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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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25)
JOHNCHO

 

(지난 호에 이어)

 성경에는 사랑과 용서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오는데 과연 참된 사랑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또 용서란 무엇을 용서하란 말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나온 삶, 그리고 현재의 삶을 바라볼 때 남을 얼마나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고 있는 걸까?

 

 우리 인간들은 가인의 후예로서 원래 악성과 혐오, 질투 등 여러가지 나쁜 것들을 이미 소유하고 태어났단다. 즉 우리는 “응애”하며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라는데, 또 신약 성경의 예수님 말씀 중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역시 쉽게 이해가 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회생활 그리고 가정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단 하나의 선입견만 가지고도 판단하고 미워하며 그들을 멀리하는 경우가 알게 또 모르게 허다하다. 더구나 남이 자기에게 일부러, 아님 실수로 조금만 해를 끼쳐도 욕까지는 아니라도 우선 그들을 무관심 또는 무시해버리는데, 그것은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화해를 하며 살고 있다는 말이란다.

 

 또 우리 인간은 주위의 친구나 이웃이 자기보다 잘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데, 한국 속담에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듯이 말이다. 이렇게 인간은 시기, 질투, 미움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미완성 작품이기에 조금이라도 완벽해지기 위해 계속 배우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우린 좀더 나은 인성을 습득하기 위해서 학교를 다니며, 도덕을 배우고, 또 예의를 배우지만 학력이 높다고 해서 남보다 나은 인성을 소유한 것은 아닌가 보다. 오히려 배운 것을 가지고 나보다 약한 자를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어찌 보면 우리의 교육방법은 살아남기 위한 것이지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엔 ‘나’, ‘너’ 그리고 ‘그’라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나의 삶엔 언제나 내가 주인공이며, 너와 그들은 어찌 보면 모두가 남인 것이다. 그래서 우린 남이 아프고 슬플 때 그들에게 물리적 또는 육체적으로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그들의 심적인 고통과 아픔을 직접 느끼고 나눌 수는 없다.

 

 성경엔 남을 사랑하라, 용서하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오는데, 막상 우리는 사랑과 용서라는 단어 자체를 이해치도 못하다 보니 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엔 사람이 나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해치고 살인을 한다면 당연히 그 죄에 대한 벌을 내리고 또 받아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용서가 그런 것들을 면책해주고 사면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정해놓은 법에 따라서 벌은 내려야 하고, 또 마땅히 그 죄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하지만 그 사람 자체는 용서하고 미워하지 말란 말씀인데,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살인, 강도 등 흉악범을 어찌 용서하고 미워 안할  수가 있단 말인가? 특히나 본인이나 가족이 희생자라면 말이다.

 

 이렇게 성경에 나오는 말씀들이 좋기는 하지만 우리 인간들이 실제로 행하며 살기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진정한 사랑, 용서, 순종, 믿음, 이 모두를 행하며 살려면 말이다.

 

 엊그제는 친구들 몇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서로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하는데 모두가 한국에서 이민을 떠난 지 50년이 넘다 보니 한국 이야기, 또 남자들이 모이면 빠질 수 없는 군대이야기 등 약 서너 시간 동안 지난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습들을 바라보니 참으로 이들 모두 나름대로의 인생 스토리가 하나의 드라마이고, 나름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는 이미 아내와 사별을 했고, 어떤 이는 돈을 많이 벌었고, 어떤 이는 이혼도 했고, 어떤 이는 그 나이에 재혼도 했고, 어떤 이는 많이 아프고, 어떤 이는 매일 골프만 친다는 등 이민 50년 후의 삶의 형태도 가지가지다.

 

 이것은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대화 중에 그 친구는 암 때문에, 저 친구는 심장마비, 뇌출혈, 교통사고로 이렇게 저렇게 먼저 간 사람들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살아생전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며 참으로 모든 삶이 많고 많은 사연들과 함께 속절없이 사라져간다는 것이 많이도 슬펐다.

 

 그렇게 즐겁고 또 아쉬운 시간을 보내면서 필자가 느낀 것은 ‘아! 이 사람들 모두가 이 세상에서 고생과 수고하며 살았고, 이제 비록 육체는 늙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아직도 옛날 그대로 청춘이구나’란 생각을 해보았는데, 하지만 마음이 젊다고 이제 와서 행동에 옮긴다면 그것은 주책과 노망일 뿐 예측할 수 없는 나머지 인생도 더욱 조심하며 곱게 늙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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