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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부모의 자녀 교육 전략(30)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한편 퀘벡사회에 대한 시각도 부정적이다(C). 한 연구자료(정희수 1992)에 의하면 « 퀘벡주의 경제는 개도국 수준이다 » « 퀘벡인들은 불친절하다 » « 퀘벡인들은 게으르다 » 등의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시각은 각자의 자유다. 문제는 부모가 이러한 시각을 가질 경우 자녀도 비슷한 시각을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 


현지사회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이곳 사회 생활에서 성공할 확률이 적어진다.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현지인과의 사회생활 접촉 부족이다(E). 언어장벽, 여유시간 부족, 문화 차이, 대인관계 관습 차이 등의 이유로 한인 부모들이 현지인을 만나 대화도 하고 친해지는 기회가 전무하다.


부모들의 노력(20%) 보다는 한인회에서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80%). 예를 들자면 음식, 가정 생활, 자녀 교육, 사둔 관계 등 일생 생활에 관한 토의를 할 수 있다.


우리 이민 부모들의 퀘벡 역사 및 문화에 대한 흥미는 전무하다(D)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언어장벽 및 현지사회 문화의 이질성으로 설명된다. 또한 부모들은 이민 전 한국 문화에 대한 강한 애착심도 요인 변수다. 1세 부모들이 현지사회 역사 및 문화에 대한 흥미가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자녀들과의 대화 범위가 좁아진다. 집에서 현지 사회에 대한 대화가 전무하다 보니 자녀들도 영향을 받아 이곳 사회에 대한 흥미가 없다. 자녀가 퀘벡주에서 사는 한 사회 생활 및 직장 생활에 중대한 역 효과를 준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곳 역사나 문화를 모를 경우 현지인에게 무식한 사람의 인상을 주고 각종 불이익을 당한다.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 필자가 존경하는 어떤 분의 사돈이 현지인이다. 하루는 사돈집에 초대를 받았다. 이 분은 영어에 능숙하다. 


식사 후 회화 주제를 찾기가 힘들었다. 필자의 친구분은 퀘벡역사 중 중대한 사건 이었던 1834년의 루이-빠삐노(Louis Papineau) 반란 이야기를 했다. 사돈은 변호사다. 그는 친구분의 퀘벡역사에 대한 지식 및 흥미를 높게 평가하여 그의 며느리 가문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다 한다. 며느리에 대한 대우도 더욱 좋아졌다는 것이다.


자녀들도 이곳에서 사회 생활 및 직장 생활을 하려면 퀘벡 역사와 문화를 모르면 사회에서 및 직장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적 실력에만 의존하면 진급에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정착하기가 힘들어진다. 


부모들이 현지사회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적응을 못하고 언젠가는 떠난다는 인상을 자녀에게 주면 자녀에게 불안감을 주고 학업에서도 실패할 수 있다. 


필자가 아는 한 분이 있다. 이 분은 이곳에 40년 전에 이민 왔다. 이 분은 항상 « 이곳에서는 못 살겠다. 빨리 떠나야 하겠다 » 라고 하면서 40년 동안 이 곳에서 살았다. 이러한 언행은 결국 자녀들의 학업 실패로 이어졌다.


퀘벡 역사 및 문화를 부모들이 스스로 배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불어장벽과 퀘벡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원인이다. 따라서 한인회에서 영어 및 한국말로 된 자료 제공과 강연 혹은 세미나를 제공해야 한다. 노력의 90%는 한인회에서 제공해야 한다.


이민 집단에 대한 현지인의 기대 중의 하나가 이민 집단이 이곳 주요 공동 행사(Collective Events)에 참여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 퀘벡인은 자기들을 거대한 영어 문화 바다에 떠있는 연약한 문화적 섬으로 인식한다. 이민을 필요로 하지만 이민은 퀘벡의 정체성(언어, 문화, 종교)에 위협을 준다고 견제한다.


따라서 그들이 정체성 강화를 위한 행사에 이민 단체가 참여하는 것을 극히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행사에 참여하는 이민단체를 «one of us!» 라고 극찬한다. 즉 해당 이민 단체의 이미지(Image)가 제고 되며 자녀의 사회 진출에 기여한다. 


지난 40년 동안 당시 한인회 회장단의 지도력에 따라 몇 번 퀘벡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센-쟝 밥티스트(St-Jean Baptist) 축제에 참여한바 있다. 하지만 가장 활발하게 참여했던 시기는 염둥준 회장/김영권 사무총장 시기(2004-2006) 이었다. 필자는 당시 특별고문으로 활동했다.


우리는 몬트리올 시의 정당에게 개인적으로 정치 후원금도 제공하고 시장을 직접 만나 한인 공동체를 소개도 했다. 이러한 행동은 우리 공동체의 대외 이민지 제고에 기여했다. 


중국계 이민단체들은 연말에 대대적 정치활동을 하여 중국계 이민 자녀들의 정계 및 업계 진출에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 캄보디아 같은 소규모 단체도 정치활동을 하여 자녀들의 현지 진출에 도움을 주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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