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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상 (로열르페이지 한인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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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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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64)

JC칼럼- 193

 

(지난 호에 이어)

 

벌써 5월도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이제 곧 6월 그리고 7월, 8월 중순이 지나면 서서히 찬바람이 느껴지고 그러다 기나긴 겨울을 걱정하면서 또 한 해를 지나게 된다. 우리는 덧없는 세월을 탓하고 또 원망하면서 선택이 전혀 없는 오직 한길로 향한다. 

 

최근 필자가 경영하는 골프장에 도착했더니 여러 대의 경찰차와 소방차들 그리고 앰뷸런스 등 여러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골프 토너먼트에 참가했던 손님 한 분이 골프를 치다 그만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젊은 사람은 아니고 70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 CPR 등 응급처치를 해 보았지만 결국 숨졌다. 
팀원 중 한 사람이 죽었는데도 골프 투어는 계속되는 것을 보니 역시 그 누가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산 사람들은 그저 또 그렇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나 보다. 이렇게 대중들이 모이는 사업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나는데, 골프장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골프장은 연중 Mother's day가 가장 한산하고 Father's day가 제일 바쁘다. 올해 역시 지난 Mother's day엔 골프장이 텅텅 비었다. 요즈음엔 엄마들도 골프를 많이 치는데 이해가 잘 안된다. 반대로 음식점엔 한인식당을 포함해서 모든 식당이 온종일 바쁘다. 
이렇게 우리들이 종사하는 사업의 종류와 또 계절, 절기에 따라 울고 또 웃는다. 내년엔 Mother's day half price sale이라도 해볼 작정이다. 

 

우리가 매일 읽고 따르려 노력하는 말씀이 성경책인데 어찌보면 도저히 이해 되지도 또 따를 수도 없는 말씀이 많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정확한 것은 우리가 그 말씀으로 자신의 잘못된 행동과 마음을 비추며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요즈음 같이 세상 곳곳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거짓과 사기, 위선 그리고 횡령이 판을 치는, 그 누구도 믿고 따를 수 없는 세상이 왔는데 이때 즈음엔 성경이 말하는 적 그리스도가 나타날 시기인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디서, 누가, 아니면 이상한 단체가 나타나서 세계의 평화와 통일을 외치며 모든 종교인들을 핍박한다는 바로 그때 말이다. 

 

하지만 적 그리스도 출현 이전에 들림(Rapture)이 일어난다 했는데, 아직도 별일이 없는 것을 보면 들림의 때는 이미 지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성경에 여러 번 기술되었던 의인 즉 들림을 받을 만한 의로운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면 말이다. 
Rapture에 대한 영화도 많이 나왔고 설교시간에도 수없이 듣던 말이지만 한 가지 의문점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 말했는데 과연 들림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혹시나 들림을 받을 자격이나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있기나 한 걸까? 

 

필자는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다른 종교는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지식도 없지만 내가 안다는 기독교 역시 무엇이 진실이고 사실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래도 성경말씀이 옳고 바른 말씀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다른 과학적 역사적 증거가 없는 한 믿어야 하고 또 믿을 수밖에는 없다.
우리는 사는 동안 서적이나 영화 또는 드라마를 보면서 인생을 배우고 또 반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가끔씩 K-드라마를 보며 갑질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볼 때마다 그들을 비난하고 또 삶에 대한 나의 태도를 비교하게 되는데, 사실은 이 세상 그 누구도 갑질을 할 권리나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찌보면 우리는 모두가 그 무엇 한가지도 소유한 것이 없는, 그저 때를 기다리는 사형수들(Condemned People)일 뿐, 아무 것도 아니기에 남에게 갑질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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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6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63)


JC칼럼- 192

 

(지난 호에 이어)
 

아무나 그리고 별일도 아닌 것 때문에 곳곳에서 데모를 하고 경찰은 이미 공권력은커녕 오히려 일부 못된 일반인들에게까지도 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교 선생님들은 학부모들의 봉이 되었고 범죄인들이 오히려 국회를 장악하며 큰 소리들을 친다. 옛말이 간첩이지 어느 놈이 간첩인지 분간도 안 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의사들, 정치가들 포함해 일반 국민들까지 모두가 민주주의를 외치며 방종(self-indulgence)이 일상화 되는 것 같다. 정통의 민주주의 국가 캐나다(물론 캐나다는 사회주의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고 미국에서 경찰에게 폭력을 가한다면 아마도 그 폭력범은 그 자리에서 사살당할 것이다. 반대로 민주주의를 외치며 방종을 일삼는 한국은 수시로 남에게 피해를 주며 이곳저곳에서 데모를 일삼는다. 특별히 잘못도 없는 대통령을 탄핵한다며 마치 정해진 행사처럼 때마다 난리와 소동을 피우는 일들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은 옳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단지 방종의 태도일뿐이며 바로 민주주의를 빙자하며 행동하는, 곧 나라를 망치는 일이다. 공권력이 사라진 민주주의란 곧 멸망의 지름길이 아닐까. 모쪼록 계속 좋은 길로 발전을 거듭하는 나라가 되어 더욱 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걱정스런 마음에서 한마디 한다. 

