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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2
JC칼럼(116)-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13)

 

(지난 호에 이어)

 어찌 보면 "당신의 삶은 행복하세요?" 물어보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그럼요"라는 대답은 막연하고도 또 위선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원래 행복이란 일시적으로 그렇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결코 그 행복이 누구에게나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행복이란 내가 원하는 것 모두를 충족했을 때 오는 것이고, 우리 인간에겐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어도 완벽한 충족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의 의견을 반대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고,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렸다는 분들도 있겠지만 행복의 기준을 두는 것은 일종의 포기일 뿐 절대 충족에서 오는 행복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수많은 철학자나 종교인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행복한 삶의 방법을 볼 때 결국 하나같이 포기를 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의 의견은 그 방법이 잘못되거나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사는 옳은 방법이긴 하지만 사실은 포기를 하라는 말이며, 포기하는 삶을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모두 나이가 들어가며 포기를 할 수밖엔 없고 그 포기는 우리들이 원하던 모든 것들을 하나의 꿈으로 만들어버려 함께 사라져 갈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인생을 사는 동안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또 육체가 건강하다 해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우리는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결국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무엇을 소유했다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의식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 가정할 때 우리의 삶을 안락하게 만들어줄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볼 때, 그것은 바로 내가 무료하고 외로울 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아닐까 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아내와 가족보다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젊었을 때 또는 학창시절엔 이리저리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한가을 낙엽이 떨어져 바람에 날리는 것만 봐도 서로 바라보며 킥킥거리던 그때 그 시절이야 매일이 즐겁고 우린 절대로 늙을 것 같지 않던 기분으로 살았지만, 그랬던 우리 모두가 배우자를 만나 자식을 낳고 서로 다투며 늙어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많이도 변해버려 그 옛날 없으면 안될 것 같았던 친구들은 이젠 그냥 아는 사람들로 변해버린 것이다.

 

 당시엔 계산을 할 줄도, 또 내가 책임져야 할 일마저 잘 몰랐던 우리들은 친구가 잘못되면 나를 희생해서라도 구하려던 의리와 우정은 그동안 들어가는 나이가, 또 변해버린 환경이, 우리 모두를 친구에서 그저 그냥 아는 사람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랬던 우리가 이제는 서로 만나면 우선 계산을 하게 되고, 또한 아내를 포함한 식구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 옛날엔 느끼지 못했던 성격과 취향이 다른 옛 친구들이 지금은 낯설게 느껴지니 말이다.

 

 아직도 동화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인지는 몰라도 필자의 의견에는 아직 한 명이라도 나와 진정으로 대화할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해주는 그런 친구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날 외롭지 않게 만들고 또 부족한 속에서도 나에게 행복감을 준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아내와 아들도 친구가 될 수 있으며, 그런 친구들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행복해진다는 말이다.

 

 연애 시절이나 신혼생활을 지나 이제 아이들을 모두 키우고 또 출가시키고 나면 우리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허탈감과 외로움인데, 만약 내가 사랑했던 아내라도 지금 나와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면, 또 자식이 출가를 했어도 나와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된다면, 옛 학창시절에 알던 친구가 아직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로 있다면 그 사람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 주위를 돌아볼 때 많은 사람들이 친구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외롭고 힘들 때 서로 마주 앉자 마른 안주에 소주 한잔 할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내가 가진 것이 많아도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인류가 몇 천년, 아니 몇 만년인지 그 누구도 정확히 추측할 수 없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만큼의 인류역사를 더듬어 볼 때 그 어느 시대도 생존경쟁을 위해, 아니면 남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전쟁과 싸움으로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의 연속일 뿐 한순간도 진정한 평화는 없는 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다.

 

 이해하기 어렵고 많이도 슬픈 우리 인류의 역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형이고 또 미래 역시 똑같음을 반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극과 고통과 아픔의 연속인 삶을 끝내주는 것은 바로 죽음인데, 그 죽음의 권세를 소유했다는 사탄은 오히려 우리 인류에게 선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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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5
JC칼럼(115)-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12)

 

(지난 호에 이어)

 1886년에 발간된 이 책에는 이외에도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소설의 내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이곳에선 도대체 죄가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이며, 그것에 대한 벌은 얼마나 또 어떻게 받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에 대한 형벌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 일반 상식으로는 모르고 짓는 죄보다 알고 짓는 죄가 더 중하다 생각을 하기에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서 죄를 범하면 일반인들보다 더 심한 벌을 받게 되고, 또 그것이 우리들의 일반적 견해이며 타당한 것이라 모두들 동의한다.

 

 하지만 성경을 포함한 어느 책에도 정확하게 얼마만큼 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없고, 단지 우리가 만들어 놓은 법률책에서 받아야 하는 벌의 한도는 찾아볼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이가 어릴수록 모르고 짓는 죄가 많고, 나이가 들수록 알고 짓는 죄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가 지은 범죄는 알고 지은 범죄가 맞는데 어찌 보면 잘못된 사회적인 사상에서 비롯된 오판으로 인한 살인이긴 하지만 분명한 범죄였고, 그것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분명히 법은 존재하지만 지금이나 예나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 세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법은 일반 서민들에게 가혹할 뿐, 어느 나라건 특수층 사람들에겐 오히려 이 세상과 서민들을 이용하고 속박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인 것이다.

