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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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의 ‘맹장 수술’
Hwanghyunsoo

 

“김회장님! 해군 몇기세요?” “예, 저는 67기인데요”. ”아이고, 한참 고참이시네요. 저는 161기입니다.” 


제대한지 35년이나 지났어도 군대생각만 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전라남도 해남과 제주 사이에 추자도라는 섬이 있다. 요즈음은 바다낚시 천국으로 알려진 섬이다. 그 섬에서 1970년대에 군대생활을 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힘든 일도 있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들이다.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목포에서 추자도까지 여객선으로 7시간, 거기서 또 제주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리는 오지였다. 


어느날 그 오지에 훈련소를 갓 나온 신병이 부임했다. 섬에서는 중의 상투보다 보기 어려운 작대기 하나가 온 그날 저녁, 30여 명의 가족같은 부대원들이 모처럼 마을에서 돼지도 잡고 막걸리도 받아다 간만에 푸짐한 환영 회식을 했다. 


장교, 하사관들은 모두 퇴근을 하고 부임 온 신병도 생각지 못한 환대에 긴장이 풀릴 즈음, 한 선임 수병이 “어이, 김수병! 혹시 이곳 오기 전에 맹장수술 했냐?” “네~에?(무슨 소리냐? 는 듯)”. 

 

 

 

 


“아니, 섬에 오는데 미리 맹장수술도 안했어?” 하며 자기의 맹장수술 자국을 보여준다. 당황한 신병이 “아~ 안했는데요?” 하는 순간, 갑자기 부대원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옆에 있던 수병이 “어떻하지? 훈련받고 바로 와 목포 해역사에서 확인도 안했나봐.” 하며 추임새를 넣으며, 여기는 병원도 없는 곳이라서 급성 맹장염에 걸리면 위험하다는 설명을 보탠다. 


당시는 급성 맹장으로 의료사고가 많았던 시절이기에 신병도 찜찜한 표정이 역력한데, 기다렸다는 듯이 위생병이 지난번 급성 맹장염 환자 때문에 고생했던 상황을 리얼하게 이야기 한다.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고참 수병이 심각한 표정으로 “아무래도 저 친구, 오늘 밤에 수술해야겠어. 내일부터는 과업이 많아 수술날짜 잡기도 그렇고…. 이러다 맹장이라도 터지면…”하며 말끝을 흐린 후, “야, 위생병 수술 준비해!” 한다. 


고참의 이 한마디에 갑자기 회식 분위기는 사라지고, 수술 모드로 바뀐 부대. 술이 확 깨버린 신병을 제외하곤 모두들 신바람이 나서 수술 준비로 부산하다. 위생실은 간단한 수술을 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 있지만, 한눈에 봐도 맹장 수술을 하기에는 열악한 시설이다. 


 진땀이 온몸 가득한 신병에게 누군가 흰 가운을 갈아 입힌 뒤 알약 6~7개를 먹인다. 마취약이라고 먹인 것은 사실, 소화제와 수면제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위생병이 제법 폼을 잡으며, 신병을 수술대에 누우라고 지시한다. 수술대 위에 누운 신병은 죽을 맛인데, 모두들 나가더니 한참이 되어도 들어오질 않는다. 


세상에 술 먹다 말고 갑자기 멀쩡한 배를 갈라서 맹장을 꺼내겠다고 야단이니 별 불안한 마음을 누르면서도 한참 받아먹었던 막걸리와 수면제 때문인지 신병의 눈까풀은 천근이고 졸음이 쏟아진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신병의 귓가에 어수선한 대화가 들린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괜찮을 겁니다. 잘 꼬맸습니다.” “내일 아침까진 마취가 풀리지 않아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그제야 신병은 자신이 깜박 잠이 든 것을 알았다. 


어렴풋이 수술 부위를 알코올로 닦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뒤로 기억이 없다. 오른쪽 아랫배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는 것으로 보아 벌써 수술이 끝난 것 같은데, 피를 많이 흘렸다는 말에 현기증도 나고 갑자기 아랫배에 통증을 느낀다. 


사실 맹장수술은 없었다. 새로 온 신병이 반가워 전 부대원이 만들어낸 일종의 신고식(?)인데, 자주 해봐 손발이 척척 맞는다. 선임 수병이 “당분간 수술이 회복될 때까지 저 친구, 과업에서 제외하고 푹 쉬도록 해줘”라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신병은 밤새 한잠 못 자다가 새벽녘이 돼서야 잠이 들었는데, 한참을 자고 눈을 뜨니 내무반에는 아무도 없다. 통증은 그다지 심하지 않지만 어젯밤 일을 생각하니 끔찍하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기를 몇 시간, 오후 늦게나 되어 돌아온 부대원들은 자기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그냥 눈을 감고 있는데 저녁식사를 하러 갈 모양인지 내무반이 어수선하다. 그러고 보니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신병도 시장기가 돈다.


 “어이, 저 친구는 왜 저러고 있어?” 누군가 신병에게 관심을 보인다. 갑자기 내무반이 고요해진다. 신병은 자기에게 집중된 시선을 느끼며 눈을 떠보니, 자기 옆에 부대원들이 모두 모여 있다. “김 수병, 저녁 먹으러 안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 네. 저기, 제가 지금 맹장수술을 받아서…” 하며 아랫배를 가리킨다. 


고참 수병이 시치미를 떼며 “이 친구 무슨 소리하는 거야?” 한다. 모두의 킥킥거림에 신병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스러워 하는데, 어젯밤에 수술을 한 위생병이 “야, 너 왜 그렇게 누워있어?” 하며 “배 타고 오느라 수고했다고 하루 쉬게 해준거야” 한다. 


 동시에 부대원들은 무슨 축제나 일어난 듯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수건까지 던져대며 난리법석이다. 신병은 그제야 자신이 속았음에 분하고 억울하지만, 쫄따구 신세이니 표정만은 바꿀 수 없다. 


그 후 신병은 복수의 심정으로 후임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내가 제대하기까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비릿한 바다내음이 가득했던 추자도가 그립다. “김 수병, 어디 계세요? 얼굴 한번 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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