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70 전체: 63,651 )
왕과 개 돼지
allellu

 

 중국에서 '요순시대'는, 말하자면, '아름다운 시절'을 가리킨다. 역사상 실제 존재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각종 문헌에는 두 임금의 통치기 동안 사회가 평안했고, 각종 불합리가 바로잡혔다고 소개한다. 공자도 이들을 어진 군주로 치켜세웠다.

성경 전체의 내러티브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 중 한 챕터를 꼽으라면 구약 사사기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로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너 탈출에 성공하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뒤 엉망진창이 된 이야기를 그린다.

사사기 저자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고 진술한다. 올바른 지도자, 믿고 따를 수 있는 왕의 존재는 그 사회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게 역사의 가르침이다. 

오는 3월이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다. 역대 최악의 후보들이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악평도 나온다. 그럼에도 누가 차기 대권을 거머쥘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특히 손바닥에 왕(王)자를 적어 야권후보 TV토론에 나섰던 후보의 좌충우돌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만약 '왕'이 등장한다면 대한제국 2대 황제인 순종 이후 110년 여 만이다. 손바닥에 ‘왕’자를 문신으로 새긴들 제1야당 후보가 당선된다 해도 '대한민국 국왕'으로 불릴 일은 없다. 한국 대선에서 '王'이라는 단어는 무속 논란으로 불길이 번졌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따로 있다. 

한국 군사정권 시절, 권력을 거머쥔 기관은 많았다.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와 국군 기무사, 검찰, 경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민간인 사찰이나 도를 넘은 국내 정치개입, 대학생 고문치사 등이 발각되면서 하나씩 힘이 약화됐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사실상 마지막으로 남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은 검찰이라고 할 수 있다. 막강한 수사 및 기소독점권을 무기로 죽은 권력, 살아 있는 권력 가리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도륙낼 수 있는 존재다.

예전에는 검찰 안에도 특수통 강력통 공안통 등 전공별로 세력이 나뉘어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이루고, 내부 경쟁이 있었으나 지금은 오로지 '검찰=특수부'로 인식된다. 그래서 검찰 특수부가 대한민국 권력의 요직 중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 특수부 출신의 후보는 기어이 야권 대권후보로 선출됐다. '강골검사'로 불리며, 정의의 불사신처럼 권력을 상대로 칼끝을 겨눴던 그가 이제는 스스로 권력의 정점에 서기 위해 직접 출사표를 낸 것이다. 그를 둘러싼 호위무사 정치인들 역시 검사 출신으로 빼곡하다.

한국의 대선 과정을 통해 읽어내야 할 것은 '인간'이다. 선거 과정 자체가 '세상의 왕'이 되겠다는 인간 본성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충만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당의 이재명 후보를 비롯해 안철수, 심상정 모두 마찬가지다.

심지어 후보를 통해 자신의 권력의지, 왕권에 대한 도전장을 내민 것은 유권자도 똑같다. 여야후보를 둘러싼 수많은 정치인과, 그들에게 줄을 대기 바쁜 공직자, 보수 진보성향의 유튜버 등도 정권을 잡는데 사활을 걸고 선수로 뛴다. 자기가 속해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정치진영의 승리를 위해 시간을 바치고 마음을 졸이는 것이다.

성경의 첫머리인 창세기에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알다시피 뱀(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저지른 첫 번째 죄악인 동시에 성경은 그것이 죄의 본질이라고 지적한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를 넘봤다는 것이다.

세상의 왕으로 살고자 하는 것, 이것은 역사 이래 등장한 모든 인간의 이야기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을, 심지어 창조의 신 마저 자신의 무릎 아래 두려는 시도, 스스로 신이 되려는 마음, 그래서 성경은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다'고 진술하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해버린다.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홉스는 인간역사의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꿰뚫어봤다. 사실 이것은 '만왕에 대한 만왕의 투쟁'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는다.

대선과정에서 검증의 이름으로 난무하는 쟁투는 '나의 왕됨' 앞에 모두 무릎을 굽히라는 명령이다. 진실과 팩트는 의미가 사라지고, 궤변과 억지만 춤을 춘다. 자신의 흠결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상대방의 약점은 아무리 사소해도 대역죄로 고발된다.

후보와 유권자 모두 '왕'의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지만, 놓쳐서는 안 되는 출전 선수가 바로 언론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은 견제와 균형,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맡고 있다고, 사람들은 '보통 믿는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대 랜스 베넷 교수는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News: The Politics of Illusion)'에서 "언론이 현실 정치를 견제하고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권력집단이 '짐승에게 먹잇감 던져주듯' 기자들에게 기삿거리를 주면서 언론을 관리 통제하고, 언론은 뉴스를 제공하는 출입처의 취재원들과 밀착된다고 간파했다. 

오늘날 현실은 베넷 교수의 지적에서 한발 더 나가 있다. 한국의 대선 과정을 보면 언론이 감시자의 역할을 한참 벗어나 '선수'로 직접 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권력이 언론을 관리, 통제하던 시대는 지났고, 언론이 권력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다시 말해 정치권력 위에 언론권력이 존재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독자들은 언론사 이름만 대면 그들이 어느 정치집단을 편들고 있는지 금방 안다. 그 언론사의 '특종' '단독' 이라는 타이틀을 단 기사가 어디를 깎아 내리고, 누구를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과정을 통해 언론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 신문 방송이 밀고 있는 후보가 패하더라도 언론권력은 절대 패퇴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들의 손에는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아무 때나 마구 휘두를 수 있는 칼이, 언론자유라는 이름으로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자유는 세상 사람들의 머릿속까지 파고들어 생각을 바꾸고 여론을 지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입으로는 정의와 공정, 국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분골쇄신 일하겠다고 읊어대지만 정작 그들의 관심은 권력 향유, ‘세상의 왕’에 등극하려는 욕심뿐이다. 

이런 과정을 눈치채지 못하면 왕들의 게임에 농락당한다. 그들은 사과를 개에게 주면서 뒤돌아 서서는 유쾌하게 웃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 정치판에서 눈을 돌릴 수는 없지만 보다 천착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내 안에 가득 찬 왕이 되고 싶은 의지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런 권력을 향한 메커니즘에 모든 인간이 매일매일 참여하고, 출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왕의 자리를 탐하는 것은 비단 정치인, 언론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날마다 숨길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욕망을 보면서, 그것을 인간의 본질이요, 근원적인 죄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살짝 끼어드는 운전자를 향해 기어이 욕설을 쏟아내야 진노가 풀리는 게 ‘세상 왕’의 숨겨진 본심이다. 이런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성경의 바울 사도는 “내가 죄인 가운데 괴수”라면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개를 숙였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