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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상 (로열르페이지 한인부동산 대표)

JOH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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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0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13)

 

(지난 호에 이어)

 지금 미국은 SVB은행 등 몇개 은행들이 부도의 기미를 보이는 것 때문에 지난번 연준은 이자율을 0.25%P 올리는데 그쳤지만, 인플레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고 있는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들은 인플레가 세계가 원하는 2%대로 내려 앉지 않는다면 이자율 상승 문제는 계속해서 우리를 위협할 것이다.

 

 필자는 몇 가지 돌보아야 할일들이 있어서 한국 방문 중에 있는데 팬데믹 이후에 첫 방문이지만 역시 우리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바쁘고 모든 것이 전이나 지금이나 무척 빠르게 돌아간다.

 

 한국을 향해 나는 비행기 안에서 긴 시간이 지루해 옛 명화들의 주제곡을 듣다 보니 옛적 젊은 시절에 본 영화들의 장면이 떠오르면서 옛추억을 더듬게 되고 갑자기 지금 나의 모습이 처량해지고 초라하다는 생각이 드니, 오래 전 조국을 떠나 이민의 삶에 지치고 바랜 많은 세월들이 마치 한순간 같았고 정말 부질없이 모든 것이 평생 헛수고만 한 것 같다.

 

 Tara's Theme(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40), Love Story Theme(러브스토리 1970), Some Enchanted Evening(남태평양 1958),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모정 1955), Summertime in Venice(여정 1955), Edelweiss(사운드 오브 뮤직 1965), Over the Rainbow(오즈의 마법사 1939), As Time Goes by(카사블랑카 1042), Moon River(티파니에서 아침을 1961), The Sound of Silence(졸업 1967), Speak Softly Love(대부 1972), A summer Place Theme(피서지에서 생긴 일), Sunflower(해바라기 1970), Plein Soleil(태양은 가득히 1960), Sunrise Sunset(지붕위의 바이올린 1977), Lara's Theme(닥터 지바고 1965), East of Eden(에덴의 동쪽 1955), A man and Woman(남과 여 1966), Ben-Hur Overture(벤허 1959), Finale From East of Eden(에덴의 동쪽 중에서 1955), Giochi Probit(금지된 장난 1952), Fly Me to the Moon(오징어게임 2021)…

 

 이렇게 흘러간 노래들의 리듬마다 떠오르는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이제 대부분 사라졌고, 몇 남은 사람들도 이젠 그 유명했던 인기와 화려했던 생활들이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그저 몇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간신히 이름들만 아련히 떠오를 뿐이니, 참으로 인생이 생전에 무엇을 소유했든, 어떤 부귀영화를 누렸든,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또 한번 느껴본다.

 

 80억이란 지구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자기 나름대로의 드라마를 만들며 살아가고, 그 드라마는 사후에 우리를 창조하신 주 앞에서 상영이 된다는데 무엇이 선인지 또 악인지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 때문에 이미 선과 악을 알아버린 우리는 오늘도 세상의 욕심에 허우적거리며 막연히 선하게 산다면서도 마음으로 또 행동으로 온갖 죄를 짓고 살고 있다.

 

 내가, 아니 우리 인간 모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정확히 어떻게 어디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선하게 사는 것인지 기준을 정확히 모르기에, 아니면 때론 모른 척하기에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삶을 정당화시키면서 나 자신을 위로하고 속이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난 아무리 나 자신의 생각과 삶을 정당화시킨다 해도 절대로 용서는 있어도 타협은 없다는 그 분의 말씀은 언제나 나를 두렵게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한국에 도착을 하고 택시를 타고 호텔에 짐을 풀었다.

 

 여러 날을 지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코비드 시대와 지금의 친구들의 삶이 많이 달라진 것이 있는데 나이가 더 든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포기를 하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아직도 한참 일할 나이인데도 이미 은퇴를 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문제는 이들 모두가 매일 이곳저곳 놀러 다니는 것이 그들을 무척이나 바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곳 한국은 나이 65세가 넘으면 교통비가 면제되기에 노인들이 여기 저기 많이도 바쁘게 움직이는데, 이 많은 경비를 담당할 세금은 누가 내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병원비, 약값 등 모두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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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3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12)

 

 지루하고도 길었던 겨울이 지나면서 길거리 여기 저기 쌓였던 눈덩이들도 하나씩 녹아내리며 소금에 절어들고 눈속에 묻혀있던 흙덩이들이 길거리를 더럽히고 있는데, 어서 소나기라도 한번 쏟아져 깨끗한 도로와 푸른 잔디와 나무의 초록색 봉우리들을 보고 싶다.

 

 새해의 첫날은 지난 1월 1일이 맞는데, 우린 언제나처럼 봄을 맞이할 때가 새해인 것만 같은 것은 아마도 봄이 올 때 우리 모두는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움직일 마음과 준비가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팬데믹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던 우리들도 이제는 그런 몹쓸 전염병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빨리 끝나고, 우리를 괴롭히는 인플레이션이나 경제공황의 위험도 사라지고, 이제 그만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원한다면 욕심인가 아니면 망상일까?

