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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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칼럼(105)-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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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물론 부모 형제가 잘못되거나 아프면 마음이 괴롭고 또 도와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고 애틋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지은 죄의 대가를 내가 받으며 고통을 받아야 마땅한가.  

 

 탈무드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해보면, 옛날 모세가 우물가에서 쉬고 있는데 한 나그네가 목이 말라 급히 우물에서 물을 마시다가 그만 돈지갑을 떨어뜨리고 떠났고, 다음에 한 나그네가 똑같이 물을 떠서 마시다 우연히 발견한 돈지갑을 주워 달아나 버리고, 마침 세 번째 나그네가 와서 물을 마시던 중에 돈지갑을 잃어버린 나그네가 돌아와 아무 죄도 없는 세 번째 나그네를 목격하고 죽여버렸다.

 

 이런 광경이 정당치 못하다고 생각했던 모세가 하나님께 이런 일들이 왜 생기냐며 따졌는데 돌아온 대답은, 지갑을 잃고 그만 살인죄를 지은 첫째 나그네가 가지고 있던 돈지갑은 그의 아버지가 전에 남에게서 훔쳤던 지갑이었고, 두 번째 우물가에서 지갑을 주웠던 나그네는 그 지갑이 전에 그가 도둑맞았던 바로 그 지갑이었고, 세 번째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나그네는 지갑을 잃어버렸던 형을 죽인 사람이란 말씀인데 그렇다면 첫 번째 나그네는 아버지가 훔친 지갑 때문에 살인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닌가?

 

 아무리 탈무드에 쓰인 말씀이라 하여도 필자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버지가 또는 가족이 지은 죄를 왜 아들이 갚고 당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게 보니 왜 엉뚱하게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를 우리가 짊어지고 살아야 하며, 또 그것을 원죄라 하여 엉뚱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고, 또 우리의 조상 가인이 아우를 죽인 죄로 인하여 우리 인류가 악성(惡性)을 소유케 되어 끊임없이 죄를 짓고 살고 있는지 말이다.

 

물론 우리의 몇 인치 안 되는 두뇌로 신의 뜻을 알거나 이해할 수는 없기에 의문이 나도 그냥 믿어야 한다는 것은 수차 들어서 알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리 인간은 미완성 작품이며, 또 약하고 미욱한 사회적 동물이기에 신을 믿어야 하고 기대야만 한다는 것은 변할 수가 없지만, 가끔씩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지난주엔 필자의 아들이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주의원에 재선되고 또 현직 교통부 부장관 자리도 지키게 되었는데, 장관들 선서식 참석차 오랜만에 Queen's Park을 방문하게 되었다. 수백 명의 참석자들 가운데 역시 우리 같은 동양인들은 몇 명 안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지난 코비드가 심할 때 세계 이곳저곳에선 유색인종 또는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사건들이 많이 있었던 것을 알고 또 느낄 수 있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엔 언제나 불안을 조성하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유색인종 또는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로 일어나는 범죄가 더욱 심해지곤 한다.

 

 마치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은 타인종들에 의해 일어난다고 믿고 싶은 마음들이 생기고, 따라서 우리 유색인종들이 더 미워지는 마음 때문이다.

 

 그때마다 우리 소수민족 또는 유색인종을 위해 나서주고 또 그나마 말발이 먹혀 들어가는 사람이 바로 정치인인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고 경험하고 있다.

 

 물론 그 외에도 우리가 선거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들은 많이 있지만 세상이 불안해지고 또 살기가 빡빡해질 때는 누구보다 더 불안하고 괴로운 사람들은 바로 우리 소수민족일 수밖엔 없기에 더욱 더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나와야 한단 말이다.

 

 물론 나의 생애가 다해서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생각할 수 있지만 소수민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자손들을 생각해본다면 절대로 선거에 무관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자손들이 이 나라에서 태어났건 아니건 캐나다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면 얼굴색깔이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소수민족이란 명찰은 그리 쉽게 떼어낼 수가 없다. 우리를 대변하고 또 변호해 줄 수 있는 정치인의 배출은 자손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필자 역시 아들의 선거를 통해서 더욱 절실히 느끼기도 했지만 비록 필자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한국 정치와는 너무도 다른, 돈과 부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캐나다의 정치인들은 본인의 희생과 각오가 없이는 참으로 외로운 싸움이란 것을 알았다.

 

 마치 종교적 믿음이 별로인 부모의 자식이 갑자기 목회의 길로 나설 때와 같은 마음이랄까? 필자 역시 다른 일을 해도 되는데 하는 생각이 자주 들지만 본인의 인생이고 본인이 꿈과 계획을 세워 계속 노력하는 모습에 그만 입을 닫고 만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누구든, 꿈과 계획을 만들며 계속 노력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고귀하고 중요한 것이, 우리의 생이 외로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1890년 9월 미국 인디아나에서 태어난 Harland David Sanders는 지금도 유명한 KFC(Kentucky Fried Chicken) 창업주인데, 그의 90년 동안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 역시 성공하기까지는 많고 많은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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