 

 민주주의가 대표적인 미국만 보더라도 지난 1994년 풋볼선수로 꽤나 유명했던 O.J Simpson은 이혼녀인 Nicole Simpson과 당시 식당 Waiter로 일했던 Ron Goldman을 칼로 찔러 죽이고도 오랜 법정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돈과 명예의 파워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또한 작년 1월에 있었던 미국 전 대통령 Donald Trump의 Capitol Riot은 아직도, 아니면 영원히 풀리지도 해결도 안될 아주 큰 사건인데, 그것 역시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의 파워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도 힘이 없는 일반 시민이었다면 벌써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이런 일들이 많은데 하물며 공산주의 국가들은 오죽할까? 개인의 소유는 물론 자유나 집회가 허락되지 않는 나라들이기에 돈보다 권력이 먼저고 또 최고다. 권력만 있다면 살인도 살인이 아니고, 도둑도 사기도 권력만 있으면 남에게 무슨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권력이 없다면 어떤 죄를 짓던 그것은 죄가 되고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 국가에선 돈이 최고, 공산국가에선 권력이 최고란 결론이 나온다.

 

 예전 소련의 스탈린 그리고 지금 러시아의 푸틴, 옛 중국의 모택동, 지금의 시진핑,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옛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지금의 김정은 등 수많은 독재자들은 예나 지금도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며 본인의 생명을 지키고 연장시키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희생물로 삼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수많은 독재자들 역시 우리들과 똑같이 생존경쟁을 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인간의 본성인 욕심이 자연히 과욕이 되고, 그것이 오만과 오판으로 변하고, 남의 희생 정도는 당연시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일반인들이 저지르는 죄와 벌은 무엇이고 이런 독재자들이 저지르는 죄와 벌은 무엇이 다르며, 지은 죄에 대한 벌은 존재하는 것일까? 지난주에는 영국 여왕 Queen Elizabeth 2세가 향년 96세로 70년이란 긴 시간을 영국, 아니 어쩌면 세계의 여왕으로 존재하다 세상을 떠났다.

 

 영국은 물론이고 나라마다 대부분의 미디어가 며칠을 계속해 여왕의 생애와 업적들을 다루며 난리도 아니다. 물론 직접적인 정치적 권력은 소유치 않았지만 70년이란 긴 세월을 여왕으로 지내면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의 추모를 받으며 별 추문 없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우리 인류역사 속에 누가 있었을까?

 

 과연 96년간의 특별한 생을 살고 떠나는 그의 삶은 정말 행복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우리 인류가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 의식주(衣食住)인데 우리 인간 모두는 그 의식주가 해결된 후에는 너도 나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하여 다루는 수많은 책들과 유명한 철학자들의 행복에 대한 정의 또는 견해 등 우리는 많이 읽고, 듣고, 또 생각해왔지만 아직도 이 세상엔 자기의 삶이 행복하단 사람들보다 그 반대가 훨씬 많다.

 

 누가 당신의 삶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라고 물어봤을 때 우리 대부분은 별 생각 없이 "그럼요"라며 쉽게 대답을 하지만 만남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한 것은 왜일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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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JC칼럼(114)-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11)

 

(지난 호에 이어)

 못내 떠나기를 싫어하는 늦여름과 밀며 파고드는 초가을이 마치 서로 싸우기나 하듯이 아침엔 쌀쌀하고 한낮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틈 속에서, 결국 세월은 고장이 없다는 유행가처럼 한 잎 두 잎, 이곳저곳 파랗던 나뭇잎들은 이제 그만 다른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지지난 주에 있었던 한인동포들의 최대 행사 중 하나인 토론토한인대축제가 지난 28일 밤 폐막식으로 끝났다. 지난 20년 이상 해오던 행사이고, 또 이번엔 토론토총영사관의 협조와 채현주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의 부단한 노력으로 정말 어느 타민족들도 할 수 없었던 대단한 행사였다.

 

 이번엔 총영사관이 초청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국가 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명인 김대균씨와 그의 제자들의 시범, 한국국립국악원 권혜경 대표와 그가 인솔한 13명의 전통음악, 그리고 무용은 최고의 볼거리를 제공했다. 또한 한인을 포함한 타민족 젊은이들의 K-Pop 춤과 노래는 언제나처럼 인기 ‘짱’으로 정말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예전이나 현재나 정작 한인동포들의 참석은 저조했고, 판매하는 음식 역시 중국계가 주를 이루어 음식으로 봐서는 한인행사라기보다 타민족의 행사만 같아서 안타까웠다. 물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또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시점에서 고생하는 한인식당들의 처지도 잘 알지만 우리 한가위축제에 한식이 적었다는 것이 많이도 안타까웠다.

 

 원래 단합이 쉽지 않은 우리들이고 필자도 경험을 해봐서 잘 알지만, 이 행사 하나를 위해서 쏟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헛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된다.

 

 또 하나는 한인동포들의 관심인데, 정작 현지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참여가 너무 저조한 것도 문제다. 모두 골프 치시느라 바쁘신지 동포들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많은 한인단체들이 존재하지만, 본인들이 직접 관계 있고 또 책임자일 때는 모금은 물론 이곳저곳 기부금 등 많은 협조를 구하려 쫓아다니지만 정작 남이 주관하는 행사엔 그것이 누구를 위한 행사든 마치 관계가 없는 것처럼 무관심하다. 너무 이기적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호소를 해봐야 머릿속에 이미 고정관념으로 꽉 차버린 생각이 바뀔 리 만무하고 또 필자의 견해가 틀리다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번 한인 추석행사를 돌아보며 그냥 답답해서 해보는 소리다.

 

 이 나라의 계절은 우리 모국보다는 언제나 가을과 겨울이 한 달 정도 일찍 찾아와 겨우 9월 중순이지만 아침엔 벌써 쌀쌀한 공기가 우리들의 옷차림을 바꾸어 놓기 시작한다.

