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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겹고 못생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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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이남이 씨는 열여섯 살이던 1943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그는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싱가포르에서 수많은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다. 일본군은 그를 ‘이남이’라는 이름 대신 ‘하나코’라고 불렀다. 이 씨는 얼마 뒤 캄보디아 위안소로 다시 끌려가 일본군 장교의 현지처가 되었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이 씨는 캄보디아에 버려졌고, 살아남기 위해 캄보디아 남성과 결혼을 했다. 3남매를 낳았지만 몇 년 못 가 항상 술에 취해 살던 불량남편과 이혼했다. 이 씨의 아들은 캄보디아 급진좌파 무장단체 크메르루즈에 납치돼 소식이 끊기는 등 그녀의 불행은 내내 계속됐다.

 

 이 씨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는 1997년 캄보디아 언론과 AFP통신 등이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에서 군 위안부로 끌려온 한국인 ‘훈 할머니’가 산골 오지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당시 한국에서도 위안부 문제가 재조명되는 등 큰 이슈가 되었으며, 그녀는 고향을 떠난 지 55년 만인 1998년, 주변의 도움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수많은 취재진이 그의 귀국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이 씨는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그러나 ‘훈 할머니’는 캄보디아에 두고 온 가족을 잊지 못해 얼마 못 가 한국을 떠났고, 2001년 한 많은 인생을 이국 땅 캄보디아에서 마감했다.

 

 잔인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휘말려 고단한 한 평생을 보내야 했던 ‘훈 할머니’의 사연이 기억난 것은 최근 벌어진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논란 때문이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은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의 주도로 설치됐다. 일본은 관방장관 등 정부 차원에서 즉각 나서 철거를 압박했다. 소녀상 설치가 반일운동, 즉 국가간 역사분쟁이라는 이유로, 독일에 중립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이다.

 

 일본정부의 항의를 받은 베를린 미테구청 측은 지난 14일까지 철거하라고 시민단체에 통보했다. 하지만 독일 학계와 언론계, 예술단체, 시민사회가 들고 일어났다. 일본군 위안부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대립 차원을 넘어 전시에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기억하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는 인식을 보인 것이다. 독일 주요대학 교수들이 철거반대 서명운동에 나섰고, 예술단체는 “공공장소에 설치된 예술작품을 다른 나라의 반대 때문에 철거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발끈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일간 베를리너차이퉁은 지난 13일자 기사에서 “국가 간 역사 분쟁에서 일방의 편을 들지 않겠다”는 미테구청의 논리를 비판하며 “그렇다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베를린 장벽 건설에 대해서도 우리가 상기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또 “일본 정부는 오늘날까지 전쟁 책임과 성폭력 문제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고 있고, 자국을 가해자가 아닌 전적으로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빗발치는 여론에 밀린 미테구청은 결국 소녀상 철거 입장을 일단 보류했다. 베를린 소녀상의 운명은 아직 안개 속이지만 독일 시민사회가 보여준 성숙한 모습은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한국 안에는 위안부를 매춘부로 보거나 강제징용을 ‘입신양명을 위한 기회’라고 묘사하는 세력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심지어 소녀상에 대해 “쳐다볼 때마다 역겹다”는 말하는 것을 직접 들은 기억도 있다. 그는 “왜 그렇게 못 생기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불평하기도 했다. 20여 년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눴지만 그때처럼 당혹스런 적이 별로 없었다.

 

 역사에 대한 관점은 제각각일 수 있다. 하지만 ‘훈 할머니’처럼 수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증언했는데도, 일본 제국주의의 편에 서서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세력을 이해하기는 좀처럼 어렵다. 우리 주변 누군가의 딸이요, 누이였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와 안타까움마저 상실한, 그들의 천박하고도 마비된 양심이 한심할 뿐이다.

 

 토론토에도 한인회관 입구에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언젠가 영/핀치 사거리나 다운타운 던다스 광장으로 소녀상이 옮겨져 불행했던 역사의 피해자들을 기억하게 하고, 그것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세계 시민사회에 호소하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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