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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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숙하고 둥그스름한 백자 달 항아리
Hwanghyunsoo

 

 스물아홉 살 되던 해, 직장 동료와 충북 괴산에 있는 황규동 도자기 공방에 갔었다. 잡지사 <뿌리깊은나무>에서 황규동의 백자 칠첩반상기를 론칭할 때였는데, 황규동 옹이 하룻밤 내려와서 도자기 굽는 모습도 직접 보고 사진도 찍으라고 초대해 주었다. 황규동 옹이 조선시대 문헌에 따라 15세기부터 내려오던 괴산의 옛 도요지를 찾아내어, 4천 평의 대지 위에 가마를 만들고 공방 두 채와 사택을 지은 곳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황규동은 1918년생으로 백자 재현에 일생을 보낸 도예가다. 그곳에서의 하룻밤은 도자기에 흥미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은 달이 둥글게 뜬 보름이었는데, 황토로 만든 길이가 12미터나 되는 전통 가마에 밤을 새우며 장작을 때는 도공의 모습이며 가마에 불을 넣기 전에 고사 상을 차려 놓고 예를 지내고, 물레를 발로 돌리며 손으로 고령토를 빚는 신기한 찰나를 눈과 마음에 담았다.

 

사택의 입구는 어느 절을 옮긴 것이라 했는데, 황토로 지은 방이 여섯 개 있었고 우린 사랑채에 묶었다. 사택에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들의 밥그릇도 백자로 만든 것이었다. “어떤 섬에서는 개도 천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어 봤는데, 여긴 개 밥그릇이 백자구나”하며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대문에 매단 풍경소리, 화분, 세숫대야, 촛대, 재떨이, 심지어 효자손 등의 생활 용품을 백자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는데, 특히 방문 앞에 있던 고양이 밥그릇은 탐이 났었다. 하얀 창호지 밖의 순결한 달빛이 푸근한 이부자리가 되어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의 잠을 잤고, 백자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아 온다.

 


▲국보 제310호 백자 달 항아리. 높이 45.0cm, 구경 21.0cm, 동경 44.0cm, 저경 17.0cm

 

황규동이 괴산에서 옛 도요지를 찾는데 도움을 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란 책을 쓴 최순우(1916~1984)라는 분이 계시다. 우리 백자가 이만한 대접을 받게 된 건 이 분의 공이라고 학계에서는 흔히 말한다. 다음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그의 글이다.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중략> 아무런 장식도 고운 색깔도 아랑곳할 것 없이 구워낸 백자 항아리의 흰빛의 변화나 그 어리숭하게만 생긴 둥근 맛을 우리는 어느 나라 항아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데서 대견함을 느낀다.”

 

최순우는 우리의 미술 중에 가장 한국적인 것을 도자기라고 했다. “의젓하기도 하고 어리숭하기도 하면서 있는 대로의 양심을 털어놓는 것, 선의와 치기와 소박한 천성의 아름다움, 그리고 못생기게 둥글고 솔직하고 정다운, 또 따뜻하고도 희기만 한 빛. 여기에는 흰 옷 입은 한국 백성들의 핏줄이 면면이 이어져 있다. 말하자면 방순한 진국 맛일 수도 있고 텁텁한 막걸리 맛일 수도 있는 것, 이것이 조선시대 자기의 세계이며 조선 항아리의 예술이다.”라고 했다.

 

▲1970년대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에서 토기들을 살펴보는 최순우 전 관장과 정양모 학예관

 

 국어학자 이희승은 수필 〈딸깍발이〉에서 “남산골샌님(*최순우)은 변변한 벼슬 없이 극도로 궁핍했지만 한 움큼의 자존심과 꼬장꼬장한 고지식으로 똘똘 뭉쳐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는다는 지조를 고집했다. 남산골샌님은 개성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학력으로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오르기까지 보여준 입지전적인 노력, 당시의 냉소와 비웃음을 무릅쓰고 묵묵히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무서운 뚝심,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 본받을 만한 삶의 자세를 후학들에게 보여주었다.”라고 기록한다.

 

외국 사람들이 곧잘 한국을 항아리의 나라라고도 부르듯, 우리네의 집안 살림살이 중에도 크고 작은 항아리가 있다. 이곳 한인들의 집에도 항아리나 도자기로 인테리어를 한 집을 간혹 볼 수 있다. 이 항아리들은 아침저녁 매만지던 조선 시대 여인의 모습도 그리게 되고, 한국적 아름다움의 한 가닥을 차지하여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백자 항아리는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작품화한 것이 아니었다. 손끝에서 빚어지는 항아리의 둥근 맛과 저절로 지어지는 의젓한 곡선미라 더욱 가치가 있다. 아무런 장식도 고운 색깔도 아랑곳할 것 없이 오로지 흰색으로만 구워낸 백자 항아리. 흰빛의 변화나 그 어리숙하게만 생긴 둥그스름함이 바로 우리 맛이다.

 

 흰 빛깔과 둥근 모양의 자연미를 따르고 있는 백자 항아리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여태 몰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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