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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부동산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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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부동산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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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2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9)

 
 
(지난 호에 이어)
우리 모두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함으로 모든 일에 그분에게까지 자라나야 한다.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이시다. 온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아 함께 연결되고 결합한다. 각 지체가 자기의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 안에서 자신을 세워간다.”(에베소서 4:15-16)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주 안에서 함께 성전이 되어 가고..”(에베소서 2:21)

 

7.4 목사의 자격 및 자질


예수님이 목회자에 대한 지시 중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과 사회정의에 대한 훈계가 있다. 


“선행을 배우라. 너희는 공의를 추구하며 압제 받는 자들을 놓아주고 고아를 옹호하며 과부를 변호하여라.”(이사야 1:17) 


“사람아, 주께서 무엇이 선인지 네게 보여 주셨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애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하나님의 목회의 자격 및 자질에 대한 기대는 엄격하고 엄숙하다. 또 하나님은거짓 목회자를 경고 하신다.


“그러나 백성가운데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났었으니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서 거짓 선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멸망에 이르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이고 자신을 값 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불러 들인다. 많은 사람이 그들의 방탕을 따를 것이며 그들 때문에 진리의 도가 모독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탐욕에 빠져 지어낸 말로 너희에게서 이득을 취할 것이니 그들에 대한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되지 않았고 그들의 멸망은 잠자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죄지은 천사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움의 사술에 묶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베드로후서 2:1-4) 


거짓목회자는 자신을 신이라고 착각한다. 


“그는 신이나 혹은 승배의 대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에 대항하여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이라 주장 할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4)
거짓목회자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이다. 


“내가 사마리아의 선지자들 중에서 어리석음을 보았으니 그들이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여 내 백성이스라엘을 잘못 인도하였다. 내가 예루살렘선지자들 중에서 무서운 일을 보았다. 그들이 음행 하여 거짓을 일삼고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아무도 자기 악에서 떠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나에게 소돔과 같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같았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선지자들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했다. ‘보아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고 독물을 마시게 할 것이니 불경함이 예루살렘의 선지자들로부터 온 땅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한다. ‘너희는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마라. 그들은 헛된 것을 하며 자기마음에서 나온 이상을 말하니,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계속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너희가 평안할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하며, 자기마음과 고집대로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에게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고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나의 말을 귀 기우려 들었느냐? 보아라 호와의 폭풍이 진노 중에 일어나니 회오리 치는 폭풍이 악인의 머리에 휘몰아칠 것이다.”(예레미야23:13-19)


거짓목회자는 엉뚱한 예언을 한다.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는가?’ 하고 묻지 않았고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였으며, 관리들은 나를 반역 하였고,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 하였으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를 따라갔다.” (예레미야2.8) 


거짓 목회자는 성도에 대한 관심이 없다. 


“이는 그가 삯꾼이어서 양들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요한복음 10:13)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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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5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8)

 

 
(지난 호에 이어)
사도들은 사도가 되기 위해 희생을 각오했다. 


“그들이 즉시 배와 자신들의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마태복음 4:22)


“누구든지 너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 하게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 대하여 믿는 자의 본이 되라.”(디모데전서 4:12)


한편 많은 목사들이 생계문제 때문에 성도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설교를 하여 하나님보다 돈 많은 성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목회를 한다. 이는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하는 행동이다.


“우리의 권면은 기만이나 불순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속임수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복음 전할 부탁을 받은자들 처럼 말하니. 이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다.”(데살로니가전서 2:3-4)


한인교회의 또 하나의 모습이 있다면 목회대상이 자기 교회로 제한되는 것이다. 물론 단기 해외선교도 하지만 이는 극히 한계적인 일이다. 즉, 한인교회는 이웃 사랑을 교회 내에 국한하여 교회 밖의 사회의 공익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6) 여성(Women)


한인교회의 오명 중의 하나가 여성에 대한 편견이다. 이 현상은 남성쇼비니즘(Male Chauvinism)이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볼 때 우리 교회가 가장 여성배타주의적이라 한다. 한인교회에서의 여성기능은 남성의 보좌기능에 국한되어 있다. 혹은 주방 일에 제한된다. 여성들의 신학적 성숙함 혹은 설교능력을 전혀 인정 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사역을 위한 여성의 공로를 높이 평가 하셨다. 


“이 여자들을 도와라. 이들은 클레멘트와 나의 다른 동역자 들과 함께 복음 안에서 나와 함께 수고하던 자들이다. 그들의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되어있다.”(빌립보서 4:3)

 

7.3.2 의사결정


기독교 교회의 의사결정체제에 대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교회의 의사결정체제를 완전히 수직적으로 본다. 