 

 미래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은 그것이 욕심이든 망상이든 별로 달라지는 건 없지만, 우리는 많은 교육자들과 성직자들 아니면 조상의 가르침으로 삶에 대한 태도가 비관적이 아닌 낙관적으로 살라고 배워왔다.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하면서 살라는 말이며, 근심과 걱정을 하지 말라는 말이나 똑바른 판단이나 계획 없이 사는 것은 결국 인생을 망친다는 말이다. 특히나 이자율이 올라가면서 미국엔 벌써부터 은행들의 부도와 폐쇄 조짐이 확연한 시대에 말이다.

 

 이렇게 두렵고 살벌한 생존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남은 삶에 대한, 또 우리의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 하고, 고민과 걱정도 해야 하며, 아무것도 방심해서는 안되며, 단 하루도 느긋할 수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적당히 놀고 쉬면서 일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이미 옛말이며, 그런 삶은 아직도 문명과 과학이 못 미친 먼 나라 후진국들에서 가능한 일이고, 미국 또는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그렇게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다.

 

 예를 들어 이곳 캐나다에 살면서 몇 전문직종을 제외하고 일반 직장인들의 삶을 살펴본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해의 경험을 거쳐도 연봉이 십만불 내외이고, 부부가 번다 해도 이십만불 벌기가 쉽지 않고, 그나마 세금을 떼고 나면 부부가 집에 가져올 수 있는 돈은 매달 만불 정도일 것인데, 거기에다 주택 모기지나 부양 가족이 있다면 도저히 풍족한 삶이란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팬데믹을 지나면서 무서운 인플레가 다가왔고, 또 그것을 이용해 각 그로서리 마켓, 식당들의 폭리가 물가를 끌어올리며 웬만한 수입이 없으면 사치는 그만두고라도 그냥 평범하게 먹고 살기도 힘들어졌다.

 

 이런 모든 악재들은 부동산 침체기를 초래했고 따라서 은행이나 부동산 변호사들, 부동산 중개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또 건축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많은 일거리를 빼앗아 버렸다.

 

 전에 필자가 팬데믹 시절에 재택근무가 유행하면서 출퇴근의 필요가 없어져 너도나도 비싼 416지역을 피해 집값이 저렴한 외곽 905 지역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성 글을 여러 번 게재했었는데, 지금의 현황을 보면 416지역보다 905지역의 집값이 훨씬 많이 내려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당연한 것은 이제 팬데믹이 끝나면서 재택근무가 사라지고 다시 출퇴근 시대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란 없고 모든 것이 자주 바뀌고 변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한동안 부진했던 주택시장 역시 언젠가는 다시 바뀐다. 모든 것을 긍정적이고 편하게만 생각하고 사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그래도 고민하고 연구하고 걱정하며 남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캐나다는 지난번에 이자율의 오름세를 일시 중단했지만 우리가 기대며 살고 있는 이웃나라 미국은 생각과 방향이 달라 결국 그 나라가 이자율을 올리면 이곳 캐나다는 물론 멀리 한국까지도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매달 내는 모지지를 감당하며 살기가 지금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일 중에 하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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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6
JC 칼럼(140)-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11)

 

(지난 호에 이어)

 이제 3월 하고도 중순에 접어들었는데 아직도 날씨는 쌀쌀하고 소금과 흙모래와 뒤섞인 눈더미는 여기저기 산처럼 쌓여있다. 참으로 지루하고 지겨웠던 또 하나의 겨울이 지나가면서 우린 곧 또 하나의 계절을 맞이한다. 봄! 기다렸던 봄이 다시 오고 나무마다 새싹을 돋우며 땅이 푸른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다음 달이면 골프 칠 생각을 하며 골프채를 재정비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이 별 의미도 없이 또 하나의 세월을 지나치며 무심히 늙어간다.

 

 필자는 공상영화나 과학소설 등을 보거나 읽는 것을 좋아해 얼마 전 어느 유튜브에서 한 과학자가 생명공학에 대해서 강의하는 영상을 보았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오는 2045년이 되면 인간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계산하면 22년 정도 후의 일인데 필자의 나이로서는 95세가 되는 나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필자의 경우 95세까지만 견디면 앞으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말이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사는 것을 원할까?  

