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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상 (로열르페이지 한인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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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7)

 

JC칼럼- 206
 
(지난 호에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 인류에게 가져다 준 큰 변화 중 하나는 사람들의 모임을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직장 일도 집에서, 쇼핑도 집에서 하다 보니 서로 만나는 기회를 줄었는데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팬데믹 시대가 완전히 끝났는지는 몰라도 그 여파로 집에서 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쇼핑도 모두 인터넷을 이용하다 보니 사람들이 만날 이유가 더욱 없어졌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무실 공실율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따라서 식당, 커피숍 등 많은 영업장이 문을 닫고 있다. 자연스레 그곳에서 일하던 종사자들 역시 직장을 잃게 되었고, 쇼핑 역시 인터넷을 통해서 주문을 하다 보니 쇼핑몰에도 이전 보다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다. 쇼핑몰이 한산할 수밖에 없는데, 따라서 일할 곳을 잃은 사람들은 갈 데가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전 세계가 어지럽고 위태한 와중에도 인류의 욕심과 탐욕으로 인하여 생겨난 Global Warming현상은 멈추지를 않는다. 매일매일 지구촌이 뜨거워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온 국민이 기아선상에 허덕이며 죽네 사네 하는 북한 정권은 자기네들의 권력과 생존을 지키기 위해 온갖 흑색 선전과 거짓을 동원한다. 그저 믿을 것은 핵뿐이라며 핵개발에만 온 국력을 쏟아 붓고 있다. 국민들이야 죽건 말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북한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언제 어디서부터 터질 지는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엔 오로지 멸망뿐 아무 것도 아무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본인들 역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이나 북한의 김정은은 수틀리면 언제든 핵버튼을 누르겠다는 식으로 세계를 협박하고 있다. 원래 뒷구멍 거래를 좋아하는 엉큼한 중국은 세계 질서를 망치고 있는 러시아나 이란을 몰래몰래 도와주며 마치 북한 역시 자기 소요인양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다. 예부터 중국 오랑캐 그리고 일본 왜놈들에게 당하기만 했던 우리 한국민족의 운명이 가련하기만 하다. 

 

 

아무리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이 세상엔 언제나 싸움과 전쟁뿐 희망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 미국의 1년 예산이 거의 1경 원에 육박하고 있고, 이 돈은 한국 1년 예산 약650조원에 거의 13배가 된다. 하지만 세계의 국방을 거의 책임지다시피 하는 미국은 매년 적자에 적자를 거듭하며 지금 미국의 부채는 4경원이 넘으니 미국 역시 잘 사는 나라이긴 하지만 내부 문제가 복잡한 나라이기도 하다. 참고로 중국의 1년 예산은 현재 거의 7,000조다. 믿기 힘든 규모다. 이것은 미국을 턱밑까지 따라붙은 것으로 언젠가는 미국을 따라잡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세계의 기축통화가 미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또 그것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한 미국의 부채는 해결 방법이 있겠지만 만약 그것이 러시아의 루블화나 중국의 위안화로 바뀐다면 미국은 바로 몰락의 길로 향할 것이다. 

 

어찌 보면 ‘그런 걱정은 네가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그리고 중동은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들이 아니다. 그것이 언제든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내일이며, 내 걱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엔 미 대통령 후보 Debate를 보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거짓말도 잘하지만 얼굴 역시 두껍다는 생각을 했는데 맞는말도 있긴 하지만 남 탓도 잘하는 그 역시 4년 전 집권당시 이루어 놓은 일은 별로 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카멜라가 꼭 맘에 드는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제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의 한국 정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트럼프는 한국의 범죄자 이xx씨와 많이도 닮은 것 같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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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6)

 

JC칼럼-205
 
(지난 호에 이어)

 

결국 '나'라는 존재는 원래부터 없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우리 모두는 알지 못하는 먼 곳으로 떠나버린다. 
문제는 매일 같이 멀티페르소나(Multi-Persona)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씩, 아니 자주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 내가 진짜 나라고 착각을 하고 산다는 데 있다.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도 가면 속에 있는 자기를 잊고, 자기자신이 진정 위대한 인물 또는 지도자인 것으로 알고 살고 있다는 것이며, 필자 역시 내가 쓰고 있는 가면 아래 감춰진 진짜 나를 인식하지 못 하며 살고 있다는 말이다. 