 

 골프장엔 시즌의 끝자락에서 너도 나도 골프장마다 만원을 이루고, 일부 골퍼들은 따뜻한 지역에 골프 여행을 예약하느라 벌써부터 분주하고, 그러는 와중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 한쪽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매일 폭탄이 터져 죽고 죽이고 있다. 이상한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옳고 또 잘 사는 것이며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일까?

 

 182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작가 도스토옢스키(Fyodor Dostoevsky)가 쓴 ‘죄와 벌’이란 소설의 내용이 생각난다. 책을 좋아해서 읽은 것은 아니고 아주 오래 전 학교에서 읽으라고 해서 읽긴 했지만, 당시엔 뭔 말인지 잘 이해도 안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써내라는 독후감도 친구의 것을 베껴서 제출한 것으로 기억나지만 그래도 책 내용이 생각나는 걸 보면 읽긴 읽었나 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받는 벌에 대한 고통과 더 나아가 과연 그 범죄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을까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는데, 당시엔 워낙 책이 두껍고 내용이 길어서 지루하기도 했다.

 

 1866년에 발간된 이 책의 주인공인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는 가난한 대학 휴학생으로 언제나 남을 돕는데 주저하지 않는 성품을 소유했다. 그러나 가난을 면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죄를 범해도 괜찮다 생각하고 돈 많은 전당포 주인과 아무 죄도 없는 그 여동생까지 죽이고 만다.

 

 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죄의식을 못 이겨 괴로워하다 나중에 만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사는 소냐란 여자의 끈질긴 권유에 결국 자수를 하게 된다. 당시 사회주의 사상을 소유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했고 또 자수를 했다는 이유로 비교적 짧은 8년의 형을 선고받고 감옥생활을 한다.

 

 소설의 내용을 보았을 때 당시 19세기 중반 시절에 러시아에 살던 사람들의 열악한 환경과 거기에 따르는 빈곤과 고독, 그리고 신앙까지 함께 다룬 소설로서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기억에 남는 소설 중 하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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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10)

 

(지난 호에 이어)

 아내가 퍼부은 핀잔 후에 생각을 해보면 나 역시 젊은 시절의 삶이 어찌 돌아가신 부모님의 마음에 들었을까 돌아볼 때 오히려 나의 자식들이 나보다는 훨씬 낫고 효도를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는 남부럽지 않게 잘살아 후손에 가난의 설움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고생을 했다고 친다면, 반면에 얼굴 색깔도 다른 나라에서 영문도 모르고 태어난 2, 3세 젊은이들의 세계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현대에 안고 살아야 하는 그들만의 문제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 나이엔 자녀들에게 몰려줄 재산이 있다면 유산 상속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상속할 재산이 많을수록 복잡하고 또 자녀가 여럿일 경우엔 더 복잡해진다.

 

 우선 계산해야 할 것이 세금 문제인데 현금을 물려주는 것은 아주 간단하지만 넘겨줄 유산이 부동산이나 금 또는 주식이라면 이 나라에 지불해야 하는 세금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유산 상속엔 세 가지의 세금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Capital Gain Tax, Estate Tax, Probate Tax다. 우선 Capital Gain Tax란 유산 상속시 소유권이 자녀들에게 넘어갈 때, 아니면 남에게 팔 때 남은 이익금에 대해서 내야만 하는 세금으로, 현행법으로는 이익의 절반은 세금공제가 되지만 남은 50%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야 하는데 그 세율은 우리가 내고 있는 Income Tax 세율을 적용하면 된다.

 

 쉽게 계산을 하면 1백만 불이 남았다면 약 25만 불을 낸다고 예상하면 맞을 것이다. 그 외에 내야 하는 세금은 Estate Tax 또는 Inheritance Tax라 말하는데 한국말로 상속세라 말할 수 있지만 다행히 캐나다에는 없다.

 

 또 하나는 Probate Tax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세금이라기보다는 재산을 상속할 때 내야 하는 하나의 Fee라 말할 수 있는데, 위의 두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둘 다 일종의 상속세로 표현되어 있다.

 

 쉽게 표현을 한다면 이 나라엔 상속세는 없고 단지 재산을 상속할 때 내야 하는 수수료(Fee)만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 수수료는 재산 상속가치의 1.5%가 된다.

 

 한국의 세금 제도는 필자가 모르지만 이곳 캐나다 온주에선 이 정도 아시고 Estate Lawyer를 찾아가서 유언장을 만드시면 될 것 같다. 결국 유산 상속시 이 세 가지 세금 중 제일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Capital Gain Tax일 것이다.

 

 물론 위에 기술한 세금문제는 부부가 자녀들이나 친척들에게 유산을 상속할 때의 말이고, 부부가 함께 지내다 한 분이 돌아가면서 남은 한 분에게 재산이 넘어가는 경우는 다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살아생전에 전문변호사(Estate Lawyer)와 상의를 하셔서 미리 유언장(Will)을 만들어 놓는 것이 유산을 넘겨받을 남은 사람들을 위한 현명한 일이다. 이런 일은 본인의 재산 규모가 보통 사람들보다 많을수록 더욱 중요한 일이다. 죽고 나서 모든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 하나는 개인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만 70세까지 소득의 일부를 RRSP(Registered Retirement Savings Plan)에 저축해서 내야 할 세금을 미루어 은퇴 이후 소득이 없거나 적을 때 이 돈을 찾아 세금혜택을 볼 수 있지만, 계속 개인소득이 노년에도 많이 생긴다면 역시 언젠가는 이것에 대한 소득세를 내야 하며 RRSP에 저축한 돈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70세가 넘어가면 더 이상 RRSP에 돈을 넣을 수가 없고 만약 그 돈을 찾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RRIF로 넘어가면서 RRSP에 저축되었던 돈이 법적으로 매년 본인의 나이에 따라서 정해진 만큼 자동적으로 본인의 소득으로 잡히는 것이다.