 

 그의 말에 의하면 과거에도 또 지금도 우리 인간의 생명공학의 발전은 빠르게 연구 또 진행이 되어왔고, 또 앞으로는 더욱 더 빨라지면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유전자를 해독 또는 편집을 해서 인간은 영원히 어떠한 병에 걸리지도, 또 걸렸다 해도 예방 또는 치료가 가능하고, 결국 우리 인간은 영원히 죽지 않는 신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편집(Editing Humanity)하는 기술(Crispr)이 발달되어 눈색깔도, 또 머리색깔도 마음대로 변하게 할 수 있고, 본인이 원하면 신체구조를 포함해서 몸짱도 마음대로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의 신체가 늙어가는 염색체를 잘라내는 기술(Telomere)로 사람은 더 이상 늙지 않으며 그것을 유전자 해독기술이라 말하며, 지난 2013년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가 유방절제 수술을 하며 물의를 일으켰던 것 같은 일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정말 일어난다면 그것에 대한 우리가 상상치 못하는 부작용도 있을 것인데 우선 제일 큰 문제가 각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생명에 대한 윤리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고, 다른 말로는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 아기를 낳을 필요없이  3D프린터로 카피를 하든지 또 원하는 유전자로 사람의 장기도 맘대로 만든다는데 아기 역시 만들면 된다는 말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 보았던 공상영화가 이제 현실로 다가온 것처럼 이런 것들 역시 현실로 다가올 수 있고, 또 믿어지지만 과연 이렇게 죽음이 없이 영원히 사는 것이 축복인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고, 또한 우리가 믿고 있는 신이 이런 것들을 허락할지도 잘 모르겠다.

 

 과학 문명이 발전되며 이런 신기하고도 해괴한, 어찌 보면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반면에 지구는 곧 멸망한다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역시 만만치 않다. 이젠 우리가 보고 듣는 천재지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 각 나라들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지구 온난화의 현상으로 점점 녹아가는 빙하는 지구의 땅을 점점 잠식시키고 각 곳에서 일어나는 물난리, 끊이지 않는 산불 등 세계 곳곳에서 난리다.

 

 세계의 산업화로 인하여 점점 줄어가는 아마존과 아프리카의 삼림 등은 지구가 필요한 산소배출을 줄이고, 우리 인간들의 산업화로 인한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탄소배출양은 태양을 가리고 오존층을 무너트리며, 당장 한국만 보더라도 나라 한쪽은 극심한 가뭄에 따라 여기저기의 산불, 한쪽에서는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와 폭풍들은 이제 그냥 무심히 지나칠 일들이 아니다.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북극의 온난화는 우리 한국을 각종 재난으로 괴롭히고 있는데, 이런 북극의 온난화는 만년설을 녹이며 바다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런 기후 변화는 우리 인간들끼리 총과 칼로 싸우며 서로 죽이고 죽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우리 지구촌을 멸망시킬 수 있다.

 

 한쪽에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방법을 연구하는 반면에 한쪽에서는 우리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이 썩어가고 있다. 영원한 삶과 지구촌의 멸망, 과연 어느 쪽이 먼저 우리 인류에게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겐 이쪽도 저쪽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닌 것 같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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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4
2023-03-09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10)

 

(지난 호에 이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이 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이 모든 것이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매일매일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다 해서 우리 모두가 숨죽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말이다. 바로 지금이 기회이고 또 찬스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며 살고 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이 그냥 살아도 쉬운 것이 아닌데 우리는 언제나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서 힘든 삶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남의 지위, 가정, 경제력, 권력, 인종, 생김새, 젊음, 체력, 능력, 자식들, 배우자 등 수천 가지를 나 자신도 모르게 매일매일 비교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비참하고 초라하게 만든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가르쳐줘서도 아닌데 우린 평생 죽는 날까지 나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괴로워 한다. 우리의 지인들과 선조들은 우리들에게, 또 우리는 자식들에게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라 타이른다. 하지만 말이 쉽지 그렇게 말하는 우리 자신도 계속 남과 비교를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 비교가 성장을 위한 것이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자신을 비하, 비관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고 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피조물인 우리는 그 누구도 남이 알거나 모르거나 고민이 없는 사람은 결코 존재치 않는다. 아무리 우리의 삶을 포장하고 남에게 완전한 모습으로 보이려 꾸며보지만 결국 나 자신은 누구이며, 얼마나 보잘것 없고, 한없이 추하고 비겁하고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다면 본인이 바보이거나 아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착각 속에서 사는 사람일 것이다.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할 때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 감각을 느끼지 못하지만, 나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는 시기심, 질투심, 그리고 공연히 미워하는 마음까지 생길 수도 있고, 또 그것은 나 자신을 침울하고 초라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즈음엔 코비드 시절을 겪으면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고, 손발이 떨리고, 가슴이 뛰며 쓰러질 것만 같고, 병원엘 가도 잘 알 수 없는 공황장애,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 같다. 갑자기 긴장이 되고, 불안하고, 또 극단적인 상상을 하며 마치 곧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바로 그런 기분 말이다.

