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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주제를 알자-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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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N에 방영된 한 스님의 서울 도심생활 장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 모처럼 한국 TV 채널을 돌리다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언뜻 보니 스님이 나오는 것 같아 관심을 갖고 지켜보니 이미 세상에 많이 유명해진 어느 스님이 서울에서 도심생활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을 보고 있노라니 수도자의 삶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노총각이 혼자 자취생활을 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일반의 상식으로 스님들은 보통 새벽 3~4시에 기상해 예불(禮佛)을 올리는데 반해, 이 스님은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또한 불가에서는 식사 공양(供養)도 간소하게, 오신채(五辛菜: 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자극적인 채소)를 지키며 해야 함에도 이 분은 시중 요리책을 보며 마늘, 고추, 양파, 대파가 듬뿍 들어간 순두부 찌개와 밥 두 공기를 포식하는 것이었다.

 

 거한 아침을 먹은 후 승복을 차려입고 염불을 하는데 그 역시 부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몰입이나 진실성도 없고 기계적인 독경 같았다. 이어 그는 고급 노트북 컴퓨터와 블루투스를 착용한 뒤 ‘출근’을 한다며 자택을 나서는데 카메라가 따라가 보니 서울 명동의 화려한 빌딩 사무실에 젊은이들과 모여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벌이고 돈 벌 궁리를 하는 회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장면을 보면서 눈을 의심했다. 요즘 스님들은 이런가. 내가 시대에 뒤쳐져서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나.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후 후폭풍이 몰아치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물론 스님이라고 돈벌이를 하지 말고 세속적인 모든 것과 인연을 끊고 먼 산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일반인들의 삶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런 사람이 세상을 향해 욕심을 버려라, 소유하지 말라고 설파하고 다닌다니 씁쓸하다.          

           

0…이 스님은 이력이 화려하다. 서울에서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 캘리포니아대학교(UC) 버클리에서 종교학 학사, 하버드대학교에서 신학석사(MTS),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매사추세츠주 햄프셔대학에서 7년간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하버드 출신이라면 만사가 통하는 한국에서 그는 이런 배경 덕에 책과 방송을 통해 질풍같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010년 출간한 <젊은 날의 깨달음-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은 ‘하버드 출신 스님 책'이라는 후광을 등에 업고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그는 졸지에 연예인 뺨치는 스타가 됐다. 이어 2년 후 출간한 명상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역시 판매부수 300만 권을 돌파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그는 방송, 콘서트 출연 등으로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이러자 그는 아예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와 서울 인사동에 ‘마음치유학교’를 설립해 주지 겸 교장 겸 법인대표로 있으면서 여러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했다. 부산에 분원도 열었다. 그는 말하자면 본분은 승려이지만 방송인, 사업가, 작가, 마음치유학교 교장 등으로 워낙 분주해 어떤 것이 본업인지 모를 정도다.

 

0…그는 처음엔 순수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가족을 잃은 사람, 암 진단을 받은 사람,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 힘든 취업 준비생들, 유산의 아픔이 있는 사람 등을 위한 무료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저소득층 아이들을 돕는 일에도 솔선했다.

 

 그런데 인지도가 높아지자 점점 세속적이고 경솔한 발언들로 대중적 호감도를 깎아먹기 시작했다. 스님이란 사람이 절이 아닌 서울의 비싼 단독주택에 살면서 외제차를 타고, 스타트업 회사에서 유료 명상 어플을 제작하는가 하면, 마음치유학교란 곳에선 남녀 만남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수도자의 길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말실수도 잦아 “법정스님이 무소유가 가능했던 것은 인세(印稅)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해도 살 수 있어야, 베풀 능력이 있어야, 역설적으로 무소유가 가능하다”는 황당한 트윗을 올려 망신을 샀다. 그의 말과 달리 법정스님은 저서로 받은 수십억 원의 인세를 모두 자신이 후원하는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기부했고 정작 자기는 돈이 없어 말년 투병생활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 스님이란 사람은 특히 승려가 된 후 단 한번도 안거(安居) 수행을 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승려라면 필수로 행해야 하는 수행절차다. 이밖에 책의 삽화를 둘러싸고 화가와 벌인 저작권 분쟁, 워킹맘 무시 발언, 어록 표절시비, ‘정치.연예인 이야기밖에 할 말이 없나’, ‘조수미 드레스’ 발언, 과학적 근거도 없는 우울증 발언, 일본여행상품 운영, 수억원대의 건물주, 건물을 사고 팔아 거액의 시세차익 챙기기 등 수행자라곤 도저히 할 수 없는 행태들을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욕심은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애초에 그 스님은 길을 잘못 들어섰거니와, 조금만 세속적 이름이 나면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고 나대고 분수를 모른 채 날뛴다. 어디 그 스님 뿐일까. 자기의 본분을 잊고 허황되게 사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배울수록 겸손해지는 법. 자기 주제를 좀 알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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