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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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과 풍악이 버무려진 애매모호한 춤
Hwanghyunsoo

 

지난주 추석 때 유재석이 나오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우리 판소리가 이토록 세련되게 재해석되는구나. 노래도 노래지만, 국악과 현대 음악이 뒤섞인 리듬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일곱 명의 춤꾼이 몸을 흔드는데 참 독특했다.

 

 언뜻 보면 막 춤 같은데 자세히 뜯어보면 난해한 현대 무용 같기도 하다. 판소리를 저렇게 춤으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고 춤에 익살과 풍악이 버무려지니 그렇게 ‘힙’ 할 수가 없었다.

 

이 노래는 이미 한국관광공사의 서울 홍보 영상으로 제작돼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켜 조회 수가 무려 2억을 넘겼다. 광고인가, 뮤직 비디오인가 설명이 어려운 이 영상이 대박을 쳤는데 정해진 격식에 짜여 답답하기만 했던 공공기관이 어떻게 이런 ‘아리까리’한 영상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나라님들의 발상이 신선하게 변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한국관광공사의 서울 홍보 영상으로 제작돼 유튜브에서 조회 수가 무려 2억 건을 넘기는 기록을 만든 앰비규어스 댄스팀

 

 ‘범 내려온다’의 영상에서 춤을 추는 7명은 앰비규어스 댄스 컴패니의 소속으로 힙합과 비보잉, 발레, 현대 무용을 녹여 춤을 만들었다. 이 무용단은 벌써 역사가 13년이 되는 단체로 김보람(37세)과 장경민(37세)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안무가 김보람은 전라남도 완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이주해 2000년부터 엄정화, 이정현, 윤종신 등의 백업 댄서로 방송 활동을 한다. 좀 더 넓은 무대에서 춤을 배우고 싶어 미국으로 가려 했는데, 대학을 가야만 유학을 갈 수 있었단다. 그래서 서울예술대학에 들어 갔고 거기서 체계적인 현대 무용을 배우지만, 장르에 얽매이기는 싫었다.

 

졸업 후, 후배들의 졸업 작품을 도와주었는데, 그 영상을 ‘CJ 영페스티벌’에 보냈다가 최우수상을 받았고 그 계기로 무용단도 만들었다. 그는 자기가 하는 춤이 현대 무용이라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단체 이름도 ‘앰비규어스’(Ambiguous, 애매모호한)라고 지었다. 재미있는 표현법으로 관객 앞에서 춤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현대 무용의 경계에 걸쳐 있다’는 애매함 때문에 무용계의 비판도 받았다.

 

창단 후 수많은 레퍼토리가 있지만, 그들의 작품을 보면 무용수는 엄숙하게 춤을 추는데 분위기와 반대로 보는 이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국악과 현대 음악이 뒤섞인 독특한 리듬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춤꾼들이 몸을 흔드는 서울 홍보 영상

 

정작 본인들은 웃음을 주려는 의도는 별로 없다고 한다. 보통 현대 무용은 ‘저게 무슨 내용이지?’ 하면서 보니까 웃음이 잘 안 나오는데, 그들의 공연은 춤 자체를 보게 하니까 마음도 열리고, 작은 것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무용수들은 굉장히 힘든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고, 무대 위에서 죽을 것같이 힘든데, 관객들은 그것이 우습다. 그동안 현대무용을 보며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관객들에게 웃음의 자유를 준 것 같다.

 

 나는 1995년에 광복 50주년 기념 <서울 국제 무용제> 전야제를 연출한 적이 있다. 용산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관 광장에서 열린 이 공연에는 미국,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스웨덴, 이스라엘 등 10여 개 국의 저명한 무용 단체들이 참여했다. 각 단체가 각각 약 10분 정도의 창작 무용을 선 보였는데, 그 공연을 연출하며 무용에 대한 나의 의식도 변한다. 무용이란 장르를 음악 공연의 보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저명한 무용단이 공연에 임하는 자세를 보며 놀랬다.

 

야외에 무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출연자 대기실을 간이 천막으로 만들 수밖에 없어, 의자도 모자라고 거울, 테이블, 분장실도 협소했다. 또한 여러 나라 무용단이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200여 명의 출연자들이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오히려 대기실이 무슨 축제의 장처럼 서로 음식을 나누며 대화하고 즐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긴 리허설이 끝나고 전체 공연 시간 관계상 작품이 긴 무용은 10분 안에 줄여 달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음악을 줄이고 연습을 해 주었다. 옆에 있던 다른 팀들도 그런 팀을 위해 연습 공간을 만들어 주고, 음향 기기를 빌려주기도 하였다.

 

 몸으로 표현을 하는 춤꾼들의 소통 방식은 바로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오랜 예부터 춤은 모든 제례나 축제에 빠지지 않았고, ‘문자가 태어나기 이전의 표현 방식이 춤이었다’는 자부심이 그들에게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범이 내려온다’의 춤을 보며, 우리 K-POP이 세계 대중적 인기를 얻는 이유를 찾았다. 노래도 좋지만, 아이돌의 춤 때문에 팬들은 열광하는 것 같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매 순간 치열하게 해석하고 연구하는 앰비규어스 같은 춤꾼들이 계속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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