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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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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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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4
어느 캐나다인 가문의 한국교회 사랑

 

 한국교회에서 주일학교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청년들도 교회를 떠난다. 미래 한국교회를 어둡게 전망하는 이유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젊은이들의 교회 이탈은 한층 가속화됐다. 복음에 대한 관심은 급속히 식었고, 예배는 재미없고 지루한 ‘행사’가 됐다. 그럼에도 청년들의 삶은 공허하다. 미래와 경제적, 사회적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인 이상 내면과 영혼의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기독교 청년들이 신앙을 회복하는 지름길은 오로지 성경말씀과 예배다. 복음을 통해 속에서 무너진 심령이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캐나다크리스찬칼리지(Canada Christian college, CCC)의 이야기는 많은 울림을 준다. 4년여 전 토론토 미드타운에서 윗비(Whitby)로 캠퍼스를 이전한 이 신학교에서는 매주 광역토론토의 청년 1천500여 명이 모여 찬양예배를 드리고 있다. 4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대강당이 찬양예배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예배가 열리는 날은 어지간한 쇼핑몰보다 큰 주차장이 자동차로 가득 메워진다. 최첨단의 음향과 조명시설은 젊은이들 예배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기독교를 떠나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시기에, CCC가 청년 신앙부흥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CCC가 예배에 참석하는 청년들을 거주지 주변 교회로 연결해 신앙적으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각 교회 위주로 미래세대 청년사역이 이뤄지는 한인교계에도 시사점을 준다. 광역토론토 한인교회의 각 청년들, 수천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예배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신앙의 열기에 다시 한번 불을 지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 학교의 변신을 확인하기 위해 3년 여 만에 다시 찾았다. 학교 앞마당에서 바라본 온타리오 호수, 푸른 잔디밭 너머의 윤슬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눈부시게 반짝이며 잔잔하게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은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볼 만큼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사람들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강아지와 산책을 하며 싱그러운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토론토를 떠나 윗비에 처음 터를 잡았을 때는 학교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아 어딘가 어수선했다. 캠퍼스를 옮기고 처음 맞는 졸업식은 대강당이 아닌 잔디밭 광장에서 열렸다. 그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축하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비 때문에 졸업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지는 못했었다.

코로나 CCC캠퍼스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정재천 학인학부 신임 학장의 안내로 둘러본 캠퍼스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깔끔했고,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학생들을 위한 헬스장에는 각종 운동기구가 가득했으며, 프로팀이 경기를 해도 될 만한 풀코트 농구장도 눈길을 끌었다. 풋살경기장의 인조잔디는 최상의 품질을 자랑했다. 학생들이 강의 중간에 쉴 수 있는 휴게공간도 충분했으며, 확 트인 도서관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잘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달라진 한인학부의 분위기였다. 정재천 교수가 최근 신임 학장으로 부임한 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학생들과 학장 사이에 거리감이 사라졌고, 강의실과 붙은 학장실에는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한다.

정 학장은 학생자치회를 조직하도록 해 학교운영의 투명성도 높였다. 또한 재학생들의 불만사항을 자치회를 통해 모으고 교수들과 함께 개선해 나가는 통로도 마련했다.

학교에서 마주친 학생들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고, 정 학장과 농담을 수시로 주고 받을 만큼 격식을 따지지 않았다. 또한 음악과와 상담학 전공파트에 전문성을 갖춘 교수 6명이 충원되면서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개선됐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정 학장은 최근 학생과 교수들이 모두 참여하는 볼링대회를 열 정도로 학교 안에서의 가족적인 분위기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학교시설 개선이나 원활한 학사운영이 정 학장의 목표는 아니다. 북미 최대규모 신학교 한인학부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정 학장은 “현대식 캠퍼스나 가족 같은 학교 분위기가 신학교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면서 “캐나다 한인교계와 같이 호흡하면서 복음전파의 전진기지 역할을 맡아야 할 신학교인 만큼 미래세대를 위한 사역자를 세우고 양성하는데 학교 운영의 초점을 맞춰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CCC는 언제든 한인사회와 한인교회에 열려 있다. 예를 들면, 한인교회들이 연합으로 찬양예배나 집회를 할 공간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대강당을 개방할 계획이다.

이는 찰스 맥비티 총장의 철학 때문이다. 총장의 삼촌이었던 켄 맥비티 선교사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생명의 말씀사를 세울 만큼 한국선교에 관심을 쏟았다. 성결대 등 3곳의 신학교를 개교하는 데도 힘을 보탠 것으로 전해진다. 찰스 총장도 지난 30년간 수십 차례 한국을 방문해 여러 신학교와 교회에서 설교했다. 그는 “갈비와 불고기가 최고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말로 한국 사랑을 드러낸다.

찰스 맥비티 캐나다크리스천칼리지(CCC, Canada Christian College) 총장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올해의 지도자’에 선정될 만큼 캐나다 보수주의 기독교의 중요 인사다. ‘이스라엘협력자재단(IAF, Israel Allies Foundation)’은 매년 전 세계에서 50명의 지도자를 발표하는데, 맥비티 총장은 스티븐 하퍼 전 캐나다연방총리,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 등과 함께 선정됐다. IAF는 맥비티 총장에 대해 “복음주의 기독교 지도자이며, 캐나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친 이스라엘 성향의 목사”라고 소개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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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7
자유의 뒷배

 

1990년대 말, 한국보수야당에는 대권을 꿈꾸는 이른 바 ‘잠룡’들이 많았다. 8룡이니, 9룡이니 경쟁하며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에서 가장 어렵다는 시험에 모조리 합격하고, 법조인 등으로 화려한 경력을 쌓은 정치인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꼬리표처럼 약점 한 가지가 따라다녔는데, 당적을 수 차례 옮겼다는 비판이다.

