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시집간 딸에게서 카톡 전화가 왔다. “엄마! 나, 하엘이 학교 데려다 주는 동안에 다엘이 하고 영상 통화 좀 하고 있을 수 있어?” 아내가 “할 수는 있지만… 얼마나 걸리니?”라고 물으니 “한 10분 정도 걸려…”라고 하기에 “그러마”했다며, 지하실에서 야구 경기를 보고 있는 나를 부른다.
내가 염려가 되어 “10분 동안, 무슨 이야길 하지?”하며, “아니, 다엘이도 함께 데리고 가면 될 텐데…” 했더니, “다엘이가 열도 있고, 콧물도 흘려서 집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라고 했단다. 그렇게 다섯 살이 된 둘째 손녀와 통화가 시작됐다.
“다엘아! 엄마가 하엘이 언니 학교에 데려다 주는 동안, 할머니하고 이야기해요.” 다섯 살, 다엘이가 또렷또렷하게, “네, 할머니! 엄마가 할머니 하고 이야기하고 있으라고 했어요. 옆에 할아버지도 있네요?” “그래, 할아버지도 같이 이야기하자”.
다엘이가 “그런데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늙었어요?” ‘엥, 내가 늙었다고… 할머니는 안 늙었나?’ 속으로는 섭섭했지만, “다엘이 공주님! 안녕하세요? 보고 싶었어요” “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아, 다엘이는 너무 예쁘네” 나는 손녀들과 영상 통화를 할 때면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라, 매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아, 다엘이 예쁜 옷을 입었네”했더니, “네, 엄마가 어린이집 갈 때는 예쁜 옷을 입혀줘요” 아내가 “그래요, 다엘이 어린이집에 친구 많아요?” 이렇게 대화는 이어 갔고, 할머니의 물음에 손녀는 또박또박 대답을 한다.
한 5분 여가 지났을까, “할머니, 다엘이 오줌 마려워요” “아, 그래. 다엘아! 조금 있으면 엄마가 오니까, 그때까지 참을 수 있을까?” “네, 알았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 표정이 무척 급한 모양이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저러다 오줌 싸면 어떻게… 그냥 가라고 하면 안 되나”라고 했더니, 아내도 걱정되었던지 “다엘아, 참기 어려우면 화장실 다녀 올래?”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화면 앞을 떠나며 “네, 갔다가 올게요”.
잠시 후, “할머니, 화장실 불이 안 들어와요?” “왜, 불이 안 들어오지?” “내가 키가 작아서…”
아마 스위치까지 키가 안 닿는가 보다. “아, 그렇구나. 그러면 엄마가 올 때까지 참을 수 있겠어?” “네, 참을 수 있는데 옷을 많이 입어서…” “그러면 엄마가 올 때까지 참아 보자” 이런 대화가 이어지고 한 3분 정도가 지났을까, 딸이 현관문을 열려 들어오는지,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 엄마 왔다”하며 다엘이가 자리를 뜬다. 할머니의 지혜로운 물음에 답하느라, 다행히 다엘이가 생리 현상을 잊고 지나간 거다.
3년 전, 고국의 딸 집에 갔을 때다. “아빠, 하엘이 데리고 병원 갔다 올 동안 다엘이 좀 봐줄 수 있어? 하길래, 그깟 애 보는 일이야 하며, “그래, 빨리 다녀와”. 졸지에 손녀와 단둘이 됐다. 손녀는 그네에서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가는 동시에 잠이 깼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그때부터 다엘이의 가슴을 토닥거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자라, 자라, 자아~라, 자/ 자라, 자라, 자아~라, 자” 나름 자장가를 불렀지만, 손녀는 더욱 눈망울이 초롱초롱 해지며, 울음보가 커지며 눈물까지 쪼르르 흘린다. 나는 당황해서 “자라, 자라, 자아~라, 자”만 계속 읊어댔다.
계속 노래하다 보니, 멜로디가 찬송가 같기도 하고 상여 메고 나갈 때 소리 같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간절한 주문이 통했는지, 다엘이는 울음을 그쳤고 잠시 후 다시 잠을 들었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가 엄마의 숨결과 목소리라고 한다. 그래서 아기는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을 풀어 잠을 잔다고 한다. 자장가에는 어미의 다정한 손길과 숨결이 묻어 있다. 이런 자장가를 옛 선조들은 <아이 어르는 노래>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노래를 접하기가 어렵다. 이런 전래 민요 같은 자장가는 특별한 사람들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엄마와 할머니들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잊힌 노래를 찾아 보전하는 사업을 30여 년 전 MBC에서 했다. 라디오국 최상일 피디는 전국을 다니며 잊혀가는 우리 민요를 찾아 녹음하고 직접 방송했고, 1995년에는 <한국 민요 대전>이라는 음반도 만들었다. 나도 이 음반을 이민 올 때 가지고 왔는데, 그 중 한 곡을 소개한다. 1989년에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에서 찾은 <자장가>인데, 1917년생인 김정심 할머니가 부른 것이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눈이 커서 잃어버린 것은 잘 찾겠다 자장자장/ 귀가 커서 말소리는 잘 듣겠다 자장자장/ 코가 커서 냄새는 잘 맡겠다 자장자장/ 입이 커서 상추쌈은 잘 먹겠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이 노래는 시골의 할머니들이 부르던 노래를 조사해 채집한 것이지만, 과거의 노래로 묻어두지 말고 우리 자녀와 손주들을 위한 노래가 되었으면 싶다. 1960년대 만하더라도 아이 키우는 일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은 가사 일뿐 아니라 밭일도 하고 바쁜 와중에 아이가 칭얼거리면 업어 주거나 안아 주면서 <자장가>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자장가>는 여성들의 노동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맞벌이 여성들도 많아지고 다양한 육아시설이 늘어나면서 여성의 부담도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자장가>도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어느 자료를 보니 1970년대에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세계 자장가 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등 이름만 대도 다 아는 거장 음악가들의 자장가가 성악가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타고 울려 퍼졌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전문 성악가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한 자장가는 다름 아닌 한국에서 온 60대 할머니의 나지막한 읊조림이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검둥개야 우지 마라 우리 아기 잘도 잔다…” 할머니의 웅얼웅얼 거리는 노래를 들은 아기들은 90초 만에 잠이 들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그 자장가는 뱃속에서부터 들어오던 엄마의 숨소리와 심박동 소리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가락과 노랫말이 단조로워 아기에게 편안한 잠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우리 전래 자장가의 특징은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어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이 가사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또한, 전래 자장가는 아기의 노래만은 아니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위안을 주는 마음의 고향이자, 어머니 품속 같은 노래다. 자장가를 들으면 곤히 잠드는 아기의 모습이 상상되고, 심박수가 느려지며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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