 

 이것은 나이 55세부터 본인이 원하면 시작할 수 있고 만 71세 이상이 되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RRSP Saving 금액에서 나이에 따라 정해진 Withdrawal Percentage가 저축금액이 소진될 때까지, 또 살아있을 때까지 본인의 구좌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행법으로는 만약 나이가 75세라 한다면 RRSP에 저축된 금액의 5.82%가 본인의 계좌로 넘어갈 것이고, 이것은 바로 본인의 소득이 되면서 그에 대한 소득세를 내야 하며, 이 비율은 나이가 들수록 높아진다.

 

 필자는 전문 회계사가 아니니 더 자세한 것은 독자들의 회계사에게 문의하시면 되고, 일반 상식으로는 이 정도만 알아도 무방할 것 같다. 어쨌든 이런 일들도 우리가 미래에 대한 하나의 계획이며, 역시 자손들을 위해서 미리 해놓아야 할 일들 중 하나지만, 어찌 보면 이것 역시 죽음에 대한 준비라 생각해보니 참으로 인생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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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5
JC칼럼(112)-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9)

 

(지난 호에 이어)

 젊었을 땐 새벽녘에 아내가 여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상쾌도 했지만 지금은 그때의 서늘한 바람이 쌀쌀한 바람으로 느껴지며 몸을 움츠리게 한다. 상쾌했던 바람이 변한 게 아니고 늙어버린 내가 변한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지만 우리 모두 매일 변해가고 있다.

 

 일부 철학자나 소설가들은 우린 모두 나이가 들수록 익어간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늙어가는 것을 듣기 좋게 표현한 것이지 실제는 늙어가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이 우선 육체가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 자식들이 모두 출가하고 보니 이제 자식들과의 관계 역시 미묘해지는 것이, 자식들이 떠난 것도 같고 아님 남의 자식이 들어온 것도 같은 새로운 가족체제가 된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엔 부모가 자식을 여럿 두었는데 당시엔 가족계획을 누구도 잘 알지 못하였고, 그저 아기가 생기는 대로 많이 낳다 보니 적게는 넷에서 많게는 열 명이 넘는 가족들도 있었다.

 

 어찌 보면 애들을 키운 것이 아니고 저희들끼리 자랐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이, 그땐 한국사회가 농경이 생활수단이었고 따라서 아들은 집안 농사에 큰 도움이 되었기에 아들을 낳으려 계속 노력하다 보니 식구가 많아지고, 또 먼저 태어난 아이들이 아우들을 많이 돌볼 수 있었기에 아마도 대가족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자기의 핏줄이나 가문을 이어가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반면에 요즘 아이를 하나만 낳아 그 아이에게 올인하는 부부가 대다수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한국의 출산율이 여성 1인당 1.2로 세계에서 제일 낮은 수준이라니 머지않아 한인의 핏줄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부부가 학교 교육은 물론 무리한 예능, 체육 등 많은 과외를 시키다 보니 이것저것 바빠진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은 엉망이 되고 그저 로봇처럼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해서 희생되는 것 같다.

 

 지난 1983년에 여성 한 명당 출산율이 2.0을 기록한 뒤 수십 년간 계속 내려간 신생아 출산율에 대한 이유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은 아마도 맞벌이를 해야만 살 수 있는 요즘 세상의 경제적인 이유가 아닐까?

 

 요즘엔 인간의 수명이 많이도 늘어나 남자는 80세, 여자는 85세 정도라 하는데 이렇게 계산해보면 평균적으로 부부 중 남자의 나이가 4살 정도 많으면서 수명은 5년 정도 짧기 때문에 여자는 9-10년 정도를 혼자 살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한국의 경로당이나 실버타운에 가보면 남자보다 여자가 월등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모아놓은 재산이 있을 경우엔 워낙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다 보니 자식들이 부모의 재산을 미리 받으려 하고, 부모의 입장에선 오래 쥐고 있어야 황혼의 삶이 그나마 여유로울 수 있기에 여러 가정에서 재산의 배분 또는 유산 상속에 대해 시비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가정은 자식들의 직업이나 생활력이 월등해 부모의 유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요즘 젊은 가정들은 그렇지 못하다. 부모가 물려줄 재산이 아주 없다면 자식들이 기대할 것도 없고 때로는 그것이 형제간 불협화음을 적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돈을 벌지 않거나 또는 있는 재산을 모두 남에게 기부해버리고 빈손으로 살 수도 없는 것이다.

 

 황혼에 빈손으로 자식들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면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은 자식들의 눈치를 보며 사는 세상이 되었는데, 자기들 살기도 힘이 드는데 손을 벌린다면 그 어느 자식이 좋아할까?

