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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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청룡]에서 [블루제이스]로…
Hwanghyunsoo

 

 

이웅희는 1931년 용인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에서 영어선생을 하다가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한다. 1980년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청와대 대변인을 하고 1982년부터 MBC 사장으로 재직한다. 


1986년 문화공보부 장관을 지낸 다음, 1988년 13대 국회의원에 출마해 용인군에서 당선된 후에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까지 내리 3선을 기록한다. 13대 국회의원 때는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도 역임하였다. 


1998년경, MBC에서 용인 군민을 위한 <푸른음악회>라는 공연을 했는데 내가 프로듀서를 했다. 가수, MBC관현악단, 합창단, 무용단이 모두 참여하는 꽤 큰 행사였는데, 공연이 끝나고 이웅희 의원이 뒤풀이를 마련해 줬다. 자기 지역구에 공연 와 준 친정 식구들에게 감사 표시였는데, 어찌하다가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어려운 자리였지만, 술 한잔 마신 김에 여쭸다. “의원님은 방송사 사장도 하시고 장관, 국회의원 등 요직에 계셨는데… 어떤 자리가 가장 좋으셨어요?” 역경의 시대에 그렇게 좋은 자리를 두루 하셨으니, 어떤 답이 나올까? 궁금했다. 


“제일 좋은 자리요? 글쎄… 난, MBC사장일 때가 제일 좋았지?” 한다. 좀 의아해서 “왜 좋으셨어요?” 했더니, “MBC 때는 프로야구팀 청룡이 있었잖아요. 내가 구단주였지. 매일, 매일 게임하는데, 그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었지. 

 


 

▲1982년 3월 한국 프로야구가 시작됐다. 개막전에 전두환대통령이 시구 하는 모습. 

 

 

하루는 선수들 격려 차, 감독과 선수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40여명이 참석했어요. 시청 뒤에 있는 고깃집이었는데, 회식비로 2백만 원을 준비했는데 선수들이 고기를 엄청 먹더라고… 아이고 4백만 원 정도 나왔어요. 당시에는 법인카드가 없던 시절이라서 비서가 돈 구하러 다니느라 난리도 아니었지. 무슨 ‘외인구단’ 같았어요. 그 뒤부터는 회식을 뷔페로 갔는데 선수들이 한번 다녀간 곳에서는 받질 않는다는 거야. 하하!”


당시 짜장면이 800원, 지하철은 140원, 소주가 250원이던 시절이었는데, 4백만 원이라니… 청룡야구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하긴, 용인에서 영어선생 하다가 재벌들이나 하는 구단주까지 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MBC 청룡은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한 프로 야구팀이었다. 1982년 1월에 창단되었고,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프로 야구 첫 경기를 치렀다. 이 날 경기에서 연장 10회 말 삼성의 투수 이선희를 상대로 이종도가 끝내기 만루 홈런을 터뜨리면서 11:7로 극적인 승리를 거둬,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승리팀으로 기록되었다. 이 짜릿한 경기가 전국민에게 중계되며 지금의 프로야구 붐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첫 프로야구 경기는 연장 10회 말 MBC청룡 이종도 선수가 친 굿바이 만루 홈런으로 삼성을 누르고 11대7로 극적인 역전 승리를 했다.

 


초대 감독 백인천은 한국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감독 겸 선수로 활동했다.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한 백감독은 4할 대의 타율로 팀을 이끌었다. 창단 멤버 23명 중 유승안, 김용운, 최정기, 신언호, 이종도 등 5명의 선수가 국가대표나 실업팀의 주전 선수로 뛰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김재박, 이해창 등이 합류하며 화려한 스타 멤버로 폭발적인 팬들의 인기를 받았지만, 정작 팀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1983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준우승에 그친 후, 1988년 팀이 없어질 때까지 포스트 시즌에는 한번도 진출 못했다.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MBC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활동한 백인천.

 

 


MBC 청룡은 프로야구 출범에 맞춰, 방송사가 참가해야 프로야구가 활성화된다는 이해 때문에 창단된 팀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주인 없는 공영 방송사에서 프로야구단 운영 자체가 어려웠고, 전문성이 없는 경영자들이었기에 감독들과의 마찰도 심했다. 또한 감독의 잦은 교체로 감독이 힘을 갖고 자기 스타일의 야구를 펼치기도 어려웠다. 


창단 첫해부터 해체까지 거쳐간 감독만 8명이었는데, 결국 1989년에 팀을 매각하기로 한다. 1990년 1월에 럭키금성 그룹이 인수하여 LG 트윈스로 이름을 바꾼다. 연고지, 홈구장, 기존 MBC청룡의 팬과 MBC청룡이 점유하고 있던 모든 권리가 인수 과정에서 그대로 LG 트윈스로 이어졌다. 

 

 

 

▲MBC청룡은 스타 멤버를 가지고 있었지만, 잦은 감독의 교체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는 모습.

 

 

류현진 선수가 블루제이스로 오는 바람에 잊혀졌던 야구장의 추억이 떠오른다. 잠실구장의 파란 하늘에 떠 있던 뭉개 구름, 푸른 잔디 구장을 향해 목청 것 외쳤던 “피처 베이비~! 청룡~ 파이팅~!”. 


이제 조금 있으면 토론토 로저스 센터에서도 “류현진을 옆~에 끼고 야~구하는 제이스야~.”하며 응원가를 부르게 되었으니, 늘그막에 이게 웬 복인가 싶다. 그나저나, 프로야구 개막은 언제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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