어느 날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지나치게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한 것 아니냐고.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자신은 한 번도 정치적 입장을 바꾸지 않았으며, 항상 같은 자리를 지켰다는 것이다. 다만 혼탁한 상황 때문에 정치지형이 자주 바뀌다 보니 마치 자신이 이리저리 옮겨 다닌 것처럼 보여 억울하다고 오히려 하소연했다.

정치인이 무슨 소리를 못 하겠는가. 곤란한 질문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것도 중요한 기술이다.

그럼에도 정치인이 자신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정치적 천동설’은 어딘가 위험하다. 다수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수야당의 그 잠룡은 결국 대권실패는 물론 서울시장 등에도 잇따라 낙선하면서 정치적으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6개월을 맞아 방송사들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긍정 지지층은 30% 언저리, 부정평가는 60% 안팎이었다. 그가 대선 때 얻었던 50% 가까운 득표율을 생각하면 취임 이후 지지율을 꾸준히 까먹고 있는 것이다. 6개월간 사건사고나 인사, 정책논란이 많이 불거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원인은 국민이 아닌 자신과 특정세력을 중심에 놓고 정치를 펼치고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말하자면 검찰 만능주의다.

예견됐던 부분이다. 2013년 10월21일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렸다. 당시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 윤석열 여주지청장에게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윤석열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은 채동욱 검찰총장의 지시로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혼외자 논란이 불거진 채총장이 낙마했으나 이후에도 윤석열은 수사를 강행하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른바 항명파동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윤석열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그에게 ‘강골 검사’의 이미지를 씌웠다.

그러나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었다. 정갑윤 의원은 당시 윤 지청장에게 “조직을 사랑하느냐”고 먼저 물었고, 윤은 “대단히 사랑한다”고 답했다. ‘대단히’라는 단어 속에서 검찰에 대한 그의 애착, 정확히 말하면 검찰 특수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게 드러난다.

어쩌면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윤석열의 이후 행보를 푸는 열쇠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신념이 아니라 ‘검찰을 사랑하는 마음’에 있다. 그것이 자신을 서울지검장과 검찰총장 등 검찰요직에 앉힌 문재인 정부를 향해 반기를 든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검찰총장 재직 시절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다. 이 수사를 두고,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윤석열은 “검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면 이는 부패한 것과 같다”는 말로 맞받았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칼을 겨눴다는 의미로 자신의 정치적 편향성을 부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윤석열의 행보는 그의 신념과 거꾸로 가고 있다. 자신이 도륙했던 보수 정치권의 대표로 변신하더니,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검찰 출신 몇몇 인사들이 정부 요직을 모조리 장악했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들과 야당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의 형평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칭 ‘헌법주의자’다. 그런 면에서 그의 대통령직 수행은 철저하게 헌법정신에 따른 것이어야 맞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취임 이후 광복절 기념사와 유엔 연설 등 공식행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00번 가까이 들먹였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취재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

오로지, 윤석열만이 누리는 자유의 원천은 그가 사랑하는 검찰이다. 노무현을 비롯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모두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윤석열은 검찰, 그것도 특수부 출신이다. 검찰이 수사하지 않고, 기소하지 않으면 있는 죄도 없게 되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윤 대통령이 "여론조사 신경쓰지 않는다. 지지율 의미 없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든든한 뒷배가 검찰인 것이다. "대통령 처음 해봐서"라는, 지지자들과 국민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아무 생각없이 아무 때나 내뱉을 수 있는 것도 검찰을 믿기 때문이다. 검찰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대한민국의 핵심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문학의 천동설이 한 순간에 무너졌듯,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하는 '정치적 천동설'도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다. 안기부(국정원) 보안사(기무사) 경찰 등 한때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던 권력의 중추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차례로 권력을 내놓았다. 그것이 역사다.

그런 면에서 국민들의 비판적 여론은 물론 평소 강조하던 헌법적 가치 등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겠다는 윤 대통령의 행보가 언제, 어디까지 지속될지 지켜보는 것도 꽤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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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7
광화문에 핵 발전소를.

 

 지난 8월말 C일보는 ‘유럽 에너지 위기에도 원전 덕에 느긋한 프랑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프랑스 전력 생산의 71%를 원전이 차지하며, 에너지 자급률도 높아 안정적이라는 내용이다. 마크롱 정부가 지난 2월 6기의 신규원전 건설을 발표하면서 기존 원자로 폐쇄 계획을 중단하고, 수명을 늘려 계속 쓰겠다고 선언한 내용도 묶어 전했다.