 

수백 년 전에 쓰인 ‘유토피아’란 책을 읽으며 내용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소설 유토피아를 저서한 토마스 무어는 신을 믿는 사람이었고, 또 나라에도 충실한 신하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와 신임을 받았다. 그럼에도 당시의 왕실과 귀족들의 부정되고 부패한 삶을 반대하다 결국 영국왕 헨리 8세에 의해서 교수형을 받고 사라졌다.
책에는 당시의 정부와 귀족들의 생활을 비판하면서 본인이 꿈꾸던 이상적이고 공정하고 모두가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완전한 세상을 구현하고 있다. 다만 그가 한 가지 무시했던 것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 욕구, 질투, 탐욕이 존재하는 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세상을 표현한 것이기에 그 소설은 말 그대로 지금까지도 현실에 없는 ‘유토피아’가 되고 만 것이다. 물론 책의 저자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쓴 책은 절대 아니고,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표현한 책일 뿐이며, 유토피아의 세상이 실현 불가능한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일 뿐이란 말을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보면 현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교훈과 도움을 준다. 그렇기에 이 책은 아마도 명작이 된 것 같다. 

 

이렇게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가면 속에 숨겨진 나 자신을 모르고 살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다면 남을 죽이고 학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진다는 말이다. 나는 원래부터 존재치도 않았고 또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고 나면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가 여러 개의 가면을 매일매일 바꾸어 쓰며 살고 있고, 또 쓰고 있는 가면이 마치 자기인줄 착각 속에 살아간다. 

 

착각이라고 하면 미켈 데 세르반데스의 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가 생각나는데, 그 역시 세상에 만연한 모든 악과 싸운다는 착각 속에서 행동하는 주인공을 그렸다. 그런 주인공의 행동이 코믹하기도 하면서 그 마음 속에 있는 진실과 가식 없는 무모한 행동이 귀엽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위선의 가면을 쓰고 내가 진짜 누군지도 모르며 그렇게 착각 속에 세상을 살고 있는 동안 알게 또 모르게 유행가 가사처럼 모든 것으로부터 매일매일 이별을 맞이한다. 모든 것이 늘 곁에 있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많은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친구도 사랑도 젊음도 추억마저도 우리를 떠나며 매일 이별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껴줄 수 있을 때, 사랑할 수 있을 때, 도와줄 수 있을 때를 미루지 말고, 이번 또 오늘이 마지막처럼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순간 순간을 잊고 지나가 버린다.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아마도 우리 조상들 역시 우리처럼 같은 마음과 생각을 하면서 살다가 결국 후회를 하면서 떠나지 않았을까? 

 

이제 벌써 아침이면 온몸을 움츠리게 하는 쌀쌀한 바람이 마치 곧 찬서리라도 내릴 듯 그리고 이미 노랗게 변해가는 뒷마당에 깻잎과 실하게도 영그는 깨꽃들은 왠지 필자의 마음을 깊이도 조여온다. 팬데믹이 지나고 이자가 오르면서 갑자기 불경기를 맞이하며 더욱 힘들어진 이민생활이 갑자기 서글퍼지기도 하고 또 지난 삶이 후회도 되는 마음이 들면서 왠지 오늘은 필자의 어린 국민학교 시절에 맑고도 깨끗한, 내가 태어난 고향 무심천 물속 모래사장에서 건져낸 올갱이(민물 소라)를 한 사발 잡아오면 어머니가 그것에 된장을 넣고 아욱국을 만들어 주셨던 때가 많이도 그리운 날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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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5)



JC칼럼- 204
 
(지난 호에 이어)

 

이제 세월이 또 흐르고 벌써 올 2024년 9월도 첫째 주가 되면서 날씨는 급격히 쌀쌀해지고 있다.
가을이 되면 한국에선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고 말한다. 1년 동안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 거두어 들인 곡식을 내년까지 먹기 위해서 저장을 한다. 1년 중 가장 먹을 것이 많은 풍요로운 계절이며 행복한 계절이란 말이다. 
물론 지금의 한국은 1년 내내 먹을 것이 차고도 넘치는 나라가 되었지만 아직도 먹을 것 또 입을 것이 없는 북한 땅, 또 가난한 나라들에겐 가을이란 추수의 계절은 여전히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지난번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홍수의 피해는 또 한번 북한 주민들을 힘들게 만들 것이며, 이번 겨울 역시 힘든 시간이 될 것이 뻔하다. 

 