이는 성경이 지시하는 체제와는 완전히 다르다. 가장 위에 계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셨고 성령님을 통해 관리 하신다. 즉 목사, 장로, 집사, 평신도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다. 


이들에 대한 구분은 권위의 차이가 아니고 기능(Function)의 차이다. 목사는 목회, 장로와 집사는 교회의 운영 및 신입 성도들의 지도, 평신도는 각자의 은사에 맞는 봉사를 하는 것이다.


한인교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은 ‘우리교회’다. 이러한 표현의 배경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설립 했으니 우리교회다. 헌금을 가장 많이 냈기 때문에 우리교회다. 새벽기도와 수요예배에 가장 많이 참석했기 때문에 우리교회다. 


이러한 의식구조는 교회를 무슨 기업체로 인식 하는데서 온다. 교회는 예수님의 것이다. 교회를 생각할 때 인간위주로 보는데서 문제가 야기된다. 교회를 생각할 때 오직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교회의 의사결정체제를 수직적으로 보게 되면 목사를 신비화 하게 된다. 목사가 마침 구원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착각을 한다. 목사가 영적 세계와의 직접대화하는 사람으로 착각한다. 


이는 무속종교에서 오는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목사에게 무서운 부담을 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목사에게 불가능한 기대를 건다. 목사가 이러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목사만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성경의 말씀을 보자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전도자로, 어떤 이들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 이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사람들의 속임수, 곧 거짓된 간계를 위한 술책에 빠져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는 어린이가 되지 말고..”(에베소서 4:11-14)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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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8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7)

 

 
(지난 호에 이어)
목사의 또 하나의 사명은 종말론적 선포다(Eschatological Proclamation). 즉 하늘나라가 가까이 다가옴으로 회개하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포에 대해서는 목사들이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책임한 자세다. 왜냐하면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를 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사들은 성도들이 그것을 싫어한다고 변명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시를 경시하는 행동이다.


 “다니면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여라.”(마태복음 10:7) 


“그리고 거기에 있는 병자를 고쳐주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하여라.”(누가복음 10:9)


 “또 그분의 이름으로 죄 용서를 위한 회개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누가복음 24:47)


목사는 겸손해야 한다. 목사는 명예, 명성, 특권 같은 허영을 피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생은 한 분 예수님뿐이라고 하셨다.


 “마음을 낮추어 가난한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거만한자들과 어울려 노략물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잠언 16:19) 


“마음이 비뚤어진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진다.”(잠언 17:20) 


목사는 말조심 해야한다


"네 혀를 악으로부터 지키고 네 입술을 속이는 말로부터 지켜라.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그것을 따르라. 악이 악인을 죽이고 의인을 미워하는 자들은 벌을 받을 것이다.”(시편 34: 13, 14, 21)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낸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다. 복음을 전할 때 말의 지혜를 하지 않도록 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17)


 우리 주님은 교만한 교회지도자들을 경고하셨다. 


“그때에 예수께서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다. 그들은 차고 다니는 성구주머니들을 크게 만들고 옷 술을 길게 늘어 뜨리며 잔치에서 높은 자리에 앉고 회당에서 높은 곳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또 장터에서 인사를 받고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고 불리지 마라. 너희 선생은 한 분 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너희 지도자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너희 중 큰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마태복음 23:1-2; 5-8; 10-12)


원래 목사활동은 자원봉사 활동이었다. 신자 수가 증가하고 교회생활이 체계화 되면서 목사의 생계를 보장해야 했다. 그러나 목회를 보통직장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 


특히 목회가 상업화가 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목회의 상업화는 목사가 돈의 노예가 되고 하나님 대신 돈을 모시게 되어 목회가 인본주의적 사업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영원히 받지 못하는 범죄 행위다. 그리고 성도들을 악마의 길로 인도하는 무서운 죄다.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마지 못하여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여,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베드로전서 5:2)


“누구든지 너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 대하여 믿는 자의 본이 되라.”(디모데전서 4:12)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은 진리를 전하고 목사를 포함한 교회지도자가 행동으로 하나님의 최종계명인 아가페(Agape) 사랑의 실천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목사는 세속적 욕심을 버려야 한다.


목회는 정신적 물질적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미국 목사 중 20% 이상이 생활고 때문에 목회를 포기한다고 한다. 그 만큼 목회생활은 희생을 요구한다. 