이 기사는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와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를 위한 장기 대책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원전을 늘리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든 단기간 성과를 낼 수 없는 에너지 정책은 경제·과학적 근거는 물론 안보 측면까지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 정치·이념적 판단이 끼어들어선 안 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에너지 위기에도 끄떡없는 프랑스 원전 소개 기사는 독일의 탈원전 정책과 비교, 대조했다. 원전 가동중단과 수명을 다한 원전의 폐기를 선언했던 독일 정부의 정책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천연가스 부족사태에 직면하면서 위기를 맞았고, 이런 점에서 프랑스의 처지와 대비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조는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보수언론은 겨울철 난방에너지 부족사태에 직면한 독일이 가동을 중단했던 일부 원전을 3~4개월 정도 재가동키로 하자, ‘탈원전 유턴’이라며 일제히 입을 모았다.

그런데, 언뜻 예리해 보이는 C일보 기사와 다르게, 세계 주요언론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로이터통신은 “한때 유럽의 최대 에너지 수출국이던 프랑스가 올 겨울 국내 수요도 감당 못할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시점은 C일보와 비슷한 8월말이다.

 올해 프랑스의 원자력 에너지 발전량이 30년 이래 최저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에너지를 수입했으며, 전력요금도 메가와트시(MWh)당 1000유로를 넘었는데, 이는 1년 전 불과 70유로 수준에서 폭등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그러면서 “독일과 벨기에 등 인근 국가의 전력난도 심해질 것이 뻔한 올 겨울 프랑스는 더 큰 에너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유럽, 원전에 대한 중요한 결정의 기로에 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프랑스 원전 56기 가운데 절반가량이 노후화된 부품 교체와 유지보수 문제로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며 “원전 연료 역시 러시아 의존도 높아 스위스의 최대 신생 원자력발전소는 연료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노후 원전 대부분은 테러나 사이버테러에 취약점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핵폐기물 저장과 처리에 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CNBC는 '한때 기쁨과 자부심의 원천이던 프랑스 원전, 올 겨울 큰 문제에 직면하다'는 기사에서 "원전의 탄소배출이 적은 것은 확실하지만 경제적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프랑스는 가동을 멈췄던 원전을 되살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유지보수의 어려움 등으로 추위가 본격화되기 전에 가동률을 높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며, 최악의 경우 지역적인 블랙아웃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두 개 있을 리 없고, 같은 프랑스 원전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극명하게 엇갈린 점은 독자로서 어리둥절할 뿐이다.

 하지만 한국 일부 언론이 왜 그렇게 ‘핵발전 친화적’인 기사를 내보내는지 어지간한 독자들은 안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정책을 집요하게 캐고 있으며,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감사원까지 나서 사업실태 감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핵 사랑’은 이미 알려져 있다. 대선 후보시절 경북 울진의 한울원자력본부를 방문했으며, 핵발전 비중의 30% 유지(사실상 확대)와 해외에 10기 이상의 원전 수출을 통해 1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보수언론도 이런 분위기에 충실히 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취임한 뒤 벌써 몇달이 흘렀지만 임기 5년간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지, 주요 국정과제가 무엇인지 희미해졌다. 교육, 노동 등 내놓는 정책마다 줄줄이 국민들로부터 퇴짜를 맞거나 흐지부지되는 상황이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경제도 난장판이 되고 있지만 검찰수사 말고는 국민들의 시선을 끄는 이슈가 없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해 본다. 국정과제와 국민의힘 2024년 총선 주요 공약으로 ‘서울 광화문광장에 핵발전소 건설’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건 여러 가지 측면에서 타당성이 있는데, 먼저 한반도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이 서울 수도권이란 측면에서 유의미하다.

 최근 나온 민주당 김정호 의원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부산, 울산, 강원, 충청 등에서 수도권 등 전국에 전력을 보내는데 따른 송배전 손실량이 금액으로 환산해 연평균 약 1조7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1GW(기가와트) 원전 21기가 1년 동안 가동한 전력량에 달한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만약 광화문에 핵발전소를 건설해 서울 수도권에 곧바로 전력을 공급한다면 송배전에 따른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1년 동안 절약한 1조7천억이면 청와대 이전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는다.

 또, 윤 대통령의 핵발전소 수출공약과도 맞아 떨어진다. 광화문광장에 최첨단 기술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랜드마크 형태의 핵발전소를 짓는다면 전 세계의 주목을 끌고, BBC가 유럽 노후 원전의 테러 대비 문제를 지적했는데, 서울 한복판에 세운 것만으로도 ‘K-핵발전’의 기술적 자신감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입지를 따져도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 부산, 울산, 경주 등 동남권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핵발전소 밀집지역이다. 게다가 최근 경주 인근에서는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활성단층이 자주 발견된다. 미국 일본에서 원전 사고가 실제로 발생했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위험 경보가 계속 울리는 동남권보다 서울 수도권 입지를 따져보는 것도 괜찮다.

 한국은 냉각수 문제로 바닷가에 원전을 많이 짓지만 프랑스의 경우 상당수는 강물을 냉각수로 이용한다. 그런 면에서 한강을 곧바로 끌어다 냉각수로 쓸 수 있는 서울에 핵발전소를 짓는다면 C일보의 표현처럼 ‘원전 덕에 느긋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

 “에너지 문제에 정치 이념적 판단이 끼여들어선 안 된다”는 C일보의 충고가 새삼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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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0
‘이 XX'들의 분노

 

방탄소년단(BTS)을 세계적인 K-팝 그룹으로 키워낸 방시혁 하이브 대표. 그는 수 년 전 서울대 강연에서 “분노가 나를 키워낸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사회 전반에 깔린 악습과 불공정, 사회 경제적 부당함에 분노하며 여전히 싸우다 보니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분노’와 ‘성공’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질감 때문인지 방 대표의 강연은 화제가 됐다. 어느 예능프로그램의 퀴즈로도 등장했다.