 

필자는 세 번의 인생을 살아왔는데,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가면서 떠나기 전날 밤 당시 친하게 지냈던 필자보다 한 학년 아래였던 ‘나xx’ 이란 여자아이와 함께 보름달에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필자가 기도한 내용은 서울에 가면 적어도 반에서 5등 안에 들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는데 서로가 기도한 소원은 오랜 시절 후에 혹시 만나면 서로 말해주기로 하면서 헤어진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녀가 살아있는지, 또 그때 그녀는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궁금했지만 그 이후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첫 삶이었던 같다. 

 

그러다 서울로 올라간 나는 몇 년간의 학교시절, 그리고 짧은 군대생활까지 방황하면서 철 모르는 시절을 지나다 한국을 떠난 것이 두 번째 삶이 되었다. 이제 50년을 넘게 살아온 캐나다의 이민생활이 나의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 삶이 된 것이다. 
세월로 따져 본다면 일생 거의가 캐나다에서 살아온 셈이지만 어쩐지 아직도 이 나라가 남의 나라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왠지 모르겠다. 호랑이가 죽을 때가 되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우리 인간 역시 닮은 것은 아닐까? 

 

어찌 보면 세상은 공정이란 거의 존재치 않고 모든 것이 소설 시지프스와 이방인 등 여러 유명 소설을 저서한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Albert Camus)가 그리도 저주하며 비방하던 이 세상의 불 공정(Injustice) 그리고 부조리(Unfair)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인생사를 대항하는 마음보다는 차라리 포기하며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며, 사형수가 되어버린 이방인(The Stranger)이란 소설 속 주인공 뫼르소(Meursault)의 그때 심정도 이해가 될 것도 같다. 

 

고작 살아봐야 70-80인 인생인데 왜 그리 말도 탈도 많은 삶들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우리의 창조주인 하나님의 말씀이란 성경을 때로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우린 노력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믿기 보다는 믿겨져야 믿는 거라는 아리송한 말도 있다. 자기 앞만 보고 산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하늘 높이 올라 세상을 바라 본다면 인간들이 매일 매일 저지르는 온갖 악행들, 불공정, 부조리들을 알면서도 나 혼자 믿고 천당을 간다며 노력하고 기도한다는 것조차 부조리이며, 공정치 못한, 비겁하고 신의 말씀에 합당치 못한 행동은 아닐까? 남은 물론 내 민족, 내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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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4
2024-05-09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62)

JC칼럼- 191

 

(지난 호에 이어)

벌써 개나리도 목련도 다시 한번 내년을 약속하면서 아주 잠깐 얼굴을 내밀며 피고 또 지었다. 이제 몇 남지 않은 우리 한인동포 1세의 노인 분들은 아직도 이곳 저곳에서 산마늘, 고사리, 취나물을 따다가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이제 그것도 우리 2세, 3세들에겐 잊혀진 조상들의 역사로 남을 것이고 우리는 너도 나도 먼 길을 떠난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한 일생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한편의 영화를 찍고 그것을 되돌아 보면서 지독한 그리움에 따라오는 고독 그리고 후회를 가슴에 품고 어디론가 흘러가고 또 잊혀진다. 죽음 후엔 또 어떤 세상이 우리를 기다릴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사라져 간다.

하나의 그리움, 후회, 슬픔, 고통, 고뇌가 함께 하는 삶이 없는 그저 아무 기억도 없는 존재치 않는 무(無)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희망을 바라며 50보, 100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우리 모두는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며칠 전엔 오랜만에 50년 전 이민을 함께 왔던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어선 옛말로 표현한다면 고령의 노인들이다. 다행히 아직 상처를 한 친구는 없었는데, 한 친구의 아내가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있어 참여를 못했다.