“맡겨진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베드로전서 5:3)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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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4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6)

 
 
(지난 호에 이어)


4) 집사


집사도 모범적인격자가 되어야 하고 특히 말조심 하여 일구이언을 하면 안 된다. 이민사회 교회의 문제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근거없는 소문을 확산시켜 상호간의 불신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행은 비기독교적이고 교회의 거룩함을 훼손한다. 이민교회가 분열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권력다툼과 자기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허위소문을 조작 하는 비도덕적 행위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존경할만하며 일구이언을 하지 않고 많은 포도주에 빠지지 않으며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않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자라야 한다. 이런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일을 하게 하여라.”(디모데전서 3:8-10)


하나님의 교회 일꾼선발의 기준을 보자. 


“그 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전도자로, 어떤 이들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 이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사람들의 속임수, 곧 거짓된 간계를 위한 술책에 빠져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는 어린 아이가 되지 말고. ”(에베소서 4:11-14)


교회구성원은 서로 협조하고 사랑함으로써 교회가 성장하게 해야 한다. 


“오히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므로 모든 일에 그 분에게까지 자라나야 한다. 그 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이시다. 온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아 함께 연결되고 결합된다. 각 지체가 자기의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 안에서 자신을 세워간다.”(에베소서 4:15-16)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주 안에서 함께 성전이 되어 가고. ”(에베소서 2:21)

 

5) 목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를 목사로 선택하신다. 만약 목사들이 이러한 사람이라면 이상적 사람 들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목사안수를 받았다 해서 반드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는 장담 못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목사라면 자신이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 연구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목사 중(비 한국인) 50% 이상이 calling(소명)을 못 받았다고 했다.


 “내가 내 마음에 합당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명철로 양육할 것이다.”(예레미야 3: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 하셨다. 온 세상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마가복음 16:15)


목사의 사명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과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태복음 4:4) 


“우리는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겠다.”(사도행전 6:4)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하나님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힘써라.”(디모데후서 2:15)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니 우리가 그 분의 영광을 보았는데 아버지로부터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었으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요한복음 1:14)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타인의 음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양들은 결코 타인을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서 도망간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안다.”(요한복음10: 5, 27)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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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4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5)

 
 
(지난 호에 이어)


라)견고함


교회는 견고하다. 왜냐하면 교회기초는 주님께서 직접 놓으셨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미 놓여진 기초, 곧 예수그리스도 위에는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다.”(고린도 전서 3:11) 


교회는 견고하다. 구성원은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신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희와 함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고린도후서1:5)

 

7.3 거버넌스


교회의 거버넌스(Governance)란 목회적 조직과 의사결정체제를 의미한다.


7.3.1) 목회조직


1)예수님


교회의 일반적 행정적 조직은 예수님, 목사, 장로, 집사 및 일반 성도로 구성 되어있다. 교회기초는 예수님이시다. 


"아무도 이미 놓여진 기초, 곧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다.”(고린도 전서 3:11)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다


 “그분은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골로새서 1:18) 


2)일반성도


성경에서는 일반 성도들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제 더 이상 외국인들이나 나그네들이 아니라 오히려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다.”(에베소서 2:19). 


또한 그들은 사도들과 선지자 터(가르침) 위에 서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은 자들이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다.” (에베소서 2:20)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형제를 사랑하라 하셨다.


 “빛 안에 있다고 하면서 자기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아직도 어두움에 있다”(요한 1서 2:9) 


또한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인도 자를 본 받으라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말하던 너희 인도자들을 기억하여라. 그들의 행실의 결과를 주의하고 보고 그 믿음을 본받아라.”(히브리서 13:7) 그리고 
“너희를 인도하는 이들을 신뢰하고 그들에게 순종 하여라. 그들은 너의 영혼들을 위하여 마치 자신들의 회개할 자들인 것처럼 하니, 그들이 기쁨으로 이 일을 하게하고 탄식 하면서 하게 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히브리서 13:17)


3) 장로


성경에서 바라보는 장로는 완벽한 인격자이며 모범적 가정생활을 해야 하며 교만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성도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 장로의 언행 및 행동은 성도들의 신앙성장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장로들의 과실로 교회가 분열되고 심지어는 성도들의 신앙이 후퇴될 수도 있다. 