 

 특히나 이런 현상들은 사람에 따라서 길고 지루한 겨울철에 더 심해지며 자주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필자가 의사는 아니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병원에서 주는 진정제만 먹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자꾸 움직이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좋은 것 같은데 말이 쉽지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올들어서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다는데, 필자 역시 지난 코비드 때문에 한국 방문을 미루다 다음 주엔 아내와 함께 한국 방문길에 오르는데, 비행기 표값도 무척 올랐지만 좌석 역시 차지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가끔씩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필자의 나이에 직장을 다니는 친구는 전무하지만 아직도 생존해있는 은퇴를 한 친구들이나, 사업이나 농사일을 하는 친구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그 나이에도 왜 그리 바삐 사는지 오히려 캐나다에서 아직도 일하는 필자보다 더 바쁘게 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일을 하건 안 하건 왜그리도 모임들이 많은지, 모임의 종류도 정말 다양한데 동창회, 향우회, 산악회, 낚시회, 투자회, 반상회, 동우회 등 하다못해 유치원, 초등학교 모임까지 그 모임들의 종류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그것도 몸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이지만 모두가 이곳 캐나다보다 훨씬 바쁘게들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좋은 것인지, 아님 나쁜 것인지 모르지만 필자가 한국을 떠나올 때는 상상도 못하는 생활들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아예 겨울을 동남아 쪽에서 골프를 즐기며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이나 많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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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4
2023-03-02
JC칼럼(138)-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9)

 

(지난 호에 이어)

 아직도 우리 고국 대한민국은 개스값을 포함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모든 생필품 값이 오른 것이 현 정부 또는 누군가 특정인에 의해서 오른 것처럼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여기저기 데모들을 하고 있는데, 누가 그들을 조종하고 있는지 몰라도 실제는 네 탓도 내 탓도 아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변해가는 세계의 정세, 기후변화, 각 나라들의 아집과 욕심으로 생긴 것이다.

 

 이런 일들은 너의 잘못 너의 책임도 아니고 또 우리 대한민국에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며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니, 이럴수록 서로가 힘을 합하고 머리를 함께 하며 해결할 방법을 찾는 일이 옳은 일이 아닐까?

 

 인플레가 올 거라는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질 때부터 우리 모두는 이미 알던 일이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얼마나 더 심해질지, 언제 끝날지 우리는 알 수가 없는 일이며, 그런 불가항력 일들이 일어났다고 정부를 비난하고 몰아내 버리고, 또 어떤 다른 정부가 들어선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지금은 캐나다를 포함해서 세계의 모든 나라가 인플레의 고통을 받고 있지만 먹을 것이 없는 후진국들처럼 길거리에 나와 정부를 향하여 데모를 하지는 않는다. 저마다 당마다 민생을 앞세워 가면서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고는 있는데, 잘 살펴보면 민생은 둘째고 우선 나 살고 너 죽자는 위선적이고 위험한 행동들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나를 위해서나 당을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나라와 민중을 위해서만 올바로 판단하고 일할 수 있는, 정말 도덕과 양심을 중요시하는 진정한 애국을 하는 정치가들이 나와서 우리 대한민국이 경제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진정한 선진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또 한 장의 달력이 넘어가면서 벌써 3월이 되었는데, 곧 추운 겨울을 피해서 플로리다로 떠났던 일명 Snow Birds들이 골프채를 챙겨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는 계절이 되었다. 이곳 온주의 골프장들은 대개 4월 중순이 되면 모두 개장을 하지만 적어도 5월이나 되어야 질었던 땅이 마르고 골프 신발이 진흙에서 해방이 되고 본격적인 골프 시즌이 시작된다.

 

 워낙 한국 하고는 살아가는 방법들이 다른 캐나다의 생활이기에 골프란 우리 이민자 특히나 한인동포들에겐 떼어놓을 수 없는, 나이가 들고 은퇴를 한 분들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야 은퇴를 했으니 괜찮을 수 있지만 점점 올라가는 골프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도 우리 서민들에겐 부담으로 작용을 하기에 특히나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골프장들은 하나하나 집터들로 바뀌어 점점 줄어드는 바람에 골퍼들의 입지가 세월이 갈수록 더 좁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골프 역시 경제적인 여유와 건강과 시간이 허락을 해주어야 즐길 수 있는 운동인데, 가끔씩 골프장엔 물론 보이시던 분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을 때마다 궁금해서 수소문을 해보면 돌아가셨거나, 아님 아프시거나, 또 겨울날에 낙상 사고로 다치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연기처럼 속절없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 왜그리도 버둥대며 살고 또 살아야 했는지 다시 한번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 질문을 해본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부동산 중개업이나 또 부동산 전문 변호사 사무실, 또 대출을 해야 하는 은행들 모두가 요즈음은 개점휴업 상태이다. 한마디로 부동산 침체기가 온 것인데 집값은 점점 떨어지고,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으니 이쪽 계통에서 종사하는 분들의 경제적인 고통이 말이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예견은 했지만, 문제는 아직도 끝이 안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계속적인 이민자 유입이 그나마 희망을 주고 있지만, 이제 불황에 들어선 글로벌 전체를 본다면 기분이 썩 좋은 그림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내일의 삶을 어떻게 계획하며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냥 모든 것이 나아질 때까지 아무것도 손대지 말고 조용히 숨을 죽이며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남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의 의견은 많이 다른 것이, 지금이 바로 남보다 앞서 나아갈 기회이며 움직여야 할 때라 생각한다. 부동산을 사던 팔던 지금이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란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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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4
2023-02-23
JC칼럼(137)-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8)

 

(지난 호에 이어)

 사람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내맘대로 또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생로병사(生老病死)란 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과학과 의술이 발전되면서 100세 시대를 말하며 이제 곧 다가온다는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까지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100세를 살고, 아니면 영원히 사는 것이 우리 인생에 진정한 축복일까? 산다는 것은 거의가 고통의 연속인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대체로의 삶이 자식들의 교육과 성공에 의지되어 살아왔고 또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데, 과연 자식들의 사회적 성공과 잘됨이 나의 성공이고 우리의 삶에 진정한 가치일까?