 

 한 부부가 몇 십 년을 함께 살면서 문제와 사연 없는 부부가 어디에 있을까마는 어쨌든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 오래 쌓이고 쌓인 정은 이제 그 누구도 끓을 수 없는 굵은 인연이 되어버려 이젠 둘 중 누가 먼저 간다 해도 남은 이에게 찐한 아픔으로 남을 것을 생각하면 누가 되었든 남아있는 사람의 마지막 생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가 없게 된다.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도 모르게 우리들이 살아왔던 삶과 현재 자식들의 삶을 비교하며 잔소리를 할 때가 많은데 때로는 그 비교로 인한 판단이 잘못된 것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은 우리를 이해 못하고 때론 우리가 자식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자식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을 땐 아내에게 핀잔을 맞곤 하는데 자꾸만 나의 젊은 시절 고생한 생각을 하며 자식들과 비교하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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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8
JC칼럼(111)-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8)

 

(지난 호에 이어)

 

 누구나 나이가 들면 본인의 바람과 달리 병원 출입을 자주하게 되고 때로는 원치 않는 수술까지도 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선 수술 전 마취를 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때마다 이러다 깨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특히 노년들이 자주 하는 위 또는 대장 내시경, 전립선 수술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때마다 마취 상태에 들어가고 깨어날 때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당시의 마취시간은 얼마였든 우리가 영원히 잃어버린 시간이며 그 시간에 일어난 일들은 알 수도 생각나지도 않는다.

 

 필자 역시 얼마 전에 위와 대장 내시경 때문에 마취에 들어가게 되었고, 간단한 수술이라 하지만 마취가 깨어나면서 의사가 하는 설명을 듣는 중에 과연 죽음이란 것이 이렇게 쉽고 편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인생이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것이긴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루하루가 새롭고 또 지난 하루가 아까워질 때도 있다. 그러면서 지난날들을 생각해보면 별로 이루어놓은 것도 없다는 생각에 뒤늦게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주제를 깨닫게 된다.

 

 우리 인류는 삶이 힘들 때도 또 풍요로울 때도 언제나 새로운 문제들을 일으키고 살지만, 동물들은 배만 부르면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배가 고플 때는 먹고 살기 위해 남을 해치며 죄를 짓고 산다지만 모든 것이 풍요롭고 편할 때도 역시 인간이 해서는 안 될 나쁜 것들을 꿈꾸고 행하며 수많은 죄를 짓고 산다.

 

 즉 우리 인간사회는 Hierarchy Theory가 존재하지만 동물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인간이 일반 동물보다 얼마큼 더 잔인하고 무서울 수 있냐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독일 Frankfurt에서 태어나고 자란 안네(Anne Frank)는 출신이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1939년 9월 독일과 일본이 일으킨 세계 2차 대전 동안에 가족이 네덜란드 암스텔담으로 도망가게 되었고, 네덜란드가 독일에 의해 함락되자 경영하던 공장 한구석에서 숨어 살다 결국 망명 2년 만에 누군가의 밀고로 체포되었고, 급기야 독일이 저지른 처참한 만행의 수많은 희생자 중 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안네가 겨우 16살의 나이에 포로수용소에서 죽기 전 써놓은 Kitty라는 일기장에서 표현된 인간들의 잔인함 그리고 삶의 꿈과 고통의 연속, 또 비극적인 삶의 결말 등 외에도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냐에 대한 증거들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진행형이며, 그 사례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들의 욕심에 의해서 생기는 비극들이 이것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데, 당시의 일본은 얼마나 잔인하고 또 지독했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끌어가 별의별 짓을 다하고 아직도 헛소리를 하고 있는 일본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나마 독일은 사과라도 했지만 지금까지도 역사를 왜곡하며 진실을 숨기고 큰소리를 치는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우리 한국인이 선하기만 한 사람들일까? 지난 한국의 수 백 년 역사를 돌아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으니, 한마디로 우리 인간 모두가 가인의 후손이라서 그런지 정말 무섭고 잔인한 동물이며,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풍요로우면 또 그런대로 악행이 우리 인간과 떨어질 수 없는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사가 증명하듯 어느 나라나 권력이 한 사람에게 주어지면 그 사람으로 인해 많은 희생자와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독일의 히틀러를 비롯해서 지난 수많은 독재자들의 최후를 보면 알 수가 있고, 현재 역시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북한의 김정은 등 그들이 일으킬 비극과 참사는 영어의 표현으로 Yet to come일 수 밖엔 없는 것이다.

 

 벌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몇 개월이나 흘러가면서 점점 남의 나라의 전쟁으로 우리의 촉각을 둔화시키면서 당연시 되어가고 있다. 긴장되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설마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놓고 있지만 전쟁 초기나 지금이나 그곳은 전쟁터의 생지옥이며 매일매일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살인과 갖가지의 나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결국 이 전쟁은 미국, 러시아 그리고 중국 3대 강국이 서로 나누어 먹는 식으로 임시 협정이 이루어져 언제나 바람만 불면 다시 타오를 수 있는 많은 불씨를 남기며 서류상으로는 종전이 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의 남과 북처럼 폭발 전야의 임시 휴전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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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1
JC칼럼(110)-?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7)

 

(지난 호에 이어)

 벌써 2022년도 8월이고 또 중순이다. 오래 전 이곳 캐나다외환은행(현재는 KEB하나은행)에서 근무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나이가 들어 은퇴하신 분이 자식들이 이곳 캐나다나 미국에서 사는 이유로 자주 방문하면서 필자에게 연락을 하곤 하신다.