워낙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이기적으로 태어났고 또 그렇게 살고 있기에 먼 거리에서 그저 안 되었다는 마음은 있지만 본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한 남의 일과 처지엔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정도로 넘어가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명예, 재물, 직장, 가정, 건강 모든 것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모두가 매일매일 사는 것이 바쁘기에 남의 삶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그런 일상 생활을 영위하며 모두가 의미 없이 늙어가고 있다 보니 남은커녕 자기자신을 바라볼 여유도 없이 살고 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없으니 자신이 누구이며, 뭘 찾고 있는 지도 모른다. 또 남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살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필자 역시 바쁘게 또 정신 없이 살다 보니 내가 누구이며 또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모든 일을 멈추고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식구를 포함해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면 ‘나 자신이 참으로 이기적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오래 전 돌아가신 부모님께도 그랬고, 이래 저래 무심코 스치며 지나쳤던 사람들 그리고 또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렇게 지내왔다. 지금도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원래가 이기적이고 언제나 남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멈추지 않고 사는 동물이지만 우리의 이성이 그 모든 행동을 자제하게 만들 뿐 마음은 여전히 이기, 시기, 질투에서 벗어날 수가 없나 보다. 
그래서 우린 바쁜 와중에서도 잠깐 멈추고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깊은 산으로 또는 조용한 바다로 나아가 오랫동안 수행을 하면서 도를 닦고 또 깨달음을 찾으려 멀리 떠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잘 생각해보면 모두가 나는 누구이며 왜, 어떻게 이곳에 있나 하는 즉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노력이란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태어나고 판단력이 생길 때부터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게 되는데 때와 장소 또는 일정, 처지에 따라서 가면을 바꾸며 살게 된다. 그것을 요즘 말로는 멀티페르소나(Multi-Persona)라 말을 한다. 자신의 환경과 처지 그리고 본능에 따라서 어떤 때는 악마, 또 때로는 천사가 되면서 여러 가면을 바꾸어 쓰며 살고 있다는 말이다. 때로는 악마의 가면을 쓰고서 자기의 조그만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준다. 그리고는 금방 돌아서서 천사의 가면으로 바꾸어 쓰면서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 남이 받은 상처가 어떻든 자기자신만을 위로하고 살고 있다.

 

직장에선 부장님으로, 가정에선 누구의 아빠로, 친구들 사이에선 XX로, 사회에선 좋은 놈 또는 나쁜 놈으로의 가면을 쓰고 살다 보니 결국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착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렸던 사춘기 때는 적어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이라도 자주 하면서 고민도 했지만 성장을 해서 사회에 뛰어들어 먹고 사느라 바쁘게 살다 보니 그나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나란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세월은 빠르게도 지나버리고 우리 모두는 지나간 뒤를 돌아보게 보며 한숨을 지으며 그동안 쓰고 살아왔던 모두의 가면들을 벗게 된다. 나의 존재는 원래부터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우리의 인생은 막을 내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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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4)

 
JC칼럼- 203

 

(지난 호에 이어)

 

우주와 지구의 역사가 수백억 년이 된다는데 비하면 70~80년이 고작인 우리의 생이 짧고도 순간이긴 하다지만 그것도 우리에겐 한 평생이다. 그 짧다는 세월마저도 저렇게 또 이렇게 흐르고 흘러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우리 모두는 여기까지 왔으며, 이제 곧 떠나야만 된단다.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도, 어처구니 없기도 한 일이지만 좋거니 싫거나 짧았던 이 지구촌에서 살았던 삶에 대한 심판을 우리를 창조하신 분 앞에서 받아야만 한다니 우린 어쩌면 좋을까? 

 

무엇이 죄이며, 무엇이 선인 지도 모른 채 많은 시기와 질투 또 미움과 증오 그리고 원망과 다툼의 연속인 어리석은 삶을 살아온 인생이다. 심판대에 서야 할 때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소유한 재물 그리고 사업체 또 가정, 사회적 위치, 인간관계, 이 모두가 위에서 아래로 본다면 모든 것이 자그만하고 보잘것없는 데도 우리는 아직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만과 욕심과 이기적인 생활을 연속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이곳에서 생산업을 하고 있는 친구 부부를 만났다. 공장 견학도 하고 참 좋은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며 ‘다른 한인들에게도 이런 사업을 권장해 보라’고 했지만 친구는 단호히 거절했다. ‘왜 그렇게 단호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Internet Search를 해보니 그런 공장이 온타리오주만 해도 수백 군데며 자기 혼자 하는 독점 사업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한편 이해가 가는 것이, 우선 사람들은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사업을 하는 것에는 신경이 안 쓸 수 있어도, 내가 아는 사람, 특히나 같은 한국사람들이 하는 것은 싫을 수 있다. 또한 그들이 나와 경쟁을 할까 봐 싫을 수도 있는데 그런 사업은 손님들이 대부분 한국인들도 아니고 또 마켓 자체가 광범위하기에 경쟁에 별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데도 말이다. 셋째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 즉 ‘남이 잘 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여러 분야 사업가들을 만나다 보면 ‘이것은 아무나 못해, 이 사업은 돈이 별로 안돼’ 하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또 그 사람이 못난 것이나, 나쁜 것은 더욱 아니지만 단지 우리 모두가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더 큰 부자가 볼 땐 가소로운 것이고, 아무리 좋은 사업체를 경영한다 해도 훨씬 더 훌륭한 사업체를 경영하는 사람들이 볼 땐 별것도 아니다. 그 무엇도 영원치 못한 것을 가지고 마치 영원한 소유자처럼 우리는 모두 매일 착각 속에서 미련하게 살고 있다.
이제 벌써 파리 올림픽도 끝이 났고, 우리 대한민국은 금메달 13개를 따내며 세계 8위라는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따라서 한국의 위상은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같은 동족이며 같은 말을 하는 북한에서 온 선수단들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고 안쓰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 모두가 기가 죽어 있고, 남들을 두려워하며 경계하는 모습이 활기찬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과 너무도 달라 보였다.