 

 필자는 주위에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 그리고 모든 노력과 시간들을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바치며 평생을 살다가 결국 노년이 되어 가난하고 고독하게 삶을 살다가 병들어 죽어가는 경우를 많이도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꼭 비참한 인생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 그들의 삶의 목표였고 또 기쁨이었으니 별로 아쉬울 것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한다 해서 꼭 자식들이 행복하게, 또 성공적으로 산다는 보장도 없는데다 정작 본인들은 세월이 갈수록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능해지고 이제 그만 가진 것조차 없어진 부모에 대해 자기 살기도 바빠진 자식들의 외면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사람이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우리가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서로 원만한 인간관계와 부족하지 않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 말할 수 있다. 거기에 또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나로 사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것인데, 내가 나를 모르고 산다면 그것 역시 행복한 삶은 아닌 것 같다.

 

 누구의 아들로, 아님 누군가의 엄마 또는 누군가의 아내로 사는 것보다는 내가 나로 살 수 있다면 우리가 노년이 되었을 즈음에 후회와 외로움과 허무함이 덜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나의 가족들을 무시하고 나는 나로 산다며 혼자 잘난 체 하면서 가족을, 아니면 남을 무시하며 살라는 말은 전혀 아니고, 나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능력을 잘 파악해서 내가 지닌 단점으로 혹시 남에게 상처를 주고 혹 폐가 되면 안 되고, 또 나의 장점으로는 주위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하지만 언젠가는 먼저 가든 나중에 가든 나는 끝까지 혼자인 것을 잊지 말고 준비하며 사는 것이 옳은 태도인 것 같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그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언젠가는 헤어질 약속을 하고 만나는 것이 우리 인간이며, 그 누구도 헤어짐에 대한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말이다.

 

 지난주엔 갑자기 토론토시장 John Tory가 어느 여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고백하면서 시장직을 사퇴한다는 발표를 했다. 많은 토론토 시민들이 놀라기도 했지만 저마다의 의견과 비평을 하는 것을 보고 들었는데, 한쪽에선 고백을 했으면 됐지 사퇴는 철회하라는 반면 다른 쪽은 당연히 정치가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으니 그만두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언제나처럼 반반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물러나는 쪽으로 결정을 해버렸다. 공인으로서뿐 아니라 그 누구도 불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본인이 목적해서가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토론토시장을 보면서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재명씨의 가짓수도 많고 금액도 장난이 아니고, 건수도 장난이 아닌 부정부패, 거기에다 모 배우와의 섹스 스캔들은 건수에 끼지도 못하는 사건으로 인한 검찰과의 싸움이 많이도 비교가 된다.

 

 누가 옳은 것은 역사가 말해주겠지만 이미 검찰의 구속 영장이 발부가 되었는데 아직도 한쪽은 검찰이 옳다 한쪽은 이재명은 죄가 없다며 일반 국민들은 또 역시 반반으로 나뉘어 데모들을 하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자기의 도덕적인 잘못을 인정하고 일부 주위의 만류를 고사하면서 명예를 중요시하며 퇴직하는 토론토시장 John Tory의 행동은 우리에게 많은 존경심과 좋은 이미지를 심어 놓았고, 또 한번 나는 얼마나 도덕적으로 살아왔나 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만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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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6
JC칼럼(136)-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

 

(지난 호에 이어)

지난 토요일엔 필자가 일하는 회의실에서 씨알문화센터에서 주최한 유언장 작성 및 한국과의 복수국적 취득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회의실이 꽉 차고도 넘칠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했다.

 

 이런 세미나를 주최할 때마다 제일 힘든 것이 이런 방면에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한국말로 구사할 수 있는 전문인들을 구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둘째 아들이 경영하고 있는 변호사 Firm에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이민 전문 변호사와 유언장과 Family Law를 전문하는 젊은 한국인 변호사들이 있어 비록 주말이지만 어렵게 섭외를 해서 모시게 되었고, 또 한국 총영사관에서도 적극 협조를 해주셔서 영사님을 모실 수가 있었다.

 

 참석자들은 역시 노후를 걱정하시는 장년층과 노인분들이 많았는데 한국에서 거주를 할 수 있는 거소증이나 복수국적을 취득하게 되면 한국 의료보험은 물론 교통카드의 혜택도 받을 수 있기에 이곳에 사는 동포들의 관심이 많을 수 밖엔 없는 것 같다.