북미한인이민교회에 대해 40-7 법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이것은 가구수가 40 가구가 되고 7년마다 교회가 분리된다는 슬픈 현상을 의미한다.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목회자와 장로들의 지도력 부족도 요인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 받을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절제하고, 신중하고, 단정하여,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않고, 구타하지 않으며, 온화하고, 다투지 않으며, 돈을 사랑하지 않으며, 자기 집을 다스리고, 자녀들을 모든 단정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한다. 사람이 자기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느냐? 또 새로 입교한 자도 안 된다. 이는 그가 교만해져서 마귀가 받는 정죄에 빠질 염려가 있고 또한 불신자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 것이니, 이는 그가 비방을 받지 않고 마귀의 올무에 걸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디모데전서 3:2-7)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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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7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4)

 
 
(지난 호에 이어)
성별, 인종 혹은 문화, 배경관계 없이 성도들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으니, 이는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7:22) 
“유대인이나 헬라인 이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으며 너희는 모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갈라디아서 3:28) 


불행하게도 현실은 성경에서 지시한 통일성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13세기에 현 로마가톨릭교회서부 교회와 현 동방정교회로 구분되고 15세기의 종교개혁 후 설립 된 개신교는 많은 교파로 분열 되고 있다. 


한편 같은 교회 안에서도 성도간의 분쟁 및 갈등으로 인해 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기에는 역 부족이다.


나) 거룩함


성경에 따르면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성도가 성전이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하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3:16) 


거듭난 성도가 거룩하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성도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하다. 


“보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구하겠고 너를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으며 내가 네게 말한 것을 이루기까지 참으로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말하기를 ‘과연 여호와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내가 알지 못하였구나.’”(창세기28:15-16)


우리가 명심 해야 할 것은 성전을 해롭게 하는 자는 엄중한 징계를 받는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는 그 성전이다.” (고린도전서 3:17)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 같이 하여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시고 교회를 자기 앞에 영광스럽게 나타나 티나 주름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다.” (에베소서 5:25-26) 


교회는 거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 하면 목사, 장로, 집사 및 평신도들이 거룩하지 못하여 주님의 최후 계명 즉 아가페사랑을 실천 못하기 때문이다.


다) 우주성


교회의 우주성(universality)에 대해서 로마서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으니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려는 것이다.”(로마서 1:5) 


이 구절의 핵심은 복음을 인종, 문화, 지역, 국가와 관계 없이 전 세계에 전파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이다.


 “온 세상에 다니면서 만인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마가복음 16:15)


 한인교회의 가장 잘못된 것 중의 하나가 목회대상을 마치 자기의 교회구성원에 제한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스러운” 행사를 새벽 예배, 수요예배, 주일 예배 등 교회내의 행사에 제한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상 생활에 계시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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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3)

 
 
(지난 호에 이어)
우리가 말하는 교회는 성전이 모인 곳이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과 또 각처에서 우리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 모든 자에게..”(고린도전서 1:2) 


이와 같이 교회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교회가 잘 하고 잘 못하고는 모인 성도들에 달려있다. 엄밀히 따지면 교회는 성도들이 모이는 공동체고 교회건물은 이공동체가 활동하는 공간(예배당)이다. 


한편 교회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거듭나고 의로운 성도들만의 모임이다. 이러한 교회는 영적인 집합이다. 보이는 교회는 의로운 성도와 의롭지 않은 성도가 함께 모이는 교회다. 이것이 우리가 다니는 교회다. 성경은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성원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분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둠에서 그분의 놀라운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 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들이다.”(베드로전서2:9-10) 
이러한 성도들은 예수님이 선발하신 사도와 동일한 시민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제 더 이상 외국인들이나 나그네들이 아니라 오히려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은 자 들이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주안에서 함께 성전이 되어가고..”(에베소서 2:19-21)


보이는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민교회가 그렇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르고 영적 배경도 다르고 신앙관도, 신앙 수준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이민교회의 사명은 그만큼 중대하고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2) 교회의 속성


주 후 325년의 Nicene회의에서 기독교교회의 속성을 통일성(Unity), 거룩함(Holiness), 우주성(Universal 혹은 Catholic) 및 사도의 전통(Apostolic)으로 정했으며 로마가톨릭성당은 아직도 이 4개의 속성을 주장한다.


개신교(기독교)는 통일성과 특히 거룩함을 중요시한다. 또한 기독교는 사도전통대신 교회의 견고성(Solidity)을 강조한다.


가)통일성


교회의 통일성이란 교회는 하나라는 것이다. 또한 통일성이란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교회를 지키라는 것이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같은 말을 하며 너희 가운데 분열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굳게 합하기를 내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권한다.”(고린도전서 1:10) 
통일성이란 우리 주 예수님은 오직 한 분이라는 것이다. 


