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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거짓말"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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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2월말,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서 10대 초반의 여학생이 실종됐다. 경찰은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채 주택가 물탱크에 유기된 피해자의 시신을 찾아냈다. 경찰은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범인은 사건 발생 일주일여 만에 검거됐다. '김길태 사건'이다.

 전국적인 관심이 모아진 이 사건에 서울지역 언론사들은 이례적으로 여러 명씩의 기자들을 부산으로 파견해 취재에 열을 올렸다. 신문 1면부터 4~5개 면이 김길태 사건 관련 기사로 날마다 도배가 됐다. 김길태를 입양했던 가족과, 학창시절 친구들은 모조리 언론의 인터뷰 대상이 됐고, 그가 다니던 학교의 생활기록부까지 낱낱이 공개됐다.

 KBS는 김길태 공개수배 생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경찰은 김길태를 검거하기 위해 부산지역 경찰서 형사들을 대거 동원했다. 용의자가 은신한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에워싸고 골목골목 빈집을 수색하는 등 토끼몰이식 검거작전을 펼쳤다.

 김길태는 사건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주택가에 숨어 있다 덜미를 잡혔다. 김길태에 대한 온갖 뉴스가 쏟아지면서 경찰에 체포된 김길태가 형사들에게 짜장면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까지 뉴스가 됐다.

 20여 년 기자생활을 하면서 후회되는 순간 가운데 한 대목이다. 당시 부산경찰청을 출입하면서 데스크와 의견충돌이 여러 차례 있었다. 사건 자체가 충격적인 것은 분명했지만 과연 2주 가까이 신문방송이 전력을 다해 달려들 만큼 보도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사상구는 물론, 부산 전체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측면도 지역언론으로서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김길태 사건 보도로 묻혀버린 이슈는 따로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의 독도 관련 발언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가 '교과서에 다케시마라고 쓸 수밖에 없다'고 하자 이명박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이 영토주권을 포기했다는 비판여론이 들끓었지만 언론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당시 언론관련 전문지 '미디어오늘'은 "이명박의 독도 발언이 '김길태 짜장면'에도 밀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권력과 언론이 MB의 독도 발언 파문을 감추기 위해 김길태를 이용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감춘다고 다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 한두 번은 가능하지만 결국 들킨다.

 때는 2007년. 한국 정치사상 가장 치열했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맞붙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유행어가 나돌았다. 임기 말 힘이 빠진 '대통령 돌려까기'가 국민스포츠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그러니 한나라당 경선만 통과하면 대통령 자리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야당 후보경선 열기가 불을 뿜으면서 난타전이 이어졌다. 박근혜 후보 측은 BBK 주가조작 사건 등을 거론하며 "다스는 누구 것이냐"고 MB를 공격했고, 이명박은 박근혜가 집권하면 최태민 일가, 즉 최순실의 국정개입 가능성이 높다고 맞받았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박근혜에게 반박하던 이명박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로 밝혀져 감옥에 있다. 다스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삼성 등에서 뇌물을 받았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비선실세로 호가호위하며 박근혜 정부의 국정을 주무르던 최순실도 옥살이를 하고 있다.

 당시 검찰은 이명박의 다스 실소유주 논란 등을 수사했지만 MB가 대통령 후보가 된 뒤 슬그머니 덮어버렸다. 수사의 칼날이 확실한 미래권력 앞에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권력과 검찰의 짬짜미, 받아쓰기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개념 언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때문에 경선에서 제기됐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기까지는 10여 년이 더 걸렸고, 그동안 후안무치한 세력은 달콤한 권력을 향유하며 잇속을 착실히 챙겼다.

 막바지에 접어든 2022년 대선 레이스도 어김없이 난타전이다. ‘다스’나 ‘최순실’이라는 단어가 ‘대장동’ ‘주가조작’ ‘무속’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과연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늘 되풀이된다’는 금언이 이번에도 찰떡같이 들어맞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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