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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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금고 머물러, 나무에 핀 연꽃
Hwanghyunsoo

 

 모두 살았다. 어제 심은 고추, 쑥갓, 파, 상추, 부추, 깻잎 등이 무사히 하룻밤을 넘겼다. 날씨가 밤에는 영하로 내려가는 것을 초보 농사꾼(?)이 미쳐 생각지 못했다. 그래도 목요일부터는 영하로 또 내려간다고 하니 서둘러 비닐이라도 덮는 궁리를 해야 한다.

 

 1주일 전 아내의 친구가 집에서 심심할텐데 심어 보라고 야생화 묘종 몇 포기를 주어서 앞마당 한구석에 심었는데, 덤으로 따라온 부추와 쑥은 같이 심기가 뭐해 뒷마당으로 가져왔다. 마땅히 심을 곳이 없어 틀밭을 만들려 했는데, 앞으로 허리 구부리고 밭 돌볼 생각을 하니 끔찍해서 무릎 정도의 높이로 짜기로 했다. 하지만, 난생 처음 만들다 보니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차고에 모아놨던 나무조각과 근처 마켓에서 묘목을 팔고 버린 틀을 가져다가 뜯고 자르고 박다 보니 이틀이 지나갔다. 몸살에 허리 통증,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번 다큐멘터리에 나온 귀농 5년차의 50대 농사꾼의 말이 실감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농사에요.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귀농을 안했을텐데…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뭐 만드는 것도 많고, 장비도 알아야 할 것도 무척 많아요. 날씨는 왜 이리 변덕이 많은지? 그야말로 만물박사라야 돼요.”라는 푸념이었다.

 

 쑥은 잔디를 짧게 친 뒤에 한 줄로 듬성듬성 심었고 부추를 틀에 심고 보니 너무 판이 휑하다. 그래서 내친김에 한국 슈퍼마켓에 가서 한국 모종을 몇 포기 사왔는데 이제는 심을 곳이 모자라 테라스 밑에 넣어 두었던 화분을 모두 꺼내다가 심었다. 틀을 만들지 말고 그냥 화분에다 심으면 간단할 일을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뉴저지 친구 태진이가 늘 놀렸는데… 지난 일주일 동안 저지른 많은 실수는 다, 나의 탓이다. 일요일 오후가 돼서야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 중얼거리며 일을 마쳤다.

 

 일을 하면서도 반대편 뜰에 날아다니는 벌들이 공연히 신경 쓰였다. 원래 벌들이 없었는데 자세히 보니 반쯤 핀 목련꽃에 벌들이 무척 나댄다. 내가 이곳에 이사온 지도 벌써 16년이나 되었는데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다. 뭐, 일년에 잔디 깎을 때 몇 번 뒤뜰에 나갔으니 사실 벌 볼 일도 없었다.

 

 며칠 전 목련차를 만드는 것을 유튜브로 언뜻 본 적이 있는데 반쯤 핀 목련을 따서 잎을 연꽃처럼 펼쳐 그늘에 말리면 훌륭한 차가 되는 것을 보았다. 틀밭에 훈수를 두러 나온 아내에게 “여보, 목련 꽃차 한번 만들어볼까?” 답 대신, “목련이 비염에 좋다고, 영신이 어렸을 때 다니던 한의원에서는 목련을 꼭 넣었어.” 승낙은 안했지만 꽃차를 만들어도 딴소리는 않을 것 같아 꽃잎을 땄다. 나름 위생장갑도 끼고 30여 분 따니 작은 소쿠리에 가득이다.

 

 집 안으로 들어와 신문을 펼치고 소쿠리 위에 꽃잎을 연꽃모양처럼 펼치려 해도 잘 되질 않는다. 일단 불순한 잎은 정리를 한 후에 구글에서 ‘목련차 만드는 법’을 찾아보았다.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목련꽃 9장 중, 5개 잎을 한지 위에 연꽃처럼 펼쳐 1주일 정도 말린 후 미지근한 열로 덕으면 모양 좋은 차가 된다. 그런데 아래로 쭉 읽다 보니, 백목련만 사용해야지, 자목련은 독성이 있어 절대 사용하면 안된다고 한다. 아, 우리집 목련은 전부 자줏빛 목련이다. 벌써 딴 꽃잎을 어쩌겠나, 일단 잘 말린 후에 쓸 궁리를 해야지.

