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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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리지(Oak Ridges) ‘비밀의 연못’에서 만난 수련
Hwanghyunsoo

 

고국의 동네 뒷산에는 약수터 하나쯤은 으레 있었다. 그곳에 하얀 물통을 들고 운동 겸 휴식 삼아 산책하는 것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이다. 어느 지역이든지 고개를 돌리면 주위에 산들이 있어 등산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주말에 북한산이나 도봉산 등의 이름 있는 산 근처에 가면 형형색색으로 중무장한 등산객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리 국토의 70%가 산이라지만, 등산을 이렇게 좋아하는 까닭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2019년에 한국리서치에서 조사한 결과 성인 3~4명 중 한 명이 한 달에 1번 이상 산을 찾는다고 한다.

 

등산의 매력은 무엇보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함께 간 사람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혼자서 즐겨도 좋다. 요즘 같은 코비드 시대에는 다양한 활동이 제약되면서 야외에서 하는 안전한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곳 토론토에는 한국에 비해 등산할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등산할 산이 없지는 않다. 나이아가라 폭포부터 오언사운드(Owen Sound)를 지나 브루스반도(Bruce Peninsula)까지 800km 정도 이어진 산행 코스가 있다.

 

물론 한국 산처럼 정상에 올라 ‘야호’하고 외치며 멀리 산 아래를 굽어보거나 능선을 따라 장엄하게 펼쳐진 아스라한 풍경은 없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브루스트레일(Bruce Trail)이라 불리는 이 코스는 잘 알려진 곳이 아니기 때문에 초보자는 산행 경험이 있는 리더들의 안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처럼 토론토 북쪽 리치먼드힐(Richmond Hill)에 살면서 산악회를 쫓아 브루스트레일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등산을 하고 싶을 때는 동네 북쪽에 있는 오크리지(Oak Ridges)라는 트레일을 자주 간다. 토론토 북부지역 경계인, 스틸스(Steeles Ave.)에서 베이뷰(Bayview Ave.) 길을 따라 북쪽으로 20여 킬로미터 올라가면 윌콕스(Wilcox) 호수가 나온다. 그 호수 남쪽으로 오크리지 트레일이 펼쳐있다.

 

일반적으로 베더스트그랜골프장(Bathurst Glan Golf Course)에서 동쪽으로 영스트리트(Yonge St.)과 스토우프빌(Stouffville Rd.) 지점을 거쳐, 레슬리(Leslie St.)까지 20km 거리를 말하는데 편도로 약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이 트레일은 175헥타르가 넘는 무성한 숲과 습지, 초원 그리고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와 습지에는 도롱뇽, 두꺼비, 개구리와 거북이, 뱀, 각종 새들이 서식하고 여우, 다람쥐, 토끼 같은 포유동물도 볼 수 있다.

 

이 코스의 매력 중에 하나는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그 중, 영스트리트 동쪽에 있는 본드레이크(Bond Lake) 산책로를 걷는 코스는 아름다운 풍경이 알려져 있어, 데이트하는 연인들과 가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무더운 여름에는 수영도 할 수 있고 낚시를 하기도 하지만, 호수 물은 그리 깨끗하지 않다.

 

지난주에는 혼자 오크리지를 걷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정규 트레일을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갔다.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니었지만, ‘무조건 동쪽으로 가다 보면 주차해 놓은 레슬리(Lesiles St)가 나오겠지’하며 가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이곳은 개인 소유지’라는 팻말을 보았지만, 돌아가면 더 헤맬 것 같아서 계속 갔다. 한 15분 정도를 들어갔을까, 갑자기 새소리도 커지고 뭔가 환한 느낌을 받았다. 자그마한 호수가 나타났고 그 건너편으로 주택이 보였다. ‘여차하면 저곳으로 가면 되겠지’하는 생각을 했다.

 

 

그 호수에는 아름다운 연꽃과 수련이 가득 피어 있었고, 백조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마치 ‘비밀의 연못’에 혼자 초대된 느낌이었다. 왠지 낯설지 않은 풍경인데, ‘어디서 이런 풍경을 보았지’ 생각하던 중에 우연히 나가는 표지를 찾게 되었다. 주위가 습지여서인지 이름 모를 풀들도 무성했고, 모기와 벌레들이 많아 서둘러 돌아 나왔다.

다행히 주차장을 찾아 차 안에서 물 한잔을 마시며 조금 전 호수의 풍경을 떠올렸다. “아, 이제 생각났다. 모네의 그림 ‘수련’에서 본 풍경이다”. 7년 전에 여행사의 패키지 프로그램으로 워싱턴 관광을 갔을 때, 가이드가 <워싱턴국립미술관>에 내려 주면서 “지금부터 2시간 뒤에 이곳에 다시 모이세요”라고 했었다.

이 큰 미술관을 2시간에 보라니… 서둘러 미술관에 들어갔는데, 어떤 그림 앞에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뭐지?’하며 호기심 있게 보았던 그림이 바로 모네의 ‘수련’이었다. 워싱턴까지 힘들게 왔는데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그 유명한 ‘수련’을 보다니, ‘본전은 건진 셈이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수십 년간 빛의 흐름과 변화를 끈질기게 관찰한 후유증으로 72세 때, 심각한 백내장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자칫 시력을 잃어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될까 봐, 83세가 돼서야 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창작을 향한 그의 열정은 초인적이었다.

 모네가 그린 ‘수련’ 작품들은 자연광선인 빛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인상주의 그림의 특징을 완벽하게 구현한 걸작 중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수련’ 연작 작업을 위해 손수 정원을 가꾸고 연못과 화초 관리에 모든 것을 바친 모네는 수련을 사랑한 화가이면서 일류 정원사였다.

 

 

 모네는 거의 30년을 ‘수련’ 연작에 매달렸다. 1897년 무렵부터 1926년 죽을 때까지 오직 ‘수련’을 주제로 신출귀몰한 빛의 실체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연구했다. 그가 평생 남긴 ‘수련’ 연작은 모두 250여 점으로 추정된다.

수련은 뿌리와 줄기는 물 밑에서 자라고, 잎은 물 위에 떠 있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특이한 것은 수련 꽃잎은 아침에 피었다가 해질 무렵에 진다는 점이다. 수련은 6월부터 7월 사이에 꽃이 피고, 연꽃은 7월부터 8월 사이가 절정인데, 이 둘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수련은 잎과 꽃이 물 위에 둥둥 뜬 것이고, 연꽃은 물 위에 줄기가 뻗어 잎과 꽃이 수면보다 높이 솟는다.

길을 잃은 덕분에 엉뚱한 곳, ‘비밀의 연못’에서 아름다운 수련을 보았다. 그 호수 이름이 뭘까 싶어 구글에 찾아보았더니, 그 옆 호수 이름만 스완 레이크(Swan Lake)라고 나왔다. 혹시 그 수련을 보고 싶어 다시 찾아 가더라도 그 곳은 개인 땅이니 들어가면 안 된다. 하지만, 굳이 그 연못이 아니더라도 토론토 근교의 작은 호수 등에서 수련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그리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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