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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배우는 기쁨(99)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왜냐하면 종교갈등이 세계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즉 기도교가 비기독교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는데 포용 수준 혹은 배타 수준이 무엇이냐가 어려운 과제다. 즉 기독교에 대한 충성(Commitment) 및 개방성(Openness) 과의 균형이 과제다.

 

신학자 니터(W.C. Placher, Essentials of Theology 2003 속에 있는 Paul Knitter 의 논문, PP.302-318)는 4개의 비기독교와의 접촉 유형을 제시한다. 즉 교체 모형(Replacement Model), 성취모형(Fulfillment Model), 상호 모형(Mutuality Model) 및 승인 모형(Acceptance Model)이 바로 그것이다.

 

교체모형은 바르트(Barth)와 순복음 계통 신학자를 포함한 전통적 신학자들의 주장이다. 비기독교에 대해선 인치도 양보를 할 수 없고 비기독교를 기독교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모형이 가장 배타적 모형인 것은 분명하다. 디모데 전서는 누구나 다 구원을 받을 수 있으나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디모데전서 2:4-5)

 

다시 말하자면 비기독교를 받아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비기독교 간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선취 모형은 1962-1965년의 제 2차 바티칸(Vatican Council) 후 거론된 신학적 이론이다. 핵심은 이렇다. 불교, 힌두교 등 비기독교 종교에도 진리가 있고 성스러운 것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 기독교 하나님이 그 곳에서도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종교들과의 대화(Dialogue)가 가능하다. 대화를 통해 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대화의 목적은 예수님이 이들 종교인들의 구원을 성취하는데 있다. 이와 같이 성취모형도 비기독교와의 타협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취모형은 교체모형보다는 약간 개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상호모형의 핵심은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다른 종교에서도 구세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모형의 문제는 예수님을 전능 전지하신 유일(Unique)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모형인 승인모형이 가장 개방적 모형이다. 즉 기독교의 우월성을 가장 부인하는 모형이다. 모든 종교는 구원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각 종교마다 스스로의 구원 방법을 추구한다. 따라서 각 종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계평화 혹은 사회정의 등의 세계적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하고 협조하는 것이다. 4개 모형 중 가장 개방적이다.

 

앞에서 본 4개 유형 중 교체모형이 가장 배타적 모형이라면 승인모형이 가장 포용 모형이다. 문제는 이 모형들을 뒷밭침하는 신학적 근거다. 우선 개방적 모형을 지지하는 신학적 근거는 다음의 분류를 할 수 있다. 즉 고백모형 (Confessional), 겸손모형(Kenotic), 상대적 성례모형(Sacramental or Revelation) 및 천국 모형(Kingdom-centered)이 이러한 모형이다.

 

이 모형은 기독교의 타 종교에 대한 개방성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 한다. 고백형 모형에서는 기도교인이 비기독교인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경험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는 비기독교인의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솔직하게 신앙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면 불교인, 힌두교인, 이슬람 교인들도 자기들의 믿음 경험을 이야기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종교간 대화가 가능해진다. 대화의 목적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충성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 구절을 믿는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 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다.”(디모데 전서 2:5)

대화를 하데 피할 것은 기독교의 우월성은 강조 안 해야 한다. 겸손모형은 우리가 Kenotic 하라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비우는(Emptying)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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