모두가 수십 년 이민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또 정직하게 살아온 오랜 친구들이다. 자주는 아니고 그저 1년에 한 번씩 모이는 친구들의 대화가 이제 모두 과거의 이야기들일뿐 현재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은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서 너도 나도 이제 모두가 포기 그리고 순간순간 이별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니 갑자기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모두가 저마다 큰소리를 치고 미래의 설계를 하면서 밤을 새우던 그 시절이 마치 엊그제였는데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프 비거리가 얼마고, 자식이 어느 대학을 가고 손자손녀가 무슨 상을 타고 등등 말들도 많았지만 이제 우리 모두는 자기자신에게 또 자식들에게 또 지나온 삶에 실망을 하면서 조용히 다가오는 운명에 순종하는 모습들이다. 얼굴마다 굵게 또는 얇게 패인 주름 속에서 씁쓸한 웃음들과 함께 여기 저기 숭숭 빠져버린 앞니들 사이로 찐한 외로움들이 흘러내린다. 

어찌 보면 짓궂기도 하신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역시 아무 것도 아니었던 세상,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나를 우리는 이미 조상들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실감을 하는 어리석기만 했던 우리들은 모임은 그저 초라하기만 했다.

워낙 추운 이곳 캐나다는 벌써 5월이 되었지만 아직도 가끔씩 쌀쌀하고 또 비도 자주 내린다. 어찌 보면 그나마 유일한 우리 한인동포들의 즐거움은 오늘도 이곳 저곳의 골프장을 누비며 마치 갈 곳과 갈 길을 헤매며 뭔가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처럼 별 이유도 없이 멍하게 살아가고 있다. 긴 겨울잠에서 덜 깨어난 사람들처럼 말이다.

 

지독히도 가난하게 살았던 50-60년 전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선진국 그리고 잘 사는 나라로 바뀌면서 한국을 떠나 이민을 오던 시대는 이미 옛말이 되었고, 이젠 오히려 거꾸로 복수국적이다, 귀화다 하면서 한국으로 역이민을 하는 동포들이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캐나다에 사는 동포 수는 점점 줄어들고 또 유학생까지 줄게 되니 한국인을 상대해서 먹고 사는 영세업자들의 고통이 말이 아니다. 물론 한국에도 남북간의 문제와 아직도 후진국 수준인 정치문제가 있긴 하지만 세상에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필자는 모국 방문할 때마다 종종 느끼는 일이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 수준을 넘어서 이미 방종(self-indulgence)의 단계에 온 것 같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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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204
18284
2024-05-02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61)

 

JC칼럼- 190

 

(지난 호에 이어)

지금도 태평양 한 가운데 한국 국토면적의 20배가 넘는 해상에 쓰레기 더미가 떠돌아 다니고 있다. 그 공해는 날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으며 각 나라마다 더 이상 쓰레기를 저장할 땅이 없다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 드는 쓰레기가 20%, 나머지 80%는 어업을 하는 중에 버려지는 그물과 플라스틱이란다.

 

이렇게 우리 인간들의 문명이 발전하는 동안 매일 마셔야 하는 공기, 물 그리고 각종 물고기들은 물론 우리와 공존해야 하는 자연은 무참히 망가지고 있다. 인류 스스로 풀 수 없는 수많은 문제와 숙제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결국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맞는 것이, 우리의 발전하는 문명이 우리에게 편리함도 제공하지만 따라서 또다른 많은 문제들도 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발생한 여러 가지 공해를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가고 있고 또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 역시 우리 인간들이다.

지구 곳곳에서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지뢰밭 속에서 마치 곡예를 하면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인간의 문명은 매일매일 새로운 발전을 한다.

 

얼마 전엔 중동의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 폭탄을 날리는 위험한 불장난을 시작했다. 잠시 멈추긴 하였지만 중동 전쟁은 이기와 욕심을 절대 버리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난처한 처지를 잘 보여준다. 살아 남기 위해서, 아니면 더 잘 살기 위해서, 어느 누구도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입장이 돼 버렸다. 자기들의 주장과 신앙, 또 그것의 논리만을 믿고 행동하는 이슬람 종교를 믿는 중동 사람들이나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바로 자기들이라 믿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의 종교나 서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 인간들의 지혜와 두뇌로는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인다.

 

성경 말씀엔 출애굽기 21장21절, 레위기 5장45절, 신명기 19장21절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구절이 있고, 또 무슬림들이 믿는 코란(꾸란) 5장45절(카사스)에도 똑같은 구절이 있다.