 

 이 나라의 의료시스템이 워낙 현실적이지 못하고, 특히나 언어 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에겐 모국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에 관심이 안 갈 수가 없고 그뿐 아니라 노인들에겐 꼭 필요한 치아문제도 저렴한 치료비와 뛰어난 치과의사들의 기술이 우리 한인동포들을 더욱 유혹하고 있다는 말이다.

 

 필자가 들은 바에 의하면 이곳 캐나다에 비해 미주동포들이 고국의 거소증과 복수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보통 난리가 아니란다. 우리가 떠났던 50-60년 전의 한국이 이제는 개인 국민소득은 물론 일반적인 삶의 질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우리가 선진국이라 자랑해왔던 이곳 캐나다보다 좋아 보인다. 적어도 우리 한인들에겐 지금의 한국에서의 삶이 더 낫다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정작 한국에서 세금을 납부하며 나라를 부강시켜 놓았더니 이 나라를 떠났던 동포들이 뒤늦게 돌아와 온갖 혜택을 누리느냐며 뒤늦게 모국으로 귀향하는 해외동포들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은가 보다.

 

 하긴 그런 분들의 마음도 이해는 되지만 50-60년 전에 고국을 떠났던 모든 사람들이 나라를 버린다는 마음보다는 당시엔 워낙 외화가 부족하고 못살던 한국이었기에 돈을 번다는 한가지 마음 밖엔 없었고, 또 실제로 필자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며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많은 돈을 보낸 것도 사실이며, 어쩌면 그것 역시 애국이었고, 한국이 잘 살 수 있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으니 미안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데 아직도 끝날 줄을 모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엉큼한 중국인들의 풍선사건, 그리고 이젠 또 튀르키예(Turkiye)란 나라의 강진으로 매일매일 지구촌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다.

 

 원래 우리는 영어명으로 터키(Turkey)라 부르지만 정작 터키란 뜻이 칠면조, 즉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을 터키라 칭하기에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터키란 이름을 싫어한다니 튀르키예로 말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튀르키예의 수도는 앙카라, 그리고 최대 도시는 이스탄불인데 8개국과 국경을 접한 이 나라는 내란에 고전을 거듭하며 나라살림이 엉망이 되어버린 시리아 하고도 국경을 맞이하고 있고, 그 나라 역시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지진으로 인한 양쪽 나라의 피해는 경제적으로도 다시 복구가 어려울 정도의 큰 타격을 입었고, 현재 각 나라들이 도움의 손길을 펴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충분치 않다 보니 이런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길 때마다 언제나 일어나는 약탈과 강도들까지 기승을 부리는 모습이다.

 

캐나다에서 편히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우리 역시 무슨 큰일은 할 수가 없지만 조그만 성금이라도 동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매일매일 우리의 지구촌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도 없이, 또 예고도 없이 터지는 와중에도 무심한 세월은 흘러서 벌써 2월 중순도 훌쩍 지나버리고 다음 달이면 벌써 삼월이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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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9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6)

 

(지난 호에 이어)

 전에도 말했듯이 이성을 사랑하는 것도, 남을 존경하는 것도, 또 신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로 나의 노력으로 또는 남이 억지로 하래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역시 나의 노력과 의지나 아님 목사님이나 또는 어떤 특정인의 강요나 설명에 의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며, 그것이야말로 그냥 믿어져야 믿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으며 또 믿어질 수 있을까? 그래서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의 머리와 노력으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 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이 우리를 도와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성경이고 하나님이며, 우리는 믿음 역시 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믿음을 달라 기도를 하는 것이다.

 

 신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인간들에겐 창조론을 믿지 않을 자신이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말이며,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해도 산다는 것에 또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지쳐서 아님 강한 척 모르는 척 그렇게 척을 하며 살고 있지만, 그 누구도 사후세계에 대해서 겁을 안 내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지난번 어떤 한국 드라마를 보던 중 "기쁨을 나누는 것은 질투를 불러오고 가난을 나눈다는 것은 약점을 가져온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약한 사람이나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한다는 말인 것 같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나쁘고 악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악함을 절제시키고 또 우리의 못된 마음과 행동을 반성케 해주는 것이 바로 믿음이기에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꼭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주에는 필자의 딸이 살고 있는 바베이도스(Barbados)라는 섬나라에 다녀왔는데 카리브해 동쪽 끝에 위치한 이 섬나라는 1563년에 포르투갈인들이 발견했고 1627년부터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1966년에 독립을 했는데 지난 수십 년간 주로 사탕수수를 재배 수출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젠 세계적으로 설탕을 대체하는 제품은 물론 설탕을 그전같이 선호치 않기에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만이 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관광밑천이래 봐야 아름다운 해변가 그리고 일년 내내 즐길 수 있는 따듯한 계절뿐이기에 그리 수입이 넉넉지 못한 이 섬나라의 살림은 빡빡한 것 같다. 30만 명도 안 되는 주민 대부분인 90%가 흑인이며 워낙 아시안계가 없다보니 비록 흑인들이지만 동양인에 대한 차별도 느낄 수가 있다.