 

옛날 전 미국 대통령, 현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말했듯, 지구촌에서 제일 저주받은 땅 북한을 지옥으로 표현했던 적도 있지만 이렇게 3대의 김씨 왕조가 저질러온 비참한 일들은 독일 나치시절 히틀러가 유태인 들에게 한 짓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의 모국 대한민국 정치인들 그리고 국민들 역시 통일을 원하고나 있는지 아님 이대로가 좋다며 통일에 대한 대가를 두려워하며 기피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눈을 감고 외면하기엔 북한주민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평화, 그리고 자유를 누리며 잘 사는 것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고 이해도 되지만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하는 통일이 아닌가? 부디 하루 빨리 우리 대한민국이 더 강해지고 더 부자가 되어서 통일이 된다 해도 200백만 북한 동포를 먹여 살리는데 부담이 없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8월23일~25일, 주말엔 토론토의 한인대축제가 된 한인들의 추석맞이 잔치가 멜 라스트맨 광장에서 열린다. 많은 동포들이 참석해 성공적인 2024년도 잔치가 되길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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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3)

 

JC칼럼- 202


(지난 호에 이어)
필자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은 왠지 몰라도 이 세상을 서로 함께 더불어 잘 살게 인간을 창조하시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남을 돕기 위해선 남보다 잘 살아야 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나라가 강해져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그렇게 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독재자가 되고, 남을 해치는 흉악한 사람과 정치체제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제 벌써 뒤뜰의 깻잎이 또 하나의 계절을 지나며 씨를 만들기 시작했다. 벌써 아침이면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고, 한국의 각 가정들이 추석명절을 위해 고향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고향? 이곳에서 수십 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고향은 어디에 있는 걸까? 워낙 오래 전 한국을 떠나서인지 희미하지만 가끔씩 한국의 애국가나 또는 어릴 적 부르던 동요가 들릴 때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그래도 우리의 고향은 모국 대한민국이 맞는 것 같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제일 중요한 것은 삶의 지혜라 성경말씀은 가르치고 있으며 하나님이 솔로몬 왕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물었을 때도 솔로몬은 지혜를 말했다. 당시의 유대왕 솔로몬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인하여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일평생을 살았지만 결국 그는 죽기 전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허사”라 고백을 하며 생을 마쳤다. 결국 삶의 부귀도 영화도 또 그중 최고라는 지혜마저도 영원치 못하니 그 무엇도 결국 허사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후에 있다는, ‘영원한 죽음이 없고, 끝이 없는 새로운 삶’을 바라며 창조주 하나님께 매달리지만 어쩌면 우리의 존재가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후세의 영원한 삶보다 나은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아무리 가본 적이 없는 천당이 좋다지만 잘 살거나 못 살거나 현세의 매일매일이 워낙 불안하고 두렵고 힘들다 보니 또 하나의 삶이란 말 자체가 겁이 나 그리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 삶이 육적인 삶이 아니고 영적인 삶이라 해도 말이다. 

 

 

필자의 지난날을 돌아볼 때, 그래도 제일 좋았던 때는 아주 어린 시절 맑고도 맑은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아줌마들에게 야단을 맞으면서도 붕어, 미꾸라지 잡는다며 이리 뛰며 흙탕물을 만들던 그때다. 메뚜기를 잡는다며 남이 벼농사를 잘 일궈놓은 논 바닥을 휘젓다 주인에게 야단을 맞던 그 시절, 나마리를 잡는다며 남의 토마토, 오이, 호박, 참외, 수박밭들을 마구 밟다가 주인에게 경을 치던 일, 그렇게 한 여름 종일토록 밖에서 뛰놀다 노을이 질 무렵 집엘 들어오면 그래도 엄마가 차려놓은 애호박을 썰어 넣은 된장국에 따듯한 보리밥 한 공기가 왜 그리도 귀하고 맛이 있었던지.  

