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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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왔던 길(The journey we have taken)(1)
JOHNCHO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가끔씩 본인이 살아온 지난날들을 기억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엔 만 3살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어렴풋이 또는 또렷하게 생각이 나는데 지나고 보니 필자의 삶은 한마디로 짧게 정리한다면 참으로 별 보잘것없는 평범한 삶이었다 생각이 든다.

 

 필자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한국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3년간의 전쟁을 치른 후의 한국은 온나라가 하나의 빈민촌 그대로였다. 그때만 해도 길거리에 나가면 아직도 잔재하고 있는 미군 병사들의 얼굴이 생각나는데 만나는 미군 병사마다 얼굴이 까만 흑인들이라 미국사람들은 모두가 흑인인 줄만 알았고 또 그때 접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코카콜라였는데(물론 우리같은 서민들은 사서 마실 수도 없었지만) 그것 역시 한국이 소유한 회사인 줄만 알았다.

 

 필자는 유치원, 국민(초등)학교 시절을 충청도 청주에서 보내고 국민 6학년 시절부터 서울로 올라와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고 휴전을 한 것이기에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들도 여럿이 남아 있었고 학교 각 반에는 전쟁고아들이 꽤나 있었는데 그중에는 동.서양의 피가 섞인 친구 아이노꼬(あいのこ, 당시 일본말로 놀리는 칭호)들도 여럿이 있었고 그중 거의 다수가 당시의 미국인들의 도움으로 운영되는 고아원 학생들이었다.

 

 이런 친구들은 필자가 다니는 학교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각 학교마다 꽤나 많이 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 모두가 전쟁이 남기고간 여러가지 비극들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유치원생 땐 워낙 어린 시절이고 또 당시엔 전쟁고아들이 다닐 수 있는 곳은 아니었기에 별로 전쟁의 후유증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또 그런 것들을 이해할 나이도 아니었지만 한가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것들 중 하나는 아침밥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밥을 동냥하는 사람들(당시엔 거지떼들이라 칭함)이 모여들고 매일 아침을 준비하셨던 어머니는 거지들을 줘야 한다면서 밥과 반찬을 따로 준비해 두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지금은 몰라도 그때는 저녁보다는 아침이 더 중요했는지 아침에 오는 그들의 숫자는 저녁에 오는 숫자보다 배는 되어 보였다.

 

 당시의 전쟁 때문에 생겼던 고아들과 또 거지생활을 했어야만 했던 그들은 지금은 모두 나이가 이미 70대 중반 이상이 되었을 것이고, 과연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는 여기 저기 크고 작은 전쟁의 연속이고 특히나 언제 그칠지 모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 나라의 아이들 5명 중에 1명꼴로 부모를 잃는 고아들이 생긴다. 침략자 러시아란 나라는 자기네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며 전쟁의 정당화를 외치고 있지만 생각할수록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이 미친X이란 생각이 들고 앞으로 전개될 일들이 언제 어떻게 끝이 날는지 두렵기도 하다.

 

 어린 시절 필자의 마음에 많이 궁금했던 것 중에 한가지로 그 거지들이 어디서 자느냐 물어보는 나의 질문에 어머니의 대답은 다리 밑이라 대답을 하셨고, 그 말을 들은 이후엔 시냇물 다리를 건너는 것을 많이도 겁냈던 기억이 난다.

 

 간식이 전무했던 그때는 집에서 쌀이나 보리 또는 강냉이를 가지고 튀밥(당시의 충청도 사투리, 지금의 팝콘)을 튀기는 아저씨에게 가져다 주면 가지고 간 곡식의 반은 튀밥을 튀기는 아저씨 몫(돈 대신)이고 나머지 반은 튀밥 통에 넣어 약간의 사카린(당시엔 설탕이란 것이 없었기에 대신하여 음식을 달게 하는 재료)을 넣고 ‘펑’하는 소리와 함께 쌀 튀밥, 보리 튀밥, 강냉이 튀밥이 우리 어린 시절의 중요한 간식 노릇을 하였다. 왜 튀밥을 튀기는 아저씨들은 다리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혹시나 거지떼들이 몰려와 우리의 튀밥을 뺐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던 생각도 난다.

 

 당시엔 워낙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기에 그저 서로 만나면 하는 첫인사가 “진지 드셨느냐”는 질문일 정도였지만 그래도 서로가 불쌍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는지 서로 간에 인정이 많은 시절이었기에 지금까지 모두가 굶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 같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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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불쌍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는지 서로 간에 인정이 많은 시절이었기에 지금까지 모두가 굶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