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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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 올레길에 있는 황경헌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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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되어 고국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추자도이다. 부대 내무반에서 레이더 기지가 있는 벙커까지 가려면 경사 40도의 오르막을 이십여 분 올라가야 하는데, 깔딱거리는 숨을 고르며 바라보던 그 바다의 풍광을 아직 잊지 못한다. 


추자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네 개의 섬과 아무도 살지 않는 서른 여덟 개의 섬으로 모여 있다. 바다에 떠 있는 첩첩산중의 느낌이랄까? 겹겹이 보이는 섬의 봉우리들은 섬이 아니라 깊은 산중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고 그 산 봉우리들 아래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는 힘들었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 추자도는 올레길로 유명하다. 예전에는 낚시꾼들이 주로 찾던 섬이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을 때, 본전이라도 뽑을 심정으로 섬 주위를 걸었던 낚시꾼들이 그 풍광에 반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올레길을 2011년경 매스컴이 다루면서 지금은 관광 상품까지 나오게 됐고, 한해 5만 명이나 다녀 간다니 놀라울 뿐이다. 


올레길의 총 거리는 18.2Km인데, 안내책자에는 약6~8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느리게 돌아볼 가치가 있는 섬인데, 그 중에서도 꼭 가볼만한 곳을 꼽으라면 후포해수욕장 근처의 나발론 절벽 능선길과 하추자도의 몽돌해안을 추천한다.


몽돌해안은 약 200m 가량 이어지는 아늑하고 자그마한 바닷가인데, 해안 옆으로 난 숲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천주교의 성지가 된 황경헌의 묘가 있다. 황경헌의 아버지는 황사영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신동이라 불렸고, 17세의 나이에 진사시험에 급제하는데, 정조는 그의 재주를 높이 사, “네가 20세가 되면 벼슬을 주겠다”고 했다.


 임금의 총애를 배경으로 탄탄한 출세의 길을 앞둔 황사영은 당대 석학들과 학문을 교류하던 중, 다산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딸과 결혼하며 일생일대의 변화를 겪는다. 황사영은 처가로부터 천주 교리에 대해 전해 듣고, 천주학의 그 오묘한 이치에 매료 되어, 순탄한 벼슬길을 마다하고 고통스런 일생을 선택한다.


 중국인 신부 주문모에게 세례 받은 그는 활발한 선교를 하는데 1801년, 수많은 신자와 주문모 신부, 정약종 등이 체포되는 신유박해 사건이 일어나 그도 충청도 제천 배론으로 숨는다. 


그곳에서 그는 북경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가는 세필로 명주천에 적어 북경 주교에 보내다 발각되어 체포된다. 이것이 황사영 백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대역 죄인으로 사지가 찢어지는 형벌을 받고 숨진다. 이때 그의 나이가 27세였다. 이 사건으로 홀어머니는 거제도로, 부인 정난주는 제주도로, 외아들 경헌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 된다. 


부인 정난주(마리아)는 정약현의 맏딸로 당대 최고의 실학자인 정약용의 조카고, 천주교 103 성인 중의 한 분인 정하상의 누이이다. 정난주의 아들 경헌은 다행히도 2살 이었기에 역적의 아들에게 적용되는 형률을 받지 않고 추자도의 노비로 유배되었다. 


정마리아는 두살난 아들을 품고 귀양을 가게 되는데 추자도에 가까이 왔을 때 뱃사공에게 패물을 주며 ‘경헌이 죽어서 바다에 수장했다’고 조정에 보고하도록 부탁한다. 사공들은 추자도에 이르자, 해변 언덕빼기에 어린 경헌을 내려 놓는다.


소를 뜯기던 부인이 어린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고 달려가 보니, 아기가 있어 집으로 데려와 기르는데, 저고리 동정에 부모와 아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가 바로 뱃사공 오씨(吳氏)였다. 그래서 추자도 오씨 집안에서는 황씨를 기른 인연으로 오늘까지도 황씨와는 혼인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한편 제주에 도착한 정마리아는 관비라는 쓰라린 유배 생활이 시작된다. 다행히 관비를 관리하는 김씨 집안에서 그의 성품을 높이 사 어린 아들들을 기르는 일을 한다. 시간이 지나며 정마리아는 김씨 자손들에게 ‘한양 유모, 한양 할머니’로 불리며 점차 자유로운 생활은 할 수 있었지만, 관비인지라, 죽을 때까지 아들을 만나러 추자도로 갈 수는 없었다고 한다. 


황경헌은 어머니를 그리다 숨진다. 그런 이유로 황경헌의 묘는 성지로 지정되었고, 추자 올레길을 찾는 이들이 꼭 들려 참배하는 명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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