‘분노’는 방 대표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와 사회를 움직이는 본질적 메커니즘이다.

최근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는 주말마다 분노한 시위대가 정부를 성토한다. 물가 폭등과 경제 불안에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것이다. 정부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는 남미, 중동 등에서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올해 초 한국에서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 역시 민심의 저변에 깔린 분노 때문이다. ‘이게 나라냐’는 분노 속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내몰았지만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 역시 정의롭거나 그다지 공정하지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동산이든 남녀 젠더 갈등이든 분노의 불쏘시개가 될만한 곳에 언론은 정확히 집중 폭격을 가했고, 분노를 폭발시켰다.

어찌 보면 검사 출신 윤석열이 하루 아침에 대통령에 오른 것도 분노의 산물이다. 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검찰직무에 충실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편인 것으로 생각했던 민주당으로부터 견제와 압박을 당하게 되자 분기탱천했고 마침내 정치에 입문했다.

또한 특수부 검사 시절 대기업 회장이든, 유력 정치인이든, 검사실에 불려오는 순간 바짝 얼어붙었던 ‘같잖은’ 주제에 감히 자신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퍼붓는 정치권에 윤석열은 분노했을 것이다.

‘이 XX’라는 단어가 입에 붙은 것도 아마 분노 때문일 것이다.

분노의 밑바닥에는 뭔가 새롭고, 공정하고, 살기 좋은 국가와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의도가 일정 정도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의롭고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에 대한 기준이 각자 다르다는 데 있다. 언제나 ‘세상의 왕’으로 대접 받으며 살기를 원하는 70억 인간 각자가 기대하는 정의와 자유, 공정의 가치는 모두 다르다.

적을 향해 칼을 뽑고 멸문지화시킬 자유가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면 분노하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똑 같은 잣대를 요구하면 코웃음을 치며 또 분노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 이외에 또 다른 왕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분노’가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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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1
에서의 털옷, 요셉의 죽음

 

야곱은 애굽왕 바로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130년 인생을 한마디로 고백했다.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다.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보내기 전,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로 작정된 상태에서 태어났다. 이삭과 리브가가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임신했을 때 여호와께서는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세기 25장23절)”고 말씀하셨다. 또 말라기 선지자에게는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말라기 1장2~3절)”고 하셨다.

바울은 이 장면을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로마서 9장11절)”라고 기록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인간들의 행위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로지 부르시는 이, 하나님 그분으로부터 정해진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셨고, 큰 자의 섬김을 받기로 이미 결정된 야곱의 인생은 ‘험악한 세월’로 나타났다. 그는 아버지와 형 에서를 속인 뒤 장자의 축복을 받았고, 도망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권모술수를 동원해 재산을 축적하려 했다. 형 에서와의 재회를 앞둔 얍복강에서는 하나님의 사자를 밤새 붙들고 늘어져 기어코 복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는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다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바람에 평생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으며, 딸 디나가 히위족속 추장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이에 분노한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그 족속을 도륙하는 일이 벌어졌다.

야곱은 두려움에 떨면서 “너희(시므온과 레위)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집이 멸망하리라(창세기 34장 30절)”고 말했다. 야곱의 삶은 어느 한 순간도 평안을 누리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야곱의 험악한 삶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28장15절)’는 하나님의 언약에 지배당하는 것이었다.

야곱이 스스로의 힘과 잔꾀로 복을 받기 위해,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달려갔지만 실제로 그를 이끌어간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야곱의 삶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은 태어나기도 전에, 선악을 행하기도 전에 이미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됐다. 그의 삶에서 벌어졌던 모든 사건은 스스로 추구했던 목표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권 아래에서 펼쳐졌다는 의미다.

이것은 창세 전에 선택 받은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들이 세상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지키며 반드시 그분의 나라로 끌고 들어가시겠다는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정한 계획에 따라 허락된 것은 성도 개인의 목표와 관계없이 성취된다. 아브라함과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자로 등장했듯,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유익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내내 험악할 수밖에 없다.

야곱은 장자였던 형 에서의 좋은 의복을 입고(창세기 27장15절)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았다. 이삭은 복을 받으러 온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에서가 아니라 야곱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에서처럼 보이기 위해 염소새끼의 가죽을 손과 목에 걸쳤다. 이삭은 야곱이 입고 있던 에서의 옷에서 풍기는 큰 아들의 향취를 맡고는 야곱에게 마음껏 축복한다. 야곱 자신의 자격이 아니라 가죽이 벗겨져 피 흘리고 죽은 염소새끼의 가죽털과 에서의 옷에서 나는 장자의 향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이다. 바로 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구약성경 스가랴에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선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사탄은 여호수아의 더러움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정확하게 지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사탄을 책망하시며 천사들에게 명령해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스가랴 3장 1~4절)”고 말씀하신다.

이는 요한계시록 19장8절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는 말씀과 연결된다. 앞서 계시록 7장에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흰 옷을 입은 자들이 등장하며,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기록한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입도록 허락하신 옷,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은 옷을 입고 거룩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속하여 하나님 나라로 진입하는 것이다.