 

 수십 년 전 우리 한인동포들의 열악했던 이민 경제를 자리잡게 만든 외환은행은 지금도 이름을 KEB하나로 바꾸어 건재하지만, 워낙 당시의 외환은행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필자는 지금까지도 외환 출신 분들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

 

 필자의 직업이 부동산업이다 보니 당연히 은행과 또 일하던 분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인간관계가 만들어지다 보니 수십 년이 지났어도 서로 연락하며 친구가 되었는데, 지나고 보니 외환은행도 한때 문을 닫아야 할 위기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살아남은 은행이다. 한일, 조흥, 산업 은행은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오래 살아오신 독자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이민 초기엔 많은 사람들이 편의점에 종사하며 이민 삶에 종자돈을 마련했는데, 당시엔 모국 한국이 워낙 가난해 나라에 외화보유가 부족했기에 한국에 재산이 있다 하더라도 외화 반출을 할 수가 없어 빈손으로 온 셈이기에 오자마자 주로 공장에서 전혀 해보지도 않았던 막노동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한국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든, 학벌이 어찌되었든, 초기 이민자 거의가 공장에서 막일을 하게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부수입을 위해서 밤에 지렁이까지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부부가 열심히 밤낮으로 1-2년 일하게 되면 워낙 검소하게 사니 주식비를 빼고도 몇 만불 정도는 모을 수 있었기에 그 종자돈을 가지고 시간은 길었지만 힘든 공장일보다 육체적으로 편하고 경제적으로 훨씬 나은 편의점으로 몰리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편의점 권리금이 물건값까지 합쳐 매상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우리가 공장을 다니며 모은 몇 만 불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는데, 다행히 외환은행이 생기면서 건물도 아닌 가게를 잡고(하나의 신용대출) 돈을 내주었고, 따라서 언어도 편치 못했던 한인동포들은 때로 가게 손님들한테서 많은 놀림과 인종차별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견디며 돈을 모아 경영하는 가게의 건물까지 인수하면서 캐나다 이민사회는 경제적으로 급성장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런 대출이 없어져 좀 아쉽긴 하지만, 그 이후 한국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되면서 그런 대출이 절박하지도 않다. 결국 당시엔 토론토는 물론 온주에 있었던 편의점은 거의 한국사람들이 경영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Kim's Convenience라는 연속극까지 나오게 되었다.

 

 사실 김씨네 편의점은 그 옛날 필자의 손님이자 친구였던 초기 이민자 송씨라는 분이 자기 아내의 이름 Mimi를 따서 만들었던 Mimi's Variety였고, 그 가게를 만들 때 필자도 망치를 가지고 송씨와 함께 가게를 만들고 물건을 채워 넣었던 곳이다.

 

 송씨가 잠깐 동안 경영하다 역시 필자의 친구로 지금은 밴쿠버에 거주하는 김씨에게 넘겨지고, 그 친구가 밴쿠버로 떠나면서 다른 한국인에게 넘어가면서 이름이 Kim's Convenience로 바뀌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캐나다 한국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은 외환은행 그리고 편의점이 기점이 되면서 지금은 많은 분들이 꽤나 큰 부를 누리며 살게 되었고, 생각해보면 당시의 외환은행은 한인동포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엔 대형 마켓과 온라인 쇼핑들로 편의점의 인기가 많이 줄고, 또 옛날처럼 긴 노동시간에 비해서 소득이 적고, 게다가 요즘 이민 오는 분들은 거의가 경제적으로 안정돼 옛날처럼 절박한 처지가 아니니 굳이 편의점을 할 이유도 없어진 것 같다. 물론 한인동포 전체가 편의점을 경영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때에 이민 오셨던 분들이 이젠 한 분, 두 분 우리의 곁을 떠나고 있으며, 물론 필자를 포함해 모두 언젠가는 떠나겠지만, 우리의 이민 역사도 서서히 역사 속으로 묻혀 가고 있다 생각하니 다시 한 번 마음속이 텅 비어가는 느낌이다. 우리의 삶은 그랬지만 후손들은 또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생각하니 어찌 보면 불안하기도 또 불쌍하기도 한 마음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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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4
JC칼럼(109)-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6)

 

(지난 호에 이어)

 그후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으로 황제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고, 황제에게서 하사받은 해안지대를 간척해서 비옥한 땅으로 만드는 일을 하면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다시 한번 세상의 쾌락을 줄테니  재미있게 살아볼 것을 제안하지만 파우스트는 악마의 제안을 물리치고 계속해서 간척사업을 하게 되고, 그렇게 살다 이미 100세가 된 파우스트는 근심의 마음이 그의 눈을 멀게 하지만 오히려 그동안 삶을 통해 얻게 된 심안이 깊어져서 마음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면서 결국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사인을 보내게 된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이 이겼다고 믿고 파우스트의 영혼을 가져가려 하지만 결국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속죄의 여인 천사 그레트헨의 사랑이 그의 영혼을 구원받게 만들었다는 말인데, 상당히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내용도 있고 또 우리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정의를 내리진 못했지만 한가지 우리가 다시 한번 배울 것은 결국 아무리 방대한 세상의 지식과 쾌락도 파우스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했고, 선물로 받은 젊음 역시 영원하지 못했고, 젊은 여인과의 사랑도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되면서,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삶의 진정한 가치나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단 말이다.

 

 다시 말하면 결국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향락, 재산, 지위, 권력, 사랑 모두가 일시적인 착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진리이고 사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하고 또 깨달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허사 허무라면서 손발 놓고 산속에 들어가 수도나 하고 또 집안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TV만 보라는 것은 아니다.

 

벌써 7월이 지나고 8월이 되었고, 또 2-3주 있으면 갑자기 찾아오는 서늘한 바람에 우리의 옷차림은 또 한번 바뀔 것이고, 곧 낙엽이 떨어지고 눈발이 날리는 이곳의 길고 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것이다.

 

벌써부터 하루가 다르게 낮이 짧아지며 골프장에 가는 길을 더 일찍 재촉하게 만들고, 올 겨울엔 코비드19,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높이 치솟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걱정되지만 어쩌면 우리들에게 호기심까지 나게 만들고 있다.