이 말씀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아주 무서운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레위기 19장18절에는 그와 정반대로 원수를 갚지 말고 오히려 사랑하라고 말한다. 성경이나 코란이나 같은 성경 속에서도 다른 말들이 나오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에 따라서 또 시대와 장소, 처지에 따라서 해석이 다르다 보니 이단 그리고 사이비 종교가 성할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종교를 믿는 믿음의 힘이란 대단한 것이 그것이 옳고 그르건, 사이비건 이단이건 상관이 없이 그것이 믿어질 땐 자살 폭탄이건 대형 살인이든, 911사태든 무슨 짓이라도 합리화하면서 실행한다. 가족이 희생을 당하더라도 서슴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경우에 따라 그런 믿음까지도 소유하는 인간이기에 종교의 힘이 무섭다는 말이다.

 

인간의 다툼과 전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종교를 이용해 미화시키고 ‘신은 위대하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지비한 살인과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쩌면 생존경쟁을 하는 그 자체가 삶이고 평화란 죽은 것이라 말하는 무슬림 중동사람들의 말이 믿기는 싫지만 옳은 말 같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서 우리 모두는 속절없이 매일매일 늙어가고 있고 하루하루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향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미래보다는 지나온 과거 속을 그리며 살고 있는 우리 노년들 모두가 필자와 같은 생각인지는 몰라도 후회와 실수투성이인 우리 과거가 죽음과 함께 깨끗이 그리고 영원히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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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8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60)

 

JC칼럼- 189

 

(지난 호에 이어)

이제 G2국가를 꿈꾸고 있는 우리 모국 대한민국의 말도 탈도 많았던 국회의원 선거가 끝이 났다. 역시나 상상했던 그대로 현 정권의 참패로 끝이 났지만 문제는 야당은 당 대표부터 많은 범죄자들이 나라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테니 답답한 심정이다.

윤 대통령의 무지와 안일함과 쓸데 없는 영웅심 때문에 잘나가던 선거를 망쳐놓은 것은 한동훈의 잘못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대통령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 증원이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발표 등 모두가 조금만 기다리다 선거 후에 시작해도 될 일을 오로지 본인의 영웅심과 자만으로 고집을 부리다 결국 자기 자신의 운명을 힘들게 만든 것이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선 본인이나 당의 인기는 나중이라며 본인의 우직함과 강인함을 또 나라를 위한다며 고집을 부리던 윤 대통령의 행동과 의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때를 몰랐던 그의 선택은 지혜롭지 못했다.

결국 범죄자 이재명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지혜롭지 못한 대통령의 행동이 유권자들의 심판의 원인인 것 같다.

 

수많은 범죄와 불법을 저지른 이재명이나 역시 온 가족이 재판을 받고 있는 조국이나 한 나라의 수장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 범죄자들 투성이니 멀리서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워낙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이니 이제 곧 자기들끼리의 집안싸움도 일어나겠지만 그런 것들에 따라오는 부담과 고통은 역시 한국 국민들이 몫이 될테니 G2국가가 되겠다는 꿈 역시 요원해질까 두렵다.

 

더구나 대한민국이 공산화나 또 북한과 얽히게 된다면 국민들은 또 한번의 비극을 겪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야 인생을 거의 다 살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리워하고 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되니 하는 말이다.

한국은 원래 대통령 복이 없는 나라이긴 하지만 이번 윤 정권 역시 또 한번의 대통령 탄핵이란 비극이 다가온다면 한국 경제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다시 후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부정부패를 행하며 또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하는 국회의원들 말고 진정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애국자들이 모이는 국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요즘엔 모든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해서 관심도 많고 또 편리함에 대한 기대에 못지 않게 그에 따라올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도 많다.

필자도 요즘 유행하는 ChatGPT란 인공지능에 몇 가지 질문을 해 보았다.

각 나라의 언어들을 해석, 번역 그리고 Speech 문장을 만들어주는 실력은 필자를 놀라게 했지만 아직은 우리 인간이 예측하지 못하는 미래를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도 곧 해결할 수 있다니 기대 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컴퓨터를 모르던 우리 세대는 물론 이제 우리 자식들 세대마저 손자손녀 세대의 도움에 기대야 하는 인공 지능의 시대가 돌아왔으니 돌아보면 불과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인류의 발전은 초고속으로 성장을 했는데, 수천 년 아니 수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은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산업혁명도 오래 전 이야기가 되었고 이젠 로봇시대가 다가오면서 인류의 급성장은 멈추지 않고 있으니 그것은 우리에게 편리함도 주지만 한편으론 또 다른 많은 또 다른 우리가 풀 수 없는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우선의 예로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 현상은 물론 우리 인류에 의해 버려지는 쓰레기

공해는 우리 미래를 당장 위협하는 큰 골칫거리로 다가와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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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59)

JC칼럼- 188

 

(지난 호에 이어)

이렇게 우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일매일 살아가야 하는 이유 그리고 의미와 목적을 연구하고 또 찾으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렇게 표현하긴 싫지만 우리 모든 인간은 사형수이고, 모든 것이 허상인 이곳에 살 이유도 목적도 없다는 것이다.