 

그때는 나라가, 아님 세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 했고, 관심도 없었다. 단지 내일까지 해가야 할 학교 숙제만 걱정이 되고 야단을 맞을까 봐 무서운 선생님 얼굴만 생각나던 그 시절이 아마도 나의 인생에 제일 좋은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른 아침엔 담장에 활짝 피어난 나팔꽃이 나를 반겨준다. 뜨거운 햇볕에 잘 영글고 실하게 익어 꽉 들어찬 씨알들이 타버릴까 걱정하며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려 고개를 푹 숙인 해바라기꽃, 짙은 보라색을 띤 가지밭 속의 풍댕이, 집게벌레 등을 잡고 높은 나무 위를 올라가 매미를 잡던 그 시절 말이다. 한겨울 얼어붙은 논에서 썰매를 타고, 나무로 깎아 만든 팽이를 돌리고, 제기를 차며 또 신문지로 만든 딱지를 치며 창호지로 만든 연을 날리고 구슬치기를 하며 코를 흘리던 그 시절들은 아직도 거기 그곳에 있기는 한 것일까? 
가끔씩 동네에 서커스 단이 올 때면 어김없이 텐트 속으로 째비를 하다 잡혀서 혼이 나던 그 시절, 귀신을 좇는다며 굿을 하는 집 앞에서 떡을 얻어 먹겠다며 온종일 왠 광대 같은 할머니의 어설프고 요상한 비명을 지르며 온갖 널뛰기와 엉성한 칼춤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던 그 철없던 시절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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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4
2024-08-08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2)

 JC칼럼- 201

 

(지난 호에 이어)
 

벌써 8월이 오고 낮보다 밤이 더 길어지고 있다. 이제 곧 서늘한 바람이 느껴질 테니 우리 노인들에겐 별로 반갑지 않은 계절이 돌아온다. 모두가 하는 말이지만 그저 여름이 두 달만 더 길었다면 참으로 살기 좋은 토론토일 것이다. 

 

매년 노스욕 멜라스트먼 광장에서 열리는 우리 한인사회 대축제 행사 등 여러 관계자들의 도네이션 요청이 자주도 있다.
무슨 행사를 하더라도 돈이 들어가야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이 행사는 한국의 풍습과 전통을 이곳 캐나다에 알리는 행사이기에 좋기는 하지만 요즈음 같이 이자가 높고 경기가 안 좋은 때에는 그 누구도 기부금을 선뜻 건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행히 TD은행과 정부의 보조금이 있지만 그것도 부족한 모양이니 보기에 안타깝다. 특히나 이제 곧 연말이 다가올수록 각 곳에서 도네이션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계절인데, 불경기 속에서 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전 같지 않다 보니 걱정이 많이 된다. 
한인대축제 행사의 본질은 한국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알리기 위한 이벤트로 시작이 되었는데 요즈음에 와선 그곳에서 장사를 하시는 매점들이나 또 참석하는 사람들을 본다면 원래 이 행사의 본질이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래도 한국국가가 울려 퍼지고 한국 K-Pop이 무대에서 청중을 모두를 열광케 하는 모습은 정말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든다. 

 

또한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아무도 상상 못했던 수많은 메달을 목에 걸고 승리를 외치는 한국 선수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은 대한민국을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어느 새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 한국은 부자나라로 인정 받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모국 한국은 아직도 국회에선 밖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지 서로가 남의 잘못을 들추고 자기 잘못은 은폐하느라 매일 격한 싸움들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현 대통령은 꿋꿋하게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많은 외교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없으면 더 좋을 국회지만 없어서도 안 되는 대한민국 국회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우리 지구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라가 망했던 이유는 딱 한 가지였는데 그것은 바로 관료들의 부정 부패로 인한 썩은 정치 때문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전쟁에서 패한 베트남도 그랬고, 옛 로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의 반쪽 북한 역시 독재와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곧 나라를 망치며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한국 역시 나랏돈을 몇천억 원이나 해 먹은 사람은 몇 백불짜리 명품백을 들추고 1:1이라 외치며 끝까지 싸우고 그 와중에 제자리들을 지키려 목숨 걸고 싸우는 의원들이나 대한민국 국회는 언제나 정신을 차릴까? 
갑자기 아니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하지만 미국 대통령 출마 계획을 포기한 바이든의 결단과 나라를 먼저 걱정하는 그의 애국심을 보면서 우리 역시 그런 모습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본다. 다음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가 될지, 아님 해리스가 될 지 잘 모르지만 현재의 미국과 한국이 접해 있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누가 되든 우리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한국이 걱정하는 것처럼 그리 나쁘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 역시 지금은 주한 미군 철수 등 방위비 인상 또는 관세 등을 말하지만 그것은 표를 위한 미국 국민들의 선심을 사려는 정책일 뿐이다. 지금의 한국은 4년 전과 또 사정이 많이 달라져 절대 북한 김정은과 협상은 없을 것이고 또 트럼프 역시 북한을 하나의 나라라 생각을 한 적이 없고 그저 그곳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지옥이라 생각할 뿐이며 또 그것이 사실이 아닌가. 단지 그의 생각은 내가 강해져야 평화도 번영도 있다는 철학을 믿는 사람이고 세계의 평화를 위한 경찰이 되기 위해선 내가 강해져야 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다 함께 평화를 누리며 잘산다는 논리를 믿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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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1)

 

 JC칼럼- 200

 

(지난 호에 이어)