 

원래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서로 모이고 만나야 살 수 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지난 3년간 우리에게 필요한 모임과 만남을 제대로 갖지 못한 인류사회는 물론 한인행사들도 많이 줄어 얼마 되지 않는 한인들마저도 서로 얼굴을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올해는 한인 대표행사인 이달 말 한가위 축제 행사가 멜라스트맨 광장에서 열린다니 참으로 반가운 마음이지만, 매번 그래왔듯이 이번 역시 이 행사가 한인 행사인지 아님 중국 행사인지 정체성이 희미한 행사가 될까봐 걱정된다.

 

이번엔 토론토총영사관에서 많은 후원을 한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인공인 한인들이 뭉치지 않는다면 또 한번 회장단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의 보람없는 희생으로 끝날 수가 있다.

 

 필자가 이 단체를 이끌었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또한 어느 축제든 그곳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많은 것을 좌우하는데, 문제는 식당업을 하는 분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매번 한인 고유의 한가위 축제에 중국음식이나 타민족 음식이 판치게 돼 참으로 보기가 안타깝다.

 

한인 음식점을 하는 분들의 입장도 이해되는 것이 고작 이틀 장사하려고 장비와 인원을 동원하는 일이 시간이나 경비 면에서 만만치 않아 대체로 요리하기 쉬운 떡볶이, 어묵, 김밥 정도이다. 그 이상은 엄두도 못 내고 따라서 한국인의 밥상은 초라해질 수밖엔 없는 것이다.

 

 행사를 위해서 열심히 뛰고 있는 협회장을 비롯한 여러 집행위원들의 수고뿐 아니라 우리 한인들의 정체성을 주류사회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모두 참여하고 도와서 이 행사가 또 한번 성공적이었음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에게 남을 도우며 살라고 배워왔다. 성경 말씀엔 남을 도우며 선을 행할 때는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까지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에 남을 어떻게 어디에서 어디까지 도울까를 모르며 살고 있다.

 

 사람이 돈을 쉽게 벌었든 힘들게 벌었든 아무 대가 없이 남에게 돈이나 또는 자기 시간을 건네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부라는 것은 한번 해보고 또 다시 해보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것이 꼭 물질이 아니더라도 참석 자체도 하나의 기부이니 이번 한인 추석행사엔 많은 동포들이 참석해 좋은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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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1
JC칼럼(108)-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5)

 

 필자가 쓰는 글을 읽으시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노년층인 것 같은데 필자 역시 비슷한 나이고, 또 비슷한 시대를 살았고, 나이가 나이인만큼 우리가 어디에 살든지 지난날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 나이고, 이제 남은 날들을 계산해 볼 수밖에 없는 나이들이다.

 

 불과 며칠 전 골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고 이정석님이 생각나는데, 필자보단 나이가 몇 살 위이긴 하지만 이민오신 시기나 또 이민 초기의 고된 삶이 서로가 많이 비슷한데다 한때는 같은 이웃이었기에 그분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서로가 종사하는 직업이 달라서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이민 초기부터 여러 가지 일을 하시면서 한때는 커피트럭도 운영하시고, 또 보석 및 선물가게 등 여러 곳에서 일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참으로 조용하시고 선하신 분으로 기억되는데 이렇게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결국 우리 모두가 떠나게 되니 수백 번 수천 번 듣고 또 느끼는 말이지만 참으로 인생이 허무하고 슬프다.

 

 죽음이란 누가 되었든 슬픈 것이며 안타까운 것이다. 성경 말씀 전도서에는 물론 학대를 받는 사람들에게 한 말이지만 살아있는 사람들보다 죽은 자들이 더 복되고, 또 죽은 자들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자가 더 복되다는 참으로 이해키 어려운 구절이 있는데,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일 수가 있으며 또 본인이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이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긴 이런 것들은 우리 인간들의 영역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지난주엔 또 한 번의 은행 이자율이 껑충 뛰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전에도 여러 번 말했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한 이자율의 상승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가오는 불황도 무섭지만 지금 계속되는 인플레이션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지난 1차, 2차 대전에 있었던 인플레이션을 기억해보면 쌀 한가마 사기 위해 돈  한가마를 지고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세상에 또 한 번 그런 상황이 온다면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은 총과 칼을 가지고 싸우던 1차, 2차 때와는 거리가 먼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기에, 세계 각 나라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가올 불황은 그때 가서 볼 일이고 지금은 우선 발등에 붙은 불 먼저 끄고 보자는 말인데, 필자의 의견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한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살다 보면 가끔씩 내가 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사랑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가수 김종환의 노래도 있지만 그건 그 사람의 노래고, 정말 우리는 왜 여기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목사님들 그리고 철학자들이 여러가지 우리들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답을 내놓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확실히 마음에 닿지 않는 것을 필자의 믿음이 부족해서나 이해력의 부족으로 둘러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결국 우리는 살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기에 우리 모두는 착각을 하고 살 수밖에 없고, 그 착각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미래를 향한 계획을 만들고 또 추진하는 것 역시 끝없는 욕망일 수 있다는 말이다.