‘시지프스’의 저자 알베르 까뮈의 이론은 이렇게 무의미한 삶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끝까지 삶을 영위해야 하는 길만이 우리를 창조하신 신들에게 반항하는 길이라 말한다.

 

하지만 반항을 해보아야 뭔 소용이 있다는 말일까? 그래서 남은 유일한 방법은 생각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으며 신을 의지할 때 모든 문제가 정리되며 또 그것이 스스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제 벌써 4월이 오면서 잔디는 파래지고 나무에서 푸른 싹이 움트고 있는데 아직도 미국과 달리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캐나다는 모든 것이 조용하고 주택 마켓 역시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평생 미국 이민을 동경했던 필자는 매일 바쁘게 살다 보니 이젠 나이가 많이 들고 따라서 이곳 캐나다 대신 미국에 산다는 것이 요원해졌다. 하지만 지금도 미국에 대한 염원은 여전한 것 같다. 범죄도 많고 여러가지 안 좋은 것도 많다지만 그래도 미국은 미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힘 세고 잘 사는 나라 미국 말이다.

 

평화롭고 살기 좋은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끝없는 못된 욕망에서 오는 것이란 점도 알고 있고, 또 이 나이에 실현 불가능도 알고 있지만 이 나라의 정치하는 사람들의 무능과 캐나다 국민들의 엉터리 애국심을 보면서 그냥 상상해 보는 것일 뿐이다.

필자의 아들도 정치를 하고 있으니 할 말은 아니지만 이 나라 저스틴 트뤼도 연방 총리는 지난 10년 동안 해놓은 일은 별로 없고 캐나다경제는 물론 모든 분야를 많이도 후퇴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들의 통계를 보면 캐나다는 작년 기준 19위인 반면 한국은 한계단 앞선 18위로 나타났다. 물론 한국 국민의 행복지수는 50위 밖이라는 상상 외의 통계는 필자를 놀라게 하지만 말이다.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무조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나라가 잘 살고 또 앞으로 G2의 막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멀지 않다며 긍정적인 예견을 말하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 역시 그럴 듯하고 또 멀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너도 나도 캐나다 이민을 선호했지만 이젠 모두 한국으로 되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고, 또 실제로 역이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역이민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모두가 복수국적이라도 취득하려 한다.

필자처럼 수십 년 전 한국이 무척이나 가난했을 때 이민을 오고, 다시 한국에 나가 배우자를 초청한 경우에는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공연히 죄를 지은 것만 같고 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척박하고 외로운 땅에서 온갖 고생을 안했을텐데 하면서 말이다.

특히나 한국 방문을 하고 돌아올 땐 더 미안해지면서 이렇게 우리 인생은 이것저것 지난 과거들을 회상하면서 껄껄걸 하면서 후회를 하고 또 늙어간다.

이제 말도 탈도 많았던 우리의 모국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서 이제 우리 모국의 앞날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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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383
18284
2024-04-03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58)

JC칼럼- 187

 

(지난 호에 이어)

하나의 욕망이 채워졌을 때 또 하나의 욕망이 생기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인간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이며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고통인 것이다.

수십 년 전 필자의 아내가 첫 아이를 낳을 때 병원에서 장시간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할 때가 생각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며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이란 벌을 주셨다는데 어찌 보면 죄는 하와가 졌는데 왜 벌은 내 아내가 받아야 하나 생각했다.

 

우리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가 생각을 했던 기억이다. 그 이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 ㄱ,동안의 생을 돌아보니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삶이란 옛날이나 지금이나 괴로운 고통의 연속일 뿐 더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마치 시계의 추처럼 결핍과 권태 사이를 오가다 끝을 맺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것과 욕망이 채워질 때도 있지만 그것은 또다른 욕망을 부르며 그 욕망에 대한 결핍은 다시 계속된다. 부자 위에 더 부자가 있듯이 북한의 김정은처럼 모든 욕구를 다 채우고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의 또다른 욕심, 남한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또 그를 괴롭힌다.

