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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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왔던 길(The journey we have taken)(3)
JOHNCHO

 

(지난 호에 이어)

저녁에는 시냇물가에 높게 쌓아놓은 성뚝에 어머니와 겨울 준비를 위한 땔감을 사기 위해 올라가면 수많은 나무꾼들이 지게마다 섬만한 나무들을 쌓아놓고 저마다 손님을 기다리며 곰방대(지금의 담배 파이프)를 길게 빨면서 고달픈 인생사를 한탄이라도 하는 듯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노을이 저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한숨을 짓던 표정들이 지금도 역력하다.

 

어린 시절엔 아무 이유나 계산없이 친구를 사귀게 되고 나이가 들수록 이유가 있어야 친구를 사귄다는데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필자는 동네 친구들이 정말 많이도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그때의 코흘리개 친구들의 수많은 얼굴들이 끝도 없이 또 자꾸만 떠오른다. 이제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멀고 먼 이 땅 캐나다라는 나라에 와서 텅 빈 허공 속에서 아직도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일까?

 

만나면 헤어져야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한 대비나 계획을 세우고 만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원래 태어날 때부터 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불안하고 외롭고 또 완전치 못하기에 살아가면서 안전하고 영원한 것을 찾다 보니 신을 믿을 수밖엔 없고 또 신을 찾지 못하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서까지 섬기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살던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쯤 되던 해에 무심코 어머니를 따라서 어느 한 교회 전도관이라는 곳을 들러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당시 박태선 장로라는 사람이 강대상에서 설교를 하는데 관중석에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박수를 치며 교회당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울고불고 저마다 조그만 병에 든 생명수를 산다며 긴 줄을 서있던 아줌마와 아저씨들의 얼굴들이 기억난다. 그곳에 있던 필자는 지루하기도 하고 가끔씩 갑자기 소리치는 설교자가 두렵기도 했지만 가끔씩 내 손에 쥐여지는 신앙촌이라는 곳에서 만들었다는 카라멜은 정말 맛있었고 달콤했었다.

 

당시엔 본인이 구세주 메시야라 떠들며 태초의 아담과, 예수는 실패했고 세 번째인 자가야말로 진짜라며 본인이 감람나무란 호칭까지 받던 그가 역시 또 하나의 사이비 종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필자가 성인이 돼서의 일이지만 그 당시엔 본인 박태선은 물론 그의 두 아들까지도 당시의 7공자라는 퇴폐단체에 이름까지 올리며 대단한 권세와 명예를 누리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얼마 전 죽은 또 하나의 사이비 문선명의 한국 국내뿐 아니라 세계로까지 퍼져나간 통일교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시엔 경기도 소사와 덕소에 신앙촌이라는 마을도 세우고 비누, 과자, 화장품까지 만드는 하나의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당시 박정희 정권도 무시 못했던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박태선의 종교(천부교)와 가족 일가의 역사가 있었다.

 

어찌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태어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사이비 종교들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우리 인간들이 정신적으로 믿고 기댈 수 있는 것이 없는 이상 다가오는 미래에도 이런 것들은 영원히 존재하며 계속 생길 것이다.

 

그 당시에 필자의 기억으로는 나의 어머니 친구 몇 분들이 온 재산을 다 팔고 신앙촌으로 이사를 한다며 서둘던 아줌마들의 얼굴이 기억나는데 어린 마음에도 어찌 그리 그분들이 한심해 보였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안 간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가 전도관이란 교회당에 들어가면 제일 많이 부르던 노래 중 하나가 "오늘도 모여왔네 어린 성도들, 천련성 들어가려고. " 그가 주는 생명수를 마시고 저를 따르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미리 마련한 천년의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게 된다는 정말 웃지 못할 희극 아닌 희극에 휘말려 나이와 인텔리를 막론하고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며 온 재산을 다 가져다 바치는 그들은 당시 어렸던 필자에게도 정말 어리석어 보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각 반의 선생님들이 공부하던 모든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데리고 나와 줄을 세우며 길거리를 걷게 했는데 우리는 물론 거의 대다수가 영문도 모르고 길거리를 활보한 적이 있는데 당시엔 우리보다 큰 중.고등학교, 대학생들의 일부는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누비던 생각이 나는데 그것이 바로 1960년 4.19 학생 혁명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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