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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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31)
JOHNCHO

 

(지난 호에 이어)

 이 기간 제일 많이 발전한 주요기술은 전기를 중심으로 모터, 전화, 전구, 축음기 및 내연기관을 포함했다. 또한 미국의 포드자동차를 중심으로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 도입되며 대량생산의 시초를 열기도 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 모든 것이 기계화되면서 다양한 물품들이 대량생산되었는데 그 성과물 중에 1,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차, 기관총, 가스전, 전투기, 무전기 등 군수물자 역시 대량생산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것들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사용되며 엄청난 희생자를 내는 현대전의 서막을 열어 인류적 참사를 낳았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역시도 끝이 없는 연구와 발전을 위한 인류의 노력은 어쩌면 매일매일 우리들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제3차 산업혁명 또는 일명 디지털혁명은 우리세대에 일어난 아날로그 전자 및 기계 장치에서 현재 이용하고 있는 디지털기술로의 전환을 말하는데, 1970년대 시작된 이 시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또 발전하고 있고, 시대에 뒤떨어져 살아가는 우리 노인들에겐 꼭 편한 것만은 아니다.

 

 제3차 산업혁명의 발전에는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및 정보통신 기술(ICT)이 포함되는데 필자가 이곳으로 이민 올 당시만 해도 컴퓨터란 이론은 있었지만 존재치 않는 기술이었다.

 인류의 발전도 좋지만 거기에 따르는 대가 또한 만만치 않은데 이런 산업화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혹독한 대가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을 망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세대는 다 살았다 하지만 후세들이 살아갈 지구촌은 어찌 보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할 지도 모르니 산업화가 가져오는 그 대가 또한 지켜볼 일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마음은 불안하다. 이제 잡을 수 없는 세월은 우리를 2023년 8월로 몰아버리고 이제 곧 불어댈 찬바람은 우리의 마음을 벌써 우울하게 만든다. 아직도 한여름인데 뭔소리냐 할 수 있지만 이곳 캐나다의 겨울은 우리의 고향 한국 겨울과 많이도 다르게 느껴진다. 겨울이 길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마도 도로에 쌓여 있는 허연 눈덩이들이 겨우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을 해본다.  

 

 다가올 혹독한 겨울에 쌓일 눈을 생각하다 보니 수십 년 전에 본 닥터 지바고(1965)란 영화의 장면들이 생각난다. 인간들의 개인적인 사상과 욕심 그리고 잔인함들이 생각나며 그 사이에서 고통 받고 희생을 당해야 했던 영화의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선 당시 남자 주인공 Yuri Zhivago(Omar Sharif) 그리고 여자 주인공 Lara Antipova(Julie Christie), Tonya Gromyko(Geraldine Chaplin)등 당시 유명했던 배우들의 연기와 매력에 빠져버렸던 필자는 영화 내용보다는 출연 배우들에 반했고, 또 영화 속 배경과 음악 등을 생각하며 며칠 밤을 설치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한참 청년기에 접어들었던 필자는 그 영화의 여주인공 Julie Christie의 미모에 반해서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안 본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인간들은 자기의 목적과 욕심을 위해서 죽이고 죽는 일들 계속하고 있는데, 당시 이 영화는 세계 1차대전 1914년 이전부터의 스토리로 시작이 된다.

 

 당시 소련 정부군과 혁명군들의 전쟁 속에서의 사상, 사랑, 가족들에 대한 윤리, 이별에 대한 번민과 고뇌, 그리고 쓸쓸한 죽음에 대해 너무도 잘 표현한 명화라 생각한다.

 

 도대체 사상은 무엇이고 이념은 무엇인데 서로가 죽이고 죽여야 하나 생각을 해보니 그것은 사상도 이념도 아닌 우리 인간 개인들의 욕심에서 온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인간들이 기회만 있다면 남보다 더 많이 거느리고 또 누리고 더 잘 살기 위해 남을 누르고 해치고 또 죽이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말이다.

 

 결국 우리 인류는 전이나 현재나 개인들의 욕심에 의해 지배되어 왔고, 그 와중에 죽고 죽이며 희생되어 왔다는 말이다. 인간은 그렇게 창조 되었고 그 본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인류는 그렇게 싸우면서 발전하고 또 멸망할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가끔씩 어린시절이 생각나는데 국민학교 2학년 땐가, 하루는 아버지께서 집에 오시면서 일본제 카라멜(당시엔 미루꾸라 불렀음) 한 박스를 사다 주신 적이 있었다. 워낙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라 약 20개 정도 들어있는 카라멜을 하나씩 하나씩 아껴 먹었다. 한 개씩 없어질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남은 카라멜을 세고 또 세던 생각이 난다.

 

 이제 필자 역시 나이가 들다 보니 하루하루 지나는 것이 마치 그 시절 카라멜을 까먹는 그때의 마음과 똑같다.

 얼마 남지 않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안타깝기도 하고 또 공연히 필자를 급하게 만든다. 이루어놓은 것도 또 이룰 것도, 갈 데도 또 오라는 데도 모든 것이 확실치 않은 데도 말이다. 비록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때로는 가끔씩 상상케 되는 이승과 저승에 대한 의문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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