그 이후 로마황제 티투스는 여러 가지 재앙으로 어지럽던 민심을 달래려 지금의 유명한 관광지인 당시5만 명이 들어가는 대형 경기장, 콜로세움을 세워 여러 무자비하고 잔인한 경기를 펼치며 백성들의 민심을 사려 했다. 하지만 결국 티투스 황제는 젊은 나이인 40세에 죽고 말았다. 한때는 유대인 여성을 지극히 사랑했고, 가족과 국민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Love Story도 있지만 결국 티투스 황제도, 그 유명하고 화려했던 로마제국도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멸망 했고, 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필자는 아직도 다행인지는 몰라도 이곳저곳 모임을 참석하게 되는데, 한인들이 모이는 곳에는 보통 음식이 뷔페스타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헌데, 일부 손님들은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음식을 싸는 분들을 보게 된다. 특이한 점은 그들 대부분이 노인들이란 걸 알 수 있다. 식사량이 충분하고, 또 나중에 챙겨도 되는데 뭐가 그리도 급하신지 드시는 것보다 싸시는 게 급하신 분들을 본다. 아마도 젊은 시절에 너무나 가난하게 살았던 이유인지, 아님 우리 모두 나이가 들면서 식탐이 더 생기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된다. 

 

하긴 나와 함께 일하는 친구 하나도 식사가 나오면 남이야 어떻든 자기만 먼저 좋은 것을 골라 본인 앞에 쌓아놓고 먹는 사람도 있다. 참으로 보기에 추하고 역겨울 수밖엔 없다. 더구나 남이 식사를 살 때는 일부러 비싸고 고급음식을 시키는 모습은 미련하고 못나 보이는데 필자의 의견엔 이런 버릇 역시 우리 나이엔 꼭 필요한 포기를 못하는 것에서 나오는 행동 아닐까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포기를 안 하면 누군가가 포기를 시킬 것을 아는 데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전에 ‘어떻게 포기하며 살까’ 하는 숙제는 꼭 풀어야만 한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언제 어떻게 포기해야만 옳은 것일까? 
물론 자식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모은 재산을 모두 사회에 기증을 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고 또 일부 사람들이 그런다 해서 사회가 바뀌는 것도 아니며, 또 포기란 말은 그런 뜻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병원 방문을 자주하게 되는데 왜 그리도 우리의 신체구조가 복잡한지 전문의도 한두 사람이 아닌 여러 명을 볼 수밖엔 없다. 한국이라면 말이라도 잘 통한다 하지만 이곳은 전문의들이 말하는 의학용어는 잘 이해가 안 되고 더 어려운 것은 전문의를 한번 보려면 하루 이틀이 아닌 장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많은 경우에 기다리다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기에다 이곳 의사들의 사무적이고 무감각한 행동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 의사들에겐 의료적 행동이 그저 하나의 직업일 뿐이고, 그들 역시 개인과 가정생활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행동이 당연한 데도 서운한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아프고 급한 놈은 나 본인이지, 의사가 아니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노인들이 한국에 복수 시민권을 신청한다. 오래 살려 한다기보다 그저 죽을 때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삶은 고통이요, 불쌍한 것이 인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식탐이 동해서 과식을 하든, 욕심이 동해서 음식을 싸든, 평생을 화로에 불살라도 다 태우지 못할 돈을 죽을 때까지 움켜쥐고 죽으니 우리 모두가 한없이 어리석고 우매하고 불쌍한 피조물이다. 싸놓은 돈을 쓰지를 않는다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나 돈을 움켜쥐고 매일 더, 더하며 안달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안타깝고 불쌍하긴 마찬가지란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기억하고 또 회계를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살면서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었다면 그것은 기억과 회계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며 필자의 생각엔 그것이 해결되지 않고 세상을 떠난다 해서 그것이 끝이 될 순 없다는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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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8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0)


 
JC칼럼- 199
 
(지난 호에 이어)

이제 벌써 낮이 밤보다 매일 짧아지고 있다. 어느덧 필자가 한국을 떠나 이 나라로 이민을 온 지도 50년이 넘었고, 따라서 나이 역시 75세가 됐다. 한국말로 표현한다면 고령의 늙은 사람이 된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젊었을 땐 앞만 보고 달려 옆사람들이 전혀 보이질 않았는데 이젠 자주 옆사람을 보게 된다.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한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건강문제로 고생하시는 분들도 많다. 가정 또는 자식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분들 등 여러 형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렇게 우리들 또는 더 고령의 어르신들을 보니 한 가지 공통된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포기란 것이다. 명예와 재력 아님 미모, 학력, 배경 그 무엇을 소유하고 살았더라도 이젠 좋건 싫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또 잃어야만 하는 시간이 왔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재력으로 성공하신 분들일수록 포기를 못하고, 아직도 물질을 따라서 방황을 하는 분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찾고 얻어도 내가 즐기고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이제 그 제한된 시간은 아주 짧은 데도 말이다. 내가 소유한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우리 나이엔 생각을 하고 포기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만 하지 않을까? 그저 하루하루 탐심, 욕심에 세월 가는 줄 모른다면 본인에게 너무 가혹한 삶이 아닐까? 