야곱이 ‘험악한 삶’의 과정에서 목숨 걸고 추구했던 세상의 모든 복은 하나님 앞에서 허무한 것으로 드러난다. 대신 험악한 세월 속에서 하나님의 ‘장자로 여겨주심’ 때문에 하늘의 복에 이끌려 간다.

야곱이 굶주림과 기근에서 구원 받는 것은 그가 가장 사랑하던 아들 요셉의 죽음 때문이었다. 요셉은 형들의 모함과 시기 때문에 세상나라 애굽으로 팔려갔지만, 야곱에게 요셉은 피 묻고 찢겨진 옷만 남긴 채 이미 죽은 아들이었다.

야곱의 심정은 창세기 42장에 잘 나타난다.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 갔던 아들들이 돌아와 다시 양식을 얻기 원하면 막내 아들 베냐민을 반드시 데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야곱은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베냐민)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하고 탄식한다.

그러나 기근이 갈수록 심해지자 야곱은 43장14절에서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 출생 전에 이미 사랑 받기로 작정된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그 막다른 자리까지 밀고 가신 것이다.

야곱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기는 삶을 경험했지만 그 죽었던 아들이 살아나 애굽의 총리가 되면서 가족 모두 구원을 받는다. 스스로 복을 향해 달렸던 삶을 부정당하고, 진정한 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주어진다는 복음으로 끌려들어간 것이다.  - '사람낚는 예수, 사람잡는 복음(부크크출판사.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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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1
믿음 없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여호수아 24장2~3절)

약 4천년 전 당시 문화적으로 가장 번성했던 세상나라의 대표, 갈대아 우르(바벨론)에서 우상을 섬기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강 건너편 가나안으로 뽑아내셨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당시 한 일이라고는 조상 대대로 우상을 섬긴 것뿐이었다. 그를 강 저쪽에서 이끌어내고, 가나안 땅에서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는 계획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셨다. 이것이 구원자와 구원 받은 죄인의 출발점이다.

강이나 바다를 건너는 구원의 이야기는, 저주에서 탈출하는 것을 의미하며, 성경 출애굽기 여호수아 요한계시록 등에서 반복된다. 세상나라에 속한 어떤 이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선택을 받아 하나님나라로 옮겨가는 장면이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시작이다. 문제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의 작품이 아니라는 데 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장8절)

믿음과 구원의 출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일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그 믿음이라는 은혜의 선물에 끌려다닌 삶이었다. 스스로 믿음을 성숙, 발전시키면서 구원 받은 성도들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어진 믿음에 의해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교회와 성도의 표본이라는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갈대아 우르에서 나온 아브라함은 자신의 행위와 노력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완성하려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모든 육신적 노력이 물거품이 될 때까지 기다리셨고, 육신적 가능성을 차단하신 후에 직접 언약을 완성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의 선물’이라는 믿음과 구원의 방정식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삶에서 스스로 생산한 것이 아니라 약속을 완성하겠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믿음이 아브라함 속으로 파고들면서 삶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나라에서 그의 믿음을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없고, 오로지 불가능한 자신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 만을 찬양해야 한다.

이런 그의 삶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향하는 여정으로 집약된다. 우르에서 나온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도착해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약속을 받고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하지만 그는 곧장 하나님나라와 대척점에 선 세상나라 애굽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자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아내를 애굽왕 바로에게 내준다.(창세기 13장)

창세기 15장에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 장면이 나온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상속자와 자손에 대한 약속을 또 하셨다. 이때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6절)고 설명한다. 그 언약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의미로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를 홀로 지나가셨다.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체결에서 약속의 당사자, 즉 실행자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의미다.

인간을 언약 체결의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아브라함의 어떤 행위와도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이다. 즉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 믿음,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여겨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함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도 아브라함은 계속 여호와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자로 판명되었고, 그래서 언약은 하나님의 쪼개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으로 성취된다.

아브라함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을 끝까지 기다리지 않았고, 심지어 믿지도 못 했다.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는다. 17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직접 찾아가 할례로 언약의 표징을 삼고,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게 하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아브라함은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하며 엎드려 웃는다(17절). 그리고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하고 말한다.

18장에서는 아들을 약속하기 위해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들을 사라가 비웃고 만다. 아브라함은 100세 가까운 나이였고, 사라는 생리가 끊어진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신 뒤에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의심하고 마음 속으로 계속 비웃었다. 이것은 믿음의 조상마저도,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언약을 그런 식으로 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인간적인 불가능함과 아브라함의 불신앙 가운데 마침내 은혜로 태어난 것이 이삭이다. 아브라함에게 선물로 주어진 믿음은 아브라함을 모리아산,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 갔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13~14절)고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성도들에게 성취되며, 그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물이 되기 위해 나무를 지고 모리아산으로 올랐다. 아브라함의 손에는 이삭의 심장을 찌를 칼과 불이 들려 있었다. 이삭은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는다. 이때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세기 22장8절)고 대답한다.

