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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이상주의-행동없는 동정은 허무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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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강준만 교수의 저서 ‘강남 좌파’ 표지

 

 “야, 내 앞에서 돈 얘기 하지마. 술맛 떨어진다…” 한국에서 친구들끼리 모임을 가지면 대화의 주제가 참 다양했다. 학창시절엔 관심사나 취미들이 비슷했지만 졸업 후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다 보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주요 관심사는 종사하는 직업만큼이나 달라지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 신문기자생활을 하면서부터 주로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시사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그때(1980~90년대)만 해도 시국상황이 어수선했기에 나는 주로 사회적 정의와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모임자리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경영학과를 나와 그 당시부터 일찌감치 주식투자나 부동산에 눈을 뜬 친구들은 만났다 하면 주로 돈과 주식 얘기를 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내가 정색을 하며 위와 같이 외쳤다. “야 임마, 너는 돈이 최고냐? 사회는 썩어 문드러지는데, 돈 모아서 어디다 쓰려고?”. 그러면 술자리가 갑자기 썰렁해지곤 했다.

 

0…당시 내가 별로 달갑지 않아 했던 직업이 바로 금융, 증권사, 투자회사 등 주로 돈을 만지는 사람들이었다. 사회적 정의감은 찾아볼 수가 없고 오직 재산 불릴 궁리만 하는 것 같아 경멸해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입맛이 씁쓸해지는 기억들이다. 나도 잠시나마 대기업에 근무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일찌감치 이재(理財)에 관심을 갖고 주식투자 등을 하던 친구들은 한밑천 잘 건져 지금은 골프나 치면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다.

 

 뼛속까지 문과(文科) 성향인 나는 애당초 돈 따위에는 욕심이 없었고, 문학이나 철학 등에 관심을 갖고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다분히 한량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친한 친구라도 너무 현실적인 얘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다.   

 

0…이런 나의 성향은 자라온 집안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집은 별 볼일  없는 ‘양반 가문’이었다. 경제적으로 궁핍까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크게 가진 것도 없으면서 명예와 의리를 중시하는 집안이었다. 어른들이 주로 하는 얘기는 누구네 가문이 어떻고 역사상 누가 어떤 일을 했다는 둥의 화제거리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나는 세상엔 오직 펜대 굴리는 직업만 있는 줄 알았고, 손으로 무엇을 만들거나 장사를 해 돈을 버는 일 따위는 관심도 없었거니와 누가 구차하게 돈 얘기나 하면 속으로 경멸하는 습성이 배었다. 이를테면 냉수 마시고 이빨 쑤시는, 전형적인 선비집안이었다.

 

 기자생활을 할 때도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며 술이나 퍼마실 줄 알았지, 정작 뒤주에 쌀이 얼마나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친구가 몇평짜리 아파트를 샀다고 자랑하면 혀를 차며 저런 놈들이 나라 일에 관심이 없으니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겠느냐고 한탄했다. 나이 들어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0…그러던 내가 변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지금의 부동산 신문을 만들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히 그런 방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부동산 신문을 만들면서 부동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부동산에 문외한인데다 관심조차 없던 내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뉴스를 다루고 기사로 쓰다보니 전문용어도 제법 익히게 됐고 시장흐름도 파악하게 됐다. 특히 아내가 이 일을 하면서부터 나의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실은 내가 이 신문을 만들면서 집사람도 이 일을 하게 됐다).

 

 이전에는 교외(郊外)에 나가면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하고 싯구절을 떠올리곤 했는데, 지금은 저 광활한 땅이 곧 개발될 여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게 됐고, 저 대지가 개발되면 땅주인은 엄청 부자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됐으니 참으로 놀라운 변신이 아닐 수 없다.     

 

0…그런데 변한 것이 나만은 아니다. 우리 아이들도 전에는 콘도 등에 관심도 없었는데 요즘은 엄마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아서 그런지 점차 흥미와 관심을 갖는 눈치다.

 

 나는 이런 변화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예전같이 부동산에 전혀  무관심하다면 아이들도 장차 그런 일에 관심이 없을 것이고, 그러면 이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뒤쳐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주택의 형태와 면적 단위에서부터 모기지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래, 너희들은 아빠처럼 뜬구름 잡는 이상이나 추구하지 말고 경제적으로 좀더  풍요롭게 살아다오.”란 말이 절로 나온다.

 

 나도 조금만 일찍 이런 방면에 눈을 떴더라면 지금쯤 (경제적)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0…사람은 젊어서부터 어느 분야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젊은이들이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일찌감치 재테크에 눈을 뜨는 것도 나쁠 게 없을 것이다. 아무리 높은 이상을 지녀도 경제적 현실이 받쳐주어야 가능한 것이다.    

 

 언행이 일치한다면 ‘강남 좌파’야말로 이상적인 모델이 아닌가 한다. 이들은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서민과 약자를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경제적으로 힘이 있어야 한다.

 

 “현실주의자가 되자. 다만 가슴에는 불가능한 꿈 하나는 간직하고 살자.”- 체 게바라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