 

이렇게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며 살다가 그 욕망이 채워지면 곧 권태를 느끼게 되고 나아가 우울증에 빠지며 마약이나 알코홀릭이 되고 또 자살까지 하게 된다. 자살은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소유하고 경험했던 구약시대의 솔로몬의 기도와 독백처럼 말이다.

쇼펜하우어의 저서들을 살펴보면 그가 유신론자인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신이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을 최악의 지옥이라 표현했다. 이런 표현 역시 간이 큰 사람이 할 수 있고 필자 같은 사람들은 함부로 표현조차 겁이 난다.

 

그의 이론을 빌리면 결핍을 강하게 느끼는 인간들은 그 결핍을 해결키 위해 남을 해치고 또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은 더 지독한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악행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평생을 비관론자로 살아가며 결혼도 하지 않고 강아지와 혼자 살다가 세상을 비관하면서 떠난 그의 일생은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란 짐작을 해보면서 과연 우리 삶의 99%가 고통뿐인 이 세상을 어떻게 왜 살아야만 되는 걸까 라는 이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우선 ‘시지프스 신화’ 저자인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까뮈의 말을 인용해 보기로 하자.

그의 신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 시지프스는 세상에서 제일 꾀가 많고 약삭빠르며, 지혜롭고도 현명했던 코린토스의 왕이었던 그는 수많은 신들을 속여가며 신들 사이에서 거짓말과 이간질을 하면서 살다가 신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그런 행동에 대한 벌로 그는 세모난 높은 산꼭대기에 큰 바윗돌을 올려 놓아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는데 세우면 또 굴러 떨어져 다시 굴려 올려야 하는 전혀 의미도 목적도 또 끝도 없는 부조리(Irrationality)한 형벌을 받는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의 삶 역시 의미도 목적도 끝도 없이 태어나서 죽고 또 다시 태어나 죽는 무의미한 삶으로 비교하며 이 세상에 내쳐진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 형벌을 계속 받고 살고 있다는 이론을 펼쳐낸 것이다.

그래도 시지프스는 포기하지 않고 돌을 계속 올리고 또 올리는 것만이 신들에게 반항할 수 있는

길이고 바로 그렇게 반복을 계속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이고 또 의미라는 묘한 철학을 말했다. 필자에겐 그저 헛소리로만 들리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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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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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4
2024-03-21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57)

JC칼럼- 186

 

 (지난 호에 이어) 

Summer Time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낮이 무척 길어졌다. 그리고 언제나 급하기만 한 세월은 벌써 3월말을 향하고 추운 겨울을 피해서 남쪽에서 살던 캐나다의 여유족들은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 곧 봄이 오면서 골프장들이 열리고 이미 은퇴를 하신 한인동포들은 또 다시 골프가 캐나다의 유일한 스포츠 그리고 유일한 피난처인양 이곳 저곳의 골프장들을 누빌 것이다. 추운 겨울을 피해서 남쪽에 가서도 골프, 이곳 캐나다에 돌아와서도 골프를 치는 그들이 하는 말 역시 여기서도 저기서도 골프만 치다 보니 하루하루가 지겹다는 말이다.

 

우리도 다른 취미생활을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캐나다 어느 골프장을 가보아도 한국인이 없는 곳은 없으니 전생에 골프와 무슨 인연들이 있는지 대단한 민족이다.

하지만 코비드 이후에 갑자기 몰려온 물가상승이 그린피를 무척이나 올리다 보니 이젠 그나마 골프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여유가 많이 있으면 몰라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스포츠에서 점점 멀어져 가니 걱정이다.

 

가격을 올려도 수지가 안 맞는 골프장 주인들은 모두가 주택개발업자들에게 팔면서 새로 생기는 골프장들은 없고 그 수가 점점 줄어가니 이것 역시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문제로 다가온다.

코비드를 지나고 지난 22년, 23년 계속 하향선을 긋고 있는 골프 사업은 올 역시 앞날이 그리 밝지가 않은 것이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은 뻔한데 그동안 높은 이자율 그리고 높은 인플레로 여유 자금의 주머니 사정이 더욱 안 좋아지다 보니 골프는 물론 모든 레저산업에 좋지 않은 영향이 오고 있다는 말이다. Tiger Woods같은 신동이 다시 나온다면 모를까 말이다.