아브라함의 칼날이 이삭을 향해 찌르려는 순간 하나님은 어린 양을 준비하고 계셨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대신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린 양이 죽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다. 하나님의 약속을 끝내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에만 몰두하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었던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은 그를 죽음의 자리, 모리아 산, 골고다 언덕으로 밀고 갔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향해 칼을 번쩍 든 것은 곧 아브라함 자신의 죽음이다. 그러나 결국 목숨을 내놓은 것은 무죄한 어린 양이었다. 그 어린 양은 아브라함의 모든 허물을 대신 짊어진 이삭이며, 골고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린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의 보혈로 아브라함의 불신앙이 덮이고, 마땅히 죽었어야 할 아브라함은 살아났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며 기다리다 보고 기뻐하였다(요한복음 8장56절). -‘사람 낚는 예수, 사람 잡는 복음’(부크크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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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3
경찰과 깡패

 

#1. 2010년 9월부터 토론토대학교에서 진행한 저널리즘 펠로우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토론토대는 해마다 캐나다 언론인 4~5명과 해외 언론인 1~2명을 선발해 약 1년간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필자는 당시 ‘기후변화 대응 및 적응 정책 비교’를 주제로 프로그램에 응모해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CBC 프로듀서와 글로브앤메일 기자 등이 함께 선발됐다. 매주 목요일 토론토대 매시칼리지에서 교수와 정치인, 기업가, 사회활동가 등을 초청해 점심을 함께 하면서 강연을 들었고, 토론토대 강의를 마음껏 수강할 수 있었다.

그때 토론토에 약 1년간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 가운데 하나는 근무 도중 순직한 젊은 경찰관의 장례식이었다. 정확한 사건 개요는 기억에서 희미하지만, 당시 추모 분위기는 강하게 뇌리에 남았다. 일간지 ‘토론토스타’는 이 사건을 거의 매일 2~3개 면을 할애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영결식은 생방송으로 진행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캐나다 사회에서 경찰관, 소방관 등 제복 입은 공익근무자들에 대한 신뢰와 존경의 분위기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 응모할 당시 필자는 국제신문 등 신문기자 13년차로, 그 가운데 절반을 경찰서를 출입했다. 경찰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2. 최근 토론토경찰의 어두운 단면을 지적하는 보고서가 나왔다. 백인 등 다른 인종과 비교할 때 흑인 커뮤니티에 부당한 공권력 집행이 많았다는 것이다. 토론토경찰청장이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 자체가 충격적인 것은 전혀 아니다. 북미에 살고 있다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실제로도 공권력 집행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게 경찰의 자체 통계조사를 통해 입증된 것뿐이다.

공권력이 인종에 따라 차별적으로 집행된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민생범죄에 대해 공권력이 한없이 무기력하다는 점이다.

자영업을 하다 보니 황당한 일을 겪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가게에 들어와 냉장고 문을 열고 음료수를 스스럼없이 마시고는 그냥 가버린다. CCTV를 곳곳에 설치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물건을 훔친다. 절도행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몇 차례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시간만 낭비했다. ‘누가 다쳤느냐’, ‘상태가 심각하냐' 등 뻔한 질문만 반복한다. 비슷한 일을 하는 친구 가게에는 경찰에 사건신고를 한 뒤 3시간이 지나서야 순찰차가 왔다고 한다.

#3. 인류의 공동체 생활은 농경과 정착 때문에 가속화됐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씨족은 부족으로, 부족에서 도시국가로 공동체는 확장됐다. 공동체가 커지면서 힘과 부를 축적한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에 차별 문제가 불거졌다. 그것은 공동체의 안정을 위협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 사회적 시스템이 발전해 왔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대신 권력은 시민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주는, 이른 바 ‘계약’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 공권력, 즉 경찰이다.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돌보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다. 그들이 경제 사회적으로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납세자, 일반 시민을 보호하는 일도 똑같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공권력이 이 지경이라면 깡패와 큰 차이가 없다. 시장상인 보호를 명목으로 돈만 뜯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맥주와 안주를 먹고 달아났던 남녀가 결국 경찰에 체포됐다.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것이 범죄라는 명확한 인식을 공권력이 심어주고 있고, 그것을 시민들도 공유하는 것이다.

경찰 인력이 부족하다거나 500달러 이하의 피해는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는 이유로 민생범죄를 뒷전으로 밀어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절도범이 강도범으로 자라고, 그들을 제대로 처벌하고 교화하지 않으면 더 큰 범법자가 된다.

그런 점에서 토론토의 치안은 명백하게 실패하고 있다. 이것은 애초 국가 또는 도시 공동체의 근간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누구도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희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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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정치의 역습

 

#1. K는 똑똑하고 야심 만만한 젊은이였다. 70년대 말 대입학력고사에서 전국 1천~1,500등 사이에 오를 만큼 공부도 잘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그는 보수여당에 몸을 담았다. ‘창’이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를 때쯤 그는 측근으로 분류됐다. 당 사무국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공천을 90%쯤 손에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계파싸움에 희생돼 막판에 공천권을 놓쳤고, 이후 ‘창’이 잇따라 대권도전에 실패하면서 그의 정치인생도 내리막을 걸었다. 이른 바 비주류로 밀려난 것이다.

 2000년대 초 선배기자의 소개로 저녁식사 자리에서 만난 K는 자신의 지난 날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늘어놓았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력 정치인들과의 숨은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K는 친구가 경영하는 회사의 명함을 한 장 들고 다니면서, 여전히 정치권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금배지에 대한 집념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청춘을 오롯이 정치에 바친 그의 인생이 지금쯤 어떤 결실을 거뒀는지 궁금하다.