 

 새벽녘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옛 선조들이 창호지 문틀을 바를 때 했던 한지와 한지 사이에 풀이나 꽃잎을 말려 붙이는 멋진 방법이다. 나도 꽃잎이 다 마르면 한번 해봐야지. 그런데 창호지 문틀이 없잖아? 어찌됐건 그건 나중 문제다.


토론토에 목련이 피고 있으니, 아마 고창 선운사 대웅전 옆 목련꽃은 벌써 떨어졌을게다. (사진/김도형)

 

 도대체 목련 꽃차가 얼마나 하는데 수선을 떨었나 싶어, 찾아보니 한국에서 최상품이라 알려진 선운사 야생 목련 꽃차가 2만원 정도 했다. 꽃봉오리가 50여개 들어가 있는 15그램짜리인데, 개당 400원 꼴이다. 고창에 있는 선운사는 나도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대웅전 옆에 백목련나무가 있었다. 토론토에 목련꽃이 피니 선운사 목련은 바람에 떨어져 어느 스님이 한참 쓸어 담고 있을 것이다.

목련꽃은 꽃봉오리가 반쯤 피었을 때 따서 연꽃 모양으로 펼친 후, 그늘에 말리면 비염과 호흡기에 좋은 예쁜 차가 된다. 단, 자목련은 독성이 있어 사용하면 안된다.

 

 목련(木蓮)은 이름 그대로 ‘나무에 핀 연꽃’이라는 뜻인데, 늘 북쪽을 향해 피어서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한다. 북쪽을 향해 피어나는 목련에게 애달픈 전설이 있다. 멀고 먼 북쪽나라 왕을 사랑하던 옥황상제의 딸이 있었다. 옥황상제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북쪽 왕을 찾아간다. 갖은 고생 끝에 북쪽나라에 가지만 왕은 이미 결혼해 버렸다. 충격에 빠진 그녀는 바다에 몸을 던져 죽는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북쪽 왕은 공주의 넋을 달래기 위해 장사를 지내고, 그 역시 우울해진다. 그런 왕을 바라보는 왕비도 슬픔 속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 소식을 들은 옥황상제가 그들을 가엽게 여겨 두 사람 무덤에서 각각 꽃을 피게 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딸의 무덤에는 백목련, 왕의 아픔을 지켜봤던 왕비 무덤엔 자목련을 피게 했다. 두 목련은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했으며, 같은 자리에서 피지 않았다.

 

 목련의 이 전설은 중국 남북조시대부터 전해졌다고 한다. 이 화목란 서사시에 바탕을 둔 애니메이션 영화가 디즈니사의 ‘뮬란(Mulan)’이다. 뮬란 속 백목련은 전설처럼 비련의 주인공이 아니고 언제나 남자들처럼 괄괄하고 우락부락하다. 오히려 용감하게 위험에 처한 부족을 구하고 사랑도 쟁취하는 열정적인 여성이다. 영화 전반에 동양화 색채가 깊이 묻어 나는데, 수묵화 기법으로 목련 꽃잎이 떨어지는 풍경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한겨울의 잠에서 깨어나 머금고 머물러 잎도 피기 전에 꽃부터 피워내는 목련. 사랑을 잃어 죽음에 이르러 꽃으로 피어난, 두 여인을 상징하는 목련을 여태 뒷마당 가까이에 두고도 모르고 있었다.

 

 틀밭 덕분에 누리지 못하고 지나쳤던 목련을 만났다. 이 귀한 시간, 계절, 빛깔을 놓치지 않고 가슴에 담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1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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