 

필자는 인간들이 즐기는 이 세상의 쾌락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이 원하는 쾌락의 종류도 다양하고 많은데 크게 분류를 한다면 우선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 쾌락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육체적 쾌락에 더 치중을 했고 나이기 먹을수록 점점 육체적보다는 정신적 쾌락을 찾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옛 로마의 철학자 카토는 인간의 쾌락 중에서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쾌락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제일의 치명적인 역병이라 말했다.

 

우리의 이성과 지혜로도 피할 수 없는 쾌락에 대한 욕구는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게 만들며 그것은 곧 멸망이란 말이니 우리가 늙어가면서 이런 육체적 쾌락에 대한 염원이 줄어든다는 것은 늙어가는 노인들에겐 축복이라 말했다. 글쎄. 어쩐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다.

카토의 말에 의하면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했던 젊은 시절이 지나고 이제 노인이 되어서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신적인 쾌락을 즐기라지만 필자의 살아온 삶을 돌아볼 때 젊었을 땐 바빠서 아이들과도 아내와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함께 하질 못했고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버린 지금에 와선 아이들과 아내마저 시간이 없다고 나와 놀아주질 않으니 이렇게 사무실에 앉아서 글이나 쓰고 있다. 누가 읽든 말든 말이다.

 

1788년에 태어나 1860년까지 살았던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산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이며 또 그 이유는 사람의 본성인 욕망 때문이라 말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은 욕망이 가득 찬 곳이라 말했다. 문제는 인간이 원하는 욕망의 종류와 한계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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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4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56)

JC칼럼- 185

 

 (지난 호에 이어) 

우리는 모두는 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많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오래 전 아버님께서 병원 침대에서 임종을 하시면서 눈물이 흘리신 모습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못된 외아들이었던 필자가 부모님의 속을 썩일 때마다 언제나 쩔쩔매시며 창백했던 생전 어머님의 얼굴도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자는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 많은 불효와 못된 짓을 했다. 필자의 과거가 지금까지도 마음을 지독히도 후벼 판다.

 

과거의 삶에 대한 미련과 뼈저린 후회와 함께 이제는 비만 내려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난다. 그러고 보니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참으로 못나고 비겁한 삶을 살아온 나의 인생은 자랑할 것도, 이루어 놓은 것도 하나 없다. 나의 삶이 많이 밉다.

이제 필자가 오래 전 돌아가신 부모의 나이에 가까워 오다 보니 왠지 모든 것에 자신이 없어지고, 몸은 마음도 정신도 점점 약해지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는 우리들의 역사와 현재와 과거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덧없이 반복에 반복을 계속하지만 아직 그 누구도 이유와 목적을 찾지 못한 채 덧없는 세월은 흘러만 간다.

어찌 보면 길기도 하고 또 짧기도 한, 한번의 인생을 살면서 가끔씩은 내가 그 세월이 될 수만 있다면 이 세상 이곳저곳을 다니며 외롭고 또 세상의 삶에 지치고 아픈 사람들 모두를 찾아 보듬어 주고 또 위로를 해주며 또 함께 펑펑 울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원래 필자가 쓰고 있는 이 글은 다수의 독자들이 노인층이다. 나이가 들수록 울고 싶은 날이 많아지고 또 매일마다 스며드는 외로움은 더 지독해진다. 왠지 그저 주저앉아서 펑펑 울고만 싶은 날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서로의 생각과 가는 길이 모두 비슷해서 그런가 보다.

푸근한 날씨에 오랜만에 집 뒤 베란다에 나가 처마 밑을 보니 작년 가을에 없애지 못한 벌집에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아 자세히 살펴 보았다.

 

바람이 쌀쌀했던 지난 늦가을에 여기저기 힘겹게 마지막 남은 꿀을 찾아 이내 시들어 가는 꽃송이들 사이를 힘겹게 누비며 날아다니는 벌들을 바라보니 어쩜 노인이 된 우리들의 인생과 그리도 닮았던지. 처마 밑에 만들어놓은 벌집을 이내 없애지 못하고 말았던 생각이 난다.

여기저기 길 위에 떨어져 죽어가는 매미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주워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아 보지만 이내 다시 떨어지며 죽어가는 매미들은 여름 내내 맴맴 소리를 외치다 가을이 되면서 나무껍데기 속에 다음 세대의 애벌레를 남겨 놓고 죽어간다.
1년생인 매미처럼 우리 인간들 역시 애벌레는 아니지만 자식들을 낳아 놓고 평생을 그들만 바라보고 살다가 또 때로 실망을 하면서 사라져간다. 우리들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목숨이 다하면 다시 피지도, 태어나지도 또 삶의 고통과 슬픔도 사라진다니 다행하고 기뻐야 한다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이제 나이가 들다보니 가끔씩 들려오는 친구들의 부고 소식들마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가 왠지 내 잘못인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하면서 ‘이제 자네는 이곳에 다시 오지 말게’ 라는 인사를 하게 되는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생각들을 싫어하실까?