“주도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다.”(에베소서 4:5) 


소망은 하나다.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한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다.”(에베소서 4:4)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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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3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2)

 

 
(지난 호에 이어)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창공은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말이 없으며, 그들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지고 그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른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치셨다.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를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하니 그 열기로부터 숨을 자가 없다.” (시편19:1-6) 


하나님의 영광계시는 세상 속에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속성이다. 그분은 전능하시다. 그분은 영원하시다. 그분은 자비하시다. 그분은 주관적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신실하시다. 하나님의 영광은 만물의 창조, 세상의 관리 및 세상의 종말에서 나타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기쁘게 노래하자. 우리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크게 외치자. 감사함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고 찬송으로 그분께 크게 외치자. 여호와께서는 크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다. 땅의 깊은 곳들이 주의 손에 있고 산의 높은 곳들도 주의 것이다. 바다가 주의 것이며 주께서 만드셨고 육지도 주의 손으로 지으셨다. 오라, 우리가 경배하며 절하자. 우리를 만드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분은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 목장의 백성이며, 그분 손의 양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시편 95:1-8)


앞에서 세상의 가치는 세상과 인간간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세상의 목적은 세상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의 계시적 가치를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세상 창조에 목적이 없으면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다시 한번 강조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세상 창조는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찬양한 것이다. 


경제개발 혹은 기술개발이 아니다. 기술 개발로 인해 세계경제가 부흥한 자체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실지는 모르겠으나 이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돈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최후의 궁극적 율법은 이웃 사랑이다. 이러한 이웃 사랑에 과연 경제개발이 기여했나? 하나님의 궁극적 율법이 현실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교회의 역활이 무엇보다 주요하다. 다음 장에서는 교회론을 토의 하고자 한다.

 

 제 7장: 기독교 교회관 (Christian Doctrine of Church)


 7.1 서론


앞에서 현 기독교의 위기, 성경관, 신관, 인생관, 역사관 및 세계관을 살펴 보았다. 이들 과제는 기독교신앙생활을 하는데 필수적 지식을 제공한다. 그러나 일상 기독교 생활은 교회중심으로 시행된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 교회에 대한 지식도 절대 필요하다. 본 장에서는 다음 과제를 토의한다. 기독교 교회의 정의 및 특징, 기독교의 거버넌스(Governance), 기독교의 사명, 기독교 교회의 문제점, 한국교회의 문제점, 이민한인교회의 당면과제, 설교성공의 비결.


7.2 기독교교회의 정의와 본질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각종 교회행사에 참여한다. 통상적으로 교회라 하면 신자가 모여서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건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속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우리교회가 과연 잘하고 있는지 혹은 잘못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1)정의


우선 성전(Temple)과 교회(Church)를 구분 해야한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고 거듭나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 하느냐?”(고린도전서 3:16)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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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6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1)

 
 
(지난 호에 이어)


6.5 지상 세상의 가치와 목적


기독교 세계관은 피조물 세상이 무슨 목적으로 하나님이 지으시고 왜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 준다


여호와시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가 주를 찬송 할 것 입니다. 그들이 주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님의 권능을 말하여 주님이 하신 일을 사람에게 알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니, 주님의 통치는 대대에 이를 것입니다.”(시편 145:9-13)


비기독교 세계관에는 세계의 가치와 목적에 대한 다양한 개념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개념 자체가 분명치 않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개념이 없다. 이유는 세계 자체에 대한 흥미가 부족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세계관에서는 세계의 창조자, 관리자, 변화의 과정 그리고 종말을 취급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세계 측면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세계를 제대로 이해 하기가 어렵다. 불행히도 비기독교 세계관은 이러한 문제를 피한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사전 작정에 의하여 창조 하셨다. 신명기의 구절을 보자:


 “네가 있기 전 곧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들에게 물어 보아라. 하늘이 이 끝에서 하늘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그런 일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어떤 민족이 너희가 들은 것처럼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살아 남았느냐?” (신명기 4:32-33) 


"너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네가 보는 앞에서 하신 것처럼, 어느 신이 가서 시험과 표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두려움으로 다른 민족 가운데서 그의 민족을 선택한 적이 있느냐? 그러나 네게 이것을 보여준 것은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그분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 (신명기 4: 34-35) 


그러면 세상의 가치는 무엇인가? 먼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내가 마음 속으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기 때문이다.”(전도서 3:17)


 세상의 의미는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이 계시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의미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이 중심적 의미다.