#2.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 캐나다의 대응은 한심했다. 광역토론토에서 감염자가 잇따라 보고되자, 마스크 착용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요크교육청은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며 교내 마스크 착용을 막았다.

 사태 초기 온타리오주 보건부는 매일 브리핑을 하면서 “캐나다에서 코로나19가 대규모로 유행할 확률은 매우 낮다(extremely low)”고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측은 어이없이 틀렸고, 캐나다는 2020년 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온타리오를 비롯한 각급 정부의 책임론이 불거졌지만 보건부 고위 관계자들은 코로나19 대응 사령탑에서 물러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경제적 타격이 확산되자 연방과 주정부는 시민들에 대한 즉각 지원책을 쏟아냈다. 실직자들과 자영업자들에게 여러 명목으로 지원금이 나왔다.

 반면 한국은 방역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지만 경제적 피해 방어에서는 허둥지둥 갈피를 못 잡았다. 수십만 원에 불과한 지원금을 놓고도 여야가 팽팽히 맞섰고, 정부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국가의 빚이 늘어난다며 지원예산 배정에 협조하지 않았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캐나다는 국가가 대규모 적자에 직면했고, 한국은 자영업자들이 1년 사이 110조 원에 이르는 빚을 냈다.

#3. 여기서 코로나19 대응정책을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일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치의 영역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적 이슈가 된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정치가 주요 배경이다. 외교 군사적 결정도 정치판에서 크게 좌우된다.

 그렇지만 정치 영역이 개인의 삶에 크게 파고드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기는 힘들다. 어찌됐던 사생활은 정치와 무관하게 지속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골치 아픈 정치를 멀리하고 싶어한다.

 지난 온타리오주 총선에서 한인 2명이 당선된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노스욕에서 한인들의 투표율이 평균을 밑돈 것은 아쉽다.

 정치에 관심을 끊는 것은 각자의 자유다. 투표는 권리일 뿐 의무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러나 기권한 유권자들의 삶에도 여전히 정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엉터리 정치인들의 정책적 결정도 고스란히 주민들의 삶으로 파고든다. 정치는 ‘개무시’ 당하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유권자의 삶에 간섭한다. 그것이 정치의 역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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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4
"새빨간 거짓말"의 경우

 

 2010년 2월말,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서 10대 초반의 여학생이 실종됐다. 경찰은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채 주택가 물탱크에 유기된 피해자의 시신을 찾아냈다. 경찰은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범인은 사건 발생 일주일여 만에 검거됐다. '김길태 사건'이다.

 전국적인 관심이 모아진 이 사건에 서울지역 언론사들은 이례적으로 여러 명씩의 기자들을 부산으로 파견해 취재에 열을 올렸다. 신문 1면부터 4~5개 면이 김길태 사건 관련 기사로 날마다 도배가 됐다. 김길태를 입양했던 가족과, 학창시절 친구들은 모조리 언론의 인터뷰 대상이 됐고, 그가 다니던 학교의 생활기록부까지 낱낱이 공개됐다.

 KBS는 김길태 공개수배 생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경찰은 김길태를 검거하기 위해 부산지역 경찰서 형사들을 대거 동원했다. 용의자가 은신한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에워싸고 골목골목 빈집을 수색하는 등 토끼몰이식 검거작전을 펼쳤다.

 김길태는 사건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주택가에 숨어 있다 덜미를 잡혔다. 김길태에 대한 온갖 뉴스가 쏟아지면서 경찰에 체포된 김길태가 형사들에게 짜장면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까지 뉴스가 됐다.

 20여 년 기자생활을 하면서 후회되는 순간 가운데 한 대목이다. 당시 부산경찰청을 출입하면서 데스크와 의견충돌이 여러 차례 있었다. 사건 자체가 충격적인 것은 분명했지만 과연 2주 가까이 신문방송이 전력을 다해 달려들 만큼 보도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사상구는 물론, 부산 전체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측면도 지역언론으로서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김길태 사건 보도로 묻혀버린 이슈는 따로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의 독도 관련 발언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가 '교과서에 다케시마라고 쓸 수밖에 없다'고 하자 이명박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이 영토주권을 포기했다는 비판여론이 들끓었지만 언론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당시 언론관련 전문지 '미디어오늘'은 "이명박의 독도 발언이 '김길태 짜장면'에도 밀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권력과 언론이 MB의 독도 발언 파문을 감추기 위해 김길태를 이용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감춘다고 다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 한두 번은 가능하지만 결국 들킨다.

 때는 2007년. 한국 정치사상 가장 치열했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맞붙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유행어가 나돌았다. 임기 말 힘이 빠진 '대통령 돌려까기'가 국민스포츠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그러니 한나라당 경선만 통과하면 대통령 자리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야당 후보경선 열기가 불을 뿜으면서 난타전이 이어졌다. 박근혜 후보 측은 BBK 주가조작 사건 등을 거론하며 "다스는 누구 것이냐"고 MB를 공격했고, 이명박은 박근혜가 집권하면 최태민 일가, 즉 최순실의 국정개입 가능성이 높다고 맞받았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박근혜에게 반박하던 이명박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로 밝혀져 감옥에 있다. 다스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삼성 등에서 뇌물을 받았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비선실세로 호가호위하며 박근혜 정부의 국정을 주무르던 최순실도 옥살이를 하고 있다.

