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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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카우보이’보다 ‘아리조나 카우보이’가 낫다
Hwanghyunsoo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를 하던 시절, 토론토에 있던 가족과 미국 LA에서 만나 함께 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미 서부지역 관광은 대표적인 두 가지 패키지 상품이 있는데, LA에서 샌프란시스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가는 3박 4일 코스가 있고, 또 하나는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을 다녀오는 3박 4일 코스가 있었다.

나의 휴가 일정이 1주일 뿐이어서 샌프란시스코는 나중에 가기로 하고 우리는 라스베이거스를 택했다. 가족이 함께 패키지 관광을 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LA를 떠나 캘리포니아를 지나, 애리조나(Arizona)로 들어서면서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이는 모하비 사막이 펼쳐졌다. 선인장과 아주 키가 작은 나무들, 야생동물을 보호하려고 쳐 놓은 철조망 너머로 마른 잡풀들이 엉켜 돌아다녔다.

뱀 같은 파충류들이 많이 살 것 같은 메마르고 낯선 창 밖 풍경에 졸음이 스며들 때쯤에 가이드가 마이크를 꺼내 들고 서부 개척시대의 카우보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부에서 20불에 팔리는 소 한 마리가 동부에 가면 100불이었어요. 약삭빠른 동부의 장사꾼들이 서부의 카우보이들에게 소를 가지고 몰고 오면 돈을 듬뿍 얹어 주겠다고 약속했죠. 미국 개척시대 동서부의 빈부 격차는 심했습니다. 카우보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소떼를 몰고 몇 달에 걸쳐 긴긴 날들을 갔는데, 그것은 목숨을 담보한 아주 위험한 일이었죠. 가다가 강도를 만나고 인디언들의 습격을 받으면 소는 물론 다른 것까지 다 뺏기고 죽을 확률이 컸습니다. 온갖 위험을 무릎 쓰고 다행히 동부에 도착하여 약속한 돈을 받아 쥔 카우보이는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됩니다. 동부의 예쁜 아가씨들이 눈꼬리를 살살 치며 하룻밤 놀고 가라는 소리에 그만 정신을 잃고 술과 여자에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유혹을 뿌리치고 서부로 돌아가 아내,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인생을 사는 카우보이가 될 것인가, 말이죠.”

그러면서 “지금 여러분이 차창 밖으로 보시는 곳이 애리조나 주입니다. 애리조나는 ‘아리조낙’, 그러니까 ‘작은 우물이 있는 장소’라는 인디언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애리조나를 우리 한국 사람은 아리조나라고 주로 부릅니다. 왠 줄 아세요? <아리조나 카우보이>라는 노래 때문이죠.”

가이드는 이어서 <아리조나 카우보이>를 부른 명국환에 대해 이야기한다.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말채찍을 말아 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멀리 인디언의 북소리 들려오면/ 고개 너머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이국적인 이 가요는 영락없이 서부영화가 상상되는 풍경이지만, 1955년에 만든 곡이어서 그 당시 도대체 작사가는 어떤 생각을 갖고 노랫말을 지었을까 궁금했다.

이 가요에 대해 문화평론가 이영미는 “지금은 아마 이런 노래를 만들려고 발버둥 쳐도 못 만들 것”이라며 “한국 땅에 앉아서 아리조나 카우보이에 관한 노래를 만든다? 아, 얼마나 기발한가! ‘저 멀리 인디언의 북소리’ 대목에서는 정말 자지러지겠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술집을 ‘주막집’이라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1950년대는 한편에서는 <단장의 미아리고개>로 통곡을 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 서부 활극이나 미제 물건에 눈이 뱅뱅 돌고 있을 때였다.”라며 당시 대중 예술 속의 외국에 대한 삐뚤어진 동경에 대해 지적한다.

 


 

당시는 6.25 휴전 후, 미군이 주둔하고 그들의 여흥을 위한 미 8군 무대가 생기고 팝송과 서양 문물이 들어오던 시기다. 전쟁이 끝난 뒤라 슬프고, 모두가 가난한 시대여서 가슴 애절한 노래들이 대중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이별, 그리움, 고향 등의 테마가 주류를 이뤘지만, 한편으로는 힘든 현실을 벗어나고픈 심정이 있었다.

미 8군 무대는 번성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문화가 주는 호기심과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이국적인 노래들이 한동안 전성기를 이룬다. 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뿐만이 아니라, 장세정의 <샌프란시스코>, 백설희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박단마의 <슈사인보이>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런 노래들의 리듬은 이때까지 우리 가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들이고 노래에 등장하는 가사들도 낯선 미국 지명이나 영어 단어들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같은 단어는 뭔지 모를 마력적인 느낌이 들었다.

우선 영어 단어가 갖는 매력, 호기심과 아메리카 드림이 혼합되어 서양풍의 노래들이 만들어졌다. 박재란의 <럭키 모닝>은 생활 영어로 가사를 지었다. 럭키 모닝 모닝 모닝/ 달콤한 바람 속에 그대와 / 새파란 가슴에 꿈을 안고서/ 그대와 같이 부르는 스윙 멜로디”에서 보듯 흔히 쓰는 말에도 영어를 섞어 써야 좀 유식해 보였다. 아직도 이런 잔재와 진부함이 존재하고 있어 씁쓸할 뿐이다.

 

이런 가요의 노랫말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1950년대 전후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국에 대한 상상적 묘사는 지금 들으면 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어색하지만, 지치고 힘든 당시의 대중에게 확인되지 않은 욕망과 꿈을 만들어 주었다.

대중들은 영어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대단히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리조나 카우보이> 같은 노래가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노래들이 미국에 대한 동경을 키우고 ‘아메리카 드림’의 바탕이 된 것은 아닐까?

 가족들과 함께 한 여행에서 느꼈던 애리조나는 그저 지나가는 곳이고, 황량함과 외로움이 있는 한마디로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보였다.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카우보이는 애리조나보다 텍사스 쪽이 더 어울리는 상징이다. 텍사스의 유명한 프로 미식축구 팀 이름도 <댈러스 카우보이스> 아닌가.

물론 애리조나에도 카우보이가 있었지만, 댈러스만큼 삶의 영역이나 터전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긴, 만약에 <텍사스 카우보이>라고 제목을 졌으면 <아리조나 카우보이>만큼 노래가 히트 치진 못했을 성싶다. ‘텍사스’는 미군 부대 앞, 기지촌이 생각나고, ‘아리조나’는 ‘아이 좋아’라는 친밀감이 느껴져서다.

당시 바깥 온도는 35도가 넘을 정도로 무더웠고 창밖 사막의 풍경은 지리 했지만,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했다. 운전석 옆에 서 있는 가이드의 ‘썰’은 관광버스가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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