 

원래 태어날 때부터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서 본인 자신은 물론 남에 대한 배려와 또 나눔이란 걸 배우지 못하고 살았기에 그럴 수도 있다지만 그래도 거지같이 살다 끝난 부자보다 부자같이 살다 죽은 거지가 더 나은 삶을 살았다 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니 잘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물론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자식들에게 본인들의 가난을 넘겨주기 싫어 재산을 물려주려는 마음은 모든 부모가 똑같겠지만 그래도 우리처럼 나이가 들면 주위 사람들에게 체면은 차리며 살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싶다. 

 

하긴 인간 세계로 본다면 부자같이 살다가 부자로 죽는다면 그것이 최고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그리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성경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부자가 천당을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했으니 말이다. 

 

신구약의 역사가 약 6,000년이고, 인간을 그때에 창조하셨다고 배웠지만 과학자들의 발표에 의하면 인간들의 역사는 수만 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증거들이 나오다 보니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구 재 창조를 믿을 수밖엔 없는데 그것을 따져봐야 소용없는 짓이지만 한 가지 우리가 확실히 알아낼 수 있는 인류를 역사를 살펴보면 피의 역사 바로 싸움의 역사 밖엔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가끔씩 우리 창조주이신 하나님 왜 우리 인간들에게 싸워야만 살 수 있는 DNA를 심어 주셨는지 묻고도 싶지만 작은 머리의 생각에 무슨 답이 있겠나. 특히나 하나님이 택한 백성 유대인들의 고향엔 예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이 계속 싸우는데 특히나 가장 긴 시간을 로마제국에 의해서 침략을 받고 또 지배를 받았다 하는데 솔로몬 왕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당시의 로마 티투스 황제가 이끄는 로마제국엔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한 죄의 대가인지 몰라도 당시 로마제국의 재앙과 몰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후 시작 되었다. 로마는
티투스가 왕권을 물려받은 지 2개월이 지난 서기 79년 갑자기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며 이태리 나폴리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의 폼페이와 헤르클라레움이란 두 도시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 다음해엔 로마 역사의 가장 큰 화재가 발생하고 그 담해엔 전국에 전염병이 돌면서 나라의 민심은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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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69)

 

JC칼럼- 198

 

(지난 호에 이어)

 

성경 말씀대로 택함을 받은 민족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품고 사는 유대인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예수를 죽인 민족이기에 예수를 믿고 섬기는 나라들이 더 미워하고 무시를 하며 구박을 가했다. 한 마디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다수인 유럽국가들에게 유대인들은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가는 곳마다 핍박과 차별 그리고 집단 피살까지 당해서 그런지 원래 생활력이 강했던 유대인들은 이자를 받고 돈놀이를 하는 것이 종교적으로 또 법적으로 허용이 안 되던 유럽국가들 에 거주하면서 재력을 확보해 나갔다. 디아스포라로 살던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돈벌이였던 이자놀이를 하며 점점 금융시장을 장악해 나간 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 중요하고 또 파워가 되다 보니 축적한 부를 토대로 점차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이며, 그들 역시 처음엔 보잘것없는 돈놀이로 시작을 했지만 결국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은행을 열게 되었고, 그 이후 런던, 파리, 빈, 나폴리 등 여러 은행들을 차리며 큰 부를 축적했다. 이뿐 아니라 각 곳에서 유대인들의 독특한 장사 방법으로 부를 쌓다 보니 돈(경제권)을 거머쥔 유대인들은 여전히 차별과 학대 속에서도 그들의 원래 고향인 예루살렘(팔레스타인들이 거주하는 땅)으로 돌아가서 나라를 건설하고 모여 살자는 시온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동안 많은 부를 축적한 유대인들은 그곳의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멋 모르고 많은 돈을 준다는 바람에 당시 거주자들은 땅을 팔기 시작했고 유대인들은 사들인 땅을 그들의 정착촌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의 영토분쟁으로, 전쟁으로 계속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원래 자기들의 조상이 살던 땅이니, 우리 땅이라고 우기는 또 그곳 아니면 갈 곳도 없는 유대인이나 “수천 년 살고 있는 이곳이 내 땅”이라며 도로 내어 놓으라는 아랍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나 딱하긴 마찬가지다. 또 양쪽 모두 처지는 안 됐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특별하고 뾰쪽한 방법이 없다 보니 계속 저렇게 수천 년 동안 싸우고 있는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히틀러의 핍박을 받으며 피난을 갔던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고향을 찾는다며 그곳으로 많이 밀려들어, 지금은 거의 천만이라는 인구가 살고 있는데 갑자기 그들이 갈 곳도 쉴 곳도 없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 세계가 풀 수 없는 큰일이 된다는 말이다. 머무를 곳이 없고 나라 없는 설움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그 누가 그 심정을 알 수 있으랴마는 참으로 암담한 일이다.