 

나이가 많아지고 육체가 쇠하여지면 우리 모두가 미래에 대한 꿈과 욕망을 잃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환경과 처지에 의해 포기를 하는 것이지 인간의 욕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든다면 그 옛날 유명한 소설가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쓴 파우스트(Faust)라는 소설의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는 자기가 평생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든 것에 한계를 느끼며 자기 존재를 고민하다 드디어 노년의 나이에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의 “영혼을 팔라”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20대의 청년 모습으로 변신하여 젊은 그레트헨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순진하고 착한 그레트헨이 방탕한 삶을 사는 파우스트에게 오히려 올바른 삶을 살도록 유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농간을 부려서 파우스트가 그레트헨의 오빠를 죽이게 만들고, 이 사건으로 인해 그레트헨과 파우스트는 이별하게 되고, 누명을 뒤집어쓴 그레트헨은 감옥에서 미쳐 죽게 된다.

 

 그 이후 파우스트는 또 다른 쾌락의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게 되는데 독일 왕궁에서 파탄에 이른 황제를 구해내는 등 그리스 시대로 돌아가서 전설의 미녀 헬레나를 만나겠다고 또 한 번 악마에게 청을 하게 된다.

 

 파우스트가 만들어낸 인조인간 조수의 안내를 받아 그리스 시대로 간 파우스트는 결국 미녀 헬레나를 찾았고, 그녀와 사랑에 빠져서 오이포리온을 낳게 되지만 오이포리온은 하늘을 날다가 추락해서 죽게 되고, 이 사건 때문에 헬레나는 파우스트 곁에서 사라져버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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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4
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4)

 

 (지난 호에 이어)

 미래를 점치고 알고 싶어하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상상과 누구의 말을 믿고 우리의 미래를 100% 의존한다면 인생이 100% 성공 아니면 실패할 수밖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우리의 미래를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오래된 과거 역시 짐작만 할 수 있지 그것 또한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지난 몇 백 년 정도는 남아있는 증거자료를 보며 알 수가 있기에 그것만이 우리가 미래의 갈 길을 짐작하고 또 계획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란 말이다.

 

 무속인이나 아님 미신을 믿으며 해가 바뀔 때마다 점이니 토정비결을 연구하며 본인의 사주팔자가 어떠니 하며 부산을 떠는 사람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미래를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을 보는 사람들의 말이나 미신적인 말을 듣고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 못 되는 이유는 독자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요즈음 캐나다 계절 중에 최고의 날들이 계속되고 골프장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으니 붙잡아 둘 수만 있다면 계속 붙들고 있었으면 할 정도로 좋은 날씨다.

 

 골프비는 물론 모든 물가가 치솟아 경제적 부담이 되고, 거기다 코비드, 전쟁, 인플레, 경제공황이니 하면서 모든 것이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나날이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한두 달 후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낙엽들이 떨어진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은근히 겁이 나고 생각하기도 싫어진다. 올해는 한인단체 골프행사들이 현저하게 줄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향우회, 동창회 등 여기저기 많은 단체 골프행사를 하기가 어려워진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경제적인 이유인 것 같다.

 

 전에는 필자가 경영하는 골프장만 해도 일인당 골프와ㅜ 저녁을 합쳐 $100까지도 가능했는데 이젠 일인당 $200 이상이 되어버렸으니 한인들이 모여서 골프행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긴 한인식당들의 뷔페값도 최하가 $50이라니 그것도 말이 뷔페지 종종 일부 음식들은 계약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간 것도 아닌데 언제나 모자라니 말만 뷔페인데다 술, 세금, 팁까지 합하면 거의 일인당 $100을 육박하니 이젠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 일반인의 수입이 두세 배 올라간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식당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 역시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 참으로 이해키 어려운 현상들이 많이도 일어난다.

 

 벌써 미국은 경제공황의 시작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데 모든 것이 미국을 따라가는 캐나다에도 곧 또 한번의 불황의 시간들을 겪어야 할 것 같다.

 

 지난 수년간 여행이나 제대로 된 휴가를 할 수 없었다 보니 갑자기 불어난 여행객들로 각 공항마다 사람들이 넘쳐나 홍역을 치르는 와중에 연료비, 인건비 그리고 인플레이션 등을 이유로 각 비행기 회사들은 항공요금을 두 배 이상으로 올렸어도 좌석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필자 역시 어디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필자가 경영하는 부동산중개업 역시 예외가 아닌 것이 요즈음은 거래가 많이 줄었고 혹시나 1990년대 초반처럼 많은 중개업자들이 사업을 접고 포기했던 때가 다시 오는 것 아닌가 걱정도 해보지만, 역시 미래는 우리가 내다볼 수도 또 점칠 수도 없는 것이니 세상사가 그러하듯이 지켜 볼 수밖엔 없는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과 준비를 해야 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호황이 오면 오는 대로 불황이 오면 오는 대로 어차피 다가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불황이 온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움츠리는 것은 준비나 계획이 아닌 포기나 다름없다. 사업을 하는 방향과 삶의 자세와 습관을 바꾸라는 것이지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지난주 Rogers Internet System이 온종일 Down 되면서 모든 일이 마비되었던 걸 기억해보면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슨 사건이 생길 때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결국 언젠가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근대문명(Civilization)과 기술(Technology)은 우리 인류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놓을 수 있는 것이니, 만약 이런 Internet 기술이 없었던 5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이런 문제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소설이나 영화에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야기지만 우리가 만들어놓은 로봇들이 인류를 공격하고 멸망시키는 즉, 우리가 만들어놓은 첨단기술에 의해 망할 수밖에 없다는 스토리는 이제 더 이상 하나의 공상만이 아닌 것 같다. 결국 우리 인류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덫에 의해 멸종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Rogers가 다운된 날은 온종일 전화도 이메일도 할 수가 없으니 한편으로는 맘이 편하고 쉬는 기분이긴 하였지만, 일이 궁금하고 또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던 것은 바로 우리가 말하는 현대병의 일종인가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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