성경적 기독교에서는 계시를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로 구분한다. 앞에서 계시에 대하 토의 한바 있다. 양 유형의 계시는 피조물 세계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즉 성경은 계시적 가치를 가진다. 기독교 세계관이 보는 세상의 가치는 계시적 가치다.


이 세상의 역할은 하나님 계시의 도구로서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보이는 것에 있다. 이러한 식으로 우리는 세상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계시적 도구인 세상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이에 대한 답은 기독교 세계관을 이해 하는데 중요하다.


 성경에 있는 특별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반 계시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된다. 주목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세상에 대한 지식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하나님을 모르면 세상을 모른다. 세상을 모르면 하나님을 아는데 한계가 있다. 


한편 과학도 하나님을 아는데 도움을 준다.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신다. 과학(인반 계시의 일 부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으로 간다. 이와 같이 과학도 기독교 세계관 설립에 뜻 있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세상을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을 안다면 우리의 세계관 또 우리의 인생관은 무의미 하다. 무의미한 삶은 가치가 없다. 곤욕스러운 인생이다. 성경과 세상을 통해 우리는 성스러운 계시를 접근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는 특권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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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0)

  

 
(지난 호에 이어)
하지만 성경에서는 요한계시록이 지적한바 끝이 있다. 언제가는 없어진다. 실은 하나님의 창조는 종말을 전제로 한다. 즉 시간은 창조로부터 시작하며 종말로 없어진다. 피조물은 종말에 사라진다. 즉 세상은 종말적(Eschatological)이다. 세상의 종말은 역사의 종말이다. 


이것은 인간이 있는 한 세상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만물은 필연적으로 종말 된다. 이러한 세계관은 오직 기독교 세계관 만이 주장하는 것이다. 


세상은 두 개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또 하나는 미래 세상이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미래 세상은 현 세상의 미래가 아니고 미래에 올 새로운 세상이다. 미래 세상은 영원한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말할 때는 제한된 시간을 생각한다. 우리가 새로운 미래의 세상을 생각할 때는 스스로 영원히 존재하는 세상을 생각한다. 


영원한 세상은 피조물의 세상을 초월한다. 반면에 피조물의 세상은 영원한 하나님께서 영원속에서 만드신 세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제한된다. 


영원한 세상과 피조물의 세상은 이원적 세상이 아니다. 두 세상 모두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기 때문에 같은 세상이지만 차원(Dimension)이 다르다.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이는 세상인데 미래세상은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고린도후서를 보자: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고린도후서 4:18) 


보이는 세상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잠깐 있는 세상이다. 이 세상은 하루 밤의 한 순간이다. 


“주의 앞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순간 같습니다.” (시편 90:4). 


수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이 세상의 수명은 (0)이고 미래의 세상은 무한(∞) 이다.우주는 보인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미세한 물질로 시작하여 이 물질들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결합하여 광물이 되고 식물이 되고 동물이 된다. 


하나님은 시간, 공간 및 형체(Form)를 창조하셨다. 즉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 하셨다. 창세기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운행 하셨다.”(창세기 1:2)


하지만 시간, 공간 및 만물은 영원한 존재가 못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스러운 목적을 위해 만드신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창조물은 목적이 달성되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은 최초가 있고 마지막이 있다. 피조물은 영원하지 않다.


참다운 세상은 시작도 마지막도 없다. 참다운 세상이 아닌 세상, 즉 지상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따라서 이 세상은 시작이 있고 마지막이 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다.” (요한 계시록 22:13). 


지상 세상은 아무리 오래 존재해도 영원한 세상이 아니다. 시작이 있는 것에는 영원하지 않다. 왜냐하면 마지막이 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 만이 영원한 세상을 만든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그분께 돌아간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토록 있기를 기원한다. 아멘” (로마서 11:36)


세상의 종말성은 창조의 목적 여부와 직결된다. 만물은 하나님의 성스러운 사전 계획에 의해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창조의 목적이 있다. 목적이 있기 때문에 시작이 있고 종말이 있는 것이다.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목적이 달성되면 없어진다. 


예를 들자면 거주 목적으로 가옥건설을 시작 하지만 가옥이 거주 기능을 다 하면 계속 수리를 하지 않는 한 가옥은 철거된다. 하나님은 뚜렷한 목적을 위해 만물을 지으셨다. 따라서 이 세상이 목적을 다할 때 세상은 마지막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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