 당시 검찰은 이명박의 다스 실소유주 논란 등을 수사했지만 MB가 대통령 후보가 된 뒤 슬그머니 덮어버렸다. 수사의 칼날이 확실한 미래권력 앞에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권력과 검찰의 짬짜미, 받아쓰기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개념 언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때문에 경선에서 제기됐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기까지는 10여 년이 더 걸렸고, 그동안 후안무치한 세력은 달콤한 권력을 향유하며 잇속을 착실히 챙겼다.

 막바지에 접어든 2022년 대선 레이스도 어김없이 난타전이다. ‘다스’나 ‘최순실’이라는 단어가 ‘대장동’ ‘주가조작’ ‘무속’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과연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늘 되풀이된다’는 금언이 이번에도 찰떡같이 들어맞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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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7
무속 논란 관람기

 

세상 모든 인간은 기도를 한다. 나무에게, 돌에다, 때로는 역사 속에 등장했던 유명한 인물에게. 기도는 닥쳐온 재난 앞에서 전능자의 도움을 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행위다. 인간은 존재의 허약함과 삶의 불확실성을 기도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

지난해 9월 유명 목사의 초상집에 찾아간 대통령 선거 야당후보의 어깨에 목사들이 단체로 손을 얹어 안수기도를 했다.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지도록, 대통령 후보로서 한국 교회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도록 주께서 함께 해달라"고.

최근에는 야당후보의 밀짚인형을 찌르는 주술행위를 여당후보 캠프 관계자가 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인간의 욕망이 기도라는 행위로 드러나는 현장이다.

'기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E.M. 바운즈가 쓴 책 '응답되는 기도'에는 고대 이스라엘의 왕, 히스기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불치병에 걸렸던 히스기야는 기도를 통해 수명이 15년이나 연장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바운즈는 "히스기야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그의 죽음 문제도 그의 믿음과 기도에 의해 즉시 바뀌었다. 끈질긴 기도는 아주 강력하고 어찌할 수 없기에 그것은 약속들을 받으며. 하나님은 약속에 근거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인간의 손에 맡기신다"고 적었다.

그는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잡고 그분으로 하여금 기도하지 않으면 행하지 않으실 일을 행하도록 한다"면서 "하나님을 향한 기도, 순수한 기도는 절박한 상황들을 면제시킨다. 우리의 믿음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기도는 인간에게 다가오는 모든 해악들을 없앨 수 있다"고 덧붙인다.

소위 기독교에서 말하는 만병통치약, '강청 기도의 능력'처럼 인간들이 작심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하늘보좌가 심하게 휘청거리고, 신은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응답하실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기도의 능력이라는 주장이다.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런 설명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동의하기 어렵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교회마다 열리는 새벽기도에 하나님께서 모두 응답하신다면 명문대학은 전부 기독교인 학생들로 넘쳐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누구나 히스기야처럼 간절히 기도해서 수명이 연장된다면 기독교인들의 평균수명은 비기독교인보다 훨씬 더 길어야 한다.

오히려 기도는 자신의 기특한 행위를 통해 원하는 것을 모조리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심보, 인간의 욕심과 죄성을 폭로하는 장치다. 밥을 굶으면서, 목숨까지 담보로 걸어서라도 신을 이겨내겠다는 수작의 본질을 드러낸다.

병에 걸린 히스기야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었을까. 그럴 수는 없다. 히스기야의 아들은 므낫세다. 그는 열두 살에 왕이 된다.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서 고침 받은 뒤 태어났다는 계산이 나온다. 히스기야에서 대가 끊기면 다윗의 자손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산된다.(마태 1장10절)

히스기야는 반드시 살아야 하고, 아들을 낳아야 했다. 히스기야가 살아난 것은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히스기야 기도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병을 주시고, 기도를 토해내도록 만드신 데 있다. 히스기야는 신실하게 언약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원된 조연일 뿐이다. 오히려 인간들이 기도에 대해서 갖고 있는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아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쓰셨다.

히스기야가 대단히 가치 있는 신앙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은 말년에 스스로 증명했다. 그는 병이 낫자마자 바벨론 사신들에게 유다 왕국의 금은보화를 자랑했다가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받는다. 그의 몸에서 태어난 므낫세는 유다 왕 가운데 손꼽히는 폭군이 된다.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던 그는 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히스기야는 그 어떤 인간도, 심지어 생명 연장의 기적을 체험했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멸망 받을 죄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명했던 인물이다.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통해 모든 인간은 '죄인 중 괴수'라는 것을 드러내셨다.

바운즈의 설명과는 달리, 인간들의 희망과 다르게, 제 아무리 성도가 지극 정성으로 드리는 기도라고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창세 전에 이미 완료된 하나님의 뜻이 바뀔 수는 없다.

그분은 성도의 기도에 맞춰 언약과 뜻을 변경하지 않으신다. 기도의 주권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기도의 응답도 인간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매달리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신실하심에 달려 있다.

그러니 기도는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자신의 밑바닥을 박박 긁어 토해내기 위해서다. 아무리 성취하고, 쌓고, 채워도 도무지 만족되지 않는, 무저갱같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는 것이다. 무속 논란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로마서 8장)

 

* 필자의 책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부크크 출판사)’에서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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