 

한국 역시 그 옛날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온갖 수모를 겪었는데 이제 또 다시 러시아의 푸틴과 북한 김정은의 불장난은 우리 모두를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 공산주의 또는 1인 독재는 언젠가 망하고 몰락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이런 과정 중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독재와 쏘련, 중국의 공산주의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자유를 보장하고, 다만 정치적인 사상과 이념의 싸움에 몰두하지만 북한은 오로지 3대를 내려오는 김씨 일가의 생존을 위한 싸움만 하는 것 같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거짓과 위선을 하며 생존해 왔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가 온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너무나 작아지고 정보의 홍수시대가 되었기에 손으로 태양을 막는 행동이 통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도 세상을 배우고 또 알게 될 것이며 그것은 바로 김씨 왕조의 몰락을 의미하며 그때가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이다.

쓰레기 오물풍선까지 날리며 이젠 북한 젊은이들의 피까지 러시아로 팔아야 하는 북한이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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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4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68)

 

JC칼럼- 197

 

(지난 호에 이어)

 

이제 벌써 7월, 지난 며칠 간은 그래도 캐나다의 짧은 여름을 흉내 내듯 제법 더웠다. 이제 앞으로 한 달이면 추석 행사니 뭐니 하면서 또 스산하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테니 7월 한 달 동안은 캐나다의 귀한 여름을 맘껏 즐기면 좋겠다.

어찌 보면 그래도 우리는 이곳에서 너무 덥다, 춥다 하면서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지만 아직도 지구촌 여러 곳에선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혼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죽어 나간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전쟁과 다툼이 없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고, 지금도 또 미래도 우리 인류는 계속 싸우며 살 것을 생각하니 다시 한번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 묻고 싶어진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쉽게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거기다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과 김정일은 이 지구촌을 더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과연 누가 먼저 핵 버튼을 누를 지는 모르지만 그 시기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그 옛날부터 우리 한민족은 오랑캐들의 수많은 침략을 긴 시간 동안 받았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전쟁을 거치고 또 1900년 초에는 36년간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나라 없는 뼈저린 아픔과 수모를 겪기도 했다. 세계 2차대전 후에는 해방을 맞자마자 곧 6.25전쟁을 겪었고, 이젠 남과 북 두 나라가 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또 하나의 계속되는 긴장 속에 살아간다.

 

이처럼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도 파란만장하지만 지난 수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방랑생활을 해온 이스라엘 민족이야말로 기구한 운명 속에 살고 있다. 성경을 통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4천 년 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방에서 살다가 신의 음성을 듣고 당시 팔레스타인이 거주했던 젖과 꿀이 흐른다는 땅, 가나안으로 이주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손이 번성하며 그의 축복을 훔친 아들 야곱의 시대에 이르면서 때마침 그곳에 흉년이 들어 살기가 어려워지면서 이집트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400년 동안 노예처럼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세가 나타나 출애굽을 하면서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는 고초를 겪었다.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고 또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을 한 끝에 겨우 조상들이 살던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왔지만 그곳엔 이미 팔레스타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앞세워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겨우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사울, 다윗, 솔로몬 왕들을 거치며 예루살렘 성전까지 건축했다. 이제야 좀 편안하게 사는가 했는데 근처의 나라들은 어찌 보면 침략자인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고, 결국 바빌론과 앗시리아에 의해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나라가 없는 모든 유대인들은 그들의 포로가 되어 온갖 고생을 하다가 그 다음엔 페르시아에 점령을 당하기도 했다. 또 로마에게 지배를 받는 등 오랜 세월을 나라의 주인만 바뀔 뿐 포로 생활은 여전하게 계속되었다. 노예생활이 너무나 힘들어 로마를 상대로 독립전쟁도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은 참패를 당하고 오히려 어렵게 세운 예루살렘 성전마저 서쪽벽만 남기고 모두 불타고 부서져 버린다. 이 벽이 지금까지 남아서 아직도 유대인들은 그 벽에 기대며 기도를 하고 있고, 그 벽이 지금에 말하는 통곡과 눈물의 벽이다.

이렇게 로마인들에게 반항과 혁명을 일으킨 결과는 수많은 유대인들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또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피난민(디아스포라)이 되어 여러 나라로 이주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어떤 나라도 그들을 반겨주지 않았다. 그곳엔 지금 로마정권에 의해 부서졌고, 간신히 남아있는 통곡의 벽 그리고 이슬람 사원이 함께 세워져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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