 

 거의 적도에 위치한 이 섬나라는 필자가 다녀본 나라들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바다 해변가와 고운 백사장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골프를 좋아하는 우리 한인들이 가기에는 별로인 것이 우선 골프장은 고작 6개밖에 없는데다 골프를 즐기기엔 너무 비싸고 또 비행시간도 5시간 이상 걸리니, 가기가 수월하고 편리하고 저렴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선 아닌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골프비만 비싼 것이 아니고 워낙 모든 것이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그로서리는 물론 일반적으로 모든 것이 비쌀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섬에 위치한 Sandy Lane이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프장엔 마이클 잭슨, 타이거 우즈 등 많은 유명인들이 결혼식을 했고, 세계적으로 부유하거나 유명한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긴 하지만 우리같은 서민들이 한 주, 두 주 골프여행을 하기엔 부담이 많이 가는 관광지인 것 같다.

 

 그저 사방이 아름다운 비치 그리고 평화로운 조그만 섬나라, 코코아 열매와 원숭이가 많은, 그리고 계절이 여름 하나뿐인 나라로 기억하면 충분한 것 같다.

 

 벌써 세월은 또 흘러 2월 하고도 중순인데, 우리가 태어난 조국 대한민국에는 이제 코비드가 잠잠해지나 했더니 갑자기 전에 없었던 유난히 춥고 혹독한 겨울이 닥치며 오르는 난방비와 인플레가 큰 이슈로 다가섰다.

 

 서민들의 경제를 걱정한다며 서로가 네 탓이라고 손가락질과 고성을 지르는,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싸움을 계속하는, 국민들이 모셔 놓은 국회의원님들은 정권이 바뀌건 아니건 참으로 변함이 없으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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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JC칼럼(134)-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5)

 

(지난 호에 이어)

 구약 성경을 읽다보면 너무나 많은 구절들이 이해가 안 되며, 우리 인간이 배운 도덕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고, 구약 전체가 마치 죽고 죽이는 전쟁과 비극의 연속인 것만 같다.

 

 필자를 포함해서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가질 수 있는 의문들 중에 몇 가지를 말해 본다면, 성경은 어디에도 원본이 없고 신이 아닌 누군가가 써놓은 여러 개의 복사본만 있으니 어떤 것이 진짜이고 또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또한 너무나 많은 세계의 문제들과 전쟁들이 종교에서 시작되고, 여성을 비하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를 하라면서도 동성애를 무척 혐오하고 노예제도를 당연시하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자식들을 불타는 지옥불에 처넣으신단 말인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씀들이 많기도 하다. 이런 말이 안 되는 이유를 따지기 시작하면 구약에서 전개되는 첫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계속 서로를 살인하고 죽이는 잔인한 전쟁과 다른 인종들을 몰살시키고 남의 땅을 정복하는 일들이 계속된 것은 물론 우리 인류가 해서는 안 될 일들이 너무도 많이 행해졌고, 더구나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허락하심은 물론 명령까지 하셨다는 말이다.

 

 이렇게 불합리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구약을 보완하고 율법을 완성케 해주는 것이 예수 탄생 후 나온 신약이라 말하며, 말씀대로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완성키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예수님의 공생을 적어놓은 것이라 한다.

 

 저 멀리 유대인의 땅 베들레헴(Bethlehem)에서 태어나시고 예수님의 부모 고향이었던 나사렛(Nazareth)에서 잠시 살기도 하신 예수는 우선 사람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를 하시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시고, 물로 포도주를, 또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두 쪽으로 수천 명을 먹이시고, 죽은 사람이 일어나게 하는 등의 기적을 일으켰고, 특히나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을 하셨다는데, 과연 이런 것들이 아무리 목사 또는 목회자들이 온갖 예를 들며 설명과 설교를 한다 해서 그리 쉽게 믿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나마 30세에 시작해 33세까지 고작 3년 동안만 공생의 길을 걸으시고, 그 3년 동안 포도주 만드는 일부터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여러 가지 병을 고치시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다는 말씀이 주를 이루는 것이 신약인데, 우리 인간의 두뇌로 이해는 당연히 안 되고, 과연 어떻게 믿을 수가 아님 믿어질 수가 있단 말인가?

 

 특히나 구약의 성경말씀대로 말하자면 죽임을 당하고 패망을 당한 민족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했다는 이유로 살해와 고통을 당했다지만, 어찌 보면 그들 아니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이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이라면서 말이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인종 즉 흑인, 백인, 동양인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고, 왜 신약 때의 예수님은 중동 쪽에만 계셨는지, 한국도 오시고 넓은 지구에 여러 나라를 다니셨어야 맞는 거 아닌가?

