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4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73)

 

(지난 호에 이어)

7.5.4) 하나님의 징계
재산 많은 악인의 피 할수 없는 심판을 말씀 하신다.

악인들이 칼을 뽑아 들고 그 활의 시위를 당기며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그들의 칼은 자기의 심장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질 것이다. 의인의 적은 소유는 악인의 많은 재산보다 났다.”(시편 37:14-16)

 

교회지도자들이 한가지만 잘못할뿐 일반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면 큰 오판이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전체를 범한 것이다. ‘간음 하지 마라 ’하신분께서 ‘살인 하지 마라’하였으므로 비록 간음하지 않아도 살인한다면 그는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야고부서 2:10-11)

 

 부정한 재산을 쌓는 자는 하나님께서 멸망하게 하신다. 미국의 수정교회 및 한국의 몇몇 대형교회에 대한 말씀이다.

 그들은 성문에서 바르게 판결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하게 증언하는 자를 싫어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저에게 서밀을 부당한 세로 취하여 다듬은 돌집을 건축 하였으나 너희가 거기에 거하지 못할 것이다.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다. 이는 너희 죄가 많고 너희 죄가 셀 수 없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너희는 의로운 자를 곤경에 빠트려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들을 성문에서 억울하게 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럴 때에 지혜자가 잠잠함은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아모스5:10-13)

 

 소외된 자를 괴롭히는 자들이 여호와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고 착각하고 여호와의 징계를 면한다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이 말씀은 한국의 못된 대형 교회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다.

 “그 우두머리 들은 뇌물을 바라고 재판하며 그 제자들은 삯 때문에 가르치고 그 선지자들은 돈 때문에 점을 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호와를 의뢰하여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가운데 계시지 않느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다.”(미가 3:11) 라고 한다.

 

 하나님은 교회 지도자들이 부정으로 축적된 재물을 즐기는 것을 싫어하신다.

여호와께서 자기백성의 장로들과 지도자들을 재판하려 들어가신다.

 “너희가 바로 그 포도밭을 삼킨 자이니 가난한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 너희 집에 있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자 얼굴을 맷돌질 하느냐? 주 여호와께서 선포 하신다.” (이사야 3:14-15) 

 

7.5.5) 고난
예수님은 인간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라 가셨다. 우리는 세례를 받은 순간 예수님과 함께한다. 예수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우리도 십자가를 걸머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헐 (Hall) 교수(Douglas John Hall, The Cross in Our Context 2003)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또한 단체적으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고생한다는 것이다. 어떤 고생은 피조물의 본질이다. 고생 없이는 사람이 될 수 없다". (We all suffer individually and collectively. To be human is to suffer. Some of our suffering is integral to our creatureness; without it we could not become human.) (Hall p.154)

 

헐 교수에 의하면 “교회는 고난의 집단이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교회는 고난의 현실을 보기 때문이다” (The Church is a community of suffering, because it is a community whose eyes are open have been open to suffering that exists.) (Hall p.152)

 

 기독교인은 고난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고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피조물은 이미 고난 속에 있다. 온세상이 고난을 호소한다.” (Christians are called to suffer because there is suffering. That is, because God’s creatures including human beings are already suffering, because the whole world creation is groaning.) (Hall p. 152)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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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7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72)

 

(지난 호에 이어)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다시 보자.

"그러자 그가 자신을 옳게 보려고 예수님께 말하기를 그러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는데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 것을 버려두고 가버렸다. 때마침 어떤 제사장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가 버렸다. 또 이와 같이 레위인도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가 버렸다. 한 사마리인이 여행 중에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상처에 올리브유와 포도주를 붓고 싸맨 뒤에 그를 자신의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보살펴 주었다. 그 다음날 그가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사람을 보살펴 주십시오. 당신이 비용은 제가 돌아 올 때 당신에게 갚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너는 이들 가운데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말하기를 그에게 자비를 베푼 입니다’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 하셨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여라.” (누가복음 10:29-37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는 너희 가운데 있는 토인같이 여기며 그를 자신같이 사랑하여라. 이는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거류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다” (레위기 19:34)

 

7.5.3 빈곤층

예수님께서는 빈곤자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이셨다. 빈곤자를 돌보지 않는 자는 영원한 형벌에 들어간다. 

 내가 배고팠을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너희가 나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않았다.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영접하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을 나에게 옷을 입히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방문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때에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말하니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은 내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영원한 형벌에 들어 것이며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이다.”(마태복음 25:42-43; 45-46)

 

빈곤층을 속이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비천한자를 짓밟고 이 땅의 가난한 자를 망하게 하려는 사람들아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에바는 작게 하고 세겔은 크게 하여 거짓울로 속여 없는 자를 은으로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 밀 찌꺼기도 팔아 먹자고 하였다.”(아모스 8:4-6)


하나님은 일부 지도층의 문란한 성적 행위를 지탄하신다. 한국 목사 중 일부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애통할 일이다.

 “그들 의인을 돈을 받고 팔았고 또한 그들이 없는 자들의 머리를 땅의 먼지 위에 짓밟고 궁핍한 자들의 길을 굽게 하였으며 아비와 아들이 같은 젊은 여자에게 드나들어서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고 또한 그들이 모든 제단 앞에서 저당 잡힌 옷들 위에 누우며 저희 하나님의전에서 벌금으로 받은 포도주를 마셨다.” (아모스 2: 6-8)

 

또한 욕심 많은 자들이 주의 깊게 들어야 할 말씀이다.

 “너는 말을 들어라. 사마리아 산의 바산의 염소 들아, 너희는 없는 자들을 학대하고 가난한자들을 압제 하며…” (아모스 4:1)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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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30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71)

 

(지난 호에 이어)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서도 볼 수 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둘째로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온 율법과 선지자들이 이 두 계명에 의존해있다.”(마태복음 22:36-40)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영생을 얻는다.

"마침 어떤 율법학자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여 말하기를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있으며 너는 어떻게 읽고 있느냐?’ 그러자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 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옳게 대답하였다. 그것을 행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누가복음 10:25-27)

 

 “너희가 만일 성경대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 하여라’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 하는 것이다.”(야고보서 2:8)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여라 나는 여호와이다.”(레위기 19:18)

“나는 너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너희를 박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복음 5:44)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

그리하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이는 그분께서는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똑같이 자신의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자 위에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45)

 

그런데 이웃이 누구인가가 문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은 인류 모두다. 특히 인간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한인교회에서 보는 이웃은 자기들 교회의 구성원이다. 즉 하나님 사랑 안에서 맺어진 형제자매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예수님께서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큰 공로가 아니라 하신다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마태복음 5:46)

 “또한 너희가 너의 형제들에게만 인사 한다면,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 하지 않느냐?” (마태복음 5:47)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는 너희 가운데 있는 본토인 같이 여기며 그를 네 자신 같이 사랑하여라. 이는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거류민 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다.” (레위기 19:34)

 

7.5.2 이웃 사랑


예수님이 보기에는 이웃사랑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필요한 따뜻한 도움을 주는 사랑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참다운 이웃사랑을 행한 사람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관대한 도움을 제공한 상인이다.

 

이 비유를 넓게 적용하면 이웃사랑은 우리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무자비 하게 억압받는 사람, 기본인권을 박탈당한 세계 어린이들과 여성들 등을 포함한다.

 

인류의 80%가 이러한 처지에 있다. 즉 이웃사랑은 결국 사회정의를 위한 사랑이며 기도와 투쟁을 의미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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