하지만 성경에는 세상 일이 모두가 무의미하고 모든 것이 헛되다 말씀을 하셨으니 그 누구도 이런 모든 것이 허상뿐인 세상에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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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4
2024-03-07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55)

JC칼럼- 184

 

(지난 호에 이어)

지나고 보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는 과거의 짝사랑이란 그 당시 또 그 당사자들에겐 너무나 애틋하고 심각하다. 꼭 상대가 없으면 죽을 것만 같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 단 하나만의 존재 같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런 짝사랑이기에 우리 인간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혼자만의 짝사랑을 기억하며 당시엔 고백할 용기가 없었던 자신을 후회하나 보다.

 

하지만 남을 순수하게 또 아무 조건없이 이성을 사랑할 수 있고 또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기억만으로도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또 부러운 일이란 생각도 해 본다.

올해는 이제 벌써 삼월인데도 눈이 많이 오질 않는다. 눈 치울 일이 없어 편하긴 하지만 겨울에 많은 눈이 와야 봄에 잔디가 잘 자라고 또 농사도 잘 된다는데 필자가 경영하는 골프장 역시 눈이 쌓이질 않아 이제 곧 개장을 해야되는데 일하는 직원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더운 지방엔 일년 내내 눈이 오지 않는 골프장들도 많이 있는데 이곳엔 눈이 많이 필요하다니 아마도 잔디의 종류가 달라서인가?

또 올해는 4년마다 한번씩 오는 윤년(Leap Year)이라서 2월29일에 태어난 사람들이 4년마다 한번씩 오는 생일을 제 날짜에 기념할 수가 있는 해란다.

 

나이가 들수록 별로 달값지 않은 생일이 매년 대신 4년마다 있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단 말로 우리 모두가 위로를 하며 살고 있다지만 그 누구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나이다.

마음이 아무리 젊다 해도 마음의 나이대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바로 노망이 아닐까?

 

이제 한 달 후면 우리의 모국인 대한민국엔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는데 정말 하나의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 것 같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대한민국의 정치인 것 같다.

이름마저 생소한 새로 태어나는 당들도 많은데 그 중에서 필자의 시선을 끄는 당이 바로 한국 성북구에 위치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와 장경동 목사가 주를 이루는 자유통일당의 행보다.

 

단상에서 설교를 하는 모습이 목사인지 아님 정치가인지 모든 한국의 현 정치가들은 도둑 그리고 사기꾼들이라 말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전광훈 목사라는 분은 단상에서 설교를 하는 모습이 막말은 물론이고, 심한 욕을 말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다.

본인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면서 마치 배반을 당한 것처럼 분을 토하면서 설교인지 아님 선거운동인지 본인이 이끄는 당이 정권을 잡을 땐 한국 모든 국민에게 매월 100만원씩을 준다며 묘하고도 불안한 발언을 계속한다. 자유통일당을 선전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썩은 우유를 팔면서 하늘궁을 경영한다는 허경영이란 사기꾼을 연상케 한다.

 

워낙 근소한 차이로 당선이 된 대통령이기에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던 전 목사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으로 선택이 되었으니 이제 와서 욕을 하고 끌어내리기 보다는 적어도 임기 마칠 때까지는 일을 할 수 있게 밀어줘야 되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

워낙 당을 가르고 파를 가르기에 익숙한 우리 한국인들이기에 오는 4월 10일 총선에서 결과가 어찌 나올지는 짐작키 어렵지만 필자의 의견엔 아마도 현 정권의 승리로 돌아갈 것 같고 또 현 야당의 당수나 의원들의 행동을 바라볼 때 그래야 현 정권이 일을 할 수 있다 생각된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이 이곳 정치나 상관하지, 주제넘게 한국 정치에 간섭한다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태어난 고향의 일이고 그만큼 애착이 가니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반대로 이곳 캐나다의 정치는 비록 아들이 정치를 하고 있지만, 부정부패나 권력 남용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 워낙 조용한 정치라서 그런지 별 흥미도 재미도 없다 보니 아무도 별 관심이 없나 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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