 

 물론 당시엔 교통이나 미디어가 지금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시던 예수님은 왜 이곳 저곳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시는 기적은 행하지 않으셨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공정하신 하나님이라면서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고, 유대인만 택함을 받은 민족이라니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이렇게 우리의 눈과 귀와 머리에는 수많은 질문과 의문, 모순이 있음에도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우선 무엇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진화론보다는 그저 막연히 믿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아님 사후 세계에 대한 우리 인간의 두려움 때문인지, 아님 우리 인간이 워낙 약한 존재들이기에 무언가를 믿고 싶기도 해서인 것도 같다.

 

 하나님은 어디서 왔으며 왜 하필 사악하고 잔인하고 못된 인간들을 만드셨나 하며 불평과 의문도 갖지만, 그것은 우리가 상관할 일도 또 영역도 아니며 오로지 하나님의 거대한 꿈과 계획은 우리 작은 인간의 머리로 상상도, 생각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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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6
JC칼럼(133)-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4)

 

(지난 호에 이어)

 

 필자는 혹시 우리 인간들도 Albert Camus가 말하는 시지프스가 받은 형벌처럼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인하여 혹 아님 우리만의 다른 죄로 인하여 신의 저주를 받아 우리가 죽은 후에 또 다시 태어나면서 70-80년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또 죽고 또 다시 태어나 똑같은, 아님 비슷한 삶을 영원히 또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해보니 정말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성경 구절에 보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자가 행복하다 한걸까? 누가 뭐래도 우리 인간의 삶이란 누가 누구로 무엇으로 어떻게 태어나고 살아도 99% 고통과 슬픔의 연속인 걸 생각하면 그 누가 또 다시 태어나고 같은 삶을 살고 싶을 수 있단 말인가?

 

 즉 희망도 목적도 없이 고통스러운 행동이나 삶을 끝도 없이 영원히 계속해야 한다는 형벌은 상상하기도 싫은 무서운 형벌이니 말이다. 사람들 중에는 내세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고, 또 사람들이 믿는 종교도 수천, 아니 수만 가지가 있는데 그렇게 많이 존재하는 종교들에 대한 연구는 종교학자들이 할 일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믿는 자도 자기가 믿는 것에 대해서 가끔은 혹시나 하며 의심을 하고 안 믿는 자들도 자기가 안 믿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의심을 한다는 것이다.

 

 일부 종교학자들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영(靈)과 혼(魂)이 있다 말하고 있으며 동물에게는 영(Spirit)은 존재치 않고 오로지 혼(Soul)만 존재한단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혼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영은 심판대에 오른다 말하는데 이런 이론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연구하고 매달려 봐야 정확하고 명쾌한 답은 지난 역사 속에서도 지금도 또 미래에도 얻지 못할 것이니 일찍이 포기하고 본인이 신을 믿고 안 믿고는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셨다니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누구도 지옥불에서 영원히 불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인류는 조상 때부터 끊임없이 좀 더 편하고 좀 더 잘살고 좀 더 많이 소유키 위해서 남을 해치고 또 싸우지만, 한편으론 좀 더 평화로운 삶을 위한 인간의 미래에 대한 연구 역시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그 뿐 아니라 우리 인간은 어디서 온 것이며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아니 온 우주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하는 우리 인류의 뿌리에 대한 연구 역시 계속 진행 중이다. 다른 말로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알기 위해 많은 무한하고 끊임없는 노력과 돈을 쓰고 있지만 우리가 정확히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고 과거나 미래에 대한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진화론(Evolution Theory)을 믿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떤 이는 지구가 50억 년 전 또는 600만 년 전 Big Bang의 폭발 아님 우연히 생긴 루카라는 유전자에 의해서 아님 바위덩어리에서 또는 원숭이에서 제 맘대로 또 제각각의 여러 가지 진화설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글을 쓰고 점을 찍는 그 점 하나보다도 작다는 Big Bang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루카란 원자는 또 어디서 또 우리 조상이라는 원숭이는 어디서 왔단 말인가. 그냥 생겼다고? 그냥이란 단어는 거기에 쓰이는 단어가 아니고 우리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쓰는 단어일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창조론(Creation Theory)인데 물론 이것 역시 이해는 잘 되지 않지만 조물주가 필자나 누구를 이해시키려고 만물을 창조한 것은 만무할 일이니 어찌 보면 하나의 먼지 같은 우리 피조물이 창조에 대한 이유를 전혀 이해나 짐작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구약시대에 일어난 일들을 상상해볼 때 예를 들어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노아의 방주, 애굽의 탈출에 여러 가지 기적들을 상상해 보게 되는데, 그 역시 믿기 어려운 일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진화론의 말도 안 되는 이론과 억지보다는 훨씬 더 공감이 온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대인들이 믿는 구약은 그런대로 믿을 수 있다지만 또 하나의 더 어려운 문제가 생긴 것이 바로 예수의 탄생이고 신약까지 믿어야 하는 일인데 그것은 신교를 믿는 자들에겐 또 하나 넘어야 할 높은 산이며 장애물일 수 있다는 말이다.

 

 짧은 공생 중 일으키신 기적들은 물론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란 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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