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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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왔던 길(The journey we have take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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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당시엔 잘 사는 사람들이라야 끼니를 건너지 않고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을 칭했고, 부자건 아니건 우리 모두는 매주 학교나 동사무소에서 나누어주는 이미 지방과 영양분을 빼어버린 우유가루와 강냉이 가루의 배급을 받고, 또 미국을 비롯한 타국에서 모아진 구호물자란 이름이 붙은 옷가지를 얻어다 입고 다니던 시절이고, 세상 돌아가는 실정을 알고 이해하는 나이가 아니었기에 어렸던 필자는 그런 비극 중에 비극의 슬픈 시절이 마치 하나의 아름다운 지나간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던 유치원 시절이 끝나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유치원 원장 선생님 이름으로 시작하여 초등학교 시절의 담임 선생님들의 이름, 그리고 얼굴들, 유치원 원가와 학교 교가 등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지만 이제 모두가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생각하니 참으로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 것 같다.

 

 학교에서 공부가 끝나고 하교할 때면 학교 앞에 아줌마 아저씨들이 조그만 다라나 당시엔 나무로 만든 빈 사과상자 위에 씹으면 달짝지근한 수수깡 대나 혹은 민물에서 잡은 올갱이(민물 소라)를 삶아 한 홉씩 또는 산에서 캐온 칡뿌리 등을 널어놓고 몇 푼 안되는 코 묻은 돈을 벌어보려 하지만 워낙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필자의 기억엔 그것들을 사먹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나마 학교 앞에는 공책, 필통, 연필과 그리고 사탕이나 비과(당시 일본 카라멜), 군인들이 먹는 건빵 등 몇 가지 과자들이 진열되어 있는 하나의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그 집 아들 이재승이란 친구와 한반이었던 나는 그를 많이도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눈깔사탕(왕사탕)이란 것이 있었는데 워낙 사탕의 알이 커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은데 그 당시의 우리들에겐 한 알을 입에 넣고 나면 아주 오랫동안 단맛을 즐길 수 있었기에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최고의 주전부리 종목이었다.

 

 필자는 부모님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시절 1학년 때인가 교회당 안에서 헌금봉투를 주웠는데 얼마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엔 나이가 많이 어렸다 해도 남의 것을 훔친다는 죄의식이 있었음에도 그 돈으로 교회 앞 구멍가게를 들러 사탕 한 움큼을 집어들고 동네 친구들과 나누어 먹고 그만 어머니에게 들키는 바람에 야단을 경치게 맞고 그 이후론 한참이나 혹시 하나님이 날 잡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교회 가기가 겁이 나고 밤에 잠을 설친 기억이 난다.

 

 당시엔 학교를 다니며 기다려지는 날들이라야 기껏 매년 가을쯤 행해지는 원족(소풍)가는 날과 가을 학교 전체의 운동회를 하는 날 뿐이었고 해마다 그때만 기다리며 마음이 설레던 때가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아마도 그때만이 찐밤, 찐고구마, 옥수수, 김밥, 단감 등 먹거리가 풍성하고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땐 왜 그리도 여름날의 매일이 길었던지 무료하고 지루하던 하루를 지내는 것이 지금의 일주일보다 더 길었던 것 같다. 햇볕이 불볕처럼 느껴지던 긴 여름날에 끊임없이 들리던 매미의 구성진 울음소리와 함께 집 앞에 가꾸어 놓은 꽃밭과 넓기도 했던 텃밭엔 수박, 참외, 토마토, 배추, 열무, 오이, 가지 등 여러 가지 채소 그리고 옥수수, 참깨, 들깨 등 많은 곡물들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도 아침이면 활짝 피어나던 나팔꽃, 채송화, 봉숭아 그리고 밤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매미를 대신하는 귀뚜라미의 우는 소리 역시 구성진 것은 마찬가지로 저녁상을 물리고 희미한 호롱불 아래 화투장을 돌리며 한숨을 쉬는 어른들의 푸념을 위로라도 하듯 긴 시간 동안 모두가 잠들 때까지 울어대던 생각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교 후엔 지금은 안 계시지만 당시엔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유난히도 약하셨던 작은누나와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 메뚜기를 잡는다며 온동네 논밭을 휘저으며 다니다 논 주인에게 쫓겨 다니고 뜰채를 가지고 미꾸라지, 붕어, 송사리를 잡는다며 시냇가를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다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흙탕물 일으킨다며 꾸중을 하던 그 모든 사람들은 이제 지금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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